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히틀러가 되었다-104화 (104/150)

< 존더코만도 >

1941년 2월 26일

폴란드 보호령 루블린 인근

겨울이 거의 끝나건만, 숲에는 아직도 밤새 내린 눈이 수북하게 쌓여 있었다.

눈의 무게 때문에 축 처진 나뭇가지들이 무게를 견디지 못하고 부러지면서 나는 소리가 알음알음 들려왔다.

유제프 게린스키 병장은 독일제 유노 담배에 불을 붙였다. 뿌연 담배 연기가 찬바람을 만나 허공으로 흩어졌다.

본래 유제프는 다른 수많은 유대인처럼, 자신이 특별히 유대인이라는 자각이 없었다.

그는 남들처럼 자신이 폴란드인이라 생각했고, 자신이 태어난 나라를 사랑하는 평범한 사람이었다.

하지만 유제프 주변의 사람들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다.

어려서부터 유제프는 유대인이라는 이유만으로 동급생들한테서 따돌림을 당했다.

학교에선 쉬는 시간이 되면 같은 반의 학생들은 그의 자리로 몰려들어 조롱과 멸시의 말을 쏟아냈고, 복도를 지나는 유제프에게 쓰레기를 던지는 것을 즐겼다.

학교를 졸업하고 사회로 나가게 되자 노골적인 경멸과 따돌림은 줄었지만, 근본은 크게 변하지 않았다.

그는 유대인이었기에 면접에서 떨어지기 일쑤였고, 간신히 들어간 직장에서조차 유대인이라며 차별당하기 일쑤였다.

설상가상으로 그가 처음으로 사귄 여자친구조차 그를 배신하고 다른 남자와 바람을 피웠다.

이를 알게 된 유제프가 따지자 여자친구는 자신의 부모가 유대인인 그와 사귀는 것을 반대했기 때문이라 변명했다.

그렇게 연인에게까지 버림받은 유제프는 그제야 자신이 남들과 같은 폴란드인이 아닌, 역겨운 유대인이라는 사실을 자각했다.

유대인이라는 사실을 자각한 뒤부터 유제프는 폴란드는 더 이상 그의 조국이 아니었다. 그는 옆 나라인 독일을 부러워했다.

독일에서도 유대인에 대한 차별이 만연했지만, 히틀러가 집권한 뒤부터는 유대인을 차별하는 풍조가 서서히 사라졌다.

유대인이라는 이유만으로 차별받아선 안 된다! 우리는 모두 같은 독일인이다! 히틀러가 대국민연설에서 한 말이었다.

그의 연설이 전국으로 방송된 뒤부터 독일에서 반유대주의는 조금씩 자취를 감추었다.

그렇다고 차별이 완전히 사라진 것은 아니었지만, 독일은 폴란드와 달리 정부가 직접 나서서 차별을 철폐하려는 의지와 노력을 보여줬다.

유제프는 그런 독일이 부러웠고, 언젠가 독일에 가서 살 생각으로 열심히 독일어를 공부했다.

폴란드가 멸망하면서 유제프의 독일어 공부는 마침내 빛을 발휘했다.

독일인만큼이나 독일어를 자유자재로 구사할 수 있는 유제프는 고급인력으로 분류되어 SS의 통역관으로 취직할 수 있었고, 평소에는 누릴 수 없던 권력까지 누리게 되었다.

그를 은근히 멸시하던 이웃들이 유제프에게 잘 보이기 위해 알아서 기기 시작한 것이다.

하지만 유제프는 거기서 만족하지 못했다. 그는 자신을 멸시했던 폴란드에 복수하기 위해, 존더코만도에 들어갔다.

자신의 손으로 직접 폴란드 애국자들을 쏴죽일 수 있는 기회를, 유제프는 놓치기 싫었다.

존더코만도 대원을 뽑기 위한 시험과 훈련을 모두 통과하고 정식으로 존더코만도 대원이 되었을 땐 감정에 북받쳐 울뻔했다.

드디어 자신이 그토록 꿈꿔오던 순간이 찾아온 것이다.

“나도 불 좀 빌려주게.”

유제프의 상관 야코프 슈코브 하사가 다가오자 유제프는 성냥갑을 꺼냈다.

