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히틀러가 되었다-92화 (92/150)

< 오만의 끝 (3) >

독일 공군의 로마 공습으로 민간인 7,200명이 사망하고 1만 채에 달하는 건물이 파괴되거나 손상을 입었다.

가뜩이나 전황 악화로 정부에 대해 불만이 쌓여만 가던 이탈리아인들은 로마 공습을 계기로 불만이 폭발하고 말았다.

공습 이틀 뒤인 7월 5일, 로마에서는 대규모 시위가 열렸다.

50만에 달하는 시위대는 종이와 판자에 구호를 휘갈겨 쓴 팻말과 플래카드를 들고 엉망이 된 로마 시내를 행진하며 구호를 외쳤다.

“당장 전쟁을 멈춰라!”

“무능한 국왕은 물러가라!”

공습으로 가족과 집을 잃은 사람들의 슬픔과 분노는 군과 경찰만으로도 막을 수 없었다.

시위대가 시위를 멈추고 해산할 때는 오직 공습경보가 울릴 때뿐.

로마뿐만이 아니라 아직 공습을 받지 않은 나폴리, 살레르노 같은 도시들에서도 시위가 열렸다.

이탈리아 전국 각지에서 시위가 열렸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설상가상으로 시위대를 진압해야 할 경찰과 군대가 시위를 방관하거나, 아예 시위대에 합류하는 일까지 생겼다.

사태가 심상치 않게 돌아가기 시작하자 군부와 내각의 권고를 무시하고 트렌티노알토아디제 할양만 고집하던 국왕은 내각에 독일의 요구를 검토할 것을 지시했다.

내각이 독일의 요구조건에 대해 검토하는 동안, 독일군은 포 강 유역의 이탈리아군 방어선에 맹공을 가했다.

“발사!”

“폭탄 투하!”

야포와 자주포, 폭격기들이 이탈리아군 진지에 폭탄을 퍼붓는 사이 보트와 바지선에 나눠탄 보병들이 강을 도하했다.

이탈리아군은 포격과 폭격 때문에 강을 건너는 독일군을 공격할 수 없었다.

포격과 공습이 끝나면, 강을 도하한 보병과 전차들이 이탈리아군 진지를 공격했다.

1차로 4호 전차나 헷처가 유탄을 발사해 참호를 유린하고, 2차로 보병들이 돌격해 참호를 장악했다.

7월 6일, 포(Po) 강을 도하한 독일군은 페라라를 공격했다. 페라라 외곽의 이탈리아군 방어선을 슈투카와 Hs123이 급습해 때려부쉈다.

“슈투카다!!!”

“모두 고개 숙여!”

슈투카 사이렌이 울리면 이탈리아군은 참호 바닥에 고개를 처박기 바빴다.

폴란드와 프랑스에서 실전을 거듭하며 경험을 쌓아 올린 조종사들은 이탈리아군의 진지에 정확히 폭탄을 투하했다.

슈투카가 급강하폭격으로 투하한 폭탄을 맞은 진지는 거대한 섬광과 함께 날아갔다.

슈투카보다 구형에 기동성과 방어력도 약한 Hs123도 이탈리아군에겐 공포의 대상이었다.

간혹 대공포에 맞아 추락하는 기체가 있었지만, 그 대공포도 얼마 못 가 슈투카의 표적이 되어 산산조각났다.

급강하폭격기들이 이탈리아군 진지를 유린한 뒤에는 보병들이 기갑차량을 앞세워 공격했다.

전차를 앞세운 독일군의 공격에, 약해질 대로 약해진 이탈리아군의 방어선은 가뿐하게 돌파당했다.

***

1940년 7월 7일

이탈리아 페라라

“파스타 새끼들. 무지막지하게 쏴대는군.”

로마 시대에 만들어진 돌담 뒤편에 소대원들과 몸을 숨긴 강글은 능숙한 손놀림으로 MP38의 탄창을 교환했다.

이탈리아군에 의해 요새화된 5층 건물 하나 때문에 강글의 소대는 10분째 발만 동동 굴렀다.

“소대장님, 소대장님!”

“뭔데?”

“판처파우스트가 도착했습니다.”

“아, 그래? 좋았어!”

판처파우스트가 도착했다는 말에 강글은 만면에 미소를 띄었다. 소대원 2명이 판처파우스트가 든 나무상자를 낑낑거리며 들고 왔다.

상자 안에 든 판처파우스트의 갯수는 2정, 탄두는 8개가 들어있었다.

강글은 상자에서 판처파우스트를 꺼내 이탈리아군의 기관총 진지를 겨냥했다.

