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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침 해가 뜨기 전에 (2) - 유료 시작 화 > (60/150)

< 아침 해가 뜨기 전에 (2) - 유료 시작 화 >

1940년 3월 22일

영국 런던 다우닝가 10번지

체임벌린은 인상을 찌푸린 채 묵묵히 작전 계획서를 읽었다.

계획서는 일급기밀을 의미하는 빨간색 테두리로 장식되어 있었다.

“정말로 이 방법밖에 없소이까, 장관?”

이미 승인한 안건이었지만, 암만 생각해봐도 이게 과연 최선일지 확신이 서지 않았다.

고심 중인 체임벌린과 달리 해군성 장관 윈스턴 처칠은 무엇이 문제냐는 듯이 당당한 태도였다.

“이제와서 또 약한 모습을 보이시는 겁니까? 당신은 대영제국의 총리입니다. 자신감을 가지시죠.”

기운을 북돋아 주려는 의도보다는 자신에 대한 비꼼으로 들리는 말이었다. 

체임벌린은 눈살을 찌푸렸지만, 처칠은 뭐가 문제냐는 듯이 후덕한 미소를 지으며 어깨를 으쓱거렸다.

능구렁이 같은 인간.

히틀러 때문에 한배를 탄 입장이긴 해도 체임벌린은 처칠이 못마땅했다.

영독 정상회담 당시 처칠은 체임벌린이 히틀러에게 굴복했다며 격렬한 어조로 비난을 퍼부었고, 체임벌린은 유럽의 평화를 지키기 위해 최선의 선택을 했을 뿐이라고 항변했다.

그런데 정말로 히틀러가 체코를 합병하고 폴란드를 침공하는 바람에 결과적으론 처칠의 말이 맞게 되었다.

물론 체임벌린도 히틀러를 믿지 않아서 군비를 증강시키고 군의 정예화를 추구하는 등 여러 노력을 기울였지만, 대중은 물론이고 같은 보수당 의원들조차 이러한 체임벌린의 노력을 알아주지 않았다.

체임벌린은 어쩔 수 없이 처칠을 자신의 내각에 참여시켰다.

하지만 자신이 총리인 것마냥 안하무인으로 행동하는 그와 친해지고픈 마음은 눈꼽만큼도 없었다.

겨울전쟁이 발발하자 처칠은 독일과 소련이 공동으로 스칸디나비아를 침공할지 모른다며 먼저 손을 써야 한다고 강하게 주장했다.

처칠의 주장에 프랑스가 동조했고 두 나라는 핀란드를 돕기 위해 병력을 파견할 테니 노르웨이와 스웨덴에게 영토 통과를 요구했다.

그러나 노르웨이와 스웨덴은 영프의 요구를 거절했다. 핀란드는 끝내 소련에게 굴복하여 강화조약을 맺었다.

그렇게 처칠의 계획은 물거품으로 끝나는 듯했지만, 그는 여기서 포기할 위인이 아니었다.

“이제 우리는 국제법이나 체면에 상관 쓸 게 아니라, 독일을 이기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말아야 합니다! 독일에게 철광석을 파는 스웨덴도 철광석 수출에 도움을 주는 노르웨이도 독일의 실질적인 동맹국으로 취급해야 합니다.”

적의 친구는 나의 적이라는 단순무식한 논리.

처칠의 강력한 주장으로 영국 정부는 노르웨이에게 독일로의 철광석 수출을 중단하라고 압력을 넣었지만 노르웨이는 강한 불쾌감을 드러내며 거절의사를 밝혔다.

“노르웨이가 우리의 요청을 거절했으니, 노르웨이는 이제 영국의 적입니다. 따라서 노르웨이를 선제공격할 것을 제안하는 바입니다.”

노르웨이가 영국의 요구를 거절하기 무섭게 처칠은 두 개의 작전안을 들고 나왔다.

