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히틀러가 되었다-130화 (130/150)

< 인간의 욕망은 끝이 없고 (2) >

1942년 3월 2일

독일 베를린 신 총통관저

“이런 씨발.”

요새 일이 잘 풀리나 했더니, 꼭 이상한 데서 일이 터진다니까.

어떻게 그냥 넘어가는 일이 없는 거냐 진짜.

말레이 전역에서의 참패에 대한 책임을 지고 핼리팩스는 총리직에서 사임했고, 미스터 갈리폴리, 윈스턴 처칠이 영국 제62대 총리가 되었다.

핼리팩스가 사임하던 날, 핼리팩스 내각에서 외무장관을 맡고 있던 카도건도 덩달아 사의를 표했다.

처칠은 공석이 된 외무장관 자리에 전직 외무장관이자 자신과 같은 대독 강경파 앤서니 이든을 임명했고, 노동당 당수 클레멘트 애틀리를 부총리로 임명했다.

독일에 대단히 적대적인 처칠이 영국 총리가 된 것은 절대 바람직하지 않았기에 외무부와 군부도 불안한 시선으로 영국의 새 내각을 주시했다.

그래도 지금은 일본과 전쟁을 하느라 바쁘니, 그 처칠이라도 당장은 뭘 어떻게 하겠냐는 반응이 다수지만 혹시 모른다.

히틀러, 도조 히데키, 무솔리니, 스탈린 같은 쟁쟁한 경쟁자들에게 파묻혀서 잘 알려지지 않았을 뿐이지, 처칠 역시 만만찮은 또라이거든.

이미 처칠은 1차대전 때 엄한 오스만을 건드려 동맹국 편으로 참전시킨 전과가 있으며, 독일이 항복하자 소련을 동유럽에서 몰아내야 한다고 주장하며 언싱커블 작전이라고 대소 선제공격 계획까지 세우기까지 했다.

영국군 수뇌부와 미국의 반대로 무산되었지만, 만약 언싱커블 작전이 현실이 되었다면 2차대전은 1945년이 아니라 1946년이나 1947년에 끝났을 것이다.

그만큼 더 많은 사람이 죽었을 것이고, 우리나라의 해방도 뒤로 미뤄졌겠지.

그 처칠이니 긴장을 안 할래야 안 할 수가 없다.

저놈이라면 언제 어디서 무슨 또라이 같은 짓을 저질러도 이상하지 않거든.

가뜩이나 소련 때문에 뒤숭숭한데 걱정거리가 또 하나 늘어난 셈이다.

한숨이 절로 나오는군. 온 세상에 억까하는 기분이다.

지금까지 숱한 실책을 저질러왔던 처칠이 총리가 된 것을 받아들인 영국 의원들과 국민도 대단하다면 대단했다.

처칠이 총리가 된 것에 대한 반발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대체로 영국인들은 새 총리의 등장은 받아들이는 기색이었다.

황인종에게 패배해 수치를 안긴 핼리팩스보다 늙은 꼰대 처칠이 더 낫다는 건가.

그런데 실제 역사에선 처칠도 일본군에게 처맞았잖아?

그런데도 독일이 멸망할 때까지 잘만 총리직 해 먹었고, 심지어 2차대전 끝나고도 또 한 번 더 총리로 임명되기까지 했다.

이걸 보면 처칠의 선동 능력이 대단한 건지 영국인들의 기억력이 안 좋은 건지 모르겠다.

어찌 보면 처칠도 참 대단한 인간이다. 보통 사람이라면 아예 정치생명이 끝장날 정도의 실책을 한 번도 아니고 여러 번이나 저질렀음에도 꿋꿋하게 정치판에 남아 총리까지 됐으니까.

능력도 능력이지만, 운빨 하나는 기가 막히게 좋은 것 같다.

아무튼 확실한 건 이제부터는 우리 독일도 긴장 좀 해야 한다는 거. 하이드리히에게 영국 내 정보 수집에 더욱 집중하라고 일러둬야겠군.

걱정거리가 늘긴 했지만, 좋은 소식이 없는 것도 아니었다.

하나는 시중에 나온 퓌러누델이 국민들에게서 상당한 호평을 받고 있다는 것, 다른 하나는 하인켈 사가 개발을 맡은 제트함재기의 시제품이 나왔다는 것이다.

해군항공대에서 굴리고 있는 Bf109T는 잘 만든 물건이지만, 잠재적 적국인 영국과 미국의 차기 함재기들과 싸우기엔 성능 부족이 예상되는 터라 이를 대체할 차기 함재기가 필요했다.

