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히틀러가 되었다-71화 (71/150)

< 프랑스 침공 (3) >

독일군의 교두보를 공략해 마스강 너머로 몰아내려던 프랑스군의 계획은 신병기 판처파우스트로 무장한 독일군의 저항으로 실패했다.

독일군의 신무기는 판처파우스트뿐만이 아니었다.

마스강의 독일군 교량을 파괴하기 위해 프랑스 공군의 포테즈 630 전폭기 편대가 나섰다.

독일군의 진격을 조금이라도 저지하고 아군의 방어에 보탬이 되기 위해선 한 개라도 더 많은 교량을 폭파시켜야 했다.

그러나 독일군은 바보가 아니었다.

적군이 교량을 1순위로 노릴 것이라 예상하고 교량 일대에 대공포로 도배를 했다.

적기가 나타나자, 독일군의 대공포가 불을 뿜어 거대한 화망을 구성했다.

“2시 방향에 적기다!”

“사격 개시!”

이중에서 가장 큰 활약을 한 것은 이번이 첫 실전 데뷔인 4호 대공전차 쿠겔블리츠였다.

쿠겔블리츠는 보통의 대공포와 달리 완전밀폐식 포탑을 달아 적기의 공격으로부터 병사들을 안전하게 보호할 수 있다는 장점뿐 아니라 화력도 뛰어났다.

포탑의 2연장 MK103 기관포가 불을 뿜자 포테즈 630 1대가 연기를 내뿜으며 강으로 추락했다.

기체에 명중한 기관포탄은 단 두 발뿐이었다.

MK103의 단점이라면 크기가 크고 무거워서 반동도 강하고 연사력도 느리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단 한 발만 맞혀도 어지간한 전투기는 기체가 버티질 못할 정도의 강력한 위력은 이 모든 단점을 커버했다.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격렬한 대공포화에 프랑스 조종사들은 자연스레 겁을 집어먹었다.

격추당할지도 모른다는 공포와 불안감 때문에 예정보다 일찍 폭탄을 투하하거나, 기수를 올리는 조종사들이 태반이었다.

4대의 포테즈 630이 16개의 폭탄을 투하했지만, 교량에 명중하기는커녕 근처까지 간 폭탄은 한 개도 없었다.

강에 빠진 폭탄이 폭발하여 거대한 물기둥이 치솟아 독일군을 향해 물방울을 쏟아낼 때는 모두가 경악하긴 했지만, 그뿐이었다. 목표인 교량에는 그 어떤 피해도 없었다.

편대장이 조종하는 최후의 포테즈 630은 다른 전폭기들보다 훨씬 더 가까이 교량에 접근했다.

지금 이 순간에도 교량은 강을 건너는 독일군의 트럭으로 가득했다.

“소령님! 너무 위험합니다! 빨리 기수를 올려야-”

“입 닥쳐! 눈앞에 표적이 있는데 그냥 간다고? 말도 안 되는 소리!”

트럭 한 대가 강을 건널 때마다 아군 서너 명이 더 죽는다고 생각하니 편대장은 마음이 조급해졌다.

교량을 한 개라도 파괴해야 독일군의 손에 죽을 아군 한 명을 더 살릴 수 있다. 그러한 생각이 그를 극한으로 몰아넣었다.

이쑤시개만 했던 교량이 어느새 팔뚝만큼 거대해졌다.

바로 지금이 적기라고 판단한 편대장이 폭탄을 투하하려는 순간, 30mm 기관포탄 서너 발이 기체에 명중했다.

용감한 편대장이 몰던 포테즈 630은 공중에서 산산조각이 나 강에 떨어졌다.

살아남은 전폭기들은 편대장의 죽음을 뒤로한 채 쓸쓸히 기수를 돌렸다.

교량은 멀쩡했고 독일군의 진격은 계속되고 있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프랑스군 입장에선 뒷목을 잡을만한 사건이 또 한 차례 발생했다.

-여기는 제비. 참새는 응답 바람.

“여기는 참새. 제비, 무슨 일인가?”

