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히틀러가 되었다-84화 (84/150)

< 프랑스의 몰락 (4) >

“우선, 포로가 된 프랑스 병사들을 석방시켜 집으로 돌려보내주겠소.”

독일군에게 생포된 프랑스군 포로들의 숫자는 자그마치 190만 명.

물론 식민지인들도 적지 않게 섞여있지만, 절대다수는 장차 프랑스를 이끌어갈 20, 30대 청년들이다.

가뜩이나 1차대전의 피해에서 회복하지 못한 프랑스 입장에선 포로들의 생환에 나라의 운명이 걸려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포로들의 송환이 빨라질수록, 자국의 재건에 투입할 인력이 늘어날 테니까.

“그리고 기존에 계획된 프랑스 군정청의 설립을 취소하고, 프랑스가 보유한 식민지들도 건드리지 않겠소.”

“······!!!”

욍치제를 비롯한 프랑스 협상단의 표정이 달라졌다.

틀림없이 내가 자국 식민지에 대해서도 할양을 요구할 것이라고 짐작했는데, 해군 함정들을 넘겨받는 조건으로 깔끔하게 포기한다고 하니까 놀랐겠지.

“마지막으로 프랑스의 재무장에 일절 간섭하지 않겠소이다. 어떻소? 이 정도면 나름 합리적인 거래 아니오?”

화룡정점으로 재무장 허용까지.

프랑스가 독일에 강요한 베르사유 조약의 최종 목적이 독일의 재무장을 원천 차단하기 위함이라는 것을 감안하면 매우 파격적인 조건이다.

언뜻 보면 프랑스의 편의를 많이 봐준 것 같아도 위 조건들은 철저한 계산 끝에 내린 결론이다.

상식적으로 생각해봐라.

190만 명이나 되는 포로들을 먹여살리려면 비용이 얼마나 필요할지.

포로들을 먹일 빵을 조달하고, 포로들이 거주할 막사를 짓는 것도 보통 일이 아닌데, 포로들을 관리하려면 그만한 병력들이 추가로 필요하다.

그러니 포로들은 최대한 빨리 석방시켜 집으로 돌려보내는 게 더 이득이란 말씀.

식민지도 그렇다.

식민지 유지에 필요한 비용과 병력을 생각하면 득보다 실이 더 많은데, 하루빨리 전쟁을 마무리짓고 경제 재건에 들어가야 하는 우리 입장에선 식민지를 보유한다는 것은 사치에 가까운 짓이다.

재무장 건도 독일에 갚아야 할 배상금을 생각하면 향후 프랑스는 재무장을 하고 싶어도 할 수가 없다.

빚 갚느라 돈이 없는데 무슨 수로 재무장을 한단 말인가? 나처럼 배상금 쌩까고 재무장 선언하면 되지 않겠냐고? 휴전협정 파기 선언하는 즉시 파리가 불바다가 될 텐데?

“지금 바로 대답해주시오. 해군을 포기하고 국토와 식민지를 지킬 것인지, 아니면 모두 다 포기할 것인지.”

“······예?”

“그, 그 말씀은······?”

“말 그대로요. 우리는 그대들의 동의를 구하지 않고 모든 것을 쟁취할 수 있지만, 그대들의 명예를 위해서 최소한의 선택권을 준 거요. 잘 판단하시길 바라오.”

프랑스 협상단은 한동안 말이 없었다.

말이 선택이지, 애초에 그들에겐 선택권이 없는 것이나 다름없었다.

유일하게 허락된 것은 그래도 일방적으로 통보받은 게 아니라 선택이라도 했다는 알량한 자존심뿐.

욍치제의 침묵은 그리 길지 않았다.

구시대적인 전략을 고수해 프랑스군의 패배에 일조했지만, 그래도 눈치는 있었던 그는 재빨리 현실을 받아들였다.

“······알겠습니다.”

욍치제의 항복을 받아낸 나는 객차에서 내렸다.

괴링과 카이텔, 브라우히치, 레더는 객차에 남아 프랑스 협상단과 회의를 이어갔다.

회의 결과, 프랑스 해군은 구축함 16척, 순양함 7척, 전함 3척을 포함해 도합 60대의 군함을 독일 해군에게 인도하게 되었다.

특히 가장 큰 수확은 프랑스 해군이 보유 중인 전함 중 가장 강력하다고 평가받는 리슐리외급 전함 리슐리외, 됭케르크급 전함 됭케르크와 스트라스부르, 이 3척의 전함과 조프르급 항공모함 조프르를 얻게 된 것이었다.

