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빨 빠진 사자 (2) >
“계속 전진해라! 가증스러운 영국과 프랑스놈들을 바다 속으로 밀어처넣는 거다!”
불로뉴를 함락시키자마자 됭케르크로 달려온 구데리안은 4호 지휘전차에 탑승해 공격을 지휘했다.
직접 전차에 탑승해 일선에서 병사들을 독려하는 군단장의 모습에 독일 병사들의 사기는 하늘을 찔렀다.
독일군의 저돌적인 공격 앞에 투항하는 연합군의 수가 크게 늘었다.
구데리안은 일선 병력에게 포로 확보는 후속부대에게 맡기고 전진하는데 집중하라고 지시했다.
병사들은 포로들이 무장을 해제하는 것만 확인하곤 발길을 재촉했다.
무기를 수거당한 투항병들은 우두커니 서 있다가, 보급부대 병사들이나 헌병들을 만난 후에야 정식으로 포로가 되었다.
포격과 공습에서 살아남은 작은 호텔이 독일군의 진격을 가로막았다.
호텔에 들어찬 프랑스 해군 육전대 병사들은 소뮤아 S40 전차 소대의 지원을 받으며 독일군과 싸웠다.
창문마다 자리잡은 기관총과 저격수에게 발목이 잡힌 독일군은 바르샤바 전투에서 맹활약한 브룸베어를 가져왔다.
소뮤아 S40의 75mm 철갑탄을 근거리에서 막아낸 브룸베어가 15cm 유탄을 발사하자, 호텔이 통째로 주저앉았다.
브룸베어의 15cm 유탄이 명중하면 어지간한 건물들은 그대로 붕괴하기 일쑤였다.
“길이 뚫렸다!”
“가자, 새끼들아!”
소뮤아 S40들의 처리는 뒤따르는 4호 전차들이 맡았다.
독일군은 요새화된 건물들이 나타날 때마다 브룸베어를 앞세워 건물을 날려버리는 전략을 썼다.
전략은 아주 효과적이었다.
보병 1개 중대가 2시간에 걸쳐서도 해결하지 못한 일을 브룸베어는 포탄 한 방에 해결했다. 브룸베어의 주포가 격발될 때마다 건물이 무너지고, 독일군은 진격을 거듭했다. 프랑스군은 브룸베어를 격파하려고 애를 썼지만, 중장갑의 보호를 받는 브룸베어에게 어떤 공격도 통하지 않았다.
5월 23일 오후 9시.
독일군은 이제 됭케르크 해변까지 불과 5km를 남겨두고 있었다.
***
오전과 오후, 두 차례에 걸친 전투로 크나큰 피해를 입은 프랑스군 방어선은 결국 돌파당했다.
프랑스군 방어선이 돌파당하자 프랑스군의 후위를 맡던 영국군은 비상이 걸렸다.
병사들은 참호에 몸을 숨긴 채 4호 전차의 엔진소리를 기다리며 전투를 준비했다.
긴장감으로 방광이 팽팽해진 그레이엄은 바지를 내리고 참호 구석에 소변을 눴다.
나이를 먹어서 그런지 소변 줄기에 힘이 없었다.
몸이 한결 가벼워지자 그레이엄은 서둘러 바지를 올렸다. 아직 적은 나타나지 않았다.
하지만 앞으로 몇 분 뒤에 적군이 그들 앞에 모습을 드러내리란 사실은 확실했다.
전방에서 들려오는 포성과 엔진음이 그 증거였다. 소리가 커질수록 병사들의 긴장은 극에 달했다.
“제리 새끼들, 올 거면 빨리 오지 사람 쫄리게 뭐하자는 거야.”
홉킨스는 짐짓 아무렇지도 않은 듯이 담배를 씹어댔지만 짬밥 좀 먹었다고 자부하는 그조차 얼굴에서 초조함을 지우지 못했다.
무어 소위는 아라스 전투 이후 기가 팍 죽었다.
여전히 병사들 앞에선 장교의 권위를 들먹이며 권위적으로 나왔지만, 그가 실전에서 벌벌 떠는 모습을 본 병사들은 더 이상 그를 두려워하거나 어려워하지 않았다.
