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침 해가 뜨기 전에 (3) >
1940년 3월 29일
노르웨이 오슬로 노르웨이 왕궁
노르웨이의 총리 요한 뉘고르스볼은 초조한 얼굴로 국왕을 기다렸다.
마치 잘못을 저질러서 벌을 기다리는 아이처럼 그는 안절부절못하며 연신 식은땀을 흘렸다.
이윽고 국왕 호콘 7세가 나타나 그를 맞이했다.
“어서 오게, 총리. 늦어서 미안하구만.”
“아닙니다, 폐하.”
“그래, 오늘은 또 무슨 일로 나를 찾아온 건가?”
호콘 7세의 말에 뉘고르스볼은 손에 쥔 문서를 건넸다.
“영국 대사로부터 받은 겁니다. 폐하께서도 직접 보셔야 할 것 같아서 왔습니다.”
“영국 대사가?”
의아한 얼굴로 총리가 건네는 문서를 받아든 국왕은 그것을 읽다가 이내 한숨을 토해냈다.
짜증이 가득 담긴 한숨이었다.
“허어, 나 원 참······.”
문서에는 영국 정부가 노르웨이 정부에게 전하는 요청이 적혀 있었다.
독일로 스웨덴산 철광석을 수출하는 것을 금지하지 않으면, 영국은 부득이하게 필요한 조치를 취할 수밖에 없다는 내용이었다.
어조는 공손하지만 문서의 내용은 사실상 협박이나 다름없었다. 전에도 영국은 프랑스와 함께 노르웨이 정부에게 철광석 수출을 멈춰달라고 요구했었다.
노르웨이는 영프의 요구를 번번이 거절해왔고 그들은 끝없이 같은 요구를 반복하고 있었다.
“아무리 독일과 전쟁 중이라지만, 참 너무하는군. 우리는 이미 우리 상선단까지 제공하지 않았나? 그런데 여기서 뭘 더 바라는 건가?”
생각할수록 괘씸한 일이었다.
노르웨이는 영국 정부의 심기를 거스르지 않으려고 영국의 요구대로 자국의 상선단을 제공하는 등 각종 편의를 봐줬다.
그런데 고마워하기는커녕 수출을 중단하라고 계속 압력을 넣더니, 하다하다 이제는 이런 치졸한 협박문까지 보내고! 이게 자칭 신사들의 나라가 할법한 짓인가?
특히 아내가 영국의 공주라 오래전부터 영국에 호감을 가지고 있던 호콘 7세는 지독한 배신감을 느꼈다. 인척이고 뭐고 다 필요 없으니 무조건 자기 말에 따르라는 건가.
“내각의 반응은 어떤가?”
“반대 의견이 많습니다만, 만일의 경우에 대비하여 영국의 요구를 받아들이자는 주장도 나오고 있습니다.”
뉘고르스볼은 주머니에서 손수건을 꺼내 목덜미의 땀을 닦았다.
“어찌하시겠습니까, 폐하?”
“거절하게.”
지금까지 국가와 국민의 안위를 위해 자존심까지 버려가며 영국에게 저자세로 나갔지만, 더 이상은 참을 수 없었다.
이러다간 노르웨이 자체가 영국의 괴뢰국 신세로 전락할지도 몰랐다.
무엇보다, 영국의 요구대로 철광석 수출을 금지했다간 역으로 독일을 자극할 수도 있었다.
영국과 척을 지는 것도 무섭지만, 독일과의 전쟁은 더더욱 피하고 싶었다.
동유럽의 강자로 손꼽히던 폴란드를 4주 만에 굴복시킨 독일이다.
그 4주라는 기간에는 소련의 역할도 있었겠지만, 폴란드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약한 노르웨이가 독일군을 상대로 얼마나 버틸 수 있을까?
잘해야 두 달이 한계겠지.
호콘 7세는 자신의 나라가 노르웨이 왕국에서 노르웨이 보호령으로 바뀌는 모습을 보고픈 생각이 추호도 없었다.
