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히틀러가 되었다-80화 (80/150)

< 이빨 빠진 사자 (3) >

됭케르크에서 영국군이 처참한 대패를 당한 소식은 즉시 영국으로 전해졌다.

프랑스로 보내진 20만 장병 중 겨우 2만 5천 명만 본토로 귀환하고 프랑스에 남겨진 17만 5천 명의 병사들이 죽거나 포로가 되었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영국 전역은 패닉에 빠졌다.

조국의 아들들을 어째서 프랑스 땅에서 죽게 내버렸냐는 성토와 비난이 줄을 이었고, 무슨 짓을 해도 독일을 이길 수 없다는 패배주의와 비관주의가 남녀노소를 막론하고 퍼졌다.

이전부터 독일과의 강화를 추진하던 핼리팩스 내각은 즉시 독일과 협상을 시작했다.

육군의 정예병력이 프랑스에서 괴멸하고 전국민의 사기가 바닥에 떨어진 마당에 이 이상 전쟁을 계속한다는 것은 어불성설이었다.

***

1940년 5월 25일

스위스 베른

커튼 사이로 새어 들어온 햇빛이 실내를 밝게 비추는 가운데, 영국과 독일 협상단이 서로 마주 보고 자리에 앉았다.

“알렉산더 카도건입니다.”

“요아힘 폰 리벤트로프입니다.”

영국과 독일의 두 외무장관은 서로의 손을 맞잡았다.

만면에 옅은 웃음이 드리운 리벤트로프와 달리 카도건은 얼굴에서 경직된 기색을 감추지 못했다.

어제, 그는 됭케르크에서 35만 명의 연합군이 독일군에게 괴멸당했다는 소식을 들었다.

35만 명 중 17만 5천 명은 영국군으로 그들 중 절반 이상이 죽거나 다쳤으며 간신히 살아남은 병사들은 포로가 되었다는 소식이 그의 마음을 무겁게 짓눌렀다.

카도건은 그 어느 때보다 어깨가 무거웠다.

회담을 시작하기에 앞서 그는 냉수를 마셨다. 이가 시릴 정도로 차가운 냉수였다.

차가운 기운이 식도를 통해 전신으로 퍼지자 전류가 흐르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그럼, 시작하시죠.”

본래 이번 회담에 영국은 프랑스와 이탈리아도 동석시킬 예정이었다.

그러나 프랑스는 전황이 절망적이라며 징징거리면서도 정작 영국으로부터 회담 참가를 제의받자 갑자기 내각 전체 및 군부와 충분한 토의를 거친 후에 답변하겠다며 한발 물러섰다.

이탈리아도 마찬가지.

영국의 제안에 무솔리니는 크게 놀라면서도 프랑스처럼 뜨뜻미지근한 반응을 보였다.

아직까지 승산이 남아있다고 생각하는지, 전쟁을 일으킬 땐 언제고 이제와서 협상이냐는 국내의 비판을 피하기 위한 꼼수를 생각해내려는 것인지 영국은 알지 못했다.

그런 와중에 됭케르크가 함락당하면서 BEF가 괴멸당하자, 더는 시간을 지체할 수 없어진 영국은 두 동맹국의 반응을 기다리지 않고 단독으로 휴전 회담에 참가했다.

동맹국으로부터 받을 비난보다 독일의 포로가 된 조국의 아들들을 데려오는 게 더 중요하다는 것이 핼리팩스와 카도건의 공통된 입장이었다.

애시당초 확답을 주지 않고 시간을 질질 끈 것은 프랑스와 이탈리아 아닌가.

아무리 동맹국이라지만 뒤치다꺼리도 한계가 있는 법이다. 그런 생각을 하며 카도건은 자신과 총리의 결정을 합리화했다.

“우선 독일의 요구사항부터 먼저 듣고 싶군요. 말씀하시죠.”

“알겠습니다. 우리 독일의 요구사항은 간단합니다. 첫째, 영국은 독일에 대한 모든 적대행위를 중단하고 프랑스, 이탈리아에 대한 지원을 중단할 것. 둘째, 독일에 가한 경제제재를 해제하고 독일과 상호협력할 것. 셋째······.”

리벤트로프가 독일의 요구사항에 대해 얘기하는 동안, 카도건과 영국 협상단은 입을 굳게 다물고 리벤트로프의 말을 경청했다.

독일이 영국에게 요구하는 것은 간단했다.

