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바르샤바로 가는 길 (4) (49/150)

바르샤바로 가는 길 (4)

1939년 9월 22일

폴란드 바르샤바

“흐아암.”

낮잠에서 깨어난 비트만에게 조종수 헤르베르트 하셀 SS 상병이 커피가 든 컵을 내밀었다. 졸음을 쫓는데 커피만한 것도 없었다.

“고맙네.”

오랜만에 맛보는 꿀맛 같은 낮잠이었다. 2시간밖에 자지 못했지만, 몸에 쌓인 피로가 반으로 줄어든 것 같았다.

“어떻습니까?”

“생각보다 괜찮은데, 크림이 안 들어가서 조금 아쉽군.”

“바라는 것도 많으십니다.”

건물의 잔해에서 찾아낸 가죽의자에 앉아 비트만은 한가롭게 커피를 마셨다.

크림은커녕 설탕도 넣지 않아 밍밍한 커피였지만, 전장에서 한가하게 커피를 마실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사치스러웠다.

“여기가 ‘동유럽의 파리’라니. 믿을 수 없군.”

“전쟁통이니 어쩔 수 없죠.”

전쟁이 터지기 전, 바르샤바는 동유럽의 파리로 불리울만큼 환상적인 경관을 자랑하는 아름다운 도시였다.

하지만 전쟁이 터진 뒤, 루프트바페의 무차별적인 공습으로 바르샤바는 폐허가 되고 말았다.

바르샤바 시민들이 산책을 즐기던 가로수길은 전쟁 첫날에 공습으로 홀라당 타버렸고 멋들어진 카페와 레스토랑들은 포격을 받아 쓰레기더미가 되었다.

무너진 건물의 잔해에는 사람의 팔다리가 삐쭉삐쭉 튀어나와 있었다.

굶주린 들개와 고양이들이 죽은 시체의 살점을 물어뜯었고 까마귀 떼가 시체 썩는 냄새를 맡고 모여들었다.

불과 3주 만에 바르샤바는 동유럽의 파리에서 거대한 쓰레기장으로 탈바꿈했다.

전쟁통에 도시가 파괴되는 것은 슬프지만, 어쩔 수 없는 일이다.

소시지를 먹으려면 돼지를 죽여야 하듯이 모든 사람이 언젠가는 죽듯이 피할 수 없는 일이었다.

비트만은 커피를 마시며 주변을 둘러봤다.

이따금씩 들려오는 총성이 바르샤바에서 전투가 지속 중이라는 사실을 증명했다.

몇몇 병사들은 총성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폐허 이곳저곳을 돌아다녔다.

가족에게 편지로 보내거나, 후대의 손자들에게 자랑할 기념사진을 찍기 위해서였다.

개인 카메라를 가진 병사들은 소정의 돈을 받고 병사들의 사진을 찍어줬다.

개인 사진을 찍는 병사도 있었고, 단체 사진을 찍는 병사들도 있었다.

단정하게 차렷 자세로 서서 사진을 찍는 이부터 별의별 요상한 포즈를 취하는 이까지 가지각색이었다.

“비트만 SS 중사님! 중대장님의 호출입니다!”

“간다고 전해.”

***

비트만의 중대는 폴란드군 잔당들에게 고전 중인 육군 보병연대를 지원하는 임무에 투입되었다.

잔해 뒤에 적이 숨어있을지 모르므로 주변경계는 필수였다.

긴장을 늦추면 실수를 하기 마련이고 일상에선 그냥 지나갈법한 사소한 실수 하나가 전장에서는 목숨을 앗아갈 수 있었다.

“꼭 술래잡기를 하는 기분입니다.”

“목숨을 건 술래잡기 말이지.”

통신수의 농담에 가볍게 대꾸하면서 비트만은 주의깊게 주변을 살폈다.

적의 표적이 될 위험에도 불구하고 독일군 전차장들은 늘 해치 밖으로 얼굴을 내밀고 다녔다.

