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히틀러가 되었다-89화 (89/150)

< 이탈리아 침공 (5) >

1차대전의 승전국 세르비아 왕국은 영국과 프랑스의 배려로 패전국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의 영토 상당부분을 흡수할 수 있었다.

순식간에 발칸반도의 절반에 이르는 대국으로 거듭난 세르비아는 1929년 국호를 유고슬라비아 왕국으로 변경했다.

1940년의 유고슬라비아 왕국의 국왕은 페타르 2세였다.

하지만 어디까지나 공식적인 국왕이지 실권은 당숙인 파블레 왕자에게 있었다.

국왕의 나이가 어리다는 이유로 섭정을 맡아 유고슬라비아의 실질적인 통치자로 군림하던 파블레 왕자는 독단적인 성격 탓에 정부 각료들은 물론이고 조카인 페타르 2세와도 사이가 나빴지만, 적어도 대세를 읽는 눈은 있었다.

프랑스는 백기를 들었고 영국은 물러났으며 이탈리아만 홀로 버티고 있는 상황.

그 영프조차 독일군을 이기지 못하고 무너졌는데, 이탈리아가 독일군을 막을 수 있을까?

그럴 리가.

조만간 이탈리아도 프랑스처럼 백기를 들고 말리라.

이미 승패가 정해진 싸움이라면, 늦기 전에 빨리 참전해서 떡고물이라도 주워 먹는 게 인지상정.

독일의 승리를 확신한 파블레 왕자는 전군에 명령해 이탈리아와의 전쟁을 준비했다.

파블레 왕자와 자주 대립각을 세우던 페타르 2세조차 이번만큼은 당숙의 의견에 적극 찬성했다.

“이탈리아가 백기를 들기 전에 서둘러야 하네. 적어도 이스트리아 반도와 자다르는 차지해야지. 기왕이면 알바니아도.”

재주는 곰이 부리고 돈은 사람이 버는 것처럼, 파블레 왕자는 독일군의 승리에 묻어가는 방식으로 자국의 이익을 취하고자 했다.

독일인들에게 얌체라는 소리를 좀 듣겠지만 뭐 어떤가. 원래 세계는 약육강식의 사회인데.

약한 자는 도태되고, 강한 자와 눈치 빠른 자만이 살아남는 세상 아닌가.

1940년 6월 25일, 유고슬라비아는 이탈리아에게 선전포고했다.

***

1940년 6월 25일

이탈리아 자다르

“후우, 씨발.”

밀로시 카라예비치 대위는 뺨에 튄 핏방울을 소매로 대충 문질러 닦은 뒤 조심스레 고개를 내밀었다.

그 즉시 총알이 날아와 밀로시가 쓴 철모를 툭 치고 날아갔다. 밀로시는 반사적으로 고개를 뒤로 젖혔다.

1차대전 종전 후 자다르를 둘러싸고 이탈리아와 세르비아는 서로 갈등을 빚어오다가 1920년에 맺어진 라팔로 조약으로 이탈리아의 영토가 되었다.

세르비아인들은 이탈리아가 자신들의 정당한 영토를 뺏어갔다고 격분했고, 반대로 이탈리아인들은 영프가 약속한 달마티아를 세르비아가 가져갔다며 분통을 터뜨렸다.

이탈리아의 패망이 초읽기에 들어간 지금, 유고슬라비아 입장에선 자다르를 합병할 좋은 기회였다.

마침 독일군을 막기 위해 대다수의 병력이 이탈리아 북부로 보내진 터라 자다르를 지키는 이탈리아군은 1개 연대뿐.

고작 1개 연대라면 금방 제압하고 항복을 받을 수 있으리란 판단에 유고슬라비아군은 여유롭게 공격을 개시했다.

하지만, 자다르 방어군은 1시간 안에 백기를 들 것이란 유고슬라비아군의 예상을 비웃듯 맹렬하게 저항했다.

