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천왕성 작전 (7) >
겨울전쟁에서의 승리로 소련이 핀란드로부터 강탈한 항코에는 소련 해군의 발트 함대가 정박 중이었다.
가뜩이나 오합지졸 상태나 다름없다고 평가받던 소련 해군은 쿠즈네초프를 포함한 해군 수뇌부가 스탈린의 지시로 숙청된 후에는 뇌사상태에 빠졌다.
숙청된 수뇌부의 자리를 채우기 위해 고속으로 승진한 인사들은 경험과 실력이 부족했고, 설상가상으로 그들이 싸워야 할 전장과 상대조차 마음대로 정할 수 없었다.
스탈린 또한 자국 해군의 상태가 어느 정도인지 모르지 않았기에, 해군을 적극적으로 이용하려 들기보다는 전력을 온전하게 보존하는 것을 선택했다.
천하의 영국 해군마저 농락한 크릭스마리네를 상대로 소련 해군이 호각으로 싸울 리 없으니, 교전을 되도록 회피하고 항구에 머물러 있는 게 현명한 선택이리라.
스탈린의 판단은 결코 나쁘지 않았다. 예로부터 되도록 이길 수 있는 상대와 싸우고, 이길 수 없는 상대와의 싸움을 피하는 것은 병법의 상식.
막강한 독일 해군과 이길 수 없는 싸움을 하는 것보다 훗날을 위해 몸을 사리는 게 현실적으로 매우 올바른 판단이었다.
그러나, 소련 해군에게 싸울 생각이 없다고 해도 독일 해군에게는 아니었다.
***
오후 8시 52분. 해가 저물어 어둠이 내려앉은 항코 앞바다에 21형 유보트들이 바다에 몸을 숨긴 채 은밀히 접근했다.
U-47의 함장 귄터 프린 소령은 잠망경을 통해 항구에 정박한 소련 해군의 함선들을 살피며 입맛을 다셨다.
마음 같아선 지금 당장 어뢰를 발사해 저 거대한 함선들을 바닷속으로 가라앉히고 싶었지만, 그의 목표는 평범한 구축함이나 화물선 ‘따위’가 아니었다.
“‘놈’은 어디 있지? 분명 여기 있다고 들었는데...”
“정보가 잘못된 거 아닙니까?”
부함장의 말에 프린은 어깨를 으쓱해 보였다.
“설마. 가능성이 전혀 없는 건 아니지만, 여태까지 정보는 정확했잖나. SD를 믿어보자고.”
잠망경을 왼쪽으로 오른쪽으로 서서히 돌리며 항구를 탐색하던 프린의 입에서 잠시 후 작은 탄성이 튀어나왔다.
“찾았다.”
“찾았습니까?”
“그래. 직접 확인해 봐.”
프린으로부터 잠망경을 넘겨받은 부함장의 입가에 미소가 지어졌다. 그 모습을 본 수병들은 본능적으로 느꼈다.
저건 진짜다. 다시 한번 전설을 써 내려갈 시간이 온 것이다!
귄터 프린이 발견한 목표물은 소련 해군의 옥차브리스카야 레볼루치야(Октябрьская Революция, 10월 혁명)급 전함 마라(Марат)였다.
그 옆에 있는 게 아마도 옥차브리스카야 레볼루치야고, 중앙에 있는 놈이 마라겠군.
귀중한 전함을 보호하기 위해 소련 해군이 취한 조치는 항구 일대에 대공포 몇 대를 추가로 배치하고 어뢰 방지용 그물을 까는 것이었지만 그물은 너무 짧은 나머지 항구 전체를 방호하지 못했다.
유보트들은 소련 해군이 설치한 그물을 피해 유유히 항구 안으로 접근했고 두 전함을 향해 어뢰를 쏠 준비를 하고 있었다.
멍청한 녀석들. 그물을 깔 거면 제대로 깔던가 겨우 구색만 내고 방치하다니.
영국 해군이 유보트들의 침입을 막기 위해 자침시킨 선박들의 잔해 사이로 거의 묘기를 부리듯이 지나야만 했던 프린에겐 항코 반도의 항구로 접근하는 일은 누워서 떡 먹기나 다름없었다.