야코브도 유제프처럼 유대인이라는 이유로 숱한 차별을 당해오다가 독일의 편에 서게 된 케이스였다.

“여기 있습니다.”

“고맙네.”

후욱.

“자네, 그거 아나?”

조용히 담배를 피우던 유제프에게 야코브가 무언가 떠올랐다는 듯이 말을 걸었다.

“어떤 거 말씀입니까?”

“히틀러 총통이 담배를 무척 싫어한다는 거.”

“압니다. 듣자하니 본인 주변에선 담배도 못 피우게 한다는데....”

독일 총통 아돌프 히틀러가 지독한 금연 주의자라는 사실은 이미 널리 알려진 사실이었다.

히틀러는 담배 자체를 금지하지 않았지만, 담배가 건강을 해치며 인체를 병들게 만든다고 주장하며 각종 법률을 제정해 노면전차와 버스, 열차, 지하철에서 담배를 피우는 것을 금하고, 임산부의 흡연을 엄금했다.

이를 어기면 60라이히스마르크라는 무거운 벌금을 먹이기까지 했다.

담배와 관련된 법률들은 제국령에서만 시행되고 독일에 합병된 보헤미아-모라비아, 폴란드 보호령은 예외였기에 제국령에 사는 독일인들이 보호령에 거주하는 독일인들을 부러워한다는 말이 돌 정도로 제국령에서의 금연 정책은 매우 엄격하게 적용되고 있었다.

“알고 지내는 독일군 중사한테서 들었는데, 흡연자인 군인이 금연을 선언하고 서약서에 서명하면 포상금이랑 휴가까지 준다는군. 대신 서명서에 서약한 뒤에 담배를 피우다 걸리면 포상금 몰수에 벌금, 영창까지 간다는군.”

“허, 그 사람은 담배를 왜 그렇게 싫어한답니까?”

“건강에 나빠서 싫어한다는군. 입안을 소독해주는 담배가 뭐가 나쁘다는 건지.”

꽁초를 눈밭에 던지자 실처럼 가는 연기가 피어올랐다.

눈에 파묻혀 서서히 꺼져가는 담뱃불을 응시하던 유제프는 가래침을 뱉어 담뱃불을 완전히 꺼버렸다.

***

유대인 특별부대, 존더코만도는 유대인이거나, 유대인의 피가 흐르는 혼혈 폴란드인들로만 구성된 부대였다.

부대원의 60%가 과거 폴란드군에서 복무했던 이들로, 몇 달 전까지만 해도 상당수는 포로수용소에 갇혀 있었다.

폴란드 제2공화국은 폴란드인들 외에 우크라이나인, 벨라루스인, 리투아니아인, 유대인, 독일인 등 소수민족들이 혼합된 다민족 국가로, 폴란드인들이 자신들의 조국이 다민족 국가라는 사실을 별로 마음에 들어 하지 않았다.

당연히 소수민족들은 제2공화국 치하에서 크고 작은 차별과 박해를 받았는데, 그중에서도 가장 크게 차별받은 민족이 바로 우크라이나인과 유대인이었다.

2차대전이 발발하자 우크라이나인들은 소련 관할로 대거 넘어갔지만, 유대인들은 보호령이 된 폴란드에 남았다.

반유대주의를 배척하며 모든 인종의 평등을 외치는 히틀러 치하에서 살기 더 편할 것이란 계산 때문이었는데, 이는 곧 사실로 드러났다.

폴란드를 점령한 독일 당국은 유대인들을 순혈 폴란드인들과 따로 차별하지 않고 동등하게 대했다.

더불어 유대계 독일군과 유대계 독일 관리들도 은근슬쩍 동족인 유대인들의 편의를 더 봐주었고 유대인이라는 이유만으로 사용할 수 없거나 눈치가 보였던 공공시설 이용도 자유롭게 사용할 수 있었다.

이 때문에 몇몇 유대인 단체에선 제2공화국 시절보다 보호령 신세인 지금이 유대인으로서 더 살기 편하다는 소리가 나오고 있었다.

애초에 유대인들을 별로 좋아하지 않았던 폴란드인들은 유대인들이 침략자인 독일군에게 빌붙어 편의를 누리고 있다고 불평했고, 두 민족 사이의 골은 나날이 깊어만 갔다.

