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히틀러가 되었다-85화 (85/150)

< 이탈리아 침공 (1) >

1940년 6월 12일

이탈리아 로마

“천하의 프랑스가 이토록 빨리 무너지다니······.”

“이제 어쩌면 좋겠소?”

세계 최강 육군을 자랑하던 프랑스군이 모래성처럼 무너지고 단 4주 만에 백기를 들자 이탈리아는 초비상이 걸렸다.

현대전에 대한 제대로 된 준비 없이 그저 영프만 믿고 전쟁에 뛰어들어 전리품을 확보하고자 했던 무솔리니의 오만이, 이제는 나라를 파멸로 몰고 가고 있었다.

나흘 전부터 오스트리아 방면의 독일군은 반격을 개시하여 이탈리아군을 영토에서 몰아냈다.

티끌만한 소득도 없이 조국으로 밀려난 이탈리아군은 황급히 방어선을 형성하였으나, 천하의 프랑스군도 꺾은 독일군의 맹공을 제대로 막아낼 수 있을지 회의적인 분위기였다.

무솔리니는 독일군이 아무리 날고 기어도 험준한 알프스 산맥을 넘지 못할 것이라고 큰소리쳤지만, 그 말을 곧이곧대로 믿는 이는 그의 열성적인 지지자들 외에 없었다.

상대는 폴란드에 이어 프랑스까지 박살 낸 독일이다. 그런 독일이 한니발도 넘었던 알프스 산맥을 넘지 못할 리가 없다.

“휴전 요청은 어떻게 되었습니까?”

“이제와서 그걸 묻소? 진작에 거절당한 지 오래인데!”

겉으로 큰소리를 치던 무솔리니도 뒤에선 독일과 협상을 시도했지만 무솔리니의 휴전 요청은 단칼에 거절되었다.

무솔리니의 사위이자 이탈리아 왕국 외무장관 치아노 백작은 자신을 쏘아보는 파시스트 위원회 의원들의 따가운 눈총을 애써 피하며 변명을 늘어놓았다.

“상식적으로 말이 안 되는 휴전 요청이었습니다. 아무런 배상 없이 전쟁 전의 국경으로 되돌아가자니, 독일이 받아들일 리가 없었습니다.”

“그걸 알면서 독일에게 전한 거요? 내가 보기엔 그게 더 말이 안 되는데?”

“저도 반대했습니다만, 두체께서 워낙 완고하셔서 별수 없었습니다.”

“말 나온 김에 한 번 물어봅시다. 두체는 요즘 뭘하고 있소?”

국가 파시스트당 최고평의회 의장 디노 그란디가 물었다.

요즘같이 전황이 어려울 때에 더욱 자주 모습을 보여 국민들을 안심시켜야 할 지도자가 코빼기도 보이지 않다니. 이게 말이 되는 소리인가?

치아노는 우물쭈물하다가 그란디의 시선을 받곤 사실을 실토했다.

“매일같이 꼬냑과 브랜디, 모르핀에 빠져 계십니다.”

“허! 이거 참······!”

민중 앞에서는 패배하지 않았다고 큰소리를 떵떵 치던 무솔리니는 안방에 틀어박혀 매일같이 술과 마약, 여자로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하루가 멀다하고 술을 입에 대고 살다 보니 업무도 대충대충 처리하기 일쑤였고 툭하면 화를 내거나 물건을 부수며 난동을 부렸다.

치아노는 자신의 장인이자, 한때 자신이 존경해 마지않았던 두체의 초로한 모습에 안타까움을 느끼면서도 한편으론 한심하게 여겼다.

“두체도 알고 있구만. 자기 권력도 얼마 남지 않았다는 것을.”

“이미 국왕 폐하께서도 두체에게 마음을 돌리셨소.”

지금까지 무솔리니를 내심 부담스러워하면서도 그를 지지했던 국왕 비토리오 에마누엘레 3세마저도 전황이 악화되고 독일군의 전면침공이 코앞에 다다르자 무솔리니에 대한 신임을 거두었다.

무솔리니는 그 사실을 아직 모르는 눈치였지만, 조만간 알게 될 터였다.

이미 세상 모두가 자신에게서 등을 돌렸다는 것을.

