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타오르는 불꽃 (7) >
1941년 11월 26일
미국 워싱턴 D.C.
“이게 정녕 미합중국 정부의 뜻이란 말입니까?”
“그렇습니다.”
주미 일본대사 노무라 기치사부로의 물음에 코델 헐 국무장관은 어깨를 으쓱거렸다. 뭐 더 할 말 있냐는 표정.
노무라는 손의 떨림을 주체할 수 없었다. 세상에, 이건....
“우, 우리 정부가 받아들이기에는 조건이 너무....”
“과격한 것 같다, 이 말씀을 하고 싶으신 겁니까?”
헐은 가당치도 않다는 듯 콧방귀를 뀌었다. 그리고 자신의 앞에 앉아 몸을 떨고 있는 동양인을 차가운 눈으로 응시했다.
“이미 미합중국은 귀국에 수도 없이 경고했었고, 전쟁을 멈출 기회도 줬습니다. 그걸 전부 무시하고, 걷어차 버린 것은 일본이지요. 그 점은 생각해보지 않으신 겁니까?”
헐의 맹렬한 비판에 노무라는 할 말을 잃고 말았다. 노무라는 헐의 시선을 피해 손에 든 문서로 시선을 떨궜다.
1. 일본은 중국의 영토와 프랑스령 인도차이나 일대에서 전면적이고 즉각적으로 철수할 것.
2. 일본은 중국에 세운 괴뢰정부를 자발적으로 해체할 것.
3. 미일 양국은 장제스 정부만을 중국 유일의 정권으로 인정하고, 그 외 정권에 대해서는 어떠한 군사, 정치, 경제적 지원을 하지 않을 것.
4. 일본은 억류한 프랑스 민간인 및 프랑스군 포로들을 즉각 석방하고, 프랑스령 인도차이나에 설립한 괴뢰정부를 자발적으로 해산할 것.
5. 일본은 중국에서의 일체의 치외법권의 포기할 것.
6. 미일 양국은 상호 간의 자산 동결을 해제할 것.
7. 일본은 중국, 영국, 프랑스, 네덜란드, 미국 정부와 불가침조약을 체결할 것.
6일 전 노무라는 헐에게 일본의 협상조건을 전달했다.
일본의 협상조건은 미국이 미국 내 일본의 자산 동결과 대일 금수조치를 해제한다면 중국 화북 지역과 인도차이나 북부를 제외한 전 점령지에서 단계적으로 철수하겠다는 것이었다.
일본이 내민 조건을 받아든 루스벨트는 분노했다. 그는 일본과의 협상 가능성이 없으니 강경한 조건을 내밀 것을 헐에게 지시했다.
헐은 대통령의 지시에 충실히 따랐다.
그가 보기에도 위 조건들을 일본이 받아들일 것 같지가 않았다. 오히려 받아들인다면, 그게 더 이상한 일이리라. 애초에 그럴 작자들이었다면 전쟁 자체를 일으키지 않았을 테니.
‘헐 노트’는 노무라를 통해 일본 외무대신 도고에게 전해졌고, 곧 일본 수뇌부 전체에게 공개되었다.
헐 노트의 내용을 받아든 군부 강경파는 폭발했고, 심지어 대미개전에 부정적인 입장을 취하던 유화파조차 미국의 조건이 비상식적이라며 분개했다.
“미국은 진심으로 황국의 멸망을 바라고 있소!”
“더 이상의 협상은 불가능하오. 이제 남은 건 전쟁뿐!”
“저, 거만한 양키 놈들에게 황군의 힘을 보여주는 겁니다!”
특히 일본을 분노케 한 것은 헐 노트에 명시된 중국에서의 철수 부분이었다.
미국은 중국의 영토에 만주도 포함되는지 딱히 명시하지 않았지만, 일본은 미국이 언급한 중국 영토에 만주도 포함된다고 해석했다.
중국에서의 철수도 받아들이기 힘든데, 하물며 만주국까지 포기하라고?
