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폴란드, 폴란드, 우리 폴란드 (50/150)

폴란드, 폴란드, 우리 폴란드

1939년 9월 24일.

폴란드의 수도 바르샤바는 공식적으로 항복을 선언했다.

시민들의 사기 고취를 위해 프레데리크 쇼팽의 음악을 송출하던 바르샤바 방송국은 독일의 음악가 리하르트 바그너의 음악을 내보냈다.

바르샤바의 최후에 걸맞는 장송곡이었다.

같은 날, 폴란드 동부 샤츠크에선 폴란드군과 소련군 사이의 대혈투가 벌어졌다.

적에게 승기가 기운 상황임에도 폴란드군은 한 치의 물러섬 없이 침략자들에게 맞섰다.

“목표, 11시 방향의 T-26! 거리 250, 철갑탄!”

“장전 완료!”

T-26의 포탑에 47mm 철갑탄을 박아넣은 빅커스 전차의 전차장은 적 전차 포탑에 균열이 생기는 것을 보고 주먹을 불끈 쥐었다.

성능상 열세에도 불구하고 빅커스는 T-26들을 상대로 호각에 가까운 싸움을 벌였다.

폴란드 전차병들의 숙련도가 높은 것도 있지만, 소련군의 상태가 말이 아닌 것도 한몫했다.

대숙청으로 유능한 장교들이 대거 처형당하는 바람에 소련군의 숙련도는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로 추락한 상태였다.

또 한 대의 T-26이 측면을 맞고 격파당했다.

그제야 적이 측면에 나타났다는 사실을 인지한 소련군은 방향을 바꿔 빅커스 전차를 노렸다. 하지만 이는 폴란드군의 계획대로였다.

적의 시선이 측면으로 향하자, 매복했던 TKS들이 튀어나와 소련군에게 달려들었다.

기관총이 달린 보통의 TKS와 달리 20mm FK-A 기관포를 장착해 대전차전이 가능한 버전이었다.

20mm 기관포에 난사당한 T-26이 차례대로 불타올랐다. 전차 내부에 들러붙은 전차병들의 내장 조각이 화염의 열기 속에서 익어갔다.

1939년의 전장에는 다소 어울리지 않는 르노 FT-17도 소련군 보병들을 상대로 대활약했다.

1차대전 때 만들어진 구식 전차여도 소총탄 정도는 충분히 방호가 가능했기에 일개 보병들에겐 사신이나 다름없었다.

샤츠크 전투는 폴란드군의 승리로 끝났지만, 이미 기울어진 전황을 뒤집기엔 역부족이었다. 수도가 함락당하고 정부가 외국으로 도피한 시점에서 그들의 승리는 더 이상 아무 의미가 없었다.

“자, 찍습니다! 웃어요, 웃어!”

“와하하하하!”

폴란드를 횡단해 전선에서 서로 조우한 독일군과 소련군은 승리를 자축했다.

독일군들은 소련 전차에 앉아 사진을 찍었고 소련군들은 독일제 담배를 입에 물었다.

불과 두 달 전까지만 해도 상상할 수 없었던 광경이었다.

양국의 실무자들도 새로운 국경선의 논의를 시작했다.

루마니아로 탈출했던 폴란드 제2공화국의 대통령 이그나시 모시치츠키는 대통령직에서 사임했고 파리에 있던 폴란드 상원의장 브와디스와프 라치키에비치가 폴란드 임시정부의 대통령직을 넘겨받았다.

리츠시미그위의 숙적이자 전직 총리였던 브와디스와프 시코르스키 중장은 폴란드 임시정부의 총리 겸 자유 폴란드군 총사령관으로 임명되었다.

“폴란드 국민 여러분! 절망하지 마십시오. 폴란드는 결코 항복하지 않을 것입니다!”

“비록 지금은 침략자들의 압제에 굴하더라도, 조국을 향한 충정과 저희를 향한 믿음만큼은 버리지 마십시오.”

“우리는 반드시, 반드시 조국에 돌아올 것입니다!”

