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히틀러가 되었다-131화 (131/150)

< 인간의 욕망은 끝이 없고 (3) >

1942년 3월 29일

소련 빈니차

지독하리만큼 길고 혹독했던 오전 훈련이 끝나고 점심시간이 되었다. 병사들은 야전취사차 앞에 구름처럼 모여들어 주린 배를 움켜잡고 자신의 차례를 기다렸다.

“오늘 메뉴는 뭘까?”

“냄새로 보건데 보르시가 분명해.”

“보르시 안 먹어봤냐? 라솔니크겠지.”

어제 점심에는 쌀로(Сало, 향신료와 소금에 절여 숙성시킨 돼지비계)를 잘게 다져넣은 까샤(Каша, 러시아식 죽)가 나왔다.

소금간이 되지 않아 밍밍하다는 것만 빼면 양도 많고 따뜻해서 다들 불만 없이 먹었다.

사회와 달리 즐길 거리가 그다지 없는 군대에서 병사들의 유일한 낙은 먹는 것이었다.

아무리 자도 졸리고, 아무리 껴입어도 춥고, 아무리 먹어도 배고픈 군대에서 한 끼 식사만큼 중요한 일도 없었다.

그날 아침과 점심, 저녁에 어떤 음식이 나올지는 병사들에게 중요한 화젯거리였다.

오늘 점심 메뉴는 양배추 수프인 시(Щи)였다.

군대에서 병사들에게 배급하는 시에는 소금에 푹 절여 흐물거리는 양배추와 감자, 당근, 양파, 돼지고기가 들어갔다.

양배추가 워낙 짠 탓에 소금을 따로 넣지 않아도 국물은 소금물처럼 짜고, 고기는 질겼지만, 병사들은 그럭저럭 잘 먹었다.

배도 고프고, 일단은 고기가 들어갔으니까.

사실 병사들이 불만을 토로하지 못하는 이유는 따로 있었다.

한바탕 숙청의 바람이 휘몰아친 후, 군부에 대한 의심이 증폭된 스탈린은 충성심이 의심되는 붉은 군대를 보다 확실하게 통제하길 원했다.

이를 위해 군사적으로 비효율적이라 하여 폐지되었던 정치장교 제도가 부활했다.

공산당으로부터 파견된 정치장교들은 각 중대당 1명씩 배속되어, 중대원들-장교부터 병사들까지-의 정치사상을 감시하고 이를 주기적으로 당에 보고하는 업무를 맡았다.

사소한 불평과 불만, 가벼운 농담조차 정치장교의 귀에 들어갔다가 반동분자로 몰려 헌병이나 NKVD에게 끌려간 중대원들은 다시는 돌아오지 못했다.

그랬기에 병사들은 언제 어디서나 늘 말과 행동에 극도의 주의를 기울였다.

올해로 22살이 된 알렉산드르 오스킨 하사도 병사들 사이에 섞여 묵묵히 수프를 떠먹었다.

군대 짬밥을 먹을 때마다 그는 자연스레 모스크바에서 세무원으로 일하던 시절을 떠올렸다.

코로비노 출신의 시골 청년이었던 오스킨은 어려서부터 공부를 잘하는 영재로 유명했다.

그는 아무나 갈 수 없다는 모스크바 상경대학을 졸업하고 세무원이 되어 모스크바에서 살게 되었다.

모스크바에서의 삶은 그가 태어난 시골에서의 생활에 비교하면 거의 하늘과 땅 차이였다.

거리는 깨끗했고 잘 정비된 도로에, 화려한 가게들과 갖가지 음식들을 파는 식당들, 축음기와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음악에 맞춰 아가씨들과 춤을 출 수 있는 카페까지.

모스크바는 시골에서 나고 자란 그에게 별천지나 다름없었다.

세무원으로 남 부럽지 않은 삶을 살던 오스킨에게도, 군대는 피해갈 수 없었다.

