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빨 빠진 사자 (1) >
1940년 5월 22일
프랑스 됭케르크
“전차가 옵니다!”
“명심해라. 포탑을 노려, 포탑을!”
대전차사수는 마른침을 삼키며 조준에 온 신경을 집중했다.
이윽고 4호 전차가 나타나자 사수는 방아쇠를 당겼다. 묵직한 반동이 전해지면서 날 선 금속의 소리가 귀청을 울렸다.
장갑을 관통한 총탄은 아슬아슬한 차이로 내부 승무원들을 비껴나갔다.
해치 밖으로 고개를 내밀고 있던 전차장은 대전차사총의 발사광을 발견하곤 즉시 포수에게 포탑을 우측으로 돌리라고 지시했다.
포탑이 돌아가는 사이 사수가 두 번째 탄을 발사했다.
이번에는 제대로 명중하여, 통신수에게 부상을 입히고 무전기를 망가뜨렸다.
“발사!”
전차장의 구령에 맞춰 포수가 주포를 격발시키자, 포구에서 섬광이 터져 나왔다.
황급히 자리를 뜨던 사수는 오렌지색 섬광에 삼켜져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다수의 프랑스군과 소수의 영국군, 그리고 극소수의 벨기에군으로 구성된 연합군은 독일군의 맹공에 맞서 필사적으로 방어선을 사수하고 있었다.
전투는 지상뿐 아니라 공중에서도 벌어졌는데, 수백 대에 달하는 항공기들이 뒤엉켜 창공을 날아다니며 선회와 회피, 상승과 하강을 반복했다.
“빌어처먹을 제리 놈들, 더럽게 끈질기네!”
올리버 크레이그 대위는 평소의 그답지 않게 매우 거친 욕설을 내뱉었다.
전투가 시작되기 무섭게 아군기 2대가 연이어 추락하는 것도 모자라 적에게 꼬리를 잡히기까지 했다. 욕을 안 하고 싶어도 안 할 수가 없었다.
기체에 육망성이 그려진 Bf109는 크레이그의 스핏파이어를 끈질기게 따라붙었다.
크레이그는 적을 떨쳐내기 위해 선회를 반복했지만, 놈은 지치지 않고 크레이그의 뒤를 따라붙었다.
“우왓!”
적기가 20mm 기관포를 발사하자, 크레이그는 반사적으로 몸을 움츠렸다.
캐노피에 금이 가고 유리 파편이 안으로 튀어 뺨에 상처를 냈다.
그러나 크레이그는 적기의 추격을 떨쳐내는데 정신이 팔린 나머지 통증을 느끼지 못했다.
위기에 처한 크레이그를 구한 것은 편대장이었다. 편대장의 스핏파이어가 날아와 기총을 난사해 크레이그를 뒤쫓던 Bf109의 캐노피를 엉망으로 만들었다.
조종사를 잃은 Bf109는 그대로 지상을 향해 추락했다.
“감사합니다, 편대장님!”
-알면 나중에 한턱 쏘라고!
겨우 자유의 몸이 된 크레이그였지만, 전황은 여전히 최악이었다.
또 한 대의 아군기가 적기에 당해 불덩이가 되어 추락했다. 크레이그는 이를 악물었다.
그가 모는 슈퍼마린 스핏파이어는 영국의 최신예 전투기로 우아한 외관만큼이나 뛰어난 성능으로 등장 당시부터 공군 수뇌부의 관심과 사랑을 받았다.
하지만 스핏파이어를 만든 슈퍼마린 사의 전투기 생산 능력이 다소 뒤떨어지는 관계로 2차대전이 발발할 때까지 스핏파이어는 충분한 수량이 만들어지지 못했다.
전쟁이 터지자 RAF(Royal Air Force, 영국 공군) 전투기사령부 사령관 휴 다우딩 대장은 스팟파이어의 수량 부족과 본토 방공망 확충을 이유로 스핏파이어의 프랑스 출전을 금지하고, 그보다 성능이 뒤떨어지는 구식 글래디에이터 복엽기와 호커 허리케인 전투기를 전선에 투입했다.