라치키에비치와 시코르스키가 파리에서 연설하던 28일, 헬 반도의 폴란드군이 항복했다.

그들이 독일군과 싸우던 마지막 병력이었다.

1939년 9월 29일.

폴란드는 침묵했다.

***

폴란드는 지도에서 사라졌다.

독립한 지 21년 만에,

전쟁이 터지고 4주 만에.

4주 동안 폴란드군은 8만 명이 죽고 17만 명이 부상당했으며 42만 명이 포로로 잡혔다.

이는 철저히 군 병력의 숫자만 계산한 것으로, 전쟁에 희생된 민간인들의 숫자까지 합치면 규모가 더 커질 것이다.

아군의 피해규모 또한 전사자 9천 명에 부상자 2만 명으로 적지 않았다. 그러나 단순 수치로만 봐도 독일의 대승이라는 사실은 누구도 부정할 수 없었다.

폴란드 침공의 성공으로 독일 전역은 축제 분위기에 휩싸였다.

내가 폴란드 침공의 종료를 선언하던 날, 라디오에선 연일 호르스트 베셀의 노래와 바덴바일러 행진곡이 흘렀다.

사람들은 직장과 학교에서 거리로 쏟아져나와 만세를 외쳤다.

경찰과 SS가 몇 겹이나 되는 저지선을 형성하였음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의 대군에 밀릴 정도였다.

저러다 사고라도 일어나는 게 아닌가 싶을 정도로 관저 앞에는 수많은 사람들이 모였다.

나는 발코니로 나와 군중의 환호에 답했다.

내가 모자를 벗어 인사를 하는 것만으로도 사람들은 열광했다.

“하일 히틀러! 하일 히틀러!”

“지크 하일! 하일 히틀러!”

“총통께서 날 보셨어! 날 보셨다고!”

“널 보신 게 아니라 우릴 보신 거야!”

사람들은 해가 진 후에야 하나둘씩 집으로 돌아갔다. 하지만 통금 시간인 저녁 9시가 될 때까지 적지 않은 수가 현장에 남아있었다.

관저를 경비하던 병사들이 이제 그만 집으로 돌아가라고 말을 해도 그들은 좀처럼 발걸음을 돌리지 못했다.

“여러분, 시간이 늦었습니다. 이제 그만 돌아가시-”

“끼아아아아악!!!”

“총통이시다! 총통께서 우릴 보러 나오셨어!”

“사랑합니다!”

팬서비스 차원에서 다시 한번 발코니 밖으로 나오자 사람들은 미친듯이 환호했다.

사람 수는 더 줄었는데도 불구하고 낮의 함성 크기에 꿀리지 않을 정도였다.

이놈의 인기란.

자랑은 이쯤하고 식사가 끝났으면 설거지를 해야 하듯, 전후 처리에 들어갈 시간이다.

폴란드 서부는 제국령으로 편입되었으며 독소 불가침조약에 따라 폴란드 동부는 소련의 영토가 되었다.

“나머지 폴란드 땅은 어떻게 하실 겁니까?”

“당연히 나머지도 체코처럼 제국의 영토로 삼아야 하지 않겠나. 폴란드의 새 이름으로 ‘폴란드 보호령’ 정도면 괜찮겠지.”

수도 바르샤바를 포함한 폴란드 중부지역도 제3제국의 영토로 합병되었지만, 보헤미아-모라비아 보호령의 사례처럼 보호령으로 남았다.

“이제 총독을 누구로 할지 정해야 하는데······.”

실제 역사에서 총독을 맡았던 한스 프랑크는 기각이다.

히틀러의 명령에 의한 것도 있지만, 지나칠 정도로 잔인한 정책을 펴는 바람에 백만에 달하는 폴란드인들을 파르티잔으로 만들었고 전선이 독일 본토로 밀려나기 전까지 독일군은 폴란드 치안 유지에만 수십만 병력을 할애해야 했다.

