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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 해가 뜨기 전에 (1) -무료 마지막 화 (59/150)

아침 해가 뜨기 전에 (1) -무료 마지막 화

1940년 3월 6일

핀란드 남부 라도가 호수 인근

“조국을 위해!”

“우라!!!”

이번에도 소련군은 우라를 외치며 돌격해왔다. 척 보기에도 족히 수천 명은 넘는 어마어마한 숫자였다.

“빌어처먹을 놈들, 개새끼들처럼 몰려드는군.”

“새삼스럽게 왜 그래. 늘 있던 일이잖아.”

“온다, 준비!”

소련군이 사정거리 안으로 들어오자 핀란드군은 발포했다.

소총과 기관총, 전차포가 일제히 불을 뿜고 소련군의 입에서 비명이 터져나왔다.

소련군 역시 핀란드군을 향해 발포하였고 핀란드군 진영에서도 비명이 터졌다.

“으아아아아!”

전차포 공격에 팔이 날아간 병사가 몸을 비틀고 전면에 관통당한 전차의 해치에서 불길이 솟구쳤다.

하이하는 이를 악물었다.

정면의 아군이 적들을 막아내는 동안 그는 측면에서 소련군을 저격했다.

아군의 부담을 최대한 줄이기 위해 그는 정신을 집중했다.

첫 번째 목표는 전차에 올라타 전차장에게 지시를 내리고 있는 적 장교였다.

방아쇠를 당긴 하이하는 목표로 한 적군 장교의 머리가 젖혀지는 것을 확인하곤 바로 다음 표적을 골랐다.

장교가 총탄을 맞고 즉사하자, 전차장은 냉큼 포탑 안으로 들어갔다.

동료 저격수들과 달리 하이하는 스코프를 일절 사용하지 않았다.

스코프의 렌즈에 햇빛이 반사되어 적에게 위치를 들킬 수 있다는 이유에서였다.

그는 동료들에게 스코프를 쓰지 말고 맨눈으로 저격하는 방법을 권했지만, 동료들은 듣지 않았다.

스코프를 사용하지 않으면 정밀한 저격이 불가능하기 때문이었다.

하이하의 동료들이 300~400m 거리에서 저격할 때, 하이하는 그보다 훨씬 짧은 100~150m 거리에서 소련군을 저격했다.

스코프를 사용하지 않아도 적을 조준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지만, 적과의 거리가 너무 가깝다는 단점도 있었다.

이런 이유로 하이하의 동료들이 그에게 차라리 스코프를 쓰고 먼 거리에서 저격할 것을 권유했을 때, 하이하는 거절했다.

적과 가까운 거리에서 저격하는 것이 위험한 행동이긴 하나, 은엄폐에 자신이 있다면 크게 문제 될 게 없다는 것이 그의 생각이었다.

하이하는 사격 전, 입김이 나오는 것을 막기 위해 눈이나 얼음을 입에 물고 총구 주변을 눈을 손으로 꾹꾹 눌러 사격 시 눈이 휘날리는 일은 최소화했다.

이토록 철두철미한 성격 덕분에 그는 여태까지 살아남을 수 있었다.

-탕!

“커흑.”

적기를 들고 돌격하던 병사가 입에서 피를 토하며 쓰러졌다. 뒤따르던 T-26은 쓰러진 병사의 몸을 짓밟고 전진하다가 대전차포에게 격파당했다.

불이 붙은 전차에서 전차병들이 탈출을 시도했지만 기관총에 벌집이 되었다.

잘칵.

이런. 어느새 총탄이 바닥났다.

재장전을 위해 몸을 숙이기 무섭게 총알 몇 발이 그의 머리 위로 날아들었다.

웬만해선 당황하는 일이 없는 하이하도 이번에는 깜짝 놀랐다.

뭐지? 적에게 발각당한 건가?

눈먼 총알이 우연히 날아온 것일 수도 있지만, 전장에서 잔뼈가 굵은 하이하는 즉각 전투 태세를 취했다.

그는 저격 시에 사용하는 M28 소총을 놔두고 근접전 대비용으로 들고 다니는 수오미 기관단총을 들었다.

“우라아아아!!!”

아니나 다를까, 소련군 몇 명이 그가 있는 곳으로 돌격해왔다.

이런 젠장, 위치가 발각당했군!

하이하는 즉시 수오미로 선두의 소련군을 조준한 다음 방아쇠를 당겼다.

