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늘도 하늘은 맑은 뒤 흐림 (2) >
1940년 12월 22일
프랑스 파리 베르사유 궁전
Ju52를 타고 리스본으로 날아간 리벤트로프는 살라자르와 만나 내 의중을 전달했다.
포르투갈의 항구와 공항들, 그리고 아조레스 제도와 마데이라 제도를 공군 및 해군 기지로 사용할 수 있게끔 조차해주면, 독일은 고문단과 장비를 보내 포르투갈군의 현대화를 지원하고 연마다 2만 톤의 강철과 비료를 포르투갈에게 제공하겠다고(2차대전 시기 포르투갈은 친영국가임에도 비료와 강철을 주로 독일로부터 수입했다). 독일과 군사동맹을 맺으면 더더욱 좋고.
리벤트로프의 말에 따르면, 요구사항을 받아든 살라자르는 당황한 기색을 감추지 못했다고 한다. 하지만 그는 결국 리벤트로프에게, 정확히는 제3제국의 군사력에게 굴복했다.
"그가 뭐라고 말하던가?"
-우리의 요구사항을 모두 수락한다고 밝혔습니다. 대신 영국과의 관계를 언급하면서 군사동맹만큼은 한사코 거부했습니다.
"그 정도면 충분하지. 수고했네."
살라자르는 죽음뿐인 저항 대신 명예로운 타협을 선택했다.
포르투갈이 저항할 경우, 국방군을 스페인으로 진주시키고 나아가 리스본을 폭격해야 한다고 주장하던 괴링과 브라우히치를 설득하느라 애를 먹었던 나로서는 살라자르의 선택이 더할나위 없이 반가웠다. 덕분에 괜한 무력충돌은 피할 수 있게 되었으니까.
포르투갈의 복종을 받아낸 나는 가벼운 마음으로 파리로 향했다. 에펠탑, 개선문과 더불어 파리를 상징하는 랜드마크 중 하나인 베르사유 궁전은 프랑스가 항복을 선언한 뒤부터 프랑스 주둔 독일군 총사령부 본부로 쓰이고 있었다.
"베르사유 궁전에 어서 오십시오, 총통 각하."
"오, 블롬베르크 원수. 다시 보니 반갑소이다."
블롬베르크는 베르사유 궁전 정문에서 내가 도착하길 기다리고 있었다.
"신수가 환해 보이는군. 타지에서 지내느라 향수병이 날 줄 알았는데. 프랑스에서의 생활이 제법 마음에 드는 모양이오?"
"매일같이 궁전에서 지내다보니 루이 14세가 된 기분입니다, 하하하!"
마지막으로 병원에서 만났을 때와 비교해서 블롬베르크는 무척 즐거워 보였다. 프랑스 총독(사실상) 생활이 아주 마음에 드는 모양이군.
그리고 또 한 명.
"처음 뵙습니다, 페탱 원수."
노원수 앙리 필리프 페탱은 떨떠름해하면서도 내가 내민 손을 잡고 흔들었다.
***
오늘의 모임은 페탱의 요청으로 인해 마련된 것이었다.
본론에 들어가기 전, 페탱은 앞서 내게 프랑스군 포로들의 석방이 차질없이 진행되고 있는 것에 대해 감사를 표했다.
독일의 포로가 된 프랑스군 190만 명 중 현재까지 석방된 프랑스군 포로들은 100만. 파릇파릇한 20, 30대 프랑스 병사들은 공습으로 피해를 입은 도시들의 재건에 동원해야 했기에 식량과 의약품만 낭비하는 부상병들과 힘이 딸려 고강도의 노동이 힘든 중장년층들을 우선적으로 석방시켰다.
그 다음 순서가 인도차이나와 아프리카 식민지 출신 병사들. 장차 프랑스로부터 독립할 국가들에게 독일의 좋은 모습을 보여줄 필요도 있거니와 이들 식민지 병사들은 프랑스에서도 절대적으로 필요한 인력이 아니었기에 석방 대상이 되었다.
석방되어 집으로 돌아가거나, 수용소에 그대로 갇혀 있는 포로들도 많지만, 독일군에 지원한 포로들도 있었다. 국방군에 지원한 포로들이 3천 명, SS에 지원한 포로들이 7천 명으로, 알자스-로렌 출신이 아닌(이들은 독일 국민으로 간주해 즉시 석방했으므로) 모두 순수 프랑스인들이었다.