3층 창문에 거치된 브레다 M30을 쏘는 적병이 강글의 표적이었다.

판처파우스트는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본래 전차를 잡기 위해 만들어진 무기지만, 기관총 진지나 벙커에도 판처파우스트는 탁월한 위력을 자랑했다.

이 때문에 독일군은 소총탄으로 격파가 힘든 것이라면 판처파우스트를 쏘아댔다.

3층 창문의 기관총을 겨냥하고 격발기를 누르자, 반동으로 몸이 뒤로 밀리는 게 느껴졌다. 발사관은 떠난 탄두가 표적에 명중하자, 섬광이 터져 나왔다.

다른 기관총 진지도 마저 처리하기 위해 새 탄두를 끼우는데 궤도 구르는 소리가 들렸다. 뒤를 보니 브룸베어가 굴러오고 있었다.

“브룸베어다. 모두 귀 막고 고개 숙여.”

브룸베어의 15cm 포는 화력이 뛰어나지만, 그만큼 소음이 장난이 아니어서 멍하니 있다간 고막에 손상을 입을 수 있었다.

그랬기에 브룸베어가 포를 쏘려고 하면 독일군은 귀를 막았다.

브룸베어의 15cm 유탄이 명중하자 천둥치는 굉음이 울리면서 건물이 우측으로 쏠려 무너졌다.

무너져 내리는 벽돌과 유리창 조각들 사이로, 팔과 다리, 몸통의 일부가 쏟아졌다.

“빨리 좀 오지. 귀한 탄두 하나만 낭비했잖아.”

“그래도 이제라도 와서 다행입니다.”

강글은 소대원들은 방금 전까지 건물이었던 거대한 잔해더미를 넘어 전진했다.

이탈리아군의 머리와 팔이 잡초마냥 잔해 사이로 삐쭉삐쭉 솟아있었다.

연기와 먼지 때문에 숨을 들이쉴 때마다 코가 매웠다.

건물을 통째로 날려 보병들의 수고를 던 것까지는 좋았지만 문제가 없진 않았다.

건물의 잔해가 길을 막은 탓에 전차 등 중장비가 통행할 수 없게 된 것이었다.

전차의 통행을 위해 병사들이 다른 길을 찾는 동안, 강글의 소대원들은 이탈리아군의 다음 방어선에 부딪혔다.

이번에도 판처파우스트는 큰 역할을 했다. 기관총 진지가 판처파우스트 한 방에 날아가자, 방어선을 지키던 이탈리아군 병사들은 퇴각했다.

강글은 퇴각하는 적군들에게 MP38을 난사했다. 이탈리아군 서너 명이 고꾸라지는 광경이 시야에 잡혔다.

다시 소대원들에게 전진 명령을 내리려는데, 궤도 구르는 소리가 들리더니 모퉁이에서 전차가 튀어나왔다. 이탈리아군의 M13/40이었다.

“이런 젠장, 전차다!”

“전원 산개!”

전차의 등장에 소대원들이 좌우로 산개했다. 기관총 진지마다 판처파우스트를 쏴재낀 탓에, 이제 남은 탄두는 2개뿐이었다.

M13/40은 2대. 한 발 당 한 대씩만 잡으면 된다.

“후버.”

“예!?”

“앞에 있는 놈은 내가 해치울 테니, 넌 뒤에 있는 놈을 노려라. 할 수 있겠지?”

“맡겨만 주십쇼, 소대장님.”

판처파우스트를 든 후버 병장이 자세를 낮추고 이동하는 사이 강글은 가로수 뒤에 숨어 M13/40이 다가오길 기다렸다. 궤도 구르는 소리가 커질수록 강글의 심장도 빠르게 뛰었다.

판처파우스트의 사정거리는 50m. 적 전차와의 거리는 60m. 10m도 더 다가올 때까지 기다려야 했다.

M13/40이 50m 안으로 들어오자 강글은 가로수에서 나와 적 전차를 겨냥했다.

이탈리아군 전차병은 가로수에서 나온 강글을 미처 발견하지 못했다. 그들의 시선은 온통 정면을 향해 있었다.

판처파우스트의 탄두가 발사관을 떠났다. 곧 우렁찬 폭발음이 귀청을 내리고, 금속 파편 몇 개가 날아왔다.

강글이 쏜 판처파우스트는 M13/40의 탄약고에 명중하여 전차를 유폭으로 몰고 갔다. 전차병들은 전차에서 탈출할 틈도 없이 전차 내부를 휩슨 화염에 녹아내렸다. 처절한 비명과 괴성이 전차 밖으로 튀어나왔다.