함성을 지르며 달려오던 적병의 가슴팍에 구멍이 숭숭 뚫리는 것을 확인한 그는 엎드려서 왼쪽으로 굴렀다.

누워 쏴 자세를 취한 그는 재차 사격을 가해 두어 명의 적군을 추가로 사살했다. 순식간에 3명이 당하자 소련군은 납작 엎드렸다.

하이하는 기회를 놓치지 않고 독일제 막대 수류탄을 던졌다. 수류탄이 폭발하고 소련군 서너 명이 괴성을 질렀다.

더 이상 달려오는 적이 없는 것을 확인한 하이하는 철수 준비를 했다.

적에게 발각당한 마당에 계속 같은 자리에 있는 것은 자살행위였다. 잽싸게 튀는 수밖에.

그가 자신의 M28 소총을 챙기러 자리에 돌아왔을 때, 저 멀리서 엎드려 있던 소련군이 벌떡 일어났다.

상대방의 손에 들린 수류탄을 본 하이하는 반사적으로 수오미를 발사했다.

적은 쓰러졌지만, 수류탄은 이미 던져진 뒤였다.

소련군이 던진 수류탄은 허공에서 폭발했다.

수류탄이 폭발하면서 생긴 자잘한 파편 여러 개가 하이하의 턱에 명중했다.

하이하는 극심한 통증을 느끼며 자리에 주저앉았다.

불에 달군 쇠공이 입안을 굴러다니는 것 같았다.

상처에서 쏟아진 피가 눈을 새빨간 색으로 물들였다.

워낙 통증이 극심한 탓에 하이하는 정신을 차릴 수 없었다.

고함을 치고 싶었지만, 턱이 망가진 탓에 바람 빠지는 소리만 나왔다.

그가 숨을 쉴 때마다 부러진 이와 뼛조각이 튀어나와 눈에 처박혔다.

통증 때문인지 이제는 서 있는 것조차 버거웠다. 어쩌면 피를 너무 많이 흘려서 그런 것일지도 몰랐다.

하이하의 의식은 점차 흐려졌다.

누군가가 자신의 이름을 외치며 달려오는 소리를 들으며 그는 정신을 잃었다.

***

하이하는 죽지 않았다.

수류탄 파편을 정통으로 맞아 얼굴의 절반이 엉망이 되었지만 그는 무사히 동료들에게 구조되어 후방으로 이송될 수 있었다.

전설적인 저격수 하이하가 부상을 입던 날, 핀란드 협상단이 모스크바에 도착해 소련과 협상을 시작했다.

이미 전쟁에서 승기를 잡은 소련은 협상에서 완강한 태도를 보였다.

핀란드 협상단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소련 측의 태도에는 변화가 없었다.

전쟁에서 입은 손실을 만회하기 위해서 스탈린은 얻어낼 수 있는 모든 것을 얻어낼 생각이었다.

모스크바에서 협상이 진행되는 동안에도 스탈린의 명령으로 소련군은 계속 전진했다.

협상에서 조금이라도 더 유리한 위치를 차지하기 위해, 스탈린은 조금의 주저도 없이 병사들을 사지로 밀어 넣었다.

결국 핀란드는 울며 겨자 먹기로 소련이 제시한 조건안에 찬성할 수밖에 없었다.

3월 12일, 모스크바 평화조약이 체결되었다.

조약에 따르면 핀란드는 자국 제2의 도시 비푸리를 포함한 공업 중심지 카렐리야와 라플란드 동부, 리바치 반도, 핀란드 만의 섬들을 할양하고 항코 반도를 30년간 소련에 무료로 임대해야 했다.

핀란드는 최선을 다했지만, 영토의 11%를 잃고 전 국토가 소련군의 공습으로 폐허가 되는 무지막지한 피해를 입었다.

하지만 소련이라고 피해가 없는 것은 아니었다.

비록 전쟁에서 이겼지만, 병사 12만 7천 명이 전사하고 18만 9천 명이 부상당하는 등, 인명 피해만 따지면 핀란드보다 훨씬 컸다.

정부의 대대적인 선전에도 불구하고 소련 인민들의 반응은 차가웠다.

핀란드로부터 얻어낸 땅은 전쟁에서 죽은 병사들을 묻을 묘지라는 소리가 공공연하게 나돌 정도로 이번 전쟁은 소련에게 있어 큰 트라우마를 안겼다.

그렇게 105일간 지속된 겨울전쟁은 양국 모두에게 지울 수 없는 상처만 남긴 채 허무하게 종결되었다.

