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히틀러가 되었다-105화 (105/150)

< 꺼지지 않은 불씨 (1) >

1941년 3월 22일

독일 베를린 신 총통관저

숙부인 파블레 왕자를 내쫓고 권력을 차지한 유고슬라비아 국왕 페타르 2세는 한동안 조용히 지내는 듯 보였다.

하지만, SD와 아프베어에 수집한 정보들은 표면적으로 드러난 모습과 거리가 있었다.

“....유고군이 알바니아 국경으로 집결 중?”

이건 또 무슨 소리란 말인가.

적법한 이유 없이 어느 나라 국경 일대에 병력을 집결하고 있다는 것은 곧 전쟁을 계획하고 있다는 것과 진배없는 소리다.

겨우 총성 없는 유럽이 됐나 싶었는데 다른 한쪽에선 또 전쟁을 준비 중이라니. 내가 곁눈질하자 하이드리히가 대답했다.

“유고슬라비아의 정확한 의도는 아직 파악 중입니다만, 아무래도 독립한 지 얼마 되지 않아 혼란이 덜 수습된 알바니아를 공격해 합병하려는 속셈이 아닌가 싶습니다.”

“일리가 있군. 알바니아와 세르비아는 역사적으로도 사이가 나빴으니까. 그래도 그렇지, 이탈리아에 개망신당한 지 얼마나 됐다고 또 전쟁을 준비 중이라니. 이놈들은 학습능력이라는 게 없는 건가? 1차대전 때도 가만히 있던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을 건드려서 전쟁을 일으키지 않았나.”

“원래 세르비아인들은 주제 파악도 못 하고, 싸움밖에 모르는 족속들입니다.”

사실 이전에도 낌새가 있긴 했었다. 쿠데타를 일으킨 지 얼마 되지 않아 유고슬라비아가 소련으로부터 T-26 300대를 수입한 것이다.

갑자기 소련으로부터 전차를 수입한 것을 두고 여러 추측이 나왔는데, 일전에 보인 추태를 만회할 겸 군사력을 강화하기 위한 시도로 보고 크게 신경 쓰지 않았었다.

하지만 두 달 뒤 유고슬라비아는 추가로 200대의 T-26을 들여왔고, 거기다 DB-3 중폭격기 60대를 수입해왔다.

이외에도 영국과 접촉해 이미 유고 공군이 운용 중인 호커 허리케인을 추가로 주문했다.

군사력 강화를 위한 차원이라고 하나 너무 급작스럽다는 느낌을 받았는데, 이런 꿍꿍이가 있었을 줄이야.

“알바니아는 이 사실을 알고 있나?”

“조만간 눈치챌 것으로 보입니다.”

알바니아와 독일은 정식 동맹 관계가 아니지만, 아무튼 우리의 도움으로 이탈리아로부터 독립하게 된 터라 독일에 대단히 우호적이었다.

자국의 항구들을 무상으로 임대하는 것은 물론, 크롬과 농산물들을 독일에는 매우 저렴한 가격으로 수출하고 있기에 독일에 나름대로 중요한 나라였다.

“알바니아에도 정보를 공유하게. 그리고 내친김에 군사동맹을 맺자고 제안해봐야겠군.”

전에도 나는 알바니아에 군사동맹을 맺지 않겠냐고 제안했지만 조구 1세는 당장은 그럴 필요가 없을 것 같다며 한 발짝 물러났다.

아무래도 너무 친독으로 기울면 여전히 발칸 및 지중해 일대에 상당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는 영국의 심기를 건드릴 수도 있다는 우려 때문이 아닐까 싶었다.

나 역시 알바니아의 입장을 이해 못 하던 것도 아니고, 알바니아와 동맹을 맺어도, 안 맺어도 그만이었기에 별 탈 없이 넘어갔다.

하지만 유고슬라비아가 침공을 준비 중이라면, 조구 1세도 생각이 바뀌겠지.

다시 나라가 사라지게 생겼는데, 그깟 영국이 눈에 들어올까.

“그리고 또 하나. 유고슬라비아뿐만 아니라 최근 그리스의 움직임도 심상치 않습니다.”

“그리스도?”

“예. 표면적으론 정기적인 군사훈련으로 알려져 있습니다만, 훈련치곤 이상할 정도로 병력의 이동이 많습니다. 알바니아 국경과 가까운 그리스 북서부 지역에 집중적으로 병력의 배치가 이루어지고 있는 것도 이상합니다. 아무래도 유고슬라비아와 그리스 사이에 모종의 거래가 있지 않았나 추측 중입니다.”

“자기들 힘만으론 힘들 것 같으니까 그리스를 끌어들인 건가. 욕심은 더럽게 많은 놈들이 이상하게 이런 부분에선 현실적이란 말이지.”

