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꺼지지 않은 불씨 (2) >
1941년 4월 6일.
무수한 경고에도 불구하고 유고슬라비아는 끝내 알바니아를 침공했다.
“이, 이 개새끼들이.....!”
참고로 이날은 실제 역사에서 나치 독일과 이탈리아가 유고슬라비아를 침공한 날이다.
역사에서라면 타국의 침공을 받았을 놈들이, 다른 나라를 공격하는 침략자가 되다니. 역사란 게 참 아이러니했다.
아무튼 유고슬라비아의 침공을 받은 알바니아는 즉시 우리에게 헬프를 쳤고, 나는 유고 대사를 불러 직접 경고했다.
지금 당장 침공을 중단하고, 병력을 국경 뒤로 물리라고. 그렇지 않을 경우, 유고슬라비아에 경제적, 군사적 제재를 가할 것을 검토하겠다고.
그런데 이틀 뒤, 유고슬라비아가 역으로 제안을 걸어왔다.
“알바니아 침공을 묵인해주면, 우리가 알바니아에서 누리고 있는 이권을 그대로 보장하겠다고?”
“거기에 면세 혜택을 제공하고 크롬, 보크사이트, 구리 등 광물의 수출을 늘리겠다고 했습니다.”
대충 알바니아 먹는 거 넘어가 주면, 뽀찌 좀 찔러주겠다 이거군.
이걸 어떻게 해야 하나?
“우리가 놈들의 제안을 받아들인다면, 나중에는 더 기어오를 가능성이 있지 않겠소? 차라리 이때 제대로 밟아줘야 한다고 본다만.”
“하오나 총통 각하, 알바니아 같은 소국을 위해 저희가 굳이 수고할 필요가 있겠습니까?”
유고슬라비아가 제시한 딜은 과연 효과적이었다. 내가 유고를 응징해야 한다는 뜻을 밝히자 곧바로 브라우히치가 반론을 제기했다.
“국민은 이제 막 평화에 익숙해졌습니다. 다시 전쟁을, 그것도 알바니아를 지키기 위해 전쟁을 해야 한다는 말에 섣불리 공감하지 못할 것입니다.”
“하지만 우리가 알바니아를 포기하면, 다른 동맹국들의 독일에 대한 신뢰가 흔들리지 않겠소?”
“총통 각하. 알바니아가 독일과 가까운 사이인 것은 분명합니다만, 정식으로 동맹을 맺은 동맹국은 아닙니다. 그리고 외람되오나 총통께선 재작년에 알바니아가 이탈리아에 합병되었을 때도 중립을 지키시지 않으셨습니까?”
이 양반이 갑자기 훅 치고 들어오네? 사람 찔리게시리.
“원수, 그건 폴란드 침공이라는 중요한 대업을 앞두고 이탈리아와 분쟁을 일으킬 필요가 없었기에 그런 거 아니오. 그때랑 지금이랑 상황이 같소?”
샤흐트도 경제에 부담이 된다는 이유를 들면서 참전에 반대했다.
유고슬라비아가 약속을 지킨다면, 알바니아가 멸망해도 독일 경제에는 아무런 타격이 없을 것이다.
오히려 싼 가격에 유고슬라비아로부터 농산물과 광물을 들여올 수 있으므로 경제회복에 큰 도움이 된다.
하지만 유고슬라비아가 어떤 나라인가. 유고슬라비아를 지배하고 있는 세르비아인들은 1차대전을 일으킨 최종 원흉이자, 끊임없이 팽창을 추구하는 과격주의자들.
저들이 과연 알바니아에서 만족할까? 절대 아니지.
우리가 알바니아를 합병하도록 내버려 둔다면, 놈들은 틀림없이 새로운 분쟁을 일으킬 게 분명하다.
알바니아 다음에는 불가리아나 헝가리가 될지 모르고 나아가 영국과 소련을 끌어들여 발칸을 새로운 세계대전의 도화선으로 만들지도 모르는 일이다.
