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히틀러가 되었다-115화 (115/150)

< 타오르는 불꽃 (2) >

대국민연설 후 독일의 상황은 급속도로 진정되었다.

자그마치 총통이 직접 나서서 호소와 경고까지 했으니 당연하다면 당연한 결과.

하지만 지구 어디에서나 누가 뭐라고 하든 간에 멋대로 날뛰고 싶어 하는 놈팡이들이 있기 마련.

대국민연설로부터 닷새 뒤, 프랑크푸르트에서 길을 걷던 행인 한 명이 뒤통수에 벽돌을 맞고 중태에 빠지는 일이 일어났다.

심지어 피해자는 일본인도 아니고 네팔인. 그것도 요한 볼프강 괴테 프랑크푸르트암마인 대학교에 재학 중인 유학생이었다.

나는 독일의 위신이 걸린 문제이니 최대한 빨리 범인들을 색출하라고 지시했고, 이틀 만에 경찰은 범인인 12살짜리 소년 3명을 체포했다.

범행 동기를 묻는 경찰에게 범인들은 순전히 장난이라고 대답했다.

“겨우 12살 밖에 안 된 놈들이 벌써부터 중범죄를 저지르다니. 세상 참 말세로군, 말세야.”

“그래도 아직 어린애들이니...”

“관대하게 봐주시는 게-”

“자네, 지금 나랑 장난하는 건가?”

나이가 어리다는 이유로 봐주는 것이 사회에 어떤 재앙을 불러오는지 21세기 대한민국에서 매일같이 봐온 나로서는 이번 일은 그냥 넘어갈 수 없는 일이었다.

인종차별로도 모자라 남의 인생 망쳐놓곤 장난이라고? 이건 뭐 답이 없는 수준이라 봐도 무방할 터.

이번 기회에 앞으로 이런 범죄를 저지르면 어떤 꼴이 되는지 국민에게 제대로 보여줄 필요가 있다.

“범인은 총 3명이라고 했나?”

“그렇습니다.”

“팬티 한 장, 양말 한짝도 남기지 않고 발가벗긴 다음 목에 팻말을 걸어서 시내에 전시하게. 지나가는 행인들이 모두 볼 수 있게끔 말이야.”

“총통 각하!”

“처벌이 너무 심합니다. 그래도 아직 애들이니 처벌 대신 교화를....”

“입 닥쳐!”

자연스레 너무 심하다는 반응이 터져 나왔지만, 내 마음을 돌리지 못했다. 역으로 화만 더 키웠을 뿐.

“내가 직접 라디오에 나와서 하지 말라고 경고까지 했으면 하지 말아야지. 내 말을 보란 듯이 무시했는데 그냥 넘어간다면 국민이 나를 뭐라고 생각하겠나?

심지어 피해자는 일본과 아무 관계가 없는 네팔인이라면서? 즉, 이놈들은 상대가 일본인이 아닌데도 순전히 범죄를 저지르고 싶어서 저지른 싹수가 노란 놈들이란 말일세. 그런 놈들이 크면 뭐가 될 것 같나? 독일을 좀먹는 기생충 같은 범죄자 놈들밖에 더 되겠나?

그리고, 만약 피해자와 가해자의 국적이 바뀌었으면 그때도 어린애들이니 봐주자고 말했을 건가? 어디 말들 해보게.”

“......”

“저, 저희가 생각이 짧았던 것 같습니다.”

“다시 생각해보니 총통 각하의 말씀이 지극히 옳습니다.”

내가 진심으로 화를 내자 어린애들이니 봐주자는 의견은 쏙 들어갔다. 하여간 사람이 꼭 화를 내야 말귀를 알아먹어요.

“남의 눈에서 눈물 나게 하면 본인 눈에선 피눈물이 나온다는 것을 알아야지. 독일은 일본이나 미국이 아냐. 내 눈에 흙이 들어가도, 아니 흙이 들어간 뒤에도 절대로 독일에선 이런 류의 범죄가 일어나선 안 되네. 모두 내 말 명심하도록. 앞으로 인종에 관련된 범죄는 무관용으로 대응할 터이니.”

