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탈리아 침공 (3) >
한니발 작전 개시 두 달 전부터 독일 공군과 이탈리아 공군은 창공에서 혈전을 벌여왔다.
발보의 노력으로 장족의 발전을 거뒀다고 자평하는 이탈리아 공군은 CR.32, CR.42, Ro.44 같은 철 지난 복엽기들과 C.200 사에타가 주력 전투기였다.
반면 이들이 상대해야 하는 독일군은 Bf109, Bf110, Fw190을 굴리고 있었다.
전투가 벌어졌다 하면 이탈리아 전투기들은 연기를 내뿜으며 지상으로 곤두박질치기 일쑤였다.
성능도 밀리는 데다 두 달 전부터 쭉 이어져 온 교전으로 인해 전투기들의 수량까지 부족한 이탈리아 공군은 독일기들이 조국의 하늘을 침범하는 것을 허용할 수밖에 없었다.
여태껏 전장에서 줄기차게 활약해온 Bf109, Fw190, 슈투카와 달리 엔진 문제로 실전 투입이 미뤄졌던 He 177 그라이프(Greif, 그리폰) 중폭격기도 처음으로 실전에 투입되었다.
6,000m 고도에서 최대 565km의 속도로 날 수 있으며 최대 7,200kg의 폭탄 적재할 수 있는 He 177은 발터 베버와 하인켈 사가 심혈을 기울여 만든 회심의 역작이었다.
비록 엔진에서 발목을 잡혀 본래 예정이었던 프랑스전에 투입하지 못했지만, 이탈리아전에는 투입할 수 있게 되었다.
“드디어 이놈을 타고 하늘을 날아보는구만.”
콘도르 군단의 일원으로 스페인 내전에 참전한 바 있는 볼프람 폰 리히트호펜 상급대장이 중얼거렸다.
그는 상급대장의 신분임에도 자신의 손으로 적의 도시에 폭탄을 떨어뜨리고 싶다는 욕망을 이루기 위해 직접 조종간을 잡았다.
리히트호펜뿐만 아니라 베버도 직접 폭격임무를 뛰고 싶어했지만 둘 중 한 명은 무조건 남아있어야 한다는 히틀러와 괴링의 결사반대로 베버는 끝내 지상에 남아야 했다.
자신을 배웅하며 울상을 짓던 베버의 모습을 떠올린 리히트호펜은 쾌활한 어조로 말했다.
“자, 그럼 베버 원수 각하의 몫까지 해야지. 안 그렇나?”
“맞습니다!”
졸지에 상급대장과 함께 실전에 투입되는 ‘엄청난 행운’을 맞이한 폭격기 승무원들은 우렁찬 목소리로 화답했다.
부하들의 대답에 만족한 리히트호펜은 어느새 목적지에 도달했음을 깨달았다.
“폭탄 투하.”
He 177의 폭탄창이 열리면서 폭탄들이 지상을 향해 낙하했다.
볼차노, 트렌토, 우디네, 베로나, 베네치아 등 이탈리아 북동부 도시 12개가 독일 공군의 맹폭을 받았다.
이탈리아인들에겐 2차대전 발발 후 처음으로 경험하는 대규모 공습이었다.
***
“뭐, 뭐야?”
“독일군의 공습입니다, 각하!”
참모들과 회의 도중 난데없이 울려 퍼진 사이렌 소리에 당황한 그라치아니에게 부관이 달려와 외쳤다.
“공습? 공습이라고?”
“예, 각하! 빨리 방공호로 피하셔야 합니다!”
그라치아니와 참모들이 서둘러 방공호로 대피하는 동안 부관과 병사들은 회의실 내에 있는 각종 지도와 작전서류들을 챙겼다.
여태껏 공습을 경험해본 적 없는 이탈리아인들에게 독일군의 첫 공습은 어마어마한 충격을 안겼다.
방공호의 철문이 닫히기 직전, 그라치아니는 웅장한 폭음을 들을 수 있었다.
철문이 닫힌 뒤에도 폭음이 끊이지 않고 들려왔다. 폭음이 울릴 때마다 방공호에 진동이 전해지면서 천장의 전구가 깜빡거렸다.
“맙소사. 공습이라니. 독일 놈들이 이탈리아 영토에 폭탄을 떨구고 있다니······.”
그라치아니는 차마 말을 잇지 못했다.
초점을 잃은 그의 눈은 방공호 천장을 향해 있었다.
그의 눈에 비친 잿빛 천장이, 다가올 미래처럼 보여 그는 더욱 불안해졌다.
***
1940년 6월 20일
이탈리아 볼차노
“각하, 정신이 드십니까?”
“끄응······.”
조반니 메세 소장은 자신을 걱정스러운 눈으로 내려다보는 참모의 물음에 확답 대신 질문으로 답했다.
