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천왕성 작전 (6) >
총통 아돌프 히틀러의 대국민연설이 송출된 후, 독일 전역의 모병소는 몰려든 사람들로 발 디딜 틈이 없었다.
이미 동원령이 내려져 입대 대상자들은 모두 입대했거나 대기 중이었고, 모병소로 몰린 사람들은 나이가 너무 적거나 혹은 너무 많다는 이유로 입대 대상에서 제외된 사람들이었다.
“당장 입대시켜 주시오!”
“어르신, 실례지만 나이가 어떻게 되십니까?”
“나이는 왜 묻소? 거 총 쏠 힘 정도는 있으니 걱정마시구려.”
“마음은 감사합니다만 어르신이 없어도 국방군은 충분히-”
“나 같은 늙은이들은 더 이상 필요가 없다는 겐가!”
“꼬마야, 여긴 네가 올 곳이 아냐. 학교나 가렴.”
“학교는 오늘 휴교거든요?”
“그리고 저도 이제 14살이니까 충분히 어른이라고요!”
“정말로 SS에 들어갈 생각이라면 내후년에 다시 와라. 알겠지?”
총통의 연설을 듣고 흥분해 무작정 모병소로 뛰어온 사람들의 나이대와 직종은 다양했다.
혈기왕성한 12살 꼬마도 있었고, 보불전쟁에도 참전한 바 있는 노인도 있었으며 열쇠공부터 청소부, 정육점 주인까지 없는 사람이 없었다. 개중에는 여자들도 있었다.
“참나. 하다 하다 이젠 여자야?”
“여자인 게 뭐 어때서요? 여자도 총 쏘고 뛸 줄은 알거든요? ......아직 총 쏘는 법은 못 배웠지만.”
“난 알아요! 어렸을 때 아버지를 따라 사냥에 자주 나갔거든요. 토끼랑 사슴도 잡아보고 또.....”
“알았으니 그만, 그만.”
“전쟁은 사냥터와 차원이 달라요. 사슴과 토끼는 총을 못 쏘지만, 러시아인들은 총을 쏜단 말이오. 총뿐만 아니라 대포도 쏠 줄 알고 전차와 전투기까지 굴린단 말입니다.”
“저는 22살이니까 입대할 수 있죠?”
“여자는 관련 규정이.....”
모병소의 모병관과 담당 공무원들이 입대 관련 규정을 찾아 헤매는 사이 모병소 앞에 늘어선 줄은 더욱 길어졌다.
입대를 거부당한 사람들은 입대를 거부당한 것에 대해 항의하며 난동을 피웠고, 질서유지를 위해 돌격대와 경찰들까지 동원되어야 했다.
히틀러의 통솔 아래 수차례 기적을 목격한 바 있는 국민은 그들의 총통이 하는 말을 굳게 믿었다.
오늘이 전쟁 첫날이었지만, 독일 국민의 사기는 그 어느 때보다 높았다.
총통이 있는 한, 독일은 절대로 패하지 않는다! 가증스러운 폴란드도, 거만한 영국도, 불구대천지원수 프랑스도 대독일의 깃발 아래 무릎을 꿇지 않았던가.
드넓은 소련도 결국에는 그들이 무너뜨린 차르 제국과 같은 전철을 밟게 되리라!
“독일, 가장 위대한 독일, 세계 위에 군림하는 독일.....”
모병소에서 누군가가 독일인의 노래를 부르자 주위의 사람들이 일제히 따라부르기 시작했다.
이윽고 모병소의 모든 사람이 노래를 불렀고, 모병소 밖으로 줄지어 사람들도 마법에 홀리기라도 한 듯 독일인의 노래를 불렀다.
온 세상이 독일, 독일이었다.
***
소련 국경 인근의 마을들과 도시들이 폭격을 당하고, 소련군이 국경을 넘어 밀고 들어오기 시작했을 때부터 헝가리의 참전은 정해진 것이나 다름없었다.
