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타오르는 불꽃 (5) >
소련이 극동에서 빼 온 3개 군단을 독일 국경 일대에 배치하자, 독일도 이에 화답하듯 6개 사단을 동부에 배치했다.
동프로이센에 3개, 폴란드 보호령에 3개.
당연히 독일군의 병력 배치를 두고 소련에서도 여러 얘기가 나왔다.
숫자를 8에 맞추지 않고 그보다 작은 6에 맞춘 것으로 봐선 소련을 견제하되, 소련을 위협하려는 의도가 없다고 풀이되어 당장은 일단락되었다.
그러나 8월에 예정된 기술자 파견이 9월로 미뤄진 것을 두고 다시 말이 나왔다.
표면적으로는 내부사정이 알려줄 수 없다고 하지만, 누가 봐도 중국과의 교류를 막은 것에 대한 보복 차원임이 분명했다.
독일에 하나라도 더 배워야 할 처지였던 소련은 기술자 파견 안건에 대해서 입도 뻥긋하지 않았지만, 독일의 조치가 불편한 것은 사실이었다.
히틀러의 독일이 불안했던 스탈린은 매일같이 측근들과 장군들을 갈궈댔다.
하루빨리 오합지졸이나 다름없는 붉은 군대를, 독일군에 맞설 수 있는 강군으로 만들어라. 그것이 스탈린의 요구였다.
군대를 강군으로 만들려면 병사들과 장교들의 자질을 올리는 것과 고품질, 고성능의 무기를 최대한 많이 찍어내 군대에 보급하는 게 중요했다.
두 달에 한 번 있었던 사단훈련은 3주에 한 번으로 변경되었고, 사격은 일주일에 두 번씩 진행되었다.
“뛰어, 뛰어 이 개새끼들아!”
“낙오하는 놈은 내 손에 죽는다!”
장교들과 하사관들의 협박 섞인 독려에 병사들은 숨이 차오르는 것을 느끼며 사력을 다해 뛰었다.
정신없이 뛰다 보니 군화는 어느새 돌덩이처럼 무거워졌고 군복은 흙먼지로 더러워졌으며 심장은 풍선처럼 부풀어 올랐다.
강도 높은 훈련에 구토하거나 기절하는 병사들이 속출했지만, 그렇다고 훈련이 중단되거나 강도나 낮아지는 일은 없었다.
-빡!
“크윽!”
“성적이 이게 뭐야? 군대가 장난이야?”
“아, 아닙니다....”
“정신 똑바로 차려. 연대장 동지께서 말씀하셨네. 다음 훈련에서도 우리 대대가 꼴찌를 하게 되면 그땐 각오하라고. 시베리아에서 평생 눈과 얼음을 보면서 살고 싶은 사람이 있나?”
“.....”
“알면 빨리 움직여!”
훈련성적이 좋은 부대는 표창과 칭찬을 받고 진급에도 유리해지지만 그렇지 못한 부대는 혹독한 질책과 처벌이 기다렸다.
계속해서 개선의 기미가 보이지 않는 부대의 장교들은 좌천되거나 강등당했고, 최악의 경우 업무 태만으로 기소되어 굴라그로 보내졌다.
장교들은 출세뿐만 아니라 자신들의 수명연장을 위해 전력으로 훈련에 임했다. 그것이 바로 스탈린이 원한 결과였다.
공포는 사람을 겸손하게 만들고, 나태함을 몰아낸다. 나태함은 사회의 악이자 저주이며, 늘 발전을 지향하는 자만이 진정한 인민이다.
스탈린의 지론은 늘 간결했고, 늘 한결같았다.
***
1941년 8월 3일
소련 모스크바 크렘린 궁전
“쿠즈네초프 동무, 소비에츠키 소유즈급 전함의 건조는 현재 어디까지 진행되었소?”
“1번함 소비에츠키 소유즈는 공정이 21.9% 가량 진행되었고, 2번함 소비에츠카야 우크라이나는 18%, 3번함 소비에츠카야 러시아는 0.96%, 4번함 소비에츠카야 그루지야는 0.16%의 공정이 진행되었습니다.