그러나 연합군이 됭케르크에 포위당하면서 상황은 반전되었다.
발등이 불이 떨어진 영국은 그동안 애지중지하던 스핏파이어들도 전투에 내보내기로 결정했는데, 고성능의 스핏파이어라면 독일 전투기들과 호각으로 싸울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되었다.
하지만 그토록 큰 기대를 걸었던 스핏파이어조차도 독일 공군의 상대가 되지 못했다.
독일 공군은 스핏파이어 MK.I보다 성능이 훨씬 뛰어난 Bf109F와 Fw190 A-3를 주력으로 굴리고 있었고 이들을 모는 조종사들 다수가 스페인, 폴란드, 노르웨이에서 실전을 거친 베테랑들이었다.
이에 반해 스핏파이어 조종사들 태반은 이번이 첫 실전인 햇병아리들.
설상가상으로 전장조차 영국군의 편이 아니었다.
영국 남부의 비행장에서 출격한 스핏파이어들이 영불해협을 건너야 하는 반면, Bf109는 독일군이 점령한 프랑스 북부의 비행장에서 출격해 고공에서 느긋하게 기다리기만 하면 되었다.
기체의 성능도 달리고, 경험까지 까마득하게 차이나는 것도 모자라 적의 홈그라운드에서 싸워야 하니 제대로 된 싸움이 될 턱이 없었다.
수많은 스핏파이어들이 영불해협을 건너 프랑스 상공에 도착하자마자 기습을 가해오는 Bf109에 의해 격추되었다.
허리케인, 스핏파이어와 함께 독일의 Bf109를 상대로 싸움에 나섰던 프랑스군의 M.S.406은 이미 자취를 감춘 뒤였다.
프랑스 조종사들은 영국 조종사들만큼이나 최선을 다해 싸웠지만, 그들의 용기와 투혼은 압도적으로 강력한 적의 무력에 의해 모조리 분쇄되고 말았다.
최후의 M.S.406가 Bf109의 기관포 공격을 받고 추락했다.
적기 2기를 연속으로 격추시켜 의기양양해하던 독일군 조종사는 자신을 향해 날아오는 스핏파이어를 발견하곤 급히 선회를 시도했다.
“어딜!”
적기가 조준선 안으로 들어오자 크레이그는 버튼을 눌러 기총을 발사했다.
브라우닝 기관총 4정에서 일제히 총탄이 발사되어 Bf109의 날개와 동체에 손상을 입혔다.
독일군 조종사는 손상된 기체를 조종해 도주를 시도했지만, 크레이그는 한 번 잡은 먹잇감을 결코 놓치지 않았다.
그가 끈질기게 따라붙어 총알을 퍼붓자 마침내 상대방은 연기를 내뿜으며 추락했다.
“좋았어!”
적이 방심한 틈을 타 기습을 가한 것이라고 하나, 스핏파이어 MK.I과 Bf109F의 성능 차이를 생각하면 훌륭한 전과였다.
주먹을 불끈 쥔 크레이그는 아군 스핏파이어를 뒤쫓는 Bf109를 발견하곤 좌측으로 선회했다. 방금 처리했던 놈처럼 녀석의 뒤통수에 총탄을 먹여줄 생각이었다.
그러나 크레이그가 선회를 시작하기 무섭게 적기는 기관포를 퍼부어 스핏파이어를 격추시키곤 급상승하여 구름 속으로 들어가 버렸다.
자신이 노려지고 있다는 사실을 눈치챈 건가? 그 짧은 시간에? 크레이그는 식은땀을 흘렸다.
이미 독일군이 보통 상대가 아니란 것쯤은 알고 있지만, 저놈은 정말이지 보통내기가 아닌 게 분명했다.
-연료 부족! 귀환하겠다!
무전에는 연료 부족으로 귀환하겠다는 보고가 부쩍 늘었다.
괴물같은 적기의 성능에 겁을 먹고 꽁무니를 내빼는 조종사도 있지만, 정말로 연료가 부족해 철수하는 조종사들이 태반이었다.
가뜩이나 영불해협을 건너느라 연료를 적잖이 소모했는데 격렬한 기동으로 부족한 연료가 더욱 부족해졌다.