만주는 일본의 최전선 기지이자, 일본에 막대한 양의 자원과 인력을 제공하는 ‘황금알을 낳는 거위’였으며 말이 괴뢰국이지 조선과 대만처럼 사실상 일본의 실질적인 영토로 인식되고 있었다.
그런 만주를 내놓으라는 것은, 일본에게 영토를 포기하라는 말과 같았다.
만주를 포기한다면 이다음은 조선과 대만이 될 것이고, 나아가 일본 전역을 강탈하려 들 것이다.
따라서 일본은 일본의 영토와 안녕을 지키기 위해, 미국과 전쟁을 해야 한다-는 것이 바로 군부의 주장이었고, 곧 일본 전체의 뜻이었다.
“폐하, 이제 일본은 더는 물러설 자리가 없습니다. 이 이상 협상을 이유로 들며 전쟁을 꺼린다면 군부가 쿠데타를 일으킬 것이고, 황국은 전국시대로 되돌아가고 말 것입니다. 황국이 자멸하는 것을 피하기 위해서는, 대미개전이 불가결하옵니다.”
“그렇다면.... 어쩔 수 없지. 황국을 구할 유일한 수단이 전쟁뿐이라면, 마땅히 하는 수밖에.”
***
1941년 11월 30일
북태평양
“결국 전쟁은 피할 수 없는 것인가....”
일본제국 해군 연합함대 사령관 야마모토 이소로쿠는 근심이 가득했다.
그가 그토록 반대해오던 대미개전이 끝내 결정되었다는 소식을 전해 들은 그는 깊은 한숨을 토해내며 무력감을 느꼈다.
“죄송합니다, 각하. 잘 못 들었습니다.”
“아니, 아닐세. 그냥 혼잣말한 것이니 무시하게.”
손을 내저어 축객령을 내리자, 당번병은 커피를 내려놓고 조용히 물러갔다.
야마모토의 당번병이 내온 커피는 브라질산 원두로 만든 최고급품이었다.
야마모토는 커피의 그윽한 향을 좋아했다. 하지만 지금 같은 상황에서는 향긋한 커피 향도 그의 무력감을 떨쳐 내주지 못했다.
미국에서 유학하고, 미 대사관 무관으로 미국에서 오랫동안 거주한 바 있는 야마모토는 미국이란 나라의 저력을 일본의 어느 누구보다 잘 알았다.
대다수 일본인이 미국을 단지 덩치 큰 거만한 양키들의 나라 정도로만 치부할 때, 그는 미국이야말로 현존하는 나라 중 제일의 강국이라는 사실을 일찍이 깨달았다.
미국은 단순히 인구와 영토의 차이 외에도 일본과 모든 면에서 비교가 되지 않을 정도로 강한 나라다.
미국의 디트로이트 공업지대 한 군데에서만 일본과 만주의 공장들에서 나오는 철강의 몇 배나 되는 양이 나오며, 조선과 만주에서 수탈한 쌀과 콩으로 자국의 부족한 식량 생산량을 채우는 일본과 달리 미국은 식량이 차고 넘쳐 전 세계에 수출까지 한다.
미국 각지의 카페에서 야외 테이블에 각설탕이 담긴 통을 비치해두는 것도 야마모토에겐 쇼크로 다가왔다.
설탕이 귀한 일본에서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 미국에서는 이미 일상의 한 부분이었다.
대충 허름한 식당에서 1인분을 시켜도 일본에서는 두 사람이 배불리 먹고도 남을 양의 음식이 나올 정도로 미국은 풍요로운 나라였다.
그뿐인가. 미국의 농촌에서는 누구나 차를 몰고 다니는 줄 안다.
반면에 일본은? 운전은 고사하고 제 이름조차 쓰지 못하는 문맹들도 미국보다 압도적으로 많다.
군사, 경제, 정치는 물론이고 사회적으로도 황국과 압도적인 격차가 나는 나라를 상대로 전쟁한다니.
황국은 대체 어디로 가려고 하는 건가?
