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타오르는 불꽃 (6) >
1941년 10월 25일
독일 동프로이센 인스터부르크 공군기지
나는 지금 구름 한 점 없이 맑은 청색 하늘 위를 날고 있었다.
인간이 하늘을 나는 것은 고대 그리스 시절부터 쭉 이어진 인류의 오랜 소망이다.
만약 당신이 하늘을 날아본다면, 어째서 인간이 그토록 하늘을 나는 것을 소망했는지 이해하게 될 것이다.
과거 인류가 하늘을 날아본 적이 있기에 하늘을 나는 것을 소망한 것은 아니지만, 아무튼 뜻은 그렇다.
온몸의 혈관에 피 대신 전류가 흐르는 것처럼 전신이 오싹해지는 짜릿함.
그 짜릿함은 지금까지 경험했던 그 어떤 자극이나 스릴과도 감히 견줄 수 없을 정도였다.
“총통 각하, 이만 착륙하겠습니다.”
“벌써?"
갈란트의 말에 나는 아쉬움을 느꼈다. 조금만 더 있으면 안 되나?
“5분 뒤에 착륙해도 되지 않나? 어차피 시간도 널널한데.”
“이런 말씀 드리기 참 그렇지만, 제가 조금 많이 급해서 말입니다. 오늘따라 물을 많이 마셨는지 영....”
“아.... 그럼 어쩔 수 없지."
생리현상은 무척 중요한 문제이니 말이다. 게다가 오늘이 아니더라도 전투기에 탈 기회는 널려있기도 하고.
아쉬운 마음을 뒤로 한 채 착륙 허가를 내리자, 갈란트는 일자로 쭉 뻗은 활주로에 기체를 착륙시켰다.
“즐거운 비행이었네. 지상에서 볼 때와 직접 탑승할 때와는 과연 느낌이 다르군. 마치 하늘을 나는 것 같았네.”
“감사합니다. 하지만 마지막 말은 조금 잘못된 표현이 아닌가 싶습니다. 하늘을 나는 것 같은 게 아니라, 정말로 하늘을 날았으니까요.”
“참. 그렇군.”
나의 첫 제트기 탑승 경험은 기분 좋게 마무리되었다.
Me262의 2인승 훈련기 버전인 B-1a형에서 내린 갈란트는 활주로 밖에서 대기하던 장교들에게 양해를 구하곤, 부리나케 화장실로 뛰어갔다.
볼일이 급하다는 말이 거짓말이 아니었던 모양이다.
“총통 각하, Me262의 탑승 소감은 어떠셨는지요.”
평소 입고 다니는 공군 원수 제복 대신, 비행복 차림을 한 괴링이 다가와서 물었다.
괴링은 종종 일선 부대를 방문해 직접 조종간을 잡고 하늘에서 시간을 보내곤 했다.
본래 역사에서의 체형이라면 불가능했을 테지만, 지금의 괴링은 역사가 기억하는 헤르만 마이어가 아니라 군살 하나 없는 미중년이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나는 웃으며 Me262의 표면에 손을 올렸다.
“정말 굉장한 물건이더군. 갈란트가 내게 말한, ‘뒤에서 마치 천사가 밀어주는 느낌이었다’는 말이 절대 과장이 아니었어.”
“역시 총통 각하도 이 전투기가 무척 마음에 드셨나 보군요.”
빌헬름 에밀 메서슈미트 박사는 함박웃음을 지으며 두 손을 비볐다. 메서슈미트 사의 경쟁회사인 하인켈 사의 관계자들이 떨떠름한 표정을 지어보여 더욱 대비되어 보였다.
경쟁사가 잘나가서 배 아픈 건 알겠는데, 그렇다고 여친을 NTR당한 표정 지어 보이지 말라고. 사람 무안하게끔.
솔직히 이쪽이 더 잘 만드는 걸 어떡해?
Me262 슈발베(Schwalbe, 제비)는 세계 최초의 제트전투기로 알려져 있지만 사실 그건 틀린 정보다.
Ju87 슈투카와 Ju52 수송기 등 걸작 기체들을 만든 것으로 유명한 융커스 사는 1938년에 EF009 제트전투기를 선보인 바 있고, 1939년에는 하인켈 사가 만든 He 178이 비행에 성공함으로 세계 최초로 비행에 성공한 제트전투기 타이틀을 획득했다.
제식채용에 실패해서 그렇지....
Me262가 가진 타이틀은 ‘세계 최초로 실전배치된 제트전투기’로, 완성은 1942년에 이루어졌지만 정작 나치 수뇌부의 무관심으로 나치 독일이 패망하고 있을 무렵인 1944년에서야 양산이 진행되었다.