***

1940년 6월 13일

독일 베를린 신 총통관저

독일 국민들은 프랑스에서 돌아온 나를 열렬한 환영으로 맞이했다.

폴란드를 정복했을 때도 사람들은 내게 환희와 찬사를 보내며 기뻐했다. 그런데 이번에는 앞의 그것과 차원이 달랐다.

베를린의 모든 시민들이, 프랑스에서 돌아온 나를 맞이하기 위해 집과 직장, 학교를 박차고 거리로 나왔다.

거리는 사람들의 파도로 발 디딜 틈 하나 없이 꽉 찼다.

나와 참모들을 태운 전용열차가 베를린으로 향하는 동안, 길가에 마주친 모든 사람들은 약속이라도 한 듯 오른팔을 번쩍 들어 올리며 경의를 표했다.

열차가 베를린역에 도착하자 정차한 열차에 타고 있던 승객들과 병사들이 일제히 로마식 경례를 하며 하일 히틀러를 외쳤다.

내가 열차에서 내려 의전용 메르세데스 벤츠 770K로 갈아타려고 할 때부터 사람들이 몰려들었다.

“총통이시다! 총통께서 돌아오셨다!”

“지크 하일! 지크 하일!”

“하일 히틀러!!!”

베를린 경찰과 국방군, SA, SS가 총동원되어 저지선을 형성했지만, 사람들의 수가 너무 많아서 도리어 뒤로 밀릴 지경이었다.

사람들이 외치는 지크 하일, 하일 히틀러 소리가 거대한 함성이 되어 베를린 각지에서 울려 퍼졌다.

내가 탄 메르세데스 벤츠 770K가 지나가면 사람들은 목청이 터지도록 환호를 보내고 꽃을 던졌다.

건물의 창문마다 들이찬 구경꾼들은 색종이를 뿌렸다.

예전에 내셔널지오그래픽 채널에서 프랑스의 항복을 받아내고 베를린으로 돌아온 히틀러를 환영하는 독일 시민들의 모습을 담은 기록 영상을 본 적이 있다.

바로 그 현장에, 그것도 내가 주인공으로 서게 될 줄이야.

“고맙습니다, 여러분! 정말 고맙습니다!”

나는 시민들의 환성에 보답하기 위해 팔을 뻗어 나를 향해 뻗은 사람들의 손을 스치듯이 어루만졌다.

나와 소매라도 스치면 사람들은 죽어도 여한이 없다는 듯이 소리를 지르며 기뻐했다.

자랑은 아니지만, 프리드리히 대왕과 비스마르크 이후로 이토록 독일인들에게 진심어린 찬사와 존경을 받은 이는 없을 것이란 확신이 들었다.

일전에 히틀러가 프랑스 침공을 끝낸 직후에 죽거나 은퇴했다면, 이전에 저지른 수많은 악행들에도 불구하고 ‘역사상 가장 위대한 독일인’으로 남았을 것이란 글을 본 적이 있다.

그 말대로, 전쟁에서 패하지만 않았어도 히틀러에 대한 독일인들의 평가는 내가 아는 그것과 180도 달랐을 것이다.

하지만 히틀러는 스스로의 능력을 지나치게 과신한 나머지 소련 침공, 대미 선전포고라는 악재를 연달아 터뜨렸고 자신이 쌓아 올린 업적과 성과들을 제 손으로 모조리 무너뜨리면서 비참한 최후를 맞이했다.

나를 향해 환호하는 사람들을 보면서 나는 굳게 다짐했다.

결코 히틀러와 같은 길을 걸어가지 않겠노라고.

저들의 입에서 증오와 저주가 나오지 않게 하겠노라고.

“그러기 위해선 오늘도 열심히 일해야겠지.”

성대한 환영행사를 끝마치고 관저에 입성하는 즉시, 나는 업무에 몰두했다.

업무를 내일로 미루고 조금 더 승리의 여운을 만끽한다고 해도 손가락질할 사람이 한 명도 없겠지만, 이런 때일수록 스스로를 단련시켜야 하는 법.

파티는 이탈리아의 항복을 받아낸 다음에 열어도 늦지 않다.

