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타오르는 불꽃 (4) >
1941년 7월 11일
소련 모스크바 크렘린 궁전
“어서 오십시오, 도고 대사.”
“환대에 감사드립니다.”
도고는 모자를 벗어 몰로토프에게 인사를 건넸다.
한 달 전까지 그는 주독대사의 신분으로 베를린에 있었지만, 일본과 독일의 관계가 악화됨에 따라 본토로 소환되었다.
일본과 달리 독일은 주독대사인 도고를 추방하지 않았고, 오히려 대사관 일대에 무장친위대를 배치해 혹시 모를 테러나 난동으로부터 대사관을 보호했다.
독일의 신사적인 대응으로 일본의 이미지만 실추되는 꼴이 되자 일본 정부는 도고에게 소환 명령을 내렸다.
그렇게 일본으로 돌아간 도고는 곧바로 정부의 특명을 받아 소련으로 보내졌다.
그의 임무는 소련을 설득해 중국과 독일의 교류를 가로막는 것이었다.
몰로토프는 겉으론 웃으며 주소 일본대사로 부임한 도고 시게노리를 맞이했지만, 속으로는 그를 귀찮게 여기고 있었다.
보나 마나 이번에도 중국 국경을 봉쇄해달라는 말을 하기 위해서일 테지.
일본과 불가침조약을 맺은 것은 잘한 일이었지만, 이로 인해 일본의 징징거림을 듣게 될 줄은 몰랐던 몰로토프는 이번에는 무슨 말로 귀찮기만 한 불청객을 돌려보낼지 고민했다.
그러나 회담이 시작되자 몰로토프의 생각은 달라졌다.
“지금 뭐라고 하셨습니까?”
몰로토프는 흘러내린 안경을 손등으로 들어 올리며 물었다. 조금 전 내가 뭘 들은 거지?
“소련 정부가 중국 국경을 봉쇄하고 중국과의 모든 교류를 중단한다면 일본은 남사할린을 소련에 반환할 의향이 있습니다.”
“....진심이십니까?”
“단순한 농으로 국가 영토의 반환을 입에 담겠습니까?”
몰로토프는 도고의 눈을 쳐다봤다. 도고의 눈빛에는 한 치의 거짓도 섞여 있지 않았다.
소련-중국 국경을 봉쇄하여 일본의 중국 침략을 돕는 대가로 남사할린을 얻는다.
사할린은 본래 러시아 본연의 영토였지만, 러일전쟁에서의 패배로 사할린 남부는 일본의 영토가 되었다.
러시아의 트라우마가 된 남사할린을 피 한 방울 흘리지 않고 찾아올 기회가 생긴 것이다.
“알겠습니다. 하지만 이 안건은 제가 결정하기에 너무 막중한 사안 같군요. 우선 서기장 동지께 말씀드려서 그분의 뜻을 확인해야 할 것 같습니다.”
“알겠습니다, 몰로토프 외상.”
***
“일본이 남사할린을?”
“예, 서기장 동지.”
집무실 의자에 앉아 업무를 보던 스탈린은 몰로토프의 보고에 고민에 빠졌다.
그는 베리야가 그에게 올린 숙청 대상자들의 명단에 사인하는 것도 잊은 채 생각에 잠겼다.
몰로토프의 말마따나 일본과 전쟁을 치르지 않고 남사할린을 되찾을 기회는 지금이 처음이자 마지막일지도 모른다.
드넓은 소련의 영토를 생각하면 남사할린은 새 발의 피 수준에 불과했지만, 남사할린이 가지는 상징성을 생각하면 그냥 포기하기엔 너무나 아까웠다.
그렇다고 일본의 제안을 덥석 무는 것도 꺼려지는 게, 바로 독일 때문이었다.
독일과 중국의 교류를 소련이 도중에 막아버린다면 필연적으로 독일의 반발을 부를 게 뻔했다.
독일의 심기를 최대한 건드리지 않으려고 각고의 노력을 기울이던 스탈린에게 이는 위험부담이 큰 거래였다.