“계속 영국의 요구를 들어주다간 갈수록 더 큰 요구를 해올걸세. 나중에는 외교권까지 영국에 넘기라고 요구할지 몰라. 노르웨이는 노르웨이인들의 나라라는 것을 보여줘야지!”
“알겠습니다, 폐하.”
“영국이 저렇게 난리인데, 독일은 어떤가? 독일도 비슷한 요구를 해온 적이 있었나?”
“철광석 수출량을 늘려 달라는 말 외에는 없습니다.”
“유럽에서 그 난리를 친 나라치곤 이상하리만큼 조용하군.”
스페인 내전에 끼어들어 군사고문단을 보내고 체코를 합병한 데 이어 폴란드까지 정복한 나라답지 않게 여태까지 아무런 요구가 없었다.
국가상선단을 영국에 제공했을 때 격하게 항의한 일을 빼면, 독일은 노르웨이의 일에 일절 간섭하지 않았다.
크비슬링의 국민연합당도 몇 달 전까지 독일과의 동맹을 주장하다가, 지금은 잠잠해졌다.
독일과의 동맹 체결 주장을 포기한 것은 아니었지만, 이전처럼 시끄럽게 날뛰는 일은 없어졌다. 이것도 독일이 관여한 일인지 모르겠군.
“영국 대사에게 전하게. 노르웨이인은 협박 따위에 굴복하지 않는다고 말이야. 확실하게 전하게.”
“그리 하겠습니다.”
***
왕궁을 나온 뉘고르스볼은 영국 대사에게 가 호콘 7세의 뜻을 전달했다.
영국 대사는 즉시 본국에 암호문을 발송했다.
-개는 목줄을 차지 않았다.
노르웨이 주재 영국 대사가 보낸 암호문은 즉시 체임벌린과 처칠에게 전달되었다.
대사의 전문을 받아든 처칠은 짧게 한숨을 쉬며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었다.
“어리석기는. 끝까지 어려운 길을 가려고 하다니.”
“이제 어떻게 할 생각이오?”
“우리 프랑스 친구들에게 알려줘야죠. 노르웨이가 마지막 기회를 스스로 차버렸다고.”
***
1940년 4월 1일
독일 마그데부르크
“이게 그······ 새로 나온 알약인가?”
“예, 총통 각하. 만드느라 고생 좀 했습니다.”
만면에 미소를 띤 채 내 옆에 서 있는 의사의 이름은 테오도어 모렐.
실제 역사에서 히틀러의 주치의를 맡았던 사람이다.
히틀러에게 치료약으로 마약을 처방한 돌팔이로 알려져 있지만, 요제프 멩겔레, 카를 게프하르트와 카를 브란트 같은 인간 말종들과 달리 인체실험을 사람이 할 짓이 아니라며 거부했으며 인종주의와도 거리가 멀었던 사람이었다.
돌팔이라는 말에도 다소 어폐가 있는 게, 21세기 관점에서 보면 모렐의 처방은 비상식적이고 극도로 위험하지만, 의학이 아직 발달하지 못한 20세기 기준으로 그렇게 이상하기만 한 처방은 아니었다.
담배가 몸에 좋다며 의사가 환자에게 담배를 권하고, 몸에 좋다며 방사능 물질인 라듐을 퍼먹는 게 당연시되던 시절이었으니까.
오히려 독약이나 다름없던 약물 수십 개를 때려박고도 히틀러가 자살하기 전까지 멀쩡히 살아있게 만든 것을 보면 돌팔이가 아니라 명의라 불려도 손색이 없는 친구다.
애시당초 그의 전공이 산부인과인 것을 감안하면, 모렐의 능력은 가히 천부적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그래도 주치의로 삼기엔 조금 꺼림칙해서 어디에 써먹을까 고민하다가 신약 개발부서로 보냈다.
천재에 가까운 그의 약물 배합 능력을 생각한다면, 유의미한 결과가 나올지도 모른다는 생각에서였다.
그 결과, 역사에도 없었던 새로운 약이 탄생했다.