-방금 전선 북쪽에 위치한 고지에서 적 포탄의 착탄이 확인되었다. 아무래도 전차 포탄으로 추정된다.

“그, 그게 사실인가?”

-확실하진 않다. 다만 전차포 공격일 가능성에 염두를 둬야 할 것 같다.

이런 시발.

보고를 받은 통신병은 즉시 이 사실을 상부에 보고했다.

착탄한 포탄이 전차 포탄이라는 말은 독일군 기갑부대가 뵐송 코앞까지 왔다는 뜻이었다.

스당에서 엎어지면 코 닿을 거리에 위치한 뵐송 일대를 지키던 55보병사단 소속 295연대는 독일군 기갑부대와 싸울만한 상태가 아니었다.

전차는커녕, 대전차화기조차 몇 대 없는 상태에서 적 기갑부대의 공격을 받는다는 것은 전멸을 의미했다.

고지에 착탄한 포탄이 전차 포탄일지도 모른다는 한 포병 장교의 보고는 어느새 독일군 기갑부대의 대규모 출현 소식으로 와전되었다.

소문은 순식간에 연대 전체로 퍼졌고, 병사부터 장교들까지 모든 연대원들을 패닉으로 몰고 갔다.

“독일 놈들의 전차가 뵐송으로 달려오고 있다고?”

“우린 전차가 한 대도 없잖아?”

“이러다가 우리 전멸하는 거 아냐?”

훈련도 제대로 못 받고, 사기도 낮은 병사들이 적 기갑부대와 맞붙어서 이길 가능성은 제로에 가까웠다.

특히 상대는 폴란드를 4주 만에 제압한 독일군 기갑부대가 아니던가.

그런 괴물들을 상대로 싸우라는 말은 맨주먹으로 호랑이굴에 들어가라는 것도 다름없는 소리였다.

“도망쳐야 하는 거 아냐?”

“하지만 명령이 없잖아?”

“명령은 얼어죽을. 그럼 여기서 다같이 손잡고 뒈질 거냐? 난 갈 거야. 죽더라도, 집에서 죽는 게 훨씬 낫지!”

병사 한 명이 무기를 버리고 도망치자, 그 모습을 지켜보던 다른 병사들도 일제히 무기를 내던지고 진지에서 이탈했다.

탈영하는 동료들을 말리던 이들도 나중에는 무기를 버리고 탈영의 대열에 합류했다.

탈영병 중에는 장교들과 하사관들도 다수 섞여 있었다.

계급만 다를 뿐이지, 그들도 결국엔 병사들과 같은 인간이었다.

남들처럼 똑같이 공포를 느끼고, 살고 싶어하는 인간.

살고 싶다는 원초적인 욕망 앞에서, 조국을 향한 충정심, 군인의 본분 따위는 고려의 대상이 될 수 없었다.

사소한 오해가 만든 소문은 겨우 몇 시간 만에 사단 하나를 통째로 와해시켰다.

방어선을 지키던 병사들이 사라지자 기껏 구축한 진지와 참호들은 아무짝에도 쓸모가 없어졌다.

정작 뵐송에 독일군이 모습을 드러냈을 때는, 55사단이 와해되고 12시간이 지난 뒤였다.

세계 최강 육군이라 자부하던 프랑스군의 어처구니없는 추태였다.

***

“독일군이 오고 있다! 모두 마음 단단히 먹어!”

전령은 독일군의 출현 소식을 전달한 뒤 오토바이를 타고 부리나케 달아났다.

어느새 흙먼지만 남기고 사라진 전령이 떠난 방향을 바라보던 조르주 르벨 중위는 목에 건 십자가에 입을 맞췄다.

그가 사관학교에 입학했을 때 부모님께서 선물로 주신 물건이었다.

르벨은 풋내기 사관생도 시절부터 지금까지 단 한 번도 목걸이를 벗은 적이 없었다.

연병장에서 구를 때나, 식사를 할 때나, 목욕을 할 때조차 그는 늘 목걸이를 하고 다녔다.

그것이 자신을 악운으로부터 지켜준다고 굳게 믿어서였다.

