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히틀러가 되었다-102화 (102/150)

< 오늘도 하늘은 맑은 뒤 흐림 (5) >

레벤스보른(Lebensborn).

이름의 뜻은 ‘생명의 샘’.

게르만 우월주의 광신도이자 유사과학 신봉자였던 하인리히 힘러가 만든, 순혈 아리아인의 증가를 위해 인종적으로 뛰어나다고 인정받은 젊은 SS 대원들과 미혼의 여성들을 ‘교배’시켜 아기를 낳게 한 19금 떡툰에서 볼법한 기관이었다.

1935년 12월부터 설립된 레벤스보른은 1941년에는 노르웨이에도 설치되어 지원자들을 받아 아기를 낳게 했다.

이렇게 레벤스보른에서 태어난 금발벽안의 순수 아리아인들을 ‘레벤스라움’에 정착시켜 동유럽 일대를 완전히 독일화하는 것이 힘러의 목적이었지만, 독일이 전쟁에서 패하면서 망상으로 끝나게 되었다.

만약 독일이 전쟁에서 이겼다면 레벤스보른은 현대와는 다른 평가를 받게 되었겠지만, 아무튼 이 레벤스보른은 인류 역사에서 유사한 사례가 드물 정도로 희귀하고 괴상망측한 시도였다.

전후 레벤스보른에서 태어난 아이들, 특히 나치에게 침략당한 피해국이었던 노르웨이에서 태어난 아이들은 대부분 고아가 되고 말았으며-그들의 아버지들은 대거 전사하거나 독일로 돌아갔으므로-, 노르웨이 사회에서 엄청난 차별과 멸시를 받는 등 수많은 피해자를 만든 나치의 대표적인 흑역사 중 하나다.

이전 회귀에서 그랬던 것처럼, 힘러는 내게 레벤스보른의 설립을 요청했지만 나는 일거에 거절했다.

재무장에 쓸 돈도 부족한데 그런 뻘짓에 쓸 돈이 없거니와, 애당초 나는 레벤스라움에 관심이 없기에 그런 비상식적인 방법으로 인구를 늘릴 생각은 더더욱 없었다.

그렇게 내 기억 속에서 레벤스보른의 흔적이 희미해질 즈음, 힘러 이놈이 다시 레벤스보른을 들고 나타났다.

“천년 제국에는 천 년 동안 제국을 지킬 병사들이 필요한 법입니다, 총통 각하.”

“그래서.”

“물론 인간이 그만큼 긴 시간을 사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그렇지.”

“따라서 수명의 한계를 많은 인구로 보완하는 겁니다. 이른바 아리아인 보완계획! 그것이 바로 이 레벤스보른의 핵심입니다.

인종적으로 완벽한 순수 아리아인들을 출산하여 사내아이들은 제국을 지킬 병사이자 농부로, 여자아이들은 주부이자 미래의 아리아인들을 낳을 산모로....”

“힘러. 삼류 포르노 같은 망상은 집어치우고 제발 좀 쓸모있는 정책을 가져오게. 며칠 전에 자네가 티베트에 2차 탐사대를 보낸다고 했을 때 허락해줬잖나. 이젠 그걸로도 부족한 건가?”

“총통 각하. 티베트는 아리아인의 기원지로 장차 독일에 가장 중요한 지역이 될 곳입니다. 그리고 1차 탐사대가 거둔 성과에 총통 각하께서도 만족하셨기에 2차 탐사대 파견을 승인하신 것 아닙니까.”

하도 쿠사리 먹더니 이젠 내성이 생겼군. 전에 안 하던 말대꾸까지 하는 걸 보니 아주 제대로 생긴 것 같다.

벌써 뒷골이 당기는군. 아이고 머리야.

티베트 탐사대는 힘러가 관심 있는 아리아인의 기원보다는 티베트와 우호 관계를 구축하고 티베트의 종자들을 독일로 들여와 식량 연구에 사용하기 위해서 비용을 지원해줬을 뿐인데.

힘러 이놈은 본인 기억조차 조작한 모양인지 내가 자신의 해괴한 연구에 찬동한 줄로 안다.

의도는 조금 이상했지만, 아무튼 SS 탐사대는 티베트인들의 도움을 받아 각종 종자와 고문서들을 획득해 폴란드 침공 직전에 독일로 귀환하는 데 성공.

탐사대를 이끈 조류학자 에른스트 셰퍼는 SS 소령으로 진급하고 전장공로훈장을 받았다.

전쟁이 끝난 지금 셰퍼와 이전 탐사대원들을 포함한 2차 탐사대가 조직되어 출발을 앞두고 있었다.

“아무튼, 이 건은 기각일세. SS에 새로 창설한 산악사단 편성이나 제대로 마무리 짓도록.”

