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히틀러가 되었다-143화 (143/150)

< 천왕성 작전 (4) >

-....우리는 어떤 대가를 치르더라도 이 나라를 지켜낼 것입니다. 우리는 결코 항복하지 않을 것입니다!

무전기를 통해 총통의 연설을 실시간으로 듣던 비트만은 온몸에 전율이 흐르는 것을 느꼈다.

혈관에 피 대신 전류가 흐르는 듯한 짜릿한 기분이었다.

“매번 느끼는 거지만, 총통은 정말 연설을 위해 태어난 사람 같다니까?”

비트만의 말에 전차병 전원이 고개를 끄덕였다. 이의 없음. 인정.

총통의 연설은 마법과도 같은 효과가 있었다. 세계 어디를 뒤져봐도 이보다 더 뛰어난 연설은 결코 찾을 수 없을 것이다.

총통의 연설이 끝난 뒤에는 바덴바일러 행진곡이 흘러나왔다. 사기 고취용으로는 제법 적절한 선택이었다.

“그나저나 당최 이해가 안 됩니다.”

“뭐가?”

“로스케 새끼들, 대체 뭐 때문에 우리를 공격한 건지 모르겠습니다. 우리가 폴란드처럼 약한 것도 아니고, 먼저 전쟁을 하자고 시비를 건 것도 아닌데 말이죠.”

“내가 빨갱이들 대가리에 무슨 생각이 들었는지 어떻게 알겠냐.”

볼의 물음에 비트만은 고개를 저었다. 그도 소련이 갑자기 왜 전쟁을 걸어온 것인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혹시 누가 알아? 스탈린이 치매에 걸려서 무턱대고 공격하라고 명령한 건지.”

“차라리 그런 거면 좋겠습니다. 스탈린이 뒈지면 전쟁이 끝날 테니까요.”

“설마. 전쟁이 그렇게 쉽게 끝날 리는 없-”

-케사르, 들리는가? 수신 바람.

“케사르, 수신.”

중대장의 목소리가 무전기에서 울리자 비트만은 말을 멈추고 귀를 쫑긋 세웠다.

-정찰조의 보고에 따르면 로스케들이 케사르의 담당구역으로 이동 중이라고 한다. 규모는 보병 1개 대대에 전차는 20대 이상이라고 한다. 어쩌면 그보다 더 많을 수도 있고.

“20대 이상이라굽쇼?”

무전을 듣던 리히터가 화들짝 놀라 외쳤다. 그러나 비트만은 전혀 놀란 기색 없이 중대장의 명령을 경청했다.

중대장이 말하는, 연대본부의 명령은 지극히 단순명료했다. 한 발자국도 물러서지 말고, 현 위치에서 적을 격퇴할 것.

연료와 탄약은 만땅으로 실었으니, 큰 이변이 없는 한 적과 교전하는 데 부족함이 없을 것이다.

“비트만 SS 중위님, 중대장 말이 사실입니까?”

무전이 끝나고 볼이 비트만에게 물었다. 비트만은 어깨를 으쓱거렸다.

“당연히 사실이지. 그럼 거짓말이겠냐?”

“전차 20대 이상이라니, 이건 좀....”

“로스케들한테 숫자 좀 맞춰달라고 할 수도 없잖냐. 그래도 걱정하지 마라. 내가 알기로 이 전차는 세계에서 가장 강력한 전차니까.”

실전 경험이 전무한 볼과 달리 비트만은 폴란드전에서부터 싸워온 베테랑 중의 베테랑이었다.

그가 목에 걸고 다니는 1급 철십자훈장이 비트만의 이력이 보통이 아님을 입증했다.

비트만은 자신의 경험과 능력, 그리고 전차의 성능을 믿었다.

그가 탑승한 6호 전차 티거의 외형은 아름다움과는 거리가 멀었지만, 전차의 성능만큼은 세계 어디에 내놔도 전혀 꿀리지 않았다.

차체 전면 100mm에 140mm에 달하는 포방패, 측후면 80mm라는 중장갑을 둘러 중량이 48톤에 육박하지만, 그 대가로 통상적인 거의 모든 공격으로부터 충분한 방호력을 제공받는 데 이어 티거에 탑재된 88mm 주포는 2km 밖에 있는 표적도 일격에 명중시킬 수 있다.

