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히틀러가 되었다-97화 (97/150)

< Achtung Panzer! (4) >

1940년 12월 6일

독일 베를린 신 총통관저

말은 하지 않았지만, 도고가 나를 찾아온 이유는 쉽게 짐작할 수 있었다.

필시 중국 때문에 나를 찾아온 것이겠지.

아니나 다를까 회담이 시작되고 1분 여 만에 내 짐작은 사실로 드러났다.

도고가 말하길, 일본은 내가 중국의 요청을 받아들여 무기를 수출한 것에 대해 큰 충격을 받았다고 한다.

충격이라니, 안 울리는 표현을 다 쓰는군. 하는 짓만 보면 나치와 자웅을 겨뤘던 놈들이 애인의 바람에 상처 받은 피해자처럼 얘기하는 꼴이라니.

뻔뻔하기론 아주 세계 정상급인 놈들이라니까.

"황국은 독일의 요청대로 대발동정(大発動艇)을 비롯한 각종 장비들을 독일에 인도했습니다. 그런데 황국의 적에게 무기를 팔다니, 어떻게 이런 일이 있을 수 있단 말입니까?"

일본으로부터 들여오기로 한 대발동정과 관련 설계도는 무사히 인수하여 지금 인도양을 건너고 있다. 프랑스와 이탈리아로부터 뜯어낸 함선들로 몸집을 불리는데 성공한 크릭스마리네지만, 실전에서 쓸만한 상륙정이 거의 전무했기에 나는 일본으로부터 대발동정을 들여와 연구하기로 했다. 이외에도 미국의 LVT-아직 제식명이 붙기 전이지만-와 유사한 상륙장갑차도 개발 중이고.

일본 입장에선 달라는대로 줬더니 적국에게 무기를 판 우리가 괘씸하게 보일 수도 있겠지만, 거기에 관해선 나도 할 말이 있었다.

"그 건에 관해서 우리 독일은 합당한 비용을 지불했으니 끝난 일이오. 그리고 중국은 일본과 적대 관계이지만, 독일에겐 중요한 교역국이오. 무엇보다 중국은 독일 외에 영국, 미국과도 교역을 하고 있는데, 어째서 독일에게만 엄격한 잣대를 들이미는지 모르겠군. 귀국은 독일이 만만해 보이는 것이오?"

"비약이 다소 심하신 것 같습니다. 황국이 독일에게 항의하는 이유는 중국과 교역을 해서가 아니라, 그들에게 무기를 팔아서입니다. 독일이 중국에 판 무기가 황국의 병사들에게 사용되어진다는 것을 총통께서도 알고 계시지 않습니까? 그리고 전에 총통께선 제게 중국에 있는 팔켄하우젠을 불러들이겠노라고 말씀하셨는데, 3년이 넘도록 그는 여전히 중국에 있는 것으로 확인되었습니다. 이 부분에 관해서도 황국은 크게 불편해하고 있습니다."

"팔켄하우젠 건은 내가 말하지 않았소. 그가 내 지시를 의도적으로 무시하고 중국에 눌러앉은 것이라고. 그의 명령 불복종 행위에 대한 경고로 나는 게슈타포에게 지시해 독일에 있는 그의 가족들을 구금하였소. 그런데도 그는 내 지시에 응하지 않았지. 여기서 내가 무얼 더 할 수 있겠소? 가족들을 처형해야 하나?"

팔켄하우젠의 가족들이 내 지시로 구금된 것은 사실이다. 그들은 현재까지도 게슈타포의 엄중한 감시 아래 슐레지엔의 별장에서 머물고 있다. 그것도 호텔 주방장과 고용인 10명, 중무장한 병사들이 철통같이 경호 중인 별장에서.

"그리고 대사에게 물어볼 게 있소. 귀국은 우리가 중국에 무기를 판 것에 대해선 분노하면서, 정작 우리를 선제공격한 폴란드에 대해선 어찌 그렇게 관대한 지 모르겠군. 그대들 일본은 우리가 폴란드와 전쟁 중일 때, 일방적으로 폴란드편을 들며 독일에게 온갖 비난을 퍼부어댔잖소. 거기에 대해선 할 말이 없소이까?"

"흠, 흠."

왜 중국에 무기를 팔았냐고 항의하러 온 도고는 내가 폴란드 문제를 거론하자 시선을 피하며 헛기침을 했다.