물 한 잔으로 끌 수 있는 불이 집 전체로 번지게 내버려 둘 수는 없는 노릇. 불씨를 발견하면 사전에 제거해야 한다.
“세르비아인들이 어떤 민족인지 다들 잘 알지 않소? 놈들은 절대로 알바니아에서 만족하지 못하고 끊임없이 새로운 희생양을 몰색할 거요. 불가리아, 헝가리, 나아가 독일까지 위협할지 모르지. 그렇게 되면 오히려 피해가 더 커질 것이라 보는데 차라리 지금 제압할 수 있을 때 제압하는 것이 낫지 않겠소?”
“저도 총통 각하의 말씀이 맞다고 생각합니다.”
카이텔이 즉각 찬성했고, 내 의도를 눈치챈 괴링과 힘러, 리벤트로프도 동의를 표했다.
하지만 브라우히치와 요들, 샤흐트는 끝까지 찬성하지 않았다.
뭐하러 그런 소국을 위해 우리가 피를 흘려야 하냐는 게 셋의 공통된 입장이었다.
그 사이 발칸에서 시작된 불씨는 빠른 속도로 커지고 있었다.
3일 후인 4월 9일에, 그리스가 알바니아 때리기에 동참을 선언한 것이다.
“하다 하다 이젠 그리스까지 우릴 엿 먹이는군.”
결국, 우리의 경고는 두 나라에 전혀 통하지 않은 것이다.
영국, 프랑스, 이탈리아까지 굴복시킨 터라 으름장만 놔도 알아서 길 거로 생각했는데, 아무래도 내가 독일의 국력을 너무 과신한 게 아닌가 싶다.
그도 아니면 이 두 놈이 제대로 미쳤거나. 유고슬라비아야 원래 정상과는 거리가 먼 놈들이었으니 그렇다 해도, 그리스까지 땅따먹기에 미쳐있을 줄은.
“그리스까지 우리의 경고를 무시할 것이라곤 생각도 못했는데.... 리벤트로프, 자네 생각은?”
“아무래도 독일과 거리가 멀어서 상대적으로 안전하다고 여겨서 그런 것 아니겠습니까? 독일이 그리스를 침공하려면 유고슬라비아를 거쳐야 하는데, 우리가 굳이 그런 수고를 할 리가 없다고 판단한 것 같습니다.”
즉, 우리가 못 때릴 것 같으니까 무시했다 이거로군. 괜히 더 열 받는데?
“유고 대사에게는 내 경고가 아직 전해지지 않은 건가?”
“제가 분명히 전달했습니다, 총통 각하.”
리벤트로프는 분명 이틀 전에 유고 대사에게 내 경고를 전달했다.
그런데도 유고는 침공을 중단하지 않았고, 되려 그리스까지 전쟁에 끼어들게 했다.
“총통 각하, 알바니아 대사로부터 회견 요청이 들어왔습니다.”
“안 그래도 언제 오려나 싶었네.”
알바니아 대사는 득달같이 달려와 눈물 콧물을 짜내며 독일의 지원을 읍소했다(진작에 독일과 동맹을 맺어야 했다는 한탄과 자아비판도 빠뜨리지 않았다).
우선 독일은 알바니아를 위해 할 수 있는 노력을 다할 것이라는 말로 대사를 진정시킨 뒤, 저녁에 긴급회의를 열었다.
“거듭된 경고에도 유고슬라비아는 전쟁을 멈추지 않았소. 심지어 그리스까지 오늘 참전을 선언했지. 유고슬라비아의 행동에 자신감을 얻어서 그런지는 몰라도, 이는 독일에 있어 결코 좋은 일이 아니오.
우리가 가만히 있다면, 두 나라는 앞으로도 우리의 말을 듣지 않을 거요. 할 줄 아는 거라곤 말뿐이고, 실천은 않는 나라라고 생각하겠지. 이는 자연스레 다른 나라로 전파될 것이고, 끝내는 어떤 나라도 우리와 가까이 지내려 하지 않을 것이오.”
