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프랑스 침공 (2) >
프랑스가 독일의 재침공에 대비해 마지노선을 세운 것처럼, 벨기에도 독일과의 전쟁에 대비하여 국경 일대에 요새를 건설했다.
그렇게 만들어진 에방 에말 요새는 작은 마지노선이라는 별명이 붙을 정도로 상당한 완성도를 자랑했다.
위치선정은 물론이고, 뛰어난 방어력에 충실한 무장으로 병력만 충분하다면 독일군의 대대적인 공격을 받는다고 해도 최소 하루 이상은 버틸 수 있으리라 예상되었다.
하지만, 에방 에말 요새에는 벨기에군도 모르는 심각한 문제가 있었다.
“멍청한 벨기에 놈들. 어떻게 이렇게 멍청할 수 있지?”
“이 정도면 그냥 제발 좀 죽여달라고 애원하는 수준 아닙니까?”
“뭐, 덕분에 우리만 편해졌으니 좋은 일 아니겠소?”
바로 요새 건설에 필요한 외주를 독일 회사에 맡기는 바람에 설계도가 진작에 독일로 유출되고 말았다는 것이었다.
때문에 독일은 프랑스 침공 전부터 에방 에말 요새의 약점이 무엇인지, 출입구는 어디고, 어느 곳부터 먼저 공략해야 하는지 미리 다 파악할 수 있었다.
낫질 작전 개시일인 1940년 5월 10일 새벽 4시,
독일 공수부대 팔슈름예거(Fallschirmjäger)를 태운 글라이더들이 에방 에말 요새의 위로 날아들었다.
글라이더에서 뛰어내린 공수부대 병사들이 요새의 지붕 위에 착지하는 동안에도 벨기에군은 독일군의 침공 사실을 전혀 모르고 있었다.
위장을 위해 지붕에 흙과 잡초를 까는 것까지는 좋았지만, 문제는 누구도 지붕에 지뢰를 설치할 생각을 하지 못했다는 것이었다.
이처럼 군사학에 무지한 벨기에군의 실수 덕분에 독일 공수부대원들은 지붕 위를 마음껏 활보할 수 있었다.
요새에 강하한 공수부대원들은 훈련에서 배운 대로 행동했다. 그들은 즉시 요새의 포탑과 벙커부터 집중공략했다.
출입구와 총안구, 환기용 통로 등 구멍이란 구멍에는 폭탄을 쑤셔넣은 뒤, 폭탄을 기폭시키자 벨기에군은 그제서야 자신들이 공격받았다는 사실을 알아차렸다.
뒤늦게 경보가 울리고 요새 내부에 있던 벨기에 병사들은 행동에 나섰지만 이미 조금 전의 폭발로 다수의 사상자가 발생한 뒤였다.
설상가상으로 폭발로 인한 연기로 인해 시야까지 차단되었다.
“연기 때문에 앞이 보이지 않습니다!”
“젠장, 여기는 또 어디야?”
“3번 통로가 막혔다!”
“4번도 마찬가지야!”
기침과 고함, 명령이 어지러이 뒤섞였다.
독일군의 강하를 허용했을 때부터 요새의 운명은 정해진 것이나 다름없었다.
정신을 못 차리는 벨기에군을 보며 독일 병사들은 열심히 웃기 바빴다.
간신히 막히지 않은 출입구를 발견한 벨기에 병사들이 지상으로 나가기 위해 분주히 움직이는 순간, 등에 화염방사기를 짊어진 공수부대원이 나타났다.
“이거나 먹어라, 벨기에 놈들아!”
플라멘베르퍼 35의 화염에 맞은 벨기에군은 문자 그대로 ‘녹아내렸다.’
영화에서 묘사되는 것과 달리, 화염방사기의 고열의 화염에 맞은 병사는 비명을 지를 틈도 없이 즉사했다. 순식간에 살타는 누린내가 복도에 진동했다.
못해도 하루는 버틸 수 있으리라고 여겨졌던 에방 에말 요새가 완전히 무력화되기까지 걸린 시간은 3시간 남짓.
11일, 국경을 넘어 벨기에로 진군한 독일군 본대에 의해 요새는 완전히 점령되었다.
에방 에말 요새가 허무하게 적의 손에 떨어지자 벨기에군은 큰 충격을 받았다.
하지만 더욱 큰 문제는 에방 에말 요새는 독일군의 주목표가 아니라는 것이었다.