국경을 넘어 자다르에 발을 디디기가 무섭게 이탈리아군의 총탄이 날아와 유고슬라비아군들을 무자비하게 살상했다.

“빌어먹을. 돌아버리겠네.”

정면의 이탈리아군 매복조에 의해 밀로시의 중대는 전투 시작 후 15분 만에 20명이 전사하고 6명이 부상당하는 피해를 입었다.

지금도 이탈리아군 매복조에게 막혀 진격하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었다.

이탈리아군의 기관총 사격에 쓰러진 시체들 사이에 끼인 부상병들의 신음소리도 그를 더욱 심란하게 만들었다.

“주, 죽여, 줘······.”

척추에 총알이 박혀 입만 겨우 움직일 수 있는 부상병이 헐떡거리며 말했다.

20분 전까지 자신감에 들떠 농담을 따먹던 중대원들은 새파랗게 질려 벌벌 떨고 있었다. 밀로시는 혀를 찼다.

“2소대장!”

“예, 중대장님.”

“엄호사격할 테니 자네가 소대원들을 이끌고 공격을 개시하게.”

“제, 제가 말입니까······?”

난데없이 중책을 떠맡게 된 2소대장이 말을 더듬었다. 쏟아지는 총탄을 뚫고 진격하라는 것은 사실상 죽으라는 소리였다.

“무리입니다. 앞에 적군이 떡하니 버티고 있지 않습니까. 자살행위나 다름없는 짓입니다.”

“그럼 어떻게 하나? 우회할 길이 없는데. 잔말 말고 공격 개시해. 명령 불복종으로 군사재판에 회부되기 싫으면.”

“······알겠습니다.”

3개의 소대 중 2소대가 선택된 이유는 별 게 아니었다.

소대 중 세르비아인보다 크로아티아인의 비중이 더 큰 소대는 2소대뿐이었기 때문이다.

2소대장도 크로아티아인이었기에 밀로시는 망설임없이 2소대를 제물로 삼았다.

유고슬라비아는 오헝 제국처럼 세르비아인과 크로아티아인, 보스니아인, 몬테네그로인, 마케도니아인 등 다양한 민족들이 사는 다민족 국가였다.

하지만 같은 나라에 살면서도 모든 민족이 사이가 좋은 것은 결코 아니었는데, 특히 세르비아인과 크로아티아인이 그랬다.

오래전부터 서로를 적대시하던 두 민족이 얼떨결에 하나의 나라로 뭉쳐졌다고 해서 이제까지의 원한을 모두 잊고 평화롭게 사는 것은 망상 속에서나 가능한 일.

상명하복이 원칙인 군대조차 예외가 아니어서 세르비아인 군인들이 크로아티아인 군인들을 차별하는 일이 비일비재했다.

전형적인 세르비아인인 밀로시는 크로아티아인들과 친하게 지내고픈 마음이 눈곱만큼도 없었다.

크로아티아인인 2소대장은 이를 악물었다.

지금 자신이 명령을 거부한다면 전투가 끝난 후 군사재판에 회부될 게 분명했다.

운이 억세게 좋으면 하사나 중사로 강등, 운이 나쁘면 총살형일 터.

이래 죽으나 저래 죽으나 마찬가지였기에 2소대장은 군인답게 싸우다 죽는 것을 선택했다.

“소대, 나를 따르라!”

“엄호사격!”

그래도 밀로시는 엄호사격을 하겠다는 약속을 지켰다.

2소대장이 소대원들을 이끌고 공격을 개시하자, 그는 중대원들에게 엄호사격을 지시했다.

마드센 경기관총이 불을 뿜는 가운데 크로아티아인들이 다수인 2소대 소대원들이 돌진했다.

이탈리아군의 브레다 M30도 즉시 불을 뿜었다.

2소대장은 적 기관총의 공격을 정면에서 받고 벌집이 되어 바닥을 나뒹굴었다.

