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대서양을 향한 질주 (1) >
1940년 5월 17일
프랑스 르카토
“롤랑 병장님.”
“왜.”
“저희 언제까지 대기하는 겁니까?”
“그걸 왜 나한테 묻냐. 나도 몰라.”
신병의 질문에 롤랑 미셸 병장은 괜히 짜증을 냈다.
이틀 전부터 그들이 한 일이라곤 퇴각과 퇴각, 퇴각뿐이었다.
독일군의 진격 속도는 프랑스군의 예상을 훨씬 뛰어넘을 정도로 빨랐다.
출동 명령을 받고 이동할 즈음이면 이미 적군이 전선을 돌파했다는 소식이 들려왔고 여차하는 사이에 후방이 적에게 돌파되어 포위당했다.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독일군에게 포위당한 병력들은 전의를 잃고 백기를 들었다.
조국을 위해 싸우는 것은 물론 중요하고 숭고한 일이나 살아서 집으로 돌아가고 싶다는 욕망은 이기지 못했다.
이미 조국이 전쟁에서 졌다는 소문도 병사들의 투항을 부채질했다.
롤랑이 속한 연대는 불행인지 다행인지 적에게 포위당한 일이 없었다.
공교롭게도 포위망이 닫히려고 할 즈음이면 연대는 아슬아슬한 차이로 포위망 바깥에 있었다.
상부는 연대에게 적을 공격해 포위된 아군을 구출하라는 명령 대신, 어디 어디까지 퇴각하라는 명령을 내렸다.
섣불리 공격을 시도했다가 멀쩡한 병력만 잃는 것이 두렵기도 했지만, 구출 작전을 논의하는 중에 포위된 아군이 항복하는 일이 다반사여서 그런 것이기도 했다.
아무튼 롤랑의 연대는 사흘 동안 제대로 된 전투 한 번도 없이 퇴각만 반복했다.
퇴각이 지겹고 지치는 일이긴 하나, 싸우는 것보다 나았기에 롤랑은 불만이 없었다.
주위의 시선 탓에 차마 입 밖으로 낼 수 없지만 롤랑은 어차피 질 전쟁이라면 이대로 퇴각만 하다가 끝났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는 조국 프랑스를 사랑하는 마음보다 한 명의 인간으로서 살고 싶은 욕망이 더 컸다.
죽어서 사람들에게 영웅 소리를 듣는 것보다 살아서 모두의 기억 속에 잊혀지는 편이 백배, 천배는 더 낫다고 롤랑은 생각했다.
죽으면 그대로 끝인데, 명성을 얻어봤자 무슨 소용인가.
그런데 오늘 새벽에 상부로부터 새 명령이 하달되었다.
홀로 오토바이를 타고 온 전령이 건넨 쪽지에는 ‘현 위치에서 대기하라’는 명령이 적혀 있었다.
진지를 구축하여 적을 격퇴하라는 것도 아니고, 오직 현 위치에서 대기하라는 말뿐.
그 때문에 연대는 새벽부터 무작정 대기 상태에 들어갔다.
적의 기습에 대비하여 대전차포를 방열하고 병사들에게 주변 경계를 맡기긴 했지만, 참호는 파지 않았다. 이전에도 같은 명령이 전달된 적이 여러 번 있었기 때문이다.
명령이 내려올 때마다 땀을 뻘뻘 흘리며 참호를 파던 병사들은 이동 명령이 하달될 때마다 노골적으로 불만을 표출했다.
병사들의 불만에 불안감을 느꼈는지 연대장은 참호를 파라는 명령은 하지 않고 적당한 자리에서 소총을 들고 경계하라는 단편적인 지시만 내렸다.
롤랑은 그래봤자 아침이 되면 다시 이동하라는 명령이 떨어질 것이라고 예상했다.
그런데 아침이 되어도 전령은 나타나지 않았다. 전령은 물론이고 무전기도 여전히 침묵 상태였다.
1초가 1분이 되고, 1분이 10분으로, 10분이 1시간이 되자 롤랑은 슬슬 여유를 잃어갔다.
왜 아직도 전령이 오지 않는 거지? 오다가 길이라도 잃었···을 것 같지는 않고, 적기에게 당한 건가? 아니면 탈영?
