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히틀러가 되었다-113화 (113/150)

< 다른 시선 >

스탈린의 침실에 놓인 침대는 인민들을 위해 모스크바와 레닌그라드, 스탈린그라드 등 소련 전역에 지어진 소련식 아파트들의 주방보다도 넓었다.

시트와 이불에는 티끌만 한 얼룩이나 먼지 한 통도 찾을 수 없었다.

푹신한 침대에 누운 스탈린은 잠을 자려고 눈을 감았지만, 잠이 들지 않아 여러 번 몸을 뒤척였다.

그렇게 30분가량 몸을 뒤척이던 스탈린은 결국 잠자는 것을 포기하고 침실에서 나왔다.

비서가 타온 따뜻한 홍차를 마시며 스탈린은 몰로토프가 한 말을 떠올렸다.

'히틀러 총통은 우리의 발칸반도 진출에 대해선 용인하기 힘들다는 입장을 내비쳤습니다. 하지만 중동과 인도양 진출에 관해서는 용인할 수 있다고 언급했습니다.'

독일이 유고슬라비아를 침공하자, 내심 발칸반도를 소련의 세력권에 포함해 지중해와 아프리카 진출의 발판으로 삼고자 했던 스탈린은 무척이나 아쉬워했다.

하지만 그는 독일에 어떠한 항의도 할 수 없었다. 누가 봐도 전쟁의 책임은 유고슬라비아에 있는지라 소련이 불편한 기색을 내비쳤다간 독일의 역린을 자극하는 꼴이 될지도 몰랐다.

그래도 미련이 남는 것은 사실이었기에 그는 몰로토프로 하여금 히틀러의 의중을 떠봤다.

만약 히틀러가 유화적으로 나온다면 그는 히틀러에게 발칸반도의 항구 도시들을 소련이 함께 이용하게 해달라고 요구할 생각이었다.

하지만 히틀러는 거절 의사를 밝힘으로써 발칸반도를 소련과 공유할 생각이 없음을 분명히 했다.

발칸반도는 포기해야겠군. 당장은 독일과 전쟁을 하면서까지 차지할 생각은 없었다. 당분간은.

그래도 중동과 인도양 진출에 관해선 묵인하겠다는 인증을 받아왔으니 좋은 일이라면 좋은 일이었다.

그런데, 그런데.....

'왜 자꾸만 불길한 예감이 드는 거지?'

소련이 중동-인도양으로 진출한다면 자연스레 해당 지역들을 지배하는 영국과 충돌을 피할 수 없을 것이다.

이 경우 가장 이득을 보는 나라는 지구상에 두 나라밖에 없다.

바로 독일과 일본.

그러나 일본의 목표는 어디까지나 중국과 동남아시아이며 모스크바에서도 수천km나 떨어져 있기에 소련의 큰 위협이 되지 못한다.

하지만 독일은 일본과 달랐다. 일본과 달리 독일은 유럽 국가이며 독일 폭격기는 하루 내에 모스크바에 닿을 수 있다.

만약 소련이 영국과 전쟁 상태에 돌입한다면 독일은 영국과 소련 어느 국가도 공격할 수 있다.

소련과 전쟁 중인 영국을 독일이 공격한다면 더할 나위 없이 좋지만,

그 반대의 경우라면?

영국과의 충돌한다면 자연스레 소련은 군사력의 상당 부분을 중동에 투사할 수밖에 없을테고, 자연스레 독일과의 방비는 약해지게 된다.

그 틈을 노려 독일이 선제공격을 가한다면, 붉은 군대는 어마어마한 피해를 볼 수밖에 없다.

최소한 발트 3국과 벨라루스, 우크라이나는 독일에 넘어갈 테고 최악의 경우엔 모스크바조차 위험해진다.

바로 그것을 노리고 히틀러가 소련의 중동 진출을 묵인한 것이라면?

스탈린은 등골이 오싹해졌다.

‘설마, 설마.....!’

히틀러는 지략에 밝은 남자. 겉으로는 소련과의 우호를 위하는 척 안심시키고, 뒤로는 소련을 공격할 계획을 준비 중일지도 모른다.

그는 그러고도 남을 인간이며, 동시에 그럴 능력이 충분히 있는 인간이었다.

독소불가침조약에 체결된 후 그는 공산주의에 대해 어떠한 발언도 하지 않고 있지만, 공산당에 대한 탄압은 계속해서 유지 중이다.