다수의 소대원들도 곧장 소대장을 뒤따랐다.

소수의 병사들이 적의 사격을 뚫고 전진하는 데 성공했다.

전진에 성공한 병사들이 이탈리아군 매복조가 숨은 건물의 정문을 박차고 들어갔다. 이탈리아군 병사들이 2소대원들과 싸우느라 사격이 뜸해졌다.

“지금이다! 모두 전진!”

적군의 사격이 주춤하자 밀로시는 중대원들을 이끌고 돌격했다.

눈먼 탄환에 병사에 두어 명이 목숨을 잃었지만, 그 두 명 이후로 희생자는 더 이상 나오지 않았다. 앞서 돌격한 2소대 인원들이 이탈리아군 매복조를 처리한 것이다.

전투는 해가 저물 때까지 계속되었다.

***

1940년 6월 26일

이탈리아 트렌토

나는 렌둘릭을 격려하기 위해 트렌토에 자리잡은 그의 사령부를 방문했다.

트렌토에 거주하는 주민들의 절대다수는 오스트리아계로, 오헝제국이 해체되면서 졸지에 적국이었던 이탈리아의 국민이 된 사람들이었다.

무솔리니는 분리독립을 주장하는 트렌티노알토아디제의 오스트리아계 주민들을 철저히 탄압했다.

이탈리아 정부의 탄압을 받던 주민들은 이번에는 전쟁으로 삶의 터전이었던 도시가 파괴되는 참사까지 겪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독일군이 오자 집에서 급조한 하켄크로이츠 깃발을 흔들며 열렬히 환영했다.

자신들이 살던 도시에 폭탄을 떨어뜨렸다는 사실보다 이탈리아 압제자들로부터 해방시켜줬다는 감정이 더 크게 작용하는 듯싶었다.

“총통이시다! 총통께서 오셨다!”

“하일 히틀러!!”

“지크 하일!!!”

유명인사의 예기치 못한 방문에 깜짝 놀란 병사들이 일제히 하일 히틀러를 외치며 주변으로 몰려들었다.

나는 그들 중 몇 명과 악수하고 군인수첩에 싸인을 해준 뒤 렌둘릭의 사령부로 들어갔다.

사령부 정문이 닫힌 뒤에도 나의 이름을 연호하는 병사들의 목소리는 끊이지 않았다.

“고생이 많소, 장군. 전황은 순조롭소이까?”

“예, 총통 각하.”

렌둘릭은 빙긋 웃으며 이탈리아군의 이동 경로를 표시한 지도판을 보여주었다. 파란색 선이 아군이고, 붉은색 선이 이탈리아군이었다.

“보시다시피 적군은 퇴각하느라 여념이 없습니다. 사기는 바닥이고, 아군의 공습으로 보급도 원활하지 않아 무기도 빈약합니다. 어제만 해도 이탈리아군 2개 사단이 와해되고 1500명이 투항해왔습니다. 후방에서는 포로의 수가 너무 많아 곤란을 겪고 있을 지경입니다.”

“이거 참. 어쩌면 우리가 부담할 수 없을 정도로 많은 포로들을 떠맡겨 행정을 마비시키려는 고도의 전략일지도 모르겠소.”

렌둘릭의 참모들이 웃음을 터뜨렸다. 렌둘릭도 웃음을 찾기 힘든지 끅끅거리다가 이내 냉정을 되찾고 설명을 이어갔다.

“한 시간 전에 롬멜이 베네치아를 점령했다고 보고해왔고, 15기갑사단과 164보병사단은 비첸차를 공격 중입니다.”

에글제어의 제4산악군단은 베로나로 가는 길을 열기 위해 이탈리아군과 교전 중이다.

트렌토에서 베로나로 도주했던 이탈리아군 사령관 로돌포 그라치아니는 베르가모로 튀었다고 한다. 하여간 도망치는 건 참 빨라요.

