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겨울전쟁 (1) (55/150)

겨울전쟁 (1)

1939년 12월 7일

핀란드 남부 카렐리야

요나 뤼스토 상병은 긴장을 떨쳐내려고 심호흡을 했다. 긴장을 해소하는데 심호흡이 제격이라고 언젠가 들은 적이 있었다.

효과는 없었다.

빌어먹을.

그래도 그는 운이 조금은 따라주는 편이었다.

대다수의 중대원들이 낡고 오래되어 제대로 작동될지 의문스러운 모신나강과 카르카노, 아리사카 소총을 지급받았을 때 그는 갓 공장에서 생산된 수오미 KP/-31 기관단총을 지급받은 것이다.

수오미는 훌륭한 성능을 자랑했지만, 비싼 가격 탓에 생산량이 적었다.

처음 수오미를 지급받았을 때 기뻐했던 뤼스토였지만, 지금은 아무 생각도 들지 않았다.

들고 있는 총이 비싼 것이던 창고에서 끄집어낸 낡은 골동품이던 간에 개떼처럼 몰려오는 소련군 앞에서 모든 병사들은 겁을 집어먹었다.

다리가 돌이 된 것처럼 굳어서 움직여지지 않았다.

“거리 250!”

중대장은 명령이 있기 전까지 절대로 쏘지 말라고 병사들에게 신신당부했다.

아직까지 아무도 총을 쏘지 않았다. 훈련을 많이 받지 못한 것치곤 군기와 규율이 제법 잘 지켜지고 있었다.

“거리 200!”

“아직도입니까?!”

긴장을 참지 못한 누군가가 외쳤다. 뤼스토 바로 옆에 있는 병사였다.

뤼스토는 눈동자만 옆으로 돌려 병사의 옆모습을 흘겨봤다. 러시아 침략자들에게 맞서 조국을 지키겠다고 자원입대했던 소년병이었다.

본인 말로는 16살이라고 했었나?

평시라면 단번에 입대를 거절당했을 나이지만, 언제 전쟁이 터질지 모르는지라 모병관은 그냥 입대시켰다. 16살 정도면 충분히 총을 들고 뛰어다닐 수 있는 나이니까.

“거리 150!”

“사격 개시!”

기다리고 기다리던 발포 명령이었다.

중대장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중대원들은 일제히 방아쇠를 당겨 총을 격발시켰다.

파도처럼 밀려오던 소련군의 대열에 균열이 생겼다.

총탄을 맞고 쓰러진 병사가 뒤따라오던 전우들의 군화에 짓밟히고, 전우의 시체를 밟고 전진하던 병사가 다시 총알을 맞고 쓰러졌다.

뤼스토는 수오미의 방아쇠를 짧게 끊어서 당겼다. 탄약이 부족해 총알 한 발조차 아껴서 써야 했다.

뤼스토가 보기엔 중대가 보유한 모든 총알의 숫자보다 적의 머릿수가 더 많은 것 같았다.

“씨발, 뭐가 저렇게 많아? 수가 많아도 너무 많잖아, 이건!”

“좆같은 빨갱이 새끼들, 지들 쪽수 많은 거 자랑하러 온 거야 뭐야?”

병사들이 열심히 사격해 적의 수를 필사적으로 줄여나갔지만, 적이 워낙 많아 별 차이가 없어 보였다.

죽이고 죽이고 계속 죽여도 적은 끝없이 나타났다. 눈으로 직접 보고도 믿기지 않을 정도의 인해전술이었다.

“전차다!”

알보병만으로도 충분히 힘든데, 설상가상으로 전차까지 나타났다.

소련군의 T-26이었다.

전차가 나타나자 하얀 위장막과 나뭇가지로 위장하고 있던 대전차포가 행동에 나섰다.

소련과의 전쟁 직전 독일로부터 수입한 PaK 36이었다.

“발사!”

37mm 철갑탄은 T-26의 전면장갑을 두부처럼 손쉽게 관통했다.

전차가 폭발하고 피투성이가 된 전차병이 해치 밖으로 기어 나왔다.