강화조약을 체결하는 즉시 영국은 프랑스, 이탈리아에서 손을 떼고, 이후 두 나라에 대한 어떤 지원도 하지 말 것.

독일의 체코, 폴란드 합병을 공식적으로 인정하고 전쟁을 일으킨 것에 대한 사죄의 표시로 배상금 5억 마르크를 지불하라는 것.

“-마지막으로 영국은 그린란드와 아이슬란드에서 즉시 철수할 것이며, 덴마크와 노르웨이에게 배상금 2억 마르크를, 스웨덴에게 5천만 마르크를 지불할 것. 이상입니다.”

“끄응······.”

리벤트로프의 발언이 끝나기 무섭게 카도건은 얼굴을 찌푸렸다.

“질문 하나 해도 될까요, 리벤트로프 장관?”

“물론입니다.”

여유로운 태도의 리벤트로프는 그 정도쯤이야, 하는 표정으로 선선히 질문을 수락했다.

“저를 이곳으로 보낸 핼리팩스 총리께선 진심으로 양국 간의 평화를 원하십니다. 히틀러 총통께서도 진정으로 평화를 원하십니까?”

카도건의 말에는 뼈가 있었다.

그가 무엇을 말하고자 하는지 이해한 리벤트로프는 표정을 살짝 찌푸렸다.

리벤트로프가 어처구니없다는 말투로 얘기했다.

“귀국에게 먼저 평화협상을 제안한 것은 독일입니다. 그리고 귀국은 우리의 제의를 단칼에 거절하셨지요. 그런데 이제와서 그런 말씀을 하십니까?”

“험, 험!”

본전도 건지지 못한 카도건은 헛기침을 하며 물러섰다.

리벤트로프는 카도건이 체임벌린의 탓을 하지 않을까 생각했는데, 그런 일 없이 바로 물러서자 더 이상 공격하지 않았다.

“우리가 계속 전쟁을 하고 싶어한다고 오해하시는 것 같은데, 그렇지 않습니다. 우리가 전쟁을 계속할 생각이라면, 지금 이 자리도 없었겠죠. 안 그런가요?”

“뭐어······ 틀린 말은 아니지요.”

“영국이 진정으로 평화를 원하고 그 진심을 입증해보인다면 우리도 얼마든지 양보할 의향이 있습니다. 우리가 이 자리에 모인 이유가 전쟁을 끝내기 위해서 아닙니까.”

“그렇습니다.”

“지금부터 천천히 논의해보죠. 시간은 충분하니 말입니다.”

시작부터 잡음이 많았지만, 아무튼 협상은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

카도건은 우선 리벤트로프가 말한 독일의 요구 중 배상금 문제에 대한 조정을 시작했다.

“배상금으로 5억 마르크를 요구하셨는데, 우리로서는 받아들이기 조금 난처한 요구인 것 같군요.”

“어째서입니까? 이 정도 금액이면 과하지도 않고 나름 적당한 금액이라고 생각됩니다만.”

“우선, 영국은 패전국이 아닙니다. 그리고 영국과 독일의 국력은 대등하지요. 이 점은 확실하게 짚고 넘어가셔야 할 것 같습니다.”

비록 전황이 어쩔 수 없어서 협상은 하지만, 꼴에 패전국은 아니니 배상금은 줄 수 없다 이건가. 꼴에 자존심 하나는 포기 못하는군.

리벤트로프는 속으로 조소했지만, 사실 카도건의 말이 아주 틀린 것도 아니었다.

“설득력 있군요. 좋습니다. 그럼, 구체적으로 얼마를 생각하고 계십니까?”

리벤트로프가 순순히 물러서자, 카도건의 얼굴에 안도의 기색이 드러났다. 카도건이 말했다.

“1억 5천만 마르크. 대신 독일의 경제 재건에 영국 역시 힘을 보탤 예정입니다. 겨우 배상금 문제로 양국 간의 관계를 해쳐서야 되겠습니까? 그리고 ‘사죄의 표시’라는 표현도 조금 고쳤으면 합니다만.”

“······잠시 기다리시오.”

***

“카도건이 그렇게 말했다고?”

-그렇습니다, 총통 각하.

베른에 있는 리벤트로프로부터 전화가 걸려 왔다길래 벌써 회담이 끝났나 생각했지만 아니었다. 회담은 이제 막 시작이었다.

역시나 자존심 강한 영국인들은 배상금 문제에 민감하게 반응했다.