그 때문에 히틀러와 나치가 지구상에서 공산주의를 완전히 멸하기 위해 소련을 공격한다고 해도 놀랄 게 하나도 없었다.

애당초 히틀러는 공산주의에 대한 독일인들의 경각심을 이용해 권좌에 오른 자니까.

물론 독일이 정말로 소련을 공격하려고 하는지는 확신할 수 없지만, 최소한 머지않은 미래에 독일이 소련의 가장 큰 위협으로 부상하리라는 것은 분명했다.

아니지. 분명한 정도가 아니라 이미 사실이지. 지금 소련에 가장 위협이 되는 국가가 독일 말고 더 있겠는가?

영국? 전쟁에서 진 데다 자기네 식민지밖에 모르는 나라가 어떻게 소련을 공격할 수 있을까?

일본은 영국보다 가능성이 크지만, 일본은 시베리아보다 중국과 동남아시아에 더 관심이 많다.

미국은 영국과 함께 일본을 견제하느라 유럽 일에는 관심이 아예 없고.

결국 남는 건 독일뿐.

히틀러의 실제 속마음이 어떤지 알았다면 스탈린은 결코 잠을 설치는 일이 없었을 것이다.

오히려 히틀러가 가진 소련에 대한 두려움을 적극적으로 활용해 독일에 많은 요구를 했을 것이다.

하지만 아무리 강력한 권력을 가진 그라고 해도 다른 사람의 속마음을 꿰뚫어 보는 능력이 없었고, 그랬기에 그는 늘 불안에 시달릴 수밖에 없었다.

불안은 의심이 되었고, 의심은 어느새 확신으로 변해갔다.

***

1941년 5월 25일

미국 워싱턴 D.C 백악관

스탈린의 소련만큼이나 유럽에서 급부상한 독일을 불편과 걱정의 시선으로 바라보는 국가도 있었다.

나치 독일과 전쟁을 치렀던 영국이 그랬고, 대서양 건너 미국이 그랬다.

“Mk.6 경전차는 물론이고, 중장갑의 마틸다 전차조차 독일의 4호 전차와 헷처에 어떤 타격도 줄 수 없었소.”

“최종병기인 스핏파이어조차 이토록 무력할 줄이야....”

프랑스 전장에서 독일제 전차와 전투기의 매운맛을 톡톡히 본 영국은 강화조약문에 도장을 내리찍자마자 전차, 전투기 개발에 돌입했다.

“스핏파이어에 달린 7.7mm 기관총은 너무 약하오. 그보다 강력한 20mm 기관포를 답시다.”

영국 공군은 HS.404 20mm 기관포를 도입하여 화력을 강화한 스핏파이어 Mk.V를 내놓는 한편, 호커 허리케인을 대체할 신형 전투기 호커 타이푼의 개발에 박차를 가했다.

“독일 전차에 흠집조차 낼 수 없는 2파운더는 갖다 버리고, 그보다 더 강력한 6파운더를 탑재한 전차가 필요하오!”

“인정합니다!”

영국 육군은 유럽 전장에 투입하지 못한 발렌타인 전차부터 손을 댔다. 발렌타인 전차는 마틸다 II와 동일한 2파운더 주포를 탑재했는데 독일 전차들을 상대로 위력 부족이 드러나자 지체없이 6파운더로 교체했다.

주포만 갈아 끼우기엔 기존의 포탑이 너무 작고 좁았으므로 처음부터 새로 설계한 포탑을 달아야 했고, 그렇게 완성된 신형 발레타인에겐 Mk.III라는 형식이 붙었다.

하지만 영국 육군은 이조차 임시방편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알았다.

화력을 강화했지만, 장갑, 엔진, 속력은 모두 그대로였기에 4호 전차를 상대로 열세라는 사실은 변하지 않았다.

영국군은 화력만 살짝 키운 급조품이 아닌, 4호 전차와 대등한 전투가 가능한 제대로 된 전차를 원했다.

기존 전차들보다 크고, 두꺼운 장갑에 강한 화력을 가진 전차.

육군의 전차 개발을 적극적으로 지원하고 추진한 이는 놀랍게도 해군장관 처칠이었다.