역사와 달리 프랑스 군정청은 세워지지 않았고 프랑스 정부는 비시가 아닌 파리에 머무르는 것을 허락받았다.

대신 프랑스 정부는 독일군 총사령부의 간섭과 감시를 받아야 했으며, 베르사유 궁전을 프랑스 주둔 독일군 본부로 헌납해야 했다.

프랑스 주둔 독일군 총사령관으로는 한 달 전 부상에서 완전히 회복한 블롬베르크를 임명했다.

자신이 프랑스 주둔 독일군 총사령관에 임명되었다는 소식을 들은 블롬베르크는 그 자리에서 울음을 터뜨렸다고 한다.

블롬베르크, 프리치에 이어 국방군 최고원로인 룬트슈테트는 원수 진급과 함께 벨기에-네덜란드 주둔 독일군 총사령관으로 임명되었다.

룬트슈테트 외에도 카이텔, 브라우히치, 라이헤나우, 클라이스트, 보크, 레프, 구데리안, 만슈타인, 케셀링 등이 원수로 진급했고 롬멜은 대장으로 진급했다.

프랑스 침공이 진행되는 동안 오스트리아에서 이탈리아군의 공세를 성공적으로 격퇴한 에글제어와 레프 휘하 C 집단군에 배속되어 활약한 발터 모델도 대장 계급장을 달았다.

논공행상이 끝났으니, 남은 건 이탈리아 공략 준비뿐.

“굳이 프랑스와 노르웨이 파견군까지 불러들일 필요 있겠습니까? 오스트리아 방면군만으로도 로마까지 충분히 밀고 들어갈 수 있을 것 같은데.”

“에글제어의 보고에 따르면 이탈리아군은 이미 사기가 바닥이라고 하오. 적들이 프랑스군처럼 대거 항복해올 경우에 대비하여 미리 포로수용소를 짓는 게 좋을 것 같소.”

프랑스의 항복을 받아냈다는 자부심과 상대가 그 이탈리아라는 사실 때문인지 작전을 짜는 장군들의 얼굴에선 여유가 넘쳐흘렀다.

보스몹도 잡았는데, 경험치용 잡몹 따위가 걱정될 리가.

“자만은 실패를 부른다고, 괜히 방심하다가 큰코다칠 수 있으니 나름 철저하게 준비하는 게 맞네. 그래야 다시는 놈들이 함부로 기어오를 생각을 못하지. 베버 원수?”

“예, 총통 각하.”

이번에 원수로 진급한 발터 베버는 내 부름에 즉각 대답했다.

“우리 기술자들이 만든 중폭격기들을 써먹어야 할 시기가 왔다고 생각하는데, 원수의 생각은 어때요?”

“저도 총통 각하와 같은 생각입니다.”

육군의 활약상에 묻혀 좀처럼 나설 기회가 없었던 베버는 활짝 웃으며 두 손을 비볐다.

모처럼 만든 중폭격기들을 이럴 때 안 쓰면 언제 써보겠어?

칼을 뽑았으면 무라도 썰어야 하듯이, 무기는 만들어놨으면 한번쯤은 써야 하는 법이다, 암.

***

1940년 6월 18일

이탈리아 트렌토 이탈리아군 사령부

“······고로 독일군이 공세를 취하기까지 못해도 대략 3주가량의 시간은 필요하다고 예측됩니다.”

터무니없는 졸전으로 무솔리니의 분노를 사 해임된 발보를 대신해 대독전선군 총사령관으로 부임한 로돌포 그라치아니는 참모의 브리핑이 끝난 뒤에도 침묵을 유지했다.

그는 팔짱을 낀 채 눈을 감고서 무언가를 골똘히 생각했다.

“원수 각하?”

“자네 얘기는 모두 빠짐없이 들었네. 잠시 생각할 게 있어서 말이야.”

감았던 눈을 뜬 그라치아니는 지도에 표시된 이탈리아군의 방어선을 면밀히 살폈다.

점선과 실선 사이의 부호로 이어진 아군의 방어선을 뚫어져라 응시하던 그라치아니가 물었다.

“방어선 구축은 어디까지 진행되었나?”

“아직 목표치의 절반밖에 도달하지 못했습니다.”