“3, 4일 내로 베로나까지 도달할 수 있으리라 예상됩니다. 이다음부터는 코코넛 작전으로 이어집니다.”

이탈리아 침공작전인 한니발 작전은 총 3개의 작전으로 구성된다.

베로나-베네치아 라인까지 진격하는 게 목표인 베니토 작전과 산마리노 국경까지의 진격이 목표인 코코넛 작전, 마지막으로 로마까지 진격해 함락시키는 알라릭 작전.

베니토 작전은 사실상 종료되었고 보급과 재편성이 끝나는 대로 코코넛 작전을 개시하기로 했다.

밀라노와 제노바를 비롯한 이탈리아 북서부 지역을 점령하는 크로뮴 작전도 있지만 그건 일단 보류.

“밀라노로 진격하는 것보다 곧장 남하해 로마로 가는 것이 전쟁을 끝내는데 더 효과적이지 않겠소?”

“제 생각도 그렇습니다.”

이탈리아에게 선전포고한 유고슬라비아는 빈사 상태의 이탈리아군을 상대로도 고전 중이었다.

현재까지 유고군이 점령한 이탈리아 영토는 자다르 하나뿐으로, 이스트리아 반도 방면에서 가해진 모든 공세는 이탈리아군에게 격퇴당했다. 알바니아 국경에선 포격전만 진행 중이고.

딱 봐도 독일의 승리에 빌붙어 콩고물 좀 얻어먹을 생각으로 참전한 것 같은데, 생각보다 힘이 따라주지 않는 모양이다.

그도 그럴 게 그 이탈리아군이 선녀로 보일 정도로 막장인 군대가 유고군이니까.

오헝제국처럼 다민족 국가인 유고슬라비아는 세르비아인들이 모든 권력을 독점하여 크로아티아인을 비롯한 소수민족들을 탄압하고 철저히 무시했다.

나라가 병신인데 군대가 멀쩡할 리 없는 데다 가뜩이나 무장도 부실한 유고군은 단결조차 되지 않아 군기가 개판이었다.

독일의 침공이 시작되자 크로아티아인 병사들은 세르비아인 장교를 쏴죽이고 탈영하여 독일군에게 붙었고 세르비아 병사들조차 사기가 낮아 독일군이 나타났다는 소리만 들어도 줄행랑을 치기 바빴다.

그 결과는 유고는 개전 11일 만에 패전하여 지도에서 사라졌다.

그나마 티토가 이끄는 유고슬라비아 파르티잔들이 대활약해서 유고군의 추태가 상대적으로 묻히게 되었지, 그것조차 없었더라면 유고군이 이탈리아군의 위상을 대신 점하고 있었을지 모른다.

“자기네 나라 병사들이 제대로 싸울 수 있는지 확인조차 하지 않고 무턱대고 쳐들어가는 꼴이라니. 참 한심한 국가입니다.”

“내 말이. 바닥 밑에 바닥이 있다고, 이탈리아군보다 더 못 싸우는 군대가 있을 줄 누가 알았겠소.”

그나마 유고의 참전으로 얻은 이득이 있다면, 알바니아 주둔군이 이탈리아 본토로 건너오지 못하게 되었다는 것-이미 차출될 대로 차출된 터라 남아있는 병력도 얼마 없지만-과 이스트리아 반도에 고립된 이탈리아군 병력이 아군의 배후를 위협할 가능성이 제로가 되었다는 것 정도다.

어차피 이런 것들이 없어도 우리가 이탈리아 따위에게 질 것 같지는 않다만.

***

1940년 6월 27일

이탈리아 밀라노

서진보다 남하를 우선시한 히틀러의 결정으로 이탈리아 북서부 지역은 격전지가 되는 운명을 피해 갈 수 있었다.

그러나, 도시가 전쟁터가 되는 비극은 피했어도 공습은 피할 수 없었다.