비트만이 알기로 티거를 정면에서 격파할 수 있는 소련 전차는 손에 꼽을 정도로 적다고 들었다.

그나마 전체적인 성능으로 다지자면 티거가 이들보다 훨씬 우수하다고 들었고.

잠시 후 엔진소리와 무한궤도 구르는 소리가 들렸다.

수풀에 매복 중인 티거 4대는 모두 시동을 꺼두고 있었기에, 비트만은 그 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왔군.”

쌍안경을 들고 밖으로 나온 비트만은 도로를 따라 일렬로 달려오고 있는 소련군의 전차들을 목격했다.

“여기는 케사르 1. 빨갱이들은 2시 방향에 있다. 거리는 2600.”

비트만이 적이 나타난 위치를 알려주자 매복한 전차들의 포탑이 일제히 같은 방향으로 돌아갔다. 비트만은 쌍안경에서 눈을 떼지 않았다.

소련군은 티거들의 존재를 모르는 게 분명했다. 그렇지 않고서야 저렇게 유유자적하게 걸어올 리가 없었다.

소련군 병사들은 전차 위에 타고 있거나, 전차의 좌우에서 걷고 있었다.

전차들의 포탑도 모두 같은 방향으로 고정된 걸 보니 경계 따윈 개나 줘버린 듯싶었다.

머저리 새끼들. 비트만은 어이가 없어 헛웃음이 나왔다.

“저놈들, 전쟁하러 온 거야, 소풍을 나온 거야? 훈련 때도 저 지랄은 안 하겠다.”

조종수 하셀 SS 병장이 말했다.

“아무튼 우리야 잘된 일 아닙니까? 멍청한 적만큼 최고의 적도 없지 말입니다.”

“그건 그래.”

비트만은 미소를 머금은 채 포탑 안으로 들어왔다. 볼은 조준경을 통해 적을 관찰하고 있었다.

“볼, 저놈들 정체가 뭔지 아냐?”

“예? 그야 당연히 소련군 아닙니까?”

“아니, 내 말은 저 전차 이름이 뭔지 아냐고.”

“제가 보기에는 T-34 같습니다만.”

“정답. 식별표 다 외웠다더니 정말인가 보네.”

사실 비트만도 실물 T-34를 오늘 처음 봤다.

국방부에서 배포한 자료에 따르면 T-34의 대략적인 성능은 45mm 경사장갑에 76mm 주포로 무장했다고 한다.

방호력은 수직장갑 90mm에 근접하고 기동성은 판터와 동급이라고 하는데, 76mm 주포의 성능이 다소 떨어져서 티거의 전면장갑을 관통하려면 최소 300m 안으로 근접해야 한단다.

비트만은 이런 정보들을 어떻게 알아냈는지 도통 알 수 없었다. 혹시 소련과 사이가 좋던 시절에 정보를 교환하면서 얻은 것이려나?

사실 자료에 나온 정보들이 그가 떠받드는 총통의 미래지식에서 나왔다는 것을 비트만을 알지 못했다.

총통이 정보의 출처를 궁금해하는 부하들에게 그럴듯한 말을 둘러대느라 애를 먹었다는 것도.

“1500에서 일제 사격한다. 신호하기 전까지 발포는 엄금한다.”

-케사르 2, 수신.

-케사르 3, 수신.

-케사르 4, 수신.

88의 위력을 생각하면 지금 당장 쏴도 무리없이 명중시킬 수 있을 테지만, 비트만은 적을 조금 더 가까이 끌어들이기로 했다.

전차와 함께 매복한 보병들은 적 보병들이 기관총의 사정거리 안으로 들어오기 전까지 사격하지 말라는 지침을 받았다.

그들이 사격하는 경우는 적 보병들이 기관총의 사정거리 안으로 들어왔을 때뿐이었다.

“리히터, 철갑탄 장전해. 볼, 선두에 있는 놈 보이지? 내가 신호하면 그놈부터 먼저 맞춰.”

“알겠습니다.”

볼이 핸들을 돌려 주포의 고각을 조절하는 사이, 리히터 철갑탄을 장전했다. 쇳소리를 내며 무게 15kg의 철갑탄이 약실 안으로 들어갔다.

“장전 완료.”

“조준 완료.”