무어 소위도 그 점을 눈치챘는지 이전보단 그레이엄에게 협조적으로 나왔다.
“그레이엄 중사, 소대원들 상태는 확인 다 했나?”
여전히 반말을 툭툭 내뱉는 것은 변하지 않았지만.
“모두 전투 준비 완료입니다. 그리고 소대장님.”
“뭔가?”
“소대원들 사이에서 식사 추진은 언제쯤 이뤄지는지 질문이 나왔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밥이 넘어가겠나? 내일 아침까지는 없을 테니, 알아서 버티라고 전하게.”
“알겠습니다.”
혹시나 했는데 역시나였다. 오늘 저녁에도 배식은 없을 예정이었다.
오후부터 주린 배를 움켜잡고 간신히 버티던 병사들에겐 청천벽력 같은 소식이었다. 그레이엄은 한숨을 내쉬었다.
자리로 돌아왔더니 홉킨스가 뭔가를 우적거리고 있었다. 그레이엄의 얼굴에 드러난 표정을 읽은 홉킨스가 말했다.
“오늘 저녁도 어제랑 똑같습니까?”
“그래. 각개전투다. 그런데 너 뭘 먹고 있냐?”
“프랑스 놈들 전투식량입니다. 전에 꿍쳐놨습죠. 좀 드시겠습니까?”
“하나 줘봐.”
홉킨스가 건넨 프랑스군 전투식량은 말린 무화과였다.
단것을 싫어하는 그레이엄이었지만, 지금은 음식을 가릴 처지가 아니었기에 냉큼 입에 털어 넣었다.
“······달군. 너무 달아.”
“이게 달다고요? 혀가 어떻게 되신 거 아닙니까?”
“내가 묻고 싶은 말일세. 이게 안-”
“제리들이다!”
그레이엄의 말은 어느 병사의 외침에 끊어졌다. 곧바로 기관총 사격음이 들렸고, 그레이엄과 홉킨스는 반사적으로 총을 들었다.
은밀히 침투해오던 독일군이 어느 눈썰미 좋은 병사의 시선에 포착된 것이었다.
독일군이 나타났다는 말이 퍼지기 무섭게 병사들은 일제 사격을 개시했다. 그러자 전방에서 독일어로 된 비명이 들렸다.
“누구야! 누가 사격 명령을 내렸어!”
병사들이 자신의 명령 없이 사격했다는 사실에 화가 난 무어 소위가 소리쳤지만, 아무도 그의 말에 귀 기울이지 않았다.
영국군으로부터 선공을 당한 독일군도 잽싸게 엄폐하면서 대응사격을 가했다.
최초로 독일군을 발견한 병사가 뒤로 벌러덩 쓰러졌다. 미간에는 총알이 박혀 있었다.
공격을 감행한 독일군은 영국군보다 수적으로 열세였지만, StG39와 MP38 덕분에 화력에서 영국군을 압도할 수 있었다.
중대장은 즉시 본부에 지원을 요청했지만, 대대본부는 중대장의 지원요청을 단칼에 거절했다.
-지금 이곳도 교전 중이다. 따라서 지원은 힘들다. 최대한 버텨보도록.
“젠장, 여기서 뭘 더 어떻게 버티라는 거야?!”
“전차다!”
4호 전차가 나타나자, 병사들은 패닉에 빠졌다. 전차의 기다란 포신을 본 그레이엄은 저도 모르게 욕을 내뱉었다.
“정면에 적 전차! 거리 360, 철갑탄!”
“장전 끝!”
전차의 포탑이 회전하기 전, 탄약수가 약실에 철갑탄을 밀어넣었다. 장전이 끝나자 포반장의 손이 내려갔다.
“쏴!”
2파운더의 40mm 철갑탄은 4호 전차의 정면에 명중했지만, 도탄되었다. 첫 번째 포탄이 맥없이 튕겨나가자, 포수는 즉시 표적을 포탑으로 바꿨다. 다행히 전차병들은 어디서 포탄이 날아왔는지 아직 갈피를 잡지 못했다.
두 번째 철갑탄이 장전되고, 포수는 핸들을 돌려 4호 전차의 포탑을 조준했다.
그리고 발사.
“명중!”