그리스는 유고슬라비아의 우호국으로, 동시에 알바니아와는 이피로스 지방의 영유권을 두고 갈등 중이라 사이가 영 좋지 않다.

독일 유학파 출신인 이오아니스 메탁사스가 총리로 있던 시절의 그리스는 독일과도 나름대로 잘 지냈지만, 안타깝게도 메탁사스는 올해 1월 29일에 사망했다.

메탁사스의 죽음으로 본래 친영국가였던 그리스는 슬며시 독일과 거리를 두기 시작했고.

“외무부가 한동안 바빠지겠군. 리벤트로프와 바이츠제커를 호출하게.”

“예, 총통 각하.”

***

1941년 3월 25일

중국 쓰촨성 난충 시

독일의 외교관들이 발칸반도 일대를 돌며 전쟁을 막기 위해 분주히 움직이는 사이, 난충 시에선 훈련이 한창이었다.

전시에 군사훈련은 드문 일이 아니지만, 이번 훈련은 특별했다.

수천 km를 거쳐 중국에 도착한 독일군 군사고문단 인원들이 국민혁명군 장병들에게 독일제 장비의 사용법을 가르치고, 이를 숙달시키는 제법 중요한 훈련이었다.

자그마치 장제스를 비롯한 국민당 수뇌부까지 참석한 만큼, 장병들의 훈련에 임하는 자세와 마음가짐은 평소와 차원이 다를 수밖에 없었다.

“잘 봐라. 이게 독일제 신형 기관단총이다. 이름은 MP40, 말도 한 방에 죽일 수 있는 9mm 총탄을 사용하며 탄창 1개에 총알 32발이 들어가지.”

주중 군사고문단 소속 독일군 하사가 하는 말을 국민혁명군 장교가 통역해서 병사들에게 말하고, 병사들은 장교의 통역을 들으며 독일군 하사의 행동에 주목했다.

“보통 탄창을 잡고 많이들 쏘는데, 이 경우 사격 시 반동으로 인해 탄창이 휘거나 삽입구가 망가져 급탄 불량 같은 총기 고장을 일으킬 위험이 커지므로 최대한 사양하도록.

MP40의 올바른 파지법은 탄창 뒤 핸드가드 부분을 잡는 거다. 그도 아니면 탄창이 아닌 탄창 삽입구 윗부분을 잡고 쏘거나."

“총류탄을 발사하기 전에는 미리 약실에 공포탄을 장전하는 것을 잊지 말도록. 그리고 반동이 세니까 견착을 제대로 하고, 유탄이 흘러내릴 위험이 있으니 총구를 아래로 향하지 않도록 주의해야 한다.”

4호 전차 10대와 헷처 20대로 구성된 3개의 전차중대를 운용할 인원들은 수많은 공훈을 세운 베테랑 장교와 병사들로 구성되었다.

독일에서라면 기껏해야 3선급 무기로 취급받을 50식 전차조차 귀중한 전력으로 간주하는 국민혁명군에게 독일제 전차와 자주포들은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제일 중요한 장비들이었다.

이토록 귀한 장비를 운용할 이들은 국민혁명군 중에서도 최정예 취급을 받는 인원들이었기에 기존 전차병들과 달리 특별 제작한 군복이 따로 지급되었다.

독일 전차병 제복을 모방한 검은색 제복을 입은 전차병들은 독일인 교관의 지시에 따라 전차를 조종하고, 포탑과 주포를 움직여 표적을 조준했다.

전차병들은 포탄 한 발 한 발에도 신중을 기울였다. 훈련에서 쓰는 탄약의 수만큼 실전에서 쓸 수 있는 탄약이 줄어들기 때문이다.

소련을 거쳐 독일로부터 탄약이 공급되고 있긴 하나 시간도 오래 걸리고, 숫자도 제한될 수밖에 없었기에 당분간 탄약을 최대한 아껴쓰는 방법밖에 없었다.

“목표 9시 방향. 거리는 600, 탄종은 유탄으로. 조종수는 50m 전진해서 차폐 진지 점령하고, 탄약수는 장전을 끝낸다.”

“알겠습니다!”

지면에 기다란 애벌레를 닮은 궤도 자국을 남기며 전진하던 4호 전차가 정지하고, 곧이어 주포에서 집채만 한 섬광이 뿜어져 나왔다.

“명중. 첫 사격치고 이 정도면 제법 괜찮군.”

“감사합니다!”

교관의 칭찬에 포수는 힘을 얻었다. 하지만 조종수는 그렇지 못했다.

“조종수, 조종이 너무 거칠어. 전에 몰던 50식 전차를 생각하면서 몰면 안 돼. 4호 전차는 그보다 몇 배는 더 크고 무거운 중형전차란 말일세. 그걸 감안하면서 몰아야지.”