에방 에말 요새 점령은 어디까지나 연합군의 눈을 속이기 위한 양동작전.
독일군의 주공(主攻)은 아르덴 숲에서 스당으로 이어지는 축선에서 진행되고 있었다.
***
벨기에와 네덜란드 방면에서의 공세 임무를 맡은 B 집단군의 역할은 어디까지나 조공(助攻)이었지만, 막대한 병력과 장비가 할당된 덕에 벨기에-네덜란드군의 방어선을 분쇄하며 쾌속으로 진군, 어느새 벨기에의 장불루(Gembloux)에 도달하게 되었다.
“무슨 일이 있어도 장불루를 사수해야 해. 그래야 우리는 이 전쟁에서 승기를 잡을 수 있을 걸세.”
“걱정 붙들어 매십시오. 프리우 중장이라면 틀림없이 해낼 수 있을 겁니다.”
B 집단군이 장불루에 도달하자 프랑스군은 즉시 요격에 나섰다.
아직까지 독일군의 의도를 파악하지 못한 프랑스군은 B 집단군이 독일군의 주공이라 착각하곤 이를 막기 위해 프랑스군 중에서 정예부대로 손꼽히는 르네 프리우 중장의 제1군을 투입했다.
프랑스군과 B 집단군이 장불루에서 격돌하는 사이, 주공을 맡은 A 집단군은 스당을 향해 돌진했다.
5월 13일 오전 8시, 스당 돌파를 위한 독일군의 공격이 시작되었다.
스당 방어를 맡은 프랑스군 사단들 중에서 핵심은 바로 제55보병사단이었는데, 사단 자체는 전시에 소집된 예비역으로 구성된 2선급 사단이었지만 문제는 포병이었다.
55보병사단의 포병대가 건재한 이상, 독일군의 마스 강 도하는 사실상 불가능했다.
적 포병대가 멀쩡한 상황에서 섣불리 강을 도하하려고 시도했다간, 곧장 머리 위로 포탄이 비오듯이 쏟아질 터였다.
독일군은 즉시 공군을 호출했다.
전차포 공격이 먹히지 않는 거리에 위치한 적 포병대를 해치우려면, 공군 외엔 방법이 없었다.
도합 750여 대에 달하는 Hs123, Ju87 슈투카와 He 111, Ju88 폭격기들이 활주로에서 이륙했다.
잠시 후, 폭격기들은 프랑스군 55사단의 머리 위에 나타났다.
“맙소사, 저게 대체 몇 대야?”
하늘을 새까맣게 뒤덮은 독일 폭격기들을 본 프랑스군들은 얼굴이 새하얗게 질렸다.
그들의 눈에는 독일군이 보유한 모든 폭격기들을 총동원한 것처럼 보였다.
공습경보가 울리기도 전에 모두가 너 나 할 거 없이 방공호와 참호를 향해 달려갔다.
“내가 먼저야! 내가 먼저 왔다고!”
“저리 비켜, 이 새꺄!”
“질서를 지켜라! 한 명씩 차례대로 들어가라고!”
공황상태에 빠진 병사들은 질서를 지키라는 장교들의 명령조차 무시하고, 먼저 방공호로 들어가기 위해 서로 다퉜다. 죽음의 위기 앞에서는 계급이고 규율이고 뭐고 없었다.
오직 생존을 향한 처절한 몸부림만 있을 뿐.
그나마 다행인 것은 폭격이 시작되기 전에 대부분 방공호와 참호로 대피하는데 성공했다는 것이다.
하지만, 병사들은 피할 수 있어도 지상에 배치된 무기들은 아니었다. 특히 크고 무거운 대포들은 더더욱 그랬다.
“폭탄 투하!”
“표적을 정확하게 노려라. 폭탄 한 발이 빗나갈수록 아군 10명이 더 죽는다.”
병사들이 방공호로 대피하면서 지상에 방치된 화포들을 향해 폭탄이 투하되었다.
“밀어!”
“당겨!”
“뒤로!”
폭격기들이 프랑스군 진지를 두드리는 동안, 포병과 더불어 육군 최악의 병과로 손꼽히는 공병들이 악을 쓰며 부교를 만들었다.
무게 수백 kg에 달하는 육중한 쇳덩어리들을 들고 나르느라 공병들은 굵은 땀방울을 흘렀다.