그라치아니는 쯧 소리를 내며 의자에 풀썩 주저앉았다.

“상대는 독일군이야. 놈들은 겨우 4주 만에 파리까지 진격했다고. 그놈들이 공세를 취할 때까지 3주가 걸린다고? 진심으로 하는 소린가?”

“그, 그렇습니다······.”

못마땅한 눈으로 참모를 쏘아보던 그라치아니가 지휘봉으로 탁자를 치자 지도 위의 말판들이 흐트러졌다.

난데없는 소음에 놀란 참모들과 통신병들의 시선이 일제히 그라치아니에게로 향했다.

“아무리 늦어도 독일 놈들은 2주 안에 공격해올 거야! 그런데 3주라니, 대체 뭔 자신감으로 그따위 소리를 하는 건가?!”

사실 그라치아니도 독일군에 대해 아는 게 별로 없었다.

하지만 독일군이 폴란드와 프랑스에서 보여준 전광석화와 같은 기동력은 오만한 성격의 그라치아니조차 긴장하게 만들기 충분했다.

그는 틀림없이 조만간 독일군이 공세를 가해오리라고 예상했다.

참모라는 것들이 대비는커녕 방심이나 하고 있는 꼴이라니. 한심하기 짝이 없군!

참모들의 능력도 문제지만, 그보다 더 큰 문제는 이탈리아군의 준비 상태였다.

병력과 물자가 도착하는 대로 방어선 구축에 쏟아붓고 있지만, 진도가 느렸다. 느려도 너무 느렸다.

병사들의 수면시간을 줄여 방어선 구축에 몰입한다고 해도 2주 안에 목표치를 달성하기란 불가능. 아주 운이 좋아야 60%가 한계였다.

100%도 모자랄 판에 60%가 최대라니. 돌겠군, 정말.

“······피곤하군. 한숨 자야겠어.”

“예, 옛. 원수 각하, 편히 쉬십시오.”

아침부터 쉬지 않고 머리를 굴리고, 방어준비가 차질없이 진행되고 있는지 묻는 두체의 전화에 완곡한 표현으로 대답하느라 체력을 너무 많이 소요했다.

그런데 막상 자려고 누우니 잠이 오지 않았다. 그라치아니의 머릿속은 온통 독일군에 대한 걱정으로 가득했다.

동시에 이런 생각도 들었다.

두체가 만약 히틀러의 독일이 이 정도의 괴물인 줄 알았더라면 이탈리아는 전쟁에 끼어들지 않았을 텐데. 어쩌면 독일과 동맹을 맺어 지금쯤 승전국이 되었을지도 모를 일이다.

에티오피아와 오스트리아에서 독일에게 당한 두체가 순순히 히틀러와 손을 잡고자 했겠냐만은.

시곗바늘은 어느새 0시를 지났다. 이제부턴 19일이었다.

***

1940년 6월 19일

독일-이탈리아 국경 인근 이탈리아군 방어선

-퍽!

“아, 씨발······ 어떤 새끼야!?”

“나다, 이 새끼야.”

“헉! 소, 소대장님······!”

수면을 방해받아 화를 내던 초병은 자신을 죽일듯이 노려보는 로베르토 미켈 중위의 시선을 받고 화들짝 놀랐다.

“내가 야간근무 중에 자다가 걸리면 어떻게 한다고 말 안 했나?”

“해, 했습니다······.”

“그런데, 그걸 아는 놈이 잠이나 쳐 자? 씨발, 지금 나랑 장난하냐, 이 개새끼야?”

“죄송합니다!”

“뭐가 죄송한데? 어?”

“근무 중에 허락없이 자서······.”

“허락없이 자서? 이 새끼가 아직도 정신 못 차렸네. 허락 있으면 자도 되냐? 누가 근무 중에 자? 어, 이 새끼야.”

나폴리 토박이인 로베르토는 괄괄한 성격과 남부 이탈리아인 특유의 걸쭉한 욕설로 소대원들에게 악명이 높았다.

그가 갈굼을 시전하자, 초병은 정신을 차릴 수 없었다.

제아무리 험한 인생을 살아왔다고 자부하는 병사들도, 로베르토의 갈굼 앞에선 두 손 두 발 다 들 수밖에 없었다.