포탑 정면에 명중한 철갑탄은 장갑을 관통하여 탄약수에게 부상을 입혔다. 관통에 성공하자 대전차포병들이 만세를 외쳤다. 참호에서도 환호 소리가 나왔다.
“그렇지! 바로 그거야!”
“좋았어!”
전차포에서 섬광이 터져나오자, 환호 소리가 끊어졌다. 약실에 미리 유탄을 장전해뒀기에 탄약수가 부상을 입은 상황에서도 전차포의 발사가 무리없이 이뤄질 수 있었다.
부상당한 탄약수를 대신해 통신수가 자리로 이동할 때까진 시간이 걸렸지만, 조금 전의 사격으로 2파운더는 고철더미가 되었다.
“제기랄, 저놈 대체 뭐야? 멀쩡하잖아.”
그레이엄은 어처구니가 없었다.
분명 포탄이 관통했음에도 전차는 여전히 움직이고 있었다. 보고도 믿을 수 없는 광경에 그는 할 말을 잃고 말았다.
“이제 우린 다 죽었다.”
홉킨스는 절망어린 말투로 뇌까리면서도 기관총을 발사했다.
보이즈 대전차소총이 4호 전차의 전면을 때렸지만 아무런 효과가 없었다.
케츠헨 2대도 도착해 참호의 영국군을 향해 MG40을 발사했다. 적의 사격이 워낙 거센 탓에 영국군은 고개를 들 수 없었다.
기관총의 지원을 받으며 돌격하던 독일 병사가 참호로 뛰어들었다.
곧 참호에선 한바탕 소란이 일었다. 욕설과 고함, 비명이 오가더니 총성이 몇 번 울렸다.
“제리가 참호에 들어왔다!”
“수류탄을 던져!”
수류탄을 투척하기 위해 몸을 일으킨 병사가 MG40에 정통으로 맞아 상체가 분리되고 수류탄이 바닥에 굴러떨어지면서 같은 참호에 있던 병사 2명이 갈가리 찢어졌다.
그레이엄의 참호에도 독일군이 침투했지만, 그레이엄이 소총으로 저격해 고꾸라뜨렸다.
그레이엄의 총탄을 맞고 쓰러진 독일 병사가 흘린 MP38을 주운 그레이엄은 참호로 뛰어드는 독일군을 향해 방아쇠를 당겼다.
가슴팍이 엉망이 된 독일 병사가 쓰러지자 함께 참호에 뛰어든 병사가 우측으로 몸을 피했다.
“홉킨스!”
“또 왜요!?”
“여긴 곧 뚫린다! 장비 챙겨서 뒤로 빠져!”
주변을 둘러보니 아군이 한 명도 없었다.
어느새 최전선 참호에는 그레이엄과 홉킨스 단 두 명만 남아있었다.
다른 병사들은 모두 죽거나 튄 뒤였다. 한발 늦게 상황을 파악한 둘은 무기와 탄약을 챙겨 자리를 떠났다.
몸을 반쯤 굽힌 상태로 교통호를 따라 달리는데, 앞에서 독일군이 나타났다. 그레이엄이 총탄을 쏘기 전에 독일군은 오른쪽으로 몸을 피했다.
“홉킨스, 수류탄!”
“여기 있습니다!”
홉킨스로부터 수류탄을 건네받은 그레이엄은 안전핀을 뽑고 3초를 센 뒤 그것을 힘껏 던졌다.
폭음이 울리면서 감자 포대가 쓰러지는 소리가 났다. 수류탄이 폭발한 장소로 가자, 하반신이 엉망이 된 독일군의 시체가 참호 벽에 기대어져 있었다.
“그, 그레이엄 주, 중사? 사, 살아있었군.”
하체가 뭉개진 독일군의 시체를 지나 쭉 가자, 무어 소위가 나타났다. 주변에는 적의 총격에 사망한 아군의 시체가 가득했다.
“나, 나머지 소대원들은 어디에 있나? 사, 살아남은 건 자네 둘이 저, 전부인가?”
무어 소위는 심하게 말을 더듬었다. 허세 넘치고 오만방자한 평소와는 정반대의 모습이었다.
그레이엄의 180도 변한 상관의 모습에 황당함을 넘어 측은함까지 느꼈다.
“아무래도 그런 것 같습니다. 소대장님, 다른 소대원들은 없습니까?”