“총통 각하. 그것은 지나친 비약입니다. 독일처럼 막강한 나라를 어느 나라가-”
브라우히치가 손을 들고 반론을 제기했지만, 나는 무시하고 말을 계속 이어갔다.
“그러니까 생각해보시오. 그토록 막강한 군사력을 가졌으면서, 정작 써먹질 않으니 어떤 나라가 우릴 믿겠소? 그리고 내가 말하지 않았나? 세르비아인들은 만족을 모른다고. 놈들은 1차대전을 일으킨 원흉들일세. 우리가 여기서 물러나면 놈들이 얼마나 날뛰게 될지 아무도 모르지 않나!”
장군들도 슬슬 사태의 심각성을 눈치챘는지 입을 다물었다. 역시 말투를 바꾼 게 효과적인 듯했다.
“리벤트로프 장관.”
“예!”
“유고 대사와 그리스 대사에게 전하시오. 이번이 마지막 경고라고. 폴란드, 영국, 프랑스, 이탈리아도 박살 낸 독일인데, 그깟 유고슬라비아 하나쯤은 상대 못 할 것 같냐고. 그리스 대사에겐 유고슬라비아만 믿고 날뛰다간 어떤 보복을 당할지 모른다고 하시오.”
“알겠습니다, 총통 각하. 즉시 전달하겠습니다.”
“그리고.... 괴벨스 박사?”
“예, 총통 각하.”
“간만에 박사가 잘하는 주특기를 사용해야할 것 같소.”
“맡겨만 주십시오!”
괴링과 카이텔, 브라우히치에겐 오스트마르크 남부로 병력을 이동시키라고 명령했다.
빈말이 아니라는 것을 행동으로 보여준다면, 정신 좀 차리겠지.
***
1941년 4월 10일
베를린 방송국
“박사님. 방송 시작까지 1분 남았습니다.”
오랜만에 자신이 활약할 기회가 생긴 괴벨스의 두 눈은 초롱초롱하게 빛나고 있었다.
전쟁이 끝난 것은 분명 기쁜 일이지만, 동시에 자신이 활약할 무대가 사라지게 되어 한동안 들러리 신세가 된-괴벨스의 생각으론-그에게 이번 일은 총통께 자신의 가치를 다시 한번 입증할 좋은 기회였다.
총통 앞이라 내색할 수 없어서 그렇지, 마음 같아선 자신에게 이토록 절호의 기회를 만들어준 유고슬라비아와 그리스에 키스라도 보내고 싶은 마음이었다.
“30초 전입니다!”
“흠, 흠.”
방송 시작에 앞서 괴벨스는 목청을 가다듬었다. 독일 국민뿐만 아니라 전 세계의 사람들이 듣는 방송이니만큼 목소리가 일그러지거나 헛기침이 나오는 불상사가 있으면 안 된다.
자신의 입에서 나오는 말은 곧 총통의 말이고, 총통의 말은 독일의 말이다. 그러니 어찌 신경을 쓰지 않을 수 있겠는가.
방송국 스태프로부터 사인이 떨어지자 괴벨스는 외워 둔 원고의 내용을 떠올리며 연설을 시작했다.
“친애하는 독일 국민 여러분. 며칠 전 우리 독일의 도움으로 독립을 쟁취한 알바니아가 주변국들로부터 부당한 침략을 받았습니다. 총통 각하께선 매우 진노하시면서 침략의 당사자들에게 즉시 전쟁을 멈추라고 경고하셨습니다.”
처음에는 차분하게.
“하지만 유고슬라비아와 그리스, 두 국가는 총통 각하의 경고에도 불구하고 현재까지 침략전쟁을 멈추지 않고 있습니다. 어제에도 유고슬라비아군의 폭격기들이 알바니아의 도시들을 폭격해 무고한 수백 명의 시민을 사망케 했습니다. 이는 결코 좌시할 수 없는 폭력이자, 살인입니다!”