러일전쟁과 1차대전, 그리고 핀란드 내전에서도 사용되었던 맥심 기관총이 소련군을 향해 불을 뿜었다.

러일전쟁과 1차대전 때는 러시아군에 의해 사용되었던 것이 지금은 러시아군을 향해 불을 뿜고 있었다.

역사의 아이러니가 낳은 작은 비극이었다.

필사적인 사격에도 소련군과 핀란드군 사이의 거리는 점차 좁혀져 이제는 60m밖에 되지 않았다.

거리가 좁혀지자, 소련군은 전사한 전우들의 시체 뒤에 숨어 핀란드군의 참호로 수류탄을 던졌다.

“커헉!”

참호로 굴러떨어진 수류탄이 폭발하고 모신나강의 노리쇠를 젖혀 탄피를 빼내던 병사가 공중으로 튀어 올랐다.

괴상한 자세로 땅에 처박힌 병사는 입에서 피를 토하더니 고개를 옆으로 떨궜다.

“씨발놈들.”

전우의 죽음을 목격한 뤼스토는 저도 모르게 욕을 토했다.

그는 죽기 싫었다. 

살아서 무사히 가족 곁으로 돌아가고 싶었다.

헬싱키의 작은 아파트에서 그가 돌아오길 기다리는 가족들을 생각하면 여기서 죽을 수 없었다.

뤼스토는 전우의 복수를 위해 수오미를 잠시 내려놓고 수류탄을 꺼냈다.

독일제 M24 막대수류탄이 포물선을 그리며 날아가 소련군 한가운데에서 폭발했다.

“아아아악!!!”

조금 전의 폭발로 왼팔이 날아간 병사가 비명을 질렀다. 그러나 돌격하던 그의 전우들은 비명을 지르는 병사를 짓밟고 전진했다.

“우라-!”

우라 소리를 하도 많이 들어서 노이로제에 걸릴 것 같았다.

저놈들은 질리지도 않나? 지금 상황이 만세를 외칠 상황은 아닌 것 같은데도 소련군은 늘 만세를 외쳤다.

참호에 위협적으로 다가온 T-26을 향해 중년의 하사가 화염병을 던졌다.

핀란드군은 소련의 몰로토프에게 바친다는 의미에서 화염병을 ‘몰로토프 칵테일’이라고 불렀다.

화염병의 제조방법은 지극히 간단해 어린아이조차 손쉽게 제조할 수 있지만 위력만큼은 결코 약하지 않았다.

화염병이 엔진 위에서 폭발함과 동시에 T-26은 정지했다.

전차 내부가 연기로 가득 차자 전차병들이 버티지 못하고 밖으로 도망쳐 나왔다.

밖으로 나온 소련군 전차병들을 기다리는 것은 성난 핀란드군의 총알이었다.

“컥!”

목에 총탄을 맞은 전차장이 도로 전차 안으로 굴러떨어졌다.

전면의 조종수용 해치를 통해 나오던 조종수는 정수리에 총알이 박혀 축 늘어졌다.

핀란드군도 핀란드군이지만, 소련군도 소련군이었다.

그들은 허가없이 후퇴할 경우 지휘고하를 막론하고 총살형에 처해질 수 있었다.

전진하면 핀란드군의 총알에 맞고, 후퇴하면 아군의 총알에 맞았다.

그들이 살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필사적으로 싸워 승리를 쟁취하는 것이었다.

싸워서 이기면 살 수 있지만, 도망치면 반드시 죽는다. 소련군도 핀란드군처럼 살기 위해서 싸웠다.

“후퇴! 전원 후퇴!”

쪽수 앞에 장사 없다고 소련군의 물량공세에 중대장은 하는 수 없이 퇴각을 결정했다.

“후퇴해라! 전원 후퇴!”

뤼스토는 쓰러진 전우의 소총을 주워 어깨에 메고 참호에서 나왔다.

모신나강의 총알이 쉭쉭 소리를 내며 귓가를 스치고 지나갔다.