“좋아!”

뒤따르던 전차가 포탑을 돌려 공축기관총을 발사했다. 강글은 서둘러 몸을 피했다. 곧 유탄이 날아와 그가 몸을 숨겼던 가로수를 조각냈다.

“후버, 지금이다!”

“알겠습니다!”

이제 후버가 나서서 남은 놈을 처리해줄 차례였다. 후버가 나와 판처파우스트를 발사하려는 순간, 전차를 후속하던 이탈리아군들이 후버를 발견하고 사격을 가했다.

“으아아!?”

이탈리아군의 총알은 후버를 맞추지 못했지만, 대신 그의 집중력을 흐트려놨다. 탄두는 간발의 차이로 M13/40의 포탑을 비껴가 건물 외벽에 처박혀 폭발했다.

“아잇 싯팔!”

허무하게 전차를 잡을 기회를 날리자 강글은 욕을 뱉어냈다. 이제 남은 탄두는 제로. 탄두가 없으면, 발사관은 흔하디흔한 쇠파이프에 불과했다.

“야 이 멍청아! 그게 마지막 남은 하나인데 어쩌잔 거야?!”

“죄송합니다!!!”

후버를 질책해봤자 변하는 건 없었다. 전차의 지원을 받는 이탈리아군의 공격으로 강글의 소대는 왔던 길을 되돌아갈 수밖에 없었다.

측면에 매복한 병사들이 MG34를 발사해 전차를 후속하는 보병들을 고꾸라뜨렸지만, 전차는 끄떡도 하지 않았다.

아무리 거지 같은 성능으로 악명 높아도 전차는 결국 전차. 적어도 기관포 이상은 돼야 전차를 잡을 수 있지 기관총이나 수류탄 따위론 꿈도 꿀 수 없었다.

이럴 줄 알았다면 판처파우스트를 아껴쓰는 건데.... 기관총 진지와 마주할 때마다 무턱대고 판처파우스트를 사용한 게 화근이었다.

강글은 후회가 막심했다.

소대원 전체가 전차 한 대를 두고 끙끙거리는데 엎친 게 덮친 격으로 전차와 보병들이 추가로 나타났다.

이번에 나타난 전차는 M13/40보다 성능이 뒤떨어지는 M11/39였는데, 대전차무기가 없는 강글의 소대 입장에선 생김새의 차이만 있을 뿐 상대하기 버거운 존재라는 점에선 다를 바 없었다.

“하다못해 화염병이라도 있었으면.... 어?”

“소대장님, 저기!”

후버가 가리킨 곳에는 정면이 경사지고, 차체에 주포가 달린 기갑차량 한 대가 있었다. 독일군의 명품 무기, 헷처였다.

“헷처다!”

헷처가 불을 뿜기 무섭게 M13/40이 불덩이로 화했다. 상부의 해치가 열리면서 전차장과 탄약수가 뛰쳐나오다 헷처의 MG34에 벌집이 되었다.

헷처의 등장에 당황한 M11/39가 황급히 후진을 시도했지만 얼마 못 가 녀석도 통구이가 되었다. 전차를 등에 업고 기세등등하게 반격해오던 이탈리아군은 전차들이 모두 당하자 먼지처럼 흩어졌다. 강글의 소대원들은 우군의 등장에 진심으로 환호했다.

토텐코프 사단 병사들의 등장으로 위기를 넘긴 강글의 소대원들은 전진을 재개했다.

***

1940년 7월 8일

이탈리아 로마

이미 71세의 노인이던 비토리오는 며칠 사이에 더 늙어서 언제 죽어도 전혀 이상할 게 없는, 살아있는 송장처럼 보였다.

그는 몇 개의 빵조각과 우유로 아침을 대충 해결하곤 자신을 알현하러 달려온 바돌리오를 만났다.

바돌리오도 비토리오만큼이나 요 며칠 사이에 폭싹 늙고 말았다. 이마의 주름이 그가 얼마나 오랫동안 고심했는지 알려주는 징표였다.

“정녕.... 이게 최선이란 말인가.”

바돌리오가 들고 온 항복문서를 읽은 비토리오가 남긴 말이었다.

“폐하. 송구하오나 더 이상 방법이 없습니다. 이미 국민들의 분노가 위험치를 한참 넘겼고, 병력과 물자도 슬슬 한계에 다다르고 있습니다.”

“병력이라면 리비아와 에티오피아에 있는 사단들을 불러들이면 되지 않은가. 아직 독일 해군이 지중해까지 진출했다는 소식은 듣지 못했네만?”