허나 조프르는 아직 건조 중이었기에 인수 자체는 시간이 다소 걸릴 것으로 예상되었다.

그래도 건조는 프랑스가 맡는 데다, 필요한 비용도 모두 프랑스가 부담하기로 했으니 우리는 가만히 앉아서 기다리기만 하면 된다.

“레더 제독, 거 입 찢어지겠소이다.”

“이 기쁜 날에 울상을 지을 순 없지 않습니까.”

독일 해군의 몰락을 두 눈으로 직접 지켜봤던 레더 입장에선 평생의 숙원이 이루어진 셈이니 하늘을 나는 기분이겠지.

하지만 완전히 안심하기엔 아직 일렀다. 자신들의 피 같은 군함을 적국에게 넘겨야 한다는 것에 눈이 뒤집힌 프랑스 해군이 배들을 자침시킬지 모르니까.

역사에서도 비시 프랑스 해군은 1942년 11월 27일, 독일이 기존 약속을 어기고 함정들을 강탈하려고 하자 툴롱 앞바다에서 함대를 자침시켜버렸다.

독일에게 목줄이 묶인 상태에서도 자기네 배들을 자침시켜버린 프랑스 놈들인데, 여기서도 같은 짓을 하지 않을 거란 보장이 없다.

그래서 나는 보험을 들기로 했다.

프랑스 해군의 함정이 온전하게 독일로 인도될 때까지 프랑스에게 약속한 조건들은 모두 연기하기로.

프랑스가 배들을 모두 자침시킬 경우, 나는 그 즉시 프랑스가 저항을 포기하지 않았다는 뜻으로 받아들이겠다고 엄포를 놨다.

“이참에 부르고뉴를 프랑스로부터 분리시키는 것은 어떻습니까, 총통 각하?”

힘러는 한술 더 떠 프랑스가 조약을 어기면, 부르고뉴를 프랑스로부터 분리시켜 슬로바키아처럼 괴뢰국으로 만들자고 제안했다.

“부르고뉴는 원래 게르만 민족의 땅으로, 경제적, 문화적 중심지였던 곳입니다. 그런데 프랑스에 합병되면서 일개 포도주 생산지로 전락하고 말았죠. 이번 기회에 부르고뉴를 독립시켜서 순수한 독일인들이 사는 땅으로 만드는 겁니다.”

“부르고뉴에 사는 프랑스인들은 모두 어떡하고?”

“당연히 모두 추방해지요.”

그래, 어째 그럴 것 같더라.

“총통께서 허락만 하신다면, 제가 반드시 부르고뉴를 완벽한 독일 민족의 땅으로 만들어 놓겠습니다. 맡겨만 주십시오!”

결국 이게 핵심이었군. SS의 수장으로도 만족을 못해서 이제는 왕이 되고 싶다, 이거냐?

힘러의 말에 주의를 기울이던 카이텔과 브라우히치도 힘러의 마지막 말을 듣고 그럼 그렇지 하는 표정을 지었다. 저놈의 과대망상증은 어떻게 할 수가 없나?

“굳이 자네가 그럴 필요까지 있겠나? 안 그래도 SS 일로 바쁘다고 들었는데. 생각보다 한가한가 봐?”

“예? 어······ 그게 아니라······.”

“설렁 부르고뉴를 프랑스에서 떼어내더라도 굳이 괴뢰국으로 만들 필요는 없지. 오스트리아처럼 독일에 합치면 되는데, 뭣한다고 귀찮게 그런 짓을 한단 말인가. 안 그렇소?”

“총통 각하의 말씀이 맞습니다.”

“암, 그렇지요.”

중세의 기사단처럼 자신만의 영지를 만들어 스스로 왕 놀이를 하고자 했던 힘러는 꿀먹은 벙어리가 되었다.

가뜩이나 지금도 충분히 권력이 많은 놈한테, 내가 미쳤다고 나라까지 만들어 주리? 그곳에서 어떤 괴상망측한 짓을 할지 누가 알고?

그래도 힘러가 제안한 부르고뉴의 분리는 좋은 협박요소였다.

여차하면 부르고뉴를 분리시켜 독일에 합병시킬 수 있다고 언질을 주자, 프랑스인들은 새파랗게 질렸다.

이걸로 딴 생각은 못하겠지. 나라가 나뉘는 것보다 해군이 쪼그라드는 게 훨씬 나은 선택일 테니까.

***

독일 측이 꿈과 희망에 부풀어있을 때, 패자인 프랑스인들의 분위기는 침울했다.

휴전협정에 서명한 후, 욍치제는 보르도에 있는 베이강에게 전화를 걸었다.