총알이 바람을 가르며 날아가는 소리가 귀에 닿을 때마다 그는 발작적으로 몸을 떨었다.

아군의 후퇴를 엄호하기 위해 포탄을 발사하던 대전차포병들도 운을 다했다.

그들이 세 번째 전차를 명중시켰을 때, 위치가 발각당하고 만 것이다.

소련군은 대전차포를 향해 수류탄을 던지고 총탄을 퍼부어댔다.

대전차포병들은 벌집이 되어 쓰러졌고 PaK 36은 T-26의 궤도에 짓밟혀 납작해졌다.

참호 뒤는 허허벌판이어서, 마땅히 몸을 숨길만한 장소가 없었다.

퇴각하는 핀란드군은 등 뒤에서 날아온 총탄을 맞고 한 두 명씩 쓰러졌다.

뤼스토는 바닥에 엎드려 수오미로 사격을 가했다.

허공을 향해 권총을 쏘며 병사들을 독려하던 정치장교가 참호로 굴러떨어졌다. 그러나 소련군은 전혀 아랑곳하지 않았다.

달칵.

“젠장, 벌써!”

이게 마지막 탄창이었다.

스웨덴제 마우저 소총 한 자루가 남아있지만, 총탄이 얼마 없었다. 이것마저 다 써버리면 뤼스토는 빈손이었다.

오늘이 인생 마지막 날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하니 손이 덜덜 떨렸다.

탄창을 갈아 끼우고, 될 대로 되라는 심정으로 방아쇠를 당기려는데 왼쪽에 있던 노병이 뒤를 돌아보더니 환호성을 내질렀다.

“지원군이다!”

지원군.

지금 같은 상황에 이보다 더 멋지고 힘이 되는 말이 또 있을까? 지원군이 나타났다는 말에 모두가 하던 행동을 멈추고 뒤를 돌아봤다.

정말로 아군이 그들을 지원하기 위해 달려오는 중이었다.

독일군이 폴란드군으로부터 노획한 뒤, 자국산 20mm 기관포를 장착해 핀란드에 판매한 TKS가 달려오면서 기관포를 발사했다.

20mm 기관포에 난타당한 T-26이 연기를 내뿜으며 정지했다.

“만세, 아군이다!”

“이제 살았어!”

순식간에 적 전차를 해치운 TKS는 목표를 바꿔 소련군 보병들을 공격했다.

20mm 기관포탄에 맞은 소련군의 몸뚱아리가 토막나면서 살점과 내장이 사방으로 튀었다. TKS와 함께 나타난 핀란드군들도 소련군을 향해 집중사격을 퍼부었다.

격파된 잔해 뒤에 숨은 T-26이 포탄을 발사해 TKS를 불덩이로 만들자 빅커스 전차가 T-26에게 달려들었다.

이놈도 TKS처럼 독일군에 의해 개조되어 핀란드에게 판매된 물건으로 독일제 37mm 전차포를 탑재하여 외형은 7TP와 구분이 힘들 정도로 닮아있었다.

“쏘아!”

T-26은 간단하게 불길에 휩싸였다.

핀란드 지원군이 가세하자 전의를 상실한 소련군은 전사한 전우들의 시체와 부상병들을 참호에 남겨둔 채 퇴각했다.

참호를 되찾은 핀란드군은 만세를 불렀다.

치열했던 교전은 아무것도 바꾸지 못하고 종료되었다.

소련군은 100명이 넘는 전사자를 내고도 현 위치에서 한 발자국도 나아가지 못했다.

모든 전선에 걸쳐 소련군은 연일 맹공을 퍼부어댔지만 철옹성 같은 핀란드군의 방어로 인해 제자리걸음만 반복하고 있었다.

***

핀란드 따윈 열흘 안에 충분히 제압할 수 있다고 자신하던 소련군은 핀란드군이 예상외로 격렬하게 저항하자 충격에 빠졌다.

그들이 허수아비 군대라 여겼던 핀란드군은 사자처럼 용맹하게 싸우며 소련군을 당황시켰다. 핀란드군뿐만 아니라 지랄맞은 추위도 문제였다.

