소설리스트

화무십일홍-56화 (56/209)

#56화. 知斧斫足(지부작족)

***

오대산검이 려국 토벌에 앞장서기를 바란다는 황제의 명(命)에, 반대한 이는 마세풍이 유일했다.

“우리는 무인(武人)이지 정치(政治)와는 관련이 없소. 나랏일은 강호와는 무관하니, 황석파는 이번 일에서 빠지는 것으로 합시다.”

애초에 모두를 설득하는 것은 불가능한 일임을 알고 있었다. 하여, 황석파만이라도 이 모진 전쟁에서 발을 빼고 싶었다. 자신이 장문이기도 했거니와 아끼는 두 사제가 십분 이해해 주리라는 기대가 있었다. 그러나,

“문주님, 나라를 위한 일이 아닙니까? 어찌 우리 황석파만 반대할 수 있겠습니까? 저는 오대산검과 뜻을 합쳐 나라의 영광을 함께하고 싶습니다.”

부능파의 의견에 장로 대부분이 고개를 끄덕이자, 가만히 눈치만 보던 고유생도 한 마디 덧붙였다.

“려국은 수백 년 동안 경국의 속국(屬國)이었음에도, 예를 다해 섬기지 않았습니다. 뿐입니까? 배은망덕하게 호시탐탐 국경에서 약탈을 일삼았지요. 이번에야말로 질서를 바로잡아야 하지 않겠습니까?”

마세풍은 심히 당황하여 팔걸이에 올린 손을 덜덜 떨었다. 도대체 이들은 무엇을 위해 이리 나서는 것인지 아무리 생각해도 알 수 없었다.

“혹, 마문주님의 개인적 친분 때문에 망설이는 것입니까?”

세상 딱하다는 표정으로 조양이 돌아보았을 때, 그제야 마세풍은 덫에 걸렸음을 깨달았다. 어차피 자신의 의견은 필요치 않았다. 그는 논의하러 온 것이 아니라 통보를 하러 온 것이었다.

“그럼 황석파의 소중한 의견을 황실에 전달하겠습니다.”

그때까지도 마세풍은 절망하지 않았다. 어차피 피할 수 없다면 가장 처참한 결과는 막아볼 생각이었다. 비록 이번에는 자신에게 결정권이 전혀 없었지만, 막상 실전에서는 어떻게든 피해를 최소화해 보겠다 다짐했다. 적어도 자신이 이끄는 황석파의 제자들만큼은 그리 몰인정하지 않다고 확신했다.

려국 토벌이 시작된 것은 그로부터 반년 뒤였다. 오대산검은 려국의 수도인 태봉(泰封)을 비롯하여 요충지(要衝地)에 해당하는 다섯 개의 고을을 차례로 점령하였다. 그중에서 황석파가 맡은 곳은 려국의 문화 중심지 온수(穩睡)였다.

“려국의 왕이 이미 항복하였고 우리는 그저 이 땅의 주인이 바뀐다는 것만 확인시키면 된다. 안찰사를 만나 조서를 작성하고 최대한 조용히 빠져나가기로 하자. 절대로 백성들을 해치면 안 된다.”

마세풍은 데리고 온 서른 명의 장로와 제자들에게 신신당부했다. 모두 승리에 도취하여 흥분상태였으나 그리 걱정을 하지는 않았다. 자신의 오른팔인 부능파를 비롯하여 가장 사랑하는 제자 장은이 함께였기에, 통제가 가능하리라 자신했다.

“사부님, 선발대가 먼저 출발하면 뒷정리를 끝내고 따르겠습니다.”

온수에 머무른 것은 고작 사흘이었다. 마세풍은 아무 의심도 하지 않고 부능파가 이끄는 후발대를 남겨두고 먼저 출발하였다. 워낙에 장은을 믿기도 했거니와 다른 지역에 비해 순조롭게 일이 잘 끝나 긴장이 풀어진 탓도 있었다. 그러나 고작 고개 하나를 넘었을 때였다.

“문주님, 뒤쪽에서 불이 납니다.”

제자의 보고에 마세풍은 눈앞이 캄캄해졌다. 그 아름답던 고을이 시뻘건 화마(火魔)에 휩싸인 것이었다. 반나절이나 온 거리를 되돌아가며, 혹여 자신의 사제와 제자가 다쳤을까 식은땀을 뻘뻘 흘렸다.