이번에도 이것이 자신을 악운으로부터 지켜주기를.

르벨이 지휘하는 소뮤아 S40 소대는 상부로부터 현 위치를 사수하라는 지령을 받은 상태였다.

보병 한 개 중대도 함께였지만, 프랑스 본토가 아닌 세네갈, 토고, 말리 등지에서 입대한 식민지인들로 사기가 높은 편은 아니었다.

오면서 봤는데 이미 몇 명은 도망칠 궁리를 하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미치겠군. 깜둥이들에게 뒤를 맡겨야 한다니.”

“재수 옴이 붙어도 제대로 붙은 것 같습니다, 중위님.”

르벨의 푸념에 조종수 마르셀 드뷔에르 병장이 고개를 끄덕거렸다.

아무리 같은 군복을 입고, 같은 깃발 아래서 싸운다지만 그들에게 식민지인 병사들은 전우가 아닌 그저 깜둥이일 뿐이었다.

21세기 관점에선 대단히 잘못된 인식이 아닐 수 없지만, 르벨과 마르셀이 인종차별주의자여서 그런 것이 아니라 1940년의 프랑스에선 보편적인 인식이었다.

“듣자하니 히틀러 그놈은 올림픽 때 깜둥이를 불러 따로 밥도 같이 먹었다고 하던데. 당최 이해할 수 없는 놈이야.”

흑백차별이 당연시되던 시대에서 자란 그들에게 히틀러의 행보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기행이었다.

세상에, 다른 것도 아니고 하필이면 깜둥이와 같이 밥을 먹다니. 히틀러 그놈은 자존심도 없단 말인가?

르벨과 같은 생각을 가진 프랑스인들은 히틀러가 제시 오언스와 함께 식사를 한 이유가 같은 야만인으로서 서로 동지애를 느꼈기 때문이라고 곧잘 이야기했다.

정신나간 미친놈 하나 때문에 이 고생을 해야 한다니. 다시 생각해도 어이없는 일이었다.

“전투 전에 마지막으로 한마디 하겠다. 우리가 뚫리면 옹에는 훈족들 손에 넘어가고 만다. 프랑스 대육군의 이름에 누가 되지 않도록 다들 최선을 다해 싸우도록, 이상!”

소대장인 르벨의 전차에는 무전기가 설치되어 있지만, 휘하 전차들에는 무전기가 설치되어 있지 않아 명령을 내리려면 직접 말로 하던가, 수기를 통해서 내리는 수밖에 없었다.

방어전이라 따로 지시를 내릴 필요가 없다는 게 다행이었다.

새 명령이 내려오기 전까지 현 위치만 지키고 있으면 된다. 아주 간단한 지시였다.

지시가 간단한 것과 별개로 그것을 실행할 수 있을지는 다른 문제지만.

르벨은 전투 상황에 대비하여 미리 약실에 75mm 유탄 한 발을 장전했다.

포탑은 S35의 그것보다 더 컸지만, 정작 내부는 더 좁아서 포탄을 장전하는 것조차 쉽지 않았다.

“어떤 멍청이가 설계했는지 몰라도, 그놈은 틀림없이 전차를 타본 적이 없는 놈일 게 분명해. 이렇게 좁아터져서야 어떻게 싸우냐고.”

“정 불편하시면 바꿔드릴까요?”

“되겠냐. 앞이나 잘 봐.”

이윽고 전방에서 엔진음이 들렸다.

무한궤도 구르는 소리와 함께 들려오는 전차의 엔진 소리는 듣는 이로 하여금 온몸에 소름이 돋게 만들었다.

독일군이 오고 있다. 바로 지금, 이곳으로.

르벨은 소대원들에게 자신이 쏘기 전까지 쏘지 말라고 미리 지시를 내려둔 상태였다.

하지만 르벨의 지시는 르벨의 소대원들에게 전파되었을 뿐, 함께한 보병들에겐 전달되지 못했다.

커다란 참나무를 지나 2호 전차 한 대가 맹렬한 속도로 달려왔다.