메서슈미트 사와의 경쟁에서 패해 고배를 마시던 하인켈 사에 나는 차기 제트함재기의 개발을 맡겼고, 이번에는 반드시 성공하겠다는 일념으로 하인켈 사는 창업자인 에른스트 하인켈 박사 본인부터 팔을 걷어붙이고 나섰다.

사장이 직접 개발을 진두지휘해서인지 하인켈 사는 약속대로 봄에 완성품을 내놓았다. 이름은 He 290.

Me262와의 경합에서 탈락한 He 280을 기반으로 만든 녀석이라 겉만 봐선 차이를 알 수 없는 수준이었다.

괴링이 말하길 He 280을 그대로 내놓은 게 아닌가 의심했다고. 두 기체의 사진을 보니 괴링이 그런 의심을 한 게 무리가 아니었다.

카탈로그상으론 최대속도 850km/h에 상승률은 1300m/min, 최대상승고도는 13100m. 무장은 MG151/20 기관포 3문으로 He 280과 동일. 이 정도면 아주 괜찮은 성능이다.

나온 건 완성품이고, 항공모함 이/착함을 비롯해 거쳐야 할 시험이 많이 남아있으니 자만은 금물이지만 충분히 고무적인 소식이 아닐 수가 없다.

세계 최초의 제트함재기인 시 뱀파이어가 1945년 12월에야 항모 이/착함에 성공했으니 무려 3년은 더 빨리 시작하는 셈이다.

“시험이 모두 완료되려면 시간이 얼마나 걸릴 것 같소?”

“저희 쪽에선 최대 4개월로 보고 있습니다, 총통 각하.”

“그렇군. 레더 원수와 해군도 He 290에 대단히 관심이 많소. 그러니 앞으로도 더욱 노력해주시구려.”

“전력을 다하겠습니다.”

명량해전에 임하는 이순신 장군 마냥 결연한 표정으로 말하는 하인켈 박사를 보니 신뢰가 갔다.

이걸로 함재기 문제는 걱정 안 해도 되겠어.

이다음 소식은 신형 중전차 개발과 관련된 것이었다. 구데리안에게 맡겨놓고 그동안 깜빡 잊고 있었는데 오늘 설계도가 완성됐다며 불쑥 찾아온 게 아닌가.

“구데리안 원수, 저건 또 뭡니까?”

커다란 천을 뒤집어쓴 뭔가를 가리키자, 구데리안은 영업용 미소를 지으며 두 손을 비볐다.

“신형 중전차의 모형입니다. 실제 전차의 1/16 크기로 만들었습니다.”

호오. 모형까지 만들어왔다고? 이거 더 기대되는데?

“그럼, 어디 한 번 봅시다.”

“알겠습니다.”

구데리안이 손가락을 튕기자, 천이 내려지면서 베일에 싸인 신형 전차가 모습을 드러냈다.

신형 전차의 정체는 바로-

“이, 이건....!”

쾨니히스티거(Königstiger, 벵골호랑이)였다.

“정식 명칭은 ‘6호 전차 B형 티거 II’입니다.”

실제 쾨니히스티거는 150mm 50도 경사의 차체 전면장갑, 포탑 정면은 185mm에 무게만 거의 70톤에 육박하는 괴물이지만, 구데리안의 쾨니히스티거는 여러 면에서 원본과 많은 차이가 있었다.

측면과 후면의 장갑 두께는 80mm로 동일하지만, 차체 전면은 55도 경사의 100mm 장갑으로 크기도 실제 티거 II보다 축소되었다.

주포도 88mm 71구경장 KwK 43 전차포가 아닌 105mm 68구경장 주포를 탑재한 것도 눈에 띄는 차이였다.

“예상 무게는 56톤. 새로 개발 중인 850마력의 마이바흐 HL234 엔진을 탑재할 예정이라 판터와 비슷한 속력을 낼 수 있을 것으로 예상됩니다.”

방어력과 화력은 출중하지만, 기동성과 신뢰성이 바닥을 기는 중전차 대신 4호 전차와 판터 같은 공수균형이 잡힌 중형전차를 선호한 구데리안다운 결과물이었다.

“어떻습니까, 총통 각하. 이 정도 성능이면 세계의 그 어느 전차도 따라오지 못할 것입니다.”

중전차급의 방어력과 화력에 기동성은 중형전차 수준인 전차라. 그야말로 현대의 MBT 조건에 완벽하게 부합하는 전차다.