부교가 다 완성되기 전까지 그들에게 휴식이란 존재하지 않았다.
부교가 있어야 보병들과 전차들이 강을 건널 수 있는데, 휴식시간이 웬 말인가.
악을 써가며 부교를 만드는 공병들과 반대로 간단한 조작 몇 번만으로 임무를 수행하는 이들도 있었다.
4호 교량전차의 전차병들이 바로 그 주인공으로, 전차포가 탑재된 회전포탑 대신 거대한 교량이 전투실 상부에 부착된 전차를 몰고 강으로 다가가 교량을 내려놓기만 하면 끝이었다.
“누구는 땀으로 샤워하는 중인데, 저놈들은 겨우 5분 만에 우리가 몇 시간 동안 할 일을 해치워버리네······.”
“이럴 줄 알았다면 나도 전차병으로 갈 걸 그랬어. 젠장할.”
“거기, 잡담이 나오나? 빨리 안 움직여!?”
공병들의 부러움과 질시 섞인 시선을 받으며 교량전차의 전차병들은 전차를 후진시켰다.
순식간에 다리 하나가 만들어지자, 대기하던 보병들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보병들과 경전차들이 먼저 교량을 건너고 무거운 대전차포를 끄는 하프트랙들이 두 번째로 교량을 건넜다.
공병들의 부교가 완성되자 그곳을 통해서도 보병들이 강을 건넜다.
시간이 흐를수록 마스 강을 가로지르는 다리들이 하나둘씩 우후죽순으로 생겨났다.
독일군이 강을 건너는 사이, 1시간 30분에 걸친 폭격으로 프랑스군 55사단 포병대는 사실상 궤멸되었다.
폭격이 끝나 방공호에서 나온 프랑스 병사들이 본 것은 폭격으로 고철더미가 된 대포들과 강을 건너 진격해오는 독일군의 모습이었다.
“독일군이다!”
“독일군이 온다!”
“모두 도망쳐!”
믿었던 포병대는 박살이 났고 설상가상으로 독일군이 강을 도하하자, 훈련이 부족했던 55사단 병사들은 금방 공황상태에 빠졌다.
심지어는 폭격으로 인해 모든 통신선이 절단되어 타 부대와 연락을 주고받을 수조차 없었다.
“도망치지 마라! 겁쟁이들아!”
“맞서싸워! 너희들이 태어나고 자란 나라란 말이야!”
장교들이 나서서 병사들을 진정시켜보려고 했지만 겁에 질려 도망칠 생각밖에 없는 병사들에게 명령은 먹히지 않았다.
전쟁 발발 사흘만에 프랑스군은 서서히 붕괴하고 있었다.
***
“날씨 한 번 기가 막히는군. 딱 소풍 나가기 좋은 날씨야.”
지상을 향해 내리쬐는 햇살을 온몸으로 받으며, 에르빈 롬멜 중장은 담배를 꺼내 입에 물었다. 대기하던 부관이 즉각 담배에 불을 붙여주었다.
따사로운 햇살을 받으며 피우는 담배의 맛은 정말이지 기가 막혔다.
특히 방금 막 휘하 부대가 마스강을 도하하는데 성공했다는 소식을 들어서 그런지 더욱 맛이 좋았다.
융커 출신이 절대 다수인 독일 장교들 중에, 평범한 중산층 가정 출신인 롬멜은 출신 때문에 젊어서부터 적잖은 차별과 냉대를 받았다.
“세상 참 많이 좋아졌다. 평민이 장교가 되고 말이야. 나 참, 어이가 없어서.”
“평민 주제에 귀족 흉내나 내기는.”
선후배는 물론이고 입대일이 같은 동기들끼리도 출신별로 나뉘어 차별하기 일쑤였다.
생도들간의 다툼을 막고 이를 중재해야 할 교관들조차 생도들 간의 갈등을 묵인하거나 조장하는 데 가담했다.
1차대전에 참전한 롬멜은 카포레토 전투에서 1개 대대의 병력으로 이탈리아군 5개 연대를 격파하여 포로 9천 명을 잡는 대활약을 펼쳐 유명인사가 되었다.
그러나 평민 출신 장교라는 이유로 본래 그에게 수여되었어야 할 푸르 르 메리트 훈장은 다른 귀족 장교가 수여받았다.
나중엔 그도 푸르 르 메리트 훈장을 수여받았지만, 이때의 굴욕을 결코 잊지 않았다. 잊을 수가 없었다.