롤랑은 차라리 그러길 바랐다. 만약 상부가 내린 대기 명령이 적과 맞서 싸우라는 뜻이라면 그는 전투를 피할 수 없었다.
사격 훈련 때마다 만점을 기록해 명성이 자자했던 롤랑이지만, 그는 사람을 향해 총을 쏠 자신이 없었다. 상대가 그 잔악무도한 독일군이라 해도 되도록 총을 쏘는 일이 없었으면 했다.
죽기 싫다는 욕망만큼이나 같은 사람을 쏜다는 것에 본능적인 거부감이 들었다.
죽기도 싫지만, 손에 피 묻히는 것도 싫다. 이것이 롤랑의 진정한 속마음이었다.
하염없이 대기만 하고 있던 병사들은 저 멀리서 들려오는 기묘한 소리에 대화를 멈췄다.
“이 소리는······.”
“설마?”
틀림없이 무한궤도 구르는 소리였다. 지금 이 소리가 들린다는 것은 전차가 이쪽으로 오고 있다는 소리였다. 병사들의 안색이 하얗게 변했다.
“침착해라. 아군 전차일지도 몰라.”
무한궤도 소리에 동요하는 병사들에게 중년의 상사가 말했다.
그 말대로 퇴각 중인 아군 전차일지도 몰랐다. 아직 소리만 들릴 뿐, 전차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병사들은 설마 하는 심정으로 소리가 들려오는 서쪽 방향을 응시했다. 롤랑도 아군 전차가 내는 소리이길 바라며 서쪽을 바라봤다.
2분 뒤, 모습을 드러낸 전차는 프랑스군이 아니었다.
“이런 씹!”
“보슈다!”
그토록 아군이길 바랬건만, 모습을 드러낸 것은 독일 전차였다. 병사들의 입에서 일제히 탄식과 비명이 쏟아졌다.
“모두 전투 준비!”
나타난 전차는 단 두 대. 헷처-프랑스군은 헷처의 이름이 헷처라는 것을 모른다-와 38(t)로 주위에 보병들은 보이지 않았다.
보병들 없이 달랑 전차 2대뿐이라면, 프랑스군에게도 승산이 있었다.
하지만 장교들은 섣불리 발포 명령을 내리지 못했다.
예의 독일군의 신형 전차는 어떤 공격도 통하지 않는다는 말을 들은 데다 저것들이 적의 전부인지, 아니면 정찰조인지 확신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무작정 전투를 시작했다가 뒤따라오는 적의 본대와 마친다면? 그럴 경우 상상도 할 수 없는 끔찍할 일이 벌어지리라.
그렇다고 적이 코앞까지 다가오는 것을 지켜볼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장교들이 발포를 망설이는 동안, 독일 전차들과의 거리는 빠르게 줄어들었다.
롤랑은 심장이 터질 것만 같았다.
일개 소총 따위로 전차에게 유의미한 타격을 줄 수 없다는 사실을 알고 있음에도, 명령대로 총구로 전차를 겨눴다.
이 얼마나 멍청한 짓이람. 평소의 그였다면 그런 생각을 했을 것이다.
하지만 적과 마주친 지금, 그의 머릿속에는 아무 생각도 없었다.
죽음에 대한 공포와 다가올 전투에 대한 긴장감으로 머리가 하얗게 변색된 느낌이었다.
그런데,
뜻밖의 일이 일어났다.
당장이라도 주포에서 불꽃을 내뿜을 줄 알았던 전차가 돌연 정지하더니, 적 장교가 해치를 열고 나와서 뭐라고 소리쳤다. 당연히 독일어였으므로, 대다수의 병사들은 알아듣지 못했다.
“저놈이 뭐라고 하는 거야?”
“글쎄.”
“우리에게 말하는 것 같은데······.”
숨죽인 채 발포 명령을 기다리던 병사들은 어리둥절했다.
무슨 상황인지 몰라 고개를 갸웃거리던 병사들에게, 독일어를 할 줄 아는 소위가 뇌까리듯이 말했다.
“자기가 장군인데, 우리 중에 독일어를 할 줄 아는 사람이 없냐고 묻고 있군.”
“장군이라고요?”
“아니, 장군이 최전선에 나타난 게 말이 됩니까?”