해치를 밀폐한 상태에서는 큐폴라의 관측창만으로 주변을 살펴야 하는데, 그러면 사각이 생겨 제대로 된 지형지물 파악이 힘들기 때문이었다.

이 같은 이유로 독일군 전차장들은 해치를 열고 다니는 것을 선호했다.

“소대, 정지.”

뭔가를 발견한 비트만이 정지를 명하자, 4대의 전차들이 일제히 정지했다. 전차들이 멈추자 보병들도 발걸음을 멈췄다.

“무슨 일인가, 중사? 엔진에 이상이라도 생겼나?”

보병들을 이끌던 젊은 중위가 물었다. 그는 육군 소속이라 SS 중사인 비트만을 그냥 중사라고 불렀지만 비트만은 개의치 않았다.

“그건 아닙니다. 엔진은 멀쩡합니다.”

“그러면 왜 멈춘 건가?”

“적이 이 근처에 있는 느낌이 들어서 그렇습니다. 보병들에게 주변 수색을-”

“근거는 있나?”

중위는 비트만의 말이 가당찮은 듯 코웃음을 쳤다. 비트만은 고개를 저었다.

“근거는 없습니다. 순전히 제 감입니다.”

“겨우 자네의 감 때문에 정지를 명한 건가? 어처구니 없는 소리하지 말고 얼른-”

어디선가 들려온 기관총 소리와 함께 중위는 벌집이 되어 쓰러졌다.

“적습이다!”

“모두 엎드려라!”

비트만의 감이 맞았다. 정말로 잔해 뒤에 폴란드군이 숨어 있었다.

본래 폴란드군의 계획은 적이 더 가까이 접근하면 사격하는 것이었지만, 독일군이 움직일 기미를 보이지 않자 먼저 행동에 나선 것이었다.

그러나 독일군은 폴란드군의 사격이 시작되자 잽싸게 좌우 건물 뒤로 피신했다.

비트만은 포탑을 왼쪽으로 돌려 적의 기관총 사수를 겨냥했다.

창가에 기관총을 거치한 적병은 전차가 자신을 겨냥하고 있는 줄은 꿈에도 모른 채 사격에 열중했다.

37mm 주포에 불을 당기자, 폴란드군은 기관총과 함께 산산조각났다.

적은 보병들만 있는 게 아니었다. ZB-53을 쏴대던 통신수가 적을 발견하곤 소리쳤다.

“정면에 적 전차입니다!”

콘크리트 덩어리와 벽돌 더미에 교묘하게 숨은 TKS 1대가 독일군을 향해 기관총을 쏘고 있었다.

크기가 워낙 작아 승무원 2명이 겨우 들어갈 수 있을 정도지만 승용차보다 작은 차체 덕분에 매복에 유리하다는 장점도 있었다.

“장전 완료!”

적 전차라는 소리를 듣자마자 탄약수는 알아서 철갑탄을 꺼내 약실 안으로 밀어넣었다. 오랜 훈련의 결실이 실전에서 드러나는 순간이었다.

철갑탄을 명중당한 TKS가 불길에 휩싸이기 무섭게 또 한 대의 전차가 추가로 나타났다. 7TP 전차였다.

7TP의 37mm 주포를 보는 순간 비트만은 등골이 서늘해지는 것을 느꼈다.

“하셀, 전진!”

순간의 판단이 목숨을 구했다.

7TP가 쏜 포탄은 간발의 차이로 비트만의 전차를 비껴갔다.

“장전 끝!”

비트만은 포탑을 돌려 적 전차의 정면을 조준했다. 7TP는 서둘러 후진했지만, 비트만이 더 빨랐다.

37mm 철갑탄에 전면을 관통당한 7TP에서 피투성이가 된 전차장이 튀어나왔다.

다른 탈출자는 없는 걸로 보아 그가 유일한 생존자인 듯했다.

부상을 입은 전차장은 항복하려는 생각인지 두 손을 치켜들었지만, 독일군 보병들이 기관단총을 발사해 그를 고꾸라뜨렸다.