윌프레드 작전과 R4 작전으로 각각 노르웨이-독일의 수송항로를 기뢰로 도배해버리는 것과 노르웨이 본토를 침공하여 나르비크 항구와 연결철도를 철저히 파괴해버리는 계획이었다.

단순 외교적 압박도 아니고 대놓고 침공을 하자니!

체임벌린은 너무 극단적이고 무모하다며 반려하려고 했지만, 처칠의 집요한 설득과 요청에 결국 그의 계획을 승인했다. 하지만 여전히 일말의 불안이 남아 그를 괴롭혔다.

정말로 이게 최선일까? 이것보다 더 나은 방법이 있지 않을까?

고심하는 체임벌린과 달리, 처칠은 걱정도 팔자라는 듯 큰소리를 쳤다.

“우선은 윌프레드 작전만 진행하고 노르웨이의 반응에 따라 R4 작전의 개시 여부를 결정할 겁니다. 노르웨이인들이 현명하다면, 감히 대영제국에게 맞설 생각을 하지 못하겠지요.

설렁 그들이 우리의 적이 된다고 하더라도, 노르웨이 같은 일개 약소국 따위가 무슨 위협이 되겠습니까? 걱정 붙들어 매시지요, 총리!”

“끄응.”

이 인간이 이토록 자신만만하니 안심이 되기는커녕 어째 더 불안할걸.

체임벌린은 처칠이 과거에도 비슷한 말을 한 적이 있다는 것을 기억해냈다.

갈리폴리.

대영제국 최악의 실수 중 하나.

1차대전이 터지자 해군성 장관이던 처칠은 전함이 부족하다는 이유로 오스만 제국이 영국에 주문한 슈퍼드레드노트급 전함을 강탈했다.

오스만은 이에 격하게 항의했지만 처칠은 오스만의 항의를 깔아뭉개며 하루 대여료 천 파운드를 제안했다.

오스만이 영국에 지불한 금액이 275만 파운드임을 감안하면 천 파운드의 대여비는 이거 먹고 떨어지라는 소리나 다름없었다.

격분한 오스만은 영국에 선전포고했고 졸지에 연합국은 오스만과도 싸워야 하는 처지가 되었다.

처칠은 오스만의 수도 이스탄불로 직행하기 위해 다르다넬스 해협의 입구인 갈리폴리에 상륙할 것을 주장했다.

그리고 그 결과는······.

갈리폴리 상륙작전은 연합군 장병 25만 2천 명의 죽거나 다치는 최악의 대참사로 끝났고 처칠은 작전 실패의 책임을 회피하다가 여론의 뭇매를 맞고 결국 장관직에서 사퇴했다. 지금도 갈리폴리는 처칠의 역린으로 남아있었다.

이번에도 같은 일이 반복되지 않아야 할 텐데······.

“무솔리니도 우리에게 적극 협력하겠다고 했으니, 독일은 순전히 노르웨이에 집중하지 못할 겁니다.”

그러고 보니 이탈리아도 있었다.

에티오피아 침공과 오스트리아 합병으로 독일에게 연달아 물을 먹어 독일이라면 이를 갈던 무솔리니는 영프가 독일에 선전포고하자 비밀리에 제안을 하나 해왔다.

독일이 영국과 프랑스를 공격하거나, 또는 두 나라가 독일을 공격하면 이탈리아도 참전하여 영프를 도와 독일을 공격하겠다는 제안이었다.

그 대가로 무솔리니는 이탈리아군의 현대화를 영프가 지원할 것과 전후 오스트리아와 바이에른을 이탈리아의 세력권으로 인정해줄 것을 요구했다.

무솔리니의 요구는 상상 이상으로 과했지만, 처칠은 이탈리아의 요구를 받아들이자고 주장했다.

일단 독일부터 해치우는 게 중요하니 전후 문제는 나중에 생각하자는 것이었다.

“일단 독일을 박살내는 것만 생각합시다. 이탈리아와의 약속은 전쟁이 끝난 후에 ‘조정’하면 되니까요.”

