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히틀러가 되었다-109화 (109/150)

< 꺼지지 않은 불씨 (5) >

내가 파벨리치에게 요구한 조건들은 다음과 같다.

세르비아인의 학살을 금지하고 가급적 추방만 할 것, 그리스 정교나 이슬람교 등 타 종교를 차별하거나 억압하지 말 것.

짐작했겠지만 이 모든 것들을 착실하게 자행한 게 우스타샤다.

우스타샤는 세르비아인과 유대인 외에도 그리스 정교회 신자들이나 무슬림을 지독하리만큼 탄압했고, 자연스레 파르티잔에 동조하는 사람들만 많아지는 악순환만 낳았다.

마지막으로 내건 조건은 크로아티아의 항구와 조선소, 철도 및 광산과 제철소를 독일이 관리할 것.

크로아티아의 연간 보크사이트 채굴량은 약 50만 톤으로, 독일 전체 알루미늄 수요의 무려 40퍼센트 이상을 차지하기에 반드시 차지해야 했다.

자기 명줄이 전적으로 내 결정에 달려있다는 것을 알기에 파벨리치는 내가 내건 조건들을 군말 없이 수용했다.

세르비아인과 그리스 정교회, 무슬림 건에 대해선 아직 불만이 조금 있는 듯했지만, 딱히 반박은 하지 않은 걸로 봐선 이대로 수용하려는 듯싶었다.

“크로아티아가 독일에 협력하니 독일도 크로아티아의 발전을 최대한 도울 것이오. 그래, 우선 크로아티아가 발전하려면 독일의 과학 기술과 기술력이 필요하겠지. 그리고 나라를 지키려면 무기도 필요할 테고.”

“역시! 총통께선 진정으로 마음이 깊으시군요!”

신생 크로아티아군을 무장시킬 무기와 장비의 지원을 언급하자 파벨리치의 얼굴에 남아있던 불만이 쏙 들어가고 환한 미소가 대신 자리를 차지했다. 쉽구만, 쉬워.

유고슬라비아 침공 사흘째인 4월 18일에는 헝가리가 참전을 선언했다.

이미 헝가리는 자국의 철과 활주로를 우리에게 제공해 유고 침공을 뒤에서 지원하고 있었는데, 독일군의 선전을 보자 자기들도 늦기 전에 참전해야 뜯어먹을 게 있다고 판단한 것이리라.

“불가리아는 어찌 되었소?”

“불가리아도 참전할 의사를 내비쳤습니다만, 아직 군의 이동과 배치가 완료되지 않아 시간이 조금 걸릴 것으로 예상됩니다.”

유고슬라비아와 관계가 좋은 루마니아는 철저한 중립을 지키고 있지만, 헝가리만큼이나 유고슬라비아를 증오하는 불가리아는 참전을 준비 중이다.

실제 역사에서 불가리아는 독일을 따라 추축국에 가입했지만, 유대인 학살 문제로 독일과 자주 충돌했고 유고 침공 당시에도 독일군에게 길을 내주는 등 어느 정도 협력했지만, 직접적으로 침공에 가담하지 않았다. 그러나 여기서는 내가 유대인 문제를 해결하고, 영국과도 조기에 평화협정을 맺은지라 역사보다 훨씬 적극적으로 독일에 협력하고 있었다.

“페타르 2세와 그 똘마니들은 아직도 유고에 있나?”

“그자들은 어제부로 루마니아로 도주했습니다, 총통 각하.”

하이드리히가 비릿한 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전쟁을 일으킨 최종원흉인 페타르 2세와 정부 수반들은 짐을 바리바리 싸 들고 재빨리 루마니아로 도망쳤다.

자기들은 안전한 루마니아로 도망치면서, 정작 국민과 군에겐 최후까지 항전하라는 지시를 내렸다고 한다.

전쟁을 일으킬 땐 언제고, 역으로 침공당하는 입장이 되니 외국으로 빤스런. 국군의 북진 후 평양에서 빤스런한 김일성이 생각나는군.

참 한심하기 짝이 없는 놈들이다. 그럴 거면 전쟁을 일으키지 말았어야지.