인종차별이 얼마나 나쁜 건지 깨달으라곤 하지 않겠다. 시대가 시대이니 그게 불가능하다는 것쯤은 나도 아는지라.

하지만 적어도 범죄를 저지르면 어떤 꼴이 될지 알아둘 필요는 있다. 그래야 처벌이 무서워서라도 몸을 사릴 터.

매는 만병통치약이 될 수 없지만, 때려야 할 때 때리라고 있는 물건이다.

맞을 짓을 했으면 맞는다는 것을 모르는 놈들에겐 매를 들어야지.

“그리고, 그 다쳤다는 네팔인의 병원비는 범인들 몫으로 달아둬. 가족들이 갚거나 가족들이 갚지 못하면, 범인들이 커서 사회로 나갔을 때 갚게 하게. 난데없이 병원 신세를 지게 된 것도 황당하고 억울한데, 자기 돈으로 병원비까지 내야 하면 얼마나 억울하겠나?”

“알겠습니다. 총통 각하의 뜻을 관련 부처에 잘 전달하겠습니다.”

“범인들은 오전 7시부터 저녁 9시까지, 하루 14시간씩 일주일간 매달아두게. 그리고 사진으로 찍어서 독일의 모든 신문사에 보내. 범인들의 신상도 함께 적어서 말이야.”

“그, 그리하겠습니다....”

***

“총통께서 분노하시는 게 이해가 갑니다만.... 아무리 생각해도 처벌이 너무 과도하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는 것 같습니다.”

회의를 마치고 밖으로 나오며 질서경찰 총수 쿠르트 달루게가 속삭이듯이 얘기했다. 그러자 힘러가 주변을 둘러보며 얘기했다.

“입조심 하게. 감히 그분의 뜻을 거스르는 것으로 들릴 수 있으니.”

“흠, 흠.”

“다른 건 몰라도 유독 인종과 관련된 문제에 관해서는 무척 엄격하신 분 아니오. 그러니 새삼스러운 일이 아니라고 생각되오만.”

내무장관 빌헬름 프리크가 말했다. 히틀러 총통이 인종 문제에 관해서는 보통의 독일인들과 다른 시각을 가진 것은 이미 유명한 일이었다.

“내가 보기에 총통께선 인종의 구분이 없소. 그분은 진정으로 모든 인종이 평등하다고 믿고 계시오. 작년 회의에선 이런 말씀도 하셨지. 인종에 상관없이 진정으로 독일에 봉사하는 자라면 누구나 아리아인으로 대우받을 자격이 있다고.”

굳이 독일을 위해 싸우지 않더라도, 범상치 않은 능력을 지닌 자라면 외국인이라도 총통은 늘 존중의 자세로 대했다.

베를린 올림픽에서 금메달을 획득한 미국의 흑인 제시 오언스가 그랬다.

“총통 각하의 견해가 잘못된 것은 아니지만, 마음씨가 과도할 정도로 좋은 게 아닌가 싶습니다. 체코인과 폴란드인을 대할 때도 그렇고 운터멘쉬들을 너무 대우해주면 놈들이 주제도 모르고 기어오를 텐데 말이죠.”

뼛속까지 인종주의자인 달루게는 그런 총통의 견해가 썩 마음에 들지 않았다.

물론 총통이 독일에 두 번 다시 없을 위인이며, 그런 총통의 곁에서 일하는 것이 엄청난 영광이라고 여기는 그였지만 다른 건 몰라도 운터멘쉬들까지 인간으로 취급하는 부분에 대해서는 불만이 있었다.

열등한 종자들은 동등한 인간으로 대우하면 놈들은 끝없이 독일인의 지위를 탐할 것이 아닌가. 확실하게 선을 그어서 지배자와 피지배자의 위치를 각인시킬 필요가 있건만.

“나도 그게 걱정이지만, 그래도 막상 해야 할 때는 하시는 분이니 우려할 필요는 없을 것 같소.”

달루게 못지않은 인종주의자에, 실제 역사에서 뉘른베르크법 제정과 홀로코스트에 깊숙이 관여한 바 있는 프리크도 총통이 운터멘쉬들에게 너무 자비를 베푼다고 생각했지만, 그래도 불만은 없었다.