전사한 중위를 대신해 병사들을 지휘하던 원사가 병사들을 호되게 질책했지만, 이미 폴란드 전차장은 숨을 거둔 뒤였다.

비트만은 혀를 찼다.

아무리 적군이라지만, 항복하는 상대를 굳이 사살할 필요가 있나 싶었다. 그러나 전쟁터는 그가 감상에 젖을 시간을 허락하지 않았다.

“2시 방향에 적 전차입니다!”

“또?!”

비트만은 어이가 없었다. 대체 몇 대가 숨어있는 거야?

앞의 놈들과 달리 이번에는 전차 2대가 동시에 나타났다. 비트만은 서둘러 포탑을 회전시켰다.

2호차가 발포하여 빅커스 한 대를 해치웠지만, 다른 한 대는 비트만을 향해 발포했다.

전차에 진동이 느껴지자 전차병들은 반사적으로 눈을 감았다. 하지만 전차가 관통당한 것은 아니었다.

주포의 관통력이 형편없다고 평가받는 빅커스여도 이 거리에선 충분히 38(t)의 25mm 전면장갑을 관통할 수 있었다.

하지만 각도가 좋지 않아 47mm 포탄은 전면에 기다란 탄흔만 남기곤 튕겨나갔다.

비트만과 그의 부하들에겐 가히 천운이었다.

하지만 폴란드군 전차병들에겐 불운이었다. 일격에 적을 제압하는데 실패했으니, 다음 장전까지 기다려야 했다.

폴란드군 탄약수가 포탄을 장전하는 사이, 비트만이 주포에 불을 당겼다.

전면을 관통당한 빅커스는 폭발을 일으켰다. 장갑에 난 구멍 밖으로 샛노란 화염이 혀를 내밀었다. 전차병들의 입에서 환성이 터져 나왔다.

“대단하십니다, SS 중사님! 겨우 2분 만에 전차를 3대나 잡으시다니!”

“이걸로 철십자훈장은 확정이군요!”

“이 정도 가지고 뭘. 그냥 운이 좋았을 뿐이야.”

부하들의 극찬에 머쓱해진 비트만은 고개를 저었다. 자신이 살아남은 것은 순전히 실력이 아니라 운 때문이었다.

만약 폴란드 전차병의 움직임이 조금만 더 빨랐다면, 적의 포탄이 조금만 더 우측에 맞았더라면 그는 생존을 장담할 수 없었다.

삶과 죽음은 종이 한 장 차이라는 말을 다시금 실감하게 되는 순간이었다.

***

1939년 9월 23일

폴란드 바르샤바 시청

“여기까지가 끝인 것 같습니다.”

바르샤바 방어군 사령관 율리우스 룸멜 소장의 말에 바르샤바 시장 스테판 스타진스키가 놀라서 되물었다.

“그게 무슨 말씀입니까, 장군? 최후까지 바르샤바를 사수하겠다고 말한 건 당신이 아니었습니까?”

폴란드가 독립하기 전, 폴란드의 국부 요제프 피우수트스키가 지휘하는 폴란드 군단의 일원으로 최전선에서 싸웠던 스타진스키는 개전 첫날 다른 정부 요인들과 함께 도시를 떠날 수 있었지만, 시장인 자신이 도시를 떠나는 것은 말도 안 된다며 바르샤바에 남았다.

그는 위험하다는 주변의 만류를 무릅쓰고 방공호를 떠나 직접 라디오 방송에 출연하여 병사들과 시민들을 독려했으며, 물자의 배분과 피난민들이 머물 거처 마련도 도맡아 지휘했다.

애국자인 그에게 항복이란 것은 결코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아직 우리에겐 탄약과 식량이 남아있습니다! 병사들과 시민들도 최선을 다해 적과 싸우고 있습니다. 심지어 어린 학생들과 노약자들조차! 그런데 그들을 책임져야할 당신이 항복을 주장하다니, 말이 되는 소리입니까?”

