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히틀러가 되었다-111화 (111/150)

< 방문객들 (1) >

전쟁을 일으킨 주범, 유고슬라비아는 해체가 결정되었다.

공업이 가장 발달하고 유고슬라비아에서 가장 부유한 지역인 슬로베니아는 제3제국에 합병되었고, 슬로베니아인들에겐 선택권이 주어졌다.

크로아티아나 세르비아로의 이주를 원하면 재산을 모두 챙겨 떠날 수 있도록 지원해주겠다.

잔류를 선택한다면 독일 시민권이 부여되지만, 조건이 있다. 독일어를 완벽하게 할 줄 알아야 하며 가족 중 한 명이 파르티잔 혹은 반독 활동에 가담할 경우 지체 없이 추방될 것이다.

크로아티아는 독립을 쟁취했으며, 헝가리는 메지무레와 바라냐를 차지해 1차대전으로 상실한 영토 일부 회복에 성공했다. 이에 대해 파벨리치는 불편한 기색을 드러내며 소유권을 주장했지만, 헝가리는 들은 척도 하지 않았다.

파벨리치는 내가 나서서 헝가리를 압박해주길 원하는 눈치였지만, 작년에 있었던 빈 중재에서 트란실바니아 절반밖에 차지하지 못했던 헝가리에 기껏 획득한 영토를 도로 토해내라고 할 수 없는 노릇이었다.

나는 헝가리가 유고 침공에 가담했으며 결과적으론 크로아티아 독립에도 일정 부분 기여했으니 이걸로 넘어가 달라고 파벨리치에게 설명했고, 호르티에겐 크로아티아에 대한 지원을 요구했다.

다행히 둘 다 내 요구를 수락하면서 헝가리-크로아티아 문제는 일단락되었다.

몬테네그로는 프랑스에서 망명 중이던 페트로비치네고시 왕가가 복귀하여 왕국으로서 분리, 독립했다.

침략당한 피해자인 알바니아는 유고와 그리스로부터 영토 일부를 할양받아 영토를 확장했고, 배상금을 넘겨받아 전쟁 피해 복구에 보탰다.

독일이 생포한 유고슬라비아군 포로 중 석방 대상자인 부상자들을 제외한 모든 포로는 알바니아로 송환되어, 알바니아의 파괴된 도시들을 재건하는 데 투입하기로 했다.

“정말, 정말 고맙습니다, 총통! 이 큰 은혜를 어떻게 갚아야 할지....”

사실 포로들을 데리고 있어봤자 관리하기만 귀찮고, 비용도 많이 드니 알바니아에 떠넘긴 건데, 조구 1세는 내가 알바니아를 지극히 걱정해서 그런 결정을 내린 줄 알고 감동했다.

흠, 쑥스럽구만.

“알바니아는 독일의 우방이 아닙니까. 우방국에 대한 작은 배려라고 해두지요.”

“이제부터 알바니아와 독일은 하나입니다. 독일이 위기에 처하면, 알바니아는 반드시 독일을 돕겠습니다. 내 목숨을 걸고 약속하지요!”

제4차 발칸전쟁의 가장 큰 수혜자는 불가리아였다. 큰 피해 없이 전쟁이 끝난 데다 참전의 대가로 유고슬라비아로부턴 마케도니아를, 그리스로부턴 서부 트리키아를 차지함으로 1차대전으로 상실한 영토의 90%를 회복했을 뿐 아니라, 그들이 그토록 원하던 ‘대불가리아’를 재탄생시킬 수 있었다.

우리나라로 치자면 북진통일을 넘어 고구려의 강역까지 모두 회복한 셈이랄까.

전쟁에서 패배해 영토까지 잃은 데다, 배상금 문제까지 짊어지게 된 그리스는 사회가 극도로 혼란스러워졌다.

나는 그리스에 평화회담을 중재함으로 그리스의 멸망을 막았으니 합당한 대가를 요구했다.

“덜도 말고, 독일이 그리스의 항구들을 자유롭게 이용하는 것과 유사시 그리스에 독일 해군과 공군을 위한 기지를 설치하는 것을 허락해주시오. 크롬 수출을 늘릴 것과 면세 혜택을 제공하는 것도.”