전화가 게슈타포에게 도청되고 있다는 사실을 꿈에도 모른 채, 그는 베이강의 목소리를 기다렸다.

“장군, 욍치제입니다.”

-말하게.

“끝났습니다.”

욍치제의 끝났다는 말에는 많은 의미가 포함되어 있었다.

-끝났다고?

“네, 장군.”

-그렇군. 잘 처리해줘서 고맙네.

베이강의 대답에 욍치제는 참았던 숨을 토해냈다.

“네, 저를 이해하시죠?”

-그럼, 이해하지.

욍치제는 몇 가닥밖에 남지 않은 머리카락을 쓸어넘겼다.

그는 베이강에게 독일이 프랑스에게 내민 요구조건들과, 그 대가로 프랑스가 건질 수 있는 것들에 대해 설명했다.

욍치제의 말이 끝나기까지 베이강은 잠자코 듣고만 있었다.

-······다를랑에겐 아직 말하지 않았나?

“다를랑 제독에겐 르뤽 중장이 설명하기로 했습니다.”

프랑스 해군 원수 프랑수아 다를랑에게 프랑스 해군의 운명을 알리는 일은 다를랑이 신뢰하는 부하 모리스 르뤽 중장이 맡았다.

대공황 시기 다를랑이 프랑스 해군의 축소를 막기 위해 얼마나 동분서주했는지 잘 아는 욍치제는 마음이 욱신거렸다.

그러나 욍치제는 자신의 결정은 전혀 후회하지 않았다.

안타깝지만 어쩔 수 없는 일이다. 조국의 운명과 해군의 자존심 중에 하나를 골라야 한다면 그는 백번이고 천번이고 무조건 전자를 고를 것이다.

필시 다를랑도 이해해주리라고, 자신과 같은 선택을 하리라고, 그렇게 믿고 싶었다.

통화를 마친 욍치제는 밖으로 나와 하늘을 올려다봤다.

오늘 같은 날에 어울리지 않는, 맑은 하늘이었다. 맑고 청명한 하늘.

오늘따라 햇빛이 무척 따가웠다.

***

1940년 6월 11일

프랑스 파리 마르스 광장

콩피에뉴 숲에서 프랑스 협상단과 휴전 협정에 서명하고 다음날, 눈을 뜨기 무섭게 나는 곧장 파리로 향했다.

그리고 파리에 도착하자마자 프랑스 역사상 가장 굴욕적인 사진을 찍었다.

“자아, 찍습니다! 하나, 둘, 셋!”

촥 소리와 함께 불빛이 번쩍였다.

“사진 잘 나왔나?”

“예, 총통 각하. 아주 잘 나왔습니다.”

히틀러의 사진하면 가장 유명한, 에펠탑을 배경으로 한 사진을 모르는 이는 없겠지. 우측에는 건축부장관 슈페어가, 좌측에는 조각가 아르노 브레커가 나란히 서서 나와 함께 사진을 찍었다.

사진을 찍은 뒤에는 에펠탑으로 향했다.

파리를 점령했다는 소식을 들은 직후 나는 휘하 병력에게 지시해 에펠탑 엘리베이터가 정상적으로 작동하는지 철저히 감시하라고 지시했다.

내가 도착했을 때, 에펠탑의 엘리베이터는 정상적으로 작동하고 있었다.

역사에서 파리를 점령한 히틀러는 에펠탑 꼭대기로 가려고 했지만, 프랑스 측에서 몰래 전기를 끊어놓는 바람에 죽을 때까지 에펠탑 꼭대기에 올라가지 못했다고 한다.

그 히틀러가 하지 못한 일을, 나는 해내고야 말았다.

“언젠가 한 번 와보고 싶은 곳이었는데, 이렇게 이루게 되니 감회가 새롭구만.”

“그러게나 말입니다.”

괴링이 진지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전생에서도 오르지 못한 에펠탑을 히틀러의 몸으로 오르게 되니 기분이 아주 오묘했다. 히틀러도 나와 같은 꿈을 꿨으려나?

“이야, 이거 참 장관이구만!”

에펠탑 꼭대기에서 내려다본 파리 시내의 풍경은 문자 그대로 장관이었다.

인터넷으로 에펠탑 꼭대기에서 찍은 파리 시내의 광경을 담은 사진을 본 적이 있는데, 현실로 보게 되니 차원이 달랐다. 훨씬 더 웅장한 기분이 든다고 할까나.

“참으로 웅장하구만. 그렇지 않소?”

“맞습니다, 총통 각하.”