군부의 분위기가 미국과의 전쟁을 준비하는 방향으로 흘러가자, 대미개전에 반대하던 야마모토는 미국과의 전쟁에 대비하여 맹훈련에 돌입했다.
이러한 야마모토의 모습을 보고 육군에서는 그가 늦게나마 정신을 차렸다고 생각했지만, 실상은 반대였다.
피할 수 없는 전쟁이라면, 최대한 큰 피해를 적에게 입혀야 한다.
그래야 황국이 미국과의 협상에서 조금이나마 유리한 고지를 점할 수 있지 않겠는가.
그래도 최선의 방안은 미국과의 전쟁이 일어나지 않는 것이었기에, 야마모토는 훈련에 전력을 다하면서도 협상이 타결되기를 빌고 또 빌었다.
그러나, 하늘은 그의 간절함을 알지 못했다. 대본영과 일본인들이 미국의 저력에 대해 알지 못했듯이.
헐 노트를 받아든 일본은 전쟁을 선택했고, 이제 그 누구도 전쟁을 막을 수 없게 되었다.
커피가 완전히 식어 김을 뿜어내지 않게 된 후에야 야마모토는 잔을 들어 입으로 가져갔다.
온기가 빠져나간 커피에선 은은한 단맛이 느껴졌다. 그리고 향기도 아직 남아 있었다.
전쟁을 재창하는 머저리들은 황국이 지난날 청과 러시아를 상대로 승리를 거둔 것처럼, 미국을 상대로도 승리를 거둘 수 있다고 주장했다.
청과 러시아를 상대로도 승리했는데, 미국이라고 그러지 말라는 법이 어디에 있는가?
말만 듣고 보면 일리가 있었다.
하지만 그들은 모르고 있다. 청과 러시아는 덩치만 크고, 속은 빈 허깨비였기에 황국이 승리할 수 있었지만, 미국은 청과 러시아와는 차원이 달랐다.
그리고 그들은 황군의 기습으로 큰 피해를 본 미국이 협상을 타전해 올 것이라고 굳게 믿고 있지만, 다른 변수에 대해서는 일말의 고려조차 하지 않았다.
미국이 협상 대신 전쟁을 선택한다면, 그때는 어떻게 할 것인가?
막대한 물량과 기술력, 인구로 무장한 미국을 황국이 과연 버텨낼 수 있을까?
야마모토는 한숨을 토해내며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리고 창가로 다가가 수평선을 응시했다.
그가 탑승한 전함 나가토는 일본으로부터 멀리 떨어져 있었고, 계속해서 멀어지고 있었다.
***
1941년 12월 1일
독일 베를린 신 총통관저
미국이 일본에 ‘헐 노트’를 전달했고, 이를 받아든 일본 군부가 격분했다는 소식은 곧 내게도 전해졌다.
내가 기억하는 실제 역사와 조금은 달라지긴 했지만, 결국 큰 틀에는 변함이 없었다.
일본은 미국의 경고에도 침략을 멈추지 않았고, 미국은 일본에 석유 수출 금지라는 초강경 대응을 했다.
미국으로부터 석유의 80%를 수입해오고 있던 일본에 석유 금수 조치는 날벼락이나 다름없었고, 일본은 미국을 달래기 위해 나름대로 애를 썼지만, 미국은 요지부동.
“조만간 일본은 미국을 공격할 걸세. 놈들의 목표는 아마도... 진주만이 되겠지.”
나는 지휘봉의 끝으로 태평양 중앙에 위치한 하와이 진주만을 톡톡 두들겼다.
“미국 해군이 이곳에 모여있기 때문입니까?”
내가 그 이유에 관해 설명하기도 전에 레더가 물었다. 역시. 수십 년간 해군에서 쌓아온 짬답게 바로 눈치를 챘다. 나는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미국은 일본이 필리핀이나 괌을 공격하고 하와이를 공격할 것이라곤 생각 못 할 거요. 물론 거리를 생각하면 그렇게 판단하는 게 무리는 아니지. 하지만 일본 해군 연합함대의 사령관을 맡은 야마모토 이소로쿠라는 자는 보통내기가 아니오.