“나도 이런 말은 하고 싶지 않습니다. 하지만 전황이 너무 절망적입니다.”

룸멜은 두 손으로 얼굴을 쓸어내렸다.

혈기 왕성하고 지칠 줄 몰랐던 군인이었던 룸멜은 이제 없었다. 전쟁에 지치고 피로에 찌든 노병만이 남아있을 뿐이었다.

“식량? 탄약? 물론 남아있겠죠. 하지만 그 양이 터무니없이 작다는 사실을, 당신도 알지 않습니까.”

“그건 그렇지만······.”

룸멜의 말에 스타진스키는 꿀 먹은 벙어리가 되었다.

바르샤바에 남은 탄약과 식량은 겨우 며칠 분량밖에 되지 않았다.

이마저도 최대한 아끼고 아낀 것으로, 정상적으로 배급한다면 3일 치도 되지 않았다.

얼마 남지 않은 식량들조차 병사들에게 우선적으로 배급되었기에, 많은 시민들이 굶주림에 시달리고 있었다.

체력이 약한 아이들과 노약자들이 먼저 숨을 거뒀고, 부상병들이 그 뒤를 이었다.

물자를 운반하던 말이 파편을 맞고 쓰러지면 굶주린 사람들이 득달같이 달려들어 칼이나 쇠붙이로 말의 살점을 잘라 그 자리에서 입에 쑤셔 넣었다.

때문에 이질을 비롯한 여러 전염병이 돌았다.

이질에 걸린 사람들은 대소변을 통제하지 못했다. 그들은 변의를 느낄 틈도 없이 바지에 설사를 했다.

사람들이 죽으면 그들을 파묻을 사람도, 자리도 없어서 대충 구석에 방치되었다.

이질에 걸려서 죽은 사람을 옮기던 사람들도 이질에 걸렸고, 그들이 죽어서 주검을 옮기던 사람들도 병에 걸리는 악순환이 반복되었다.

“기아와 전염병으로 죽는 사람들의 숫자가 독일군의 포격으로 죽는 사람들보다 더 많을 지경입니다. 웃기는 게 뭔지 아십니까? 사람들이 죽은 수만큼 식량에 여유가 생겨야 하는데, 그게 티가 나지 않을 정도로 식량이 부족하다는 겁니다!”

룸멜은 분에 못 이겨 탁자를 내리쳤다. 스타진스키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시장님의 말대로 전투를 계속하는 게 불가능한 일은 아닙니다. 하지만, 불쌍한 시민들은 더더욱 고통받겠죠.

시민들뿐만 아니라 병사들도 지쳤습니다. 어제만 해도 서른 명이 넘는 병사들이 탈영했는데, 탈영병들을 검거할 헌병들조차 탈영에 가담하는 판국입니다.

소련까지 전쟁에 개입한 이상, 폴란드는 이미 망했습니다. 하지만 나라가 망하더라도, 살 사람은 살아야 하지 않겠습니까?”

룸멜은 말하는 것조차 고통스럽다는 듯 눈을 질끈 감았다.

분노로 가득했던 스타진스키의 목소리는 이제 절망으로 가늘게 떨리고 있었다.

“정녕······ 이 방법뿐입니까?”

“달리 도리가 없다는 거, 시장님도 아실 텐데요. 항복 외엔 답이 없습니다. 추마 장군도 제 의견에 동의하셨습니다.”

룸멜의 상관인 발레리안 추마 중장도 더 이상의 항전은 무의미하다는 룸멜의 주장에 동의했다.

스타진스키는 고개를 떨구었다.

“······알겠습니다. 장군의 뜻에 따르지요.”

“감사합니다, 시장님.”

***

“각하, 폴란드 협상단이 도착했습니다.”

“안으로 들여보내게.”

 요하네스 블라스코비츠 상급대장은 얼굴에 옅은 웃음을 띤 채 폴란드 협상단을 맞이했다.

바르샤바 공략을 맡은 독일군 중에서도 가장 계급이 높은 그는 총통으로부터 독일군을 대표해 폴란드 협상단과 협상해도 좋다는 허가를 받은 상태였다.