처칠이 말한 조정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아는 체임벌린은 혀를 내둘렀다.

표정 하나 바꾸지 않고 저런 말을 태연히 할 수 있다니. 저것도 재능이라면 재능이었다.

무솔리니의 사위이자 이탈리아 외무장관인 치아노 백작과 만난 처칠은 영국과 독일이 노르웨이에서 충돌하면 이탈리아가 이에 맞춰 오스트리아를 공격해달라고 요청했다.

치아노는 처칠의 요청을 무솔리니에게 전달했고 무솔리니는 처칠의 요청을 받아들였다.

“하지만 이탈리아군의 상태는 지극히 엉망이라고 하던데······ 그들이 독일군을 상대로 제대로 싸울 수나 있겠소? 천하의 폴란드군도 단 4주 만에 독일군에게 무너졌는데.”

무솔리니가 요구한 이탈리아군의 현대화를 돕기 위해 이탈리아로 간 영국군 장교단의 보고에 따르면 이탈리아군은 도저히 강대국의 군대라고 볼 수 없는 수준이었다.

육군에 필수적인 전력인 화포는 수량이 부족하고 그나마 있는 화포들도 상당수가 제작된 지 30년을 훌쩍 넘긴 골동품들이다.

어느 포병대대는 보유한 대포가 달랑 3문이어서 영국 장교들이 충격을 먹기도 했다.

기갑 전력은 더더욱 심각해서 기관총이 무장의 전부인 L3 탱켓이 이탈리아군 기갑전력의 주력이었다.

4호 전차는커녕, 2호 전차에서 정리가 가능한 놈들을 이탈리아군은 주력장비랍시고 굴리고 있었다.

폴란드에서 독일군의 활약상을 보고 무솔리니가 기술진을 닦달해 신형 장비를 몇 대 내놓긴 했지만, 이마저도 4호 전차보다 몇 수 아래라 평가받는 상황.

이탈리아 해군의 경우 육군보다 상황이 낫긴 했어도 애초에 독일은 지중해에 접해있지 않으니 해군이 할 일이 없었다.

공군은 공군 장관 이탈로 발보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발전이 지지부진하고.

모든 면에서 총체적 난국인 것이 이탈리아군의 현주소였다.

“흠흠. 그래도 강대국이니, 최소한 독일의 발 정도는 묶어두겠지요. 저도 이탈리아군이 베를린으로 진격할 수 있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어디까지나 이탈리아는 시간벌기용일 뿐. 대영제국의 미래를 책임져야 할 우리의 젊은이 한 명의 죽음을 이탈리아 청년 한 명이 대신할 수 있다면, 충분히 가치 있는 일 아닐까요?”

“어마어마한 소리를 아무렇지도 않게 말씀하시는구려.”

체임벌린이 혀를 내두르자, 처칠은 더욱 능글맞게 굴었다.

“솔직하다고 생각해주신다면 고맙겠습니다. 영국 청년 한 명과 이탈리아 청년 한 명, 이 중 한 명이 반드시 죽어야 한다면 누구를 고르시겠습니까? 저는 무조건 후자를 고르겠습니다. 총리께서도 분명 저와 같은 선택을 하지 않겠습니까?”

“부정은 안 하겠소. 마지막으로 하나만 물읍시다. 우리가 노르웨이를 공격하면, 전 세계가 우리를 비난할 텐데 이 부분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시오? 우리 영국의 입지가 좁아지지 않겠소?”

“그야 욕 좀 먹겠죠. 하지만 그뿐입니다. 어느 나라가 감히 대영제국에게 맞서겠습니까? 입으론 욕해도, 시간이 지나면 언제 그랬냐는 듯이 우리에게 꼬리를 살살 흔들어대겠죠. 전쟁에서 이기기만 하면 끝입니다. 역사를 쓰는 것은 승자라는 말도 있지 않습니까?”

말은 잘하는군.