이조차 폭격기 만능론자였던 히틀러는 Me262를 전투기가 아닌 제트폭격기로 양산하라는 지시를 내려 독일의 패망을 부채질하는 뻘짓을 저질렀다.
하지만 나는 히틀러가 광신했던 폭격기 만능론이 얼마나 병신같은 소리인지 잘 아는지라, Me262는 순수하게 제트전투기로 사용할 계획이다.
애초에 그러라고 만들 물건이기도 하고. 전투기로 개발된 물건을 폭격기로 사용한다는 것부터가 초밥 장인한테 파스타 만들라고 하는 것과 다를 게 없는 소리다.
“Me262가 등장했으니 Bf109도 곧 구식 소리를 듣게 되겠군.”
그동안 독일의 하늘을 책임졌던 Bf109는 현재 G-6형까지 나왔다. Bf109는 종전 직전까지 개량을 지속하여 K-6까지 나오지만, Me262가 역사보다 일찍 등장했고 독일의 사정도 훨씬 양호하므로 추가 파생형이 나오는 일은 없지 않을 듯싶었다.
이미 Fw190D를 기반으로 하는 신형 프로펠러 전투기 Ta152가 개발 중인 데다 도르니에 사도 신형 전투기를 연구 중이니까.
단, 개발을 멈춘다는 거지 양산까지 끝낸다는 소리는 아니다.
지상에 4호 전차와 헷처가 있다면 공중에는 Bf109가 있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Bf109는 세계 각국으로 절찬리에 수출 중인 효자 상품이니까.
더 이상 Bf109를 찾는 국가가 없을 때까지 계속 팔아야지. 그래야 국가재정에 보탬이 되지 않겠나.
독일 공군의 차기 제트기에선 메서슈미트 사에 밀려났지만, 그렇다고 하인켈 사에 완전히 기회가 없는 것은 아니다.
여전히 제트기에 미련을 버리지 못하고 있는 에른스트 하인켈 박사를 위해 나는 해군항공대에서 굴릴 제트함재기의 개발은 하인켈 사에 맡겼다.
내년 봄까지 완성품을 내놓겠다고 호언장담했으니 믿고 있어도 되겠지.
본격적인 제트기가 나왔는데 왜 그보다 성능이 떨어지는 프롭기를 계속 만드냐고 할 수 있겠는데, 여기는 나름 복잡한 사연이 있다.
대전(大戰)말로 갈수록 자원 부족에 시달려 저질부품들이 대거 양산되었던 독일과 달리 자원이 차고 넘쳤던 미국과 영국조차 당대 기술력의 한계로 엔진 수명이 50시간 내외였다.
특히 자원이 부족했던 독일은 배기열을 견뎌야 하는 연소실과 배기터빈을 부득이하게 레어메탈이 아닌 강철로 만들 수밖에 없었고, 비숙련 노동자들까지 생산에 마구 투입하는 바람에 엔진의 성능이 심각하게 뒤떨어졌다.
독일로 끌려와 강제노동에 종사하게 된 외국인 포로들의 사보타주는 덤이고.
원래 전투기가 가장 취약할 시기가 바로 이착륙 과정인데, 기술력이 발달하지 못한 초반의 제트기들은 프롭기들보다 더욱 취약할 수밖에 없었다.
특히 연합국에 제공권을 탈취당한 독일은 전투기들이 이착륙 중에 적기의 공격을 받는 경우가 다반사였는데, 이때 출력을 얻겠다고 스로틀을 올리면 연소실과 배기터빈이 고열을 견디지 못하고 녹아내려 전투기를 추락시켰다.
그렇다고 가만히 있자니 적기에 격추당하는 건 당연지사고, 가뜩이나 고도도 낮아서 탈출한다고 해도 낙하산의 효과를 보기도 전에 지상에 처박혀 죽기 일쑤.
그 때문에 독일은 Me262의 이착륙 과정을 엄호하기 위해 ‘파파가이 슈타펠(Papagei Staffel)’이라는 프롭기로 구성된 엄호부대를 따로 운용해야 했다.
그나마 여기서는 자원 수급 걱정이 없고, 전쟁도 끝났으니, 비숙련공들이 강철로 만든 폐급 엔진을 전투기에 장착하는 일은 없겠지만, 상술한 제트기의 낮은 연비도 무시할 수 없는 문제였다.
부족한 엔진 수명과 낮은 연비, 그 외 여러 잡다한 문제들로 제트기가 프롭기를 완전히 대체하기까지 제법 긴 시간이 걸렸다.