서서히 속도를 올려서.
“저는 이 자리에서 총통 각하의 뜻을 우리 모두에게, 그리고 전 세계에 전합니다. 합당한 이유 없이 벌이는 전쟁은 그 자체만으로도 죄악이라고.
이미 사라예보에서의 테러를 일으켜 세계를 절망과 비극의 구렁텅이로 몰아넣은 세르비아인들에게, 그리고 그들과 야합해 유럽의 평화와 질서를 어지럽히는 그리스인들에게 경고합니다.
지금 즉시 전쟁을 멈추십시오. 이것은 마지막 경고입니다. 이다음부터는 절대로 말로 하지 않을 것입니다. 본래의 국경선을 준수하지 않으면 피의 철퇴가 뒤따를 것입니다!”
마지막은 천둥 치듯 요란하고 장엄하게.
“독일은 선제공격을 걸어온 폴란드를 지도에서 지웠고, 평화를 거절한 프랑스와 이탈리아에 대독일의 힘을 보여줬습니다.
유고슬라비아와 그리스, 이 두 나라가 과연 독일을 상대로 승리할 수 있을까요? 그 답은 당사자들이 가장 잘 알고 있을 것입니다.
다시 한번 전합니다. 알량한 욕심으로, 스스로의 목숨과 재산을 가벼이 여기지 마십시오. 수많은 희생 끝에 겨우 쟁취해낸, 평화를 어지럽히지 마십시오. 이는 총통의 뜻이자, 독일 국민 전체의 뜻입니다!”
***
1941년 4월 11일
영국 런던
“후.... 씨발.”
프랑스군 제4흉갑기병사단의 사단장이자, 지금은 자유 프랑스군 수장을 자처하고 있는 드골은 나지막이 욕설을 내뱉으며 라디오 전원을 꺼버렸다.
라디오 뉴스에선 연일 괴벨스의 연설 소식만 내보내고 있었다. 하다 하다 이제는 적국이었던 나라의 선전장관이란 놈 연설이나 틀어대는 꼴이라니. 그렇게나 뉴스거리가 없단 말인가.
“얼빠진 것들 같으니라고.”
명색이 한 나라의 수장 격-드골 본인의 생각으로-인 자신은 지금 런던 으슥한 골목의 허름한 저택에서 기거하는데, 독일의 선전장관은 전 세계의 관심을 독차지하고 있는 현실이라니.
아무리 현실은 냉혹한 법이라지만 이건 너무 가혹한 거 아닌가.
조국 프랑스를 침략자 독일의 압제로부터 해방하겠다는 신념 하나로 영국에 온 드골은 지독하리만큼 높은 현실의 벽에 부딪혀 날마다 쓰디쓴 좌절감만 맛보고 있었다.
영국 총리 핼리팩스는 자유 프랑스 망명정부를 정부로 인정하려고 하지도 않았다.
이미 프랑스 정부가 있는데, 무슨 놈의 자유 프랑스란 말인가?
그는 드골의 회견 요청을 일언지하에 거절하면서, 자유 프랑스에 대해 어떤 지원도 하지 않았다.
영국에 발을 디딜 때까지만 해도 이러한 취급을 받으리라곤 예상하지 못했던 드골은 수치심을 느꼈다.
대령이라 얕잡아 보일 것을 우려해 약식으로 스스로를 소장으로 진급시키고, 부하들도 준장, 대령으로 진급시키며 나름의 정부 구성까지 갖췄지만 소용없었다.
프랑스 정부 호소인에 불과한 그들을, 핼리팩스 내각의 그 누구도 만나려 하지 않았다.
영국 정부의 무시와 푸대접, 타지에서의 거친 생활은 애국심 하나로 뭉쳐있던 자유 프랑스 구성원들을 흔들어 놓았다.