"많은 프랑스인들이 총통이 프랑스에 보인 관대함에 고마워하고 있소이다. 나 역시 한 명의 프랑스인으로서 총통이 보여준 자비에 진심으로 감사드리오."
"아닙니다, 허허. 미우나 고우나 프랑스는 독일의 이웃인데, 전쟁도 끝났으니 다시 친하게 지내야지요. 그게 양국 국민들뿐 아니라 전 유럽을 위해서도 좋은 일이 아니겠습니까."
명절날 친척들끼리 으레 나누는 덕담과 비슷한 대화가 오가고, 각자의 앞에 놓인 차의 온기가 사라질 무렵 페탱은 그동안 미뤘던 본론을 얘기했다.
"총통, 현재 프랑스군의 상태는 말이 아닙니다."
"알고 있습니다."
프랑스 해군은 알다시피 크릭스마리네에 쓸만한 함정들을 모두 뺏겨 3류 수준으로 전락했고, 육군은 해군보다 사정이 조금 낫지만, 전쟁 전과 비교하면 처참한 상태를 자랑했다.
휴전협정 체결 당시 프랑스군을 무장해제하면서 압수한 무기와 장비, 탄약, 물자는 그대로 국방군에게 접수되었고, 프랑스군에겐 덜도 말고 딱 자위용으로 쓸만큼의 분량만 남겨졌다. 명색이 흉갑기병사단인데 보유 중인 전차가 달랑 1개 소대 밖에 없다던가, 트럭 대신 마차를 사용하고 탄약이 부족해 사격 훈련도 못하는 사단들이 부지기수.
현재 프랑스군에서 병력과 장비가 완편된 부대는 1개 사단뿐. 세계 제일 육군이라 자부하던 군대의 모습치곤 처참하기 짝이 없는 수준이다.
이것도 모자라 하루에 4억 프랑-21세기 가치론 1억 달러-에 달하는 비용을 독일에 헌납해야 하는데다, 프랑스가 보유한 공장은 독일의 소유가 되었기에 프랑스군의 재무장은 지지부진할 수밖에 없었다.
재무장을 금지할 생각이 없다고 했지, 재무장을 할 수 있도록 놔두겠다는 소리는 하지 않았으니 우리는 협약을 철저히 준수하고 있는 셈이다. 그걸 알기에 프랑스도 여태껏 불평이나 항의조차 하지 못하는 것이고.
"총통은 지금 일본이 인도차이나에 눈독을 들이고 있다는 것도 알고 계시오?"
역사대로라면 일본은 9월에 비시 프랑스를 압박해 프랑스령 인도차이나 북부에 일본군을 주둔시켰다. 그러나 여기선 독일과 일본이 동맹관계가 아닌 터라 일본군의 인도차이나 진출은 아직 이루어지지 않았다.
"물론이죠. 하루가 멀다하고 일본군의 항공기가 인도차이나 영공을 침범한다고 하던데."
페탱이 무슨 말을 하려고 나와 만나자고 요청했는지 감이 잡혔다.
"인도차이나에 주둔한 병력과 장비만으론 일본군으로부터 인도차이나를 지킬 수 없소. 인도차이나를 지키려면 병력과 장비를 증파해야 하는데, 작금의 상태로는 그게 불가능하외다. 그러니 부디, 프랑스군을 무장시킬 장비의 일부를 반환해주길 부탁드리오."
"허, 페탱 원수. 그걸 말이라고 하는 겁니까?"
페탱의 발언이 끝나기 무섭게 블롬베르크는 웃기지도 않는다는 듯 콧방귀를 뀌었다.
"우리 독일은 넓은 아량으로 패전국인 귀국에게 자비를 베풀었습니다. 재무장도 허용했고 병력에도 제한을 두지 않았소. 그런데도 프랑스는 감사하기보다는 총통의 자비를 이용해먹으려고만 하는군요. 나중에는 우리 해군에게 넘긴 함선들도 다시 돌려달라 하겠습니다."
"진정하시오, 원수."
나는 블롬베르크를 진정시킨 뒤 페탱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설마 정말로 단순히 부탁만 하고 끝은 아니겠지요? 뒤에 하실 말이 더 남아있는 거 아닙니까?"
