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히틀러가 되었다-133화 (133/150)

< 인간의 욕망은 끝이 없고 (5) >

1942년 4월 13일

독일 오스트마르크 바이트호펜

“여기 맥주 두 잔 추가!”

“튀긴 양파도!”

새벽 1시를 훌쩍 넘긴 시간대임에도 맥주홀은 술에 취한 손님들과 안주를 나르는 종업원들로 북적거렸다.

발칸에서 최후의 포성이 울린 지 벌써 1년이 다 되어 갔다.

사람들은 다시 전쟁 이전의 일상으로 완전히 돌아갔고, 독일의 경제는 순풍에 돛을 단 것처럼 회복과 성장을 거듭했다.

사람들에게 이제 전쟁은 과거의 일이었다.

지구 반대편 아시아와 태평양에서는 여전히 전쟁이 계속되고 있지만, 어디까지나 미국과 일본 사이의 일이었지 독일의 일이 아니었다.

마음껏 싸우고 마음껏 죽이라지. 우리는 맥주나 마시고 있을 테니.

“제대 만세!”

“만세!”

맥주홀의 구석진 자리에는 5명의 앳된 청년들이 각자 의자를 차지하고서 허공에 맥주잔을 부딪혔다.

4년 간의 복무를 마치고 고향으로 돌아온 친구의 제대를 축하하기 위해서였다.

“야, 마셔! 마셔!”

“오늘은 우리가 쏜다!”

“최고다, 최고!”

19살의 청년 헤르베르트 브루네거는 조금 특이한 이력의 소유자였다. 남들이 학교에서 한창 공부를 할 나이에 그는 징집영장을 받았다.

처음에는 병무청의 실수로 밝혀져 입대영장이 취소될 줄 알았지만,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기왕이면 최정예부대로 알려진 무장친위대에서 복무하기로 한 헤르베르트 브루네거는 SS에 지원하여 제3SS기갑사단 토텐코프로 배치되었다.

그는 폴란드에서 처음 실전을 경험했고, 벨기에와 프랑스, 이탈리아에서 싸웠으며 유고슬라비아 원정에도 참가했다.

4년 동안의 복무를 마친 브루네거는 남들이 슬슬 입대를 고민할 나이인 19살에 제대하여 고향으로 돌아왔다.

SS 병장 계급장과 2급 철십자훈장을 달고 고향으로 돌아온 브루네거를 사람들은 경의에 찬 시선으로 쳐다봤다.

“존나 부러운 놈. 우린 올해나 내년에 입대할지 모르는데 혼자서만 제대했네.”

“꼬우면 군대 일찍 가던가.”

“군대에서 여자는 좀 많이 만나봤냐?”

“군인이 뭔 여자냐? 어디서 이상한 소리나 주워들어가지고.”

“공짜 해외여행 다녀온 기분은 좀 어때?”

오랜만에 만난 고향 친구들은 예전처럼 브루네거에게 갖은 농담을 했다.

군복을 입고, 목에 철십자훈장을 걸고 있어도 불알친구는 불알친구였다.

“야, 요한. 넌 군대 어디 갈지 정했냐?”

“아직 못 정했어.”

“그럼 얘처럼 무장친위대에 지원하는 게 어때?”

“거기 존나 빡세다고 들었는데....”

무장친위대의 악명높은 훈련 강도는 이미 민간인들에게도 유명했다.

독일국방군의 훈련도 다른 나라의 군대들과 비교하면 매우 엄격하고 혹독한 편이었는데, 그중에서 무장친위대는 가히 상상을 초월했다.

훈련이 얼마나 혹독한지 매 기수마다 사망자나 부상자가 나왔다는 소리가 반드시 나올 정도였으니, 그 정도를 짐작할 수 있으리라.

그나마 훈련 중 사상자가 발생하지 않도록 안전에 각별히 신경 쓰라는 총통의 공식 지침이 떨어진 뒤로 훈련 중에 사망자가 나왔다는 소리가 더는 나오지 않았지만, 특유의 강도 높은 훈련은 여전했다.

거기다 의무복무기간이 국방군의 2배인 4년이나 되니, 어지간한 강심장이 아니면 쉽사리 지원할 엄두를 내지 못했다.

“무장 SS는 아무나 가는데가 아니란다, 애송이들아. 네놈들이 가면 하루도 안 돼서 탈영할 걸?”

“어이쿠, 꼴에 제대했다고 세상이 만만해보이나 봐?”

“너도 버텼는데 우리도 버틸 수 있지 않겠냐?”

“야, 야. 쓸데없는 소리 말고 일단 마셔. 군대 생각만 해도 술맛 떨어지니까.”