-크레이그, 연료 얼마나 남았냐?
편대장의 물음에 크레이그는 계기판을 살폈다. 그도 연료가 간당간당했다.
그래도 당장 기수를 돌려 철수한다면, 아슬아슬하게 비행장에 닿을 수 있는 양이었다.
“저도 간당간당합니다.”
-나도야. 이만 철수하도록.
“하지만 편대장님, 지금 철수하면 지상의 아군은-”
-여기서 더 지체하다간 바다에 풍덩이다, 이 자식아. 헤엄쳐서 복귀할 생각이냐? 돌아가서 연료를 보충받고 다시 돌아오면 돼. 그러니 얼른···.
영국이 있는 북쪽으로 선회하던 편대장의 스핏파이어는 위쪽에서 가해진 기관포 공격을 받았다. 크레이그는 너무 놀라 소리조차 지르지 못했다.
“저, 저 개새끼가!”
편대장의 기체가 지상에 처박힌 후에야 충격에서 벗어난 크레이그는 편대장을 격추한 Bf109를 추격했다.
당장 기수를 돌려도 모자랄 판에 적기를 쫓는 행위가 어떤 결과를 의미하는지 크레이그도 모르지 않았다.
하지만 지금 그에게 중요한 것은 본토 귀환이 아니라 저 망할 제리 놈의 대갈통에 구멍을 뚫어주는 일이었다.
크레이그는 연료 부족으로 본토 귀환이 불가능해지는 것까지 각오하고 적기를 뒤쫓았다.
바다에 불시착하거나, 적의 포로가 되는 일이 있더라도 저놈만큼은 반드시 자신의 손으로 잡을 생각이었다.
하지만 아무리 그가 애를 써도 적기와의 거리는 좀처럼 줄어들지 않았다. Bf109는 크레이그를 농락하듯이 고도를 높여 구름 사이로 들어가버렸다.
“젠장! 언제까지 도망칠 생각이야?!”
크레이그도 적기를 쫓아 고도를 높이는 순간, 바로 위에서 새로운 Bf109가 나타났다. 그가 쫓던 녀석과는 다른 기체였다.
예상치 못한 타이밍에 나타난 놈이라 크레이그는 미처 대응할 생각조차 하지 못했다. 새로 출현한 Bf109가 7.92mm 총탄을 뿌리자, 캐노피에 붉은 선혈이 뿌려졌다.
지상으로 추락하는 스핏파이어를 보며, Bf109의 조종사는 휘파람을 불었다. 그리곤 무전을 통해 동료에게 자랑스레 자신의 전적을 보고했다.
“이걸로 6대 격추군. 묄더스, 넌 몇 대 잡았냐?”
-나는 7대. 내가 이겼으니 오늘 술은 네가 사라, 갈란트.
“젠장.”
***
1940년 5월 23일
프랑스 됭케르크
됭케르크 일대에 고립된 연합군의 숫자는 약 38만 명.
이중 20만 명이 영국군이었고, 나머지 18만 명은 다수의 프랑스군과 극소수의 벨기에군로 이루어졌다.
20만이라는 숫자도 무시할 수 없지만, 됭케르크에 포위된 병력은 단기간에 속성으로 훈련시킨 징집병들이 아니라 대다수가 수년 동안 군에 복무한 직업군인들로 영국군 중에서도 최정예 병력이었다.
이들을 모두 잃는다는 것은 영국 육군에게 사형선고를 내리는 것과 같았다.
해군과 공군이 남아있다지만, 궤멸한 육군을 다시 재건하려면 어마어마한 비용과 시간을 필요로 하는데 육군의 재건이 끝날 때까지 독일이 기다려줄 리가 없다.
만에 하나 독일군이 영국에 상륙이라도 하는 날에는 영국은 그날로 끝장이었다.
그랬기에 영국은 포위된 병력의 구출을 위해 사력을 다했다.
해군의 모든 함정들이 동원되었고, 민간에도 선박 징발령을 내려 병력 수송에 투입했다.