비록 소련은 헝가리의 완전 점령이 아닌 헝가리군의 견제가 목표였지만, 난데없이 자국의 도시들이 폭격당하고 국경을 침범당한 헝가리는 소련의 의도가 무엇이든 간에 철저한 보복을 주장했다.
“러시아 침략자들은 독일에 그랬듯이 헝가리에도 선전포고 없는 기습공격을 감행했습니다. 그와 동시에 민간인들이 사는 도시에 폭탄을 떨어뜨리고 마을들을 포격해 300명이 넘는 사망자를 냈습니다.
이는 명백한 전쟁범죄이자 도발이며 침략입니다. 헝가리는 결코 이 같은 만행을 결코 좌시하지 않을 것입니다.”
헝가리 총리 라즐로 바르도시가 부다페스트 국회의사당에서 대소 선전포고를 선언하면서 헝가리는 독소전쟁에 공식적으로 참전했다.
“크로아티아인들이여! 우리의 영원한 혈맹 독일이 소련의 공격을 받았습니다!
스탈린은 이것이 독일의 침략 야욕을 격퇴하기 위함이라고 주장하고 있지만, 생각이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그 말이 거짓말임을 모르지 않을 것입니다.
독일은 우리 크로아티아의 자유와 독립을 위해 어떤 지원도 마다하지 않았습니다. 만약 독일이 러시아 공산주의자들의 손에 무너진다면 그다음은 유럽 전체가 공산화될 것이고 크로아티아도 볼셰비키들의 지배에 놓이고 말 것입니다.
국민 여러분은 다시 노예의 신분으로 돌아가고 싶으십니까? 아니면 유럽의 자유를 위해 싸우시겠습니까?”
독일이라는 그늘 아래 번영과 특권을 누리던 국가들은 독일이라는 방패막이 사라졌을 경우에 생길 일들을 극도로 두려워했다.
슬로바키아가 그랬고 크로아티아가 그랬다.
크로아티아 독립국 총통 안테 파벨리치는 지체없이 참전을 결정했다.
독일 덕분에 독립을 쟁취할 수 있었던 나라는 크로아티아만이 아니었다.
몬테네그로도 독일의 유고슬라비아 침공 덕에 독립할 수 있었고, 이탈리아의 지배를 받았던 알바니아와 에티오피아도 그랬다.
“알바니아의 국민이여! 알바니아인들은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절대 잊지 않는 게 두 개 있습니다. 하나는 복수이며, 다른 하나는 은혜입니다.
이 나라를 이탈리아 압제자들로부터 독립시키고, 유고슬라비아와 그리스의 침략자들로 보호한 독일을 돕는 것은 알바니아의 법이자 세상의 이치입니다! 모두 일어납시다! 가서 우리의 형제들을 도웁시다!”
“가라! 가서 살아 돌아올 생각은 하지 마라. 싸워서 이기고 지면 죽어라! 만약 사지가 멀쩡하게 돌아온다면, 짐의 이름을 걸고 절대로 용서치 않겠다! 저들 독일인들이 우리의 자유를 위해 싸웠으니, 이제는 우리가 저들의 자유를 위해 싸울 차례다.
우리 민족이 과거에 이탈리아인들에게 무엇을 당해왔는지는 말하지 않아도 그 고통은 뼛속까지 알고 있을 것이다. 그렇다! 짐도, 너희 모두도 잘 알고 있다. 그걸 알면서 모른 척한다면, 침략자들보다 못한 더러운 위선자일 뿐이다!”
알바니아 국왕 조구 1세는 직접 대국민연설을 통해 독소전 참전과 지원군 파견을 선언했다. 에티오피아 황제 하일레 셀라시에도 독일을 침략한 소련의 만행을 규탄하며 황실 근위대인 머할 서파리를 중심으로 한 지원군 모집을 발표했다.