“우리가 원하는 건 하나뿐이오. 바르샤바에 있는 모든 폴란드군의 항복. 다른 조건은 없소이다.”

협상의 주도권이 자신에게 있다는 사실을 상대에게 주지시키기 위해 블라스코비츠는 일부러 고압적인 자세로 나왔다.

예상대로 협상단은 블라스코비츠의 단호한 태도에 기가 죽었다. 협상단 대표 발레리안 추마가 말했다.

“이쪽의 조건에 대해서 말씀드려도 되겠습니까, 각하?”

추마는 블라스코비츠를 장군이라는 말 대신 각하라는 존칭으로 대했다.

상대방의 저자세에 기분이 좋아진 블라스코비츠는 발언을 허락해주었다.

“말해보시오.”

“저희가 원하는 것은 그리 대단한 게 아닙니다. 포로들의 정당한 대우와 부상자들의 치료, 그리고 바르샤바 시민들을 위한 식량과 의약품의 제공입니다. 그들은 전쟁과 관련없는 민간인들에 불과한데도 너무나 큰 고통을 받았습니다. 부디 선처해주십시오.”

“포로 대우는 걱정하지 마시오. 독일 국방군은 제네바 조약을 철저히 준수하니까. 대신 식량과 의약품 지급은 생각을 해봐야 할 것 같소. 우리 병사들 몫의 식량과 의약품을 그대들에게 선뜻 내어주기란 그리 쉬운 일이 아니오.”

블라스코비츠가 퇴짜를 놓자, 추마가 황급히 말했다.

“아주, 아주 일부라도 좋습니다. 각하께서 의약품을 제공해주신다면 한 명이라도 더 많은 목숨을 구할 수 있습니다. 거, 거기다 우리 국민들도 각하의 은혜를 잊지 않을 겁니다.”

“흐으음.”

상대의 절박한 애원에 블라스코비츠는 고민에 빠졌다.

독일군에게 식량과 의약품은 있었지만, 바르샤바의 폴란드인들에게까지 돌아갈 정도의 여유는 없었다.

게다가 허가없이 적국 국민들에게 귀중한 물자를 나눠줬다간 나중에 다른 소리를 듣게 될지도 몰랐다.

“잠깐 기다리시오.”

확신이 서지 않은 블라스코비츠는 베를린의 총통에게 직통전화를 걸었다. 총통의 답변에 따라, 그의 답변도 달라질 예정이었다.

-무슨 일이오, 장군? 폴란드인들이 항복한답니까?

“총통 각하. 저들이 항복의 뜻을 밝히긴 했습니다만, 그 대가로 식량과 의약품의 일부를 요구했습니다. 어떻게 할까요?”

블라스코비츠는 폴란드의 요청을 거절했다가, 악에 받친 폴란드인들이 끝까지 저항하는 일을 염려하고 있었다.

물론 그런다고 결과가 달라지는 일은 없겠지만, 추가적인 사상자가 발생하는 일은 그도 피하고 싶었다.

-당장은 저들의 요구를 들어주겠다고 말하고, 극히 일부만 주시오. 우리도 식량과 의약품이 부족하다고 사실대로 밝힐 필요는 없으니 말이오.

“알겠습니다, 총통 각하.”

자리로 돌아온 블라스코비츠는 폴란드 협상단의 요구를 들어주었다. 협상단의 얼굴이 조금은 밝아졌다.

“정말 감사합니다, 각하! 각하께선 수많은 생명을 구하신 겁니다.”

“빨리 항복했으면 이럴 일도 없었소.”

블라스코비츠는 코웃음을 쳤다.

그렇게 사람들을 구하고 싶었다면 진작에 항복을 했어야지! 그깟 알량한 자존심 하나 때문에 무의미한 전투를 질질 끌어와놓고, 이제와서 한다는 소리가 겨우 구결과 아부라니.

한심하기 짝이 없는 놈들 같으니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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