이탈리아인들의 저항의지를 완전히 말살시키기 위해 루프트바페는 연일 무자비한 공습을 이어갔다.

“애들아, 빨리! 시간이 없어!”

공습경보가 울리자 사람들은 황급히 방공호로 뛰어갔다. 양손에 두 아이의 손을 잡은 주부와 지팡이를 든 노인, 학교를 땡땡이치고 놀던 불량아들까지 모두가 사이렌 소리를 듣고 일제히 방공호와 지하실로 몰렸다.

이탈리아 북서부 롬바르디아의 주도이자 이탈리아의 경제적 수도인 밀라노는 루프트바페의 공습을 받았다. 개전 후 처음으로 맞이하는 공습이었다.

이탈리아 공군의 Ro.37 전투기가 요격을 위해 출격했지만, 폭격기 편대를 호위하는 Bf109에게 모두 격추당했다. 방해꾼이 모두 사라지자 폭격기 조종사들은 여유롭게 폭탄을 투하했다.

“밥 먹을 시간이다. 이탈리아 돼지새끼들아.”

Fw 200과 He 177이 투하한 폭탄은 밀라노 주민들이 살던 주택과 그들의 자녀들이 다니는 학교, 식당과 가게, 병원을 차례로 불 질렀다.

본래 학교와 병원, 교회 같은 종교시설들은 제네바 협약에 의거하여 공격대상에서 제외되었지만, 지상에서 수 km 떨어진 상공을 나는 폭격기 조종사들에겐 모든 건물이 똑같이 보였다.

조준수들도 학교와 일반 주택의 구분 없이 대충 큰 건물이다 싶으면 무조건 목표로 삼고 봤다.

밀라노의 명물로 유명한 밀라노 대성당도 폭탄의 희생양이 되었다.

그나마 문화유산은 되도록 건드리지 말라는 히틀러와 괴링의 지시로 폭탄을 정통으로 맞는 일은 피했지만, 폭탄이 성당 바로 근처에 떨어져 성당의 모든 유리창이 깨지고, 벽 일부가 허물어졌다.

대공포들이 포탄을 쏘아올렸지만 독일 공군의 공습을 막기엔 역부족이었다.

이탈리아군은 공습을 막기 위해 1차대전에도 사용되었던 구식 대공포들까지 모두 끌고 왔지만, 폭격을 막기에는 화력과 사거리 모두 빈약했다. 너무나 빈약했다.

“아름답군.”

“잘 못 들었습니다?”

리히트호펜의 말에 부기장이 되물었다.

“아래를 좀 보게.”

어렴풋이 보이는 밀라노는 곳곳에서 피어나는 불의 공과 공의 끝에서 피어오르는 연기로 가득했다.

리히트호펜은 한 폭의 수채화를 감상하는 듯한 시선으로 지상을 내려다봤다.

“불과 연기를 휩싸인 적국의 도시만큼 아름다운 광경은 없지. 게르니카보다 몇 배는 더 아름다운 것 같군.”

리히트호펜은 1937년 4월 26일 스페인 바스크 지방의 작은 도시 게르니카를 Ju87 슈투카와 He 111을 동원하여 불바다로 만든 전적이 있었다.

1만 5천 명의 거주민 중 1,600명이 넘는 사람들이 공습으로 죽었고, 소식을 접한 피카소는 ‘게르니카’를 그려 파리 만국박람회에 전시했다.

전 세계가 독일의 만행에 대해 비난의 목소리를 쏟아냈지만, 리히트호펜은 귓등으로도 듣지 않았다.

그가 유일하게 후회하는 일이라면, 파리를 ‘진정한 빛의 도시’로 만들지 못했다는 것이었다.

“파리를 불바다로 만들지 못했으니, 로마만큼은 반드시 불바다로 만들고 싶네. 자네도 나와 같은 생각이겠지?”

“여부가 있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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