르벨이 심호흡을 하고 사격 준비를 할 때, 좌우에서 총성이 울렸다. 긴장감에 못이긴 병사가 발포하고 만 것이다.

단 한 발의 총성은 무절제한 일제사격으로 이어졌다.

총성에 놀란 병사들은 반사적으로 방아쇠를 당겼고, 이는 탄약의 낭비로 이어졌다.

언제 보급을 받을 수 있을지 기약이 없는 상황에서 탄약의 낭비는 심각한 문제였다.

“젠장, 저 깜둥이 새끼들이! 대체 뭐 하는 짓거리야?”

르벨은 울분을 터뜨렸다.

적에게 아군이 매복 중이란 사실을 들켰을 뿐만 아니라 귀중한 탄약까지 허투루 낭비하고 말았다.

사격이 시작되자 2호 전차는 잠시 후진했지만, 곧 다시 전진했다.

전차나 대전차포 없이 오직 보병들만 매복한 것이라고 착각한 것이다.

빗발치는 총탄을 죄다 튕겨내며 달려오던 2호 전차는 곧 르벨의 조준선에 잡혔다.

적 전차가 조준경의 십자가 표식에 잡히자, 르벨은 주포를 격발시켰다.

“명중!”

포탄은 정확히 2호 전차의 전면장갑에 명중했다. 르벨은 틀림없이 적이 격파되었으리라 확신했다.

“어?!”

그런데 이게 무슨 일인가. 격파된 줄 알았던 전차는 살아서 움직이고 있었다.

조금 전의 공격으로 주포가 파손되고, 포탑링이 고장나 포탑이 돌아가지 않게 되었지만 차체 양쪽에 달린 무한궤도는 여전히 회전하고 있었다.

그제야 르벨은 자신이 앞서 장전한 포탄이 철갑탄이 아니라 유탄이라는 사실을 떠올렸다.

이 멍청한 놈. 중위씩이나 되서 이등병이나 할 법한 실수를 저지르다니. 그것도 실전에서!

르벨은 스스로에 대한 부끄러움으로 얼굴이 붉게 달아올랐다.

통신수가 가대에서 철갑탄을 빼내 르벨에게 건넸다.

설계상의 문제로 소뮤아 S40은 포탑에 한 사람분의 공간밖에 없어 전차장이 장전까지 도맡아서 해야 했다.

소뮤아 S40보다 포탑 내부가 넓은 소뮤아 S35도 마찬가지였다.

르벨이 장전을 끝냈을 때, 이미 소대의 다른 전차가 발포하여 적을 처리했다.

차체 전면에 큼지막한 구멍이 뚫린 2호 전차는 연기를 토해내며 정지했다.

2호 전차와 38(t) 전차 서너 대가 나타나 공격을 가했지만, 소뮤아 S40들은 여유롭게 튕겨냈다.

구시대적인 설계로 운용에 애로사항이 많다고 욕을 먹어도 두께 47mm 경사장갑의 방어력 하나만큼은 이견이 없었다.

르벨의 전차는 벌서 20mm 기관포탄 수십 발과 37mm 포탄 여섯 발을 얻어맞았는데도 멀쩡했다.

2호와 38(t) 같은 경전차들에게 소뮤아 s40은 무적이나 다름없었다.

“이게 바로 프랑스의 전차다, 보슈(Bosche, 독일인의 멸칭)들아!”

조금 전의 실수를 까맣게 잊은 르벨이 자신감에 차서 소리쳤다. 그는 공격이 먹히지 않자, 후진하는 38(t)를 향해 75mm 포탄을 발사했다.

철갑탄을 정면에서 맞은 38(t)는 모닥불에 던져진 장작마냥 맹렬하게 타올랐다.

전차병 전원이 몰살당한 모양인지 탈출자는 없었다.

생애 첫 전과에 들뜬 르벨은 포탑을 돌려 다음 목표물을 찾았다.

“도망치는군. 겁쟁이 녀석들.”