내 질문에 페탱은 고개를 끄덕여 보였다. 역시. 훗날 변절자니 뭐니 욕을 먹긴 했어도 페탱은 현실의 정치가 무엇인지 기본은 아는 사람. 단순히 상대의 자비에 기대어 부탁을 할 정도로 멍청하지 않다.
"총통이 내 요청을 받아들인다면, 독일이 타국의 공격을 받을 경우 프랑스는 독일을 도와 병력을 파견하겠소이다."
"흠."
블롬베르크는 여전히 '이 늙은이가 또 무슨 소릴 하려고'라는 표정으로 페탱을 응시하고 있었다. 페탱은 블롬베르크의 시선에 아랑곳하지 않고 말을 이어갔다.
"프랑스령 북아프리카와 서아프리카, 태평양과 인도양 식민지를 독일이 군사기지로 사용할 수 있게끔 조차하고, 독일이 요청하면 프랑스인 노동자들을 파견하겠소. 최대 50만까지."
"그게 전부요?"
블롬베르크가 물었다.
"그렇소."
"페탱 원수. 긴히 논의할 게 있으니 잠시 쉬었다가 다시 만나도록 합지요."
블롬베르크의 입에서 볼멘소리가 튀어나오기 전, 나는 페탱을 방에서 내보냈다.
"총통 각하께선 정말로 저 늙은이의 말을 믿으시는 겁니까?"
"완전히 믿는 것은 아니오. 그렇다고 순 거짓말이라고도 생각하지도 않소."
"총통 각하. 외람되오나 군 일각에선 총통께서 프랑스인들을 너무 관대하게 대한다는 말들이 나오고 있습니다. 하물며 우리 군이 압수한 장비들을 프랑스에게 다시 돌려줬다간 예기치 못한 상황이 발생할 우려가 있습니다. 다시 한 번 더 고민해주십시오."
블롬베르크는 벌써 내가 페탱의 요청을 들어줄 것이라고 확신하는 모양이었다. 프랑스인들은 어떻게 생각할지 몰라도, 역사와 비교하면 내가 프랑스에게 나름 자비를 베푼 것은 사실이다. 알자스-로렌만 빼앗고 영토와 식민지는 그대로 놔둔데다 재무장도 금지하지 않았다. 베르사유 조약이 얼마나 가혹했는지 기억하는 일부 장성들은 프랑스에게 너무 많은 것을 남겨줬다며 불평했다.
블롬베르크의 말대로 여기서 무기까지 도로 프랑스군에게 넘겼다간 군 내부의 불평이 더 커질 지 모른다. 그렇다고 그게 정권에 위협이 되는 수준까지는 안 되겠지만, 군에서 잡소리가 계속 나오는 게 마냥 좋은 일은 결코 아니지.
"누가 들으면 내가 노골적으로 프랑스인들 편을 들어주는 걸로 보이겠군. 물론 나는 훗날 유럽을 이끌어갈 신질서(Neuordnung)의 확립을 위해선 프랑스도 독일의 우방으로 끌어들여야 한다고 생각하지만, 프랑스인들이 원하는 것만 들어줄 생각 역시 추호도 없소. 저쪽에서 무언갈 요구하면, 우리도 그에 상응하는 대가를 받아야지."
"역시. 그런데 생각해두신 게 있으십니까?"
"당장은 독일에 있는 포로들만으로도 충분하니 노동자를 추가로 요구할 필요는 없소. 그래도 만일의 상황에 대비해서 문서로 만들어 놓는 게 좋겠군. 나중에 가서 저들이 딴소리를 할 수 있으니 말이오.
그리고 프랑스군을 재무장시킬 무기와 탄약, 장비, 물자는 아군이 노획한 것들 중 가장 상태가 떨어지는 것들을 골라서 주고, 그 대가로 우리는 프랑스가 보유한 금괴와 자원, 농산물을 받아가는 거요. 프랑스인들은 자기네 식민지를 지킬 군대를 무장시킬 수 있어서 좋고, 우리는 우리가 자비롭다는 인식을 프랑스인들에게 심어줌과 동시에 국고가 두둑해져서 좋지. 이 정도면 충분히 서로 만족할만한 거래가 아니겠소?"