의무복무 기간만 채우고 전역하는 즉시 모스크바로 돌아갈 생각이었던 오스킨은 카자흐스탄에서 군 생활을 하던 중, 한 달 전에 우크라이나 빈니차로 보내졌다.

빈니차로 가게 될 것이라는 대대장의 말에 대대원들은 어리둥절했다.

대대가 우크라이나로 가는 이유에 대해선 대대장도 알지 못했다.

하지만 병사들, 특히 우크라이나 출신 병사들은 새로 하달된 명령에 기뻐했다.

고향에서 먼 카자흐스탄 외지에서 군 생활을 하는 것보다 자신들이 태어나고 자란 우크라이나에서 군 생활을 하는 게 더 좋았기 때문이다.

휴가를 받으면 집에 더 일찍 도착할 수도 있고.

오스킨도 자신이 살던 모스크바와 가까운 우크라이나에서 군 생활을 하는 것이 마냥 싫지만은 않았다.

그러나 우크라이나에 온 뒤로 모든 중대원의 휴가가 별다른 이유 없이 취소되는가 하면, 매일같이 혹독한 훈련이 이어졌다.

카자흐스탄에 있을 때도 훈련이 자주 있었지만, 우크라이나에 온 뒤로는 그 빈도가 더 심해져 이제는 주말에도 비상훈련이 진행되곤 했다.

“아니, 씨발. 주말에도 훈련하는 건 솔직히 너무한 거 아냐?”

“내 말이. 일주일 내내 굴리면 언제 쉬라는 거야?”

“아, 탈영 존나 마렵네.”

빡빡하다 못해 살인적인 훈련량은 병사들은 물론이고 장교들까지 지치게 했다.

그러나 불만을 토로한 병사들이 한 명도 빠짐없이 정치장교가 소환한 NKVD에 체포되어 사라지자, 불만의 목소리는 쏙 들어갔다.

이제는 그 누구도 감히 불평을 입에 담을 엄두조차 내지 못했다.

아주 사소한 불평조차도 정치장교들은 귀신같이 알아차렸다.

병사들은 생각 없이 내뱉은 말 때문에 NKVD에서 온 사신들과 마주하고 싶지 않았다.

그러자면 입을 최대한 다물고, 묵묵히 명령에 복종해야 했다.

오스킨도 남들처럼 속마음을 감춘 채 묵묵히 훈련에 임했다.

하지만 겉으로는 남들을 속일 수 있을지 몰라도, 그 자기 내면까지는 속일 수 없었다.

그 역시 남들처럼 살인적인 일정에 지쳐 있었고, 동시에 의문을 품고 있었다.

상부는 무슨 이유로 병사들을 휴가조차 보내지 않고 주말에도 굴려대는 것일까? 뭐 때문에?

차라리 이유라도 알면 속이라도 편하겠는데, 군 상층부는 그 어떤 말이나 암시조차 없었다.

병사들은 자신들이 무엇 때문에 이런 개고생을 하는지 이유를 몰라 답답해하면서도 숙청이 두려워 입도 뻥긋하지 못했다.

점심시간이 끝났다. 늘 그렇지만 휴식시간은 너무 빨리 끝났다.

오스킨은 한숨을 토하며 전차에 올랐다. 1년 전까지 그는 흔하디흔한 T-26을 탔지만, 지금은 소련의 기술자들이 만든 신형 중형전차 T-34를 탔다.

T-34는 T-26에 비해 여러모로 진보한 혁신적인 전차지만, 의외로 공통점도 적지 않았다.

두 전차 모두 전차장이 포수 역할을 수행해야 했으며, 무전기가 없어 수기로 명령을 하달하는 것도 똑같았다.

어수룩한 전차병들은 수기 신호를 알아먹지 못해 장교들에게 자주 질책받았다.

듣자 하니 독일군은 모든 전차마다 무전기가 달려있다고 하는데.

이 나라는 언제쯤 전차마다 무전기를 달아주려나?

원칙상 소대장, 중대장 차량은 무전기가 달려있어야 하나, 무전기가 달린 전차보다 없는 전차들이 더 많았다.