“기존의 페르비틴(pervitin)보다 훨씬 강력한 효과에, 신체에 주는 부담도 페르비틴보다 적습니다. 이 알약 한 알만 먹으면 최대 나흘 동안 수면을 취하지 않아도 최상의 컨디션을 유지할 수 있고, 하루 정도 충분한 휴식을 취하면 복용 전의 상태로 돌아갈 수 있습니다.”
······개쩌는데?
이게 정말로 1940년에 나왔다고? 실화냐?
21세기에도 없는 기적의 각성제가 자그마치 1940년에 나오다니, 참 오래 살고 볼 일이군.
아, 페르비틴이 대체 뭐냐고?
코카인, 모르핀, 아편과 더불어 마약하면 떠오르는 메스암페타민의 독일 상표명이다.
흔히 말하는 히로뽕, 필로폰이 바로 메스암테파민이지.
시대가 시대인만큼 독일과 일본뿐만 아니라 연합군도 메스암페타민을 애용했는데, 벤제드린(Benzedrine)이라는 이름으로 병사들에게 지급되었다.
총통이 되자마자 기존 민간에 유통되고 있던 페르비틴의 유통을 금지하고 이를 단속시킨 나였지만 전쟁을 하려면 각성제가 필수였기에 완전히 금지시키진 않고 철저히 군용으로 사용했다.
단, 군의관의 처방이 있어야 복용할 수 있으며 이를 어기면 엄히 처벌하도록 안전장치도 만들었다.
그런데 페르비틴보다 효과도 좋고, 부작용도 적은 놈이 나왔으니 더는 만들 필요가 없을 것 같군. 잘됐군, 잘됐어.
모렐의 성과에 만족한 나는 그에게 전장공로훈장 1급을 수여하고 그의 성을 따 ‘모렐 알약’이라고 이름지었다.
각성제만큼이나 중요한 항생제 개발도 순조롭다. 술폰아미드와, 이를 아닐린과 결합한 설파닐아마이드도 만드는 데 성공했다고 보고를 받았다.
영국과 아직 사이가 좋을 때 페니실린을 들여오려고 했지만, 영국이 거절하는 바람에 결국 못했단 말이지. 매정한 녀석들.
그래도 술폰아미드와 설마닐아마이드도 만들었으니 항생제 부족으로 죽는 병사들의 수가 크게 줄어들지 않을까 싶다. 살 수 있는데 항생제가 없어서 죽으면 얼마나 억울하겠어.
모렐 등 신약 개발자들과 점심을 함께한 후에는 무기 시연회에 참석했다.
4호 전차 G형과 헷처를 비롯한 신형 장비들이 줄지어 서 있고, 관계자들이 긴장한 얼굴로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놈들, 참 멋지게도 생겼군. 그래, 이 정도는 되어야 독일제라고 할 수 있지.”
“하하하······.”
전부 내가 기억하는, 인터넷과 책에서 본 사진 속의 모습을 하고 있었다. 사진으로만 접하던 놈들을 실물로 만나게 되어 감회가 새로웠다.
“이 전차는······.?”
몇 대는 종전으로 끝내 역사에 등장하지 못했거나 프로토타입으로만 남은 차량들이었다.
대표적인 예가 바로 4호 대공전차 쿠겔블리츠인데, 포탑 1대만 러시아 쿠빙카 전차박물관에 전시되어 있다고 들었다.
“전에 말한 4호 대공전차로군. 88처럼 대공용뿐만 아니라 지상용으로도 딱이겠어.”
“정확하게 보셨군요. 30mm 기관포는 보병지원용으로도 최고지만, 500m에서 45mm 장갑판을 관통할 수 있으므로 대전차전도 가능합니다. 거기다 밀폐식 선회포탑을 장착해 기존 대공포들보다 방어력이 높아 승무원들을 안전하게 보호할 수 있습니다.”
무심코 한마디 했을 뿐인데 관계자들이 기다렸다는 듯이 설명을 줄줄 늘어놓았다.
열심인 건 좋지만 좀 쉬면서 말하면 안 되냐? 설명하다가 숨넘어가겠네.