일본의 요청을 들어주고 남사할린을 먹기에는 독일의 반발이 두려웠고, 그렇다고 그냥 넘기기에는 언제 이런 기회가 찾아오겠나 싶었다.
‘계륵이 따로 없군.’
언제 터질지 모를 독일과의 전쟁에 대비하여 군의 체계를 정비하고-그러는 중에도 숙청은 멈추지 않았지만-무기 연구에 매진하며 독일과의 국경선에 ‘몰로토프선’이라는 새로운 방어선을 축조하고 있지만, 아직은 절대적으로 무리였다.
스탈린은 1943년이 되면 소련도 독일에 꿀리지 않을 군사력을 갖출 수 있다고 봤다. 하지만 1941년인 지금은 아니었다.
“몰로토프 동무, 동무의 생각은 어떻지?”
확신이 서질 않았던 스탈린은 평정심을 유지하는 척하며 몰로토프에게 질문했다.
“저는 일본의 제안을 받아들이는 게 맞다고 봅니다.”
“이유는?”
“우선 총 한 발 쏘지 않고 일본으로부터 남사할린을 되찾을 수 있는 기회-”
“그건 나도 알아. 내가 듣고 싶어하는 것은 다른 의견일세, 다른 의견. 일본으로부터 남사할린을 되찾아올 절호의 기회라는 것쯤은 누구나 다 아는 사실이란 말이야.”
“흠, 흠. 실례했습니다. 이, 일단 독일이 중국 문제로 소련을 공격하지 않을 것이라는 판단 때문입니다.”
겨우 답변다운 답변이 나왔군.
“계속 말하게.”
“소련에 가장 큰 위협이 바로 독일이라는 것은 누구나 다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독일에도 가장 큰 위협은 바로 소련입니다. 대서양 건너편에 있는 미국과, 인도, 동남아, 아프리카 각지에 있는 식민지 보호를 위해 군사력이 분산된 영국과 달리 우리는 독일과 국경을 맞대고 있습니다. 그리고 독일의 몇십 배에 달하는 광활한 영토와 막대한 자원, 인력, 군대를 보유하고 있습니다.
아무리 유럽을 제패한 독일이라지만, 이 정도로 거대한 나라와 전쟁을 한다는 것에 상당한 부담을 느낄 것입니다. 그래서 지난번 베를린에서 히틀러 총통과 만났을 때, 저는 그에게서 우리와의 충돌을 피하고 싶어 하는 느낌을 강하게 받았습니다. 물론 이것은 어디까지나 제 개인적인 추측에 불과합니다만, 히틀러 총통이 소련의 중동 진출을 반대하지 않은 것으로 볼 때 그가 우리를 두려워하지는 않더라도 결코 만만한 대상으로 여기고 있지는 않다고 확신합니다.”
“호오?”
“그리고 독일이 중국과의 무역으로 벌어들이는 이익보다 우리와의 교류로 얻는 이익이 더 많은 관계로, 우리가 중국과의 통행을 막더라도 독일은 항의 이상의 행동은 취하기 어려울 것입니다. 중국과의 교류 차단으로 수입할 수 없게 된 광물은 우리가 대신 수출하겠다고 하면 독일도 잠잠해질 겁니다.”
“그럴듯하군.”
몰로토프의 설명에 만족한 스탈린은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독일은 소련에 가장 큰 위협이지만, 동시에 독일에도 소련은 가장 큰 적수.
히틀러가 어떤 생각을 하고 있을지 몰라도 당장 전쟁을 일으키지는 못할 것이다. 적어도 올해 안에는.
몰로토프의 말에 자신감을 얻은 스탈린은 결심했다.
“그대로 진행하게.”
“알겠습니다, 서기장 동지.”
“참.”
“?”
“그래도 상대는 독일이야. 결코 방심할 수 없단 말이지. 그러니 사단 몇 개를 더 박아두는 게 나을 것 같네. 독일이 이번 일을 빌미로 무력시위를 벌일 수 있으니.”
“규모는 어느 정도로 하실 겁니까?”