“.....그리 하지요.”

그리스의 알렉산드로스 코리지스 총리는 의외로 내 요구를 순순히 들어주었다.

자존심을 내세워봤자 결국 굴복하게 될 것이라 예측해서일까.

“하지만 조건이 있습니다. 독일을 위해 그리스가 많은 것을 양보했으니, 그리스도 독일에 요구할 자격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말씀해보시오.”

“독일이 그리스의 안전을 보장할 것과 독일제 무기들을 그리스에 팔아주십시오. 총통께서 이 두 조건만 받아들인다면, 저 역시 총통의 요구를 모두 받아들이겠습니다.”

패전으로 군대가 거의 박살이 난 그리스는 주변국들의 침략에 매우 취약한 상태. 불가리아, 알바니아는 물론이고 바다 건너에는 그리스와 가장 사이가 좋지 않은 터키가 있다.

이 세 나라가 합심해서 그리스를 친다면, 그리스는 결코 생존을 장담할 수 없다.

코리지스 총리는 독일의 요구를 들어주는 조건으로 그리스의 생존을 보장받고 싶어했다.

“흠, 좋소. 그리하도록 하지요.”

발칸에서 다시 전쟁이 터지는 일은 나 역시 원치 않았기에 나는 코리지스 총리의 요구를 수락했다.

이참에 그리스도 독일에 묶어둔다면, 중동 진출에 용이할뿐더러 수에즈 운하까지 위협할 수 있다.

그리스는 생존을 보장받고, 독일은 영향권이 넓어지는 셈이니 서로에게 나쁠 거 없는 조건이다.

“이 약속, 꼭 지켜주셔야 합니다.”

“거 사람이 속고만 살았나. 걱정하지 마시구려. 나는 한 번 한 약속은 반드시 지키는 사람이니까.”

마지막으로 이제 세르비아만이 남았다.

독일, 일본, 이탈리아 등 2차대전 추축국과 빨갱이들의 후광에 밀려 대중들에게 잘 알려지지 않은, 최악의 깡패 국가 중 하나.

1차대전도 따지고 보면 세르비아인들의 범슬라브주의, 대세르비아주의가 일으킨 일이었으며 유고 연방 해체를 막겠답시고 독립을 선언한 크로아티아와 보스니아를 무력으로 침공해 수십만 명의 사람들을 무차별적으로 학살했다.

물론 해당 지역에 거주하던 세르비아인들도 크로아티아, 보스니아인들에게 학살을 당했지만, 세르비아의 학살은 차원이 달랐는데 오죽했으면 히틀러보다 더 잔인하다는 소리까지 나왔을 정도다.

패전으로 자국의 해안가를 모조리 상실한 것도 모자라, 1차대전 이전보다도 영토가 축소된 세르비아에 남은 것은 절망과 악밖에 없었다.

나는 세르비아 바나트 주에 거주하는 독일계 주민들에게 세르비아가 보복 학살할 우려가 있으니 독일로의 이주를 원한다면 조건없이 받아들이겠다고 내걸었다.

역사에서 히틀러는 바나트를 자치주로 만들어 나라 안의 나라로 만들었지만, 바나트 지방에 거주하는 독일계 주민의 수는 20%로 나머지는 세르비아인 아니면 유대인들이었기에 자치주를 세울 명분도 빈약하거니와 그러고픈 생각도 없었다.

따라서 이주를 원하는 지원자만 받아서 냉큼 철수하는 게 답.

세르비아에서 파르티잔들이 활동했다는 보고는 아직 없지만, 얼마 못 가 놈들은 활동을 개시할 것이다.

요시프 브로즈 티토가 이끄는 유고슬라비아 파르티잔은 독소전쟁이 발발하기 전까지 활동하지 않았지만, 훗날 변절하게 되는 체트니크를 비롯한 우익계열 민병대들은 다를 터.

세르비아 왕국의 새로운 국왕으로 조카에게 쫓겨나 유폐되었던 파블레 왕자를 앉혔다.