“···나한테 무슨 일이 있었지? 기억이 하나도 나질 않는군.”
“공습경보가 울려 방공호로 피하시다가 그만 계단에서 굴러떨어지셨습니다.”
뒤늦게 기억을 떠올린 메세는 부끄러움에 얼굴을 붉혔다. 장군씩이나 되어서 방공호로 대피하다가 그만 발을 헛디뎌 머리를 다치다니. 꼴이 말이 아니군.
“아무튼 정신을 차리셔서 다행입니다. 통증이 있으십니까?”
메세를 치료한 군의관이 말했다. 메세는 고개를 저었다.
“나는 괜찮으니 다른 부상병들을 치료해주게.”
군의관은 머리를 숙인 뒤 부상병들을 치료하러 자리를 떴다. 군의관에겐 괜찮다고 말했지만, 두통이 남아있어 속이 메슥거렸다.
“물 좀 가져다주게. 목이 마르군.”
“알겠습니다.”
당번병이 가져온 물을 마시자 속쓰림이 한결 나아졌다. 그런데 문득 불길한 예감이 들었다.
“오늘이 며칠이지?”
“6월 20일입니다.”
“6월 20일? 아니, 내가 하루동안 기절했단 말인가?!”
“그렇습니다, 각하.”
계단에서 굴러떨어진 것도 이미 망신인데, 하루동안 기절했다니. 메세는 정신이 아득해지는 기분이었다.
겨우 제정신을 차린 메세가 황급히 물었다.
“전선은? 내가 기절해있는 동안 무슨 일이 있었나?”
그 순간, 메세의 부관이 달려와서 소리쳤다.
“각하, 제131기갑사단의 방어선이 돌파당했답니다!”
부관의 말을 들은 메세의 얼굴에서 핏기가 사라졌다.
마치 짜고 치기라도 하는 것처럼, 기절했다가 겨우 눈을 떴는데 이번에는 전선이 돌파당했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아, 신이시여······.
***
메세가 아직 의식불명일 때,
이탈리아군 제131기갑사단 센타우로의 방어선은 독일군의 맹공을 받았다.
“독일군이 온다! 모두 전투 준비!”
열강을 자처하는 강대국의 군대치곤 지나치게 허접하다고 평가받는 이탈리아군 중에서 정예 소리를 듣는 몇 안 되는 부대인 베르살리에리 연대의 병사들은 독일군이 나타나자 침착하게 전투 준비에 들어갔다.
독일군은 4호 전차를 앞세워 공격해왔다.
도로를 따라 달려오는 4호 전차를 향해, 이탈리아군의 최신예 전차 M13/40 전차가 발포했다.
“거리 600, 철갑탄! 발사!”
M13/40의 47mm 32구경장 전차포가 불꽃을 토했다.
일직선을 그리며 날아간 철갑탄은 4호의 전면장갑에 명중했지만 장갑을 뚫지 못하고 도탄되었다.
적이 포탄을 튕겨내는 광경을 본 전차장이 이를 갈았다.
“빌어먹을. 튕겼어.”
“재장전!”
L3 탱켓이나 M11/39 같은 전차호소인 따위를 굴리던 이탈리아군에게 M13/40은 공, 수 균형이 잘 잡힌 제대로 된 전차였다.
어디까지나 이탈리아군 기준에서.
부무장인 기관총을 회전 포탑에 장착하고 정작 주무장인 주포를 차체에 탑재하는 뻘짓으로 전투력을 깎아 먹은 M11/39와 다르게 M13/40은 회전 포탑에 주포가 탑재되어 360도 조준이 가능하고 디젤엔진을 탑재하여 유폭확률도 줄였으며 M11/39에는 없는 무전기가 설치되었다.
이 정도면 나름 평균은 가는 성능이라고 이탈리아군 수뇌부는 판단했지만, 이미 4호 전차를 일선에서 굴리고 신형 중전차 개발까지 진행 중인 독일이 보기에는 가소롭기 짝이 없었다.
M13/40이 4호 전차를 격파하려면 측후면을 노리던가, 100m 안이라는 근거리에서 포탑을 노려야만 겨우 관통이 가능했다.
그에 반해 4호 전차는 명중한다는 가정하에서 2km 거리의 M13/40의 전면장갑을 여유롭게 관통할 수 있었다.
탄약수가 포탄을 재장전하자 전차장은 재차 주포를 격발시켰다. 그러나 이번에도 결과에는 변함이 없었다.
움직임을 멈춘 4호 전차는 이리저리 포탑을 돌리더니 이내 M13/40이 매복한 방향으로 육중한 주포를 조준했다.
4호의 포구가 자신에게로 향하는 광경을 본 전차장의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
“하느님······.”