“세르비아인들은 이 사실을 알고 있으려나?”

“아직 모를 겁니다.”

“그럼 알려줘야지.”

***

1941년 4월 19일

유고슬라비아 그라디슈카

“공습이다!”

“모두 대피!”

“이런 씨발!”

독일군의 포격에서 겨우 살아남아 주린 배를 채우기 위해 야전취사차 앞에 벌떼처럼 모여들었던 병사들은 공습이란 소리에 반합을 내팽개치고 황급히 참호로 뛰어갔다. 19살 이등병 라도반 파르예키비치 일병도 남들처럼 배식을 포기하고 참호로 되돌아갈 수밖에 없었다.

“개좆같은 독일 새끼들. 밥도 못 처먹게 하냐!”

이틀 내내 포격에 시달리느라 유고슬라비아 병사들은 빵 한 조각, 물 한 모금도 마시지 못해 모두가 지치고 굶주린 상태였다.

이제 겨우 배를 좀 채우나 싶었는데, 이번에는 공습이라니.... 라도반은 미치고 팔짝 뛸 노릇이었다.

그러나 공습이란 말이 무색하게, 하늘에 나타난 독일기는 겨우 한 대뿐이었다.

특이하게 생긴 외형 때문에 독소전쟁의 소련군으로부터 ‘하늘을 나는 액자’라는 별명이 붙은 Fw189 우후(Uhu, 수리부엉이) 정찰기였다.

“대공사격해, 새끼들아!”

적기가 한 대밖에 보이지 않자 중대장이 소리쳤다. 그러나 병사들은 창공을 맴도는 적기를 멍하니 쳐다만 볼 뿐이었다.

중대장이 재차 명령을 내리자, 그제야 몇 명이 소총으로 대공사격을 가했지만 적기에는 닿지 않았다.

“어어?”

“뭐야?”

Fw189의 하부에서 수천 장의 삐라가 살포되자, 폭탄을 예상하던 유고슬라비아 병사들은 어안이 벙벙해졌다.

임무를 마친 Fw189는 기수를 돌려 돌아갔고, 병사들은 참호에서 기어 나와 땅에 떨어진 삐라를 주워서 읽기 시작했다.

“.....!?”

“이, 이게 대체 무슨 소리야?”

삐라를 읽던 라도반은 자신의 눈을 의심하지 않을 수 없었다.

삐라에는 세르비아어로 국왕 페타르 2세와 총리 등 정부 고위층들이 루마니아로 도주했다는 글이 적혀 있었다.

우리한테는 싸우라고 지시해놓고, 정작 자기들은 외국으로 도망쳤다고? 병사들은 삐라에 적힌 내용에 적잖은 충격을 받았다.

이게 사실이라면 정부는 그들을 버린 것이나 다름없었다.

애국심으로 가족의 반대를 무릅쓰고 입대한 라도반에게, 국왕이 그들을 버렸다는 얘기는 너무나도 큰 충격이었다.

“삐라에 적힌 글을 믿지 마라! 독일 놈들의 거짓말이야!”

삐라를 줍지 말라고 지시하기엔 너무 늦었기에, 중대장은 삐라에 적힌 글이 독일군이 지어낸 선동이라고 주장했다.

중대장을 말은 들은 병사들은 반신반의했다.

그 말대로 이건 독일군의 선동이고, 국왕은 수도에 남아있을지 모른다. 하지만, 하지만....

만약 이게 진실이라면? 정말로 국왕은 외국으로 도망쳤고, 자신들은 버림받은 것이라면?

국왕이 나라를 버리고 도망쳤는데, 자신들이 나라를 위해 싸울 이유가 있을까?

게다가 상대는 세계 최강의 군대라 불리는 독일군. 폴란드군, 영국군, 프랑스군도 독일군의 상대가 되지 못했는데 삼류 수준에 불과한 그들이 독일군과 싸워 이긴다는 말은 계란으로 바위를 부술 수 있다는 소리나 다름없었다.

중대원 전체가 진실과 거짓 사이에서 갈피를 못 잡고 혼란스러워하는데, 또 한차례 소란이 일었다.

“적이다! 독일군이야!”