그자는 틀림없이 하와이를 기습 공격해 미 해군에게 괴멸적인 타격을 입혀 미군의 발을 묶어두려고 할 것이오.”
여태껏 내가 한 모든 예언이 거의 다 맞아떨어졌기에 장군들은 내 말에 어떤 의문도 제기하지 않았다.
모두가 내가 하는 말을 믿어 의심치 않았다.
여기서 더 잘난 척하고 싶었지만.... 그러지 않았다. 정확히는 그럴 수가 없었다.
“문제는 일본군이 어떤 방법으로 진주만을 공격할지 감이 안 잡힌다는 거지.”
역사에서 일본은 항공모함에서 발진시킨 함재기들을 이용해 진주만을 기습했고, 대성공을 거둘 수 있었다.
하지만 여기서도 과연 역사와 같은 방법을 쓸지는 알 수 없었다.
그도 그럴 게 이 세계의 역사에는 타란토 공습이 일어나지 않았으니까.
2차대전이 발발하고 영프와 독일 사이에서 간을 보던 이탈리아는 전쟁이 독일의 승리로 끝날 것 같다는 확신이 들자 참전을 선언, 영프에 전쟁을 선포했다.
이탈리아가 참전함에 따라 자연스레 아프리카와 지중해까지 전장이 되었고, 영국에게 있어 생명줄이나 다름없던 수에즈 운하를 지키려면 지중해의 재해권을 잡는 게 급선무였다.
지중해의 재해권을 잡으려면 우선 이탈리아 해군을 조져놓을 필요가 있었고, 영국은 이탈리아 본토의 타란토 항구를 기습해 이탈리아 해군에게 막대한 피해를 준다는 계획을 세웠다.
1940년 11월 11일, 영국 지중해 함대는 페어리 소드피시 21기를 동원해 타란토 항을 기습, 이탈리아군의 콘테 디 카보우르 전함을 대파시키고, 카이오 두일리오와 리토리오를 중파시켰으며 중순양함 1척과 구축함 2척을 손상시켰다.
영국의 피해는 소드피시 2기 격추에 전사 2명, 포로 2명이 전부였다.
뇌격기 단 2대의 피해로 금쪽같은 전함 3척을 무력화시킨 이 엄청난 전과에 주목한 것은 극동의 일본이었다.
남방작전에 방해가 될 미 해군을 일거에 제압하고자 했던 일본은 타란토 공습을 집중적으로 연구하여 진주만 공습에 그대로 써먹었고, 전함 4척 격침, 1척 좌포, 3척 손상에 순양함, 구축함 각기 3척 손상에 항공기 188기 파괴라는 어마어마한 성과를 올린다.
그런데.... 여기서는 타란토 공습이 일어나지 않았으니 진주만 공습이 어떤 방향으로 이루어질지 가늠할 수가 없었다. 아니, ‘공습’이 될지도 애매했다.
비록 타란토 공습은 없지만, 항공기 대 전함의 대결은 북해에서 영국 해군 대 독일 해군의 구도로 일어나긴 했다.
다만 항공기에 의한 공격으로 격침된 전함이 없어서 그렇지.
과연 여기서의 일본은 어떤 선택을 할까? 역사에서처럼 항공모함을 이용해 공습을 가할까, 아니면 다른 방법을 사용할까.
어쩌면 진주만 기습 대신, 필리핀과 괌, 웨이크 섬 등 미국의 태평양 거점들만 공격할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야마모토 이소로쿠가 있는 한, 진주만을 그냥 내버려 둘 리가 없는데....
젠장. 이건 나도 모르겠군. 그래도 굳이 가능성이 제일 큰 것을 따지자면, 역사대로 항공모함을 이용해 공습을 시도하지 않을까 싶다.
항공모함의 중요성을 남들보다 일찍 깨달은 야마모토 이소로쿠이니, 충분히 가능성 있는 시나리오다(항모의 중요성을 설파한 그조차 전함을 더 중요시했다는 게 코미디지만).