프린은 무능한 적들을 비웃으며 전함 마라의 최후를 확인하기 위해 잠망경으로 눈을 가져갔다.
“1번에서 3번관, 발사!”
U-47이 어뢰를 발사한 직후 동행한 두 척의 유보트도 각자의 목표물을 향해 어뢰를 발사했다.
기젤라 어뢰의 성능을 한층 업그레이드시킨 최신형 어뢰 파울라는 자신들의 표적을 향해 일직선으로 바다를 해치며 나아갔다.
***
“야, 야. 좀 쉬었다 하자.”
“예, 알겠습니다.”
소련 해군 수병 미하일 크류시킨 병장은 돼지비계 통조림이 가득 든 상자를 바닥에 내려놓곤 그 위에 걸터앉았다.
저녁을 먹은 뒤부터 잠시도 쉬지 않고 상자를 나른 탓에 땀이 비 오듯이 흘렀다. 땀에 젖어 축축해진 옷이 피부에 들러붙어 떨어질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니미 씨발. 입에서 욕이 절로 나왔다.
“좆같네, 진짜. 겨우 소시지 하나 빼먹은 게 뭔 죽을죄라고.....”
“그러게나 말입니다.”
크류시킨의 후임, 아나톨리 만치코프 이병도 덩달아 한숨을 푹 쉬었다.
세계 어느 군대가 안 그렇냐만은 소련 해군의 수병들은 늘 고된 업무와 배고픔에 시달려야 했고, 참다못한 크류시킨과 만치코프는 몰래 부식창고로 숨어들어 보관된 소시지를 빼먹다가 그만 순찰하던 당직사관에게 발각당하고 말았다.
둘 다 당직사관에게 얼굴이 평평해질 때까지 두들겨 맞은 뒤, 벌로 일주일간 저녁 식사 후 점호 때까지 부식을 나르는 형벌을 받았다.
돈을 훔친 것도 아니고 겨우 소시지 하나를 빼먹었다는 이유만으로 일주일 동안 중노동이라니. 이건 해도 해도 너무한 거 아닌가.
“당직사관 그놈, 예전에 우리처럼 수병이었다면서?”
“그렇다고 들었습니다.”
“그럼 좀 봐주지. 자기도 우리처럼 배고픔을 느꼈을 거 아냐? 그런데 겨우 소시지 하나 훔쳐먹었다고 사람을 죽기 직전까지 패는 것도 모자라 중노동까지 시키다니. 너무 하네 진짜.”
“개구리 올챙이 시절 모른다고, 자기도 병사였던 주제에 지금은 장교랍시고 거들먹거리고 다니는 게 존나 좆같습니다.”
“애미 씨발.”
오늘은 독일과의 전쟁이 발발한 역사적인 날이지만 크류시킨과 만치코프에겐 어제와 같은 고된 일상의 연속이었다.
쉴 만큼 쉬었다고 생각한 크류시킨이 상자를 들고 일어서는 그때, 항구에 정박한 마라에서 거대한 물기둥이 솟구치며 폭음이 울려 퍼졌다.
귀청을 찢을듯한 굉음과 거대한 폭발에 놀라 크류시킨은 상자를 든 채로 얼어붙고 말았다.
“저, 저게 무슨.....!”
***
“명중! 좋았어!”
전함 마라에서 물기둥이 솟구치며 뒤이어 샛노란 화염이 터져 나오는 것을 본 프린은 주먹을 불끈 쥐었다.
다른 유보트들이 발사한 어뢰도 일제히 목표물에 명중하며 기괴한 불협화음을 만들어냈다.
“4번~6번관 발사!”
프린은 마라를 완전히 끝장내기 위해 재차 어뢰를 발사했다.
첫 번째 폭발로 우측으로 기운 마라는 3발의 어뢰를 추가로 얻어맞곤 연이어 폭발을 일으켰다.