국왕의 반문에 우물쭈물하던 바돌리오는 작심한 듯 폭탄 발언을 내뱉었다.

“폐하, 아실는지 모르겠지만 지금 리비아와 에티오피아에 있는 병력은 2선급이라 부르기에도 민망한 오합지졸들뿐입니다. 제 전임자가 독일과의 전쟁을 위해 본토로 불러들인 정예사단들은 모두 독일군에게 괴멸당하거나 포로가 되었습니다.”

리비아와 에티오피아의 정예 병력은 이미 한 줌 거름으로 변해버린 지 오래였고, 현지에 남아있는 사단들은 바돌리오의 말대로 2선급에도 미치지 못하는 3선급 사단들이었다.

이마저도 숫자가 부족해 게릴라들이 활개 치고 다니는 것을 방치할 수밖에 없었다.

식민지에 남아있는 사단들까지 본토로 불러들이면, 게릴라들은 더욱 활개 치고 다닐 게 분명했다.

그리고, 사단들을 본토로 불러들이는 동안 독일군이 가만히 있을 리 없었다.

이들 사단이 본토에 도착했을 무렵이면 독일군은 로마 코앞까지 진격해있을 것이다.

‘그때까지 국민들이 참고 있다면 말이지만.’

오늘도 로마에선 연일 시위가 한창이었다. 시위대가 외치는 구호는 몇 겹이나 되는 군과 경찰로 둘러싸인 왕궁에서도 또렷하게 들을 수 있었다.

“전쟁을 멈춰라! 무능한 국왕은 물러가라!”

“왕정 폐지! 이탈리아를 공화정으로!”

“....늦었지만 지금이라도 전쟁을 끝내야 후일을 도모하실 수 있을 겁니다. 부디 결단을 내려주소서.”

“.....”

비토리오가 고개를 끄덕이자, 대기하던 시종장이 도장을 들고 왔다. 오직 국왕만 사용할 수 있는 도장이었다.

문서에 도장을 찍는 비토리오의 손에는 힘이 없었다.

“총리.”

“예, 폐하.”

“언젠가 국민들이 내 결단을 이해해주는 오리라고 자네는 믿나?”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

왜 빨리 전쟁을 끝내지 않았냐는 소리가 나올 것이란 말이 턱밑까지 차올랐지만, 끝내 나오지 않았다. 자기만의 상념에 빠진 국왕을 두고 왕궁에서 나온 바돌리오는 하늘을 올려다봤다.

샘물처럼 맑은 하늘이었다.

***

1940년 7월 10일

독일 오스트마르크 그라츠

바돌리오와 이탈리아 항복 사절단이 회담장에 들어서자 기자들은 일제히 플래시를 터뜨렸다.

우린 서로를 향해 경례를 주고받았다. 독일 측도, 이탈리아 측도 둘 다 로마식 경례로 인사하는 모습이 기묘했다.

“먼 길 오느라 고생하셨겠소, 총리.”

“감사합니다, 총통.”

내가 먼저 다가가 손을 건네자 바돌리오는 쓰게 웃으며 악수했다.

이 좋은 날에 표정이 너무 안 좋은 거 아니냐고 놀려줄까 생각도 했지만, 막상 얼굴을 마주하니 그러고픈 생각이 쑥 들어갔다.

금방이라도 울 것 같은 표정. 그것도 70 넘은 할배가 그런 표정을 지으니 괜히 뻘쭘해지는군. 나만 나쁜 놈 된 거 같잖아, 이거.

아, 나쁜 놈 맞나?

“흠, 흠. 비록 늦은 감이 없잖아 있지만, 지금이라도 전쟁을 끝낼 수 있어서 얼마나 다행인지 모르겠군요.”

“저도 동감입니다. 이날이 열흘, 아니 일주일이라도 더 빨랐다면 얼마나 좋았을지....”

바돌리오의 시선은 내 시선이 닿지 않는 곳을 향하고 있는 듯했다. 그의 말에선 진심으로 우러나왔다. 진심이.

로마는 그나마 공습 한 번으로 그쳤지만, 로마보다 위에 있는 북이탈리아 도시들은 수차례의 공습으로 잿더미가 되었다.

거기다 전쟁에서 졌으니, 당분간 배상금 갚느라 나라 전체의 허리가 휘겠지.

그러게 누가 전쟁하자고 했냐? 얌전히 중립만 지키고 있었어도 이 사단은 없었을 텐데.

“자, 그럼 서둘러 본론으로 들어갑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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