전쟁 터지기 무섭게 국가와 국민은 나 몰라라 하고 루마니아로 튄 페타르 2세와 정부 인사들에 대한 여론이 너무나 나빴기에, 파블레 왕자가 세르비아의 국왕이 되는 것에 대해선 의외로 반발이 적었다.

이제 ‘파블레 왕자’가 아닌 ‘파블레 1세’로 불리우게 된 그는 왕실 재산 일부를 국민을 위해 기부하겠다는 뜻을 밝혀 민심의 회복을 시도했다.

동시에 독일에는 포로로 잡힌 병사들의 송환을 요구했는데, 이 연극에 맞춰 나는 유고슬라비아군 부상병들을 세르비아로 송환했고, 전쟁으로 망가진 세르비아의 경제 사정을 고려해 배상금도 딱 형식적인 수준의 금액만 요구했다.

포로 석방과 배상금 건으로 파블레 1세를 향한 세르비아인들의 지지도는 소폭 상승했으며, 반독 감정도 조금이나마 줄어들었다.

“이걸로 세르비아 문제도 일단락이군. 참 정신없이 바쁜 한 달이었어.”

“고생하셨습니다, 총통 각하."

이걸로 끝이면 좋을 텐데....

....그런데 왜 계속 찜찜한 기분이 드는 거지?

***

1941년 5월 19일

독일 베를린 신 총통관저

발칸반도 문제가 일단락된 지 얼마나 지났다고 또 귀찮은 일이 생겼다.

러시아 공산주의자 친구들이 회담을 요청해온 것이다.

“하여간 이 작자들은 꼭 남이 쉬려고 할 때 불쑥 찾아온다니까.”

거절할 이유가 없었기에 소련 대표단의 방문을 수락했지만, 모처럼의 휴식을 즐기던 나로서는 그들의 방문이 여간 달갑지 않았다.

하지만 어쩌겠나. 본래 한 국가를 책임지는 지도자의 자리는 막중한 것이거늘.

그리고 이번 독일 방문에는 소련 외무인민위원 뱌체슬라프 몰로토프 외에 스탈린의 불알친구 클리멘트 보로실로프와 소련 육군참모총장 보리스 샤포시니코프 등, 소련에서 알아주는 거물급들이 온다니 신경을 안 쓸 수가 없다.

소련 대표단을 맞이할 준비를 하며 정신없이 시간을 보낸 결과, 어느새 약속 당일이 되었다.

2시간 30분 전에 소련 대표단을 태운 전용기가 템펠호프 공항에 도착했다는 보고를 받았다. 대표단의 영접을 맡은 리벤트로프가 공항에서 같이 점심을 먹고 온다고 했으니 슬슬-

“총통 각하. 소련 대표단이 도착했습니다.”

....호랑이도 제 말하면 온다더니.

그럼 어디 우리 빨갱이 친구들을 만나러 가볼까.

***

“베를린에 온 것을 환영하오. 아돌프 히틀러요.”

집무실로 들어온 러시아 방문객들에게 나는 미소를 지으며 환영 인사를 건넸다.

이젠 감정이나 생각에 상관없이, 언제 어디서든 원하는 미소를 지을 수 있다. 오랜 정치 생활이 가져다준 능력이랄까.

보로실로프, 샤포시니코프, 몰로토프 셋 다 내 앞이라 그런지 살짝 긴장한 기색이 엿보였다. 스탈린 밑에서 구를 대로 구른 인간들이라 어지간한 강심장들인 줄 알았는데, 아니었나?

“환대에 감사드립니다, 총통 각하.”

셋 중에서 가장 스탈린과 친한 보로실로프가 셋을 대표해서 내게 말했다.

그의 양옆에 선 샤포시니코프와 몰로토프의 어색함이 섞인 웃음을 받으며 나는 너스레를 떨었다.

“환대는 무슨. 급하게 준비하느라 제대로 대접도 못했는데. 그래, 그대들의 스탈린 서기장께선 잘 계시오?”

“서기장 동지께선 잘 지내십니다. 그렇잖아도 서기장께선, 제게 이것을 총통께 꼭 전해달라고 신신당부하셨습니다.”