***

1940년 3월 15일

독일 베를린 신 총통관저

“결국 총통 각하의 예상대로 됐군요.”

카이텔은 신이라도 되는 것마냥 나를 경외의 시선으로 바라봤다.

비단 카이텔뿐만이 아니라 괴링, 힘러, 하이드리히, 브라우히치 등 회의실에 있는 모두가 내게 존경 어린 눈빛을 보냈다.

이번 겨울전쟁도 내가 예측한 대로 되자, 그 누구도 내가 하는 말에 의문을 품지 않게 되었다.

“독일에 있는 그 누구도 총통 각하의 혜안에는 따라갈 수가 없습니다!”

“대단하십니다, 총통 각하!”

“과찬이오. 이 정도는 그저 조금만 관찰력이 깊은 사람이라면 누구나 알 수 있는 일이었소.”

부하들의 찬탄 섞인 시선을 즐기며 나는 짐짓 겸손한 척했다.

“핀란드와의 전쟁에서 큰 피해를 입었으니, 당분간은 소련을 걱정할 필요는 없을 걸세. 우리는 영프를 어떻게 하면 꺾을 수 있을지 고민만 하면 돼. 레더 제독?”

레더는 지도에서 노르웨이를 찾아 지휘봉으로 가리켰다.

“노르웨이는 중립국이지만, 스웨덴에서 산출되는 철광석을 독일로 수출 중인 나라이기도 합니다. 문제는 이번 핀란드 문제로 영국과 프랑스가 노르웨이에 눈독을 들이는 중이라는 겁니다.

이미 노르웨이는 작년 11월에 영국에게 자국의 상선단을 제공하였으며, 독일로의 철광석 수출을 멈추라는 영국 정부의 지속적인 요청을 받고 있습니다. 만약 노르웨이가 연합국에게 가담한다면, 독일은 철광석의 수입이 끊기게 되는 것은 물론이고 지난 대전 때처럼 영국의 강력한 봉쇄망에 갇혀 큰 어려움을 겪게 될 것입니다.”

레더의 설명을 듣던 장군들의 표정이 어두워졌다.

1차대전 당시 영국의 봉쇄로 독일이 얼마나 고생했는지 다들 생생하게 기억하는 터라, 봉쇄의 봉만 들어도 몸이 경기를 일으켰다.

지금의 크릭스마리네보다 훨씬 우월한 전력을 가지고도 끝내 영국 해군의 봉쇄를 막아내지 못했는데, 그보다 더 약화된 해군으로 영국의 해상봉쇄를 막을 수 있을까? 어림도 없지.

원 역사에서 가지지 못했던 항모까지 보유하게 되었지만, 겨우 항모 한 척이 추가됐다고 해서 영국의 해상봉쇄를 뚫을 수 있을 리 없다. 그 항모가 헬리캐리어라면 모를까.

“따라서, 노르웨이가 연합국에 가담하기 전에 우리가 먼저 선수를 쳐야 합니다. 노르웨이를 점령한다면 영국의 해상봉쇄선을 북해에서 노르웨이해로 밀어낼 수 있을뿐더러, 철광석의 안정적인 수급이 가능해집니다.

무엇보다 노르웨이 항구를 통해 해군의 대서양 진출이 가능해지고, 이를 토대로 영국에 대한 통상파괴전을 효율적으로 진행할 수 있습니다.”

노르웨이 침공의 목표가 해군이 활동할 발판을 만들기 위해서이긴 하나, 노르웨이를 통해 들여오는 철광석의 수급은 육군과 공군에게도 무척 중요한 일이었기에 괴링과 브라우히치도 레더의 말을 주의깊게 경청했다.

실제 역사와 달리 알트마르크 나포사건이 일어나지 않았지만, 노르웨이가 국가상선단을 영국에 제공한 일로 국방군은 노르웨이를 반쯤 의심이 섞인 눈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이미 레더는 로젠베르크와 함께 크비슬링과 지속적으로 연락을 취하며 노르웨이 침공을 위한 정보 수집에 열을 올리고 있었다.

전에도 그는 나를 찾아와 노르웨이 점령의 필요성을 역설하며 내게 작전의 승인을 요청했었다.

“고로 노르웨이 침공 계획의 승인을 요청합니다, 총통 각하.”

이번이 그의 두 번째 승인 요청이었다.

“훌륭한 설명이었소, 제독.”

“과찬이십니다.”

“하지만, 제독의 요청은 들어줄 수 없소이다.”