조국이 독일의 지원 덕분에 독립할 수 있었음을 기억하는 알바니아와 에티오피아인들은 국왕과 황제의 선언에 전폭적인 지지를 보냈다.
지원군을 모집하는 모병소는 사람들로 넘쳐났고, 아예 직접 독일군에 입대하겠다며 독일행 열차와 배를 타려는 지원자들은 역과 항구로 몰려들었다.
***
“라발, 자네는 프랑스가 어느 방향으로 움직여야 한다고 생각하나?”
“그야 독일과 같은 방향으로 움직여야 하지 않겠습니까?”
페탱의 질문에 라발은 당연하다는 듯이 대답했다.
이미 페탱은 독일에 갇힌 프랑스군 포로들의 석방과 장비 반환의 조건으로 독일과 제3국 사이에서 전쟁이 발발할 경우 독일의 편으로 참전하겠다고 히틀러에게 약속했다.
독일이 소련의 침공을 받았으니 약속대로 프랑스는 독일을 도울 의무가 있었다.
이미 벨기에, 네덜란드의 괴뢰정부도 독일을 도울 의용병들의 모집을 발표한 이상, 프랑스도 조만간 행동으로 보여줄 필요가 있다.
“오히려 저는 신께서 프랑스에 기회를 주셨다고 생각합니다.”
“기회라고?”
“예. 프랑스가 전력을 다해 독일을 돕는다면, 독일도 프랑스를 대하는 태도가 달라지지 않겠습니까? 히틀러는 프랑스를 패배시켰지만, 그가 내민 조건들은 우리가 독일에 요구했던 조항들보다는 관대했습니다.
제가 볼 때 히틀러는 그래도 대화가 통하는 상대가 분명합니다. 원수 각하께서도 인정하시는 부분 아닙니까.”
“그건 그렇지.”
패탱은 자신이 사랑하는 조국 프랑스에 씻을 수 없는 치욕을 안겨준 히틀러를 결코 고운 눈으로 볼 수 없었다.
비록 그의 정부를 구성원 중 적지 않은 수가 독일과의 협력 강화를 주장하고, 그를 구국의 영웅으로 신봉하며 충성을 바치는 군과 경찰, 친독-반공 성향의 민병대 밀리스(La Milice française)가 페탱에 반대하는 ‘반역자’들을 잡아 족치고 있어도 그 생각에는 변함이 없었다.
자신의 남은 수명을 대가로 히틀러를 죽일 수만 있다면 기꺼이 생을 포기할 자신도 있었다.
허나 한편으로는 자신의 요청을 수락하고 프랑스를 생각보다 온건하게 대하는 히틀러가 보통의 독일인들보다 분별력 있는 상대라는 것, 프랑스를 좀먹는 역겨운 공산주의자들보다 더더욱 나은 상대라는 것만큼은 그도 내심 인정하는 부분이었다.
“우리가 적극적으로 독일을 돕는 모습을 보인다면 추후 독일과의 협상에서 되찾아올 게 많아질 겁니다, 원수 각하. 그리고 일본 놈들로부터 인도차이나를 되찾아오려면, 독일의 도움이 필수적이지 않겠습니까? 알자스-로렌은 힘들더라도, 인도차이나만큼은 되찾아야지요.”
“그것도 맞는 말이네.”
프랑스에 있어 인도차이나는 알제리 다음으로 중요한 식민지였다.
현재 인도차이나는 일본에 점령당해, 베트남제국, 라오스 왕국, 캄보디아 왕국으로 갈라졌다.
미국과 영국이 일본을 고꾸라뜨리고 도쿄까지 진격해 천황의 항복을 받아낸다면, 페탱은 인도차이나를 다시 프랑스의 영토로 만들 생각이었다.
그러나 여기서 미국과 영국이 훼방을 놓을지도 모른다. 일본과 전쟁 기간 내내 싸워온 나라는 자신들이니, 인도차이나도 자신들의 전리품이라 주장하면서 말이다.