상부는 실전에서도 병사들이 수기로 명령을 주고받길 원하는 걸까? 오스킨은 그게 궁금했다.

***

1942년 3월 31일

소련 핀스크 인근

“어이, 막스. 저것 좀 봐라.”

구석에서 휴대용 전투식량을 우물거리던 막스 포켈카버 중사는 한스 쉐어 중위의 말에 건포도가 든 빵을 내려놓았다.

측면에 큼지막한 붉은 별이 그려진 열차가 선로를 따라 이동 중이었다.

막스는 쌍안경을 들어 화물칸에 실린 장비들을 살폈다. T-34가 하나, 둘, 셋, 넷....

“14대. 대략 1개 중대 분량이군.”

1시간 전에 지나간 열차에는 KV-1 9대, KV-2 4대가 실려 있었다. 이걸로 오늘 하루에만 1개 연대 수량의 전차들이 지나갔다.

“이틀 전에는 몇 대가 지나갔지?”

“잠시만 기다리십쇼.”

일지를 확인한 막스가 말했다.

“60대입니다.”

“더 늘었군. 빨갱이 놈들, 대체 무슨 꿍꿍이야?”

막스의 팀은 일주일 전부터 이곳에 자리 잡고 소련군의 이동 현황을 관찰 및 기록하고 있었다.

나흘 전에는 122mm 야포와 수백 대의 트럭, 탄약을 실은 열차가 지나갔고 사흘 전에는 전투기 부품을 실은 것으로 추정되는 열차가 지나갔다.

하루가 다르게 서쪽으로 이동하는 소련군 병력과 물자가 늘고 있었다.

이유가 뭔지 몰라도, 결코 좋은 징조는 아니었다.

***

1942년 4월 4일

독일 베를린 아프베어 청사

아프베어 국장 발터 셸렌베르크 SS 소장은 아프베어의 소련 담당 부서인 제12과 과장 라인하르트 겔렌 중령이 제출한 보고서를 천천히 훑어보고 있었다.

보고서에는 소련 현지의 정보팀이 촬영한 사진들과 정보팀이 기록한 날짜 및 시간, 이동 경로 등 1급 기밀에 해당하는 정보들이 빼곡하게 기록되어 있었다.

셸렌베르크의 두 눈은 단 한 개의 글자도 놓치지 않겠다는 듯이 보고서를 떠날 줄 몰랐다.

셸렌베르크가 보고서를 모두 다 읽을 때까지 겔렌은 조용히 담배를 태웠다.

그가 두 번째 담배에 불을 붙이려는 때에 셸렌베르크는 보고서를 살포시 내려놓았다.

“겔렌 중령? 내 결론을 말하기에 앞서 자네 의견을 한 번 듣고 싶은데.”

“제가 내린 결론은 하나뿐입니다, 셸렌베르크 SS 소장님.”

셸렌베르크에게 올릴 보고서를 작성하기 전부터 이미 겔렌은 결론을 내린 상태였다.

모든 정보를 종합해볼 때 그가 내릴 수 있는 결론은 한 개뿐이었다.

“소련은 지금 전쟁을 준비 중입니다.”

“....다른 목적일 가능성은? 훈련이나 우크라이나의 반공 파르티잔들을 진압하러 가는 길일 수도 있지 않나.”

셸렌베르크의 질문에 겔렌은 단호히 고개를 저었다.

“제가 볼 땐 1%도 안 됩니다.”

“돌겠군, 정말.”

셸렌베르크도 담배를 꺼내 입에 물었다. 겔렌은 자신의 담배에 먼저 불을 붙인 뒤 셸렌베르크의 담배에도 불을 붙였다.

“러시아 놈들. 머리가 돈 거 아닌가? 어떻게 우리에게 전쟁할 생각을 다 하는 거지? 폴란드와 프랑스, 이탈리아, 유고슬라비아가 어떤 꼴이 됐는지 놈들도 직접 보지 않았나.”