말을 탄 기병이 나타나 독일군이 몰려오고 있다고 전한 것이다.

“독일군이라니. 그게 무슨 소리야?”

“최전선이 여기서 30km나 떨어져 있는데?”

“씨발, 거짓말이 아냐! 정말로 독일군이라고!”

병사들이 자세한 내막을 캐묻기 전에 기병은 사령부에 급히 이 소식을 전해야 한다며 쏜살같이 떠나가버렸다.

기병의 말은 거짓말이 아니었다. 잠시 후, 바퀴 구르는 소리가 들리더니 정찰조가 독일군의 출현을 알렸다.

“젠장, 진짜였어!?”

“그럼 가짜겠냐? 빨리 참호에 들어가!”

“주, 중대! 전투 준비!”

라도반은 배고픔도 잊은 채 참호에 들어가 기관총을 잡았다.

그가 사용하는 쇼샤 기관총은 1차대전이 한창이던 1915년에 생산된 녀석이라 툭하면 기능고장을 일으켜 악명이 자자했다.

이런 골동품으로 독일군과 싸울 수 있을지....

이윽고 모습을 드러낸 독일군은 보병 없이 장갑차만 있었다.

독일군의 장갑차는 3대로 모두 Sd.Kfz 234/2 푸마(퓨마) 장갑차였는데, 선두에 위치한 차량에는 거대한 확성기가 부착되어 있었다.

-유고슬라비아군은 들어라!

확성기에서 세르비아어가 나오자, 유고슬라비아군은 독일군이 무슨 의도로 확성기를 장갑차에 설치했는지 알아차렸다.

독일군은 지금 투항을 권유하고 있었다.

-그대들의 국왕과 총리, 총사령관은 그대들을 버리고 루마니아로 도망쳤다. 그대들에겐 목숨을 바쳐 싸울 것을 강요하면서, 정작 자기들은 살기 위해 도망친 것이다. 이런 한심한 작자들을 위해 하나밖에 없는 목숨을 포기할 셈인가?

인생은 한 번뿐이다. 이미 그대들은 전쟁에서 패배했다. 하지만 총통께옵선 자비를 베푸시어, 그대들이 싸우지 않고 얌전히 항복한다면 조속한 시일 내에 모두 고향으로 돌려보내 주시겠다고 약속하셨다. 총통께선 결코 약속을 어기시지 않는다. 이미 영국군도 프랑스군도, 이탈리아군도 모두 포로 신세에서 해방되어 집으로 돌아갔다.

그대들이 살아서 무사히 돌아오기만을 기다리는 가족과 고향 사람들을 생각해라. 시간은 5분 주겠다. 항복하면 살려서 집으로 보내줄 것이고, 항복하지 않는다면 우린 그대들과 싸울 수밖에 없다. 잘 생각하도록.

“.....”

5분. 그들에게 허락된 시간은 겨우 5분 밖에 없었다.

5분이 지나면 독일군은 공격을 개시할 것이고, 대전차포 하나 없는 유고슬라비아군은 햇빛에 노출된 얼음마냥 녹아내릴 것이다.

“야, 라도반. 어떡하지?”

“.....”

동기의 질문에 라도반은 고심했다. 나라를 위해 싸우겠다는 일념으로 입대했건만, 막상 죽음의 위기가 닥치자 살고 싶어졌다.

태어날 때부터 모든 생물에게 내재한 생존본능이 미친 듯이 외치고 있었다. 무기를 버리고 항복하라고. 그럼 살 수 있다고.

시간이 흐를수록 병사들은 초조해졌다. 5분은 3분이 되었고, 이제 그들에게 허락된 시간은 1분밖에 남지 않았다. 앞으로 60초 뒤면 독일군은 공격을 개시할 것이다.

모두가 삶과 죽음 속에서 고뇌하고 있는데, 6명의 병사들이 슬며시 손을 들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참호 밖으로 나와 천천히 걸어가기 시작했다.

“저, 저 새끼들이....!”

분노한 중대장이 권총을 꺼내 들고 투항하는 병사들을 조준했지만, 차마 방아쇠를 당기지 못했다. 전 중대원들이 자신을 바라보고 있다는 것을 눈치챈 것이다.