이 나이 때 남자들의 관심사는 단연코 군대였다. 독일에 태어난 모든 남자는 의무적으로 병역을 이행해야만 했다.

물론 모두가 군대에 가는 것은 아니고, 대학생이나 장애인, 가정형편이 좋지 않아 군 복무가 불가능한 이들에 한해선 병역이 면제되었으며 엄격한 신체검사를 통과한 이들만 군대에 갈 수 있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4명 모두 현역복무에 적합한 1급 현역 판정을 받았다. 즉, 이들은 무슨 일이 있어도 군대에 가야만 했다.

“헤르베르트. 너, 마르크 알지?”

“알지. 그런데 걔는 왜?”

“뭐긴 뭐야. 걔는 면제란다, 면제.”

“존나 부럽다, 씨발.”

브루네거의 동네 친구인 마르크는 허약하다는 이유로 면제판정을 받았다.

또 다른 친구인 뵈머는 시력이 나쁘다는 이유로, 콘스탄틴은 천식이 있어 군 복무가 면제되었다.

제3제국에서 입대 판정을 받는 비율은 전체의 22%에 불과했다.

즉, 군대 가는 경우보다 가지 않는 경우가 더 많았다. 브루네거를 포함한 5명은 22% 안에 드는 신체 건강한 청년들이었고.

“2년 동안 군대에서 좆뺑이칠 거 생각하니 벌써부터 잠이 안 온다. 젠장.”

“너무 비관적으로 생각하지 말어. 군대가면 밥도 주고 옷도 주고 재워주기까지 하는데 뭐가 문제야? 게다가 전쟁도 끝나서 전쟁터 갈 일도 없잖아.”

브루네거는 흑맥주를 마신 뒤 잔을 내려놓았다.

군대에서도 술을 가끔 마셨지만, 사회에서 마시는 맥주의 맛은 차원이 달랐다. 그것도 제대한 날에 마시는 맥주는 더더욱.

“헤르베르트. 넌 이제 뭘 할 거냐? 따로 생각해둔 일 있어?”

“고모네 집이 농장을 하는데 거기서 일을 해볼까 생각 중이야.”

“그래? 넌 무장친위대에 철십자훈장까지 받았으니까 입당하는 건 어때? 너라면 분명 받아 들여줄 텐데. 당원이 되면 공공기관에 취직하는 것도 수월할 테고.”

“맞아, 맞아.”

“굳이? 애초에 당원 되려고 SS에 들어간 것도 아니고. 그리고 당원이 되면 집회나 당 행사에 무조건 참석이잖아. 난 그런 거 귀찮아서 싫다고.”

“야, 그럼 회너 호텔에 들어가는 거 어때? 거기 사장이 LSSAH 초대 대원인 데다 아들도 LSSAH 사단에서 장교로 복무 중이라 무장친위대 출신들은 지원만 했다 하면 합격시켜 준다는데? 일은 좀 빡세도 봉급도 제법 괜찮다고 들었거든.”

“그럴까?”

***

누군가가 제대 후의 새로운 삶을 고민하는 중이라면, 다른 누군가는 사회에서의 생활을 마치고 입대라는 또 다른 문턱을 넘고 있었다.

“몸조심해서 돌아와라!”

“사랑합니다!”

“다리아! 조금만 기다려! 반드시 돌아올 테니까!”

모스크바.

레닌그라드.

스탈린그라드.

키예프.

스몰렌스크, 보로네슈, 로스토프, 마리우폴, 하르코프, 옴스크, 노보시비르크, 아스타나, 이르쿠츠크, 카잔.

그외 수백 개의 도시들.

소련 전국에서 입대 행렬이 이어졌다.

이제까지 사회에서 농부, 회사원, 공장 노동자, 배관공, 선원, 사냥꾼으로 살아오던 청년들은 스탈린과 당의 명령에 따라 군복을 입고 총을 들었다.

징집된 청년들 다수는 보병으로, 두 번째로 포병으로 갔고, 소수는 공병, 전차병, 통신병 보직을 받고 자대에 배치되었다.

드물게 공군과 해군으로 보내진 이들도 있지만, 육군보다는 그 수가 압도적으로 적었다.

새로 징집된 병사들로 이루어진 사단들은 모두 시베리아, 중앙아시아, 극동 등의 후방에 배치되었다.

원래 후방에 배치되었던 사단들은 자신들을 대체할 신병 사단들이 도착하자마자 열차에 태워져 서부로 보내졌다.

병사들은 자신들이 어디로 가는지 알지 못했다.

목적지를 물어봐도 조용히 있으라는 경고만 돌아올 뿐. 정치장교의 고발이 두려웠던 병사들은 잠자코 있을 수밖에 없었다.