마라의 승조원들은 여전히 상황파악이 되지 않았다. 별안간 선체가 진동하면서 폭발음이 울리더니, 함이 우측으로 기울기 시작했다.
자재를 나르던 수병들은 충격으로 넘어지면서 자신들이 나르던 자재에 깔려 다쳤다.
철로 된 바닥에 머리를 정통으로 부딪혀 의식을 잃은 수병들만 해도 여러 명이었다.
“대체 무슨 일이야?”
“모, 모르겠습니다!”
“배가 기울고 있잖아! 얼른 탈출해!”
배는 이미 심각할 정도로 기운 상태였다. 무슨 일이 일어났든 간에, 곧 배가 침몰한다는 사실은 너무나 명백했다.
운 좋게 다치지 않은 수병들은 서둘러 함에서 탈출하기 위해 통로로 몰렸다.
이때 충격을 이기지 못한 선체가 부러지면서, 통로와 계단으로 몰린 수병들은 다시 바닥을 굴렀다.
“으아아아아!”
“아아악!!!”
계단에서 굴러떨어진 수병이 벽에 머리를 부딪쳐 즉사하고, 도미노처럼 쓰러진 수병들은 앞사람의 무게에 짓눌러 비명을 질렀다.
수병들은 서로에게서 빠져나가기 위해 허우적거렸지만, 압력 때문에 팔다리가 좀처럼 움직여지지 않았다.
운 좋게 겨우 밀집된 수병들 사이에서 탈출한 몇몇은 고통에 찬 신음과 도와달라고 비명을 질러내는 전우들과 탈출구 사이에서 갈팡질팡했다.
이윽고 발트해의 바닷물이 선체로 밀려 들어와 정신을 잃은 수병들과 정신을 잃지 않은 수병들을 모두 집어삼켰다.
“-!!”
“....!”
어뢰가 마라에 전속력으로 충돌했을 때, 선내가 아닌 갑판에 있던 수병들은 그래도 운이 따라주는 편이었다.
재수 없이 폭발에 휩쓸려 온몸이 토막 나거나 폭발의 충격으로 튕겨 올라가 땅에 처박혀 토마토마냥 짓이겨진 수병들도 있었지만, 바다로 뛰어들어 목숨을 부지한 수병들도 많았다.
제때 바다로 몸을 던진 수병들은 침몰하는 마라가 일으키는 소용돌이에 휩쓸리지 않으려고 필사적으로 헤엄쳤다.
가라앉는 건 마라뿐만이 아니었다. 마라의 자매함 옥차브리스카야 레볼루치야도 어뢰를 맞고 수면을 향해 빠르게 기울고 있었다.
항코 앞바다로 침투한 3척의 유보트는 또 하나의 새로운 전설을 써 내려갔다.
그들은 남은 어뢰를 발사해 항구에 정박한 구축함과 화물선 2척, 그리고 제정 시절 러시아에서 포경선으로 쓰이던 수송선을 추가로 격침시켰다.
성공적으로 임무를 완수한 유보트들은 그들이 잠입했던 것처럼 몸을 수면에 숨긴 채 유유히 항구를 빠져나갔다.
떠나면서 기뢰를 살포해 소련 해군의 추격에 대비하는 것도 빼먹지 않았다.
“갑판장!”
“예, 함장님?”
“슈납스 가져오게. 두 번째 서랍 안에 있을 거야.”
“알겠습니다요.”
몇 분 후 갑판장은 싱글벙글 웃으며 양손에 슈납스와 양철 컵을 들고 돌아왔다.
이 좋은 날에 한 잔 안 할 수 없지. 프린은 잔에 슈납스를 따랐다. 가뜩이나 독일보다 약한 해군을 가진 소련은 귀하디귀한 전함을 2척이나 잃고 말았다.
프린은 전함 2척이 항코 앞바다에 가라앉았다는 소식을 듣고 울부짖을 스탈린의 모습을 머릿속으로 그리며 부하들과 건배했다.
“새로운 전쟁과 우리 위대한 총통 각하를 위해, 하일 히틀러.”
“하일 히틀러!”