그것이 전차장의 유언이 되었다.
4호 전차의 75mm 주포가 발포하자 M13/40은 포탑이 날아갔다.
4호 전차들에게 선제공격을 가한 M13/40 4대는 한 대의 적 전차도 잡지 못하고 역으로 모두 격파당했다.
비록 전차들이 모두 격파당했지만, 베르살리에리 병사들은 물러서지 않고 독일군에 맞서 싸웠다.
크림전쟁 때부터 정예부대로 이름을 날린 부대답게 병사들 개개인의 투지와 전투력은 다른 이탈리아군 사단들과 차원이 달랐다.
“이야아아아!!!”
베르살리에리의 젊은 상사가 화염병을 들고 4호 전차를 향해 달려들다가 기관총을 맞고 쓰러졌다.
하지만 반대방향에서 접근한 병사가 엔진룸을 향해 화염병을 던졌다.
화염병이 깨지면서 엔진에 화재를 일으켰고, 전차병들을 밖으로 나오게 만들었다.
이제까지 도망치거나 항복만 하던 이탈리아군에 익숙해진 독일군에게 베르살리에리 병사들의 투혼은 상상 이상의 충격을 안겼다.
검은색 뇌조 깃털로 장식된 철모를 쓴 베르살리에리 병사들을 광대라고 비웃던 독일군은 그 병사들이 사자처럼 싸우는 모습에 당황하지 않을 수 없었다.
화염병과 수류탄으로 무장한 베르살리에리 병사들이 전차에 달라붙으면, 뒤따르는 전차와 보병들이 기관총을 발사해 전차에 오르는 적군들을 떨어뜨려야 했다.
벌써 독일군은 베르살리에리 병사들의 육박전으로 두 대의 4호 전차를 잃었다.
전차들이 해내지 못한 일을 겨우 화염병으로 무장한 일개 보병들이 해낸 것이다.
그러나 전황은 병사들의 용기만으로 뒤집을 수 있는 게 아니었다.
전차의 지원을 받는 독일군을 상대로 베르살리에리 병사들은 최선을 다해 싸웠지만, 그들의 한계는 명백했다.
“2시 방향에 기관총 진지다!”
“발사해!”
4호 전차들은 보병의 보호를 받으며 천천히 진격해 주포와 기관총으로 주변의 사물들을 모조리 날려버렸다.
75mm 주포가 불을 뿜을 때마다 기관총 진지가 하나씩 날아갔다.
기관총 진지를 제압하면 보병들이 나서서 참호를 제압하고 다시 전차가 진격하여 주포로 다음 진지를 날려버렸다.
베르살리에리 연대의 저항을 박살낸 독일군은 그 길로 곧장 진격해 브레사노네를 점령했다.
브레사노네 다음은 한니발 작전의 1차 목표, 볼차노였다.
***
1940년 6월 21일
독일 베를린 신 총통관저
“볼차노까지 며칠이면 닿을 것 같소?”
-빠르면 오늘 저녁, 늦어도 내일 오후에는 도달할 겁니다, 총통 각하.
“흠, 예상보다 빠르군. 아니, 상대가 그 이탈리아군이니 당연한 건가? 여하간 잘 알겠소. 모쪼록 수고하시오.”
렌둘릭은 오늘이나 내일 중이라 1차 목표인 볼차노를 점령할 수 있다고 자신했다. 산악전에 도가 튼 양반이니 믿어도 좋겠지.
험난하기로 유명한 알프스 산맥이라 진격에 어려움이 있지 않을까 했는데, 괜한 걱정이었다.
아군의 공세가 시작되자 이탈리아군은 전 전선에 걸쳐 패주하기 시작했고 점령에 시간이 다소 걸릴 곳으로 예상되었던 곳들조차 의외로 쉽게 점령되었다.
센타우로나 아리에테 같은 정예사단들은 완강하게 저항하여 아군에게 제법 큰 손실을 안겼지만, 결국 사수에 실패하고 패주했다.
현재까지 알프스 산맥의 주요 교통로 대부분이 아군에게 장악되었으며 진격과 보급 모두 순조롭게 진행되고 있다.
“그나저나 작전명이 참으로 적절한 것 같습니다. 한니발이라니, 참으로 절묘한 이름 아닙니까.”
쉬는 시간이 되자 카이텔이 기다렸다는 듯이 아부를 시작했다.
이번 작전명을 코끼리 부대를 이끌고 알프스 산맥을 넘어 로마군을 공격한 것으로 유명한 장군, 한니발의 이름에서 따오자고 아이디어를 낸 것은 바로 나였다.
처음에는 실제 역사대로 악세(Achse)를 작전명으로 하려다가 한니발이라는 이름이 더 적절해 보여서 한니발로 했다.