소련도 춥기로는 소문난 나라지만, 핀란드에 비할 바가 못 되었다.

특히 핀란드와의 전쟁에 투입된 병력 상당수가 우크라이나와 카프카스 일대에서 징집된 병사들로 이들에게 핀란드의 동장군은 생전 처음 겪어보는 강추위였다.

소련에서 그나마 따뜻한 지역에 속하던 곳에서 태어나고 자란 병사들은 핀란드의 추위를 견디지 못했다.

아직 전투에도 투입되지 않은 부대에서조차 동상환자가 속출했고, 폭설로 보급이 마비되자 동사자까지 나오기 시작했다.

소련군이 준비한 월동장비는 병사들을 지켜주지 못했다.

소련군은 추위에 덜덜 떨면서 동상에 걸린 상태로 전투에 투입되었다.

추위에 익숙한 것도 모자라, 주변 지형지물까지 훤히 파악하고 있는 핀란드군을 상대로 말이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지휘관들의 무능도 소련군의 발목을 잡았다.

대숙청이 끝난 지 이제 겨우 1년이 지난 지라 아직 소련군에는 경험이 많고 유능한 장교가 턱없이 부족했다.

수많은 붉은 군대 장교들이 대숙청으로 빈자리를 메우기 위해 급속으로 진급한 어중이떠중이들이었으니 그들에게서 훈련을 받은 병사들의 질이 뛰어날 리가 없었다.

가뜩이나 장교들의 질도 떨어지는데, 공산주의 이론과 스탈린에 대한 무한한 충성심 외에 머리에 든 게 아무것도 없던 정치장교들은 툭하면 자신의 권한을 이용해 작전에 개입해 훼방을 놓았다.

“왜 아직도 공격하지 않는 겁니까, 동지?”

“정치지도원 동무, 내가 방금 말했잖소. 탄약이 부족해 공세는 무리요.”

“탄약의 부족 따위는 조국과 서기장 동지를 향한 충성심으로 충분히 해결할 수 있는 사소한 문제입니다. 당장 공격해야 합니다.”

“아니, 그게 말이 되는 소리요? 그리고 부족한 건 탄약만이 아니오. 보급이 이루어지지 않아 병사들이 이틀째 한 끼도 먹지 못했소. 의약품도 없어서 부상병들 치료도 못해주는 상황이고. 그런데 어떻게 공격한단 말이오?”

“말하지 않았습니까. 조국을 향한 충성심만 있으면 문제 될 게 없다고. 물자의 부족이 공세를 진행하지 않을 이유가 되지 않습니다. 지금 당장 공격하십시오. 그렇지 않으면 저는 대대장 동지 당신을 당에 고발할 수밖에 없습니다.”

“······.”

아무리 계급이 높은 장교일지라도 당에 직접 보고할 권한을 가진 정치장교들에겐 감히 손을 댈 수 없었다.

이런 정치장교들의 간섭과 협박 때문에, 소련군 지휘관들은 실패할 것을 뻔히 알면서도 공격을 감행해야만 했다.

공격이 성공하면 그나마 다행이지만 실패할 경우, 책임은 정치장교가 아닌 현장 지휘관이 졌다.

소련군은 그렇게 자신들의 손으로 애꿎은 장교 수백 명을 처형했다.

처형당한 장교들의 빈 자리는 현장 지휘 경험이 없는 초짜 장교들이 대신 채워야 했다.

“제기랄! 아직도 핀란드 놈들의 방어선을 뚫지 못했단 말인가!”

“소, 송구합니다, 원수 동지······.”

“천하의 붉은 군대가 이 무슨 개망신인가! 어? 다들 입이 있으면 말이라도 좀 해보게!”

“······.”

핀란드 침공군 총사령관을 맡은 클리멘트 보로실로프는 후대의 인식과 달리 완전히 무능한 장교는 아니었다.