적군 장교의 정체가 장군이라는 말에 어이가 없어진 롤랑이 물었다.
“그걸 왜 나한테 묻냐. 나도 몰라.”
소위가 롤랑에게 한 말은 롤랑이 신병에게 한 말과 토씨 하나 틀리지 않았다. 퉁명스러운 대답에 무안해진 롤랑이 얼굴을 붉혔다.
소위 말고도 독일어를 할 줄 아는 중위가 나서서 전차에 다가갔다. 독일 장군과 독일어로 대화를 나누는 중위에게 연대장이 소리쳐 물었다.
“뭐라고 말하는 건가?”
중위는 연대장의 물음에 바로 대답하지 않았다. 적 장군과의 대화가 끝나자, 중위가 조금 떨리는 목소리로 대답했다.
“우리가 포위되었다고 합니다.”
포위라는 말에 병사들은 술렁거렸다. 어느 사이에? 퇴각하는 내내 적군의 움직임을 느낀 적이 없는데, 포위당했다니.
병사들도 그렇고 장교들도 자신들이 포위되었다는 말에 큰 충격을 받았다.
“그, 그 말이 사실인가?”
포위라는 말에 당황한 것은 연대장도 다르지 않았다. 중위는 독일 장군이 하는 말을 통역해 모두가 들을 수 있도록 큰소리로 대답했다.
“정 못 미더우면 직접 확인시켜주겠다고 합니다. 다만 쓸데없이 피를 보고 싶지 않으니, 항복을 제안하는 것이라고 합니다.”
저자가 하는 말이 사실이라는 증거는 없었다. 그러나 거짓이라는 증거 역시 없었다.
상식적으로 장군씩이나 되는 자가 아무런 대책 없이 최전선에 나타날 리가 만무했다. 즉, 독일 장군이 한 말은 사실일 가능성이 높았다.
“······이제 어떻게 하면 좋겠나?”
“······.”
연대장이 뒤돌아서 물었다. 장교들은 벙어리마냥 입을 굳게 다문 채 멀뚱멀뚱 서 있었다.
항복 제안을 거절한다면, 독일군은 즉시 공격해올 테고 연대는 궤멸될 것이다.
그보다 적에게 포위당했다는 말을 듣고도 싸움을 택할 병사들이 과연 몇이나 될까?
연대장은 결단에 앞서 주변을 둘러봤다. 모두의 시선이 연대장에게 꽂혀 있었다.
부하들의 얼굴에 드러난 감정을 본 연대장은 한숨을 토했다. 길고 깊은 한숨이었다.
“차마 군인으로서 입에 담을 소리가 아니긴 하지만 어쩔 수 없는 것 같군. 항복하지.”
중위는 독일어로 연대장의 항복 의사를 전달했다. 중위의 말이 끝나자 독일 장군이 웃는 것을 본 롤랑은 둘 사이에서 무슨 대화가 오갔는지 유추할 수 있었다.
긴장이 풀리기 무섭게 시야가 흐려졌다. 아드레날린 과다분비로 불규칙하게 변한 호흡이 다시 정상으로 돌아오면서 생기는 현상이었다.
롤랑은 표정을 숨기기 위해 일부러 안면근육에 힘을 줬다. 여기서 웃음을 보였다간 어떤 시선을 받게 될 줄 몰랐다. 그런데 주변을 둘러보니, 딱히 표정을 숨길 필요가 없는 것 같았다.
모두가 자신과 같은 표정을 하고 있었기에.
***
“어때? 내 말이 맞지 않나?”
“······허.”
“맙소사.”
부하들의 반응에 만족스러워진 롬멜은 의기양양한 미소를 지었다.
“저, 저는······ 이게 실제로 가능한 일일 줄 몰랐습니다.”
“저도 그렇습니다.”
“하핫! 내가 누군가? 나 롬멜이야, 롬멜. 지난 전쟁 때 1개 대대로 5개 연대를 박살냈던 몸이라고!”
처음 프랑스군을 발견했을 때, 부하들은 롬멜에게 퇴각할 것을 권했다.
암만 패잔병이라고 하나, 족히 수천 명이나 되는 적 보병들을 상대로 무작정 돌격하는 것은 자살행위나 다름없었다.
