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침 해가 뜨기 전에 (8) >
1940년 4월 20일
덴마크 코펜하겐 아말리엔보르 궁전
우리의 파스타 친구들은 이번에도 내 기대를 저버리지 않았다.
이탈리아군의 공격은 국방군 산악사단에 의해 막혔고 공습에 나섰던 이탈리아 폭격기들은 죄다 격추되었다.
국경 인근 도시들에서 주민들을 대피시키는 작업도 차질없이 진행 중이고.
카를 에글제어 왈, 4개 사단이 아니라 2개 사단만으로도 충분히 막을 수 있고 공군의 지원만 받을 수 있으면 이탈리아 본토 침공도 가능할 것 같단다.
무솔리니가 먼저 선빵을 때린 이상, 이탈리아도 제대로 손봐줄 생각이지만 당장은 아니다.
우선 프랑스부터 먼저 손봐줘야지. 이탈리아는 어디까지나 그다음이다.
이탈리아의 선전포고로 중단되었던 회담은 재개되었다.
이번에도 크리스티안 10세는 Bf109, 슈투카 도합 60대를 요구했고 나는 인내심을 가지고 지금 독일 공군의 상태가 어떤지, 그리고 덴마크 공군이 이것들을 제대로 굴리려면 얼마나 많은 비용과 시간이 드는지 천천히 설명해야만 했다.
길고 지루한 협상 끝에 나는 덴마크에게 Bf109 30대와 피젤러 슈토르히 정찰기 10대만 팔기로 합의했다.
우리가 신형 무기를 팔아주는 대가로 덴마크는 국방군을 위해 항구와 공군 기지의 무제한 사용권을 제공했고 독일의 요청이 있을 경우 덴마크군을 파견하겠다는 국왕의 확답까지 받아냈다.
“고맙소이다, 총통. 덕분에 덴마크와 독일의 관계는 더욱 돈독해졌소이다. 이 나라의 국왕으로서 진심으로 감사를 표하는 바요.”
“별말씀을. 공동의 적을 둔 동맹국의 수장으로서 당연한 일을 했을 뿐입니다.”
회담이 만족스럽게 끝나 기분이 좋아진 국왕은 내 손을 잡고 흔들었다.
“참, 오늘이 총통의 생일이라면서요? 축하드리오.”
그러고보니 오늘은 ‘이 몸’의 생일이었다.
크리스티안 10세는 생일을 맞이한 나를 위해 성대한 파티를 열어주었다.
그런데 솔직히 말해서 음식은 딱히 내 입맛에 맞지 않았다.
총통이 된 뒤로 원하는 요리를 양껏 먹을 수 있게 되어 입맛이 고급이 된 것도 있지만, 원래 북유럽 요리가 건강은 몰라도 미식과는 거리가 조금 멀었다.
“덴마크 요리가 입맛에 맞으시려나 잘 모르겠습니다, 허허.”
“하하하, 이런 진수성찬이 입에 안 맞을 리 있겠습니까?”
말은 그렇게 했어도 솔직히 입맛에 맞는 요리는 손에 꼽을 정도였다.
겉으로 보기엔 그럴싸해 보이는 것들도 입에 넣으니 어딘가 맛이 이상했다.
맛이 없는 건 아닌데, 그렇다고 맛있다고 부르기에도 애매한 맛이었다.
무슨 소린지 모르겠다고? 직접 먹어보면 알 거다. 내 표현이 그나마 가장 정확하다는 것을.
베이컨은 너무 바짝 구워서 과자를 먹는 느낌이었고 연어는 맛이 좋지만 슬라임마냥 흐물거렸으며, 가자미 튀김은 레몬즙을 지나칠 정도로 많이 뿌려서 신맛이 났다. 스테이크는 또 왜 이렇게 질긴지.
디저트로 나온 뢰드그뢰드 메드 플뢰데(라즈베리로 만든 무른 푸딩에 연유나 생크림을 올린 덴마크 디저트)는 지나치게 달아서 혀가 아릴 정도였는데, 원본 히틀러라면 좋아했겠지만 내 입맛엔 영 아니었다.
유일하게 만족스럽게 먹은 음식이 버터 쿠키였는데, 아주 고급스러운 버터링 맛이 나서 나중에는 그것들만 집어먹었다.
“히틀러 총통? 아까 전부터 그것들만 드시고 계신 것 같은데, 생각보다 단 것을 좋아하시는 모양이오.”
“요즘 나이를 먹어서 그런지 달달한 게 많이 당겨서 말이죠.”
음식이 입에 잘 안 맞아서라곤 차마 말할 수 없었다.
차려준 성의가 있는데 대놓고 그런 소리를 해봐라. 누가 들어도 기분이 나쁘겠지.