본래 독일 해군에선 하일 히틀러라는 구호를 쓰지 않지만, 아무렴 어떠나 싶었다.
슈납스를 입에 대기 전, 프린은 벽에 걸어둔 사진을 응시했다.
베를린의 총통관저에서 백엽검기사십자장 수여하던 날에 찍은 사진이었다.
사진 속의 자신과 총통은 정면을 바라보며 활짝 웃고 있었다. 마치 지금 이 순간을 축하하듯이.
***
“적기다! 공습!”
“모, 모두 위치로!”
알토란 같은 붉은 군대의 함선들이 발트해 밑바닥으로 가라앉고 있을 때, 무르만스크는 공습을 받았다.
북대서양 해류의 영향으로 한겨울에도 바다가 얼지 않는, 러시아의 몇 안 되는 부동항인 무르만스크는 소련이 영국과 미국 등 외부와 교역할 수 있는 유일한 창구나 다름없었다.
만약 영국이나 미국이 전쟁에 개입한다면 무르만스크를 통해 교역을 이어나갈 터.
노르웨이 정부의 대소 선전포고가 소련에 전달된 지 얼마 되지 않아 독일-노르웨이 공군은 무르만스크를 공습했다.
노르웨이의 참전 소식이 전달된 직후 무르만스크에도 경계령이 전달되긴 했지만, 독일군이 이토록 빨리 공습을 가해오리라곤 아무도 예상 못 했기에 도시의 방어는 매우 허술한 상태였다.
몇 문 없는 76mm 대공포와 85mm 대공포가 도시를 향해 몰려드는 적기를 향해 불을 뿜었지만, 폭격기 조종사들은 아랑곳하지 않고 폭탄창을 열었다.
스페인에서 유고슬라비아에 이르기까지 전 유럽의 도시들을 불태운 적 있는 베테랑 조종사들에게 소련군의 대공포화는 어린애 장난 수준이었다.
공습의 주축이 된 건 독일 공군의 He 111, Ju88, Do 217이었지만, 노르웨이 공군 소속의 He 111과 Do 17도 소수나마 포함되어 있었다.
이미 셀 수 없이 많은 실전을 경험한 독일군 조종사들과 달리, 이번 임무에 참가한 노르웨이군 조종사들은 오늘이 첫 실전이었다.
독일군 폭격기들이 폭격을 시작하자, 노르웨이군 폭격기들도 일제히 폭탄을 투하했다.
독일-노르웨이 공군이 투하한 폭탄들은 무르만스크의 항구와 건물들을 때려 부쉈다.
아직 방공호로 대피하지 못한 민간인들은 하늘에서 떨어지는 강철 비에 의해 조각나고, 무너지는 건물에 깔려 으스러졌다.
죽어가는 사람들이 공포와 고통에 차서 지르는 비명은 폭탄의 굉음에 묻혀버렸다.
땅딸보만한 I-16이 급히 출격하여 공습 저지에 나섰지만 소용없었다.
소련 공군의 I-16은 폭격기들을 호위하는 독일-노르웨이군 Bf109의 적수가 되지 못했다.
전투는 곧 일방적인 사냥으로 변모했고 분노에 차 폭격기들을 향해 달려들던 소련 조종사들은 Bf109들을 피해 도망 다니는 처지가 되었다.
“피격당했다! 추, 추락-!”
“이런 씨발!”
“살려줘!”
I-16의 조종사들은 온 힘을 다해 도망쳤지만, Bf109에게 금방 따라잡혀 격추당했다. Bf109가 선회하며 기총을 발사할 때마다 걸레짝이 된 I-16이 무더기로 추락했다.
폭격기 조종사들과 마찬가지로 오늘이 첫 출격인 노르웨이군의 신참 Bf109 조종사들은 이내 소련군의 I-16을 사냥하는 재미에 맛이 들렸다.
“잡았다!”
간혹 운이 없는 Bf109가 경험 많은 I-16 조종사에게 후방을 잡혀 격추당하는 일이 생기기도 했지만, 겨우 몇 대의 Bf109를 격추하는 것으론 대세를 뒤집지 못했다.