“능파야! 은아!”

마세풍은 자신의 앞에 펼쳐진 끔찍한 장면을 믿지 못하고 수차례 눈을 비볐다. 아무래도 헛것을 본 모양이라고 끊임없이 부정했으나 오히려 눈을 비빌수록 더 선명해졌다.

“대사형!”

“사부님?”

이제 이곳에는 생명이라고는 아무것도 없었다. 그 아름답고 평화로웠던 고을은 통째로 거대한 무덤이 되었다. 곳곳에 널브러진 시체들에서 흘러나온 피가 마을을 가로지르는 개천을 붉게 물들였다.

“지금… 어, 아…무슨…….”

마세풍은 한 단어조차 제대로 내뱉지 못하고 더듬거리며 멍하니 서 있었다. 부능파와 그 무리는 당황하기는커녕 차라리 다행이라는 표정이었다. 온몸에 피를 뒤집어쓴 그들은 흡사 마귀(魔鬼)와 같았다.

“대사형, 어쩔 수 없는 일입니다. 이들은 우리를 침입자로 생각할 뿐, 조금도 숙이지 않더란 말입니다. 힘의 우위를 확인시켜 주지 않는다면 온전히 려국을 점령할 수 없을 것입니다.”

부능파는 고개를 까딱거리며 뻔뻔한 얼굴로 변명했다. 쓴소리를 듣기 싫어, 되지도 않는 말로 설득하는 양이 가증스럽고 역겨웠다.

“이들 모두를 묻어주고 우리는 당장 본파로 돌아간다. 차후에 책임을 묻겠다.”

마세풍은 정신을 놓지 않기 위해 안간힘을 썼다. 결코, 장문인으로서의 위엄을 잃으면 안 된다. 여기서 무너지면 이들을 통제할 수 없었다.

“사부님, 놀라신 마음은 잘 압니다. 허나 사숙의 말이 맞지 않습니까? 이들은 경국인이 아닙니다. 어찌 미물들을 식구보다 더 귀히 여긴단 말입니까? 약육강식(弱肉强食), 전쟁이라는 것이, 이 세상이라는 것이 모두 이와 같습니다. 그러니 부디 노여움을 푸시고 현실을 바로 보십시오.”

마세풍은 자신의 앞에서 무릎을 꿇고 호소하는 제자 장은을 내려다보았다. 하나를 가르쳐주면 열을 아는 아이. 심성이 곱고 예의가 발라 언젠가 황석파를 이어받을 인재라 생각했었다. 그 사랑스러운 아이의 입에서 나오는 말 한마디 한마디가 어찌 이리 더럽단 말인가?

“약육강식?”

감정을 최대한 억누르려 했으나 목소리의 떨림은 감출 수 없었다. 이다음 말이 바로 제자의 생사를 결정할 것이었다. 마세풍은 제발 그 말은 하지 말아주기를 바라며 사랑하는 제자에게 마지막 질문을 던졌다.

“그럼, 왜 눈을 도려냈느냐?”

바닥에 머리를 조아리고 있던 장은이 한숨을 크게 내쉬며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그의 눈에는 후회도 죄책감도 없었다.

“감히 우리를 짐승 보듯이 바라보더군요. 과연 짐승이 누구입니까?”

마세풍은 오른손을 감아쥐고 조용히 내력을 모았다. 이 앞에 있는 놈은 자신이 그토록 사랑했던 제자 장은이 아니었다. 여우가 둔갑했을지도, 쥐새끼가 사람 흉내를 내는 것인지도 몰랐다.

“그래, 차라리 죽어라!”

스승의 권풍이 불어닥치자 장은은 화들짝 놀라며 두 팔을 들어 안면을 방어했다. 그러나 이대로 맞는다면 죽지는 않아도 병신이 되는 것은 자명했다. 이제 틀렸구나 하는 순간, 부능파의 오른손이 마세풍의 주먹을 가로막았다.

“대사형! 적당히 하십시오, 제발!”

남은 왼손으로 그는 사형의 오른뺨을 거세게 내려쳤다. 내력을 담지는 않았으나 온 힘을 다해 때린 터라 마세풍의 얼굴이 금세 부풀어 올랐다.