말로는 액수가 과도하게 많다며 조정을 요구했지만, 액수 자체보다 배상금을 내야 한다는 사실이 더 크게 작용했을 터.

그래도 한 푼도 낼 수 없다고 버틸 줄 알았는데, 그건 아니었다. 그만큼 영국은 이번 회담에 목을 걸고 있었다.

“카도건 말대로 하게.”

-진심이십니까?

배상금을 요구한 것도 배상금 자체가 목적이 아니라 영국의 의도대로 회담이 진행되는 것을 막기 위해서였다.

너무 과도한 요구로 상대를 빡치게 만들어 회담을 파토내는 건 안될 일이지만, 그렇다고 우리가 부르는 값이 너무 작으면 되려 영국에게 잘못된 신호를 줄 수 있다.

어라? 이놈들도 상황이 별로 안 좋은 모양인가? 이런 생각이라도 하게 되면 곤란해진다고. 초반부터 세게 나가야지.

“어차피 배상금이 목적이 아니라, 영국과의 강화조약이 우리의 최종목표일세. 굳이 영국의 반감을 사서 회담을 망칠 필요는 없지. 협상이 불발되면 곤란해지는 것은 우리 독일도 마찬가지니까.”

-알겠습니다.

***

“좋습니다. 그럼, 그렇게 하도록 하죠.”

베를린과의 통화를 마치고 자리로 돌아온 리벤트로프의 입에서 긍정적인 대답이 나오자, 카도건은 속으로 만세를 외쳤다.

이로써 영국이 독일에게 지불할 배상금의 액수는 5억에서 1억 5천만으로 그리고 표현도 사죄의 표시에서 영국이 독일의 경제 재건을 위해 건네는 지원금이라는 말로 바뀌었다.

가장 어려울 것만 같았던 안건이 의외로 쉽게 해결되자 영국 협상단은 여유를 되찾았다. 이 다음은 스칸디나비아 문제였다.

“물론 그린란드와 아이슬란드는 강화조약이 체결되는 즉시 덴마크에게 반환할 예정입니다. 다만 배상금 액수를 조정했으면 좋겠군요.”

독일 협상단과 동석한 덴마크, 노르웨이, 스웨덴 대표들의 표정이 날카로워졌다. 덴마크 대표가 가증스럽다는 듯이 말했다.

“허, 천하의 대영제국이 이 정도로 가난한 나라인 줄은 몰랐군요. 언제는 세계에서 가장 부유한 나라라고 큰소리 떵떵치더니, 그게 전부 다 허풍이었습니까?”

덴마크 대표의 신랄한 발언에 카도건은 발끈하여 노려봤지만 덴마크 대표는 카도건의 시선을 피하지 않고 정면에서 바라보았다.

노르웨이 대표도 나서서 덴마크 대표의 발언을 지원사격했다.

“배상금을 못 낼 정도로 가난하다면, 이건 어떻습니까? 대영제국이 보유한 식민지 일부를 양도하는 겁니다. 음, 인도가 적당할 것 같군요. 인도를 양도한다면 나머지는 알아서 처리하겠습니다.”

“지금 뭐라고 하셨소?”

“자자, 이쯤하시지요.”

싸움이 커질 기미를 보이자 리벤트로프가 진화에 나섰다.

영국 협상단만큼은 아니지만 그 역시 이번 회담을 최대한 빨리 마무리 짓고 싶었다. 쓸데없는 언쟁으로 시간을 낭비할 순 없었다.

스웨덴 대표도 리벤트로프와 비슷한 입장이었다.

영국의 나르비크 공격으로 자국민들이 사망하여 참전했지만, 본토가 공격받은 것은 아니었기에 스웨덴의 반영 감정은 덴마크와 노르웨이에 비해 비교적 덜한 편이었다.

“배상금을 아예 내지 않겠다곤 말하지 않겠습니다. 덴마크와 노르웨이에겐 각각 1억 마르크를, 스웨덴에겐 2천만 마르크를 배상하겠습니다. 영국이 강탈한 상선단도 전부 다 반환하고요.”

“그거야 당연한 얘기고.”

장장 1시간이 넘는 긴 토론과 타협 끝에, 영국이 배상해야 할 금액의 액수는 덴마크 1억, 노르웨이 1억, 스웨덴 2천만 마르크로 결정되었다.

스칸디나비아 대표들은 배상금의 액수가 못내 불만스러운 얼굴들이었지만, 이 점에 있어선 카도건도 양보할 생각이 없었다.