폴란드에서 유고슬라비아까지, 총통은 운터멘쉬들에 대한 자비와는 별개로 독일의 적들을 가차없이 파괴했다.

달루게의 우려대로 정말로 운터멘쉬들이 기어오른다면, 총통은 그들을 가차 없이 박멸할 것이다. 다른 건 몰라도 선을 넘는 행위만큼은 끔찍하게 싫어하시는 분이니.

“그리고 총통께서 말씀하셨다시피, 이번 일은 독일의 위신이 걸린 문제요. 총통께서 강경한 처벌을 명령하신 것도, 이 일이 외국에서 독일을 매도하는 선전거리로 활용되는 일을 피하기 위해서라고 생각되오만.”

“하긴, 외국에서 반독 선전거리로 활용한다면 그건 그거대로 문제지요.”

힘러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언제 총통께서 한 번이라도 잘못된 판단을 내리신 적이 있었나? 총통의 판단은 늘 옳았고, 그 결과 독일은 유럽을 지배할 수 있었다.

총통의 지시대로만 하면, 안 풀릴 일은 없다. 그것이 힘러의 지론이었다.

“이미 총통께서 결정하신 사안이니 더는 왈가왈부할 필요가 없지. 식사나 하러 갑시다.”

***

1941년 6월 18일

독일 뮌헨

“커피 한 잔 주시오. 설탕과 크림을 넣은 것으로.”

완벽한 독일어로 웨이터에게 커피를 주문한 동양인 남자는 웨이터가 떠나자 아침에 구입한 신문을 펼쳤다.

신문의 일면에는 알몸의 소년 3명이 프랑크푸르크 거리에서 조리돌림당하는 광경을 담은 사진이 대문짝만하게 실려 있었다.

사진 밑에는 소년들이 프랑크푸르트에서 있었던 네팔인 사건의 범인들이라는 설명과 소년들의 신상정보가 실려 있었다.

12살짜리 소년들에게 가하는 처벌치곤 매우 과격하기 짝이 없었지만, 소년들이 저지른 범죄를 생각하면 나름대로 합당한 처벌이라고 이미륵은 생각했다.

“주문하신 커피 나왔습니다.”

“고맙소.”

웨이터가 내온 커피를 마시며 이미륵은 주변을 둘러봤다.

길을 가던 주부 한 명이 그를 빤히 쳐다보고 있다가 눈이 마주치자 황급히 시선을 피하며 종종걸음으로 사라졌다.

일본이 독일 대사를 추방하는 사건이 터지자, 엉뚱하게도 독일에 거주하던 동양인 전체에게 불똥이 튀었다.

일본인과 같은 피부를 가진 동양인이라는 이유만으로 따가운 시선과 매도, 심지어 폭력이 가해진 것이다.

일본에 조국을 강점당해 독일로 망명하게 된 이미륵 입장에서는 황당하고 분통 터지는 일이었다.

평소 이미륵을 아는 주변인들은 그를 평소와 같이 대했지만, 대다수 사람은 그렇지 않았다.

그들의 눈에 이미륵은 위대한 독일을 욕보이고 모욕한 노란 원숭이일 뿐이었다.

하도 세상이 흉흉하다 보니 이미륵은 외출조차 할 수 없을 정도였다. 하지만 히틀러 총통의 대국민연설 후, 세상은 급속도로 안정을 되찾았다.

여전히 길을 걷다 보면 자신을 째려보고 행인들의 시선을 느낄 수 있었지만, 직접적으로 위해를 가해오는 일은 한 번도 없었다.

타인종에 대한 무분별한 증오와 폭력, 범죄에는 결코 자비를 베풀지 않을 것이라고 총통이 공언한 뒤부터 이미륵은 이전처럼 자유롭게 거리를 활보할 수 있었다.

물론 프랑크푸르트의 네팔인 사건처럼 동양인들을 대상으로 한 범죄가 완전히 박멸된 것은 아니었지만, 총통은 범인들에게 막중한 처벌을 가함으로써 인종범죄를 저지르면 어떻게 되는지 만천하에 공개했다.