자신들만으로 상대가 되지 않는다는 것을 깨달은 독일 전차들은 전우들의 잔해를 남겨둔 채 일제히 후진했다. 전투가 끝났다고 생각한 르벨은 함박웃음을 지었다.

하지만 그의 예상과 달리, 전투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 물러난 줄 알았던 독일군은 몇 분 뒤 새로운 무기를 앞세워 재차 돌격해왔다. 프랑스군 입장에선 처음 보는 무기였다.

“저건 뭐죠?”

마르셀 병장이 물었다. 포탑이 없고, 전투실에 포가 고정된 전차였다.

르벨은 포탑이 없는 전차를 전차라고 부를 수 있는지 잘 알지 못했지만, 저것이 독일군의 신무기라는 것쯤은 본능적으로 알 수 있었다.

정체가 무엇이든 간에, 상대가 독일군이라면 결론은 하나다. 일단 격파하고 봐야 한다는 것이다.

“나도 몰라. 생각은 나중에 하고, 지금은 쏘고 보자고.”

르벨은 적의 정면을 겨냥한 뒤 주포를 격발시켰다.

승무원 거주성과 차체 밸런스까지 포기해가며 꾸역꾸역 탑재한 75mm 주포이니, 위력은 확실할 터.

“엇!?”

“뭐야 저놈!”

그러나 르벨의 예상은 이번에도 보기좋게 빗나가고 말았다.

르벨이 발사한 철갑탄은 전면장갑에 닿자 불똥을 튀기며 위를 향해 미끄러졌다.

“저놈, 보기보다 장갑이 두꺼운 모양입니다.”

“그런 것 같군. 보슈 새끼들, 대체 뭘 만든 거야?”

다른 소뮤아 S40이 발포하여 독일군의 신형 전차를 명중시켰지만, 결과는 똑같이 도탄.

38(t) 구축전차 헷처는 날아드는 포탄을 모조리 튕겨내며 묵묵히 전진했다.

수직장갑 120mm에 맞먹는 60mm 경사장갑은 전차에 날아드는 모든 포탄을 튕겨내며 제 몫을 제대로 해내고 있었다.

이윽고 헷처의 포구에서 섬광이 뿜어져 나오자, 소뮤아 S40 한 대가 요란한 폭음을 울리며 격파되었다.

무적일 것만 같았던 47mm 경사장갑도 헷처의 75mm 48구경장 주포 앞에서는 무용지물이었다.

장갑도 두꺼운데다 주포도 강력하다니. 대체 저 괴물의 정체는 무엇이란 말인가?

르벨은 긴장으로 몸이 뻣뻣하게 굳어졌다. 포탄을 쏴봤자 저 괴물에겐 무용지물일 것이란 느낌이 들었다.

설상가상으로 또 한 대의 헷처가 등장했다.

새로 등장한 녀석을 향해서 포탄이 발사되었으나, 장갑 표면에 흠집만 남길 뿐이었다.

헷처는 포탄이 날아온 방향을 향해 차체를 틀었다.

회전포탑이 달린 전차와 다르게 주포가 차체에 고정된 구축전차 특성상 적을 조준하려면 일일이 차체를 돌려야 한다는 번거로움이 있었다.

그러나 숙련된 전차병에게 차체를 틀어서 적을 조준하는 일쯤은 식은 죽 먹기였다.

75mm 철갑탄에 전면을 관통당한 소뮤아 S40가 주포에서 화염줄기를 쏟아냈다.

다른 한 대는 탄약이 유폭을 일으켜 포탑이 차체에서 분리되었다.

허공으로 치솟은 포탑이 땅에 떨어질 때 묵직하고 둔탁한 소리가 났다.

마지막 남은 전차까지 허무하게 격파당하자, 르벨은 완전히 패닉에 빠졌다.

“후, 후진! 후진해, 어서! 빨리!”

“아, 알겠습니다!”

임무고 뭐고 우선은 살아야겠다는 생각밖에 들지 않았다.

마르셀이 전차를 후진시키자, 참호에 남아있던 보병들이 당황한 얼굴로 쳐다봤다.