레벤스보른을 두 번째로 퇴짜맞은 힘러는 기가 팍 죽어서 돌아갔다. 하지만 이날 저녁, 헤스가 내게 면담을 요청해왔다.

“총통 각하. 오늘 정오에 힘러 SS 제국지도자가 제안한 레벤스보른 프로젝트 말입니다.”

아 시발.

헤스, 너까지 이러기냐?

힘러만큼은 아니지만, 얘도 만만찮은 오컬트 덕후라서 불안불안했는데, 결국 그쪽으로 빠져버린 건가 싶어 낙담하고 있는데 헤스의 입에서 뜻밖의 말이 튀어나왔다.

“제 나름대로의 생각입니다만, 오직 출산만을 강조하는 것보다 다른 방향에서 접근하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레벤스보른의 목적은 독일 인구의 증가잖습니까.”

“그렇긴 하지.”

“그렇다면, 레벤스보른 기관 내에서만 출산을 장려하는 게 아니라 전국적으로 출산율을 올리는 방안을 고안해내는 게 어떻습니까? 그편이 더 효율적이고, 효과도 크지 않겠습니까?”

“맞는 말이네. 따로 생각해둔 거라도 있나?”

“예. 우선 전쟁하는 동안 독일에는 약 11만 명의 사상자들이 발생했습니다. 이로 인해 생겨난 전쟁 과부들의 수가 대략 1만 명에 달한다는 보고가 있고요.

남편의 전사로 국가에서 나오는 위로금과 보조금으론 생계를 꾸리기 힘든 미망인들이 적지 않은데, 이 중에서 결혼을 원하는 이들을 국가가 나서서 주선해주는 겁니다.

이 경우 배우자의 전사로 생계가 곤란해진 미망인들은 새로운 가정을 꾸림으로써 생계 곤란을 해결함과 동시에 출산율에도 유의미한 변화를 가져올뿐더러, 재혼했으니 더 이상 그 미망인에겐 보조금을 지원해줄 필요가 없어지니 국고도 절약할 수 있게 됩니다. 어떻습니까?”

즉, 국가가 결혼중개회사 역할을 대신한다는 것이로군. 나쁘지 않아. 특히 힘러의 아기생산공장 같은 발상에 비하면 훨씬 정상적인 발상이다.

“그럴듯하군. 헤스, 자네가 힘러보다 훨씬 낫구만. 아주 훌륭해.”

“감사합니다, 총통 각하.”

헤스의 말대로 국가가 나서서 미망인들의 결혼을 중개한다면, 생계에 어려움을 겪는 미망인들은 생계에 곤란을 겪지 않게 되어 좋고, 여러 사정으로 결혼하지 못한 남성들은 결혼할 수 있게 되니 서로에게 윈윈이다.

덩달아 미망인들에게 지급되는 보조금도 자연스레 줄어드니 그만큼 돈도 절약할 수 있고.

다음날 나는 헤스의 발상을 샤흐트와 괴링, 카이텔에게 전했고, 3명 모두 나쁘지 않은 반응을 보였다.

일단 힘러의 아기공장 발상보다 이편이 훨씬 정상적이고 건설적이니 당연한 일이다.

“그런데 주선에 필요한 인력과 그에 드는 비용도 만만찮을 텐데요. 인력은 몰라도 비용은 어디서 조달하실 계획입니까?”

“미망인들에게 지급할 보조금 액수로 대신하면 되지 않겠소. 비용이 그보다 더 많이 들게 되더라도, 독일 인구 증가라는 목적은 이룰 수 있으니 손실만 있는 정책은 아닌 것 같소.”

“흐음.”

샤흐트의 말대로 결혼 주선에 필요한 인력과 비용은 미망인들에게 지급될 보조금을 아끼는 것만으로 다 조달하긴 힘들지도 모른다.

하지만 실제 레벤스보른 유지를 위해 나치가 들인 비용보다는 적게 들지 않겠나. 효과도 실제 레벤스보른보다 확실할 테고.

그리하여 힘러가 계획한 레벤스보른 프로젝트는 본격 정부가 직접 주선하는 결혼중개 계획으로 바뀌어 시행되었다.

힘러는 자신이 구상한 레벤스보른이 자신의 구상과는 완전히 다른 방향으로 진행되자 영 마땅찮은 눈치였지만, 현재의 계획에 딱히 트집 잡을만한 구석을 발견하지 못했기에 침묵할 수밖에 없었다.

레벤스보른 프로젝트 시행 첫 달, 730명의 미망인이 구혼남들과 만났고 두 달 뒤 이 중 400명이 맺어졌다는 긍정적인 보고를 받았다.

200명만 맺어져도 평타 이상의 성과라 예상했는데, 정확히 그 두 배의 수치가 나온 것이다. 크진 않지만 나름대로 고무적인 성과였다.