비트만은 해치 밖으로 고개를 내밀고 있었다. 소련군은 경계심이 1도 없는 모양인지 차체 전면의 조종수 해치까지 활짝 열고 다녔다.

사소한 실수 하나만으로도 목숨을 잃을 수 있는 전장에서 저런 행위는 나 좀 죽여달라고 비는 것이나 다름없었다.

본인들이 살기 싫다는데, 살려둘 이유가 없지. 적이 1500m 안으로 들어오자, 비트만의 입에서 고함이 터져 나왔다.

“사격 개시!”

순간 귀청을 찢어놓을 정도로 강렬한 포성이 일면서 주포가 불을 뿜었다.

88mm 포탄은 T-34의 정면에 정확히 명중하여 장갑판을 종잇장처럼 꿰뚫었다.

폭발이 일어나고 T-34의 포탑이 하늘 높이 솟구쳤다. 족히 5m 이상 솟구친 포탑은 땅에 떨어져 축구공처럼 굴렀고, 기동륜 2개가 궤도에서 이탈하여 전차 뒤로 날아갔다. 완파였다.

“명중입니다!”

생애 첫 전과에 흥분한 볼이 함성을 질렀다. 그러나 비트만은 여전히 침착했다.

다른 3대의 티거도 일제히 발포하여 T-34들을 명중시켰다. 전차에 타고 있던 소련 보병들은 전차가 폭발할 때 함께 날아갔다.

조용했던 들판이 삽시간에 포성과 폭발음으로 가득해졌다.

“재장전! 계속 철갑탄이야!”

“알겠습니다!”

미리 포탄을 들고 기다리던 리히터는 곧바로 탄피를 빼내고 다음 포탄을 집어넣었다.

소련군은 독일군이 날려대는 포탄을 피하기조차 벅찼다.

그들은 아직까지 단 한 발의 포탄도 쏘지 못했다. 티거가 발사한 88mm 포탄이 T-34의 측면장갑을 찢어발기며 적을 죽음으로 몰아갔다.

소련군은 10대가 넘는 전차들을 잃은 후에야 겨우 포탄의 진원지를 찾아냈다.

대열의 뒤에 위치해 여태까지 목숨을 부지한 T-34들이 포탑을 돌려 발포했다.

-캉!

“어어?”

“괜찮아. 튕겼다.”

76mm 철갑탄 한 발이 비트만의 티거에 명중했지만, 장갑 표면에 약간의 흠집만 내곤 튕겨 나갔다.

충격음에 놀라 고개를 드는 볼에게 비트만은 검지로 조준경을 가리켰다.

“집중해. 아직 적은 많다고?”

“아, 알겠습니다.”

몇몇 T-34가 격파된 아군 전차의 잔해를 방패삼아 공격을 가해왔다.

그러나 그들이 날린 포탄은 빗나가거나 티거의 전면장갑에 맞고 도탄 될 뿐이었다. 공격이 먹히지 않자 소련군은 패닉에 빠졌다.

자신들의 공격은 통하질 않는데, 적들은 쐈다 하면 어김없이 명중이다. 여기서 명중은 격파를 의미했다.

“장전 완료!”

“잔해 뒤에 숨은 놈이다. 거리 1200!”

시커먼 연기를 내뿜는 T-34 뒤로 T-34 한 대가 숨어있었다.

놈은 이미 숨통이 끊어진 동료 뒤에 숨어 탈출할 기회를 엿보고 있었다.

그러나 조종수의 실력이 미숙한 것인지, 전차를 완전히 숨기지 못했다.

차체 후면이 잔해 뒤로 비스듬히 튀어나와 있었는데, 적들은 아직 그 사실을 눈치채지 못했다.

비트만은 미소를 지었다. 전장에서는 작은 실수조차 죽음으로 연결된다는 사실을 직접 가르쳐줄 생각이었다.

“쏴!”

볼이 격발기를 누르자 주포에서 섬광이 일었다.

T-34의 엔진에서 화염이 일었다. 전차가 피격당하자 전차병들은 즉시 전차를 버리고 달아났다.

해치를 열고 포탑 밖으로 튀어나오던 전차병이 불길에 휩싸였다. 온몸에 불이 붙은 전차병은 바닥을 구르며 괴로워했다.

