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타오르는 불꽃 (3) >
독일이 장난감 장사로 쓸어 담은 돈을 재정에 보태는 동안,
자칭 무적의 황군은 인도차이나의 정글에서 고전을 면치 못했다.
“대위님, 쪽발이들이 옵니다!”
“좋아. 모두 전투 준비!”
침공 초반, 기세 좋게 하노이와 사이공을 잇달아 함락시키며 내륙으로 진격하던 일본군은 곧 그들과 비교가 되지 않는 프랑스 기갑부대와 맞닥뜨렸다.
비록 독일군에게 굴욕적인 패배를 당해 망신살을 뻗친 프랑스 기갑부대지만, 일본군을 상대로는 결코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끄아아아아!!!”
일본군이 보유한 ‘치로’와 ‘하고’, ‘치하’는 프랑스 전차의 상대가 되지 못했다.
하고가 발사한 37mm 포탄을 튕겨낸 호치키스 H35가 주포에 불을 당기자 하고는 간단하게 불길에 휩싸였다.
불길에 휩싸인 전차에서 전차장이 비명을 지르며 탈출하다 기관총을 맞고 벌집이 되었다.
전차들이 밥솥마냥 펑펑 터져나가자, 당황한 일본군은 비장의 무기 3식 전차를 투입했다. 그러나 믿었던 3식 전차조차도 프랑스 전차들의 상대가 되지 않았다.
-캉!
“튕겼습니다!”
“무슨 저런 놈이 다 있어?”
3식 전차에 탑재된 37mm 철갑탄의 위력은 하고의 그것과 동일하니 호치키스 H35의 장갑을 뚫지 못하는 것은 당연한 결과였다.
그나마 3식 전차는 전면장갑이 50mm나 되어 호치키스 H35가 발사한 포탄을 튕겨낼 수 있었다.
“저놈도 이 거리에선 우리를 어떻게 못 해! 가까이 다가가서 상대한다. 앞으로 전진!”
“알겠습니다!”
호치키스 H35에 근접전을 걸어오던 3식 전차의 앞에 소뮤아 S35가 나타났다.
호치키스 H35의 37mm 주포와 달리 소뮤아 S35의 47mm 주포는 3식 전차의 전면장갑을 종잇장 뚫듯이 관통했다.
전면장갑이 관통당한 3식 전차에서 불길이 치솟고, 피투성이가 된 전차병들이 해치 밖으로 기어 나왔다.
3식 전차 3대가 소뮤아 S35를 향해 동시에 발포했지만, 포탄은 모조리 도탄되었다. 일본군은 경악을 금치 못했다.
“조종수, 전진! 다 밟아버려!”
중대장 전차가 전진하자, 휘하 전차들도 잇달아 전진하며 주포를 발사하고 기관총을 난사했다.
호치키스 H35, 르노 R35 같은 경전차들조차 버거워하는 일본군에게 샤르 B1 bis 중전차는 그야말로 굴러다니는 재앙 덩어리였다.
“쏴, 쏘란 말이다!”
“계속 쏴도 포탄이 튕겨 나옵니다!”
“이 멍청한 놈아! 그럼 궤도라도 쏘란 말이야! 저놈이 움직일 수 없게끔-”
포탄이 연거푸 튕겨 나가자 패닉에 빠진 일본군 대전차포병들을 향해 샤르 B1 bis가 돌진하여 적들을 대전차포째로 깔아뭉갰다.
사용한 적도 없는 일본도를 허공에 대고 휘두르며 부하들에게 악바리를 쓰던 장교는 전진하는 전차의 궤도에 깔려 으스러졌다.
궤도에 깔리는 것을 간신히 피한 병사들도 충격에 얼어붙었다가 뒤따르는 AMR-33의 기관총 세례에 벌집으로 변했다.
신화 속에 나오는 골렘마냥 앞을 가로막으며 전진하는 중전차의 위력 앞에 일본군은 추풍낙엽처럼 쓰러졌다.
***
국민혁명군의 50식 전차는 오직 방어전에만 특화된 병기였지만, 긴 사거리와 상대적으로 강한 화력 덕분에 국민혁명군에겐 사랑을, 일본군에겐 증오와 공포의 대상이었다.
50식 전차를 상대로 고전하던 일본군에게, 프랑스 전차들은 50식 전차 이상의 충격이었다.
50식 전차는 방어력이 거의 없는 수준이라, 위치를 특정한다면 격파가 어렵지 않았지만, 프랑스 전차들은 그렇지 않았다.
중장갑의 프랑스 전차들은 모든 공격을 막아내며 공격해오는 일본군을 역으로 유린했고, 일본군은 자신들의 무기가 무용지물이라는 사실에 상당한 충격을 받았다.