간만에 자기만의 할 일이 생긴데다, 그간 장군들에게 밀려 공적을 세울 기회가 없었던 헤스는 의욕적으로 레벤스보른 업무에 매진했다.

이참에 헤스는 단순 결혼 중매를 넘어서, 상이용사들까지 지원하는 방안까지 제안했다.

샤흐트도 나쁘지 않은 발상이라며 긍정적으로 검토하겠다고 밝혔고.

“마이츠너 SS 중장의 보고서입니다.”

“이리 주게.”

아우구스트 폰 마이츠너 SS 중장은 네덜란드에 있었다.

그의 임무는 네덜란드 주둔 SS 총사령관으로 현지의 민심을 살피고 레지스탕스들을 비롯한 여러 반독 인사 및 단체들의 활동을 감시 및 색출하는 것 외에 어느 특정 인물의 동향을 주기적으로 보고하는 것이었다.

***

1941년 1월 2일

네덜란드 위트레흐트 도른 하우스

“새해 복 많이 받으십시오, 폐하.”

“고맙네, 백작.”

독일의 옛 카이저, 빌헬름 2세는 자신을 예방하러 온 젊은 백작에게 고개를 끄덕여 보였다.

백작은 육군 소령의 제복을 입고 있었지만, 군 계급보다 직위가 우선시되던 융커들은 서로를 계급이 아닌 직위로 불렀고, 구시대의 인물이었던 빌헬름 2세는 자신을 찾아온 몇 안 되는 손님을 기쁘게 하기 위해 일부러 그를 백작으로 불렀다.

“시간이 참 빠르군. 가족들과 함께 독일을 떠나 네덜란드 국경을 넘던 때가 엊그제 같은데, 벌써 1941년이라니....”

늙은 카이저는 허탈한 미소를 지으며 연못을 떠다니는 청둥오리들에게 모이를 뿌렸다.

젊었을 적의 빌헬름 2세는 자신의 혈기를 주체할 수 없어 과격한 운동을 주로 했다.

특히 그가 가장 열성적으로 즐긴 운동은 도끼로 벌목이었는데, 폐위된 몸으로 네덜란드에 도착했을 때도 그는 분을 풀기 위해 미친 듯이 벌목에 열중했다.

그를 따라온 시종장과 하인들, 그리고 네덜란드 산림청의 공무원들이 건강을 걱정했을 정도로 그는 나무꾼 마냥 하루종일 나무를 벴다.

그러나 장사도 세월은 이기지 못하는 법. 어느덧 82세의 노인이 된 빌헬름 2세는 늙어버린 육체와 바닥나버린 체력 탓에 전처럼 과격한 운동들을 자주 즐길 수 없게 되었다.

몸을 생각하라는 아내와 주치의의 권고에 따라 그는 벌목을 줄이고 나무를 조각하는 일과 산책, 연못의 오리들에게 모이를 주는 일을 주로 하게 되었다.

“그대의 총통한테서는 아무 연락도 없는가?”

“송구하오나 그렇습니다.”

클라우스 폰 슈타우펜베르크 백작의 대답에 빌헬름 2세는 다시 고개를 돌려 연못 위의 오리들을 응시했다.

오리들은 카이저가 뿌린 모이를 먹느라 여념이 없었다.

모이를 다 먹은 오리들은 카이저가 자신들에게 빵가루를 던져주길 기대하며 연못을 빙글빙글 돌았다. 카이저는 마지막 남은 모이 한 줌을 연못에 모두 뿌렸다.

카이저로 군림하던 시절에 수많은 실책을 저질러 끝내 현재의 자신을 만든 카이저지만, 그조차 최소한의 눈치는 있었다.

빌헬름 2세는 현 독일 정부가 구시대의 유물인 자신을 달가워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았다.

특히 2차 장검의 밤 때 숙청된 이들 중 다수가 왕당파라는 것과 쿠데타 후 독일에 군주제를 복구하고 네덜란드에 있는 자신을 복위시키려 했다는 사실이 알려진 뒤론 더더욱 자신이 눈엣가시처럼 보이겠지.

빌헬름 2세는 한숨을 토하며 발걸음을 옮겼다.

그가 저택에 들어서자, 시종장이 달려와 외투를 받았다. 검은 옷의 하녀들이 카이저와 백작을 응접실로 안내했다. 잠시 후 둘을 위해 따뜻한 영국산 홍차가 나왔다.

빌헬름 2세는 영국산 홍차를 좋아해서 자주 마셨다. 영국의 선전포고가 있던 날에도 그는 영국산 차를 마셨고, 퇴위해 네덜란드에 도착하던 날에도 영국산 차로 하루를 마무리했다.

“너무 상심하지 마십시오, 폐하.”

슈타우펜베르크는 누가 들을까 목소리를 낮췄다.