인도차이나를 완전히 되찾으려면 독일의 지지와 지원이 필요할지도 모른다. 아니, 꼭 필요했다.
프랑스 혼자만의 힘으로는 힘들지만, 뒤에 독일이 있다면 영국과 미국도 인도차이나 문제를 두고 프랑스에 강하게 나오진 못할 것이다.
인도차이나의 항구를 독일 해군의 태평양 전진기지로 제공한다고 하면 독일의 지원을 이끌어낼 수 있을 테고.
“자네가 오토 아베츠에게 전하게. 프랑스도 대소전쟁에 참전하겠다고 말이야.”
***
스페인의 프랑코도 스승과 같은 선택을 했다.
독일-그리고 이탈리아-의 지원 덕분에 내전에서 승리하고, 독일제 무기와 교관들로 스페인군의 현대화를 추구하던 프랑코에게 독소전쟁은 새로운 기회였다. 독일에 진 빚도 갚고, 동시에 참전을 빌미로 독일로부터 더 많은 지원을 받아낼 수 없는 절호의 기회.
“폐하, 오늘 소련이 독일을 공격했습니다.”
“나도 알고 있소.”
호콘 7세는 총리 크비슬링의 말에 고개를 살짝 끄덕였다. 이미 노르웨이도 독소전 발발 소식으로 전국이 떠들썩했다.
“노르웨이도 독일을 도와 전쟁에 참전할 준비를 해야 합니다. 이미 독일군 니콜라우스 폰 팔켄호르스트 원수로부터 노르웨이 주둔 독일군은 전투 준비를 완료했으니, 우리 군의 준비만 완료되면 당장 소련을 공격할 수 있다고 알려왔습니다.”
크비슬링은 이미 독일을 도와 참전하기로 마음을 굳힌 모양이었다.
내각 구성원들이 국민연합당 소속이거나 친 국민연합당 인사인 이상, 크비슬링의 말은 내각 전체의 뜻이라고 봐도 무방할 터.
“하지만 총리, 굳이 우리까지 참전을 선언할 필요가 있겠소? 물론 독일을 지원하되, 참전을 꼭 선언해서 공식적으로 나라를 전시상황으로 만들 필요가 없다고 생각하네만.”
“그게 무슨 말씀이십니까, 폐하? 노르웨이는 독일과 정식으로 동맹을 맺은 사이가 아닙니까. 그런데 이제와서 우리가 동맹의 의무를 이행하는 것을 거부한다면 독일이 앞으로 우리를 어떻게 대하겠습니까?”
호콘 7세의 말에 크비슬링은 화들짝 놀라며 이례적으로 목소리를 높였다.
노르웨이가 독일의 전쟁 수행을 지원하더라도 참전을 거부하면 독일은 노르웨이가 동맹의 의무를 다하지 않는다고 판단할 것이고 이는 노르웨이-독일 간의 관계를 크게 악화시킬 것이다.
독일과의 관계 악화는 국가적 손실 외에도 국민의 혼란과 반발을 야기할 것이고 이는 곧 노르웨이 전체의 위기로 찾아올 것이다......
설상가상으로 호콘 7세의 형, 덴마크 국왕 크리스티안 10세가 본인의 이름으로 소련을 규탄하고 독일을 도와 참전할 것임을 선언하면서 호콘 7세는 더 이상 할 말이 없어졌다.
“.....알겠소. 우리도 소련에 선전포고해야겠구만.”
“지극히 현명하신 판단이십니다, 폐하.”
덴마크에 이어 노르웨이도 소련에 선전포고했다.
***
헝가리, 슬로바키아, 루마니아, 크로아티아를 비롯해 독일과 동맹관계인 국가 상당수가 소련에 선전포고하거나, 참전 의사를 밝혀왔다.