“믿었던 3식 전차조차 상대가 되지 못하다니....”
“저런 괴물 같은 전차들을 가진 프랑스군을 4주 만에 무너뜨린 독일군은 대체....”
“지금 감탄만 하고 있을 때요? 우리 목이 날아가게 생겼는데.”
“그래도 다행인 건 제공권은 우리에게 있다는 거요. 항공전력을 동원해서-”
프랑스 전차들에 의한 피해는 예상치 못한 것이었지만, 그래도 전황은 일본군에게 유리했다.
육군과 달리 프랑스 공군은 일본 육·해군 항공대의 상대가 되지 못했다.
인도차이나 주둔 프랑스 공군의 주력은 철 지난 복엽기가 다수였고, 그나마 몇 대 없는 단엽기인 D.500조차 일본군의 96식과 97식, 1식 전투기와 비교하면 성능이 한참 뒤떨어졌다.
게다가 일본군 조종사들은 중국에서 4년 동안의 실전을 경험해온 베테랑들.
인도차이나 침공이 시작되고 일주일이 지났을 무렵 하늘에서 프랑스 전투기들은 자취를 감췄다.
제공권이 일본군에게 있었기에, 프랑스군의 분전은 곧 한계에 도달할 수밖에 없었다.
일본군은 우월한 항공전력을 이용해 프랑스군의 움직임을 봉쇄했고, 발목이 묶인 프랑스군은 여차하는 사이에 일본군에게 포위되었다.
“덴노 헤이카 반자이!”
“반자이!”
‘천황 폐하 만세’를 외치며 돌격하는 일본군에게 총탄과 포탄으로 응수하던 샤르 B1 bis가 별안간 폭발하며 오렌지색 화염을 내뿜었다.
일본군은 중장갑의 프랑스 전차들을 상대하기 위해 특공대를 조직해 투입했다.
특공대의 임무는 폭탄을 짊어지고 적 전차에 달려들어 전차를 파괴하는 것이었다.
병사 한 명의 희생으로 적 전차 한 대를 잡을 수 있다면 남는 장사다-라는 기막힌 발상에서 시작된 대전차자폭조는 전차 아래로 기어들어가 폭탄을 기폭시켰다.
폭탄을 짊어진 병사가 적 전차에 접근하기 위해선, 전차의 시선을 끌 수십 명의 병사가 필요했으므로 엄밀히 말하자면 전차 한 대를 잡기 위해 수십 명의 병사가 희생되어야 했지만, 일본군은 크게 상관하지 않았다.
몇 명이 죽든 간에 가장 큰 적수인 전차를 격파하기만 하면 되니까.
“전부 죽여! 한 놈도 살려두지 마라!”
불타는 전차에서 탈출하는 전차병들은 일본군의 총검에 무참히 찔려 죽었다.
항복해도 결과는 달라지지 않았다. 일본군에게 항복 따윈 없었다. 그들은 항복하는 병사들을 향해 방아쇠를 당기고 일본도를 휘둘러 목숨을 끊어냈다.
6월 말에 이르자 일본군은 인도차이나 일대를 거의 다 장악하는 데 성공했다.
프랑스군의 패전에는 여러 이유가 있었지만, 식민지 병사들의 배반도 큰 몫을 차지했다.
인도차이나 주둔 프랑스군 병력 다수는 베트남, 캄보디아인들이었고 이들은 자신들을 차별하는 프랑스인들 대신 같은 동양인인 일본군에게 투항하는 게 더 나은 선택이라고 여겼다.
일본군에게 투항한 식민지 병사들로부터 획득한 정보를 바탕으로 일본군은 프랑스군을 각개격파했다.
아무리 뛰어난 무기가 있어도, 약점을 파악하고 사방에서 몰려드는 적군을 당해내기란 불가능했다.
프랑스군 잔존병력은 후퇴에 방해되는 무거운 장비들을 유기한 채 중국과 태국, 버마로 도망쳤다.
일본군은 승리를 거뒀지만 피해는 결코 무시할 수 없었다. 특히 자국산 전차들이 프랑스 전차들과의 전차전에서 손도 못 쓰고 허무하게 격파당한 일은 굴욕을 넘어 엄청난 충격을 남겼다.
그러나, 진짜 충격은 이제 시작이라는 것을 일본군은 모르고 있었다.
***
1941년 7월 1일
중국 후난성
“전차, 전진!”
“앞으로!”
중국이 독일로부터 구입하고, 독일 군사고문단으로 훈련받은 전차병들이 탑승한 4호 전차들과 헷처들이 이날 처음으로 실전에 투입되었다.
다만 모든 전차를 국민혁명군 장병들이 모는 것은 아니었다.
