폴란드 침공 (4)
“소풍이라도 온 것처럼 태연하게 굴더니, 꼬라지들 하고는. 돼지 새끼들.”
쌍안경으로 우왕좌왕하는 프랑스군을 지켜보던 강글이 뇌까렸다.
“돼지라는 말보단 개구리라는 말을 써야 되지 않겠습니까? 프랑스 놈들이니까요.”
분대장이자 강글의 소대원 중 최고령자인 빌헬름 후버 병장이 이죽거렸다.
강글은 그의 말을 깔끔하게 무시한 뒤 사무적인 태도로 명령을 내렸다.
“시끄럽고, 분대원들 상태나 확인하게. 곧 시작이다.”
“알겠습니다요.”
에티오피아에 군사고문으로 갔었던 강글은 에티오피아가 이탈리아군에게 점령당하자 영국령 소말릴란드를 통해 독일로 돌아왔다.
독일로 돌아온 그는 2급 철십자훈장을 수여받고 소위로 진급했다.
입대 동기들 중 유일하게 혼자서만 소위로 진급했지만, 월급은 상사 시절보다 줄어들었기에 강글 입장에선 마냥 기뻐할 만한 일은 아니었다.
전쟁이 터지기 직전, 강글은 서부전선 C 집단군에 배속되었다.
그에게 주어진 임무는 보병 1개 소대를 거느리고 매복하여 프랑스군의 진격을 저지하는 것이었다.
“그러고 보니 소대장님은 이번이 첫 실전이 아니지 않습니까?”
후버 병장이 물었다. 강글은 프랑스군에게서 시선을 떼지 않은 채 고개를 끄덕거렸다.
“그래. 이번이 두 번째지.”
“에티오피아에서 이탈리아군과 싸웠다고 들었는데, 어떻던가요?”
“허우대만 멀쩡하지 싸우는 방법 자체를 모르는 군대더군. 그런 놈들이 로마인들의 후예라니, 기가 찰 노릇이지.”
후버의 질문을 이탈리아군에 대한 질문으로 생각한 강글이 대답했다. 하지만 후버가 궁금해한 것은 이탈리아군이 아니었다.
“제 말은 에티오피아군이 어땠냐는 말입니다. 말귀를 잘 못 알아먹지 않던가요?”
“말이 통하지 않으니 불편한 점이 있긴 했지. 그래도 기본적으로 다들 잘 싸웠어. 특히 이탈리아군보다 더 용맹하더군.”
“깜둥이들이 말입니까? 허, 깜둥이들만도 못한 군대라니, 어이가 없네요.”
후버도 대다수의 독일인들처럼 흑인은 열등하다고 생각했다.
총통이 흑인들의 국가를 지원하고 올림픽에서 흑인 선수와 같이 밥을 먹었다는 얘기를 들었을 때는 정말이지 충격이었다.
총통은 대체 무슨 생각으로 미개한 흑인들과 친하게 지내려는 것일까?
그놈들은 아무짝에도 쓸모가 없는 종자들인데. 당최 이해할 수 없는 일이다.
“그런데 그 얘기는 갑자기 왜 꺼낸 거야? 요점만 말해.”
“저어기, 프랑스 놈들 사이에 깜둥이 몇 놈이 섞여 있어서 생각난 김에 물어본 겁니다.”
후버의 말대로 프랑스군 사이에는 흑인들이 섞여 있었다. 필시 프랑스의 식민지인 토고나 가나 등지에 온 녀석들이리라.
100만이 넘는 대병력을 유지하기 위해서 프랑스군은 식민지인들의 입대를 적극적으로 장려했다.
늘 가난에 시달리던 식민지 청년들에게 고국에선 꿈조차 꿀 수 없는 높은 봉급-그래봤자 프랑스인들 입장에선 그저 그런 수준이었지만-과 양질의 식사는 매력적인 조건이 아닐 수 없었다.
특히 1차대전으로 청년층이 반토막 난 터라 프랑스군에서 식민지인들이 차지하는 비율은 더욱 커질 수밖에 없었다.
비단 흑인들뿐만 아니라 아랍인과 아시아인으로 보이는 병사들까지 있었다.
저 병사는 베트남에서 온 것 같군. 저놈은 알제리인인가? 어쩌면 모로코나 레바논인일지도?