독일에서 파견한 기술자들이 건조에 협력하고 있지만, 모든 전함이 취역하려면 빨리 잡아도 4, 5년은 더 소요될 것입니다.”
해군장관 니콜라이 쿠즈네초프의 보고에 스탈린은 저도 모르게 혀를 찼다. 4, 5년씩이나. 그사이 전쟁이 터질지 누가 알고!
영국과 미국, 일본 등 해양강국들은 물론이고 그 후발주자인 독일 해군에게도 밀리는 소련 해군의 전력 강화를 위해 쿠즈네초프가 건의한 대양함대 육성 계획을 추진하던 스탈린은 조바심이 일었다.
상대는 세계 최강의 해군으로 알려진 영국 해군을 상대로 승리를 거둔 독일 해군이다.
전쟁이 터지면 독일 해군과 싸워 소련의 바다를 지켜야 할 해군의 상태가 이래서야 원.
하지만 소련 해군이 세계 열강국 중에 약세인 것은 쿠즈네초프의 잘못이 아니었다.
육군과 공군에도 돈과 인력, 시간이 많이 들어가지만, 전통적으로 해군은 그 몇 배에 달하는 비용이 든다는 것을 스탈린도 모르지 않았다.
전차 한 대와 전투기 한 대를 뽑아내는 것보다, 배 한 척을 건조하는 게 시간이 더 오래 걸리고 비용도 더 든다는 것은 초등학생도 아는 당연한 상식이니까.
그러나 머리로는 이해해도 가슴으론 이해할 수 없는 게 사람의 본심.
“동무가 매사에 최선을 다하는 것은 나도 알고 있소.”
“감사합니다, 서기장 동지.”
“그래도, 그래도 조금 더 분발해주길 바라오. 나는 우리 해군이 이제는 열강이라 할 수도 없는 프랑스, 이탈리아 해군보다 뒤떨어진다는 소리를 더 이상 듣고 싶지 않으니 말이오. 최대한 이른 시일 안에 독일 해군을 뛰어넘지는 못하더라도 그에 견줄만한 수준으로 만드시오. 아시겠소?”
“....명심하겠습니다.”
스탈린도 쿠즈네초프의 사람 됨됨이를 알기에 '가벼운 격려'로 마무리를 지었다.
쿠즈네초프의 귀에는 격려가 아니라 경고로 들렸지만.
공군 사령관 파벨 지가레프의 보고서에는 IL-2 슈투르모빅의 설계진이 IL-2에 다시 후방사수를 태워야 한다고 주장했다고 적혀 있었다.
설계진은 기체 후방사수를 없애고 그 자리에 연료를 채워 넣은 것은 끔찍하기 짝이 없는 멍청한 실수라며, 후방좌석을 없앨 것을 지시한 공군 수뇌부가 무능하다고 비난했다고 한다.
이외에도 일선의 몇몇 부대들이 허가 없이 기체에 후방좌석을 설치하는 개조를 했다며, 군내 기강을 바로잡기 위해서 합당한 처벌이 필요하다고 지가레프는 보고서에 적었다.
기강 확립. 스탈린이 가장 좋아하는 말 중 하나였고, 이보다 더 좋은 명분은 없었다.
스탈린은 지가레프의 보고서에 승인 도장을 소리 나게 내리찍었다.
군인이건 기술자건 사회의 질서와 기강을 어지럽히는 자들은 아무리 능력이 뛰어나도 소비에트 연방에는 필요 없다.
새로운 사회는 사회와 질서에 순응하고 충성하는 인간을 필요로 하지, 제 잘난 맛에 사는 반동분자들을 원하지 않는다.
“베리야 동무, 반동분자들의 처분은 자네에게 맡기도록 하지.”
“빈틈없이 처리하겠습니다."
스탈린이 내미는 서류를 베리야는 기쁜 마음으로 받았다.
천부적인 사디스트인 베리야는 반동분자들을 이번에는 어떻게 자백을 받아낼지 고민했다.