지금은 사망한 전임 총리 체임벌린의 폭로로 체면을 구겼지만, 핼리팩스의 배려로 장관직을 유지할 수 있었던 처칠은 실추된 이미지 회복을 위해선 당분간 대중에 나서지 말고, 무기 개발에 열중하는 게 장차 이득이라는 판단을 내렸다.

다른 건 몰라도 정치력 하나만큼은 영국에서 MAX였던 그는 영국 육군의 의뢰를 받은 복스홀 사에서 개발한 신형 보병전차를 최우선 양산품목으로 지정하는 데 힘을 보탰고, 육군과 복스홀 사는 이에 대한 감사의 표시로 차기 신형 보병전차에 처칠의 이름을 붙였다.

영국이 무기 개발에 열중하는 동안 바다 건너편에 있는 미국도 손을 놓고만 있지 않았다.

예전부터 독일의 팽창 야욕을 극도로 경계해왔던 미국 32대 대통령 프랭클린 루스벨트는 다시 유럽에서 전쟁이 일어날 경우를 대비하여 미군을 재편하는데 전력을 기울였다.

“아, 조지-”

“대통령 각하. 마셜이라고 불러주시겠습니까?”

“거, 사람 깐깐하기는. 우리가 얼마나 오랫동안 알던 사이인데, 이제 그 호칭은 그만 쓸 때가 되지 않았소?”

“.....”

“알겠소. 내가 졌소이다, 마셜 장군.”

“이해해주셔서 감사합니다, 각하.”

육군참모총장 조지 마셜은 젊어서부터 뛰어난 업무처리능력으로 상관과 동료, 부하 모두에게서 극찬받은 군인 중의 군인이었다.

그런 그에게 단점을 꼽으라면, 지나치다 싶을 정도로 ‘중립적’이라는 것이었다.

군인은 정치에 개입해서는 안 된다는 신념으로 그는 투표조차 하지 않았으며, 정치인들의 초대에 일절 응하지 않았으며 자신을 이름으로 부르는 것조차 거부했다.

이 같은 성격 탓에 많은 사람이 그에게 존경을 표하면서도, 동시에 무척이나 어려워했다.

“물어볼 게 몇 개 있어서 불렀소. 어디 보자.... 우선, 신형 전차 개발은 어떻게 되어 가고 있소? 진척이 있는 것 같소?”

M2, M3 경전차 따위를 1선에서 굴리던 미 육군은 독일군이 전광석화와 같은 속도로 유럽 일대를 휩쓰는 광경에 어마어마한 충격을 받았다.

전격전(Blitzkrieg). 독일이 폴란드와 프랑스에서 보여준 기동전을 가리키는 말이었다.

독일제 전차의 우월한 성능은 전격전의 성공에 상당한 역할을 했다.

영국 전차도, 프랑스 전차도 독일군이 굴리는 4호 전차와 헷처를 상대로 무력했다.

스페인에서 독일 전차들이 소련제 전차들에 일방적으로 밀리던 것과는 180도 다른 광경이었다.

독일 전차의 뜨거운 맛에 데인 영국은 서둘러 신형 전차 개발에 들어갔고 미국 역시 언젠가 있을지 모를-루스벨트는 반드시 확신하고 있었다-독일과의 전쟁에 대비해 신형 전차 개발에 몰두했다.

대통령부터 국방부장관, 마셜, 그리고 미 육군 기갑부대 사령관 제이콥 데버스 중장은 하루가 멀다고 병기국 연구원들을 갈궈댔고, 그 결과 훗날 영국군으로 ‘M3 리’라 불릴 M3 중형전차가 역사보다 일찍 등장할 수 있었다.

병기국 연구원들이 흘린 피와 땀과 눈물이 낳은 M3 중형전차는 기존의 M2 중형전차를 베이스로 만들어졌는데, 주무장이 빈약한 37mm 주포가 전부였던 M2와 다르게 차체에 장착된 75mm M2 전차포 덕분에 제법 강한 화력을 적에게 투사할 수 있었다.

75mm 주포를 쓸 수 있게 된 것은 분명 장점이지만, 문제는 주포가 포탑이 아닌 차체에 달려 선회반경에 제한이 있었다.

연구원들 말로는 회전포탑에 장착된 37mm 주포로 사각에 있는 적을 공격하면 된다고 하지만, 75mm 장포신 주포를 포탑에 달아 자유자재로 사용할 수 있는 4호 전차와 비교하면 M3가 너무 불리했다.