괜히 미국과 영국, 소련 등 쟁쟁한 강대국들이 2차대전이 끝난 후에도 한동안 프롭기를 굴린 게 아니란 말씀.
마지막 차례인 헤스의 비행까지 끝난 뒤 나와 괴링, 베버, 리히트호펜, 그리고 메서슈미트는 Fw 200, He 177을 대체할 독일의 차기 장거리 전략폭격기 겸 해상정찰기 개발을 주제로 논의했다.
나는 그들에게 내가 생각한 차기 중(重)폭격기의 제원에 간략하게 설명했다.
엔진은 4개를 사용하고 승무원은 8명, 최대속도는 560km/h, 폭장은 대략 3톤에 항속거리는 6500km 정도.
He 177보다 폭작량은 적지만, 항속거리를 따지면 He 177은 물론이고 미국의 B-24 중폭격기보다도 우월한 성능이다.
물론 앞서 나열한 스펙 그대로 만들 수 있다면 말이지만.
“소련은 독일과 우호 관계지만, 그래도 이 관계가 언제까지 지속될지는 아무도 모르오. 소련도 우리와 같은 생각을 하고 있을 테지. 물론 전쟁이 일어나는 것보다 전쟁이 일어나지 않는 게 가장 좋지만, 만약 전쟁이 일어난다면 우리는 소련 전역을 폭격할 수 있는 긴 항속거리를 가진 신형 폭격기가 필요하오.”
지금 독일 공군이 보유 중인 폭격기 중 가장 크고, 긴 항속거리를 가진 He 177조차 우랄산맥 근처까지 한계다.
하지만 차기 폭격기라면 우랄산맥 너머 시베리아까지 폭격하는 게 가능하다.
‘시베리아 폭격기’를 이용해 소련의 시베리아를 폭격한다면 피해는 물론이고 소련인들의 사기에 상당한 영향을 줄 수 있으리라.
“나는 이 차기 중폭격기를 ‘시베리아 폭격기’라는 의미에서 ‘Me264 시베리아’라고 부를 생각이오. 명칭에 다른 의견이 있다면 누구든 발언해도 좋소이다.”
“실로 적절한 이름이라고 생각됩니다.”
“시베리아 폭격기라, 하하! 러시아인들을 겁주기 딱 좋은 이름이군요!"
폭격기 이름에 대해선 그 누구도 이견이 없었다.
실제 나치가 개발하고자 했던 Me264의 목표는 소련의 시베리아가 아니라 미국이었기에 이름도 아메리카 폭격기란 의미에서 ‘Me264 아메리카’라고 불렸다.
대서양 건너편에 있는 미국을 폭격하고 귀환해야 했으므로 항속거리도 그만큼 길어야 했는데, 자그마치 15,000km의 항속거리를 가질 것을 요구받았다.
이게 어느 정도냐면, 2차대전에 사용된 폭격기 전체를 통틀어 가장 긴 항속거리를 가졌던 B-29가 9000km고, 냉전이 낳은 걸작 폭격기이자 최소 2050년대까지 운용이 예고된 B-52가 16,232km다.
이쯤 되면 나치가 어떤 괴물을 만들려고 했는지 감이 잡히겠지.
그 돈 많고 항공기 기술력으로는 세계 최고라고 평가받던 미국조차 항속거리가 1만km를 넘어가는 폭격기를 만드는데 엄청난 시간과 비용, 인력을 필요했는데, 2차대전 말, 그것도 자원과 인력 부족에 시달리던 독일이 만들어냈을 가능성은 희박하다.
당장 미국은커녕 코앞에 있는 영국, 소련조차 정복하지 못한 데다가 나치 독일 스스로도 이게 얼마나 만들기 어려운 물건인지 알았기에 시제기 1대만 만들고 개발을 포기했다.
그나마 만든 시제기도 연합군의 공습으로 파괴되었다고 한다.
그러나 미국 폭격이라는 야망을 완전히 포기한 것은 아니어서, Ju390이나 Ju488, Ta400 등 여러 중폭격기를 계획했지만, 셋 다 제대로 만들어보기도 전에 전황 악화로 Me264처럼 개발이 중단되었다.
언젠가 미국까지 가는 폭격기를 만들기는 해야겠지만, 당장은 현실적으로 가능한 것부터 만드는 게 이치상 맞다.
그리고 유럽에서 미국까지 왕복이 가능한 폭격기를 만든다곤 해도, 그걸 써먹을 날이 올 것 같지는 않았다.
....아니지. 써먹을 날이 오면 안 되지. 안 되고말고. 지금까지 내가 어떤 고생을 하면서 겨우 여기까지 왔는데.
반드시 일어나선 안 되는 일 0순위가 바로 미국과의 전쟁이다.