“시정하겠습니다!”

경전차가 베이스인 50식 전차를 몰던 조종수는 그보다 훨씬 크고 무거운 4호 전차에 잘 적응하지 못했다.

그래도 첫 훈련치고 이 정도 실력이면 나쁘지 않았기에 교관은 더는 말하지 않았다. 애초에 처음부터 잘하는 병사는 드문 법이니까.

훈련을 반복하면 이들도 어느 정도 숙달될 테고, 실전에서 전과를 올릴 수 있을 것이다.

“어떻습니까, 총통 각하.”

“아주 만족스럽소. 이날이 오기만을 내 얼마나 기다렸는지....”

팔켄하우젠의 물음에 장제스는 환한 미소로 답했다.

독일제 장비로 무장하고, 독일인 교관들 밑에서 훈련받는 장병들을 보니 자연스레 가슴이 벅차올랐다.

일본의 백만 대군을 몰아내기엔 터무니없을 정도로 작은 규모이긴 하나, 독일과의 추가 협상으로 독일제 무기와 장비들을 대거 중국으로 들여와 국민혁명군을 무장시킬 수 있다면, 중원에서 일본군을 몰아내는 것도 결코 불가능한 일은 아닐 것이다.

“그래서 원수. 이들은 언제쯤 실전에 투입하는 게 가능하다고 보시오?”

“장비의 사용법이 완전히 숙달되려면, 못해도 6월까지는 기다려야 할 겁니다.

팔켄하우젠의 대답에 장제스는 얼굴을 찌푸렸다.

“6월? 너무 길다고 생각하지 않소? 지금 훈련을 받는 이들 모두 햇병아리 신병들이 아니라 모두 최소 3년간 전선에서 싸워온 베테랑들인데?”

“물론 당장 투입하라고 한다면 다음 달에 투입하는 것도 불가능하지 않을 겁니다. 하지만, 귀하디귀한 장비이니만큼 더 확실하게 교육해서 투입해야 실수가 없지 않겠습니까? 장비를 제대로 다루지 못하는 상태에서 섣불리 전투에 투입했다가 적에게 격파당하거나 노획되기라도 한다면, 일본에만 좋은 일이 될 겁니다.”

“으으음.”

일주일 전 총통의 지시로 중국 현지에서 원수로 진급한 팔켄하우젠은 중국에서 장제스의 명을 거부하거나, 반대의견을 낼 수 있는 몇 안 되는 사람이었다. 그가 차분한 태도로 반박하자 장제스도 더 이상 반론을 하지 못하고 시선을 돌렸다.

뻘쭘해진 장제스는 다른 화제로 말을 돌렸다.

“그놈의 돈이 문제구려. 돈만 충분했어도, 국민혁명군 전체를 무장시킬 무기를 독일에 주문했을 텐데 고작 몇십 대를 사 오는 게 전부라니.... 한때 세계를 호령했던 대중화의 체면이 말이 아니군.”

중국이 부쩍 독일과 가까이 지내자, 미국이 민감하게 반응했다.

중국이 독일로부터 무기를 수입하고 군사고문단을 대거 초빙하자 미국은 중국에 제공할 예정이었던 차관의 지급을 미뤘고 이로 인해 중국은 물자 수입에 큰 어려움을 겪게 되었다.

불행 중 다행으로 미국과의 협상은 순탄하게 진행 중이나, 주미대사로부터 중국이 독일과 친하게 지내는 것을 백악관이 예의주시하고 있다는 소식을 전해 들은 장제스는 울분이 터뜨리지 않을 수 없었다.

비열한 양키 녀석들. 그러는 자기들은 일본에 대놓고 석유를 팔아먹으면서 중국이 독일로부터 무기를 들여오는 것은 안 된다니. 억지도 이런 억지가 다 있단 말인가?

하지만 늘 아쉬운 입장이었던 장제스는 분노를 누르고 미국에 잘 보이기 위해 안간힘을 썼다.

며칠 전에도 그는 미 대사를 불러 일본을 물리치기 위해선 미국의 도움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고 하소연했다.

동시에 독일과는 어디까지나 일본 문제로 협력하는 사이일 뿐이라고 해명 아닌 해명까지 해야 했다.

일본을 중국에서 몰아내는 게 가장 중요했던 장제스는 승리를 위해서라면 어떤 굴욕도 마땅히 인내할 자신이 있었다.

“너무 걱정하지 마시지요. 시간이 얼마나 걸릴지 몰라도 중국은 일본을 상대로 반드시 승리를 거둘 겁니다. 그리되면 세계도 중국을 이제까지와는 다른 시선으로 바라볼 겁니다.”