평민 출신이라는 이유로 차별을 당해오던 롬멜에게 같은 평민 출신인 히틀러는 더할나위 없이 반가운 존재였다.
히틀러도 롬멜을 높게 평가해 틈이 날 때마다 그를 진급시켰다.
급기야 히틀러는 롬멜을 대장으로 진급시키는 것까지 고려했지만, 룬트슈테트를 비롯한 국방군 원로들의 결사반대로 결국 이루지 못했다.
지금도 충분히 진급이 빠른데 대장은 너무 나갔다는 것이었다.
비록 대장 진급은 무산되었지만, 히틀러는 롬멜을 제7기갑사단 사단장으로 임명하고 각종 신형 장비를 우선적으로 수령할 수 있는 특권을 주었다.
롬멜은 자신을 믿고 중책을 맡긴 히틀러의 기대에 보답하고, 자신의 명성을 높이기 위해 날마다 훈련과 기갑 운용 교리 연구에 몰입했다.
보병 분야에선 전문가였어도 기갑병과에는 문외한이나 다름없던 롬멜이었지만, 한 번 결심한 목표는 반드시 해내고 마는 그에게 불가능이란 없었다.
마침내 서부전선이 시작되자 오랫동안 칼을 갈아왔던 롬멜은 마음껏 날뛸 수 있는 기회를 얻었다.
그가 사단장으로 있는 제7기갑사단은 헤르만 호트 상급대장의 제15기갑군단의 최선봉에 서서, 마스강을 도하하는 임무를 부여받았다.
롬멜은 직접 수송대를 편성하고 휘하 장교들을 닦달해 도하작전을 수립했다.
사단장이 직접 발로 뛰자, 그 밑에 있는 장교들 역시 발바닥에 불이 날 정도로 뛰어다닐 수밖에 없었다.
각고의 노력 끝에 제 7기갑사단은 구데리안의 제19기갑군단보다 먼저 마스강을 도하하는데 성공했다.
“서둘러라, 제군들! 해가 지기 전까지 옹에를 손에 넣어야 한다!”
하지만 롬멜은 여기서 만족하지 않았다.
마스강 도하가 끝나기 무섭게 그는 다음 목표인 옹에를 향해 진격했다.
가증스러운 융커들의 코를 납작하게 만들어주기 위해선 큰 전과가 필요했다.
큰 전과를 세우려면 남들보다 더 빨리, 더 멀리 진격해야 한다.
38(t) 지휘전차에 탑승해 전선으로 달려가는 병사들의 행렬을 지켜보던 롬멜은 이내 조종수인 상사에게 지시를 내렸다.
“상사, 우리도 출발하지.”
“잘 못 들었습니다?”
“우리도 출발하자고. 사단장이 되어서 후방에만 있을 수 없지 않은가. 직접 모범을 보여야지.”
“예에?”
뜬금없는 명령으로 표정이 얼어붙은 승무원들을 돌아보며, 롬멜은 뭐가 문제인지 몰라 어깨를 으쓱거렸다.
“왜 그렇게 놀라나? 설마 군인이 되어가지고 겁이 난다고 말하려는 건 아니겠지?”
“그, 그건 아닙니다만······.”
정곡을 찔려 말을 더듬는 부하들에게, 롬멜은 사람 좋은 미소를 지어 보였다.
부하들 입장에선 저승사자가 웃는 것처럼 보였지만.
“두 번 말하지 않겠네. 얼른 출발하지. 승리가 우리를 부르고 있네!”
***
롬멜의 7기갑사단이 마스강을 도하한 지 얼마 되지 않아 구데리안이 지휘하는 제19기갑군단 소속 1기갑사단도 마스강을 도하했다.
허나 아직 프랑스군에게 기회가 없는 것은 아니었다.
비록 공습으로 큰 피해를 입었다곤 하나 프랑스군의 방어시설들은 대부분 건재했으며, 병력과 장비도 충분했다.
“중대, 전진!”
이제 막 스당에 발을 디딘 독일군을 향해 프랑스군의 호치키스 H39 전차들이 달려들었다.
앞으로 진격하려는 독일군과 적들을 다시 마스강 너머로 쫓아내려는 프랑스군 사이에서 치열한 전투가 벌어졌다.
“11시 방향에 프랑스 전차, 철갑탄!”
“장전 완료!”