“그저 재미삼아 붙인 이름일 뿐인데, 아부가 너무 과한 것 같소.”
여기서 또 무슨 말을 했다간 낯 뜨거운 아부를 쉬는 시간 내내 들을 것 같아서 적당히 둘러댔다.
“회의 내내 너무 열심히 떠들어서 그런지 목이 마르군. 크라우제, 레모네이드 좀 가져오게.”
크라우제가 대령한 레모네이드로 목을 축이고 소파에 앉아 잠시 쉬었다가 다시 회의에 참석했다.
He 177을 동원한 이탈리아 북부 공습은 대성공이었다.
목표로 한 12개 도시 모두 예상을 크게 웃도는 피해를 입었으며 아군은 단 3대의 Do217 폭격기만 잃었다.
“이탈리아 공군은 우리 공군의 상대가 되지 못합니다. Bf109 한 대만 떠도 이탈리아 전투기들은 도망치기 바쁠 정도입니다, 하하!”
이탈리아 공군 따윈 루프트바페의 발끝에도 따라가지 못한다고 자신만만하던 괴링은 약속을 지켰다.
이탈리아 공군은 사실상 전멸했다고 봐도 무방할 정도로 큰 피해를 입어 정상적인 작전이 불가능한 상태였다.
실제 역사에서 1944년 독일 공군의 상태가 이탈리아 공군의 현주소였다.
“리히트호펜은 이참에 로마까지 폭격하는 게 어떻냐고 합니다. 총통께서 명령만 하신다면, 내일 당장이라도 로마를 불바다로 만들겠다고 호언장담하더군요.”
“용기는 가상하지만 그걸로 충분하오. 괜히 로마를 폭격했다가 이탈리아인들의 항전의지만 고취시키면 피곤해지니 말이오.”
물론 이탈리아가 끝까지 전쟁을 포기하지 않는다면 로마 폭격도 당연히 진행할 생각이다.
그전에 전쟁이 끝날 것 같으니까 참고 있는 거지. 내 말에 괴링은 콧방귀를 뀌며 대답했다.
“이탈리아 잡놈들의 저항 따위 뭐가 두렵겠습니까? 우리 전투기만 떠도 도망치거나 숨기 바쁜 놈들인데. 놈들이 발악해도 파리처럼 때려잡으면 되는 일이죠. 안 그렇습니까?”
“제국원수 말이 맞습니다. 이탈리아 놈들 따위, 한주먹거리도 되지 않지요. 이번 전쟁에 해군이 활약할 기회가 없다는 게 통탄스러울 뿐입니다.”
우와, 괴링의 말에 맞장구를 치는 레더라니. 전부터 몇 번 봐온 광경이지만 보면 볼수록 참 신기하단 말이야.
레더가 말하길 프랑스 해군의 함정 인도는 차질없이 착착 진행되고 있단다.
프랑스 해군이 배를 자침시킬 것에 대비하여 감시병력을 보냈지만, 프랑스 해군이 의외로 협조적으로 나와서 지금은 하릴없이 노는 중이라고 한다.
역시 국토와 식민지를 가지고 협박한 게 제대로 먹힌 모양이군. 배야 다시 만들면 되지만, 영토와 식민지는 그게 안 되니까.
***
같은 시각
영국, 플리머스
“드디어 영국에 도착했군요, 대령님.”
“참 긴 여정이었습니다.”
“겨우 영국에 도착한 것 가지고 뭔 호들갑인가? 이제부터 할 일이 태산인데.”
배에서 내린 드골은 부하들의 말에 딱딱하게 대답했다.
열흘이나 되는 긴 여정 끝에 겨우 목적지인 영국에 도착하여 들뜬 기분이었던 드골의 부하들은 상관의 일침에 머쓱한 듯 머리를 긁적였다.
치열한 전투 현장에서 드골이 살아남은 것은 그야말로 기적이었다.
폭탄이 1m만 더 앞으로 떨어졌어도 그는 전차와 함께 흔적도 없이 산산조각나고 말았을 것이다.
살아남긴 했지만 두 다리가 부러지고 얼굴과 양손에 화상을 입어 기절한 드골을 부하들이 전차에서 끄집어내 야전병원으로 보냈다.
야전병원에서 치료를 받던 중 프랑스가 독일에게 항복했다는 소식을 들은 드골은 자신의 참모들과 함께 스페인으로 향했고 그곳에서 배를 탄 뒤 영국에 도착했다.
프랑스는 항복했지만, 그는 독일에게 항복하고픈 생각이 없었다.
조국이 다시 자유를 되찾을 때까지 그는 영원히 싸울 생각이었다.
“우린 전투에서 패했지만, 전쟁에서 지지 않았네. 진짜 전쟁은 이제 시작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