그러나 롬멜은 부하들의 간곡한 요청을 무시한 채 전진을 지시했다.
프랑스군은 이미 사기가 바닥이니 가서 포위되었다고 소리치기만 해도 알아서 투항할 것이라며 말이다.
부하들은 롬멜이 미쳤다고 생각했지만, 롬멜의 말은 사실이었다.
자신들이 포위되었다는 증거도 없는데 프랑스군은 포위되었다는 롬멜의 거짓말에 그대로 속아넘어가 항복을 결심했다.
실체가 불분명한 신화 속에서나 나올법한 일이 현실에서 일어난 것이다.
해가 지기 전까지 롬멜은 프랑스군과 몇 차례 더 조우했고, 그때마다 포위되었다는 협박을 동반한 항복 권유로 프랑스군의 항복을 받아냈다.
사단 본대와 합류했을 무렵, 롬멜의 전차 뒤에는 프랑스군 수천 명이 40여 대의 트럭 안에 타고 있었다.
롬멜의 거짓말 같은 활약은 즉시 제15기갑군단에 보고되었고, 군단장 호트를 거쳐 베를린에까지 보고되었다.
***
1940년 5월 18일
독일 베를린 신총통관저
“역시 롬멜이야. 내가 사람 하나는 제대로 봤다니까.”
호트의 보고서에는 롬멜의 7기갑사단이 거둔 활약상에 대한 상세한 경과가 적혀 있었다.
롬멜 혼자서 전차 2대를 이끌고 적진에 침투해 프랑스군 수천 명을 포로로 잡았다는 보고를 받은 카이텔과 브라우히치는 도저히 믿지 못해 여라 차례 호트에게 연락해 보고서가 사실인지 확인했을 정도다.
“프랑스가 항복하는 즉시 롬멜을 대장으로 진급시킬 생각이오. 장군도 동의하오?”
“도, 동의합니다, 총통 각하.”
카이텔은 내 말에 군말없이 동의했다.
“브라우히치 장군은?”
“······저도 동의합니다.”
브라우히치는 롬멜의 진급이 너무 빠르다며, 내가 그를 제7기갑사단 사단장직에 임명하는 것도 반대했었다.
롬멜이 보병전문가이긴 하나, 기갑에 관해선 문외한이기에 기갑사단을 맡길 수 없다는 이유에서였다.
하지만 자신의 주장과 달리 롬멜이 실전에서 대활약을 펼치자 더 이상 롬멜의 승진에 반대할 명분이 없어진 그는 꿀 먹은 벙어리 신세가 되었다.
나는 롬멜에게 전보로 1급 철십자훈장을 수여하고 동시에 기사십자장 서훈 대상으로 선정되었다고 알렸다.
아군의 진격은 매우 순조롭다.
일각에서 연합군의 함정이 아닌가 하는 추측까지 돌 정도로 진격이 너무 순조로운 탓에 2, 3일 내에 아군은 대서양에 도달할 수 있을 것으로 예측되었다.
느긋한 마음으로 카이텔의 설명을 듣는데 리벤트로프가 다가와 귓속말을 건넸다.
“총통 각하, 영국으로부터 전문이 도착했습니다.”
“그래?”
그의 손에는 영국 정부에서 내게 보낸 전문이 들려 있었다.
“뭐라고 적혀 있던가?”
“최대한 빠른 시일 안으로 만나서 휴전에 대해 논의하길 원한답니다. 회담 장소 선정에 대해선 제3국이라는 조건 하에 우리가 지정하는대로 따르겠다고도 전해왔습니다.”
“과연. 목마른 사람이 우물을 판다더니, 영국이 많이 급한 모양이군.”
프랑스의 패배가 초읽기에 들어가자 영국은 더욱 휴전에 목을 걸었다.
아직 프랑스가 살아있을 때 휴전을 해야 패전이라는 오명에서 조금이나마 멀어질 수 있을 테니 어떻게든 빨리 협상을 시작하고 싶은 게지.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슬슬 협상을 시작하는 것도 나쁘지 않겠지. 저들이 도중에 입장을 바꾸기라도 하면 우리도 곤란해지니까. 회담 장소는 스위스로 하고 날짜는······ 언제가 적당하려나?”