그런데 이 할배가 쓸데없이 오지랖을 부리는 게 아닌가.
“그렇소이까? 진작 말하시지. 뢰드그뢰드 메드 플뢰데 좀 더 드시오. 달달한 게, 입맛에 아주 딱일거요.”
“고, 고맙습니다······.”
빌어먹을.
조금 더 그럴듯한 변명을 생각해냈어야 했는데.
***
덴마크에서 나름대로 융숭한 대접을 받고 돌아온 나는 곧바로 노르웨이, 스웨덴 대사와 연달아 회담을 가졌다.
당연하게도 두 나라 모두 독일제 병기로 자국군을 무장시키길 원했다.
노르웨이는 덴마크보다 덩치는 크지만, 무장 상태는 훨씬 형편없었다.
보유 중인 전투기는 아이러니하게도 영국에서 만들어진 글로스터 글래디에이터와 미제 P-36 호크 등이 전부에 전차는 란츠베르크 L-120 릭스탄켄(Rikstanken)이라고 프로토타입 1대가 끝이다.
덴마크, 노르웨이 친구들과 달리 스웨덴은 체코제 전차들을 개량한 자국산 전차들로 구성된 제대로 된 기갑부대도 있고 미제 P-35와 이탈리아제 Re.2000 전투기를 주력으로 굴리는 등 무장상태가 가장 양호한 편이었다.
스웨덴도 영국과 전쟁 중이긴 하나 위치상 전투가 벌어질 일이 거의 없다고 판단되었기에 스웨덴의 요청은 나중으로 미뤘다.
우선 영프군과 치고 박는 중인 노르웨이의 말부터 먼저 들어보기로 했다.
노르웨이 협상단의 요청도 덴마크와 비슷했다.
4호 전차와 Bf109, 슈투카 수십 대. 심지어 전함과 구축함까지.
당연히 국방군에서 강력한 반대의견이 나왔다.
“여름에 있을 프랑스와의 전쟁을 위해선 더 이상의 지출은 곤란합니다. 이미 덴마크에도 Bf109를 30대나 팔기로 했지 않습니까?”
“노르웨이 지형상 저들이 원하는 대규모의 기갑부대는 필요하지 않습니다! 4호 전차보단 경전차와 정찰장갑차만 있으면 됩니다.”
괴링과 구데리안은 내게 노르웨이의 요청을 거절해야 하는 이유에 대해서 열변을 토했다. 특히 해군의 반대가 극심했다.
“절대, 저얼대 안됩니다, 총통 각하! 당장 배가 부족해서 항구에서 놀고 있는 수병들만 수천 명이나 되는데, 배를 팔자니요!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육군, 공군보다 전력 유지에 혈안이 된 레더는 목에 핏대를 세우며 결사반대했다.
내가 애시당초 노르웨이에 배를 팔 생각이 없었다고 누누이 강조를 해도 레더의 흥분은 가라앉을 줄 몰랐다.
“······해서, 귀국의 요청을 들어주는 것은 힘들 것 같소. 미안하오.”
“그렇습니까······.”
육군과 공군을 간신히 설득해서 1호, 2호 전차와 정찰장갑차 십수 대, Bf109 20대만 우선 팔기로 했다. 추가 구입에 관해선 추후에 논의하기로 했고.
노르웨이 협상단은 아쉬운 기색이 가득했다.
미안하지만 어쩌겠냐. 우리 코도 석자인데. 일단 프랑스부터 먼저 꺾고 생각해야지.
“참 난감한 일이오. 우리에게 잔뜩 기대를 걸고 온 사람들의 요청을 딱 잘라 거절한다는 게.”
“어쩌겠습니까? 무기와 자원은 한정되어 있는데, 상대해야 할 적은 많으니 어쩔 수 없는 일입니다. 일단 우리 일부터 먼저 처리하는 게 급선무지요.”
에리히 폰 만슈타인의 말이었다.
***
2차대전 당시의 모든 장군들 중에서 가장 뛰어난 실력을 가졌다고 평가받는 희대의 명장 에리히 폰 만슈타인은 1887년 프로이센의 명문 귀족 집안에서 태어났다.
남들보다 머리가 좋고 눈치도 빠르며, 상관들의 비위를 맞춰주는 능력도 탁월했던 만슈타인은 사관학교 동기들 중에서도 유독 진급이 빨랐다.
힌덴부르크의 사망 후 총통의 직위에 오른 히틀러는 만슈타인을 적극적으로 기용했다.
1934년, 대령으로 진급한 지 정확히 1년째 되는 날에 그는 소장으로 진급했다.
1936년에 그는 중장으로 진급했고, 주데텐란트 위기 때는 대장으로 진급했으며, 폴란드 침공이 마무리된 직후에는 절친인 구데리안과 함께 상급대장에 임명되었다.