보로실로프가 꺼낸 것은 스탈린의 친필편지였다.

편지는 다소 놀랍게도 독일어로 적혀 있었다. 스탈린이 독일어를 할 줄 알았나? 그런 소리는 듣지 못했는데?

아마 독일어를 할 줄 아는 누군가에게 대필을 시켰거나, 통역가가 써준 글을 본인이 베껴서 썼을지도 모르겠군.

편지의 내용은 별거 없었다.

소련과 독일의 우정이 계속되기를 희망하며, 소련이 독일에 도움이 될 테니, 독일도 소련에 더 많은 도움을 달라는 게 편지 내용이었다.

이때 눈치를 챘어야 했다. 이 작자들 입에서 무슨 말이 나올지.

“요 근래에 발칸반도에 있었던 독일의 군사행동으로 인해 서기장 동지께선 근심이 많으십니다.”

내가 그 말을 듣고 불편해하리라고 알고 있었던 모양인지 보로실로프는 말을 마치자마자 내 눈치를 살폈다.

눈치 볼 거면 애초에 말을 말던가. 해놓고 살피는 건 또 뭔지.

“근심이 많다라.... 누가 들으면 내가 일부러 소련을 자극하기 위해 전쟁을 벌인 줄 오해하겠구려.”

“아아, 절대로 그런 뜻이 아닙니다.”

입가에 미소를 거두고 정색을 하자 보로실로프는 당황한 듯 손사레를 쳤다.

“단지 있는 사실 그대로를 전했을 뿐입니다. 오해하지 마십시오.”

“이 자리는 양국의 우호관계의 증진을 위해 마련된 자리 아닙니까? 조금은 발언에 신중을 기울이셨으면 합니다.”

리벤트로프가 말했다. 리벤트로프도 소련 대표단의 입에서 저런 발언이 나올 줄 미처 예상 못했는지 적잖이 당황한 눈치였다.

그러나 소련 대표단의 발언은 이제 막 시작되었을 뿐이었다. 아직 진짜가 남아있었다.

“서기장 동지께선 독일이 소비에트 연방의 이란과 아프가니스탄, 아라비아 반도 및 인도양, 발칸반도 진출 계획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 알고 싶어 하십니다.”

몰로토프의 발언이 끝나자 리벤트로프와 괴링, 카이텔, 레더의 시선이 일제히 내게로 쏠렸다. 이 자리에서 나 말고는 섣불리 대답할 수 없는 질문이었기에.

나는 몰로토프가 저 질문을 한 의도에 대해 생각해봤다. 의도된 도발인가? 그도 아니면 문자 그대로의 의미일까.

다른 사람도 아니고 감히 내게 몰로토프가 의도적으로 도발을 걸어올 리는 없었다.

상대도 상대거니와 내가 만약 분노하여 자리를 박차고 나간다면, 몰로토프는 그날로 끝장이었다. 별 시덥잖은 이유로도 사람을 파리 잡듯이 잡아 죽인 스탈린인데, 중요한 회담을 망친 몰로토프를 살려둘 것 같지 않았다.

마지막으로 몰로토프의 이마와 목덜미에 흐르는 흥건한 땀이 계획된 도발이 아닌 문자 그대로의 의미라는 증거였다.

나는 질문에 바로 대답하는 대신 몰로토프에게 '가벼운' 농담을 건넸다.

“질문이 무척 직설적이군. 그대들의 서기장께서 그대에게 지시한 거요?”

“.....!”

“그, 그것이....”

몰로토프의 얼굴이 백지장처럼 새하얗게 변하고, 보로실로프와 샤포시니코프는 질문을 받은 당사자가 아닌데도 식은땀을 흘렸다.

정곡을 찔려서일까.

“허허, 긴장들 하기는. 농담이오, 농담. 나도 눈치가 있는 사람이라 알고 있는 것과 말할 수 있는 것의 차이 정도는 안다오.”

“그렇습니까....”

“이미 발칸반도는 우리 독일이 차지하지 않았소? 솔직하게 말해서, 귀국이 발칸반도로 진출하고자 한다면 썩 달갑게 받아들이기 힘들 거요.”