“전쟁에 있어 의(義)가 무엇이며 이상(理想)이 무엇입니까? 살육(殺戮)! 그저 죽고 죽이는 것이 전쟁이란 말입니다. 이미 이곳에 왔을 때, 이런 결말을 예견하지 않았냔 말입니다. 지금 여기에서 제일 역겨운 사람이 누굽니까?”

마세풍의 눈에서 눈물이 주르륵 쏟아졌다. 그는 단 한마디도 대거리할 수 없었다. 애초에 자비로운 전쟁이 가능한가? 그는 그저 이루어질 수 없는 꿈을 꾸고 있었다. 어리석었고, 가증스러웠다.

비틀비틀 무리에서 빠져나온 마세풍은 바닥에 떨어진 아무 검이나 들어 자신의 오른 손목을 깊게 그었다. 검붉은 피가 멈추지 않고 뚝뚝 떨어졌으나 조금도 통증이 느껴지지 않았다. 저 괴물들을 가르치고 키워낸 것이 누구였던가? 후회하자면 이처럼 나약한 인간이 무공 따위를 배운 것부터가 잘못이었다.

“으흐흐흐흑.”

마세풍은 부끄러운 줄 모르고 소리를 내어 울기 시작했다. 이렇게 몸에서 피가 다 빠져나가면 그냥 아무 데서나 쓰러져 죽으면 그뿐이었다. 삶에 대한 희망도 미련도 아무것도 남지 않은 껍데기가 된 것 같았다.

“아……아……버지…….”

마을 어귀에 다다랐을 때였다. 곧 숨이 끊어질 것 같은 가냘픈 소리가 광인(狂人)처럼 거리를 헤매는 마세풍의 귀에 들려왔다. 그는 문득 짚이는 바가 있어 주변에 있는 시체 더미를 뒤지기 시작했다. 분명 살아 있는 사람의 목소리였다.

“찾았다!”

온몸에 피를 뒤집어쓴 열 살가량의 소년이, 아버지의 저고리를 뜯으며 울고 있었다. 숨이 곧 끊어질 것처럼 기운이 없었으나 분노가 가득 느껴지는 몸짓이었다.

“얘야!”

이미 싸늘하게 식은 시체의 품속에서 아이를 꺼내든 마세풍은 또다시 큰 충격에 휩싸였다. 그 괴물들은 그저 쳐다보는 시선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이유로 이 아무것도 모르는 어린아이의 눈마저도 앗아간 것이었다.

“아버지…….”

아이는 자신을 와락 안고 있는 마세풍의 가슴을 작은 두 손으로 콩콩 두드렸다. 조금도 힘이 실리지 않았건만 너무 쓰라리고 아파서 가슴이 터질 것 같았다.

“아이야, 내 꼭 복수할 수 있도록 도와주마. 그러니 살아라. 살아야 한다.”

마세풍은 품속에 아이를 꼭꼭 숨기고는 냅다 뛰기 시작했다. 아이를 꼭 살려야 했다. 그것이 이제 자신이 살아야 하는 이유가 되었다.

***

“이정아, 이 약해빠진 녀석……. 복수를 하려거든 목을 떼어야지 겨우 눈알만 가져가누? 너 때문에 나까지 죽게 생겼구나. 망할 녀석…….”

바닥에 고꾸라진 마세풍의 얼굴에는 평온한 미소가 가득했다. 그 길고 긴 은원의 고리를 드디어 끊어낸 것이었다. 이제 죽어도 여한이 없었다.

“사부님!”

운선의 울부짖는 소리가 저 멀리서 들려왔다. 그러고 보니 저 녀석이 있었지? 마세풍은 왠지 모르게 마음이 뿌듯했다. 괴물이 아닌 사람을 키우고 싶었던 자신의 꿈을 저 녀석이 이루어줄 것 같았다.

“사부님, 이렇게 돌아가시면 안 됩니다.”

운선은 마세풍의 얼굴을 끌어안고 펑펑 울었다. 이제 겨우 제대로 된 사부를 만나 정이 담뿍 들었는데 또다시 이별의 아픔을 겪고 싶지 않았다. 짧은 시간이었지만 그는 진정으로 자신의 새로운 사부를 존경했다. 이렇게는 절대로 보낼 수 없었다.

“아이고, 이놈아! 귀청 떨어지겠다. 나 그렇게 쉽게 안 죽는다!”