신형 APC로 계획된 케츠헨은 조종수와 차장을 제외하고 6명의 보병을 태울 수 있는데, 작은 자체를 생각하면 생각보다 많은 병사들이 탑승할 수 있었다. 속도도 48km/h로 준수한 편이고.
중장비들을 살펴봤으니 다음은 소화기 차례였다.
전에 봤던 StG39부터 여러 종류의 총기들이 관계자들과 함께 내 방문을 기다리는 중이었다.
“응? 이건 MP38이 아닌가.”
관저를 경비하는 병사 중에 3명 중 1명이 들고 다니는 총이라 매일같이 보는 물건인데 굳이 여기에 나올 필요가 있나?
내가 의아한 눈으로 쳐다보자, MP38을 만든 하인리히 폴머가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저었다.
“역시 총통께서도 이놈이 MP38로 보이시는 모양이군요. 그런데 이놈은 MP38이 아닙니다.”
“그러면 뭔가?”
“생긴 건 MP38과 똑같지만, 내부가 다릅니다. 부품의 개수를 줄이고 경량화하여 생산과 정비가 더 쉽고, 무게도 더 가벼워진 게 특징이지요. 심지어 가격도 MP38보다 저렴하답니다.”
“호오?”
MP38이랑 외형은 똑같은데 생산과 정비는 더 쉽고 가격까지 싸다고? 이건 못 참지!
물론 장점이 있으면 단점도 있다고, 부품을 간략화하여 정비가 쉬워졌지만 그만큼 반동이 강해져서 명중률이 원본보다 하락했다.
그래도 이 정도면 나름 괜찮은 성능이었다. 원래 기관단총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강한 화력을 단기간에 쏟아낼 수 있는 능력이지, 명중률이 아니니까.
신형 기관단총의 명칭은 MP40으로 정해졌다.
MP40 다음으로 내 시선을 끈 것은 신형 기관총이었다.
역사에서 히틀러의 전기톱이라 불리우며 연합군 병사들에겐 공포의 대상으로 인식되었던 MG42가 그것이었다(지금은 1940년이므로 이름은 MG40이다)
“무게는 10kg으로, MG34보다 2kg 가량 더 가볍고 단가도 245 라이히스마르크로 더 저렴합니다. 유효사거리는 2km, 최대사거리는 4.7km고 분당 1200발의 총탄을 발사할 수 있으며, MG34보다 총열 교환도 더 간편하고 오염에도 강합니다. 이외에도-”
“그만. 더 말할 필요 없네. 아주 완벽한 총이야.”
어차피 인터넷으로 다 봤던 것들이라 다 아는 사실들이다.
단, 무게와 가격이 원본보다 더 낮은 건 의외로군. 그래도 성능에 큰 차이가 있을 것 같진 않으니, 오히려 더 좋다고 할 수 있겠다.
“모든 면에서 MG34를 상회하는 총이니, 조만간 MG34 생산을 멈추고 이놈만 만들어서 병사들에게 들려주면 되겠군. 완벽해.”
“그렇습니다, 총통 각하.”
“이렇게 멋진 녀석들을 만들어내다니, 감동했소. 다들 정말 수고 많았소이다.”
칭찬은 고래도 춤추게 한다고 관계자들의 얼굴에서 미소가 떠나질 않았다.
1942년이나 그 후에 나왔을 놈들이 1940년에 나왔으니, 천하무적이 된 기분이다.
문제는 그놈의 영국 해군인데······.
육군과 공군은 자신있지만, 해군은 그 반대다.
태평양전쟁이 개전하려면 1년하고 8개월이 더 남았지만 그때까지 영국을, 정확히는 영국 해군을 꺾을 자신이 없다.
21형 유보트로 영국을 봉쇄하면 된다고 되니츠가 큰소리치고 있기는 하나 그게 어디 말처럼 쉬운 일인가. 자칫 잘못하다간 미국까지 끌어들일 수 있으니 조심해야 한다고!
영국이 섬나라가 아니라 프랑스처럼 육지로 이어져 있었다면, 이렇게 고민할 일도 없었을 텐데.
판게아의 분리가 새삼 통탄스러울 따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