대독일을 위해서 폴란드의 존재를 지워버려야 한다는 말에는 동의하지만, 나치가 행했던 잔혹한 통치를 그대로 답습할 생각은 없다.

도덕상의 문제도 있고 지나치게 비효율적이다.

조금만 거슬린다고 닥치는 대로 죽이면 폴란드인들이 말을 듣겠냐고. 더욱 지랄발광을 하지.

사람은 짐승과 달리 매를 때리면 때릴수록 더욱 거칠게 반항하는 법이다.

따라서 폴란드를 온건하게 다스릴 수 있으면서도 폴란드인들의 반발을 잠재울 이가 필요했다.

전 외무장관이었던 콘스탄틴 폰 노이라트가 딱 알맞는 인물인데, 안타깝게도 그는 현재 보헤미아-모라비아 보호령의 총독을 맡고 있다.

힘러는 프랑크와 별 차이가 없으니 패스.

하이드리히는 어떨까? 이놈도 잔혹성만 따지면 프랑크에 버금가는 놈이지만, 무식하게 처형만 일삼던 프랑크와 달리 채찍과 당근을 적절히 사용할 줄 아는 녀석이라 총독으로 제격이긴 하다.

암살당하기 전까지 체코의 레지스탕스들을 대거 토벌하는 전과를 올리기도 했고.

하지만, 하이드리히를 폴란드 총독으로 임명했다간 국방군에서 반발이 나올지도 모른다.

형식상의 직위이긴 하나 노이라트도 SS 소속인데 하이드리히까지 앉히면 저놈들이 얼마나 투덜거리겠는가. 가뜩이나 이번 침공도 국방군이 거의 다 했는데.

2차 장검의 밤 이후로 내 명령에 찍소리도 못한다지만 그래도 괜한 불만을 사서 좋을 게 없다.

그러므로 하이드리히도 기각.

마우리스는 어떨까? 인성도 좋고, 근면성실한 데다 능력도 나름 있으니 괜찮지 않을까?

······아, 맞다. 얘도 SS였지.

헤스도 SS 대장 직위를 가지고 있으니 기각.

빌헬름 프리크는? 이미 내무장관을 맡고 있는데다 마찬가지로 자비가 없던 친구라 역시 기각.

고심 끝에 낙점된 이는 나치당 당수-사실상 명예직이지만-를 맡고 있는 안톤 드렉슬러였다.

다른 사람도 많은데 왜 드렉슬러냐고?

나치당 창당인이라는 상징성도 있고 드렉슬러가 당 고위층 중에서 국방군과 SS, 두 집단과 정확한 중립을 유지하는 몇 안 되는 사람이라는 이유도 있지만, 당 초창기부터 함께 해온 동지인데 몇 년 동안 그에 걸맞는 대우를 하지 못한 것에 대한 사과의 의미이기도 했다.

나치당 당수이긴 해도 사실상 명예직에 불과한 드렉슬러를 폴란드 총독이라는 막중한 자리에 앉힐 필요가 있냐는 반대의 목소리가 국방군에서 나왔지만, 내가 다음 카드를 꺼내 들자 곧바로 조용해졌다.

교통사고로 입원했다가 퇴원한 프리치를 원수로 진급시킴과 동시에 그에게 ‘폴란드 보호령 주둔 독일군 최고사령관 겸 총독 대리’라는 으리으리한 직책을 준 것이다.

처음엔 블롬베르크로 할 생각이었는데, 여전히 상태가 좋지 않아 복귀가 무리였다.

정작 더 큰 부상을 입었던 프리치는 블롬베르크보다 빨리 회복되었기에 그를 낙점하기로 했다.

이대로 퇴역하는 게 아닌가 불안해하던 프리치는 내 선물에 크게 만족했고 국방군도 더 이상 반대하지 못했다.

말은 안 해도 실질적인 총독은 프리치다, 라고 선언한 것이나 다름없으니까.

폴란드 총독으로 드렉슬러를 낙점하던 날, 나는 간만에 그와 만나 저녁식사를 했다. 올림픽 때 마지막으로 만났으니 거의 3년 만의 만남이었다.