동료들은 그를 무시한 채 도망치기 바빴다.

들판에는 24대의 T-34가 검은 연기를 토해내며 멈춰 서 있었다. 보병들은 전차들이 모두 격파당하기 전에 죄다 도망쳐 지금은 코빼기도 보이지 않았다.

격파된 전차 주변에는 전차병들의 시체로 가득했다. 소련군 전차병들은 전차가 피격될 때 즉사하거나, 불에 타서 죽었다.

죽을 때의 고통으로 그들의 얼굴은 하나같이 잔뜩 일그러져 있었다. 화염이 죽은 자들을 말없이 집어삼켰다.

***

“제3항공군으로부터 보고입니다. 플로이에슈티 유전을 노린 소련 공군의 공격을 루마니아 공군과의 연합작전으로 성공적으로 저지하였음. 폭격기 179기 격추, 전투기 128기 격추. 아군은 11기 격추에 14기 손상.”

“LSSAH 사단으로부터 보고입니다. 소련군 2개 보병사단과 1개 전차여단과 교전 중. 아군의 피해는 경미하며 현재까지 적 보병 500명을 사살하고 전차 90대를 격파했다고 합니다.”

“제52전투항공단(Jagdgeschwader 52, JG 52)로부터 방금 4번째 교전을 끝냈다는 보고가-”

분주하게 돌아가는 사령부 안에서 만슈타인은 느긋하게 커피를 마셨다.

탁자 위에는 방금 도착한 따끈따끈한 보고서와 각설탕이 든 작은 통이 함께 놓여 있었다.

“이 커피, 향이 좋구만. 원산지가 어디지?”

“에티오피아입니다.”

“흠.”

지금까지 전황은 만슈타인이 계획한 대로 돌아가고 있었다. 소련군의 공격이 있기 전에, 미리 병력을 예비 방어선으로 빼둔 게 신의 한 수였다.

덕분에 아군의 피해를 최소화하면서, 동시에 적군에게는 상당한 출혈을 강요할 수 있었다.

소련군은 전쟁이 시작된 지 몇 시간 만에 자국 영토에서 대포병사격을 당하는 망신을 당했다.

겨우 국경을 넘은 부대들은 지뢰밭과 포격에 발이 묶이거나, 공군의 습격을 받아 막대한 피해를 입었다.

간신히 첫 번째 관문을 통과하고 내륙으로 진격한 소련군 부대들은 자신들을 기다리고 있는 전차와 대전차포의 일제사격을 받았다.

보병 몇 명을 사살했고 적기 몇 대를 격추했다는 소식이 도착할 때마다 환호했던 사령부 인원들은 쏟아지는 보고에 금방 무감각해졌다.

이제는 어디에서 전차 몇 대를 잡았다, 적의 공격을 격퇴했다는 보고가 도착해도 탄성은 나오지 않았다.

“선배님들께서 열심히 해주시고 계시는 것 같구만. 하하하.”

자신보다 나이도 많고, 경력도 오래된 선배들을 제치고 동부전선 총사령관으로 임명된 만슈타인은 지금의 자리에 진심으로 만족했지만, 한편으로는 선배들이 자신을 두고 무슨 생각을 할지 고민했다.

다른 사람도 아니고 총통의 명령이니 반발은 없었지만, 그래도 속으로는 어느 정도의 불평과 불만이 존재할 터.

그랬기에 만슈타인은 엄밀히 말해 자신의 부하들인 선배들과 통화할 때 직속상관을 대하듯이 깍듯하게 굴었다.

만슈타인의 부하 원수들도 자신들의 상관이 된 옛 후배에게 존댓말은 하지 않았지만, 그래도 만슈타인에게 상관으로서의 예우는 해주었다.

-동부전선 총사령관님께서 미천한 내게 전화를 다해주시다니, 이거 영광이군.

“하하. 사람 무안하게 그게 무슨 말씀이십니까, 레프 원수 각하. 아무튼 좀 전황은 어떻습니까?”

-멀쩡하네. 이반들이 안간힘을 쓰고 있지만, 놈들이 발버둥쳐봤자지. 공군도 잘 협조해주고 있고. 대신에....

“대신에?”

-해군에서 연락이 왔네. 해군 자체인원만으로는 피난민 이송이 힘드니 육군에서 병력 좀 내달라고 말이야. 일단 예비대 중에 1개 연대를 차출해서 보냈네.