"으으음, 과연 나쁜 발상은 아닙니다만.... 그래도 혹시 모르지 않습니까? 행여 우리가 장비를 도로 넘겨주기 무섭게 프랑스군이 반란이라도 일으킨다면-"
아, 글쎄 그럴 일은 없다니까 그러네. 그럴 깡이 있는 놈들이었으면 4주 만에 항복했겠냐?
"프랑스인들은 유약하지만 바보는 아니오. 무장과 병력, 사기 모두 극에 달해있을 때 우리와 정면으로 붙어서 패했는데, 그보다 훨씬 더 좋지 않은 상황에서 우리와 다시 싸우려 들겠소? 이럴 때 선심쓰는 것처럼 행동해서 프랑스인들의 적개심을 조금이라도 줄이는 게 독일의 미래에 더 도움이 될 거요."
겸사겸사 일본한테 엿도 좀 먹이고.
전쟁 말기로 갈수록 온갖 해괴한 짓거리를 하고 다녀서 할 줄 아는 게 학살과 자살공격 밖에 없는 병신 군대라는 인식이 강한 일본군이지만, 남방 작전에서는 상대의 허를 찌르는 전략과 발빠른 대처, 적극적인 임기응변으로 숫적 열세를 극복하고 동남아 전역을 손에 넣었다.
21세기 프랑스에서 르끌레르와 라팔이라도 가지고 오지 않는 한, 인도차이나 주둔 프랑스군 전력이 얼마나 되던 간에 일본군의 남방 작전을 막을 수 있을 리 없다.
하지만, 막는 건 불가능해도 시간을 끄는 건 가능하리라 본다. 잘해도 1, 2주가 한계겠지만, 일본군의 피해가 늘어날수록 연합군의 피해는 줄어들 것이다. 그리 되면 태평양 전쟁도 조금이나마 일찍 종결될테고.
나는 페탱에게 요청을 수락하는 대신, 프랑스가 지불해야 할 대가에 대해 말했다. 자세한 건 리벤트로프와 샤흐트에게 맡기면 알아서 할 테니, 세세하게 짚을 필요는 없겠지.
조건을 들은 페탱은 고민이 되는지 머뭇거렸지만 이내 승낙했다. 그만큼 인도차이나는 프랑스에게 중요한 식민지였다. 다른 식민지들은 다 포기해도, 알제리와 베트남만큼은 잃을 수 없었던 프랑스는 시대착오적인 발상과 욕심 때문에 2차대전이 끝나고도 20년 가까이 전쟁을 치뤄야 했다.
보아하니 여기서도 크게 다르지 않을 것 같군.
***
1940년 12월 24일
독일-프랑스 국경
페탱과의 회담을 마무리짓고, 그 다음날에는 프랑스 주둔 독일군 장병들과 만나 함께 식사하는 자리를 가졌다.
병사들의 생활을 되돌아본다는 차원에서 평소의 병영식을 그대로 가져오라고 미리 지시를 했는데도 불구하고 도무지 병사의 식단이라고 볼 수 없는 요리들이 나왔다.
곧 크리스마스니 바움쿠헨(Baumkuchen. 쇠막대기에 반죽을 붓고 돌려가며 구운 도넛 모양의 케이크)과 슈톨렌(Stollen. 독일에서 크리스마스 때 먹는 케이크의 일종)이 나온 건 그렇다 치더라도, 병사 1인당 메추라기 구이 한 마리에 롤라덴 5개가 나오는 건 너무 보여주기식 아니냐?
일병 때 여단장 온다고 중식 메뉴가 조기 튀김에서 수육으로 바뀌는 기적을 본 일이 떠오르는군. 정작 여단장이 전날 회식을 보쌈집에서 했다는 게 반전이었지.
"이게 정말 평소식단이라고? 나 온다고 특별히 준비한 게 아니라?"
"크리스마스 기간이라 특별 배식이 나온 것일 뿐입니다!"
"아는 사람끼리 왜 그러나. 나도 병사 생활 해봤으니까 다 아네. 솔직하게 말해봐. 이런 걸로 뭐라고 할 생각 없으니까."
몇 번을 되물어도 급양관의 대답은 한결 같았다. 크리스마스 기간이라 특별 배식이 나오는 거다, 절대로 총통이 왔다고 메뉴를 추가한 게 아니다....