프랑스 본토에 있는 내통자들이 비정기적으로 보내오는 소정의 지원금 그리고 그들과 비슷한 신세인 망명정부들의 도움 덕에 간신히 버티고 있었지만, 하루하루가 고비였다.
할 수 있는 일이라곤 빵과 수프로 이루어진 조촐한 식사를 하루에 두 번 먹으며, 영국인들에게 자유 프랑스를 알리는 선전물을 배포하고 영국 정치인들에게 제발 좀 만나서 우리 얘기를 들어달라고 구걸하러 다니는 게 전부.
거친 망명객 생활에 지친 일부 인원들은 몰래 프랑스행 배를 타고 프랑스로 되돌아가거나 런던의 프랑스 대사관에 출두해 ‘투항’했다.
‘배신자’들 중에는 드골이 중대장 시절부터 안면을 터온 이도 있었기에 충격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대령.... 아니, 각하. 식사하실 시간입니다.”
“고맙네.”
드골의 부관이 문을 열고 들어와 음식이 담긴 쟁반을 내려놓았다. 팬케이크와 시럽, 버터, 계란, 베이컨과 커피로 구성된 소박한 식단.
쟁반에는 음식 외에 프랑스어로 된 신문 한 부도 놓여있었다.
커피를 마시면서 드골은 신문을 집어 들었다. 라디오처럼 신문도 온통 독일 소식뿐이었다.
‘유고슬라비아와 그리스에게 보내는 히틀러의 최후통첩!’
‘독일은 과연 전쟁에 개입할 것인가?’
‘히틀러, 평화를 호소하다!’
“그놈의 독일, 히틀러, 히틀러.... 온 세상이 히틀러 천지로군, 에이!”
짜증이 치민 드골은 신문을 내던졌다.
하지만 사람들이 히틀러에 열광하는 것도 이해 못 하는 것은 아니었다. 객관적으로 볼 때, 히틀러가 이룬 성과는 그 누구도 쉽게 범접할 수 있는 수준이 아니었으니까.
집권한 지 3년 만에 가난한 패전국이었던 독일을 다시 강대국의 반열에 올려놓고, 4년 만에 오스트리아를 합병했으며 오스트리아 합병 3년 뒤, 집권 7년 차에는 체코와 폴란드를 집어삼켰다.
그리고 1년 뒤에는 영국, 프랑스, 이탈리아와 동시에 싸워 두 나라의 항복을 받아내고, 영국과는 강화조약을 맺었다.
독일의 어느 누구도 해내지 못한, 아니 시도조차 하지 못한 일을 히틀러는 해내고야 말았다.
이러니 사람들이 히틀러에 열광할 수밖에. 오늘날 독일에서 히틀러는 사실상 유일신으로 취급 받는 중이고, 바다 건너 미국에서조차 히틀러를 추종하는 개인과 단체들이 폭발적으로 늘고 있다.
그가 기거하는 이곳 영국에서도 히틀러의 추종세력이 판을 치고 돌아다니지 않는가.
대표적으로 BUF 같은 얼간이들과 영국유대인위원회의 종자들.
그놈들은 자기들이 태어난 나라가 영국이란 기본적인 사실도 잊은 모양이지. 한심한 놈들.
겨우 분노를 가라앉힌 그가 식사를 위해 포크와 나이프를 드는데, 조금 전의 부관이 다시 올라와 문을 두들겼다.
“각하, 식사 중에 죄송합니다만 손님이 찾아오셨습니다.”
“손님이라고? 어떤 손님을 말하는 건가?”
영국에 온 뒤로 손님이 된 적은 있어도 손님을 받아본 적은 거의 없었기에 드골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정확히는 손님이라기보단 사자에 가깝습니다.”
“사자? 누가 보낸 사자인지는 들었나?”
“예. 해군장관 윈스턴 처칠이 보냈다고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