노르웨이군의 Bf109를 격추한 I-16은 곧바로 독일군 조종사가 모는 Bf109의 집중공격을 받고 벌집이 되어 추락했다.
경험의 차이로 기체의 성능을 이기는 것은 가능해도, 경험과 성능 모두 우월한 상대에겐 도저히 답이 없었다.
“이반 놈들 꼬락서니를 좀 보라지!”
“캬하하하하하!!!”
최후의 I-16이 지상을 향해 곤두박질친 후에도 공습은 계속되었다.
폭격기 조종사들은 불과 연기에 휩싸인 도시를 보며 활짝 웃었다.
동맹을 배신하고, 조국의 침략한 볼셰비키들이 벽돌 더미가 되어버린 자신들의 집 앞에서 울부짖는 모습을 상상하면서 그들은 크게 웃었다.
***
“서기장 동지, 부르셨....!”
스탈린의 집무실로 들어선 몰로토프는 눈 앞에 펼쳐진 난장판을 보고 할 말을 잃었다.
소비에트 인민들의 일주일 치 식비보다 비싼 전등과 지구본은 벽에 부딪혀 박살이 났고, 대리석으로 된 잉크병에서 흘러나온 검은색의 잉크는 값비싼 아르메니아 카펫에 지울 수 없는 얼룩을 남기고 있었다.
집무실 바닥에 널린 서류들 하며 엎어진 책까지, 모두 스탈린의 책상에 가지런히 정돈되어 있던 것들이었다.
경계병들의 표정이 좋지 않은 것을 보고 필시 무슨 일이 났구나 짐작했건만.....
스탈린이 이토록 분노를 터뜨린 적은 처음이었기에 정치판에서 산전수전 다 겪은 몰로토프조차 두려움에 바들바들 떨었다.
차라리 이대로 기절하면 좋으련만. 스탈린의 비웃음을 당할지언정, 그의 분노를 정면에서 받아내는 것보다 평생 웃음거리가 되는 편이 훨씬 나았다.
“오셨소?”
스탈린은 의자에 걸터앉은 채 몰로토프를 주시하고 있었다.
각종 책과 서류, 펜과 잉크병으로 가득했던 서기장의 책상 위에는 상아로 만든 재떨이 하나만 덜렁 놓여 있었다.
“예, 서기장 동지.”
몰로토프는 애써 침착함을 가장하며 스탈린의 말에 답했다. 스탈린은 파이프 담배 대신 고급 재질의 종이에 말린 궐련을 입에 물었다.
“동무도 소식은 대충 들었을 거요. 전황은 그리 좋지 않..... 아니지, 아니야.”
스탈린은 몇 번 피우지도 않은 궐련을 잿떨이에 거칠게 비벼 껐다. 그러곤 새 궐련을 꺼내에 손에 끼웠다.
“전황이 아주 좋지 않소. 전 전선에 걸친 공격이 실패했고, 믿었던 쿨리크 원수마저 메멜을 앞에 두고 독일 놈들에게 막혀 고전 중이라고 하오.”
“그렇습니.....”
“1시간 전에는 항코에서 우리 해군이 독일 놈들의 잠수함에 기습을 받아, 옥차브리스카야 레볼루치야와 마라가 격침당했소. 그리고 방금 막 무르만스크가 독일 놈들의 공습을 받았다는 보고가 도착했고.”
꿀꺽.
몰로토프는 마른침을 삼켰다.
스탈린의 두 눈은 분노로 이글거렸지만, 목소리는 더할 나위 없이 침착했다. 그래서 더 무서웠다.
그가 언제 어느 부분에서 발작적으로 폭발할지 몰랐기에.
목줄이 풀린 채 우리 안을 배회하는 사자와 마주한 기분이었다.
“제가 무엇을 하면 되겠습니까, 서기장 동지?”
“당장 영국에게서 언제쯤 독일과 싸울 예정인지 알아내시오.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말고. 필요하다면 애원이라도 하시오. 그렇게라도 해서 확답을 받아내시오, 반드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