평소처럼 이빨과 손톱을 뽑고 발과 손을 망치로 때리는 것은 훌륭한 자백수단이지만 슬슬 질리고 있었다. 이번에는 뜨거운 물을 부어볼까?
“서기장 동지, 쿨리크 원수가 도착했습니다.”
“안으로 들여보내게.”
쿨리크가 집무실 안으로 들어서자 스탈린은 파이프에 담배를 넣고 불을 붙였다. 해포석이나 옥 등 값비싼 재료로 만든 고급 파이프도 많았지만 스탈린은 주로 체리나무 뿌리로 만든 파이프를 애용했다.
“어서 오시오, 쿨리크 동무. 이틀 전 동무가 올린 보고서는 잘 읽어봤소.”
“감사합니다, 서기장 동지.”
하르코프 공장 설계국에서 만든 T-34에 대항하여 키로프 공장 설계국에서 설계한 A-43은 닷새 전 모든 테스트를 마치고 최종승인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애당초 예상보다 훨씬 빠른 개발속도는 스탈린의 마음을 사로잡았고, 쿨리크가 올린 보고서는 더더욱 그의 흥미와 관심을 유발했다.
A-43은 얼핏 봐선 T-34의 변종이 아닌가 싶을 정도로 외형적인 면에서 닮은 부분이 많았다.
본래 A-43은 차체 전면부의 기관총좌와 조종수용 해치가 T-34와 정반대였지만, A-43의 설계도를 본 스탈린이 무심코 내뱉은 ‘T-34를 의식해서 기관총좌와 해치 위치를 다르게 한 것이냐’는 한마디에 해치와 기관총좌의 위치가 변경되었고 이로 인해 T-34와 비슷한 외형을 가지게 되었다.
그러나 비슷한 것은 외형뿐, 실상은 전혀 다른 물건이었다.
전차장이 포수를 겸하는, 전형적인 소련제 전차의 특징인 2인승 포탑을 채용한 T-34와 다르게 A-43은 3인승 포탑에 T-34에는 없는 큐폴라를 장착해 전투효율이 T-34보다 나았고, 차체 전면부 장갑은 두께가 60mm로 이론상 120mm의 방어력을 가져 T-34의 45mm 전면장갑보다 방어력 면에서 우수했다.
장갑이 두꺼운 만큼 중량도 늘어 T-34보다 2톤 더 무거운 30톤의 중량을 가지게 되었지만, T-34의 V-2 엔진보다 강한 신형 V-5 엔진을 탑재해 속력도 T-34에 전혀 밀리지 않았다.
항속거리는 450km로 오히려 T-34(340km)보다 좋았다.
아무리 봐도 T-34보다 A-43이 훨씬 우수한 전차였다.
그러나 공짜 점심은 없다는 말이 있듯이, 장점만 있는 물건은 존재하지 않는 법.
A-43은 우수한 기동성과 항속거리, 방어력을 얻은 대가로 전차의 성능 못지않게 중요한 생산성 부분에서는 T-34를 따라갈 수 없었다.
신형 V-5 엔진은 T-34에 사용되는 V-2 엔진보다 훨씬 복잡하고 제작에 상당한 시간이 소요되는 물건이었다.
당연히 전차 한 대를 찍어내는데 필요한 시간은 길어질 수밖에 없고, 가격 역시 올라가기 마련. 설상가상으로 정비도 어려운 데다 두꺼운 전면장갑 탓에 전차의 중심이 앞으로 쏠려 구동계통에 가해지는 부담이 상당했다.
T-34도 아직 고장이 잦아 신뢰성이 좋다고 할 수 없는 판국에 A-43은 훨씬 낮은 신뢰성을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쿨리크는 스탈린에게 올린 보고서에 A-43의 단점에 대해서는 세세하게 적지 않았다.
오직 T-34보다 생산에 정밀한 노력이 필요하다고만 적었다. 눈치 빠른 스탈린은 그 말을 그냥 넘기지 않았지만.
“A-43의 성능은 전반적으로 T-34보다 우수하지만, 생산성 부분이 마음에 걸리는군.”