독일은 폴란드 통치를 더욱 원활하게 하려는 속셈으로 두 민족 사이의 갈등을 교묘하게 이용했다. 유대인 특별부대를 창설해 폴란드 파르티잔 소탕을 맡긴 것이다.

차별과 박해로 순혈 폴란드인들에 대해 감정이 좋지 않았던 유대인들은 자신들의 손으로 폴란드인들을 죽일 좋은 기회를 마다하지 않았다.

폴란드인들을 향한 분노는 유대인들을 모병소로 향하게 했고, 순식간에 모집인원은 정원의 몇 배를 넘겨 조기에 마감되었다.

독일군은 존더코만도에게 폴란드군 군복을 개조해서 만든 피복을 지급하고, 피아식별을 위해 특별 제작한 완장을 착용하게 했다.

유대인을 의미하는 파란 육망성이 그려진 흰색 완장을 오른팔에 착용한 존더코만도 대원들을 파르티잔들은 ‘비곗덩어리’란 멸칭으로 불렀다.

유제프는 파르티잔들이 자신들을 비곗덩어리라고 부르는 이유를 들은 적 있었다.

하얀 완장에 박힌 육망성 마크가 돼지고기에 찍힌 스탬프 같아서 그렇다나 뭐라나.

그렇다면, 그 비곗덩어리들에 사냥당해 보라지.

“실전을 경험해 본 병사도 있을 테고 이번이 처음인 친구도 있을 거다. 오늘 상대할 적은 규모가 작은놈들이라고 하니 너무 걱정하지 말도록.”

투입에 앞서 중대장은 중대원들을 불러 모아 짧은 훈시를 했다.

폴란드군 군복을 개조한 군복을 입은 존더코만도 병사들과 달리, 장교들은 모두 독일 국방군의 군복을 입고 있었는데, 이들도 모두 유대인들로 같은 유대인들이라면 중대원들의 복종을 받아내기 쉬울 것이라는 계산 하에서 내려진 결정이었다.

같은 유대인이라는 이유만으로, ‘열등한 폴란드인’으로 구성된 존더코만도로 전속된 것을 달가워하지 않는 장교들도 많았지만, 요제프의 중대장은 존더코만도로 전속된 것을 별로 개의치 않는 눈치였다.

그는 부대원들을 같은 군인으로 평등하게 대했고, 중대원들도 그런 중대장에게 충성을 바쳤다.

“자아, 사냥 시간이다, 제군들! 어디 마음껏 날뛰도록!”

작전이 시작되자 존더코만도 부대원들은 분대별로 나뉘어 파르티잔의 본거지로 추정되는 숲을 향해 나아갔다.

독일제 Gew98 소총의 폴란드 버전이라 할 수 있는 Wz.98 소총을 든 유제프는 신중하게 발을 내디뎠다.

어디에 파르티잔들이 설치한 부비트랩이 있을지 몰랐다.

파르티잔을 쏴 죽이기 전에 부비트랩에 걸려 다리가 날아가 병원 신세를 지고 싶진 않았다.

죽을 때 죽더라도, 한 명의 파르티잔이라도 죽이고 죽고 싶었다.

“모두 정지.”

분대장 야코브 하사가 주먹 쥔 손을 올리자 분대원 전원이 발걸음을 멈췄다. 뭔가 발견할 걸까?

“발렌틴, 마요츠. 너희 둘 앞으로 우측으로 돌아서 전진해. 나머지는 현 위치에서 대기.”

야코브가 지정한 두 병사는 긴가민가하면서도 조심스레 발걸음을 내디뎠다.

50m가량 전진하던 발렌틴이 별안간 폭음과 함께 허공으로 떠올랐다. 파르티잔이 매설한 지뢰를 밟은 것이다.

발렌틴이 허공으로 떠오르는 것과 거의 동시에 총알이 날아와 마요츠의 미간을 꿰뚫었다. 분대의 선두에 있다는 이유로 첨병으로 지정 당한 둘은 비명도 못 지르고 즉사했다.

“적이다! 엎드려!”

유제프는 즉시 바닥으로 몸을 던졌다. 두껍게 쌓인 눈이 충격을 흡수해 아픔은 거의 느끼지 못했다.

눈 때문에 군복이 젖었지만, 총탄에 맞는 것보다 훨씬 나았다.