그런데 왜?

왜 소련은 전쟁을 준비한다는 말인가?

겔렌은 어깨를 으쓱거렸다.

“제가 스탈린이 아니니 모르죠. 그놈은 워낙 별종이지 않습니까?”

“그렇다면 자네가 스탈린이라고 가정해보게. 자네가 스탈린이라면, 왜 전쟁을 일으키려고 할까?”

“아마도, 아마도..... 우리가 더 강해지는 게 두려워서 아닐까요?”

“즉.... 독일이 더 강해져서 도저히 상대할 수 없게 되기 전에 미리 싹을 잘라버리려고 한다? 이 말인가?”

“예. 그것 외에는 마땅한 이유가 생각나지 않습니다.”

“설득력 있군.”

저놈이 더 강해지기 전에 미리 밟아서 조진다.

이 논리로 전쟁이 일어난 사례는 역사에 셀 수 없이 많다. 소련이 전쟁을 준비 중인 이유도 이것 때문일지 몰랐다.

이미 독일은 충분히 괴물이지만, 여기서 더 괴물이 되기 전에 공격해야 조금이나마 승산이 있다고 스탈린은 판단했을 것이다.

그가 정말로 전쟁을 준비 중이라면.

“하긴 내가 스탈린이었어도 밤에 잠을 설쳤을 거야. 1년 만에 유럽을 제패한 괴물이 자기 나라 옆에 떡하니 붙어있는데, 발 뻗고 잘 수 있을 리가 없지. 그래도 전쟁이라니, 너무 무모한 거 아닌가?”

“어쩌면 스탈린은 지금 독일을 치지 않고 가만 놔두는 게 더 무모한 짓이라고 판단했을지도 모르죠.”

“작은 핀란드를 상대로 빌빌거리기나 한 놈들이 잘도 독일과 싸울 생각을 했군. 무식한 건지 용감한 건지 모르겠어.”

셸렌베르크는 담배를 재떨이에 비벼끈 뒤 자신의 정모를 챙겨 일어났다.

“일단 이 건은 내가 하이드리히 각하께 보고드리지.”

***

1942년 4월 6일

독일 베를린 신 총통관저

산 넘어 산이라더니 과연 그랬다.

당장 처칠이 총리가 된 것만으로도 머리가 아픈데, 이제는 소련까지 지랄이라니.

하이드리히가 제출한 최종 보고서를 받아 든 나는 당혹스러운 감정을 감출 수 없었다.

이게 말이 되는 일인가? 내가 알기로 스탈린은 독일에 침공의 빌미를 줄 수가 있다며 독일군의 정찰기가 대놓고 소련 영공을 침범해도 어떤 대응도 하지 말라고 지시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심지어 그는 바르바로사 작전 개시 직전까지 동원령을 내려야 한다는 주코프의 요청을 묵살하기까지 했다.

그 결과 소련은 수도인 모스크바 코앞까지 밀려나며 하마터면 나라가 망할 뻔했지.

결국 전쟁에서 승리하긴 했지만, 그 대가로 소련은 3천만 명이 넘는 자국민들이 죽었고 수많은 도시와 국토가 황폐화되는 막대한 피해를 입었다.

아무튼 그만큼 스탈린은 독일과의 전쟁을 극도로 두려워했다.

그런 스탈린이 여기서는 반대로 독일을 침략할 준비를 하고 있다니. 상식적으로 이해가 되질 않았다.

실제 역사의 독일도 막강했지만, 지금의 독일은 더 막강한 상태인데?

일단 영국과의 전쟁은 진작에 끝난 터라 공군과 해군 전력이 건재한 데다 무기체계 역시 실제 역사의 그것과는 비교가 되지 않을 정도로 발달했다.

소련도 자세히는 몰라도, 우리 독일의 병기들이 자신들의 무기들보다 우수하다는 것쯤을 모르지 않을 것이다.

그런데도 전쟁을 계획 중이라니, 앞뒤가 안 맞잖아?