“괜히 사람들이 파리를 가리켜 빛의 도시라 부르는지 알 것 같습니다.”

“이 좋은 날 사진을 안 찍을 수 없지. 한 장 더 찍게.”

나는 사진사에게 명령해 사진을 찍게 했다. 난간을 붙잡고 파리를 내려다보는 모습으로.

높이가 높이다보니 바람이 강하게 불었다.

내 사진을 찍던 사진사의 군모가 바람에 휘날려 날아가버리자, 사진사를 뺀 전원이 웃음을 터뜨렸다. 군모가 날아가버려 당황한 사진사에게 나는 웃으며 등을 두드렸다.

“그러게 모자를 잘 쓰고 있어야지. 헐겁게 쓰면 되나. 나중에 하나 새로 줄 터이니 이만 내려가세.”

사진 촬영과 에펠탑 등정을 끝내고, 국방군 병력들이 에펠탑에 거대한 V자 표식과 선전문구가 적힌 현수막을 걸었다.

‘Deutschland siegt auf allen fronten(독일은 모든 전선에서 승리한다)’

“이제 어디로 가시겠습니까, 총통 각하?”

현수막 설치를 구경하는 내게 헤스가 물었다.

“앵발리드로 가지.”

앵발리드는 파리에 위치한 군사시설로, 군사적으로 여러 업적을 남긴 프랑스인들의 묘지와 예배당, 박물관으로 이루어져 있다.

우리나라로 치자면 전쟁기념관과 현충원이 합쳐진 곳이라 할 수 있으며, 파리를 방문한 히틀러가 가장 오랫동안 머무른 곳이기도 했다.

앵발리드의 전시물 중 가장 유명한 것은 뭐니뭐니해도 바로 나폴레옹의 관이다. 성인 남성 열댓 명이 들어가고도 남을 큼지막한 관 안에 그 나폴레옹이 누워있었다.

나폴레옹은 알고 있었으려나? 자신이 패배시킨 나라의 후손이 자신의 조국을 패배시키고 자신의 관을 구경하리라고.

아마도 꿈에서조차 몰랐겠지. 내가 히틀러가 되어 이곳에 오리라고 예상하지 못했던 것처럼.

앵발리드 방문을 끝내고, 나는 빈에 있는 나폴레옹 2세의 관을 앵발리드로 이장하라는 지시를 내렸다.

실제로 히틀러는 아들을 아버지 곁에 묻어야 한다고 믿었기에 이런 명령을 내렸는데, 독일이 패망한 후 프랑스인들도 히틀러와 같은 생각으로 나폴레옹 2세의 관을 앵발리드에 그대로 놔뒀다.

이것으로 히틀러가 파리에서 했던 일정은 모두 끝났다.

파리 방문을 3시간 만에 끝낸 히틀러는 즉시 파리를 떠났지만, 나는 파리에 조금 더 머무르기로 했다. 기왕 파리에 왔으니, 조금 더 즐겨도 괜찮잖아?

마침 배도 고팠기에 참모들과 함께 ‘르 트랑 블루(Le Train Bleu)’에서 밥을 먹기로 했다.

1900년 파리 만국박람회를 위해 세워진 벨 에포크 풍의 레스토랑으로 21세기에도 파리에서 손꼽히는 고급 레스토랑이라고 TV에서 본 적 있다. 그때 그 TV프로가 ‘걸어서 세계속으로’였었지, 아마?

고급 레스토랑에 걸맞게 화려한 내부 인테리어가 인상적이었다.

레스토랑 종업원들은 갑작스러운 나의 방문에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다.

내가 이곳을 들릴 것이라곤 전혀 몰랐겠지. 주문을 받는 웨이터의 이마에는 식은땀이 흘렀다.

“주, 주문을 뭘로 하, 하시겠습니까······?”

“비프 부르기뇽(Boeuf Bourgignon, 프랑스식 쇠고기 스튜)으로 하지. 프랑스인이 만든 비프 부르기뇽이 한 번 먹고 싶었거든. 괴링, 자네는 뭘로 하겠나?”

“저는 파테 드 푸아그라로 하겠습니다.”

카이텔은 나처럼 비프 부르기뇽을 골랐다. 브라우히치는 필레미뇽(Filet Mignon, 쇠고기 안심 스테이크)를, 레더와 리벤트로프는 코트 다뇨(Cotes d'agneau, 양갈비 스테이크), 헤스는 라따뚜이를 골랐다.

슈미트가 주문내역을 불어로 통역해서 불러주는 것을 열심히 받아적던 웨이터는 고개를 90도로 숙인 뒤 부리나케 주방으로 뛰어갔다.