체임벌린은 처칠을 보낸 뒤 한참 동안 의자에 앉아서 생각했다.

처칠의 말대로 역사를 쓰는 것은 승자의 특권이다. 전쟁에서 이기기만 하면 모든 것이 용납되는 게 바로 세상 이치다.

하지만,

전쟁에서 진다면? 그땐 어떻게 될까?

유럽의 평화를 위협하는 독일에 맞선 자신의 선택을, 사람들은 무의미한 헛수고였다고 평하게 되지 않을까?

그리고 대영제국의 운명은?

전쟁에서 지고도 영국은 해가 지지 않는 나라로 남아있을 수 있을까?

***

1940년 3월 26일

이탈리아 밀라노

“오오오, 이것들이 바로······.”

우정의 증표로 영프가 이탈리아에 선물한 마틸다 II 전차와 소뮤아 S35 전차를 살펴보는 무솔리니의 얼굴은 상당히 들뜬 상태였다.

각 전차들의 수량은 1개 소대 남짓에 전차병들의 훈련은 아직 걸음마 단계에 불과했지만, 이탈리아 전차는 따라올 수 없는 고성능의 전차들을 가질 수 있게 된 것만으로도 무솔리니는 무척 만족스러웠다.

거기다 영국과 프랑스가 파견한 기술자들의 도움으로 이탈리아제 전차들의 성능 개량도 조금씩 이루어지고 있다.

모든 것이 순조로운 듯 보였다. 아직까지는.

“원수, 밥 먹다 체하기라도 한 거요? 조금 전부터 표정이 좋지 않소만.”

희희낙락하는 무솔리니와 달리 그와 동행한 바돌리오의 표정은 좋지 않았다.

두체의 지적에 망설이던 노원수는 이내 작심한 듯 조용히 입을 열었다.

“두체께선 정녕 영프를 도와 참전하실 생각이십니까?”

“그렇소. 이미 약속한 대금까지 받았으니, 이제와서 입을 씻고 모르쇠로 일관할 수 없는 노릇이잖소.”

영프가 보내준 전차들과 기술자들은 엄밀히 따지자면 선물이 아니라 계약금이었다.

무솔리니는 오스트리아를 공격하여 영프를 돕겠다고 제안했고 영프는 이를 받아들여 무솔리니가 원하는 각종 무기들과 기술자들을 보냈다.

무기와 기술이 빈약한 이탈리아군에겐 더할 나위 없이 반가운 일이었지만, 1935년부터 시작된 이탈리아군의 손실을 메우기엔 턱없이 부족했다.

이탈리아는 에티오피아 침공과 스페인 내전 참전으로 안 그래도 부족한 재정이 더욱 부족해졌다.

에티오피아 침공은 말할 것도 없고 스페인 내전에서조차 이탈리아는 1년 예산의 20%에 달하는 막대한 금액을 3년 동안이나 쏟아부었다.

그 덕에 프랑코의 호의를 얻는 데 성공했지만, 이탈리아군은 빈털터리가 되고 말았다.

스페인에서 쓸데없이 많은 지출이 발생한 탓에 신무기 개발과 군 편제 개편 등 이탈리아군 현대화에 필수적인 계획들이 모조리 백지로 돌아갔다.

반에 반토막이 난 예산만으로 군의 현대화가 불가능하다는 장성들의 말에 무솔리니는 세계에 파시즘을 전파하기 위한 가격치곤 싼 편이라는 황당한 답변을 내놓았다.

히틀러의 독일이 최신형 전차와 전투기, 전함과 항공모함을 만들었을 때 이탈리아군은 19세기에 제작된 대포와 탱켓, 복엽기 같은 구식 무기로 무장할 수밖에 없었다.

두체의 알량한 자존심과 허영감 때문에 말이다.

에티오피아와 스페인, 둘 중 하나만 포기했어도 이 지경까지는 오지 않았을 텐데. 바돌리오는 남몰래 한숨을 쉬었다.