장교들에게도 사정은 있었다. 병사들에게 어디로 가는지 함구하라는 지시가 있었기에 장교들은 병사들에게 목적지가 어딘지 숨길 수밖에 없었다.

지시를 어긴 장교들은 즉시 해임되었고, 군사재판을 거쳐 강등 혹은 총살형이 결정되었다.

스탈린이 부활시킨 정치장교들은 다른 건 몰라도 군의 규율을 유지하고 병력의 불평과 불만을 잠재우는 데 큰 효과를 발휘했다.

모두 정치장교의 눈과 귀를 두려워해 말을 삼갔고, 대화가 끊어짐에 따라 자연스레 기밀유출에 대한 우려도 줄어들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소문은 꾸준히 돌았다.

병사들은 정치장교의 눈을 피해 알음알음 소문을 주고받았다. 소문의 종류는 징집된 병사들의 수만큼이나 다양했다.

시베리아에서 주둔하던 병사들 사이에선 자신들이 중앙아시아나 카프카스로 보내진다는 소문이 돌았다.

중앙아시아와 카프카스에서 온 병사들은 시베리아나 극동으로 간다는 소문이 돌았다.

그러나 소문들은 모두 틀렸다. 그들이 도착한 곳은 우크라이나였고, 벨라루스였으며, 리투아니아였다.

자신들이 어디에 왔는지 알게 된 병사들은 자신들이 이곳에 온 이유에 대해 저마다의 생각을 꺼냈다.

수많은 추측 중 가장 신빙성이 높은 추측은 우크라이나와 리투아니아에서 기생충처럼 퍼지고 있는 반소 게릴라들을 토벌하기 위해서라는 추측이었다.

우크라이나와 발트 3국의 반소 게릴라들에 대한 악명은 이미 병사들 사이에서 자자했다. 실제로 장교와 부사관 중 몇몇은 우크라이나의 반소 게릴라들과 싸워본 경험이 있었다.

그러나 그들은 반소 게릴라들과 싸우기 위해 온 것이 아니었다.

소련군은 나름 이동에 각별히 주의를 기울였지만, 160개에 달하는 사단들의 이동이 눈에 띄지 않을 리가 없었다.

소련군의 이동은 소련에 잠입한 독일 스파이들에 의해 확인되었고 독일은 소련군의 수상한 이동에 대해 예의주시했다.

독일은 히틀러의 의중에 따라 침묵을 유지하면서도 동시에 소련 국경에 병력을 증파했다.

노동자들은 소련군이 쳐들어왔을 때를 대비하여 대전차호를 파고 벙커와 토치카를 만들고, 지휘관들은 새로운 환경에 병사들을 적응시키기 위해 훈련을 계획했다.

그리고 자연스레, 소련도 독일의 움직임에 대해 눈치를 채고 말았다.

***

1942년 4월 28일

소련 모스크바 크렘린 궁전

스탈린은 오래도록 말이 없었다.

체리나무 뿌리 파이프로 담배를 피우며 베리야가 제출한 독일군의 동향이 기록된 보고서를 차가운 눈으로 읽어내려가는 스탈린을, 스탈린의 측근들은 불안한 눈으로 응시했다.

독일 스파이 건으로 스탈린에게 무능하다고 질책을 당한 적 있는 베리야는 스탈린의 눈치를 살피며 가만히 서 있었다.

억만년보다 더 긴 시간이 지나고, 스탈린이 드디어 입을 열었다.

“히틀러가 눈치챈 건가?”

“.....대강은 챈 것 같습니다.”

베리야는 스탈린의 입에서 호통이 나오지 않을까 두려워하며 몸을 바들바들 떨었다.

보통 때라면 그 모습을 보고 조소했을 주코프였지만, 그도 지금, 이 순간만큼은 바짝 긴장한 채 천장만 바라보았다.

“빌어먹을.”

늙은 독재자의 입에서 나지막한 욕설이 튀어나오자, 부하들은 그 욕설이 자신들을 겨냥한 것이라도 되는 듯 일제히 몸을 움찔거렸다.

그러나 스탈린의 욕설은 어느 누구에게도 향한 게 아니었다.

단지, 세상일이 자기 생각대로 풀리지 않는 것에 대한 답답함의 토로였다.

셀 수 없는 많은 위기와 우여곡절 끝에 지금의 자리에 오른 스탈린이었지만, 지금, 이 순간만큼은 그도 마땅한 대책이 떠오르지 않았다.

전부터 예감했지만, 결국 독일이 눈치를 챈 게 틀림없다.

보고서에 기록된 단어 한 자 한 자가, 그리고 사진이 그것을 입증하고 있었다. 독일이 전쟁을 대비 중이라는 사실을.