중대원들의 시선을 받은 중대장은 한 가지 사실을 알아차렸다. 지금 여기서 방아쇠를 당기면, 자신은 살아남지 못한다고. 독일군이 그를 죽이기 전에, 부하들이 그를 죽일 것이다.

중대장이 슬며시 총구를 아래로 내리자, 중대원들은 더는 거리낄 게 없어졌다. 병사들은 참호에 무기를 남겨둔 채 참호에서 나갔고, 라도반과 그의 동기도 참호에서 나갔다.

전 전선에 걸쳐, 유고슬라비아군의 투항이 줄을 잇고 있었다.

***

페타르 2세는 뒤늦게 자신이 루마니아로 도피했다는 것을 인정하는 방송을 내보냈다.

독일군의 전력이 너무나 막강했기에, 부득이하게 수도를 버리고 도피할 수밖에 없었으며 자신은 최후까지 항전할 것이라고 주장하는 국왕의 말에 호응하는 유고슬라비아인들은 많지 않았다.

이미 세르비아와 원한이 깊은 크로아티아인들은 진작에 등을 돌렸으며, 국왕의 절대적인 지지세력인 세르비아인들조차 국왕과 정부가 국민을 버리고 외국으로 도망쳤다는 사실에 큰 충격을 받았다.

가뜩이나 사기도 낮았던 유고슬라비아군은 더욱 빠르게 붕괴했고, 아군이 나타나기도 전에 사단이 통째로 와해되는 일이 다반사였다.

4월 21일.

유고슬라비아의 수도 베오그라드는 아군에게 함락되었다.

다음날, 불가리아가 참전했고 알바니아군도 반격을 개시하여 유고슬라비아 영토에 발을 디뎠다.

유고슬라비아군 잔당들은 아군과 헝가리군, 불가리아군의 공세에 차례차례 분쇄되거나, 무기를 버리고 달아났다.

아군은 도주하는 적들을 잡지 못했는데, 투항해오는 적군이 워낙 많아 이들을 관리하는 것만으로도 벅찼기 때문이다. 참 기가 막힌 사유가 아닐 수 없었다.

4월 23일.

국왕과 달리, 유고에 남아 마지막까지 군을 지휘하던 유고슬라비아군 총사령관 다닐로 칼라파토비치가 항복 문서에 서명했다.

이것으로 유고슬라비아 침공은 일주일 만에 아군의 대승으로 막을 내렸다.

4월 24일, 유고 침공의 승리를 축하하기 위해 나는 Ju52를 타고 베오그라드로 날아갔다.

베오그라드 시내는 아군의 공습으로 심한 피해를 입은 상태였는데, 무너진 건물 곳곳에 휘날리는 하켄크로이츠기를 보고 있자니 음험한 만족감이 느껴졌다.

아군의 피해가 손에 꼽을 정도로 적다는 카이텔의 보고도 내 기분을 들뜨게 했다.

유고 침공에서 아군이 입은 피해는 전사, 부상 모두 합쳐 190여 명에, 전차 및 장갑차 4대 손실, 항공기는 단 15대만 격추되었다.

유고슬라비아군 7만 명이 전사, 400대의 전차와 차량이 격파당하고 항공기 50대가 격추당하며, 34만 명이 포로로 잡히는 동안 아군은 200명도 채 되지 않는 피해만 본 것이다.

유고슬라비아라는, 발칸반도의 절반에 달하는 거대 국가를 장악하는데 이 정도 피해만 낸 것은 역사상 전례 없는 일.

독일 전역은 축제 분위기가 되었으며 모든 라디오 방송들이 일제히 독일인의 노래와 호르스트 베셀의 노래를 내보내며 마음껏 승리를 축하했다.

아군이 장악한 베오그라드에서도 호르스트 베셀의 노래가 흐르는 가운데, 나는 유고 침공에서 대활약한 군인들에게 훈장을 수여했다.

수여식이 진행된 곳은 유고 왕실이 거주하던 신 왕궁으로 폭격을 맞아 파괴되어 건물 내부 곳곳에 잔해더미가 쌓여있었지만, 나는 일부러 그것들을 치우지 말고 방치해두라고 지시했다.