의외로 2차대전 당시 일본과 폴란드는 매우 사이가 좋았다. 폴란드는 일본이 만주에 세운 괴뢰국 만주국을 정식 국가로 승인한 몇 안 되는 반추축국 국가였으며, 폴란드가 독일의 침략으로 멸망한 뒤에도 일본은 도쿄에 있는 폴란드 대사관을 그대로 보존했으며 폴란드 망명정부와 외교관계를 유지했다. 심지어 태평양 전쟁이 발발한 후 폴란드 망명정부가 일본에 선전포고하자, '폴란드 정부의 대일 선전포고는 영국의 강요로 인한 것"이라고 간주하여 선전포고를 무시하기까지 했다.

나치에 맞서 유대인들을 구해낸 것으로 유명한 스기하라 지우네가 폴란드 망명정부의 요원과 접촉한 것도 이러한 일본과 폴란드의 밀월관계가 바탕에 깔려 있기 때문이다.

여기서도 일본은 내가 폴란드를 침략하자 비난성명문을 발표하고, 런던의 폴란드 망명정부와 정보를 주고 받았다. 하지만 나는 일본이 폴란드 망명정부와 비밀리에 연락을 주고 받는 중이라는 사실은 언급하지 않았다. 그래야 폴란드 놈들 모르게 정보를 빼내올 수 있는 게 아닌가.

허술하기 짝이 없는 일본의 암호체계 덕분에 SD는 매주마다 일본과 폴란드 망명정부의 알짜배기 정보들을 수집하고 있다. 더욱 가관인 것은 이 두 놈 모두 자기네들 정보가 우리에게 새어나가고 있는 것을 모르고 있다는 점이다.

사랑스러운 병신들 같으니라고.

"독일도 일본과 친하게 지낼 수 있다면 그럴 생각이었소. 하지만 귀국의 생각은 나와 다른 것 같더군. 그랬는데 이제 와서 배신 운운하는 것이 참 웃기다고 생각하지 않소?"

".....뭐라 드릴 말씀이 없습니다. 하, 한 가지 알아두셔야 할 게 있다면, 제 개인적으론 폴란드보다 독일이 황국에 더 중요한 파트너라고 생각하고 있다는 겁니다."

"그렇소? 그거 고맙구려."

허, 어디서 되도 않는 구라를 쳐? 네놈 똘마니들이 폴란드 놈들이랑 붙어먹은 게 한두 번이 아니라는 것쯤은 다 알거든?

지금 이 순간에도 독일에 있는 일본과 폴란드 정보원들은 게슈타포의 감시 아래에 있었다. 내가 손가락 하나만 움직이는 것만으로도, 놈들은 팔다리가 묶여 라인강에 산 채로 던져질 것이다. 아직 캐낼 정보가 많으니 살려두는 것이지, 결코 죽일 수 없어서 죽이지 않는 게 아니다.

그 사실만큼은 알아주면 좋겠는데.

***

이번 회담에서도 도고는 아무 소득도 건지지 못하고 대사관으로 돌아갔다.

나는 조만간 일본이 성명문을 발표해 나를 비난할 것이라고 예상했지만, 일본의 반응은 내 예상과 180도 달랐다. 일본은 비난성명문을 발표하는 대신, 오히려 협력관계 강화를 제안해왔다.

뭐지? 예상과 전혀 다른 일본의 반응에 여간 당황하지 않을 수 없었다. 너무 예상 밖의 일이라 어떻게 대응해야할지 감이 잡히지 않았다.

"일본이 저렇게 나오는 이유를 당최 모르겠군. 짐작가는 사람 있나?"

"우리를 비난해봤자 실질적으로 얻을 수 있는 게 없기 때문이 아니겠습니까?"

리벤트로프의 추측.

"일리가 있군. 하지만 왠지 그게 이유의 전부이진 않을 것 같은데."

"1년 전과 비교해서 독일의 위치가 달라져서 그런 것 같습니다. 1년 전까지만 영프를 상대로 싸워서 이길 수 있으리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얼마나 되었겠습니까. 하물며 일본은 또 어떻고요. 그랬던 우리가 지금은 전 유럽을 호령하고 있으니 놈들도 태도를 바꾼 것 같습니다."

괴링의 추측. 현실적으로 볼 때 이 말이 가장 신빙성이 높았다.

폴란드를 정복한 뒤에도 일본은 독일과 영프 중 어느 편만 들지 않고 사태를 관망하는 편이었다. 폴란드는 정복하는데 성공했어도, 영국과 프랑스만큼은 천하의 독일도 어찌하지 못할 것이다....

그랬는데 영프가 무너지고 독일이 유럽의 패자로 급부상하자, 독일과 친하게 지내는 것이 자신들에게도 이익이라고 판단한 것이리라.

사흘 전까지 중국에 무기 좀 팔았다고 경기를 일으키던 놈들이, 이제와서 친하게 지내자고 아부하는 꼴이라니.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 핵 처맞기 직전에도 한반도와 대만, 만주만큼은 남겨달라고 배짱을 부리던 녀석들답다.