“어, 없어. 나, 나만 살아남았네······.”
“중대장님은 어디 계십니까?”
“그, 그걸 내가 어떻게 아, 알아!?”
더듬거리며 말하던 무어 소위가 갑자기 소리를 버럭 질렀다. 자신을 무시한다고 생각해서 화를 낸 걸까?
그러나 그레이엄은 그것이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다. 무어 소위의 눈동자는 완전히 풀려 있었다.
이 사람, 정신이 나갔군.
혼자서 뭐라고 중얼거리던 무어 소위는 별안간 뒤를 돌아보며 그레이엄에게 명령을 내렸다.
“나, 나는 아, 아직 죽지 않았어. 주, 죽지 않았단 말, 말이야. 그러니까······.”
“소대장님, 진정하십쇼.”
“진정은 무슨! 자, 자네도 역시 날 무시-”
퉁명스레 말하던 무어 소위의 표정이 점점 경악으로 바뀌었다.
4호 전차가 참호를 넘어 그들이 있는 곳으로 다가오고 있었다. 포탑이 회전하는 모습을 본 그레이엄이 외쳤다.
“엎드려!”
75mm 유탄이 착탄하기 전, 그레이엄과 홉킨스는 자세를 낮춘 덕에 살아남을 수 있었다.
그러나 무어 소위는 달랐다.
엎드리는 대신 뒤로 도망치려고 했던 그는 폭발의 영향으로 참호에서 튕겨 나갔다.
연기가 걷히자, 그레이엄은 참호 바깥에 내리꽂힌 무어 소위를 발견할 수 있었다.
소위의 목은 기괴한 각도로 꺾여 있었다.
“홉킨스? 살아있냐!”
“살아있습니다!”
바닥에 엎드리느라 뺨에 큰 흉터가 생겼지만, 어쨌든 홉킨스도 죽지 않고 살아남았다.
폭발의 충격으로 참호 외벽이 무너지면서 흙이 쏟아진 탓에 길이 막혔다.
다시 되돌아가려고 했지만, 전차를 따라 독일군이 다가오고 있었다.
죽은 병사들이 전차의 무한궤도에 짓밟혀 으스러질 때마다 뼈가 부서지는 끔찍한 소리가 났다.
“이젠 어떡합니까?”
홉킨스가 물었다.
살아있는 아군은 없고, 길은 막혔고, 뒤로는 독일군이 다가오고 있는 상황. 그야말로 최악의 상황이었다.
그레이엄은 필사적으로 머리를 굴렸다. 하지만 암만 머리를 굴려도 뾰족한 수가 떠오르지 않았다.
“······항복하자. 우린 할 만큼 했어.”
그레이엄과 홉킨스는 무기를 내려놓고 두 팔을 들었다. 돌격소총으로 무장한 독일군 분대가 그들을 지나쳐 앞으로 전진했다.
전진하느라 여념이 없는 독일군 사이에서 우두커니 서 있던 두 사람에게 독일군 위생병이 서툰 영어로 따라오라고 지시했다.
독일군 위생병은 하얗게 도색된 철모를 쓰고 있어서 멀리서도 구분이 가능했다.
위생병을 따라 도착한 곳에는 복부에 총상을 입은 독일군 부상병이 들것에 실려 누워있었다.
“들어.”
부상병은 기절했는지 의식이 없었다. 희미하게 들리는 숨소리만이 그가 죽지 않았음을 알려주고 있었다.
***
1940년 5월 24일
프랑스 됭케르크
“제68보병사단 방어선이 붕괴되었습니다.”
“21보병사단 우측을 방어 중이던 영국군 19보병연대가 연락두절입니다. 인접한 제8주아브연대도 1시간 전부터 연락이 되질 않습니다.”
“12기계화보병사단과 60보병사단으로부터 전령입니다. 독일군의 전차가-”
됭케르크 포위망 내부 프랑스군 최선임자인 프랑스 해군 중장 장 마리 샤를 아브리알 제독은 물밀듯이 쏟아지는 비보를 묵묵히 듣고만 있었다.