“대체 무슨 속셈인지 모르겠군.....”

SD와 그 산하에 있는 아프베어는 소련의 행위가 전쟁 준비라고 확신하는 모양새였다.

보고서를 읽은 육군과 공군, 해군 고위층 모두 소련이 전쟁을 준비하는 중이라고 확신했다.

“총통 각하, 지금 당장 동원령을 선포해야 합니다.”

브라우히치가 말했다. 괴링과 레더 역시 같은 말을 했다.

“소련 놈들이 전쟁을 계획 중인 것은 기정사실입니다. 한 달이나, 어쩌면 일주일 뒤에 전쟁이 터질 지도 모릅니다.”

“놈들의 준비가 완료되기 전에, 우리가 먼저 선제공격해야 합니다.”

“잠깐, 잠깐.”

내가 손을 들자, 흥분해 저마다 한마디씩 하던 장군들이 곧장 입을 다물었다.

“선제공격이라니. 그랬다간 우리가 먼저 전쟁을 일으킨 셈이 되지 않소. 그리고 아직 소련이 우릴 공격하겠다는 명확한 증거는 없네만.”

“하지만 총통 각하. 이미 밝혀진 정보들만으로도 소련이 전쟁을 준비 중이란 사실은 명확합니다.”

“케셀링 원수의 말이 맞습니다. 이건 누가보더라도 일반적인 군사훈련 따위가 아니라 전쟁 준비 단계입니다.”

케셀링의 말을 괴링이 지원사격하고, 라이헤나우도 한마디 보탰다.

“만약 소련의 침공 예정 시기가 여름이고, 지금 총통 각하께서 동원령을 선포하는 데 동의하신다면 우리는 놈들이 침공을 개시하기 전에 역으로 선제공격하는 게 가능할 겁니다.”

라이헤나우 말대로 지금 동원령을 선포한다면 소련을 우리가 선제공격하는 것도 가능할지 모른다.

하지만, 우리가 만약 소련에 선공을 가한다면 역으로 미국과 영국의 개입을 불러올지 모른다. 아니지. 거의 확실하다고 봐야지.

루스벨트와 처칠이 누군가. 미국과 영국의 패권에 가장 위협이 되는 국가 0순위인 독일을 박살 낼 수 있다면 외계인과도 손을 잡을 위인들이니, 굳이 우리가 소련을 선제공격하지 않더라도 갖은 핑계를 대면서 개입해올 가능성이 크다.

즉 소련과의 전쟁은 필연적으로 영미와의 전쟁을 의미했다. 하물며 대소 선제공격이라고? 나보고 벙커에서 권총 자살하라는 소리냐?

물론 장군들의 주장도 이해 못 하는 건 아니다.

원래 모든 전쟁은 선빵을 날리는 쪽이 유리하기도 하고(태평양 전쟁처럼 국력이 넘사벽으로 차이나는 경우에는 선빵을 치고도 패배한 사례가 많지만), 저쪽에서 뻔히 전쟁을 준비하고 있는데 우리만 손가락 빨고 있을 수 없는 노릇이기도 했다.

하지만 그런데도 여전히 망설여지는 구석이 없지 않았다. 만약 이 보고가 SD의 과잉해석이라면?

사실 소련은 전쟁을 생각한 적 없고, 독일의 침공에 대비하기 위해 병력과 물자를 이동 중인 것이라면?

오히려 우리가 먼저 선공을 날렸다가 소련의 분노를 산다면 그땐 어떻게 할 건가? 전쟁이 터지고 1~3년 동안은 우리가 유리할지 몰라도, 결국에는 물량과 인구에서 압도적으로 우세한 소련이 승기를 잡게 될 것이다.

그리고 끝내는 베를린에 적기를 꽂기 전까지 진격을 멈추지 않겠지.

샤흐트 덕에 이제야 경제로 재미 좀 보고 있는데 다시 전쟁을 준비해야 한다니.

이 경우엔 대체 어떻게 해야 한단 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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