“아직 군에는 폐하를 따르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슈타우펜베르크는 히틀러와 나치당의 정책에 반대하지 않았다. 오히려 히틀러를 열렬하게 따르는 편이었다.

하지만 그의 신념은 두 차례에 걸친 장검의 밤을 목격하면서 퇴색되고 말았다.

특히 2차 장검의 밤 때 체포된 쿠데타 가담자들 여럿과 가까운 사이이며, 체포된 가담자들의 무죄를 확신하는 발언을 했다는 이유로 게슈타포의 조사까지 받았다.

다행히 가담자들과 평소의 친분 외에 어떤 접점이 없다는 것이 인정되어 발언에 주의하라는 경고만 받고 풀려나긴 했지만, 지인 여럿이 형장의 이슬이 되고 자신도 요주 인물로 찍혀 상부로부터 사실상 내다 놓은 자식 취급을 받게 되자 슈타우펜베르크는 나치와 본격적으로 거리를 두기 시작했다.

총통이 그 어떤 독일인도 해내지 못한 업적을 달성한 것만큼은 그 역시 인정하는 바였다.

특히 독일의 영원한 숙적인 폴란드를 식민지화하고 프랑스를 무릎 꿇린 것에는 그도 열렬한 지지를 보냈다.

하지만, 총통은 자신에게 방해가 되는 정적들 무자비하게 탄압하고, 살육도 서슴지 않았다.

하물며 유대인들이라니! 깜둥이들은 또 어떻고. 총통이 그들을 우대하는 탓에 전 세계가 독일을 비웃고 있지 않은가.

그가 집권한 뒤로 독일이 발전을 거듭한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하지만 그 대가로 독일은 많은 것을 잃었다.

국민은 자유를 잃었고, 군과 귀족은 권위를 잃었으며 지나간 시대의 관습과 질서를 구시대의 퇴물이라 무시하기 바쁘다.

전쟁이 끝난 지금, 승리에 밀려 도외시되었던 관습과 질서를 다시 바로잡아야 한다.

그래야 독일은 독일로 남을 것이다.

“저 역시 그들 중 한 명입니다. 폐하, 이제 독일에는 다시 폐하가 필요합니다. 폐하께서 나서서, 그간 무시되어 왔던 질서를 바로잡으셔야 합니다.”

“이 늙은이를 그렇게 띄어주니 고맙군. 하지만 그게 어디 가능한 일이겠나?”

빌헬름 2세는 고개를 저었다. 슈타우펜베르크의 말은 분명 달콤했지만, 그것은 실체가 없는 허상이었다.

“독일 국민 어느 누구에게 물어봐도 나와 히틀러 둘 중 한 명을 고르라고 하면 십중팔구 히틀러를 고를 걸세.

그만큼 지금 히틀러는 독일에서 절대적인 존재지. 한때의 나조차 히틀러만큼의 권위를 가져본 적이 없다네.

그만큼 그는 절대적이야. 내가 그를 끌어내리고 다시 권좌에 오른다면, 국민들은 다시 나를 끌어내리고 히틀러를 권좌에 앉힐 걸세.”

슈타우펜베르크도 빌헬름 2세의 말은 부정하지 않았다. 쿠데타를 일으켜서 성공한다고 해도, 국민의 반발만 불러올 게 뻔했다.

“하지만 폐하. 황손께서 프랑스에서 전사하셨을 때, 5만 명에 달하는 국민들이 장례식에 모여 애도를 표했습니다.

국민이 총통을 향한 충성과 지지는 분명 사실이지만, 한편으론 폐하를 지지하는 이들도 적지 않습니다.

전쟁이 끝난 지금, 폐하께서 다시 국민들 앞에 나서신다면 여론도 달라지지 않겠습니까?”

“흠.”

“총통도 폐하를 지지하는 국민이 적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된다면, 제정 복고에 대해 진지하게 고려할 수밖에 없을 겁니다.”

빌헬름 2세가 다시 적극적으로 활동을 재개한다면, 독일에 흩어져 있던 왕당파들을 하나로 모을 수 있을뿐더러 나치당 위주의 정책에 불만을 가진 기타 정당들과 그 지지자들까지 흡수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카이저가 가지는 상징성을 고려한다면 히틀러도 함부로 하지 못할 테고. 어쩌면 군에 남아있는 왕당파들을 완전히 자신의 편으로 끌어들이거나 그들을 달래기 위한 카드로 제정복고를 거론할지도 모른다.

즉, 독일이 군주정 국가로 되돌아가는 것은 완전히 불가능한 일이 아니다. 적어도 슈타우펜베르크는 그렇게 확신했다.

“지금처럼 가만히 웅크려만 있으면 독일은 절대 변하지 않습니다, 폐하. 독일을 변화시키려면 가장 먼저 폐하께서 직접 나셔주셔야 합니다. 그래야 국민도 다시 폐하를 따르게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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