“알겠습니다, 각하. 그리고 방금 총통 각하와 통화했는데 아군의 피해가 예상보다 훨씬 적어서 감동하셨다고 합니다.”

-아아, 나도 받았어. 지금 회의 들어가야 하니 이만 끊지. 나중에 내쪽에서 전화하겠네.

“예에. 수고하십쇼.”

부하들에게 말할 때는 지엄하기 짝이 없는 만슈타인이지만, 자신의 상급자들-총통, 브라우히치, 라이헤나우 등등-및 선배들과 통화할 때는 협잡꾼이 따로 없었다.

그 커다란 차이에 부관과 당번병은 혀를 내둘렀다.

자랑스런 독일 국방군 육군의 원수이자 동부전선 총사령관인 양반한테서 저런 모습을 보게 될 줄이야.

이게 바로 역사의 숨겨진 뒷모습인가.....

“너무 열심히 일해서 그런지 슬슬 배가 고프군.”

“아..... 지금 당장 대령하겠습니다!”

“눈치가 빨라서 좋군. 오늘 메뉴는 뭐지?”

“비어주페(Biersuppe)에 미트볼, 클뢰세와 자우어크라우트입니다.”

“좋군. 얼른 가져다주게. 와인은 샤토 오브리옹으로 하지.”

***

“전멸이라니, 그게 무슨 개소리야?!”

“제1전차연대는 어떻게 되었나?”

“폭격기 3분의 2가 격추되었는데, 목적지 근처까지도 못 갔다고? 자네 지금 나랑 장난하는 건가?”

비교적 차분한 분위기의 독일군 사령부와 달리 소련군 사령부는 대혼란에 빠져있었다.

임무 실패를 알리는 보고가 도착할 때마다 장군들의 얼굴에선 핏기가 사라졌다. 현황판에 부대의 이동을 표시하는 장교들도 얼굴이 창백해졌다.

현재 시각은 아침 8시. 천왕성 작전이 시작된 지 7시간이나 지났는데 현재까지 임무 완수에 성공했다는 보고들은 손에 꼽을 정도였다.

그나마 사령부에 도착한 임무 완수 보고들은 하나같이 전략적 요충지라 부를 수 없는, 있으나 마나한 언덕과 마을을 장악했다는 소식들이었다.

전선에서 올라오는 보고를 들을 때마다 주코프는 피가 바짝바짝 마르는 기분이었다.

상대가 그 독일군이니, 쉽지 않을 거라고 예상은 했다. 그런데 이 정도로 절망적일 줄이야.

주코프만큼이나 티모셴코도 얼굴이 굳어있었다. 그는 벌써 담배를 반 갑이나 피우며, 전진할 기미가 도통 보이지 않는 지도 현황판을 응시하는 중이었다.

“부관.”

“예, 참모총장 동지.”

“제3기계화군단과 제10군단으로부터 보고가 도착했나?”

제3기계화군단과 제10군단은 그리고리 쿨리크 원수가 지휘를 맡은 부대였다. 그는 두 군단을 이끌고 동프로이센 국경을 넘는 임무를 부여받았다.

주코프는 여태까지 쿨리크로부터 그 어떤 보고도 받지 못했다.

“아직입니다, 동지.”

“당장 전화해서 언제쯤 보고할 생각이냐고 물어봐.”

“예, 알겠습니다.”

주코프의 심기가 매우 불편하다는 것을 눈치챈 부관은 서둘러 몸을 돌렸다.

부관이 돌아올 때까지 주코프는 담배를 피우고 보드카를 마셨다.

작전 중 음주는 되도록 피하는 그였으나, 지금 같은 상황에서는 도저히 맨정신으로 있을 자신이 없었다.

보드카를 마시자 불안감이 조금은 줄었지만, 보드카를 마시기 전과 큰 차이는 없었다.

제기랄. 대체 어떻게 해야-

“참모총장 동지!”

부관의 목소리에 주코프는 고개를 돌렸다. 티모셴코는 여전히 현황판만 쳐다보고 있었다.

“연락이 닿았나? 그래, 뭐라고 하던가?”

“방금 제3기계화군단이 독일군의 방어선을 돌파했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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