“나쁘지 않군. 그런데 장갑을 조금 더 늘릴 필요가 있는 것 같소.”

“하지만 장갑을 늘리면 늘어난 만큼 기동성이 저하될 텐데요.”

“그러니까 조금만 늘리면 되지. 내가 보기에 차체 전면은 20mm, 포탑 정면은 30mm 정도만 늘리면 적당할 것 같소. 이 정도면 기동성에 큰 하자가 없을 거요.”

특히 프랑스 전역에서 독일 전차들이 보여준 활약 때문에 각국의 전차 개발 또한 실제 역사보다 훨씬 빠른 편. 내년이나 내후년에 IS-2나 M26 퍼싱이 나타나더라도 전혀 이상할 게 없다.

따라서 미리 전차의 장갑을 보강할 필요가 있었다. 그렇다고 너무 늘리면 기동성과 신뢰성을 내다 버려야 하니 덜도 말고 조금만.

***

1942년 3월 3일

영국 런던 다우닝 가 10번지

“어서 오시오, 장군.”

영국의 새 총리, 윈스턴 처칠을 런던에서 망명 생활 중인 프랑스인을 환한 미소로 맞이했다.

“영국의 총리가 되신 것을 축하드립니다, 총리 각하.”

“하하, 고맙소이다.”

처칠이 총리가 되었을 때 누구보다도 놀란 것은 다름 아닌 드골이었다.

처칠이 드골에게 사자를 보내 은밀한 만남을 제안했을 때, 그는 한물간 퇴물 취급을 받고 있었다.

노르웨이 전역에서의 실책에도 불구하고, 현직 총리 핼리팩스의 자비 덕에 자리를 지키고 있는 늙은 꼰대.

드골과 만난 처칠이 자신의 야욕에 대해 가감 없이 털어놓을 때조차 드골은 처칠의 말을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려 넘겼다.

런던의 그 누구도 거들떠보지 않던 자신을 초대한 것에 대해선 고마움을 느꼈지만, 이상한 헛소리나 늘어놓으니 믿을 수가 있어야지.

자신이 언젠가 총리가 된다면, 미국을 이용해 프랑스를 해방하고 나아가 베를린까지 진격할 것이라고?

그런 다음에는 소련까지 무너뜨린다? 지나가던 개가 웃을 소리! 그런데 처칠은 그 허무맹랑한 소리를 진심을 담아서 말하고 있었다.

‘두고 보시오, 장군. 영국인들뿐만 아니라 전 세계인들이 내가 옳았다고 생각하는 날이 올 거요. 반드시.’

그 말이 정말로 현실이 될 줄이야. 드골은 어안이 벙벙했다. 아무래도 자신이 그를 얕잡아봤다는 사실을 인정해야 할 듯싶었다.

어쩌면 그는 이후로의 모든 사태에 대해 예측했을지 모른다. 일본의 공격, 영국의 참패, 그리고 언젠가 있을 반격까지 모두 다.

“저는 정말로 당신이 총리가 돼서 놀랐습니다. 각하께선 정말로 이 모든 사태를 예측하신 겁니까?”

“물론이오.”

드골의 질문에 처칠은 당연하다는 듯이 대답했다. 너무나 자연스러워서 드골은 처칠의 말이 거짓이라고 의심조차 하지 못했다.

“그렇지 않고서야 지금 내가 이 자리에 있을 수 있었겠소? 뭐, 전부 다 예측한 것은 아니고 중간중간에 예상 밖의 일들이 생기긴 했지만 8할가량은 모두 내 예상범위 안이었소.”

“정말 대단하군요.”

둘은 함께 담배를 피웠다. 처칠은 자신이 늘 즐겨 피우는 시가를 입에 물었고, 드골은 평범한 궐련을 물었다.

입으로 독한 담배 연기를 내뿜으며 드골이 물었다.

“총리 각하. 이제 총리가 되셨으니 앞으로의 계획은 뭡니까?”

“당연히 독일을 박살 내는 것이라오.”

드골이 뚱한 표정으로 쳐다보자 처칠은 너털웃음을 터뜨렸다.

“이 사람 정색하기는. 지금 당장 독일과 전쟁을 하는 것은 불가능하오. 의회는 물론이고, 국민도 거부할 테니까. 쪽발이들과 싸우기 바쁜데, 독일 놈들과 한판 뜬다고? 무슨 말 같지도 않은 소리냐고 생각하겠지. 우선 국민이 독일과의 전쟁에 찬성하게끔 만드는 게 중요하오. 그러려면, 국민이 독일에 강한 적개심을 가지게 해야겠지. 그게 첫 번째 계획이오.”