내가 아무리 러브콜을 보내도, 미국이 그걸 받아들여 줄 가능성은 희박하다.
당장 작금의 미 대통령인 루즈벨트부터가 지독한 반독주의자였고, 애초에 미국의 기조가 자신들의 안전을 위협하거나 그럴 가능성이 있는 패권국의 등장을 막는 것인데 제3제국만큼 그 조건에 부합하는 나라는 일본 외에 없었다.
그나마 국력으로 따지면 독일이 일본의 몇 배나 되니, 미국이 몇 배는 더 경계하는 게 당연지사.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국과 친하게 지내려는 노력은 멈추지 말아야 한다.
미국은 지구상에서 혼자만의 힘으로 제3제국을 불바다로 만들 수 있는 유일한 나라니까.
“다음 안건입니다.”
베버가 신호를 보내자, 공군 소령이 거대한 도면을 들고 와 탁자에 펼쳐 모두가 볼 수 있게끔 했다.
“한 달 전 총통께서 고안하신 초대형 폭탄, 이른바 ‘지진폭탄’의 개발에 관해서 말입니다만....”
***
군부, 특히 육군의 수장 격이자 일본군 내 강경파들 사이에서 절대적인 위치에 있던 도조 히데키.
그는 중국과 인도차이나에서의 철수는 무슨 일이 있어도 받아들일 수 없다며 미국과의 전쟁까지 불사해야 한다고 입버릇처럼 말하고 다녔다.
“황국의 숭고한 병사들이 피땀 흘려 얻어낸 영토를 어떻게 포기한단 말이오! 천황 폐하와 야마토 민족을 위해 초개처럼 쓰러져간 황군 장병들에 대한 예의가 아니외다!”
“옳소!”
“지당하신 말씀입니다, 각하!”
그러나, 막상 자신이 총리가 되자 도조는 현실에 눈을 떴다.
남사할린을 바쳐 얻어낸 소련의 협력으로 중국을 궁지에 몰아넣는 데까지는 성공했지만, 여전히 중국은 항전 의지를 보이며 악착같이 저항 중이다.
당장 중국도 정복하지 못한 마당에 미국, 영국과 전쟁을 일으키는 것은 위험부담이 너무 컸다.
현실을 파악한 도조는 이제까지와는 다르게 태도를 180도 바꿔 ‘중국에서의 전쟁이 마무리되기 전까지 대미개전은 위험하다’며 개전을 뒤로 미뤄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리고 이런 도조의 태도에 격노한 것은 그와 같은 배를 탔던 동지들, 군부의 강경파들이었다.
“도조, 이 능구렁이 같은 놈!”
“전쟁을 하자고 할 때는 언제고, 이제 와서 손바닥 뒤집듯이 말을 바꿔!”
“겁쟁이 같은 새끼!”
“이참에 이놈들도 그냥 뒤집어엎어 버려?”
강경파들의 불만이 쌓여가고 있는 것을 모르지 않던 도조는 진퇴양난에 처했다.
지금 일본은 미국, 영국과 전쟁 할 상태가 아니다. 하지만 협상하려고 해도 미국은 요지부동이며, 군부는 당장 전쟁하자고 난리를 치고 있는 상황.
여기서 더 꾸물거렸다간 군부가 쿠데타를 일으켜 자신을 도륙하려 들지도 몰랐다.
발등에 불이 떨어진 도조는 천황을 찾아가 현 상황을 있는 그대로 고했다.
언제 쿠데타가 터져도 이상하지 않을 분위기이며, 군부의 쿠데타를 막으려면 결국 미국과의 전쟁만이 답이라고.
심지어 일본 국민의 여론조차 미국과의 전쟁을 주장하고 있었다. 중국에서 들려오는 승전보에 취한 일본인들에게 미국은 일본의 몰락을 기원하는 악이었으며 무적의 황군이라면 미국 따위 가볍게 무찌르고 승리를 거머쥘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았다.
여론과 군부의 불만을 누그러뜨리려 히로히토는 나름의 해답을 내놓았다.
“경의 뜻이 그러하다면 어쩔 수 없군. 미국과의 전쟁을 준비하되, 그래도 혹시 모르니 협상은 포기하지 말고 계속하도록.”
“폐하의 명을 받들겠사옵니다.”
히로히토의 뜻이 전해지자, 마그마처럼 끓어올랐던 군부는 조금은 잠잠해졌다.
하지만-
“이, 이게 대체 무슨 소리냐?”
“개 같은 미국 놈들이! 감히, 감히이!!!”
미국의 협상 조건이 전해지자 일본은 발칵 뒤집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