무수히 쏟아지는 참전 요청에 절로 입꼬리가 올라가는군. 이래서 사람은 착하게 살아야 한다니까?
독일과 동맹관계인 국가 중에 예외적으로 불가리아와 핀란드는 여태까지 답이 없었다. 두 나라 모두 실제 역사에서도 참전에 매우 소극적이었다는 공통점이 있다.
그나마 핀란드는 겨울전쟁의 원한도 있고, 소련이 먼저 핀란드를 공격하는 바람에 참전했지만, 역사적으로 러시아와 가까운 사이였던 불가리아는 독일의 끝없는 압박과 회유에도 불구하고 중립을 지키다가 1944년 8월에 소련 편에 붙어 독일에 선전포고했다.
여기서는 우리가 침략한 게 아닌, 침략당하는 입장이 된 지라 소련을 비판하는 성명문을 발표하고 독일에 대한 지지를 선언했지만, 참전은 하지 않았다.
“주불가리아 대사가 전하길 불가리아 국왕인 보리스 3세도 그렇고, 보그단 필로프 총리도 참전을 꺼리는 분위기라고 합니다. 대신 불가리아의 항구와 군사기지들을 국방군이 사용할 수 있게끔 무제한으로 조차하고, 의용군을 모집해 독일로 보내겠노라고 알려왔답니다.”
“즉, 자기들이 해줄 수 있는 건 다 해줄 테니 참전하라고 압박하는 것만큼은 피해 달라는 것이로군?”
“그렇겠지요?”
“이 괘씸한 놈들. 누구 덕에 영토를 불릴 수 있었는데 이제와서 발을 빼다니.”
괴링은 불가리아의 박쥐 짓이 마음에 들지 않는 듯 얼굴을 잔뜩 구겼다. 이번만큼은 괴벨스도 괴링의 말에 동조해 내게 간언했다.
“불가리아군이 대소전에 얼마나 영향을 줄지는 몰라도, 동맹의 의무를 이행하지 않으면 그에 맞는 불이익이 있다는 사실을 일깨워줘야 합니다.”
“괴벨스 장관의 말이 맞습니다. 총통 각하, 루마니아를 이용해 불가리아를 압박해보심이 어떠신지.”
힘러는 한술 더 떠 불가리아가 계속 독일에 비협조적으로 나올 경우 폭격기들을 소련군 소속인 것처럼 위장해서 수도 소피아를 폭격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제정신이냐?
“됐네, 됐어. 어차피 불가리아군의 지원 따윈 기대도 하지 않았으니. 참전하더라도 그들이 얼마나 도움이 되겠나? 차라리 불가리아는 여차할 때 소련과 연락할 수 있는 창구로 두는 게 나을 걸세.”
어떤 종류나 의미로의 참전을 거부하던 불가리아가 의용군을 모집해 보내겠다고 한 것만으로도 나름 만족하는 입장이었다.
비록 참전하지 않더라도, 불가리아가 소련 편을 들 리는 없을 테니.
차라리 이참에 불가리아에 참전을 빌미로 식량과 광물을 받아오면 어떨까 생각했다.
불가리아 정부는 참전만 피할 수 있다면 뭐든지 할 기세이니, 잘만 하면 최소한의 비용으로 식량과 광물을 들여올 수 있을지 모른다.
핀란드도 불가리아와 비슷하게 전쟁 발발소식에 무척이나 당황한 기색이었다.
불가리아와 다르게 핀란드는 소련에 대한 감정이 최악이지만, 전쟁이 끝난 지 겨우 2년밖에 되지 않아 핀란드인들 사이에선 전쟁은 피하고 싶다는 기류가 강했다.
비단 국민뿐만 아니라 정치권도 같은 기류였다.
하지만 옛말에 이런 말이 있다.
일어날 일은 어떻게든 일어난다고.
핀란드인들은 전쟁을 원하지 않았지만, 전쟁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나 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