고기잡이 어선부터 유람선, 레저용 요트까지 물에 뜨고 사람이 탈 수 있는 것이라면 뭐든지 동원되었다.
민간인들도 정부에 적극 협조하여 자신들의 배를 선뜻 내주거나, 직접 배를 몰고 됭케르크로 향했다.
“배다!”
“질서를 지켜 차례대로 승선해라.”
“부상자들 먼저 태워! 부상자들 먼저!”
해변에 배가 도착하면 병사들이 몰려들어 배에 올랐다.
수송선이나 유람선 같이 거대한 배들은 병사들이 군장을 갖춘 채로 탑승해도 별문제가 없었지만, 크기가 작은 낚싯배나 어선 같은 소형 선박의 경우에는 얘기가 달랐다.
한 명의 병사라도 더 태우기 위해 소지품은 모두 버리라는 지시가 내려졌다.
개인 소지품 외에도 소총과 탄약, 철모 같은 장비들조차 거리낌없이 버려졌다.
병사들은 배에 오르기 위해선 그 어떤 것도 내던질 각오가 되어 있었다.
“재장전 완료!”
“쏴!”
배들이 병사들을 실어 나르는 동안 영국 해군 구축함들은 최전선에서 독일군과 교전 중인 아군 지상병력을 지원하기 위해 함포를 발사했다.
구축함보다 더 막강한 화력을 투사할 수 있는 전함과 순양함은 북해와 노르웨이해에서 독일-노르웨이 연합해군과 싸우느라 됭케르크 앞바다에는 구축함들밖에 없었다.
G급 구축함의 QF 4.7인치 Mark.IX 단장포가 불을 뿜자 육지에서 커다란 불기둥이 여러 개 생겨났다.
지상전의 제왕이라 불리우는 전차도 구축함의 포격에는 버티지 못했다.
영국군 참호를 공격하던 4호 전차들이 구축함이 발사한 120mm 포탄에 맞자 발길질에 걷어차인 강아지마냥 튕겨 날아가 전복되었다.
포탄의 직격을 받은 4호 전차는 백색에 가까운 노란 섬광에 삼켜져 완전히 분해되었다.
영국 해군 함정들 외에도 프랑스 해군 구축함들도 동원되어 병력 구출 및 지원 포격을 담당했다.
프랑스 해군 게파르급 구축함에 달린 138mm 함포는 전함을 상대하기에 턱없이 부족한 위력이었지만, 지상의 전차와 보병들에겐 충분히 위협적이었다.
영국, 프랑스 해군 구축함의 포격으로 공격에 애를 먹자 독일군은 즉시 공군을 소환했다.
연락을 받고 출동한 슈투카, He 111 편대가 해변에 나타나자 배에 몰린 병사들의 입에서 비명이 터져나왔다.
“슈투카다!”
슈투카는 이미 연합군 병사들에게 악마와 동의어로 통하고 있었다.
슈투카라는 소를 들은 병사들이 사방으로 흩어졌다.
하지만 많은 병사들이 자리를 뺏기지 않으려고 도망치지 않았다.
폭격이 진행되는 동안에도 병사들은 배에 오르기 위해 안간힘을 썼다.
“4시 방향에 적기입니다!”
“빌어먹을, 어째 잠잠하다 했더니!”
독일 공군의 출현에 대공포병들의 움직임이 바빠졌다. 적기를 내쫓기 위해 대공포가 발사되었으나, 독일 조종사들은 아랑곳 않고 공격을 개시했다.
슈투카가 투하한 첫 포탄은 병사들은 한가득 태우고 출발하던 어선에 명중했다.
폭탄에 명중당한 어선이 산산조각나면서, 한때 사람이었던 고깃조각들이 비오듯이 쏟아져내렸다.
폭발의 충격으로 어선과 요트 두 척이 전복되었다. 배에 올라 안심하던 병사들이 바다에 빠져 허우적거렸다.
급강하하는 슈투카가 투하한 SC1000 폭탄의 직격을 받은 수송선이 거대한 폭발을 일으키며 가라앉았다.