35(t)의 37mm 주포가 불을 뿜어 프랑스 전차의 전면에 철갑탄을 명중시켰지만, 포탄은 노란 꼬리를 끌며 도탄되었다.
반면 호치키스 H39의 주포가 불을 뿜자 35(t)의 전면장갑에는 구멍이 뚫렸다.
장갑을 관통당한 체코제 경전차에서 부상당한 전차병들이 기어나왔다.
“좋아, 이대로 몰아붙여!”
체코제 35(t) 전차와 호치키스 H39의 화력은 거의 비등한 수준이지만, 방어력은 장갑이 조금 더 두꺼운 호치키스가 더 좋았다.
자신감에 찬 프랑스 전차병들은 그대로 속도를 올려 독일군을 향해 돌격했다.
연기를 내뿜는 35(t)를 지나 돌격하던 호치키스 H39가 별안간 불길에 휩싸였다. 측면에서 날아든 무언가에 맞은 것이다.
“4호차가 당했습니다, 대위님!”
“뭐지?! 대전차포인가?”
정면은 몰라도 장갑이 얇은 측면을 노린다면 37mm 포로도 호치키스를 격파할 수 있었다.
하지만 프랑스 전차병들의 예상과 달리, 전차를 격파한 것은 대전차포가 아니었다. 그보다 더 작고, 가벼운 무기였다.
별안간 또 한 대의 H39가 적탄에 피격되어 폭발했다. 이번에는 측면이 아니라 정면을 당했다.
2대의 전차가 추가로 격파당한 후에야 프랑스 전차병들은 대전차포가 아닌 전혀 새로운 종류의 무기에 당했다는 사실을 알아차렸다.
관측창을 통해 발견한 적 보병들이 생전 처음 보는 요상한 무기를 들고 다니는 것이 보였기 때문이다. 쇠파이프 끝에 포탄처럼 생긴 물건이 달린 무기였다.
“저 장난감처럼 생긴 건 대체 뭐야?”
프랑스군은 판처파우스트에 대해 알지 못했다. 들어본 적도 없을뿐더러, 그와 비슷한 무기 자체가 프랑스군에겐 존재하지 않아서였다.
호치키스 H39를 발견한 독일군은 바닥에 엎드린 뒤 판처파우스트를 조준했다.
버튼을 누르자, 발사관 끝에 달린 탄두가 발사되어 적 전차를 향해 날아갔다.
“아니!?”
140mm나 되는 관통력 덕분에 탄두는 호치키스 H39 두 대를 연달아 관통했다.
측면을 관통당한 두 전차는 잇달아 폭발하며 검은 연기를 온몸으로 발산했다.
직접 보고도 믿을 수 없는 광경이었다.
전차 두 대가 거의 동시에 관통당하다니. 독일군이 가진 저 요상한 무기의 이름이 무엇인지 몰라도, 그 위력이 가히 엄청나다는 사실쯤은 단번에 알 수 있었다.
회전포탑에 달린 공축기관총이 불을 뿜었지만, 판처파우스트를 든 독일 병사는 잽싸게 몸을 피한 뒤였다.
또 한 대의 H39가 판처파우스트에 장갑을 관통당해 격파되자 조금 전까지 자신감에 차 돌격을 외치던 프랑스군 전차장은 공포에 휩싸였다.
“후진, 후진해! 일단 후퇴한다! 여기 있다간 저놈들한테 당해!”
“아, 알겠습니다!”
덩달아 당황한 조종수가 서둘러 후진기어를 넣었다.
시야가 제한되는 전차들만으론 신형 대전차화기로 무장한 독일군 보병들에게 사냥당할 위험이 있었다.
일단 후퇴해서 재정비한 뒤, 보병들을 이끌고 다시 공격하는 방법밖에 없었다.
후진하는 H39의 측면에서 35(t) 한 대가 나타나 포탑을 회전시켰다.
적 보병들에게 너무 신경 쓴 나머지, 본래의 적을 망각하고 말았다. 자신의 실수를 깨달은 전차장은 황급히 포탑을 돌렸다.
“젠장, 적이다! 측면에 적이-”
그가 포탑을 반쯤 돌리기도 전에, 독일군 전차병이 먼저 주포에 불을 당겼다.
차체 측면에 구멍이 뚫린 호치키스 H39는 그대로 침묵했다. 시간이 지나도, 전차 밖으로 나오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