이걸 보고 어느 누가 범죄를 저지를 수 있을까? 사람들 앞에서 알몸이 되어 전시되기를 바라는 마조히스트가 아니라면 말이다.

지금까지 이미륵에게 히틀러는 동전의 양면과도 같은 인물이었다.

히틀러가 자신의 저서 나의 투쟁을 통해 대공황과 일본의 중국 침략을 예언한 것, 수재로 고통받는 한반도의 동포들을 위해 수재의연금을 보낸 것, 베를린 올림픽에서 동향 사람인 손기정과 남승룡을 초청해 만찬을 대접한 일화에 대해선 긍정적으로 봤지만, 이와 별개로 그는 수많은 악행을 저질렀다.

그는 수권법을 이용해 독일을 독재국가로 변모케 했으며, 폴란드의 선제공격으로 인한 것이라지만 전쟁을 일으켜 많은 사람을 고통에 빠뜨렸다.

평화주의자였던 이미륵에겐 전쟁을 일으킨 히틀러가 결코 살갑게 느껴질 수 없었다.

하지만 다른 것은 몰라도, 히틀러 총통이 보통의 독일인들과 차원이 다른 시선을 가졌다는 사실만큼은 그도 인정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미래를 예언하고 1년 만에 전쟁을 승리로 이끈 것은 물론이고, 독일에 만연한 반유대주의를 분쇄하며 전 유럽인들에게 차별받는 존재인 흑인과 동양인들을 동등한 인간으로 대우해준 지도자는 히틀러밖에 없었다.

그가 예전처럼 신변의 안전에 대한 걱정 없이 거리로 나올 수 있었던 것도 순전히 히틀러 덕분이었다.

그렇기에 이미륵은 히틀러란 사람이 더더욱 궁금해졌다. 그는 독재자지만, 세계에 흔하디흔한 독재자들-스탈린, 무솔리니, 프랑코, 소모사 등등-과는 확연히 달랐다.

그는 정말로 그의 추종자들이 말하는, 신이 독일 민족을 구원하기 위해 내려보낸 철인일까?

이제까지의 행보를 종합해보면, 철인이라는 말만큼 히틀러에게 어울리는 단어도 없었다.

살아있는 내내 철인을 찬미하고 철인의 필요성에 대해 역설했던 플라톤과 니체가 오늘날의 히틀러를 본다면 뭐라고 말할까?

이미륵은 문득 그것이 궁금해졌다.

***

푈키셔 베오바흐터(Völkischer Beobachter, 민족의 관찰자)부터 데어 앙그리프(Der Angriff, 공격), 다스 슈바르츠 콥스(Das Schwarze Korps, 흑색 군단) 같은 나치당과 SS 기관지부터 소도시의 지역 신문들에 이르기까지의 독일의 모든 신문이 내 지시에 따라 프랑크푸르트 사건의 사진과 기사를 일면에 실어 국민에게 인종범죄를 저지른 범인들의 최후에 대해 알게 했다.

괴벨스와 헤스는 미국이나 영국에서 이번 일을 반독 선전에 활용할지 모른다고 걱정했지만, 우려가 무색하게 미국과 영국은 아무 반응이 없었다.

사실, 이 둘도 인종차별을 밥 먹듯이 해대는 나라들이라, 일부러 정보를 숨기는 듯했다.

독재국가라고 까대는 독일에서조차 인종범죄에는 단호하게 대처하는데, 자칭 민주주의 국가라는 것들이 인종차별을 묵인하거나 아예 조장하고 있다는 역풍이 불지 않을까 하는 걱정.

실제로 내 대국민연설이 해외에도 소개되자, 미국의 흑인들과 동양인들이 가장 먼저 반응했다.

미국 사회에서 수많은 차별과 멸시받는 그들로서는 자신들의 처지 따윈 나 몰라라 하는 정부에 불만이 많을 수밖에 없었다.

어째서 정부는 인종차별주의를 방치하느냐는 성토부터, 인종차별 정책인 짐 크로우 법을 폐지하라는 움직임이 일었다.