“리벤트로프 장관, 미국의 반응은 어떻소?”
나는 미국이 일본에 헐 노트를 전달했다는 소식을 접한 뒤, 일본이 곧 공격해올 것이란 사실을 미국에 알리고자 했다.
원래 역사대로라면 죽었을 인명을 구할 목적도 있지만, 미국의 호감을 얻어내 우호 관계를 구축하여 미국과의 충돌 가능성을 최소화하기 위해서였다.
그리고 미 해군의 피해를 조금이라도 줄이면 자연스레 미국의 승리도 빨라질 것이고, 나아가 한반도도 일찍 해방될 게 아닌가.
“그것이....”
리벤트로프는 인상을 쓰며 말꼬리를 흐렸다.
“우리가 정보를 제공했음에도 미국은 현재까지 어떤 답변도 주지 않고 있습니다. 겉으로는 물론이고, 뒤로도 말입니다.”
주미 독일대사로 발령 보낸 프란츠 폰 파펜은 지시대로 미국에 일본이 곧 기습해올 것이라고 알렸지만 미국은 아무런 반응도 보이지 않았다.
정보 제공에 대한 의례적인 감사나, 이 정보가 사실이냐는 질문조차도 없었다.
이것도 루스벨트의 지시로 인한 것이려나?
우리가 제공한 정보가 역정보라고 판단해서 그런 것일 수도 있지만, 독일을 싫어하는 루스벨트가 일부러 어떤 반응도 하지 말라고 지시를 내렸을 수도 있다.
뭐가 사실일지 나조차 분간이 어렵군. 어쩌면 둘 다일지도 모르겠다.
“호의를 베풀어도 우리를 아주 개무시하는군. 거만한 양키 녀석들.”
괴링이 투덜거리자 레더가 즉각 동의를 표했다.
“심지어 놈들은 영국에 구축함과 전투기들을 헐값에 팔기까지 했죠. 우리가 보란 듯이 말입니다.”
“맞습니다! 이는 독일을 견제하겠다는 노골적인 신호입니다. 놈들이 계속 우리에게 도발해오면, 우리도 더 이상 놈들에게 접근할 필요가 없어요!”
괴링은 미국이 영국 정부에 전투기와 폭격기를 헐값에 팔아 재낀 것에 분노했고, 레더도 미국이 영국에 구축함과 수송선 등 일부 함선을 판 것을 두고 분개했다.
다시 전쟁이 터지면, 그것들이 독일을 공격하는데 사용될 게 너무나 뻔한 일이었기에.
나도 루스벨트가 여간 짜증이 나는 게 아니었다.
아무리 우리가 못 미덥고 위협적으로 느껴진다고 해도, 친하게 지내자고 하는데 대놓고 야지를 주다니.
이 정도면 일부로 시비를 거는 게 아닌가 싶다.
그래도 독미관계에 진척이 아예 없는 것은 아니어서, 1939년 9월 1일 이전처럼 다시 무역을 재개하는 사이로 되돌아가기는 했다.
미국에서 독일로 수출하는 식량은 전쟁 전보다 더 늘기도 했고. 덕분에 독일 국민도 전쟁 이전처럼 코카콜라를 자유롭게 마실 수 있었다.
“그래도 미국과의 관계 증진을 포기해선 안 되오. 미국과 척을 지면, 그 피해는 고스란히 독일로 돌아올 테니까. 멀리 갈 것도 없이 1차대전을 떠올려 보시오.”
“으으음....”
“총통 각하의 뜻은 알겠습니다. 그래도 저희가 미국에 너무 굽히고 들어가는 것은 아닌지....”
“자존심은 좀 상하지만 별수 있겠소. 자존심이 생존을 대신할 수는 없는 노릇이니.”
물론 자존심도 중요하다. 하지만 그 자존심이란 것도 상대를 봐가면서 세워야지.
미국 앞에서는 잠시 접어두는 게 이치에 맞다. 특히 요즘 같은 시대라면 더더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