“7, 8개 정도면 적당할 것 같네.”
***
1941년 7월 16일
독일 베를린 신 총통관저
“대체 무슨 속셈이냐, 스탈린....”
중국에서 주중 군사고문단이 훈련한 독일식 정예사단들의 전승 보고가 들려온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예기치 못한 사태가 발생했다.
소련이 돌연 중국과의 국경을 봉쇄하고 모든 인력과 물자의 통행을 금지한 것이다.
표면적인 이유는 소련-카자흐 소비에트 사회주의 공화국-과 중국 국경 사이에서 일어난 분쟁이 원인이었다.
소련 측의 주장에 따르면, 국민혁명군 부대가 국경을 순찰하던 소련군을 향해 총격을 가했고 이로 인해 병사 2명이 사망하고 장교 한 명이 중상을 입었다.
소련은 중국이 소련에 사과하고 사건에 관련된 관계자들의 처벌 및 제발 방지를 약속하기 전까지 국경 봉쇄를 풀지 않겠노라고 선언했고, 중국은 금시초문이라며 격하게 반발했다.
“소련의 주장이 사실을 가능성은?”
하이드리히는 고개를 저었다.
“일말의 가능성이 없는 것은 아닙니다만 제가 보기에는 매우 낮습니다.”
“그래, 그렇겠지....”
SD와 그 휘하에 있는 아프베어 둘 다 이번 일이 소련의 자작극이라는 결론을 내렸다. 내 생각도 그랬고.
상식적으로, 당장 일본과 전쟁하기 바쁜 중국이 미쳤다고 소련에 도발할까? 게다가 중국은 소련을 사이에 끼고 독일과 교류를 이어가고 있으니 소련에 시비를 걸기보다는 되려 소련에 바짝 엎드려 지내왔다.
그런 중국이 하루아침에 소련에 국경 문제를 가지고 도발을 감행했다? 앞뒤가 맞는 게 하나도 없다.
소련이 국경 봉쇄를 선언하면서, 중국의 광물을 실은 독일행 열차와 독일제 장비와 예비 부품, 기술자 등 인력들을 태운 중국행 열차 모두 소련군에 의해 강제로 정차되었다.
우리가 소련에 항의하자 소련은 중국행 열차와 독일행 열차 모두 독일로 돌려 보내주겠다고 통보해왔다.
이걸 보면 이번 일은 우리 독일을 겨냥한 게 아니라, 중국을 겨냥한 게 틀림없었다. 갑자기 왜?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아무래도 가장 큰 가능성은 역시 일본의 요청 때문이 아닐까 싶습니다.”
“그렇군. 그래, 일본이 있었지.”
중소 국경 봉쇄로 가장 큰 수혜를 보는 나라는 단연코 일본이었다.
국경 봉쇄가 해제되기 전까지 중국은 독일로부터 장비와 인력을 수급받을 수 없으니까.
여태껏 무기와 탄약을 거의 독일로부터 얻고 있던 중국 입장엔 마른하늘에 날벼락이나 따로 없었다.
“그런데 일본은 소련과 불가침조약을 체결한 뒤부터 줄곧 소련에 중국 국경 봉쇄를 요청해오지 않았나. 지금까지 일본의 요청을 잘 회피해왔으면서 이제 와서 왜 국경을 봉쇄한 거지? 당최 이해가 가지 않는군.”
“최대한 빨리 알아내겠습니다.”
***
소련의 돌발행동에 대한 이유는 얼마 못 가 밝혀졌다.
일본이 소련에 남사할린을 반환하겠다고 발표한 것이다.
“결국 이것 때문이었군.”
이제야 모든 퍼즐이 맞춰졌다. 이제껏 일본의 지속적인 요청에 요지부동이었던 소련은 일본으로부터 남사할린을 되돌려받는 조건으로 자작극을 일으켜 중국 국경을 봉쇄했다.
소련 루트가 끊겼으니 이제 중국이 독일로부터 물자를 수입할 수 있는 루트는 배로 지중해와 홍해, 인도양을 거쳐 버마에 하역한 뒤 철로로 나르는 방법밖에 없었다.