“아디, 자네가 날 위해 이런 선물을 주리라곤 몰랐네만?”

그간 뮌헨에서 있는 듯 없는 듯 조용히 지내던 중에 갑자기 폴란드 총독이라는 어마어마한 직책을 맡게 된 드렉슬러의 얼굴은 의심 반 놀라움 반이었다.

“지지리도 가난하던 시절부터 함께 했던 동지인데, 그동안 내가 너무 무심한 것도 있고 해서 챙겨주는 것일세.”

“그래봤자 명예직이겠지.”

거저 주는 자리에 실권이 있을 리 없다는 사실을 드렉슬러는 모르지 않았다. 최소한 그 정도 눈치는 있었다.

“알긴 아는군. 그럼 어떻게 할까? 다른 사람 줘?”

“싫다고는 말 안 했네.”

말은 시큰둥하게 했어도 표정을 보니 싫은 눈치는 아니다. 명예직이면 뭐 어떤가. 자그마치 총독인데!

“안 그래도 자네를 그 자리에 앉히려고 내가 얼마나 애를 썼는지 모를 걸세. 어지간한 일은 프리치가 알아서 처리할 테니, 자네는 그냥 거들기만 하면 돼. 그래도 중요한 사항은 꼭 자네와 함께 의논해서 결정하라고 일러뒀으니, 아주 허울뿐인 자리는 아닐 거야.”

“나쁘지 않군. 그래, 이참에 사냥도 다니고 좀 쉬어야겠어. 허구한 날 사무실에 처박혀서 업무만 보는 것도 지겨운 참이었으니 말일세.”

“오늘은 잔뜩 마시자고. 내가 쏜다.”

이날 우리는 잔뜩 취했다.

코가 삐뚤어질 때까지 마신 것은 총통이 된 후로 이번이 처음이었다.

드렉슬러는 개인 비서들에게 업혀서 이동했고, 나는 크라우제의 도움을 받아 겨우 관저로 돌아갔다.

***

총독 문제는 일단락됐지만, 여전히 처리할 문제는 산더미같이 쌓여있었다.

제국령과 보호령의 구역 조절 이후에 논의된 것은 제국령으로 편입된 서프로이센과 포젠, 그리고 폴란드 서부에 살고 있던 폴란드인들의 거취 문제였다.

“당연히 모두 보호령으로 추방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힘러의 의견이었다.

괴링도 힘러의 말에 동조했다.

“엄연한 독일의 영토에 폴란드인들이 살고 있는 것은 말이 안 되는 일입니다. 모조리 추방하심이 옳습니다.”

“굳이 그럴 필요 있소? 제2제국 시절에도, 서프로이센과 포젠에는 폴란드인들이 많이 살았소. 그러니 그들까지 굳이 내쫓을 필요는 없다고 생각하는데.”

이미 서프로이센과 포젠에 살던 폴란드인들 다수는 전쟁이 터지자 동쪽으로 피난을 갔지만, 여전히 고향에 그대로 살고 있는 폴란드인들의 숫자도 많았다.

독일의 영토를 깨끗이 한다는 명목으로 이들을 고향에서 내쫓아 괜한 원한을 사고 싶지 않았다.

“총통 각하, 폴란드인들 같은 운터멘쉬(Untermensch, 열등인종)들에게 자비를 베푸시면 안 됩니다. 놈들은 우리의 영토를 더럽히고 아리아인의 유전자를 타락시키는 전염병 같은 존재들이란 말입니다!”

그놈의 유전자 운운은 질리지도 않냐? 거 들을 때마다 피곤해 죽겠네.

그리고 나는 원래 한국인이거든? 니들이 그토록 싫어하는 동양인이라고.

후, 아니다.

성질 같아선 저놈의 면상에 주먹을 날리고 싶지만, 이놈들은 내가 진짜 히틀러가 아니라는 사실을 몰라서 하는 말이니 내가 참을 수밖에.