“일주일 뒤가 적당할 것 같습니다.”
“그럼 5월 25일로 하지. 영국에 전하게. 5월 25일 스위스 베른에서 만나자고.”
휴전 조건에 대해선 저녁식사를 마치고 장군들과 함께 논의하기로 했다.
“가만, 카이텔 장군? LSSAH와 교전한 프랑스군이 제4흉갑기병사단이라고 했소?”
“그렇습니다.”
“디트리히와 통화를 해야겠소. 급히 할 말이 생각났거든.”
***
“······그렇습니까? 병사들에게 전하지요. 예, 잘 알겠습니다. 걱정 마십시오, 총통 각하.”
총통과의 통화를 끝낸 디트리히는 자고 있던 병사들을 깨워 소집시켰다.
LSSAH 사단 병사들은 어제 프랑스군과의 전투를 끝내고 후속 보병사단에게 경계를 맡긴 뒤 죽은 듯이 잠을 청했다.
모렐 알약의 효과가 떨어질 즈음이라, 하루 정도는 충분히 휴식을 취해줘야 했다.
“전원 기상!”
“모두 일어나라! 사단장 각하께서 하실 말씀이 있으시다!”
장교들의 호통에 잠에서 깬 SS 병사들은 디트리히 앞에 정렬했다.
잠이 완전히 깨지 않아 몽유병 환자처럼 비틀거리는 병사들에게 디트리히는 ‘총통의 특별 명령’을 하달했다.
“잠자는 깨워서 미안하군. 방금 총통께서 특별 명령을 하달하셨으니 주의깊게 듣도록.”
모렐 알약의 영향으로 좀처럼 눈을 뜨지 못하고 위태롭게 서 있던 병사들은 이어지는 디트리히의 말에 정신이 번쩍 들었다.
“총통께서 샤를 드골이란 자를 찾아내라고 지시하셨다. 계급은 대령에 키가 무척 크고 인중에 콧수염을 기른 녀석이라고 한다. 그자의 시체를 찾아내는 병사는 즉시 제대시켜주겠다.”
“······!?”
수면을 방해받아 짜증을 내던 병사들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바위처럼 짓누르던 졸음과 피로가 씻은 듯이 사라진 듯했다.
제대? 제대라고? 시체 하나만 찾아내면 제대?
도무지 믿을 수 없는 파격제안에 어느 SS 일병이 더듬거리며 물었다.
“그, 그게 사실입니까?!”
“총통께서 직접 지시하신 것이니 의심하지 않아도 된다. 샤를 드골의 시체를 찾아내는 자는 즉시 제대다. 어디 열심히 해보도록.”
제대라는 말 한마디에 병사들은 뒤도 돌아보지 않고 서둘러 전투가 벌어졌던 현장으로 뛰어갔다.
프랑스군의 시체는 매장되지 못하고 여전히 들판에 널브러져 있었다.
이미 부패가 시작되어 썩은내가 진동했지만, 제대라는 말에 눈이 돌아간 병사들에게 악취 따위 알 바 아니었다.
지금 그들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다른 누구보다 먼저 샤를 드골의 시체를 찾아내는 것이었다.
“다 비켜, 시발! 오늘 무슨 일이 있어도 제대하고 만다!”
“따라오지 마! 절로 가, 절로!”
“이놈인가? ······아니네, 젠장.”
장교거나, 인중에 콧수염을 기르고 키가 큰 시체들은 무조건 수색 대상이 되었다.
병사들이 굶주린 하이에나마냥 시체들을 헤집고 다니는 광경을 내심 흐뭇한 표정으로 바라보면서도 디트리히는 의문을 감출 수 없었다.
대체 샤를 드골이란 자가 얼마나 중요한 인물이길래 총통께서 직접 그자의 시체를 찾으라고 지시를 내리신 것일까?
샤를 드골이 누군지 모르는 디트리히 입장에선 아리송한 일이었다.
“드골! 드골은 대체 어디에 있는 거야?!”
수색은 장장 3시간에 걸쳐 진행되었지만, 그 누구도 샤를 드골의 시체를 찾아내지 못했다.
제대에 미친 병사들이 시체들을 파헤치는 동안 식사를 방해받은 까마귀들이 허공을 맴돌며 울어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