서문이 재빨리 혈을 눌러 지혈을 하자 옆구리에서 솟아 나오던 피가 서서히 멈췄다. 다행히 칼이 장기를 비켜 간 덕에 치명상은 피한 것 같았다. 다만,

“운선아, 마문주님은 내상을 심하게 입으셨다. 이대로는 위험하다.”

운선이 당황하여 몸을 들썩거리자 현진이 다가와 그의 어깨를 따뜻하게 안아주었다.

“이곳은 우리에게 맡기렴. 너는 마문주님을 모시고 설이에게 가라. 그 아이라면 분명 방법이 있을 거야.”

이 여린 아이를 혼자 보내는 것이 영 마음에 걸렸지만, 지금으로서는 그것이 최선이었다. 고유생을 따라간 성곤이 아직 돌아오지 않는 것을 보면 일이 잘못되었다는 신호였다. 여기서 지체하다가는 조양 혹은 또 다른 고수가 나타나 방해할지도 모를 일이었다.

“현진의 말이 맞다. 할 수 있겠느냐?”

서문이 걱정스럽게 묻자, 운선은 결연한 얼굴로 고개를 크게 끄덕였다. 설이라면 사부님을 살릴 수 있을 것이다. 그의 머릿속에는 오직 이 생각만이 꽉 들어찼다. 더는 머뭇거릴 시간이 없었다. 운선은 의식이 오락가락하는 마세풍을 등에 업고는 현진이 건네준 밧줄로 자신의 몸에 꽁꽁 묶었다.

“사부님, 제가 꼭 살립니다.”

설이는 황석산에서 기다리고 있겠다고 했다. 운선은 사형제들에게 가볍게 묵례만 남기고 그녀가 있는 운평 쪽으로 방향을 잡았다. 경공이 대단하지는 않았으나 체력은 누구에게도 뒤처지지 않는다 자부했다. 산길로 사흘을 꼬박 달리면 충분한 거리였다.

“자, 우리도 서두르자.”

서문의 지시 아래 태을신교의 모두는 힘을 합쳐 남은 마차 스무 대에 려국인들을 실었다. 오랜 시간 밀폐된 공간에 갇혀 있던 그들은 영양도 위생도 엉망이었다. 최대한 빨리 목적지까지 가지 않는다면 이들의 목숨도 장담할 수 없었다.

해가 이제 거의 중천에 다다랐다. 마지막 세 대의 마차를 출발시키면 이 고된 여정도 끝을 볼 수 있으리라. 적우는 새삼 마음이 뭉클하여 코를 킁 하고 들이마셨다. 낯선 땅에서 고국을 위해 목숨을 바친 십수 명의 려국인들을 땅에 묻어주지 못하고 떠나는 것이 마냥 죄스러웠다.

“부디 좋은 곳으로 가시오.”

진건은 그들을 향해 깊이 고개를 숙이고 한참 동안 움직이지 않았다. 서문도, 현진도 각자 나름의 방식대로 귀한 희생에 애도를 보냈다.

“각자 방향으로 흩어져 마차를 보호한다. 그리고 중간 거점인 안악에서 다시 만나자.”

서문이 손을 내밀자 모두 다가가 그 위에 오른손을 차례로 얹었다. 어쩌면 오늘이 마지막일 수도 있다. 매번 임무를 나갈 때마다 비장한 마음으로 맞대는 손등이었다. 서로의 얼굴을 확인하며 부디 다시 볼 수 있기를 빌고 또 빌었다.

“벌써 끝났어?”

그때였다. 귀청을 찢을 듯한 날카로운 목소리가 산을 울리고, 다시 메아리가 되어 살아남은 이들의 머릿속을 온통 흔들어 놓았다.

“누구냐?”

적우가 우렁찬 소리로 되묻자, 연향으로 가는 큰길 쪽에서 세 사람의 인영이 조금씩 드러났다. 그리고 수십은 되어 보이는 한 무리의 군대가 빠르게 그들을 에워쌌다.

“우리? 위대한 천서국(天西國)의 사자(使者)들이지. 아니지, 아니야. 너희들을 염라지옥(閻邏地獄)으로 끌고 갈 황천(黃泉)의 사자(使者)들이지!”

***지부작족(知斧斫足):

믿는 도끼에 발등 찍힌다는 뜻.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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