“사격 개시!”

자작나무들 사이로 검은 물체들이 희끗희끗 보였다. 검은 물체들의 정체가 파르티잔임을 확신한 유제프는 호흡을 가다듬은 뒤 적을 겨냥했다.

조준.

그리고 발사.

-탕!

방아쇠를 당기자 묵직한 진동이 전해지면서 총구에서 불꽃이 튀었다.

유제프는 자신이 조준한 물체가 뒤로 넘어가는 것을 봤다. 그가 파르티잔을 죽인 것이다. 드디어! 그는 가슴이 벅차오르는 것을 느꼈다.

너무 기쁜 나머지 노리쇠를 당기는 것도 잊은 그는 그대로 가만히 있다가, 야코브의 전진 명령을 듣고 정신을 차렸다.

“전진! 모두 일어나! 뛰어!”

소총밖에 없는 파르티잔과 달리 야코브의 분대는 기관단총에 기관총까지 있었다.

화력에서 파르티잔을 압도하는 존더코만도 대원들은 야코브의 지시에 따라 몸을 일으켰다.

루이스 경기관총의 지원사격을 받으며 존더코만도 대원들은 파르티잔의 참호를 향해 돌격했다.

유제프도 군복에 묻은 눈을 털어낼 틈도 없이 동료들과 함께 달렸다.

눈 때문에 좀처럼 속도가 붙지 않았다. 그는 10m를 갈 때마다 나무 뒤에 숨거나 바닥에 엎드리며 짧은 휴식을 취했다.

어느새 유제프는 적의 참호 근처까지 자리잡고 있었다.

앞서 돌격하던 대원 한 명이 파르티잔이 근거리에서 쏜 총탄을 맞고 고꾸라졌다. 야코프 하사가 재빨리 수류탄 핀을 뽑아 던졌다.

“크아악!”

수류탄이 폭발하자, 파르티잔 두어 명이 뒤로 벌렁 쓰러졌다. 다른 한 명은 팔이 날아가 비명을 질렀다. 기회를 놓치지 않고 야코브 하사가 소리쳤다.

“돌격! 죄다 죽여버려!”

참호로 뛰어든 대원들은 파르티잔과 몸싸움을 벌였다. 야코브도 서둘러 참호로 뛰어들었다. 마침 그의 앞에 바닥에 뒤엉켜 싸우고 있는 파르티잔이 보였다.

놈은 존더코만도 대원을 목을 대검으로 찌르려 하던 참이었다. 유제프는 망설임 없이 야전삽을 휘둘러 파르티잔의 머리를 후려쳤다.

그리고 파르티잔의 몸이 뻣뻣하게 굳을 때까지 야전삽으로 그를 사정없이 후려쳤다.

“후욱, 후욱....”

겨우 제정신이 들었을 때, 파르티잔의 얼굴을 알아볼 수 없을 만큼 뭉개진 뒤였다. 다른 대원들도 파르티잔을 대거 정리한 뒤였다.

어느 대원은 분이 덜 풀렸는지 이미 숨이 끊어진 파르티잔을 몸을 총검으로 연신 찌르고 있었다.

“다시 전진한다. 장비 챙겨.”

야코브의 지시에 대원들은 무기를 챙겨 참호에서 나왔다. 다른 분대들도 전투를 시작했는지 사방에서 총성과 비명이 들려왔다.

유제프도 얼굴에 튄 피와 뇌수를 눈으로 문질러 닦아낸 뒤 대열에 합류했다.

한 번 피를 본 대원들에게 더 이상 긴장이나 공포 따위의 감정은 존재하지 않았다.

살인이 가져다주는 원초적인 쾌감과 흥분만 느껴질 뿐.

***

1941년 3월 1일

독일 베를린

힘러의 제안으로 창설한 존더코만도는 실전에서 대단히 유용함을 입증해냈다.

평소 폴란드인들로부터 당해왔던 차별이 제대로 시너지 효과를 일으켰는지 존더코만도의 전투력은 국방군 부대들과 비교해도 전혀 꿀리지 않았다.

존더코만도에게 지급된 무기들이 독일에서 2, 3선급 부대들에나 지급되는 것들임을 감안하면, 상당한 전투력이었다.