프랑스군 공병대가 도착해 지뢰 탐사를 시작했다. 이때가 강글이 기다리던 순간이었다.
“소대, 사격 개시!”
Kar98k와 MP38, MG34가 일제히 불을 뿜자, 프랑스군은 추풍낙엽처럼 쓰러졌다.
총통의 군 선진화 계획의 일환으로 MP38을 비롯한 기관단총의 보급이 크게 늘었지만, 여전히 Kar98k가 가장 많은 비중을 차지했다.
인중에 총탄을 맞은 흑인 병사가 길을 걷다가 돌부리에 걸려 넘어진 사람처럼 앞으로 넘어졌다.
총알 구멍에서 흘러나온 붉은 잉크의 연못 위로 또 한 명의 병사가 쓰러졌다. 총성이 계속될수록 연못의 크기는 점점 커져만 갔다.
황급히 사격 자세를 취하던 기관총 사수가 총을 맞고 쓰러졌다.
턱끈을 제대로 조이지 않은 탓에 철모가 훌렁 벗겨져 땅바닥에 떨어졌다.
지면에 떨어진 철모는 팽이처럼 빙글빙글 돌다가 누군가의 발에 채여 수풀 속으로 날아갔다.
“개구리 새끼들이 꼼짝을 못합니다!”
“닥치고 계속 쏘기나 해!”
강글이 MP38의 탄창을 교체하는 사이 후버 병장은 막대 수류탄을 꺼냈다.
방망이 수류탄, 또는 감자 빻는 기구라 불리는 막대 수류탄은 나무로 된 손잡이 때문에 무게가 제법 나가고 많이 휴대하기 힘들다는 단점이 있지만, 던지기 쉽고 투척거리도 길다는 장점이 있었다.
수류탄 핀을 뽑은 후버 병장은 3초를 센 뒤 수류탄을 던졌다.
포물선을 그리며 날아간 수류탄은 정확히 프랑스군들 사이에서 터졌다. 족히 5명이 넘는 프랑스 병사들이 동시에 쓰러졌다.
“좋았어!”
갑작스런 기습을 당한 프랑스군은 제대로 싸우지 못하고 도망치기 바빴다.
강글의 입에서 사격 중지 명령이 내려졌을 때, 도로에는 20명이 넘는 프랑스군의 시체가 널려 있었다.
“프랑스군도 별거 아니네요. 괜히 쫄았네.”
“안심하기엔 아직 일러. 보병들이 피를 봤으니, 틀림없이 전차를 동원해 공격해올 거야.”
아니나 다를까 강글의 예측대로 프랑스군은 전차를 끌고 돌아왔다.
승리의 환호성이 울린 지 5분도 되지 않아 소대는 침묵에 빠졌다.
하지만 그들에겐 비장의 무기가 있었다.
“11시 방향에 적 전차 출현. 거리 500. 철갑탄 장전.”
“철갑탄 장전!”
C 집단군은 물론 독일 전역을 통틀어서 몇십 대밖에 없는 귀하디귀한 PaK 40이 위장막을 두른 채 프랑스군의 르노 R35 전차를 노렸다.
“발사!”
포구에서 섬광이 일고 R35의 전면에 구멍이 뚫리면서 폭발이 일어났다.
전차 내부의 탄약들까지 일제히 유폭을 일으키는 바람에 R35는 포탑이 차체와 분리되어 허공으로 치솟았다.
“명중!”
R35는 동시대 전차들과 비교해서 방어력이 괜찮은 수준이었지만, 1km 거리에서 97mm 두께의 장갑판을 관통할 수 있는 PaK 40을 막기란 불가능했다.
애시당초 PaK 40은 T-34와 KV-1 같은 중장갑 전차들을 격파하기 위해 개발된 물건이었기에 R35 같은 경전차들을 상대로는 과잉 화력 그 자체였다.
1.4톤이나 되는 무게 때문에 인력에 의한 이동이 힘들다는 게 단점이지만, 그 대신 위력 하나만큼은 확실해서 독일은 PaK 40의 생산에 전력을 기울이고 있었다.
“소, 소대장이 당했다!”
“씨발, 어디서 날아온 거야?”