힘의 크기에 따라 모든 것이 결정되는 국제사회답게 이번 안건도 영국의 의도대로 흘러갔다.

엄연한 피해국들인 덴마크, 노르웨이, 스웨덴은 배상금을 받을 수 있다는 사실만으로 만족해야 했다.

이후의 사안들에 대해선 양측 모두 의견에 일치를 보였다.

영국은 독일의 체코, 폴란드 합병을 묵인하고 체코슬로바키아, 폴란드 망명정부의 영국 내 활동에도 제약을 걸겠다고 약속했다.

그리고 전쟁 중 서로 획득한 포로들에 대해선 프랑스와의 전쟁이 마무리되는 즉시 석방시키기로 합의했다.

1940년 5월 25일 오후 3시 25분.

영국, 독일, 덴마크, 노르웨이, 스웨덴 대표들이 차례로 휴전협의문에 서명했다.

***

“산더미라는 말조차 부족할 정도로 어마어마한 양이군.”

구데리안은 도처에 널린 영국군 장비와 피복을 보고 혀를 내둘렀다.

조금만 손을 보거나, 기름만 넣으면 당장이라도 굴러갈 수 있는 트럭들이 도로 가장자리를 따라 그대로 방치되어 있었다.

서부전선 원정을 위해 독일 전역과 점령지 각지에서 차량이란 차량은 있는 대로 긁어모아야 했던 독일군 입장에선 눈이 휘둥그레질 수밖에 없는 광경이었다.

“토미들이 어지간히 급했던 모양입니다. 이 귀중한 트럭들을 죄다 버려두고 도망치다니······.”

“사치스러운 녀석들이야. 이래서 사람들이 대영제국, 대영제국하는 건가.”

“아무튼 우리야 잘된 일이죠.”

타이어에 펑크가 난 것만 빼면 공장에서 갓 출고된 신품이나 다름없는 영국군 구급차를 뚫어져라 쳐다보던 구데리안이 물었다.

“영국 놈들이 버리고 간 차량의 수는 총 몇 대인지 파악했나?”

“숫자가 너무 많아 아직 집계 중입니다만, 현재까지 확인된 숫자만 3만 대가 넘습니다.”

“3만 대.”

구데리안은 숫자의 무게를 곱씹듯이 3만 대를 재차 중얼거렸다.

여기서 구데리안이 말한 차량은 트럭이나 승용차 등 4륜 구동차량을 의미하는 것으로, 오토바이나 기갑차량은 포함되지 않았다. 그걸 감안하고도 3만 대라니. 입이 떡 벌어지는 숫자다.

“현재까지 우리 군단이 상실한 차량의 숫자는?”

“100대가 조금 못 됩니다. 이중 78대는 아군이 다시 회수하여 정비대로 보냈는데 51대만 수리가 가능하다고 합니다.”

“대충 50대 정도 잃었군. 그리고 방금 3만 대가 추가되었고.”

구데리안의 얼굴에 절로 미소가 지어졌다.

“이보다 더 수지맞은 장사는 찾기 힘들 걸세.”

영국군이 됭케르크 일대에 유기하고 떠난 장비들을 모두 회수하는 데에만 족히 일주일이 넘게 걸렸다.

이중 대포가 1,150문이었고, 대공포는 500문, 대전차포가 850문, 오토바이 2만 대, 전차 및 장갑차 475대, 차량이 6만 3천 대에 달했다.

소총과 기관총, 수류탄 같은 소화기와 탄약, 피복, 식량은 셀 수조차 없었다.

독일군은 노획한 영국군 물자를 영국 총리 핼리팩스가 독일군에게 주는 선물이라는 뜻에서 ‘핼리팩스 보급’이라고 불렀다.

프랑스 들판에 내버려진 물자의 수가 워낙 많았기에 독일군은 특별 수송부대까지 편성해야 했을 정도였다.

핼리팩스 보급의 상당수 물자는 후방으로 보내져 창고에 적재되었지만, 일부는 즉시 전선에서 사용되었다.

독일과 협상하고 전쟁에서 빠진 영국과 달리, 프랑스는 아직 독일과 전쟁 중이었다.

독일 병사들은 호주산 양고기 통조림과 남아프리카산 파인애플 통조림으로 허기를 때우고, 영국제 베드포드 트럭을 타고 진격에 박차를 가했다.

그들의 최종목표는 파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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