빨라도 너무 빠른 진급이었기에 주변의 시샘은 물론이고 만슈타인 본인조차 어리둥절할 정도였다.
심지어 그는 2차 장검으로 밤으로 숙청당한 베크와 가까운 사이였음에도 불구하고 만슈타인을 향한 히틀러의 신뢰는 변함이 없었다.
만슈타인이 어깨에 상급대장 견장을 달던 날, 히틀러는 그를 자신의 집무실로 불렀다. 그리곤 이렇게 말했다.
“만슈타인 장군, 장군께 내 긴밀히 부탁할 게 하나 있소.”
히틀러는 만슈타인에게 프랑스 침공작전의 수립을 명령했다.
만슈타인은 즉시 구데리안과 머리를 맞대고 프랑스 침공계획을 구상했다.
1939년 10월에 수립된 황색 작전은 1차대전 독일의 프랑스 침공계획, 슐리펜 계획의 현대화 버전이었는데 히틀러는 작전 구상이 너무 낡았다며 바로 폐기시켜버렸다.
그리곤 만슈타인에게 새로운 작전을 세울 것을 지시한 것이었다.
히틀러처럼 황색 작전에 불만이 많았던 만슈타인은 황색 작전과는 차원이 다른, 자신만의 기발한 작전을 구상했다.
낫질 작전이라 이름 붙여진 만슈타인의 계획은 기갑 전력을 전차의 통행이 불가능하다고 판명된 아르덴 숲 방향으로 집중시켜 스당 지방을 급속으로 돌파, 연합군의 반격을 저지하고 영프군의 주력을 역으로 포위, 섬멸하자는 것이었다.
이를 위해선 기갑부대와 보병, 그리고 공군의 박자가 제대로 맞아야 했다.
만슈타인이 세운 낫질 작전은 즉각 큰 반향을 가져왔다.
룬트슈테트처럼 낫질 작전을 적극적으로 지지하는 이들도 많았지만, 육군 총사령관 브라우히치를 비롯하여 수많은 장군들이 너무 무모하고 위험천만한 계획이라며 반대의사를 표했다.
그러나 히틀러는 단호했다.
너무 위험한 도박이라는 장군들의 지적에 히틀러는 눈 하나 깜빡이지 않고 차분한 태도로 말했다.
“정 그렇게 불안하면 만슈타인 장군 대신 나를 믿으시오. 만슈타인을 믿는 나를 믿으란 말이오.”
많은 논란에도 불구하고 낫질 작전은 끝내 히틀러에 의해 최종승인되었다.
작전 예정일은 5월 10일.
작전 개시일까지 3주도 채 남지 않았기에 만슈타인은 매일같이 야근으로 밤을 보내며 작전 수립에 심혈을 기울이고 있었다.
“벌써 저녁 7시로군. 밥이나 먹고 합시다.”
“아주 현명한 판단이십니다, 총통 각하.”
기발한 발상 및 도전적인 정신의 소유와는 별개로 사람 자체는 전형적인 융커였던 만슈타인은 처음 히틀러와 나치당이 정치판에 등장했을 때 별 관심도 주지 않았다.
오히려 나치당을 애국자 흉내나 내는 선동가들의 모임이라고 깔보기까지 했다.
허나 융커들이 하찮게 여겼던 나치당은 독일 제1당이 되었고, 당수인 히틀러는 독일의 수장이 되었다.
거기다 히틀러가 무슨 이유에서인지 그를 적극적으로 기용하자 만슈타인도 이전의 태도를 버리고 나치당의 정책에 협조하며 히틀러에게 열심히 아부했다.
“총통 각하의 천거가 아니었더라면, 지금쯤 저어기 이름 모를 군단에 처박혀 허구한 날 술이나 퍼마시고 있었을 겁니다. 여기까지 오게 된 것도 다 총통 각하 덕분입니다.”
식전주를 마시며 만슈타인은 오늘도 열심히 총통이 좋아할만한-어디까지나 본인 생각으로-말만 골라서 던졌다.
히틀러는 그런 만슈타인의 아부에는 이미 익숙해진 듯 어깨만 살짝 움직였다.
“과찬이오. 장군의 능력을 생각하면, 지금 있는 자리도 오히려 너무 낮다고 생각하오만.”
“영광입니다, 총통 각하! 이 만슈타인, 총통께서 지시한다면 폭탄을 메고 불구덩이 속으로 뛰어들겠습니다.”
“굳이 그럴 필요까진 없어요.”
자신의 아부가 먹혀들었다고 생각하고 희희낙락거리는 그와 달리, 히틀러는 전혀 다른 생각을 하고 있었다.