“하지만 그 대가로 붉은 군대는 T-34보다 우수한 전차를 손에 넣을 수 있습니다.”
스탈린이 고민의 기로에 서 있다는 것을 파악한 쿨리크는 재빨리 머리를 굴려 스탈린의 마음을 현혹할 말들을 끄집어냈다.
“무기의 생산성도 중요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전장에서 생환할 확률입니다.”
“생환할 확률?”
“예. 생산성이 좋아도, 적에게 격파당할 확률이 더 높은 전차는 전장에서 유의미한 전과를 발휘하기 힘듭니다. 반면 생산성이 조금 부족해도 방어력이 높은 전차는 방어력이 낮은 전차보다 전장에서 더 오래 살아남을 수 있고, 자연스레 높은 전과를 올릴 수 있습니다. A-43은 T-34보다 방어력이 우수해서 적의 공격으로부터 승무원들을 안전하게 보호할 수 있으며, 항속거리도 110km 더 길어서 기동전에도 유리합니다.”
더 이상의 설명은 필요 없었다. 스탈린은 자신 앞에서 당당하게 주장을 펼치는 쿨리크가 마음에 들었고, 그의 말에 현혹되었다. 쿨리크가 A-43의 단점들을 쏙 빼놓고 장점만 집중적으로 강조한 것도 큰 효과를 발휘했다.
A-43은 양산이 결정되었다. 스탈린이 쿨리크에게 물었다.
“전차의 제식명은 무엇으로 할지 생각한 게 있소?”
A-43에는 T-34M이라는 미리 정해둔 이름이 있긴 했지만, 쿨리크는 이 이름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T-34M이라니. T-34의 짝퉁처럼 들리는 이름이 아닌가.
“T-43이 적당하리라고 생각됩니다.”
“T-43이라, 나쁘지 않군. 좋소, 그걸로 갑시다.”
A-43, 이제 T-43의 양산이 결정되면서 T-34는 생산 중단이 결정되었다. 하지만 스탈린이 T-34를 완전히 포기한 것은 아니었다. 이대로 생산을 중단하기에는 T-34의 사기적인 생산성이 아까웠다.
스탈린은 전에 자신이 명령한 T-34-57의 양산 가능성에 대해 떠올렸다.
57mm 전차포의 위력은 확실히 뛰어나지만, 제작난이도가 너무 높고 유탄의 위력이 수류탄 수준에 불과하며 거리가 멀어질수록 관통력이 급격히 떨어졌다.
과학자들이 57mm 포의 문제점을 해결하기 위해 머리를 맞대고 고민했지만, 결국 나온 결론은 문제 해결에 시간과 비용이 오래 걸릴 것 같다는 암울한 전망뿐이었다.
관통력도 중요하지만 보병전을 위한 유탄의 위력도 중요했기에, 스탈린은 계륵이나 다름없는 T-34-57을 포기하라고 결정했다.
일단 기존에 만들어둔 분량은 그대로 놔두되, 추가 생산은 앞으로 없을 예정이었다.
T-34-57을 포기한 스탈린은 새로운 발상을 떠올렸다. 76mm 포는 유탄 화력이 좋지만, 관통력은 뒤떨어지고, 57mm 포는 관통력은 좋지만, 유탄 위력이 떨어지며 생산성도 최악이다.
그렇다면 아예 새로운 주포를 장착하는 게 어떨까?
조만간 코시킨을 불러 지시를 내려야겠군.
쿨리크와의 대화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
“45mm 포와 76mm 포의 생산을 재개해야 한다는 의견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오?”
쿨리크는 화력 부족을 이유로 들면서 45mm 경대전차포(53-K)와 76mm 경야포(ZiS-3)의 생산을 모조리 취소했다. 그는 표정 한 번 바꾸지 않고 얘기했다.