“두체, 비록 영국과 프랑스의 지원이 있다곤 하나 당장 전쟁은 무리입니다. 군의 현대화 작업은 이제 막 시작된 참이고, 에티오피아에선 게릴라들이 들끓고 있습니다.”

“그 정도는 나도 알고 있소. 원수, 생각해보시오. 그대는 독일이 영국과 프랑스를 이길 것 같소?”

“예? 그······ 잘은 모르겠습니다만 힘들지 않겠습니까?”

“바로 그거요. 독일 놈들이 아무리 날고 기어봤자 영국과 프랑스를 끝내 이길 수 없소. 천하의 영국, 프랑스와 한배를 탔는데 무엇이 두렵겠소? 우리는 그저 영프를 도와 독일군의 발목 정도만 잡아주면 되오. 어차피 베를린으로 진격하는 것은 영프의 몫이지, 우리가 할 일이 아니오.”

어차피 독일은 영프를 상대하느라 이탈리아 방면에는 상대적으로 주의를 기울이지 못할 것이니 국경 일대에서 적당히 포격이나 주고 받으며 독일군 사단 몇 개만 잡아놔도 충분하다는 게 무솔리니의 주장이었다.

영국과 프랑스도 이탈리아에게 많은 것을 바라지도 않을 테니까.

“우리는 우리가 할 수 있는 만큼만 하면 돼! 2, 3만 명 정도의 희생으로 오스트리아와 바이에른을 이탈리아 땅으로 만들 수 있다면 남는 장사지!”

무솔리니를 더욱 기쁘게 한 것은 전후 오스트리아와 바이에른을 이탈리아 몫으로 넘겨주겠다고 영국과 프랑스가 약조한 일이었다.

그러나 바돌리오와 치아노는 영프의 약속에 부정적인 입장이었다.

“지난 전쟁 때도 영프는 우리에게 크로아티아와 오스트리아를 약속했습니다. 하지만 전쟁이 끝나고 우리가 얻은 것은 쥐트티롤과 아프리카 땅 일부가 전부였습니다. 이번에도 같은 일이 반복된다면, 국민들이 가만히 있지 않을 겁니다.”

“틀린 말은 아니군. 하지만 두 번 연속으로 그랬다간 영프는 세계의 신뢰를 잃고 말 거요. 기본적인 약속조차 지키지 않는 나라를 누가 믿으려고 하겠소? 그러니 이번에 영프는 반드시 약속을 지킬 거요. 보시오, 이 전차들을. 우리가 자신들을 못 믿는 것을 아니 미리 대금까지 지불했잖소.

바이에른 전체는 무리더라도, 오스트리아 정도는 확실하게 챙겨주겠지. 오스트리아만으로도 참전할 이유는 충분하고.”

무솔리니의 야망은 여기서 끝이 아니었다.

그는 오스트리아와 바이에른을 얻어낸 뒤, 이웃한 유고슬라비아와 그리스도 침공해서 알바니아처럼 이탈리아에 합병할 생각이었다.

기왕이면 터키도 정복하고, 지중해에 이어 흑해도 마레 노스트룸(Mare Nostrum)으로 만드는 것이다.

이 정도는 되어야 ‘신 로마 제국’이라 할 수 있지 않겠나.

영프가 도중에 태클을 걸어올 가능성이 크지만, 독일과의 전쟁이 막 끝나 국력을 소진한 영프가 이탈리아와의 전쟁까지 각오할 것 같지는 않았다.

저들이 전쟁을 벌이면서까지 이탈리아를 막을 생각이라면 애시당초 자신의 요구를 받아들이는 일도 없었을 것이라고 무솔리니는 확신했다.

“앞으로 10년 뒤면, 세계는 이 나라를 우러러보게 될 거요. 과거에 로마 제국이 그랬던 것처럼 말이오.”

장밋빛 미래를 꿈꾸며 야심차게 웃는 두체를, 바돌리오는 불안한 눈빛으로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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