병사들을 지휘하던 장교가 뭐라고 소리쳤지만, 공포로 정신이 반쯤 나간 르벨에겐 들리지 않았다.

-쿵!

“어억!”

후진하던 전차는 거대한 참나무와 정통으로 충돌했다.

조종수 입장에서 전차는 자동차와 달리 뒤를 전혀 볼 수 없기에 전차장이 뒤를 보며 직접 지시를 내려줘야 했지만 르벨은 그 기본적인 상식조차 잊고 말았다.

충돌로 포탑 내벽에 머리를 부딪힌 르벨은 머리가 깨질 것만 같았다.

운전을 어떻게 하는 것이냐고 소리치려는 순간, 전차에 또 한 번의 충격이 가해졌다.

조금 전의 그것과 비교조차 할 수 없는 거대한 충격이었다.

고열의 화염이 전차 내부를 휩쓸자 한때 인간의 육신을 이루었던 살과 내장은 죽처럼 변해 흘러내렸다.

살타는 고랑내와 화약 냄새가 엉겨 끔찍한 악취를 만들어냈다.

프랑스 전차들을 모두 처리한 헷처들은 참호의 프랑스군을 향해 유탄과 기관총 세례를 퍼부었다.

독일군 보병들을 태운 Sd.Kfz 251 장갑차도 현장에 도착해 공격에 가세했다.

식민지 병사들은 나름 완강하게 저항했지만, 그들이 쏘는 소총과 기관총은 전차와 장갑차에 완전히 무력했다.

전차 포탄도 튕겨내는 헷처에게 총탄을 쏘는 것은 물풍선으로 바위를 깨려고 시도하는 것이나 다름없었다.

장갑차에 거치된 MG40 기관총이 총탄을 퍼붓자 소총을 쏘던 세네갈 병사 두 명이 다진 고깃덩이로 변했다.

분당 1200발의 총탄을 퍼붓는 MG40의 위력 앞에 프랑스군은 고개를 들 수 없었다.

참호 밖으로 조금만 나와도 총알이 날아드는 탓에 도망치고 싶어도 도망칠 수가 없었다.

MG40이 프랑스군을 꼼짝달싹 못하게 만든 사이, 38(t) 화염방사전차 살라만더(Salamander)가 프랑스군의 참호로 다가갔다.

헷처의 차체에 38(t)의 포탑을 개조한 포탑을 올려서 만든 살라만더는 좁은 차체 내부로 인해 연료탱크를 전차 후면에 추가로 장착하고 다녀야 했지만, 최대 90m 거리까지 화염을 발사할 수 있었다.

전차의 발사관에서 화염이 발사되어 참호에 갇힌 프랑스군을 질식시켰다.

운이 나쁜 병사들은 참호 바깥으로 탈출을 시도하다가 화염을 뒤집어쓰곤 온몸이 석탄처럼 새까맣게 타버렸다.

“항복! 항복!”

지치고 겁에 질린 프랑스 병사들이 열심히 항복을 외쳤지만, 전투의 현장에서 그들이 내지르는 항복 소리는 적군의 귀에 닿지 못했다.

살아 움직이는 프랑스군이 한 명도 남지 않을 때까지, 살라만더는 쉬지 않고 화염을 토해냈다.

신화 속에 등장하는, 불을 내뿜는 도마뱀 샐러맨더처럼 살라만더는 쉬지 않고 화염을 발사해 주변을 불바다로 만들었다.

살라만더가 지나간 자리에는 질식해서 죽거나, 불에 타 형체만 겨우 남은 시체들이 즐비했다.

인간이었던 것들이 고열로 살이 녹아내려 뼈만 남거나, 타다만 장작처럼 변해버린 광경은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로 끔찍했다. 지옥의 광경도 이보다는 덜 참혹할 듯싶었다.

그러나 롬멜의 눈에는 전투의 참상은 들어오지 않았다. 도처에 널린 프랑스군의 시체들이 그의 눈에는 승리로 가는 이정표처럼 보였다.

“본부에 전하게. 오늘 안으로 옹에를 점령할 수 있을 것 같다고 말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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