반대로 독일 역시 소련을 공격할 준비를 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어쩌면 독일은 소련의 의도에 대해 모르고, 지금의 병력 이동은 소련 침공을 위한 준비과정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불현듯이 들었다.

무엇이 진실이든 간에 둘 다 유쾌한 일이 아니었다.

“주코프 동무?”

“예, 서기장 동지.”

자신의 이름이 호명되자 주코프는 둔중한 몸을 움직여 서기장의 앞으로 나아갔다. 베리야는 눈치를 보다가 스리슬쩍 뒤로 빠졌다.

“천왕성 작전의 준비는 어디까지 진행되었소?”

“병력과 물자의 4할은 배치가 끝났습니다.”

4할이라. 절반도 못 채웠다는 소리지만 천왕성 작전의 개시 날짜는 8월로 예정되었기에 오히려 계획대로라고 봐야 했다. 스탈린이 물었다.

“완료 시점을 앞당기는 게 가능하겠소?”

주코프는 머리를 굴렸다. 스탈린은 가능한가 불가능한가를 묻는 게 아니었다. 질문의 숨은 뜻을 간파한 주코프가 대답했다.

“서기장 동지께서 지시하신다면 저는 마땅히 따를 뿐입니다.”

“아무래도 작전 개시일을 앞당겨야 할 것 같소. 독일 놈들이 눈치를 챈 것 같으니.”

“얼마나 앞당기실 생각이신지 여쭤봐도 되겠습니까?”

“두 달 뒤로 생각하면 좋을 것 같소.”

두 달 뒤라. 당장 8월까지 준비를 완료하는 것도 아주 벅찬데 기간이 갑자기 반으로 줄어들었다.

주코프는 가슴이 철렁 내려앉는 기분이었지만 감정을 드러내지 않았다.

그는 스탈린 밑에서 자신의 감정을 조절하는 방법을 배웠다. 물론 스탈린이 가르쳐주진 않았고, 순전히 독학으로.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그것만으론 부족하오. 최선을 다하지 않아도 좋으니, 부디 결과로 보여주길 바라오. 결과로.”

“예, 서기장 동지.”

주코프는 이 남자가 자기 가족과 친척들을 체포하고 굴라그에 잡아 처넣었다는 사실을 알았다.

하지만 무슨 이유에서인지 정작 자신만은 살려두었다.

강등이나 보직변경도, 반동분자 가족들은 둔 것에 대한 공개적인 질책도 없었다. 이건 무슨 뜻일까?

확실치 않지만, 주코프는 스탈린이 자신에게 마지막 기회를 줬다고 판단했다.

목숨도 건지고, 가족들도 구할 기회. 그러자면 우선 천왕성 작전을 완벽히 성공시켜야 했다.

그래야 자신도 살고, 가족과 친척들도 빼 올 수 있다.

“그리고 말인데..... 아니오, 이만 가보시오.”

스탈린은 뭔가를 말할까 하다가 생각을 바꿔 주코프를 돌려보냈다. 주코프는 어리둥절했지만 입도 뻥긋하지 않고 고개만 숙였다.

“다들 나가보시오.”

축객령이 떨어지기 무섭게 측근들은 스탈린의 집무실을 나섰다. 다시 혼자가 된 스탈린은 무너지듯이 의자에 앉았다. 그리고 생각했다.

지금이라도 병력을 뒤로 물리고 아무 일도 없었다는 굴어야 하나? 그럼 독일도 가만히 있지는 않을까?

.....어처구니 없는 소리.

본인이 생각해놓고 스스로도 어이가 없었기에 스탈린은 헛웃음을 흘렸다.

어린아이도 하지 않을 망상이나 다 하다니. 나도 이젠 제정신이 아니군.

독일이 눈치를 채고 대비에 들어갈 때부터 이미 주사위는 던져진 것이나 다름없다.

스탈린이 여기서 침공을 포기하고 모든 것을 원점으로 돌린다 한들, 독일도 소련을 따라 할 리 없다.

오히려 병력을 뒤로 물리면 기회라고 판단하고 당장이라도 쳐들어올 것이다.

결국 그에게 남은 선택지는 전쟁밖에 없었다.

독일이 지금보다 더 강해지기 전에 독일을 공격해 놈들의 등뼈를 부러뜨려야 했다.

독일이 다시는 전쟁을 일으킬 수 없게끔 재기불능으로 만드는 게 천왕성 작전의 목표로, 최소한 폴란드와 헝가리, 발칸반도는 손에 넣어야 했다.

그래야 이 나라, 소비에트 연방은 살아서 번영을 맞이할 수 있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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