“이것들까지 사진에 찍혀야 우리가 거둔 승리가 더욱 돋보일 게 아닌가.”

겸사겸사 적들에겐 더더욱 큰 수치심도 줄 수 있고. 국군이 박살 난 주석궁에서 승전 기념식을 거행한다고 생각해봐라. 얼마나 뽕 차냐.

그런 의미에서 나는 일부러 사진에 잔해더미와 깨진 창문이 나오게끔 찍으라고 지시했다.

“지금부터 훈장 수여가 있겠습니다.”

훈장의 첫 수여자는 유고슬라비아 침공작전을 세우고 이를 진두지휘한 브라우히치.

폴란드 침공에서의 전공으로 기사십자장을 받았던 그는 유고슬라비아 침공을 성공으로 이끈 공로로 기사십자장보다 급이 높은 백엽기사십자장을 수여받았다.

브라우히치 다음은 제12군 사령관 빌헬름 리스트와 제1기갑군 사령관 에발트 폰 클라이스트였다.

이 두 명은 이미 기사십자장을 받았으므로 독일 십자훈장 금장이 수여되었다.

4번째 수여자는 제1SS기갑군단을 이끌고 최초로 유고 국경을 넘은 파울 하우서 SS 상급대장.

노련한 군인이었던 하우서는 내 기대에 걸맞은 활약을 보여줌으로 SS기갑군단의 창설을 반대하던 국방군 장성들을 입을 다물게 했다.

나는 그의 목에 기사십자장을 걸어주며 그와 악수했다.

“앞으로 SS가 지략이 없다는 소리는 나오지 않을 거요.”

“감사합니다, 총통 각하. 다 총통께서 저를 믿어주신 덕분입니다.”

“이 사람, 내가 한 게 뭐가 있다고.”

가장 마지막 수여자는 훈장 수여 대상자 중 유일한 위관급 장교, 프리츠 클링엔베르크 SS 대위였다.

오토바이 중대의 중대장인 클링엔베르크는 상부로부터 다뉴브 강의 교량을 장악하라는 지시를 받고 이동했다가 강의 모든 다리가 끊어진 것을 발견했다.

보통의 지휘관이라면 이 사실을 상부에 보고하고 본대의 도착을 기다렸겠지만, 그는 중대원 6명을 데리고 요트를 타고 강을 건넜고, 이후 유고슬라비아군과 조우하자 “곧 대군이 나타날 것”이라 협박하며 항복을 요구했다.

클링엔베르크의 뻥카에 속아 넘어간 유고군은 지체없이 항복했고, 클링엔베르크와 6명의 SS 병사들은 베오그라드로 향하면서 만나는 유고군들에게 항복을 권유했다.

그렇게 클링베르크는 수천 명에 달하는 포로들을 이끌고 베오그라드에 도착했고, 클링엔베르크 ‘무리’의 규모에 놀란 베오그라드 시장은 클링엔베르크에게 시청 열쇠를 바치며 항복을 선언했다.

에서나 나올법한 한 편의 시트콤 같은 활약을 펼친 공로로 클링엔베르크에겐 SS 소령으로의 진급과 기사십자장 수여가 결정되었다.

“나중에 손자들에게 이 얘기를 해주면 깜짝 놀라겠군.”

“그보다는 지루해할 것 같습니다, 총통 각하.”

“크하하하하!”

이거 이거, 정상인의 범주에서 벗어난 건 알고 있었는데 유머 감각도 남다른 친구구만? 볼수록 마음에 드는 친구일세.

유고슬라비아가 무너졌으니, 이제 남은 건 그리스뿐.

유고슬라비아가 침공당하던 당일까지 알바니아 남부를 그리스 영토로 인정해주면 휴전협정에 응하겠다며 배짱을 부리던 그리스는, 유고가 일주일 만에 무너지자 그제야 전쟁 이전의 국경으로 되돌아가라는 독일의 요청을 수락하겠다고 알려왔다.

그런데 이걸 어쩌나.

이미 열차는 떠난 지 오래인데.

좋게 말할 때 듣지 않았으니, 이제 그 대가를 치러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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