그래, 이게 군대지. 급양관의 고충도 모르는 게 아니었다. 총통이 온다는데 정말로 평소 먹던 것들만 내놔봐라. 나중에 무슨 소릴 들을 줄 알고. 좋은 게 좋은 거니 그냥 넘어가야지.
"이름이 뭔가, 이병?"
밥을 먹던 중, 나는 내 옆에 앉은 이등병에게 말을 걸었다. 소중한 식사시간을 방해해서 미안한데, 어딘가 낯이 많이 익단 말이지.
"오, 오토 카리우스입니다! 총통 각하!"
어쩐지! 분명 오늘 처음 보는 사이인데 이상할 정도로 익숙하더라니! 세상이 좁아도 너무 좁다니까.
미하엘 비트만, 쿠르트 크니스펠과 더불어 독일군 3대 전차 에이스 중 한 명인 오토 카리우스는 종전까지 150대 이상의 전차를 격파했으며, 그가 쓴 회고록 '진흙 속의 호랑이'는 밀덕이라면 한 번쯤은 읽어볼 정도로 유명한 책이다. 당연히 나도 읽어봤고.
그런 사람을 여기서 만나게 될 줄이야. 역사의 우연이 가져다 준 만남에 감탄하며 나는 카리우스를 뚫어져라 쳐다봤다.
카리우스는 내 시선이 부담스러운지 포크를 쥔 손을 떨었다. 다른 사람도 아니고 총통이 쳐다보고 있으니 밥이 넘어갈 리가 없지.
"아이고, 밥 먹는데 말 걸어서 미안하네. 나이를 먹으니 궁금한 게 많아져서 말이지."
"아닙니다, 총통 각하! 저야말로 총통께서 말을 걸어주셔서 영광입니다!"
"목소리 크게 안해도 되네. 귀청 떨어지겠어."
"죄송합니다!"
"죄송할 것까지야. 그건 그렇고 목소리 낮추라니까."
"알겠습니다."
"이름은 오토 카리우스고.... 보직은? 보병인가?"
"예, 그렇습니다."
책에서 읽은 그대로군. 카리우스는 전차장으로 유명해지기 전, 보병으로 입대한 평범한 소총수였다. 체격도 작은데다 힘도 약해서 고생 좀 했다고 들었는데.
"나도 보병이어서 얼마나 힘든지 알지. 특히 자네처럼 체격이 작고 왜소한 친구한테는 더더욱. 그러니 혹시 기갑병과에 지원할 생각 없나? 내가 보기에 자네는 보병보다는 전차병이 더 어울릴 것 같아."
"정말이십니까?! 가, 감사합니다!"
카리우스는 눈에 띄게 기뻐했다. 원래 기계공학에 관심이 많아 대전차병과에 지원했는데 TO가 꽉 차서 떨어지는 바람에 보병이 됐다지.
"그렇잖아도 곧 기갑병과로 전속할 지원자들을 뽑는다고 들어서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잘됐군. 자네 중대장에겐 내가 말해두지. 어디 열심히 해보라고."
프랑스에서의 일정을 끝마치고 아메리카에 몸을 실었다. 열차가 프랑스-독일 국경에 도달했을 무렵 졸음이 쏟아졌다.
"슬슬 자야겠군. 불을 좀 꺼주게."
"알겠습니다, 총통 각하. 편히 주무십시오."
크라우제가 불을 끄고 나가자 나는 침대에 누웠다. 크라우제에겐 당장 보고가 필요한 일이면 언제든지 깨우되, 그외 일들은 아침에 듣겠다고 전했으니 푹 잘 수 있겠군.
눈을 떴을 땐 베를린에 도착해 있겠지....
***
"크라우제. 총통께선 주무시고 계시나?"
"그렇습니다, 각하."
손에 전보를 들고 나타난 요들에게 크라우제는 부동자세를 취하며 대답했다.
"중요한 일입니까? 총통께서 당장 보고가 필요한 일이면 자신을 깨우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요들은 손에 든 전보를 흘긋 쳐다봤다. 전보의 내용이 가지는 의미에 대해 고민하던 요들은 고개를 저었다.
"아니. 그럴 필요는 없을 것 같군. 내일 아침에 보고 드리겠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