“하여간, 넌 아침이 되면 두고보자. 나중에 또 자다가 걸리면, 그땐 정말로 각오해라. 알겠어?”

“명심하겠습니다.”

로베르토는 병사 두 명을 거느리고 참호를 돌아다니며 근무 중에 졸거나 잡담을 나누는 병사가 없는지 일일이 확인하고 있었다.

방금 자다가 걸린 초병까지 합치면 벌써 4명이 안토니오에게 적발되었다.

“미치겠군, 정말. 후방도 아니고 최전선에서 태평하게 잠이나 쳐자다니. 이래서야 전쟁할 수 있겠어?”

상부로부터 모범적인 장교로 인정받아 사관학교 동기들 중에서 가장 먼저 중위로 진급한 로베르토는 철저한 원리원칙주의자로 병사들로부터 원성이 자자했다.

본인도 자신이 병사들에게 사랑받지 못하고 있다는 것을 알았지만, 자신의 행동을 후회하거나 이를 고쳐야겠다고 생각해본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오직 철저한 규율과 훈련만이 전쟁터에서 목숨을 구한다고 굳게 믿었기 때문이다.

“아이고, 미켈 중위님. 순찰 돌고 오십니까?”

난롯불 앞에서 권총을 손질하던 파블로 바레시 소위가 순찰을 마치고 돌아오는 로베르토를 보고 경례했다.

로베르토는 정색을 하며 손을 내저었다.

“너, 내가 징그러우니까 그런 말투 쓰지 말랬지.”

“그랬나?”

파블로는 로베르토의 사관학교 동기였다. 중위인 로베르토와 달리, 파블로는 아직 소위 계급장을 달고 있었다.

아무리 동기라 해도 로베르토가 엄연한 상관이니 파블로가 존칭을 쓰는 게 맞지만, 둘은 사관학교 시절처럼 서로 말을 놓고 지냈다.

“이번에는 몇 명 걸렸냐?”

“4명.”

“오늘은 생각보다 적네.”

“적은 게 아니라 4명이나 걸렸다니까? 한 명도 없어야 하는 게 정상이라고.”

“그래도 어쩌겠냐? 눈 뜨자마자 진지공사에 투입되어서 피곤할 텐데. 가뜩이나 수면시간도 줄었잖아. 네가 이해 좀 해라.”

“후우.”

로베르토는 대답 대신 양철컵에 커피를 따랐다. 설탕을 넣지 않아 쓴맛만 나는 커피였다.

계절은 여름이지만, 만년설로 뒤덮인 알프스 산맥은 한겨울이나 다름없는 날씨였기에 따뜻한 커피 한 잔은 꽁꽁 언 몸을 녹이는 데 큰 도움이 되었다.

깐깐하고 차가운 로베르토와 달리 너그러운 성격의 소유자인 파블로는 병사들이 근무 중에 잠을 자다가 걸려도 가벼운 훈계로 끝내곤 했다.

이 때문에 파블로를 좋아하는 병사들이 많았지만, 로베르토는 파블로의 그런 점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지금은 전쟁 중이라고. 게다가 여긴 후방도 아니고 전방이야, 최전방! 언제 전투가 일어날 지 모르는데 느긋하게 있어서야 되겠어?”

“그렇긴 하지. 그래도 너무 원칙대로 하면 모두 피곤해지는 법이라니까? 적당히 풀어줘야지. 꽉 조인다고 다 해결이 되나.”

“역시 너는 너무 물러. 그래서야······.”

파블로의 태도에 답답해진 로베르토가 한소리하려는 순간, 포성이 고막을 강타했다.

땅이 흔들리면서 주전자에 든 커피가 쏟아졌다.

“무, 무슨?!”

당황한 파블로와 달리 로베르토는 직감적으로 이것이 무엇인지 알아차렸다.

그는 벗어둔 철모를 머리에 걸치며 개인호로 뛰어갔다.

“파블로, 빨리! 적의 포격이야!”

파블로까지 개인호에 들어가는 순간, 포탄 한 발이 지근거리에 착탄해 파편을 뿌렸다.

독일군의 공세는 이탈리아군의 예상보다 훨씬 일찍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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