아브리알 제독 휘하의 프랑스군은 독일군에 맞서 나름 용감하게 저항했지만, 전차와 슈투카, 돌격소총 등 막강한 신무기로 무장한 독일군의 맹공 앞에 프랑스군의 방어선은 차례차례 돌파당했다.
전쟁 초기에 열정적으로 부하들을 지휘하며 모든 일에 솔선수범하던 그조차 이어지는 아군의 패배와 후퇴, 포위 소식에 무릎을 꿇었다.
그는 모든 일에 달관한 사람처럼 부하들을 보고를 들으며 조용히 담배를 태웠다.
“각하.”
적기의 공습으로 파편상을 입고서도 묵묵히 임무를 수행해오던 부관이 힘겹게 입을 열었다. 부관의 눈동자는 가늘게 떨리고 있었다.
“30분 안으로 독일군이 사령부로 쳐들어올 겁니다. 서둘러 대피하셔야 합니다.”
“대피라.”
아브리알은 부관의 말에 쓰게 웃었다.
“보슈들에게 포위당한 지 오래인데 어디로 도망친단 말인가?”
“아직 해변에선 철수가 진행 중입니다. 지금 떠나신다면 영국으로 탈출하실 수 있을 겁니다.”
제독은 진심으로 자신의 안위를 걱정하는 부관에게 고마움을 느끼면서도 그것이 허황된 말임을 모르지 않았다. 아브리알이 말했다.
“자네도 듣지 않았나. 1시간 안으로 구출작전을 중단하고 철수하겠다고. 아닌가?”
“······사실입니다.”
“그래, 나 같은 늙은이 한 명쯤은 탈 자리가 마련되어 있겠지. 하지만 병사들을 사지에 남겨둔 채 어떻게 나 혼자서만 도망칠 수 있겠나? 그들에게 최후까지 위치를 사수하라고 지시한 내가.”
“······.”
아브리알은 자신이 도망친다면, 역사가 자신을 어떻게 평가할지 모르지 않았다.
틀림없이 후손들은 자신을 가리켜 ‘병사들에겐 죽음을 지시하고, 자신은 살 길을 찾아 도망친 졸장’이라고 평가하겠지.
실제 역사에선 아브리알과 휘하 프랑스군의 노력 덕분에 34만 명에 이르는 연합군이 무사히 영국으로 철수할 수 있었다.
비록 역사의 개변으로 여태까지 철수에 성공한 병력의 수는 본래 역사의 반의반에도 미치지 못했지만 아브리알의 노력이 없었으면 그마저도 불가능한 수치였다.
철수작전이 종료된 직후 아브리알은 휘하 병력을 이끌고 독일군에게 투항했다.
마음만 먹으면 그도 언제든지 영국으로 도망칠 수 있었지만, 그는 그렇게 하지 않았다.
자신의 명령을 충실히 이행한 부하들을 남겨두고 도망칠 수 없다는 이유로 말이다.
“병사들에게 무기와 연료를 파기하라고 명령하게. 계속 싸워봤자 아무 의미가 없어. 애꿎은 병사들만 희생시킬 뿐이지.”
그가 새 담배를 꺼내자, 부관이 담배에 불을 붙였다.
의자에 앉아 천천히 담배를 음미하던 아브리알이 힘없이 중얼거렸다.
“우린 최선을 다했어. 조국도 우리의 분투를 알아줄 걸세······.”
***
1940년 5월 24일 새벽, 아브리알 제독이 지휘하는 프랑스군은 독일군 19기갑군단에게 항복했다.
아브리알의 항복을 받아낸 19기갑군단은 미처 영국으로 철수하지 못하고 해변에 고립된 연합군에게 최후의 포격을 퍼부었다.
군단 포병이 보유한 탄약을 모두 소진하기까지 정확히 30분이 소요되었다.
30분에 걸친 포격이 끝나고, 연합군은 항복의사를 밝혔다. 구데리안은 이를 즉시 수용했다.
이로써 ‘됭케르크 포위전’은 공식적으로 종료되었다.
됭케르크 포위전 종료 때까지 영국군 2만 5천 명과 프랑스군 4천 명이 영국으로 탈출하는 데 성공했다.
해변에 남겨진 35만 병력 중 9만 명의 영국군과 5만 명의 프랑스군이 전사, 부상, 실종되었고, 살아남은 병사들은 포로가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