‘아, 이 양반 또 오버하네. 질리지도 않나······.’
만슈타인에 대한 신뢰와 별개로 그의 본모습을 마주할 때마다 환상이 깨져가고 있는 히틀러였다.
***
1940년 4월 29일
노르웨이 나르비크
거친 손길이 단잠에 빠진 리처드를 깨웠다.
꿈속에서 단정한 양복을 입고 숙녀들 앞에서 자신의 무용담을 자랑스레 떠벌리던 리처드는 다시 현실로 돌아오자 저도 모르게 한숨 쉬었다.
“일어나, 인마. 언제까지 자고 있을 거야?”
동기의 말에 리처드는 손목에 찬 시계를 흘끗거렸다.
오전 5시 23분.
다음 근무까지 아직 17분이 남은 시각이었다.
“중대장 명령이야. 적이 공격해올지 모른다고 모두 깨어있으래.”
“환장하겠네.”
중대장은 25살의 나이에 대위까지 진급한 엘리트지만, 툭하면 적의 공격에 대비하여 자지 말고 모두 깨어있으라는 명령을 남발해서 중대원들 사이에서 원성이 자자했다.
보나마나 이번에도 공격은 고사하고 쥐새끼 한 마리도 나타나지 않겠지.
리처드는 짜증이 치밀어오르는 것을 느꼈다.
아무리 명령에 살고, 명령에 죽는 해병대원이라지만 솔직히 이건 너무한 것 같았다.
잠이라도 제대로 자야 더 잘 싸울 수 있을 것 아닌가.
“벌써 여기에 온 지도 3주가 다 되어가는데, 중대장은 아직도 겁이 너무 많은 것 같아.”
“내 말이. 저런 쫄보가 어째서 해병대에 들어올 생각을 했는지 아직도 모르겠다니까.”
동기와 적당히 노가리를 까면서 시간을 보내던 리처드는 저 멀리서 게일 상사가 걸어오는 모습을 보고 자세를 바꿨다.
다행히 게일 상사가 그들이 하는 말을 들은 것 같지는 않았다.
안 그래도 인상이 험악하기로 유명한 게일 상사는 수염이 아무렇게나 자라 산적같은 얼굴이 되었다.
“경계 근무는 잘 서고 있냐?”
“예, 이상 없습니다.”
“피곤하겠지만 명령이니 어쩌겠냐. 조금만 참아라. 오늘 아침에는 특별히 베이컨이 나온다더군.”
“정말이십니까?”
베이컨이라는 말에 절로 입에 침이 고였다.
나르비크에 온 뒤로 벽돌만큼이나 단단한 비스킷과 정어리 통조림만 줄기차게 먹어왔기에, 고기라는 말만 들어도 군침이 돌았다.
앞으로 2시간 뒤면 베이컨을 먹을 수 있다.
간만에 입에 기름칠을 할 수 있다고 생각하니 없던 힘이 불끈 솟는 기분이었다.
영국에 있을 때까지만 해도 베이컨 정도는 이틀에 한 번 꼴로 나왔지만, 전장터에선 구경조차 하기 힘든 귀한 음식이 되었다.
베이컨뿐 아니라 온수 샤워와 침대도 이곳 나르비크에선 사치나 다름없었다.
“행보관님, 정말로 저흰 전쟁이 끝날 때까지 여기에만 있어야 되는 겁니까?”
“상부에서 따로 지시가 없으면 그렇겠지.”
게일 상사가 씁쓸한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상부에서 그들에게 교대 병력을 보내주겠다고 약속한 지도 벌써 열흘이 지났지만, 교대 병력은커녕 보급조차 간당간당한 현실이었다.
영국군 수뇌부는 나르비크보다 지리적으로 가까운 베르겐과 트론헤임을 공격하는 것이 더 이익이라 판단하곤, 전력을 그리로 집중하고 있었다.
때문에 나르비크의 해병대원들은 상부의 관심에서 멀어져 사실상 방치된 것이나 다름없는 처지에 놓이고 말았다.
그나마 영국과 나르비크를 잇는 보급선도 독일 유보트들의 활약으로 인해 금방이라도 끊어질 듯이 위태위태했다.
일개 이등병인 리처드조차 추가 지원이 없다면 싸우는 것은 고사하고 나르비크의 전 병력이 굶게 되리란 사실을 모르지 않았다.
유보트에게 수송선이 격침당하는 게 문제라면, 보급량을 늘리던가 아니면 나르비크에서 철수하던지 해야지 이게 뭐란 말인가.
“아무튼 수고해라. 교대 전까지 허튼짓-”
-쾅!
게일 상사의 말은 폭음과 함께 끊겼다.
나르비크에 상륙한 영국군에게 가해지는 독일-노르웨이 연합군의 첫 포격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