실제 히틀러였다면 소련 침공 때 도움 좀 받겠다고 제안에 응했겠지만, 레벤스라움(Lebensraum)을 위해 소련과 전쟁을 할 생각이 없는 나로서는 가소로울 따름이었다.

나는 일본의 제안을 무시하고, 주일 독일인들의 철수를 서둘렀다. 태평양 전쟁 발발까지 앞으로 1년이 남았으니, 그 전까지는 일본에서 완전히 손을 떼야 한다.

전쟁 중인 중국에선 군사고문단을 제외한 전 인력이 철수했고, 일본 외에 동남아와 오세아니아의 독일인들도 본국으로 소개시키는 작업이 진행 중이다. 문제는 해당 지역에 머물던 사업가들과 기업인들이 경제적 손실을 이유로 소개령에 응하지 않고 있다는 것이었다.

"소개령으로 발생하는 사업상의 피해를 정부에서 모두 보상하려면 적지 않은 비용이 소요될 겁니다."

샤흐트는 기업과 개인에게 일일이 보상을 해주려면 재정에 적잖이 부담이 될 것이라고 우려를 표했다.

그놈의 돈 문제에서 또 발목이 잡히는군. 그렇다고 가만히 내버려둘수도 없고. 참 난감한 문제였다.

"별 수 있겠소. 정부에서 보상한다고 하고 데려올 수밖에."

돈도 돈이지만, 국민들을 보호하는 게 국가의 일인데 이를 외면해서야 국가라고 할 수 있겠나. 천신만고 끝에 겨우 탈북한 국군 포로 장무환 씨를 외면한 주중한국대사관을 보라. 이걸 국가라고 부를 수 있냐?

"대신, 1941년 12월 이전까지 소개령에 응한 자들에게만 보상을 해주고, 기한을 넘기면 보상할 수 없다고 전하시오. 국민을 보호하는 게 국가의 의무라지만, 국가의 보호를 거부하는 자들을 굳이 챙길 필요는 없지."

"알겠습니다."

***

1940년 12월 14일

중국 후베이성

"지나 놈들이 도망칩니다."

"겁쟁이 녀석들. 개새끼마냥 도망치는 꼴하고는."

전차장 나카노 케이치치 중위는 휘파람을 불며 승리를 만끽했다.

그가 탑승한 3식 전차는 일본군에겐 승리의 상징이오, 국민혁명군에겐 저승사자로 굳어졌다. 3식 전차가 등장할 때마다 일본군은 장교부터 병사까지 너 나 할 거 없이 환호했고, 국민혁명군은 비명을 질렀다. 3식 전차가 나타나기만 해도 병사들의 사기가 오르는 것이 눈에 보일 지경이었다.

본래 나카노는 전투기 조종사가 되는 것이 꿈이었다. 어려서부터 공부를 잘했던 그는 아케노 육군비행학교에 입학하는데 성공했지만, 해도 해도 너무하다 싶을 정도로 엄격한 교칙과 하루가 멀다하고 이어지는 선배들의 폭행에 질려 학교를 자퇴했다. 조종사를 포기한 나카노는 친척의 권유로 육군전차학교에 들어갔다.

육군전차학교도 군기잡기를 빙자한 폭행이 성행했지만, 비행학교만큼 교칙이 엄격하지 않았다. 육군전차학교를 수석으로 졸업한 나카노는 곧바로 중국행 수송선에 태워져 전장에 투입되었다.

이전에 그가 탔던 97식 전차 치하는 일본군이 보유한 전차 중 가장 강력한 전차였지만, 3식 전차에 비하면 경전차 수준이었다. 치하보다 두터운 장갑과 준수한 기동성, 넓직한 내부공간은 좁은 차체에 갇혀 전투하는 게 일상이었던 일본군 전차병들을 감동시키기에 충분했다.

"역시 독일의 기술력은 남다르다니까. 안 그렇냐?"

"예. 확실히 독일인들이 물건 하나는 기가 막히게 잘 만듭니다."

나카노가 찬 손목시계도 그의 아버지가 독일에서 산 물건이었다. 5년이라는 시간이 지났는데도 시계는 여태까지 한 번도 고장난 적이 없었다.

"지나 놈들도 모두 다 도망친 것 같고, 슬슬 철수하는 게-"

국민혁명군이 보이지 않아 철수를 고려하는 나카노는 좌측에 있던 아군 전차가 포탄에 맞자 말을 멈췄다. 강철이 깨지는 금속성 소리가 들리고, 3초 후 폭발이 일으나며 전차 내부에서 불길이 치솟았다.