이번이 첫 실전이니만큼, ‘독일에서 온 친절한 청년들’이 일부 전차에 탑승하여 국민혁명군 장병들에게 시범을 보였다.
국민혁명군의 전차들이 돌진하자, 일본군은 즉각 기관총으로 맞섰다.
지금까지 국민혁명군은 전차를 동원해 공세를 벌일 적이 손에 꼽을 정도로 드물었기에, 일본군은 방어선에 기관총 정도만 가져다 놓았다.
대전차포나 산포는 한 문도 없었다.
“방어선에는 기관총밖에 없는 모양이군.”
주중 군사고문단 소속 독일군 전차장은 기관총으로 응사하는 일본군은 보며 비웃었다. 고작 기관총 따위로 전차를 막으려 들다니. 원시인이 따로 없구만.
“날생선이나 먹는 원숭이들에게 유탄이나 먹여줘라. 유탄 장전!”
“유탄 장전!”
약실 안으로 75mm 유탄이 들어가고, 포수는 일본군의 기관총 진지를 향해 포탑을 돌렸다.
“장전 완료!”
“조준 완료!”
“발사!”
75mm 유탄 세례에 일본군의 기관총 진지는 흔적도 없이 날아갔다.
선두 전차가 발포하자 다른 전차들도 일제히 포문을 열었다. 유탄이 기관총 진지를 박살 내면, 차체 전면의 기관총이 회전하며 총알을 뿜어댔다.
“전진, 앞으로!”
독일 전차들을 앞세운 국민혁명군의 공세에 일본군의 방어선은 발로 걷어찬 모래성마냥 허물어졌다.
“급보입니다! 22연대 방어선이 지나군에 돌파당했습니다!”
“뭐라고???”
참모들과 술을 마시던 사단장은 부관의 보고에 어처구니없다는 듯이 되물었다.
지금까지 방어만 하기 바쁜 지나 놈들이 갑작스레 공세를 가했다는 소식도 믿기 힘든데, 하물며 전선이 돌파당했다니?
“겨우 지나군 따위에 방어선이 돌파당했다는 건가? 내가 알기로 22연대는 우리 사단에서 가장 많은 전공을 세운 연대인데?”
“지나군이 신형 전차를 앞세워 공격을 해왔다고 합니다.”
“신형 전차라면, 50식 전차를 말하는 건가?”
“50식 전차가 아닙니다. 황군의 3식 전차와 생김새는 비슷한데, 그보다 더 크고 강력해 보이는 대포를 탑재한 전차라고 합니다.”
일본군이 국민혁명군이 동원한 신형 전차의 정체가 독일제 4호 전차라는 사실을 깨닫는 데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한 자릿수에 불과한 4호 전차들만으로도 일본군의 방어선을 휘젓고 다니는 데 충분했으니까.
처음 일본군은 적군이 3식 전차를 노획해서 사용하는 것으로 생각했다.
하지만 가까이서 보니 그게 아니었다. 3식 전차보다 크고 긴 주포로 무장했으며, 포탑과 차체 양측에는 네모난 철판을 달고 있었다.
국민혁명군의 진격을 막기 위해 일본군은 하고와 치하를 투입했다.
당연히 두 전차는 4호 전차와 헷처의 상대가 되지 못했다.
독일 전차들과 포화를 주고받은 스무 대의 치하와 하고가 고철 더미가 되는 동안 국민혁명군은 단 한 대의 전차도 잃지 않았다.
“저건 괴물이다! 괴물이야!”
“도망쳐!”
“신이시여, 저게 대체....!”
전차들이 죄다 고철 더미로 변하자, 발등에 불이 떨어진 일본군은 41식 산포를 끌고 왔다. 하고에 탑재된 주포와 같은 94식 속사포로는 4호 전차를 막는 것이 불가능하다고 판단했기에 이는 적절한 선택이었다.
독일 제국이 1차대전에 사용한 크루프제 M08 산악포를 일본이 라이센스 생산한 것이 41식 산포였으므로, 독일제 무기에 독일이 원산지인 무기로 맞서는 상황이었다.
“전차가 옵니다!”
“명심해라. 단 일격에 적을 제압해야 한다. 못하면 우린 다 죽는다.”
4호 전차가 다가오자 포수는 41식 산포를 격발시켰다. 육중한 포성이 귀에 닿기 무섭게 착탄음이 잇달아 고막을 뒤흔들었다.
90식 유탄을 맞은 4호 전차의 우측 궤도가 끊어지면서 전차는 기동력을 잃고 정지했다.
충격으로 조종수가 부상을 입고, 차체 전면부의 관측창 방탄유리에 금이 갔지만 피해는 그것으로 끝이었다.