들뜬 마음으로 음식이 나오길 기다리는데, 베를린에서 연락이 왔다며 자리를 떴던 리벤트로프가 돌아와 내게 말했다.

“총통 각하, 방금 모스크바로부터 전보가 도착했습니다.”

“모스크바에서?”

“예.”

리벤트로프가 건넨 전문에는 스탈린이 내게 보내는 메시지가 적혀 있었다.

“뭐라고 적혀 있습니까?”

“‘귀하께서 1918년의 굴욕을 설욕한 것을 진심으로 축하합니다. 귀하와 독일의 친구인 이오시프 스탈린으로부터’라고 적혀 있군.”

역사에서도 스탈린은 히틀러가 프랑스의 항복을 받아내자 축하 전보를 보냈다고 했지.

나는 전보를 괴링에게 건넸고 괴링은 카이텔에게, 카이텔은 브라우히치에게 건네는 방식으로 돌려가며 전보를 읽었다. 전보를 읽은 카이텔이 활짝 웃으며 말했다.

“그 피도 눈물도 없는 스탈린도 총통 각하의 업적에 지레 겁을 먹은 것 같습니다.”

“그러게나 말이오. 조지아의 인간 백정이, 한낱 하사 나부랭이에게 겁을 먹다니. 참 오래 살고 볼 일이야.”

***

히틀러가 파리에서 비프 부르기뇽을 음미하는 동안, 모스크바 크렘린 궁의 스탈린은 차디찬 보드카를 연거푸 들이켰다.

보드카를 마시면 심정이 조금이나마 진정될 줄 알았다.

그러나 진정은커녕, 초조함과 흥분만 더욱 커질 뿐이었다.

스탈린이 부들거리며 보드카를 들이키는 것을 스탈린의 측근들은 두려운 눈으로 바라봤다.

“믿을 수 없어. 천하의 프랑스가, 이렇게 빨리 무너지다니······.”

보드카를 마셔서 코끝이 붉어진 스탈린은 잔에 보드카를 따르다 말고 고개를 획 돌려 자신의 똘마니들을 노려봤다.

주군의 눈동자에 깃든 광기와 흥분은 본 측근들은 식은땀을 흘리며 마른침을 삼켰다.

“이게, 이게 말이 된다고 생각해? 응?”

“······.”

“몰로토프! 한 번 대답해보게. 동무는 이게 말이 된다고 생각하나?”

스탈린의 지목을 받은 몰로토프는 불에 데인 아이처럼 화들짝 놀랐다. 당황한 나머지 혀를 깨문 탓에 아기의 옹알이처럼 말이 헛나왔다.

“아, 아니 된다고 생각합니다······.”

“안 된다고? 그럼, 지금 파리에 있는 독일군은 뭐지? 전부 다 허깨비란 말인가?”

“그, 그것이······.”

“빌어먹을! 이건 있을 수 없는 일이란 말이야!”

흥분을 주체하지 못한 스탈린은 보드카가 반쯤 담긴 잔을 벽에 내던졌다. 잔이 깨지면서 파편이 카펫 위로 흩어졌다.

프랑스의 패전은 스탈린에게도 거대한 충격을 안겼다.

독일군이 프랑스 국경을 넘어 공격을 시작했다는 소식을 접한 스탈린은 축구 경기를 관람하는 기분으로 축배를 들었다.

그는 독일이 1차대전처럼 영프와 오랫동안 전쟁을 지속하며 서로 국력을 소모할 것이라고 확신했다.

그렇게 독일과 영프 모두가 국력을 소진해 기진맥진해졌을 때, 붉은 군대를 진격시켜 전 유럽을 집어삼킬 생각이었다.

하지만 스탈린의 예상은 보기좋게 빗나갔다.

독일은 폴란드에서 그랬던 것처럼 단 4주 만에 프랑스를 무너뜨렸고, 유럽의 절대적인 강자로 등극했다.

동시에 소련은 역사상 가장 막강하고 위험한 세력과 당면하게 되었다.

“이제 누구도 독일을 막을 수 없어! 우리는 이제 말도 안 되게 강력한 괴물과 상대하게 된 셈이라고!”

스탈린의 측근들도 스탈린이 어째서 저렇게 흥분한 것인지 알고 있었다.

그들 역시 앞으로 소련이 당면한 문제를 생각하면 똑바로 서 있기 힘들 지경이었으니까.

그리고 소련만큼이나 충격과 공포에 휩싸인 나라가 유럽에 하나 더 있었다.

< 프랑스의 몰락 (4)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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