"끄아아아아!!!"

몸에 화려한 꽃장식을 단 전차병들이 괴성을 토하며 불타는 전차 밖으로 빠져나왔다. 승리에 도취되어 만세를 외치던 병사들이 갑작스런 상황에 얼어붙었다.

"제길, 지나 놈들은 다 도망친 거 아니었어?"

나카노는 욕을 내뱉으며 큐폴라 안으로 몸을 쑤셔넣었다. 포탄은 분명 전방에서 날아왔다. 3식 전차를 일격에 격파한 걸로 봐선 대전차포나 야포가 분명했다. 나카노와 그의 부하들은 포탄을 발사한 적을 찾기 위해 눈에 불을 켰다.

"찾았다!"

나카노의 눈에 위장막을 뒤집어쓴 무언가가 보였다. 필시 적의 대전차포이리라.

"적은 2시 방향에 있다. 철갑탄 장전하고, 포탑 돌려!"

"알겠습니다!"

포수가 포탑을 돌리는 동안 나카노는 휘하 전차들에게 2시 방향을 주목하라고 무전을 날렸다.

"어어?"

표적에게서 눈을 떼지 않던 나카노는 표적이 후진하는 것을 보고 놀랐다. 대전차포가 움직이려면 사람 여러 명이 달라붙어서 뒤로 밀어야 하는데 홀로 움직였다는 것은 대전차포 같은 견인식 화포가 아니라는 증거였다.

'대전차포가 아니라 전차였던 말인가?'

포수가 포탑을 다 돌렸을 땐 이미 적은 나카노의 시야에서 벗어난 뒤였다. 하필이면 그와 적 사이에 둔덕이 있어 전차포의 사격 범위에 사각이 있었다. 시야에서 적을 놓친 나카노는 분통을 터뜨렸다.

그런데 적은 한 대만 있는 게 아니었다. 모두의 시선이 다른 곳에 가 있는 동안, 다른 방향에서 국민혁명군의 전차가 나타나 일본군의 3식 전차들을 향해 발포했다. 우렁찬 포성이 울리고 폭음이 뒤따랐다.

-4호차가 당했다!

순식간에 2대의 전차가 격파당하자 나카노는 당황했다. 무적이라고 여겨졌던 3식 전차를 일격에 격파한 것도 충격인데, 한 대가 아니었다니.

"2호차는 새로 나타난 적을 노려라! 나는 2시 방향의 적을 노리겠다."

-수신!

"조종수, 전진해! 둔덕을 넘는다!"

"예!"

나카노는 후퇴 대신 전진을 결정했다. 적의 정확한 정체를 모르는 이상 퇴각하는 게 현명한 선택이었지만, 이미 2대의 전차를 잃은 나카노에겐 공격 외에 다른 선택지가 없었다.

만약 그가 후퇴를 명했다면 그는 전차 2대를 잃고도 적과 싸우기를 포기한 겁쟁이로 낙인찍혀 온갖 매도의 대상이 될 것이고, 최악의 경우 할복을 명령받을 수도 있었다. 그렇기에 그는 살기 위해서 싸울 수밖에 없었다.

전차가 둔덕을 넘자, 나카노는 적이 어디에 숨었는지 단번에 찾아냈다. 겨우 50m 밖에서 적 전차가 주포를 나카노의 전차를 겨누고 있었다.

포수가 격발기를 누르기 전에 적 전차가 먼저 발포했다. 묵직한 충격이 전해지면서 불똥과 파편이 마구잡이로 날아들었다.

"크윽!"

조종수와 무전수, 포수는 전사하고 탄약수는 전차 내벽에 머리를 처박고 기절했다. 나카노는 불행 중 다행으로 이마와 어깨에 파편상만 입고 살아남았다.

그는 전차를 버리고 탈출하는 대신, 숨통이 끊어진 포수를 밀치고 직접 포탑을 조작했다. 약실에는 이미 포탄이 장전되어 있었다.

"됐다."

금이 간 조준경에 적 전차가 잡히자 나카노는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그리곤 지체없이 격발기를 눌렀다.

-덜컹

"뭐야, 이거!?"

격발기를 누르자 전차포에서 불이 튀는 대신 쇠의 마찰음만 들렸다. 당황한 나카노는 재차 격발기를 눌렀지만 이번에는 소리조차 나지 않았다.

피격의 충격으로 주포가 고장나 격발이 되지 않게 된 것이다.

"이런 빌어먹을...."

그것이 나카노의 마지막 유언이 되었다. 국민혁명군의 50식 전차는 재차 사격을 가해 3식 전차의 숨통을 완전히 끊어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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