내 발언이 너무 돌직구였는지 소련 대표단은 대번에 표정이 얼어붙었다.

합석한 리벤트로프와 괴링, 카이텔, 레더도 내가 대놓고 말할 줄은 몰랐는지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다.

“하지만, 독일과 소련은 과거와 달리 상호이익의 증진을 도모하는 사이가 되었잖소. 그러니 귀국이 인도양으로 진출하고자 한다면 딱히 지지하지 않을 이유는 없소. 독일의 이익을 해치지 않는다는 조건 하에서 말이오.”

“그 말인 즉, 독일은 소련의 중동 진출을 지지한다는 의견으로 봐도 되겠지요?”

“그렇게 해석해도 좋을 것 같소.”

“역시. 총통 각하께선 진정으로 소련을 우방으로 여기고 계시는군요. 서기장 동지께서도 무척 기뻐하실 겁니다.”

얼어붙었던 분위기는 언제 그랬냐는 듯이 화기애애해졌다. 최소한 겉으로 보기에는.

스탈린은 내 의중을 떠보기 위해 이 3명을 베를린으로 보낸 듯했다. 나는 이 자리에서 그들이 독일과 소련의 영역을 명확히 구분짓자고 말할 줄 알았지만, 회담이 끝날 때까지 그런 얘기는 더 이상 나오지 않았다.

이후로는 독일이 소련에 넘겨줬으면 하는 것들에 대한 논의만 이어졌다.

지금까지 독일은 소련에게 각종 기계류와 광학설비, 아트미랄 히퍼급 중순양함 뤼초의 선체와 비스마르크 전함의 설계도, 4호 전차 A형과 PaK 36, Fi 156 슈토르히 정찰기와 연간 300만 톤의 석탄을 넘겨줬고,

소련은 그 대가로 자국의 철도망과 수로, 항구를 이용할 수 있는 권리와 220만 톤의 농산물, 100만 톤의 석유와 목재, 2만 6천 톤의 크롬, 1만 4천 톤의 구리, 3천 톤의 니켈, 500톤의 몰리브덴과 텅스텐, 그리고 자국으로 망명한 독일 공산당원 및 반나치 인사들을 제공했다.

몰로토프는 독일로 밀입국을 시도하는 반동분자들의 수가 매일같이 늘고 있다며 불만을 토로했다. 몰로토프가 말한 반동분자들은 주로 리투아니아인과 폴란드인이었고,

그다음이 우크라이나인, 라트비아인, 에스토니아인과 반공주의 성향의 러시아인과 벨라루스인이었다.

놈은 우리가 밀입국자들을 일부러 잡지 않고 그냥 방치한다고 말하고 싶어하는 눈치였지만, 내 앞이라 차마 말은 못 하고 대신 독일의 국경 경비에 헛점이 많은 것 같다고 우회적으로 돌려서 말했다.

그 말에 카이텔이 인상을 찌푸렸고, 그것을 본 나는 그에게 눈으로 신호를 보냈다.

'이 건은 내가 맡겠소.'

'알겠습니다.'

“그놈들은 소련에서 각종 범죄를 저지르고 처벌이 무서워 도주한 범법자들입니다. 독일 측에서 이들의 신병을 확보할 경우 지체없이 소련으로 송환해주십시오.”

“잘 알겠소. 관련 부처에 지시를 내리리다. 국경 순찰도 강화하겠소.”

“감사합니다. 역시 총통께선 결단이 무척 빠르시군요.”

내가 일말의 고민도 없이 수락하자 몰로토프는 만족한 듯 웃음꽃을 피웠다.

뻥인데.

내가 누구 좋으라고 그 짓을 하겠냐.

물론 소련이 우리 측 반역자들을 꼬박꼬박 송환해주는 것은 고마운 일이긴 하나, 그렇다고 소련에 빚을 졌다고 생각하면 오산이다.

사냥꾼도 제 품에 날아든 새는 잡지 않는 것처럼 나는 적어도 우리가 좋다고 오는 사람들은 배신하지 않거든.

통수가 일상인 너희들은 이해하지 못하겠지만, 최소한의 인륜은 지키고 산다, 이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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