선체가 박살나 가라앉는 배에서 새어 나온 기름이 수면을 표류하는 병사들에게 엉겨 붙었고, 그 기름에 불꽃이 튀어 병사들을 불태웠다.
기름띠에 갇힌 병사들은 사방이 물로 가득한 바다 위에서 산 채로 불타죽었다.
“망할 우리 공군은 대체 어디 있는 거야!”
눈앞에서 수송선이 격침당하는 광경을 목격한 병사들은 분통을 터뜨렸다.
독일기들의 공격을 격퇴하고 배들을 엄호하여 철수작전을 지원해야 하는 영국 공군의 전투기들은 당최 어디에 있길래 코빼기도 보이지 않는 건가?
육군 땅개들과 자신들은 급이 다른 존재라고 거들먹거리고 다니던 조종사들이 정작 필요할 때 보이지 않자 병사들의 분노는 폭발했다.
그들이 경멸해 마지않고, 그리고 애타게 찾는 공군 조종사들은 병사들의 시선이 닫지 않는 상공에서 독일 전투기들과 싸우느라 바빴다.
좋지 않은 기상 탓에 병사들이 그들을 볼 수 없을 뿐, 공군도 최선을 다해 적과 싸우고 있었다.
하지만 상대인 독일 공군이 워낙 막강한 상대였던 탓에 영국 공군의 손실은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로 컸다.
허리케인은 물론이고 최신예 스핏파이어조차 Bf109F와 Fw190 A-3에게 맥없이 격추당하자, 슈투카와 He 111들이 활약할 기회가 더욱 늘어났다.
폭격기들은 둘로 나뉘어 절반은 바다에 떠있는 배들을 공격했고, 절반은 해변에서 배를 타기 위해 줄을 선 연합군 병사들을 공격했다.
배를 노리는 조종사들은 주로 무겁고 느린 수송선들을 1순위로 노렸다.
무장이 대공기관총이 전부인 대형 수송선들은 하늘에서 가해지는 공격에 매우 취약했다.
운명을 직감한 병사들이 배에서 바다로 뛰어내렸다.
잠시 후 우렁찬 폭발음이 고막을 후벼파고, 바다를 진동시켰다.
조금 전까지 수송선이었던 것이 주홍색 화염과 검은 연기를 토해내며 천 명에 가까운 병사들과 함께 바닷속으로 가라앉았다.
영국 해군의 C급 구축함 두 척과 프랑스 해군의 부라스크급 구축함 한 척도 슈투카와 He 111의 공격을 받아 침몰했다.
독일의 유보트들도 공격에 동참해 연합군의 철수를 방해했다.
“1~3번관 발사.”
21형 유보트에서 발사된 기젤라 어뢰가 물살을 헤치며 나아가 목표인 수송선의 하부에 명중하자, 높이 수십 m짜리 물기둥이 솟구쳤다.
“배가 침몰한다!”
“모두 탈출해!”
“부상병들은 어떡하고?!”
“그걸 왜 나한테 물어!”
어뢰를 맞고 가라앉는 배에 탑승한 부상병들은 대부분 살아남지 못했다.
부상병들과 달리 팔과 다리를 자유롭게 움직일 수 있는 병사들의 생존율도 그렇게 좋은 편은 아니었다.
다른 배들도 적기의 공격을 피하느라, 수면 위를 표류하는 병사들을 구출할 여유가 없었다.
그나마 운이 따라주는 병사들은 배의 잔해물에 매달려 구출될 때까지 버틸 수 있었지만, 다수가 힘이 빠져 익사하거나, 폭발에 휘말려 죽거나, 배의 스크류에 빨려들어갔다.
수송선뿐만 아니라 구축함도 유보트의 표적이 되었다.
영국군 120명과 40명의 프랑스군을 태운 G급 구축함이 어뢰를 맞았다.
하필이면 어뢰가 폭발하면서 탄약고를 건드리는 바람에 승조원들은 탈출할 기회조차 얻지 못했다.
주변의 구축함들이 뒤늦게 유보트 사냥에 나섰지만, 유보트들은 이미 구축함들의 추격을 피해 도주한 뒤였다.
됭케르크의 바다는 영국, 프랑스 병사들의 무덤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