“영국인들이 독일에 적개심을 가지게 만든다라.... 그러려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처칠은 상체를 쭉 내밀어 드골에게 얼굴을 가까이 댔다. 그리고 전보다 작아진 목소리로 소곤거렸다.

“당신네, 프랑스의 도움이 필요하오.”

***

1942년 3월 5일

소련 모스크바 크렘린 궁전

소련 각지에 암약하고 있던 ‘반동분자’들을 모조리 뿌리 뽑아 박멸한 후에도 스탈린에게는 숙제가 남아있었다.

히틀러와 구데리안이 나눈 대화에서 언급된 신형 중전차. 그것도 정면에서 15cm 포탄을 방호해냈다는 그것!

15cm 포탄을 정면에서 방호해내는 신형 중전차라니. 판터와 티거가 최신형인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었던 말인가?

스탈린은 KV 전차를 설계한 조제프 코틴을 소환해 도청한 히틀러와 구데리안의 대화를 보여주며 의견을 구했다.

“독일의 15cm 포는 아군의 152mm 포와 동급입니다.”

“그걸 내가 모르겠소? 요점만 말하시오.”

“죄송합니다. 아무튼 이것을 정면에서 방호해냈다는 것은 전면장갑이 250mm 이상이라는 소리입니다. 측면장갑의 두께가 어느 정도인지는 알 방법이 없지만, 전면장갑이 250mm 이상이니 측면장갑도 100mm 이상일 것으로 추정됩니다.”

전면이 두껍고 측면이 너무 얇으면 전차의 중심이 앞으로 쏠릴 우려가 있다. 중심이 앞으로 쏠리면 기동부에 가해지는 부담이 늘어나 신뢰성 하락의 원인이 된다.

따라서 전면보다는 얇아도 측면과 후면에도 어느 정도의 장갑을 두르는 게 일반적이었다.

이걸 다 종합하면 이 신형 중전차의 무게는 120톤을 가뿐하게 넘을 것으로 예상되었다.

“통상적인 엔진으로는 이 무게를 감당할 수가 없습니다. 하지만, 독일이 신형 엔진을 개발했다면 말이 됩니다.”

“허.”

“무장이 무엇인지는 대화에 없으니 추측만 할 수 있습니다만, 제가 예상하기로 이 정도 중량의 전차라면 기존의 전차포들보다 훨씬 큰 대구경 포를 장착했을 가능성이 매우 큽니다. 15cm 포나, 어쩌면 그 이상의 포들도요.”

전면장갑 250mm에 152mm 주포와 동급의 포를 장착한 전차라. 이 전차를 실전에서 만난다면 통상적인 방법으로는 격파가 불가능할 것이다.

그것도 한 대가 아니라 수십 대가 전장에 나타난다면?

사자가 양을 사냥하듯이 마주치는 모든 전차들을 도륙하겠지. 스탈린은 초조한 마음에 담배를 피웠다.

미국과 영국에는 152mm급 주포를 탑재한 전차가 없다. 적어도 스탈린이 알기로는 그랬다. 하지만 소련에는 KV-2가 있다.

이미 소련에 잠입시킨 스파이들을 통해 독일은 소련이 보유한 KV-2의 존재를 입수했을 것이고, KV-2에 대항할 신형 중전차를 만들었으리라.

모든 정황으로 볼 때, 독일은 틀림없이 소련과의 전쟁을 준비하고 있었다.

시기가 언제가 될지 몰라도, 히틀러는 소련을 공격할 것이다. 폴란드를, 그리고 프랑스를 공격해 정복한 것처럼.

살해당하지 않으려면, 내가 먼저 상대를 죽이는 방법밖에 없다.

하지만 그전에 준비할 게 있었다.

전쟁이 터지면 필시 붉은 군대는 독일군의 신형 중전차와 맞닥뜨리게 될 텐데, 작금의 병기들로는 독일의 신형 전차를 도저히 격파할 수가 없다.

현재 개발 중인 85mm 주포 장착형 T-34는 판터와 티거를 상대하기 위한 물건이니 신형 중전차에는 어림도 없고, KV-2나 KV-3도 다르지 않을 터.

따라서 새로운 전차가 필요하다. 적의 신형 중전차를 한방에 터뜨릴 수 있는 강력한 주포를 가진 전차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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