그는 적백내전 당시 영국과 프랑스가 지원한 전차, 항공기 등 각종 신무기로 무장한 백군을 상대로 볼가강 유역의 도시 차리친을 지켜내는 공을 세웠고 기계화를 적극적으로 추진하여 소련군의 발전에 큰 기여를 했다.

하지만 보로실로프의 군사적 능력은 여전히 1920년대 수준에 머물러 있었다.

당연히 1939년의 전장에 그의 구시대적인 전략이 먹힐 리 없었다.

무능한 장교들과 시대착오적인 사령관, 거기에 부족한 보급과 상상을 초월한 추위, 결사항전하는 적군까지.

하나만 있어도 충분히 재앙인 문제점들이 한데 모이자, 대재앙이 일어났다.

보로실로프는 초조한 마음에 이를 악물었다. 얼마나 세게 악물었는지 잇몸이 얼얼할 지경이었다.

빌어먹을. 이게 아닌데······.

핀란드 같은 소국 따위는 가뿐하게 즈려밟을 수 있다고 생각했던 보로실로프는 전황이 자신의 예상과 정반대로 진행되자 여유를 잃었다.

기존에 준비했던 물자는 벌써 바닥을 드러낸 지 오래였고 병사들의 사기는 말이 아니었다. 정치장교들을 풀어 병사들을 철저히 감시하는데도 불구하고 탈영병들이 속출하고 있었다.

심지어 12월 12일 라도가 호수 북부 톨바예르비 전투에서 소련군 2개 사단이 핀란드군 1개 연대에게 패배하는 충격적인 사태까지 벌어졌다.

다급해진 소련군은 12월 14일에 재차 공세를 감행했지만, 이번에도 패배의 쓴맛만 본 채 공세 전의 위치로 물러설 수밖에 없었다.

핀란드군은 단순히 방어만 하는 게 아니라 역습을 가해 지칠 대로 지친 소련군을 각개격파했다.

“원수 동지!”

보로실로프의 지휘소로 뛰어 들어온 참모는 얼굴이 하얗게 질려 있었다.

“모스크바에서 걸려온 전화입니다!”

“모스크바? 모스크바라면······!”

참모는 굳은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예. 서기장 동지십니다.”

서기장이 무슨 이유로 자신에게 전화를 건 것인지 대강 눈치를 챈 보로실로프는 얼굴을 일그러뜨렸다.

올 것이 왔구나.

그는 터져나오려는 한숨을 억지로 참으며 전화를 받았다. 전화를 받자마자 스탈린의 짜증 섞인 목소리가 귀에 닿았다.

-보로실로프 동무?

“예, 서기장 동지.”

-아직도 헬싱키에 닿지 못했소?

“송구합니다, 동지. 핀란드군의 저항이 예상외로 강력합니다. 그래서···.”

-그래서?

수화기 너머로 들리는 스탈린의 목소리는 얼음장처럼 싸늘했다.

노장은 자기도 모르게 침을 삼켰다.

곰의 가죽으로 만든 두꺼운 코트를 입었는데도 등골이 서늘했다. 알몸으로 시베리아 한가운데에 내던져진 기분이었다.

“추가 지원을 요청합니다. 현 상황에선 진격이 불가능합니다.”

스탈린은 오랫동안 말이 없었다.

보로실로프는 잠시 통신이 두절된 게 아닌가 의심했을 정도였다.

-······잘 알겠소. 곧 지원을 보내주도록 하지.

한참 뒤에야 입을 연 스탈린의 말투는 지극히 사무적이었다. 그래도 일단 추가 지원을 약속받았으니, 급한 불은 끈 셈이다.

“감사합니다, 동지! 이번에는 반드시-”

-이번에는 부디 날 실망시키지 말았으면 좋겠소. 제발.

보로실로프의 말을 자른 스탈린은 마지막 경고를 남긴 뒤 일방적으로 전화를 끊었다.

지휘소 밖에는 진눈깨비가 섞인 칼바람이 불었다.

경비를 서는 병사들의 입과 코에서 하얀 김이 새어 나왔다.

너무나도 추운 겨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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