내 입에서 거절의 말이 나오자, 장내가 술렁거렸다.

그중에서도 특히 레더가 가장 당황했다.

“아니, 어째서입니까? 제가 분명 노르웨이는 독일의 생명줄이라고-”

“제독이 말하고자 하는 바는 나도 잘 알겠소. 하지만 노르웨이를 공격했다간, 노르웨이 전 국민들을 모두 독일의 적으로 돌리고 말 거요. 본래 전쟁에서 이기려면 적을 최소한으로 줄이고, 아군은 최대한으로 늘려야 하는 법인데 그랬다간 적이 더 늘지 않겠소?”

“총통 각하, 외람되오나 독일은 이미 체코와 폴란드에 이어 영국과 프랑스인들까지 모두 적으로 돌린 상태입니다. 겨우 300만 노르웨이인들을 적으로 돌린다고 한들 무엇이 변하겠습니까?”

나도 노르웨이를 손에 넣어야 한다는 레더의 주장에는 적극 공감한다.

하지만, 그렇다고 침략을 하면서까지 노르웨이를 손에 넣을 생각은 없다.

이제까지 체코, 폴란드는 잘만 처먹었으면서 갑자기 노르웨이한테는 왜 그러느냐고?

그야 침략을 하지 않아도 우리의 영국인들이 알아서 노르웨이와 우리를 엮어줄 예정이거든.

“흥분을 가라앉히시오, 제독. 설마 내가 겨우 노르웨이인들의 저항 따위를 두려워해서 이러겠소?”

“?”

“우리가 굳이 노르웨이를 칠 필요는 없소. 영국인들이 먼저 노르웨이를 칠 때까지 기다리면, 노르웨이는 알아서 우리와 동맹을 맺으려고 할 것이오.”

“······예?”

레더도 모르고, 카이텔, 괴링, 힘러도 모르지만 오직 나만 알고 있는 사실이 하나 있다.

윌프레드 작전.

노르웨이 영해 일대를 기뢰로 도배해서 노르웨이의 수출길을 통째로 막아버린다는 단순무식한 작전이다.

이 계획을 세운 이는 다름아닌 윈스턴 처칠. 영국 최고의 총리를 뽑으라면 무조건 순위권 안에 들어가는 그 처칠 맞다.

윌프레드 작전만으론 성이 차지 않았는지 처칠은 R4 작전이라는 추가 작전까지 세웠는데, 해병대를 투입해 나르비크 항구와 항구로 이어지는 철로를 모조리 파괴한다는 계획이었다.

실제로 영국은 윌프레드 작전과 R4 작전의 실행을 위해 군함에 해병대원들까지 태웠지만, 독일이 한발 앞서 노르웨이를 침공하는 바람에 작전은 취소되었다.

즉, 이래나 저러나 노르웨이는 타국의 침략을 받을 예정이다. 어차피 영국도 노르웨이를 공격할 예정이라면 굳이 우리가 먼저 나설 필요가 없지!

“영국도 노르웨이를 차지하기 위해 우리와 비슷한 생각을 하고 있을 거요. 대략 4월 초에서 중순 사이에 노르웨이를 공격하거나 그에 걸맞는 군사행위를 시도하겠지. 영국이 노르웨이를 먼저 공격한 뒤에 행동에 나서도 늦진 않을 거요.”

이 경우 나르비크 항구가 영국군의 공격으로 쑥대밭이 되어 한동안 철광석 수급에 차질이 생기는 일은 피할 수 없겠지만, 노르웨이 전체를 적으로 돌려 노르웨이인들의 저항을 억누르는데 필요한 병력과 물자를 고려하면 싼 편이다.

그리고 중국과 소련으로부터 수입한 철광석의 비축분도 아직 충분하니 못해도 5개월은 넉넉하게 버틸 수 있다.

설마 5개월 안에 항구 하나를 수리 못하겠어?

겨울전쟁의 진행과 결과를 정확하게 예측해서인지, 레더는 군말없이 내 지시를 받아들였다.

나치 독일이 계획한 노르웨이 침공작전은 노르웨이가 독일에게 지원을 요청했을 경우 독일군의 출동 계획으로 변경되었다.

육군의 니콜라우스 폰 팔켄호르스트 상급대장과 에두아르트 디틀 대장이 레더와 함께 작전 수립에 참여했다.

“작전명은 무엇으로 하시겠습니까?”

“베저위붕(Weserübung, 베저강 훈련)으로 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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