“이렇게 하지. 강제로 내쫓기는 뭣하니, 폴란드인들에게 어디서 살지 선택권을 주자고.”

“그러면 전부 제국령에서 살려고 하지 않겠습니까?”

“그러니까 차별을 둬야지. 제국령에서 사는 것을 택하면 독일어를 의무적으로 배우게 하고 주기적으로 시험도 치게 하는 걸세. 독일 땅에서 사는데, 독일어를 모르면 말이 안 되니 말이야. 시험에서 떨어지면 벌금을 먹인다던가 등의 방법으로 불이익을 주고.

대신 보호령에선 독일어를 배우되 시험을 칠 필요가 없지. 독일어를 몰라도 사는데 지장이 없으면, 폴란드인들이 독일어를 배우기 힘들어서라도 보호령으로 가지 않겠나.”

“음, 나쁘지 않은 방법이군요.”

“총통 각하. 기발하신 방법입니다만, 역으로 보호령에 있는 폴란드인들이 제국령으로 넘어오는 일이 생길 수 있지 않겠습니까?”

괴링이 제기한 의문은 나조차 생각하지 못한 것이었다.

그래, 그럴수도 있겠군. 보호령보다 제국령이 더 살기 좋다면, 틀림없이 기를 쓰고서라도 제국령으로 넘어올 폴란드인들이 많이 생길 터였다.

“원래부터 보호령에 거주하던 폴란드인들의 제국령 이주를 엄격하게 제한하면 되지 않겠나? 의사나 기술자 같은 고급인력들만 제국령으로 이주할 수 있게 하고. 물론 이것도 규모를 정해놔야겠지. 폴란드에 있는 의사들이 죄다 제국령으로 오면 그건 그것대로 골치아픈 일이니까.”

힘러는 이조차 너무 온건하다며 반대했으나 힘러를 제외한 다른 이들은 대체로 찬성이었다.

“필요 이상으로 가혹하게 굴면, 파르티잔에 합류하는 폴란드인들이 늘어날 겁니다. 이 정도면 충분하다고 봅니다.”

“그렇죠. 파르티잔이 늘면 우리 입장에선 좋을 게 하나도 없습니다. 가뜩이나 프랑스와 영국이 건재한데 폴란드에 많은 병력을 할애할 수 없습니다.”

카이텔과 브라우히치의 지원사격에 힘러는 괴링과 괴벨스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필시 자신을 지지해달라고 요청하는 것이겠지.

하지만,

“총통 각하의 말씀이 옳습니다. 이 정도면 충분한 방책이라고 생각하는데요, 힘러 장관.”

“당장 급한 문제는 아니니 차차 의논하도록 하지.”

“······두 분 의견이 모두 그러하다면 저도 찬성할 수밖에요.”

괴링과 괴벨스까지 발을 빼자 힘러는 결국 백기를 들었다.

꼬시다, 이 녀석.

폴란드 보호령의 새 수도로는 크라카우(Krakau, 크라쿠프)가 선정되었다.

폴란드에서 바르샤바 다음으로 규모가 큰 도시인데다, 항복 대신 저항을 선택했다가 반쯤 박살이 난 바르샤바와 다르게 전쟁 초반부터 무방비도시를 선언해 독일군을 무혈입성시킨 덕분에 인프라가 온전하게 남아있었다.

보호령의 대통령으로는 크라쿠프 시장 스타니스와프 클리메츠키가 임명되었다.

전쟁 초기인 9월 6일에 독일군을 찾아가 자신이 포로가 될 테니 도시를 파괴하지 말아 달라고 요청한 남자로, 도시 주민들 사이에서 많은 존경을 받고 있는 인물이니 보호령의 대통령감으로 안성맞춤이었다.

어차피 할 일이라곤 가만히 앉아서 서류에 도장 찍고 사진이나 몇 장 찍어주는 얼굴마담 역할뿐이니 누굴 세워도 상관없지만, 조금이라도 폴란드인들의 호감을 살 수 있는 인물을 세워야 통치가 더 수월하지 않겠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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