4호 전차의 포탑이 회전하는 모습을 본 일본군 포병들이 경악에 차 소리쳤다.
“저, 저놈 아직 살아있잖아!?”
“재장전!”
만약 유탄이 아닌 철갑유탄이었다면 결과가 달랐겠지만, 이제까지 대전차전을 치러본 적 없었기에 탄종은 유탄밖에 없었다.
75mm 유탄이 41식 산포에 착탄하자 강렬한 화염이 포병들의 몸을 갈기갈기 찢어버렸다.
***
독일 전차들의 첫 출전은 대대성공으로 끝났다.
전차들은 일본군의 방어선을 유린하고 무사히 본대로 복귀하는 데 성공했으며, 부상자는 있을지언정 전사자는 한 명도 없었다.
41식 산포의 기습에 궤도가 끊어진 전차를 견인하느라 조금 애를 먹긴 했지만 그래도 무사히 전차를 회수해서 돌아오는 데 성공했다.
독일 전차들의 첫 출전을 보고받은 장제스는 팔켄하우젠을 관저로 불러 축배를 들었다.
전황을 바꾸기에는 터무니없이 작은 승리였지만, 이토록 적은 피해로 일본군에게 상당한 피해를 안겨준 적은 국민혁명군에게 처음이었기에 장제스는 기쁨을 감추지 못했다.
“역시 독일 전차들의 성능은 굉장하구려. 어째서 독일이 1년 만에 유럽을 제패했는지 알 것 같소.”
장제스가 충칭에서 기쁨을 만끽하는 동안, 천 명이 넘는 보병들과 전차 20대, 3문의 산포를 단 한 번의 전투로 잃은 일본군은 발칵 뒤집혔다.
인도차이나에서 겪은, 프랑스 전차들을 상대하면서 겪었던 충격이 가시기도 전에 이번에는 독일 전차에 호되게 당한 것이다.
대본영은 즉시 대책회의에 들어갔다. 사실 전투에서 패배하거나 일방적으로 피해만 본 일은 지금까지 여러 번 있었지만, 단순한 악운이나 무능한 지휘관 탓으로 돌리기에는 워낙 심각한 사안이었다.
“인도차이나에서도 그렇고, 황군의 전차들이 독일, 프랑스 같은 열강국의 전차들과 비교하면 명백히 열세요.”
“노몬한에서도 황국의 전차들은 소련군의 전차들에 무참히 도륙당했지.”
이미 할힌골 전투에서 일본군 자국의 전차들이 소련 전차들에 일방적으로 격파당하는 광경을 목격했었다.
하지만 할힌골 전투의 참패를 숨기기 바빴던 일본은 전차의 성능을 개량해야 한다는 보고를 의도적으로 무시했다.
중요한 건 전차의 성능 따위가 아니다. 바로 정신력이다! 전차 성능의 차이는 야마토 정신으로 메울 수 있다!
기승전 정신력으로 요약되는 대본영의 굳은 의지는 어느 누구도 바꿀 수 없었고 그렇게 일본의 전차들은 제자리걸음만 반복하게 되었다.
그렇다고 완전히 손을 놓고만 있는 것도 아니어서 3식 전차를 대량으로 양산해 투입하는 등 나름의 노력이 없지는 않았지만, 그토록 믿던 3식 전차도 그 한계가 명백하게 드러나고 말았다.
이제야 현실을 직시한 대본영은 전차들의 성능 개량에 들어갔다.
그리고, 전차의 개량만큼이나 중요한 사안이 하나 더 있었다.
“지나는 독일에 광물을 수출하고, 독일은 지나에 무기를 공급하고 있다는 사실을 다들 아실 겁니다. 독일과 지나의 교류가 소련을 경유해 이루어지고 있다는 것도요.”
“지나가 독일로부터 무기를 수입하는 것을 막으려면, 소련의 협력이 절대적으로 필요하오.”
“하지만 소련이 순순히 우리의 말을 들어주겠소?”
이미 일본은 소련과 불가침조약을 체결한 뒤부터 소련에 중국 국경을 봉쇄해달라고 지속적으로 요청하고 있었다.
그러나 소련은 독일, 중국과의 관계 악화를 이유로 들면서 일본의 요청을 번번이 거절해왔다.
“그렇다고 이대로 손가락만 빨고 있을 수는 없지 않소.”
소련이 일본의 요구를 순순히 수용할 가능성도 작지만, 가만히 지켜보고만 있는 것은 더더욱 말이 안 된다.
중국과 독일의 교류를 막지 못한다면, 일본은 결코 중국을 정복할 수 없었다.
결국, 결론은 하나.
무슨 수를 써서라도 소련의 마음을 돌리는 것. 그래야 일본은 전쟁에서 승기를 잡을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