“고맙소이다, 원수."

***

18세 국왕 페타르 2세는 고민에 빠져 있었다.

측근들의 권유에 따라 숙부를 몰아내고 본인의 것이었던 권력을 쟁취한 것까지는 좋았다.

그러나 어린 나이에 승리를 맛본 그는 연이은 성공을 바랐다.

국왕의 측근들과 군부도 어린 국왕을 부채질하며 새로운 먹잇감을 찾아 배회했고, 그러던 참에 이웃 나라인 알바니아가 눈에 들어왔다.

이탈리아로부터 갓 독립해 아직 사회의 혼란이 모두 수습되지 않은 알바니아는 무척 매력적인 먹이였다.

문제가 있다면 오합지졸 그 자체인 유고슬라비아군.

이탈리아와의 전쟁에서 보여준 온갖 추태로 자국 군대의 수준이 어느 정도인지 알게 된 페타르 2세는 소련으로부터 T-26 경전차와 DB-3 중폭격기를 수입하는 등 군사력 강화를 꾀했다.

전쟁할 계획이라면 우선 병사들이 싸울 수 있는 정도로 만드는 게 급선무 아닌가.

그런데 눈치 빠른 독일이 그만 냄새를 맡고 말았다.

독일은 비공식적인 루트를 통해 유고슬라비아에 알바니아의 독립을 보장한다는 선언을 하라고 압력을 가해왔다.

유고슬라비아가 알바니아를 침공할 경우 어떻게 하겠다는 말은 없었지만, 사실상 알바니아 침공을 절대 좌시하지 않겠다는 소리나 다름없었다.

여기서 깔끔하게 포기해야 하나? 그러나 여기서 포기한다면, 유고슬라비아는 다시는 영토를 넓힐 기회를 얻지 못할 것이다.

알바니아의 혼란이 아직 정리되지 않은 지금이 유고슬라비아가 영토를 넓힐 유일한 기회였다.

“독일이 알바니아 침공에 제동을 거는 것은 알바니아에 두고 있는 이권 때문일 겁니다.”

페타르 2세의 측근이자 유고슬라비아의 현직 총리인 두샨 시모비치가 말했다.

“알바니아는 자국의 항구들을 독일에 무상하고 임대하고 있고, 농산물과 광물을 저렴한 가격으로 독일에 수출하고 있습니다.

이 때문에 독일은 알바니아가 멸망하면 자신들이 누리던 이권이 침해될 것을 우려해서 제동을 거는 겁니다. 하지만 알바니아에서 누리고 있는 이권을 보장해준다면, 저들도 가만히 있지 않겠습니까?”

“그 말이 맞습니다, 폐하. 우리도 독일에 저들이 원하는 이권을 일부 제공한다면 틀림없이 눈감아줄 것입니다.”

유고슬라비아군 총사령관 다닐로 칼라파토비치도 시모비치의 말에 적극 동의했다.

“경들의 말대로 독일이 조용히 넘어주겠소?”

“물론입니다, 폐하. 지금 독일은 경제에 전념하느라 여념이 없는 상태입니다. 전시에 징집했던 병사들을 대거 제대시키고, 사단들을 해체하고 있는데 이들을 다시 소집하고 병력을 재편성하려면 시간도 오래 걸릴뿐더러 행정, 경제적으로 적지 않은 혼란을 가져올 겁니다."

“하지만 히틀러의 친위대는 되려 규모가 늘었던데....”

“그것은 어디까지나 친위대만의 일이므로 전체에 대입할 수 없습니다. 그리고 규모가 늘었다는 친위대도 겨우 6개 사단에 불과합니다. 그리고 우리나라도 70만 대군을 보유한 강국이니, 독일이 섣불리 공격해오지 못할 것입니다.”

이미 전쟁하기로 마음먹은 그들은, 눈에 보이는 현실을 곧이 곧 대로가 아닌, 자신들만의 해석을 첨가해서 보기 시작했다.

그렇게 열심히 행복회로를 돌린 결과, 두뇌가 내놓은 답은 하나였다.

전쟁을 벌이더라도, 독일은 당장 전쟁에 끼어들지 못한다. 기껏해야 경고 정도로만 그치겠지.

독일이 참전을 망설이는 사이, 그리스와 협력해서 재빨리 알바니아를 점령하고, 독일에 이권 좀 찔러주면 해결될 일이다.

대세르비아를 향한 야망으로 유럽 전체를 전쟁의 화마로 몰고 갔던 세르비아인들의 본성이 폭발하자, 그 누구도 말릴 수 없었다.

“좋소. 경들만 믿겠소이다.”

“반드시 폐하께 알바니아를 바치겠습니다."

< 꺼지지 않은 불씨 (1)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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