폴란드군 전향자들로 구성된 보조 부대들도 파르티잔 토벌전에 투입됐지만, 존더코만도의 실적에는 영 미치지 못했다.

존더코만도의 활약상에 감탄한 국방군 지휘관들은 새 존더코만도 부대의 창설 허가를 요청했고, 6천 명이었던 존더코만도의 규모는 2만 명으로 대거 늘어났다.

인원이 늘어난 만큼 기존 커트라인에 미치지 못하는 이들도 대거 입대하게 되었지만, 그만큼 독일 병사들의 희생이 줄어들테니 아무래도 좋았다.

간만에 공을 세운 힘러를 위해, 나는 무장친위대 신규 사단들의 창설을 허가했다.

전시에 소집되었던 병사들이 속속 사회로 복귀하는 와중에 굳이 신규 사단을 편성할 필요가 있나 싶었지만, 힘러가 하도 떼를 써서 어쩔 수 없었다.

하여간 저놈의 권력욕하고는.

“힘러, 대신 새로 창설된 사단들도 앞의 3개 사단처럼 정예부대로 만들어야 하네. 그러라고 허가를 내준 것이니까. 알아들었나?”

“물론입니다, 총통 각하. 애초에 무장친위대 창설 목적이 독일 최고의 정예부대들을 육성하기 위해서가 아닙니까. 자랑스러운 SS에 오합지졸들 따윈 있을 수 없고, 있어서도 안될 겁니다.”

그리하여 제4SS경찰척탄병사단과 제5SS기갑사단 비킹(바이킹), 제6SS산악사단 노르트가 창설되었다.

무장친위대의 규모가 단숨에 2배로 불어난 것에 불편해하는 의견이 나오지 않을까 예상했지만, 내가 직접 창설 허가를 내줘서인지 의외로 없었다.

독일에 충성을 맹세한 유대인들이 폴란드 파르티잔과 싸우고, 무장친위대에 입대한 아쎄이들이 연병장을 구르는 동안 H형으로 개조된 4호 전차들과 헷처들이 중국행 열차에 실렸다.

원래는 공장에서 갓 출고된 신품들이 중국에 배달될 예정이었지만, 아직 값도 모두 다 지불하지 않은 중국인들에게 굳이 신품을 제공할 필요가 있느냐는 브라우히치의 요청으로 기존에 사용하던 차량을 중국으로 보내게 되었다.

난데없이 장비를 빼앗기게 된 일선 부대에선 불만의 목소리가 나왔지만, 공장에서 출고한 신품을 제공한다고 전하자 금방 잠잠해졌다.

첫 중국행 열차가 출발하기 전날, 나는 주중 군사고문단 인원들을 총통관저로 불러 성대한 연회를 열어줬다.

주중 군사고문단의 사기 고취를 위해서이기도 했지만, 한편으론 대놓고 환송식을 열 수 없기 때문이기도 했다.

환송식을 열어 동네방네 소문낼 경우 일본이 사실상의 선전포고로 받아들일 가능성이 있으니 말이다.

저 미친놈들이 무슨 짓거릴 저지를지 모르니 당분간은 조심해야지. 아직 주일 독일인들의 철수가 끝나지 않았는데 전쟁이 터지면 곤란하거든.

“세계 평화를 위해 중국으로 떠나는 게르만 전사들을 위해 건배!”

“건배!”

“부어라! 마셔라!”

독일에서 지내는 마지막 날이었으므로 주중 군사고문단 인원들은 마음껏 먹고 마셨다.

그들을 위해 웨이터들이 쉬지 않고 음식과 술을 나르고, 밴드는 연회가 끝날 때까지 곡을 연주했다.

나는 연회장을 돌아다니며 수백 명의 장병과 일일이 얘기를 나누고, 그들과 잔을 부딪쳤는데, 쉬지 않고 계속 연회장을 다니다 보니 연회가 끝날 즈음에는 천리행군이라도 한 것처럼 다리가 후들거렸다.

“제3제국 총통으로 제군들에게 명령하겠네. 반드시 살아서 돌아오도록! 오늘보다 더 성대한 연회를 열어줄 테니. 모두 알겠나!”

“예, 총통 각하!!!”

“마지막으로..... 지크 하일.”

“하일 히틀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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