데버스의 보고를 받은 마셜도 M3로 4호 전차와 싸우게 하는 것은 자살행위라 확신했다.

하루빨리 포탑에 75mm 주포를 단 전차가 나와야 4호 전차에 비벼볼 수 있지 않겠나.

“걱정하지 마십시오, 각하. 여름이 끝나기 전에 시제품이 나올 것입니다. 개발이 순조롭다면 11월에서 12월 무렵에 본격적인 양산에 들어가리라 봅니다.”

“그렇군. 나는 말이오, 우리 병사들이 영국인들이나 프랑스인들이 겪었던 비극을 겪지 않았으면 하거든. 최소한 그럭저럭 쓸만한 것들을 쥐여줘야 싸울 수 있지 않겠소.

아, 그렇다고 우리 병기국 친구들이 만든 물건들이 죄다 쓸모없는 결함품이라는 소리는 아니오. 오해는 마시구려.”

“물론입니다.”

“문제는 독일뿐만이 아니오. 일본도 문제지. 최근 일본이 프랑스령 인도차이나 일대에 병력을 집결 중이라는 보고를 받았소. 장군이 보기에 일본이 언제쯤 행동에 나설 것 같소?”

중국을 침략 중인 일본은 프랑스령 인도차이나에도 대놓고 눈독을 들이고 있었다.

일본군의 암호체계를 간파하고 있던 미국은 이미 일본이 인도차이나 침공 준비를 위해 중국-인도차이나 국경과 하이난섬 일대에 병력과 장비를 집결시키고 있다는 것을 파악했다.

“빠르면 6월, 늦어도 8월 안으로 인도차이나를 공격하리라고 봅니다.”

“환장하겠군. 망할 쪽발이들 같으니.”

루스벨트는 혀를 차며 쿠바산 시가에 불을 붙였다.

“장군도 한 대 피우시겠소?”

“마음만 받겠습니다.”

“일본의 인도차이나 침공은 시작에 불과할 거요. 놈들은 절대 인도차이나 하나만으로 만족하지 않을 거니까. 인도차이나를 처먹은 후에는 분명 말레이, 인도네시아, 버마를 노릴테고.... 나아가 인도와 필리핀까지 위협하겠지. 그렇게 되기 전에 놈들의 폭주를 멈출 필요가 있소. 그도 아니면 다시는 전쟁하겠다는 소리가 나오지 않을 만큼 제대로 손봐줘야지.”

루스벨트는 일본의 침략 야욕을 정확하게 꿰뚫고 있었다.

한 번 승리의 달콤함을 맛본 일본은 절대로 침략을 멈추지 않을 것이다.

아시아 전역에 일장기를 꽂은 뒤에는 오세아니아와 아프리카까지 진출하려 들 테고, 나아가 미국의 영토까지 넘보게 될 것이다.

그렇게 되기 전에 싹수를 잘라버려야지.

마셜을 이용해 군을 재정비하고 전쟁을 수행하는데 필수적인 병참과 보급에 필요한 인력을 확충하며 신무기를 개발하고 있는 것도 모두 다가올 전쟁에 대비해서였다.

미국 국민은 전쟁에 휩쓸리는 것을 원하지 않지만, 좋든 싫든 간에 미국은 결국 전쟁할 수밖에 없는 운명이다.

시기가 언제냐는 문제일 뿐.

“프랑스는 자기네 식민지가 공격받으면 일본에 선전포고할 테고, 문제는 독일인데.....”

루스벨트가 무엇을 묻고자 하는지 눈치챈 마셜이 말했다.

“독일이 프랑스를 위해 일본에 선전포고할 것 같지는 않습니다.”

“그럴지도 모르지. 하지만 독일은 중국에 무기를 팔아서 은근히 일본을 엿 먹이고 있지 않소. 어쩌면 이번 일로 독일이 아시아 전쟁에 끼어들 가능성이 없지 않겠소?”

루스벨트의 말대로 독일이 아시아 일대에 관심이 지대한 것은 분명해 보였다.

하지만 그렇다고 직접적으로 전쟁에 뛰어들 것 같으냐? 그렇게 물으면 마셜이 보기에는 아니었다.