당연하지만 소련 루트보다 훨씬 더 많은 시간과 비용이 소모되는 데다, 프랑스령 인도차이나가 일본군의 수중에 떨어진 이상 버마 루트도 결코 안전하지 못했다.
이미 일본군의 폭격기들이 매일같이 출격해 버마와 가까운 중국 국경들과 도로, 다리를 무차별적으로 폭격하고 있었다.
하지만 일본의 웃음도 오래가지 못했다.
일본의 중국 침략을 불편한 시선으로 바라보던 미국이 7월 26일을 기해 철강과 석유 수출을 금지하고, 미국 내에 있는 모든 일본 자산을 동결시키는 초강력 경제제재를 가하기 시작했으니까.
석유는 전쟁은 물론이고 현대 사회 유지에 매우 필수적인 자원이다.
석유가 부족했던 일본은 자국에 필요한 석유를 대부분 외국에서 수입하는 처지였는데, 전체 석유 수입의 80% 이상을 미국에서 수입하고 있었다.
미국의 대일 석유 금수 조치는 일본을 발칵 뒤집어놓았다.
석유가 없으면 전쟁을 할 수 없고, 지난 4년 동안 온갖 고생을 하며 겨우 획득한 알토란 같은 중국 점령지들을 모조리 토해내야 한다.
당연히 그럴 생각이 1g도 없던 일본은 황급히 미국과 협상을 시작했다.
그러나 미국은 일본과 손잡고 중국의 통수를 친 소련에 대해서는 아무런 조치를 하지 않았다.
친소성향이었던 루스벨트의 결정 때문인지, 일본과 달리 소련과 척을 질 필요가 없어서인지는 알 수 없었다. 어쩌면 둘 다일 수도 있고.
결론적으로 피 한 방울 흘리지 않고 남사할린을 챙긴 소련만 이득을 본 상황.
그러나 소련의 이상행동은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극동에 주둔하고 있던 사단들이 시베리아 횡단철도를 통해 독일-소련 국경일대로 배치된 것이다.
소련의 수상한 병력 이동은 즉시 SD에 포착되어 내게 보고되었다.
극동에서 유럽으로 재배치된 소련군의 규모는 3개 군단, 총 8개 사단이었다.
160개 사단-동원령이 떨어지면 몇 배로 불어나는-을 보유한 소련군의 규모를 생각하면 사단 8개쯤이야 별거 아닌 수준에 불과할 수 있지만, 그렇다고 가볍게 여기기에는 나름 중대한 사안이었다.
특히 8개 사단 중 나름 강력한 전투력을 보유한 전차사단이 3개나 포함된 것은 더더욱.
유럽으로 재배치된 소련군 사단들의 개별 전투력은 어느 정도 수준이며 어느 곳에 배치되었는지에 대한 하이드리히의 설명이 끝나자 나는 장군들에게 솔직한 의견을 물었다.
“누구도 뭐라 할 사람이 없으니, 모두 각자의 의견을 허심탄회하게 털어놓으시오.”
명목상 독일군 서열 1위라 할 수 있는 국방장관 카이텔이 먼저 발언했다.
“소련군은 극동에서 끌고 온 사단들을 우리가 보란 듯이 독일 국경에 배치했습니다. 다만, 우리를 겁주기에는 사단 숫자가 애매합니다. 정말로 독일을 위협하려는 의도였다면, 최소 두 자릿수의 사단을 배치했을 겁니다. 따라서 우리를 직접 위협하려는 의도보다는 자신들을 지키기 위한 보호 차원에서의 무력시위가 아닐까 싶습니다.”
“보호 차원에서의 무력시위라. 설득력 있군. 다른 사람들의 의견은?”
“제 생각도 그렇습니다.”
브라우히치는 카이텔의 의견에 동조했다.
“항공전력의 증강이 없는 것으로 봐선 카이텔 원수의 추측이 맞는 것 같습니다.”
괴링도 동의. 레더도 소련 해군의 움직임에는 아무 이상이 없다며 동의를 표했다.