백악관은 이번에도 침묵으로 일관했다.

곤란한 상황에 부닥친 것은 일본도 마찬가지였다.

자기들은 대사를 추방했는데, 정작 독일은 일본인들까지 피해를 보지 않도록 보호하고 있으니 너무 대비될 터.

자기네들 모양만 빠지는 꼴이 되자 일본은 슬며시 다시 대사를 파견해달라고 요청해왔다. 일언반구의 사과도 없이.

좆이나 까잡수시라지.

참, 5월 말부터 절찬리에 판매를 시작한 독일군 세트는 상상 이상의 흥행으로 어마어마한 수익을 올리고 있었다.

독일 국민은 물론이고 발매를 개시한 덴마크와 노르웨이, 스웨덴, 스위스에서도 폭발적인 인기를 누려 매일같이 매진이 이어졌다.

독일군 세트의 흥행에 이웃한 헝가리와 불가리아에서도 발매가 시작되었고, 스페인과 아일랜드, 핀란드가 뒤를 이었다.

“총통 각하, 이건 어떻겠습니까?”

장난감 세트의 예상치 못한 대흥행에 우리의 샤흐트 장관은 자신의 비상한 머리로 기똥찬 발상을 내놓았다.

그가 내놓은 발상은 바로 ‘가챠’.

기존 세트에 포함되어 있지 않은 ‘희귀 미니어처’를 무작위로 집어넣어서 홍보하는 것이다. 당연히 수집가들을 희귀템을 얻기 위해 세트를 있는 대로 사들일 것이고, 자연스레 판매수익은 올라간다.

“기대한 효과는 없더라도 세트 판매량이 하나라도 더 늘어날 테니 결코 손해 보는 장사가 아닙니다.”

샤흐트의 미친 발상은 모두의 호평을 받으며 즉시 채택되었다. 세트에 들어갈 희귀 미니어처로는 티거와 판터가 거론되었지만, 내가 사양했다.

“그것들은 나중에 따로 발매해서 돈 버는 데 써야지. ‘희귀’라는 말에 걸맞게 현실에서는 존재하지 않는 것들을 넣는 게 어떤가.”

티거와 판터는 훗날 발매할 ‘독일군 미니어처 세트 2’를 위해 아껴두기로 하고, 이 세계에서는 존재하지 않는 장비들을 넣기로 했다.

실제 역사에서는 존재했지만, 여기서는 존재하지 않는 장비들이라면 뭐가 있을까? 대표적으로 3호 돌격포와 마르더 대전차자주포, 4호 구축전차, 페르디난트 구축전차 등등 셀 수 없이 많다.

3호 돌격포는 3호 전차 양산이 취소되면서 등장하지 않았고, 마르더는 38(t)에서 곧바로 헷처로 넘어가게 되면서 등장하지 않았다.

4호 구축전차나 페르디난트, 비르벨빈트 같은 놈들 역시 마찬가지.

전생의 기억을 되살려 스케치한 것이 미니어처로 재탄생한 뒤, ‘페이퍼플랜에서 벗어나지 못한 비운의 병기들’이라는 적절한 설명과 함께 세트에 동봉되어서 판다면 그럴듯하지 않을까?

여기에 괴링은 한술 더 떠 희귀 세트 중의 희귀 세트를 제안했다.

“총통 각하의 친필 사인을 넣은 세트도 있다고 홍보하면 더욱 잘 팔리지 않겠습니까?”

당연히 결과는 대성공.

‘가챠 세트’와 ‘가챠 중의 가챠 세트’의 판매를 개시한 뒤로 독일군 미니어처 세트의 판매량은 45%나 급증했다. 4.5%도 아니고 45%나.

미니어처 세트의 폭발적인 성공에 힘입어 ‘크릭스마리네 세트’도 예고되었고, 미니어처에서 스케일을 키운 1:72, 1:35 크기의 프라모델 세트들도 제작을 시작했다.

한때 적국이었던 영국과 프랑스에서도 사람들이 개별적으로 독일로 와서 사갈 정도이니 말 다 했지.

이래서 사람은 머리를 굴릴 줄 알아야 하는 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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