“뒤에서 물자를 지원하는 방식으로 개입할 가능성은 충분하나, 직접적으로 병력을 보내 참전하지는 않으리라 봅니다. 거리도 거리거니와 이미 독일인들에겐 아시아 전쟁에 참전할 명분이 부족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소일 불가침조약이 있지 않습니까.”

“소일불가침조약과 독일의 참전이 무슨 상관이 있소?”

“독일이 소련을 경유해 중국에 무기를 공급하고 있다는 것은 각하도 아실 겁니다. 그런데 일본은 그런 소련과 불가침조약을 맺었죠. 소련과 불가침조약을 체결한 뒤부터 일본은 소련과의 교류를 늘리고 있습니다. 소련도 마찬가지지요.

이는 어디까지나 제 추측입니다만, 조만간 일본이 소련을 이용해 독일과 중국의 밀월관계에 훼방을 놓지 않을까 싶습니다.”

“그러니까.... 소련이 독일과 중국 사이를 끊어버리면 독일은 아시아까지 병력과 물자를 옮길 수단이 전무해지니 개입하고 싶어도 할 수 없다는 것이로군?”

“정확하게 짚으셨습니다.”

“그럼, 장군이 보기에 독일이 극동에 개입할 가능성은 작다는 것이로군. 하나만 더 묻겠소. 독일이 다시 유럽에서 침략전쟁을 일으킬 가능성은 얼마나 된다고 보시오?”

“제가 보기엔 현저히 작다고 생각됩니다.”

마셜의 대답에 루스벨트는 입에 문 시가를 뺐다.

“그 이유는?”

“그럴 징조가 없기 때문입니다.”

“징조가 없다니. 독일은 바로 얼마 전에 발칸반도를 휩쓸지 않았소? 그런데 저들이 더 이상 전쟁을 하지 않을 것 같다니.”

“각하, 독일이 유고슬라비아를 공격한 이유는 어디까지나 유고슬라비아가 먼저 전쟁의 빌미를 제공했기 때문입니다. 만약 유고슬라비아가 알바니아를 침공하지 않았거나 독일의 정전요구를 받아들였다면 독일은 유고슬라비아를 침공하지 않았을 겁니다. 그리고 독일은 이탈리아와의 전쟁이 마무리된 후 예비군의 징집을 해제하고, 경제회복에 전념하고 있습니다.

히틀러가 전쟁을 계속할 생각이라면 동원령을 해제하지도, 군수공장 운영을 멈추지도 않았을 겁니다.”

마셜의 말에 루스벨트는 말문이 막힌 듯 한동안 대답이 없었다. 잠시 후 그가 생각해낸 반박은 근거가 매우 빈약한 것이었다.

“하지만 독일은 여전히 신무기 개발에 전념하고 있지 않소이까?”

“그건 평화 시에도 모든 나라가 하는 일입니다. 독일의 신무기 실험이 다음 침략전쟁을 위한 것으로 보기에는 무리가 있습니다.”

“그런가. 하지만 장군, 나는 장군처럼 생각하지 않소. 히틀러란 인간은 말이지, 분명 유럽을 넘어 전 세계를 손아귀에 넣기 전까지는 결코 만족할 놈이 아니오.”

루스벨트는 책상을 두들겼다. 마셜은 전혀 놀라지 않았지만.

“그자는 전부터 전쟁을 멈출 기회가 충분히 있었는데도 그러지 않았소. 체코슬로바키아도 그렇고, 폴란드도 그렇고, 프랑스도 그랬지. 놈은 1년 만에 숙적이었던 폴란드와 프랑스를 제압하고 유럽을 손아귀에 넣었지. 모든 일마다 성공을 맛보았으니, 자제심이 줄었으면 줄었지 절대 늘지 않았을 거요. 독일인들도 마찬가지일 테고. 놈은 분명 조만간에 새로운 전쟁을 일으키려 할 것이오. 그리고 우린 그걸 막아야만 하고!”

마셜은 루스벨트가 독일과 히틀러에게 저렇게나 경기를 일으키는 것을 이해할 수 있었다. 히틀러의 독일이 보여준 성과를 생각하면 당연한 반응이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히틀러가 재차 침략에 나설 것이라는 루스벨트의 주장에는 동의하기 어려웠다. 이를 뒷받침할 증거가 없으니까.

어쩌면 독일이 전쟁을 일으켜 미국이 유럽에 개입할 명분을 주는 것이야말로 루스벨트가 원하는 일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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