그러나 육군 참모총장 라이헤나우의 생각은 조금 달랐다.
“저도 카이텔 원수의 의견에 동의합니다만, 그래도 다른 가능성에 대해서도 한 번쯤은 고민해봐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라이헤나우는 이것이 독일을 겨냥한 대규모 군사훈련의 일환일지도 모른다고 추측했다.
방어를 목적으로 한 훈련일지, 공격을 목적으로 한 훈련일지는 그도 갈피를 잡지 못했지만, 대규모 훈련 계획이라는 그의 추측은 상당히 설득력이 있었다.
라이헤나우의 참모 프리드리히 파울루스 대장과 국방부 작전부장 요들도 라이헤나우의 의견에 동조했다.
이외에도 구데리안과 만슈타인, 클루게도 소련군의 병력 재배치가 군사훈련 외에 다른 목적이 있을 줄 모른다고 추측했다.
언젠가 있을지도 모르는 전쟁에 대한 대비. 그것이 만슈타인의 추측이었다.
“소련이 올해 전쟁을 일으킬 것 같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내년이나 내후년은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잠깐, 잠깐.”
만슈타인의 입에서 뜻밖의 추측이 나오자 나는 말을 더듬었다.
“원수는 스탈린이 전쟁 준비 차원에서 병력을 이동시켰다고 생각하는 거요?”
“물론 저도 가능성은 작다고 생각합니다만, 그래도 모든 가능성은 한 번씩 고려해야 한다고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소련의 독일 침공이라.
역사에서 스탈린을 독일 항공기가 수백 차례나 소련 영공을 침범하고 독일군 병력이 소련 국경일대로 속속 배치되는 와중에도 전쟁의 빌미가 될 수 있다며 어떠한 대응도 하지 말라고 군에 명령했다.
그 정도로 독일을 두려워한 스탈린이 독일을 침공한다고?
역사를 아는 나로서는 다소 터무니없는 추측이었지만, 모든 가능성에 대해서 한 번쯤은 고려해봐야 한다는 만슈타인의 추측은 합리적이었다.
“그럼 이렇게 합시다. 소련군이 움직인 숫자만큼 우리도 병력을 동쪽으로 배치하기로.”
고민 끝에 나는 ‘눈에는 눈’ 전략을 채택했다. 아직 소련에 당한 게 없으니 ‘눈에는 눈, 이에는 이’라는 말을 사용하기에는 조금 부족한 감이 없지 않았지만, 이보다 더 어울리는 속담이 생각나지 않는다.
지금까지 나는 소련을 자극할 것을 우려해 일부러 국경에 병력을 배치하는 것을 최대한 제한하고 있었다.
하지만 소련이 먼저 움직였으니, 나로서는 독일-소련 국경에 병력을 배치할 명분이 생긴 것이다.
“소련이 8개 사단을 배치했으니, 우리는 6개만 배치하도록 하지. 숫자를 딱 맞추거나 그보다 많게 하면, 역으로 소련이 더 많은 병력을 움직일 구실이 될지 모르니 말이오.”
“동의합니다.”
“총통 각하, 8월에 예정된 기술자 파견은 어떻게 하실 계획이십니까?”
소련의 요청에 따라 나는 소련에 그라프 체펠린의 설계도 복사본을 보내주었다.
그리고 항공모함 건조에 필요한 기술자들은 8월 달에 소련으로 보내주기로 합의했었다.
하지만 소련이 일방적으로 중국과의 교류를 막고, 도발로 의심되는 행동까지 했으니 레더는 우리도 소련과의 약속을 모두 지킬 필요가 없다고 주장했다.
“설계도까지 미리 보낸 마당에 기술자들을 보내지 않겠다고 할 수 없지 않소.”
“허나 우리만 약속을 칼같이 지키면 소련 놈들만 이득을 보지 않겠습니까?”
“그건 맞소. 그러니 기술자들은 9월에 보냅시다. 인원과 파견 기간도 예정보다 줄이고.”
“알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