“붉은 군대가 독일군의 전차에 대항하려면 전차포와 대전차포의 대구경화를 지향해야 합니다. 구경이 작은 화포는 무게가 가벼워 이동이 편하다는 장점이 있지만, 실전에서 쓸모가 없는데 이동에 편하기만 하면 뭐하겠습니까. 45mm 포와 76mm 포를 생산할 인력과 비용으로 신형 화포 개발에 보태는 편이 훨씬 바람직합니다.”
쿨리크의 대답에 만족한 스탈린은 고개를 끄덕였다. 쿨리크는 기관단총도 총알을 낭비하는 물건이라 주장해 양산을 방해했다.
붉은 군대에 암운이 드리고 있었다.
***
일본의 중국 침략은 당연하게도 미국과 영국 등 극동에 지대한 관심과 영향력을 행사하던 나라들의 반발과 견제를 불러왔다.
미국(American), 영국(British), 중국(Chinese), 네덜란드(Dutch) 4개국은 ABCD 포위망을 형성해 일본에 대한 압박을 시도했다.
하지만 이러한 압박이 무색하게 일본은 전쟁을 멈추거나 자중할 기미를 전혀 보이지 않았고 이제는 프랑스령 인도차이나까지 침공해 점령했다.
더 이상 참을 수 없었던 미국이 석유 금수 조치를 시행하게 되자 일본 전역은 비상이 걸렸다.
일본은 우선 협상을 통해 석유 금수 조치를 풀어보고자 했다.
1941년 8월 8일, 일본 외무대신 도요다 데이지로는 미국 외무성과 접촉하여 일본의 요청사항들을 알렸다.
1. 미국의 대일 금수 조치 해제 및 교역 재개
2. 필리핀 군사화 중단
3. 중국, 영국, 네덜란드령 동인도에 대한 무기 수출 및 지원 금지
4. 일본의 인도차이나 점령 인정
도요다는 미국이 위 4개 조건을 인정한다면 중국과의 전쟁을 조기에 끝내기 위해 노력할 것이며 전쟁이 끝나는 즉시 인도차이나에서 단계적으로 철수하고, 필리핀의 안전을 보장하겠다고 통보했다.
“이놈들이 지금 장난하나?”
“미합중국을 호구로 여기고 있군! 노란 원숭이들 주제에!”
“더 이상 우리도 물러서선 안 되오!”
당연히 미국은 일본의 어처구니없는 요구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미국은 일본이 영국령 말레이와 버마, 네덜란드령 동인도에 진출할 경우, 군사력을 동원해 강력한 제재를 가하겠다고 압박했다.
도요다의 협상 시도가 실패로 돌아가자 일본 군부, 특히 중국과 인도차이나에서의 전투를 거의 담당했던 육군은 들끓었다.
육군 강경파들은 지금 당장 미국을 공격해야 한다고 주장했고, 해군 일부 장성들도 이에 동의했다.
이미 군부에 대한 통제권을 잃은 총리대신 고노에 후미마로는 군부의 요구에 질질 끌려다니기만 했다.
그러나 그도 말로만 대미개전을 반대한다고 할 뿐, 전쟁을 막으려는 어떤 노력도 하지 않았다. 애초에 고노에는 조기에 협상으로 끝날 수 있었던 중일전쟁을 확전시킨 전과가 있었다.
군부의 압박이 지속되자 고노에는 총리직에서 사퇴했고, 공석이 되어버린 총리직을 맡을 누군가가 필요했다.
“다음 총리로는 누구를 임명하면 좋겠소?”
히로히토의 물음에 최측근으로 오랫동안 히로히토를 보좌해온 기도 고이치는 결심에 찬 목소리로 말했다.
“폐하, 지금 육군은 황실의 큰 어른이든 뭐든 간에 자신들의 뜻에 따라주지 않으면 무시해버리고도 남을 놈들이옵니다. 지금 당장 육군을 통제하고 대미 개전을 막을 수 있는 인물은 군부의 수장인 도조 히데키밖에 없습니다.”
“즉.... 호랑이 굴에 들어가지 않으면 호랑이를 잡을 수 없다는 말이로군.”
“그러하옵니다, 폐하.”
“경의 뜻대로 하겠소.”
일본의 총리대신으로는 도조 히데키가 임명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