동료 전차가 일격에 격파당하는 모습을 본 프랑스 전차병들은 혼란에 빠졌다.
주변을 둘러봐도 적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특히 부하들을 지휘해야 할 소대장이 가장 먼저 전사해버리는 바람에 남겨진 소대원들의 충격은 더더욱 컸다.
설상가상으로 프랑스군의 전차에는 무전기가 탑재되어 있지 않아 서로간의 원활한 소통이 힘들었다.
부소대장이 급히 포탑 밖으로 나와 수기를 흔들어 전차들을 지휘하려고 했지만, 이미 패닉에 빠진 전차병들에게 수기 따윈 보이지 않았다.
“이놈들아! 여길 보란 말이다! 전에 다 배웠잖-”
두 번째로 날아든 포탄이 이번에는 부소대장의 전차에 명중했다.
결과는 격파.
부소대장의 전차도 불덩이가 되어 검은 연기를 허공으로 토해냈다.
“후진! 후진!”
부소대장까지 당하자 남은 전차병들은 전의를 완전히 상실했다.
전차들이 후퇴하고 보병들도 그 뒤를 따라 허겁지겁 도망쳤다.
유럽 최강 군대라 자부하던 프랑스군의 어처구니없는 추태였다.
“놈들이 도망치고 있습니다!”
프랑스군이 후퇴하자 병사들은 너 나 할 거 없이 만세를 외쳤다.
이번 전투는 1차대전 이후로 독일군이 프랑스군을 상대로 거둔 첫 번째 승리였다.
“프랑스 놈들도 별거 아니군요?”
“그렇겠지. 저놈들도 결국엔 다 똑같은 사람이니까.”
프랑스군이 보이지 않게 된 후에야 강글은 마을을 놓을 수 있었다.
그가 담배를 꺼내 입에 물자, 후버 병장이 잽싸게 성냥을 꺼내 담배에 불을 붙였다.
전투가 끝난 후에 피우는 담배의 맛은 그 무엇과도 견줄 수 없을 만큼 각별했다.
“이번에도 무사히 살아남았군.”
전쟁이 끝날 때까지, 매일매일이 오늘만 같으면 좋을 텐데.
***
1939년 9월 9일
독일 베를린 신 총통관저
“역시! 이번에도 내 예상은 틀리지 않았어!”
이틀 전, 자르로 밀고 온 프랑스군은 레프가 지휘하는 C 집단군의 저항에 부딪히자 오늘 프랑스로 도로 철수했다.
프랑스군의 피해는 사상자 200여 명에 전차 및 장갑차 13대 손실,
아군의 피해는 전사 9명, 부상 17명이 전부.
단순 수치로만 봐도 아군의 대승이라 할 수 있었다. 특히, 상대가 그 프랑스군이라는 점에서 더더욱 기념할만한 성과였다.
1차대전 이후로 독일이 프랑스를 상대로 거둔 첫 번째 군사적 승리였으니까.
국방군은 프랑스군이 언제 다시 쳐들어올지 모른다며 우려를 표했지만, 그래도 이번 승리 덕분에 조금은 희망을 되찾은 분위기였다.
실제 역사에서 프랑스군이 자르로 밀고 들어오자 독일군은 아무런 저항도 하지 못하고 그대로 후퇴하기 바빴다.
하지만 프랑스군은 돌연 17일에 프랑스 본토로 철수했고 나치 독일의 수명은 6년 더 연장될 수 있었다.
프랑스군이 왜 철수했는지 학자들마다 의견이 분분하지만, 대체로 독일군의 전광석화와 같은 진격 속도에 겁을 먹고 안전한 본토에서 지구전을 펼치는 게 더 나은 전략이라고 판단했기 때문이라고 본다.
프랑스군 수뇌부 입장에선 나름 합리적인 선택이라고 생각했을지 몰라도, 결과적으로 그들의 선택은 전 유럽을 불바다로 만드는 최악의 나비효과가 되어 돌아왔다.
만약 프랑스군이 철수하지 않고 진격을 계속했더라면 프랑스군은 겨울이 오기 전에 라인강까지 진격할 수 있었을 것이다.
당연히 나치 독일은 패배했을 것이고 독소전쟁도, 홀로코스트도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다.
어쩌면 2차대전이라는 이름도 쓰이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레프는 보고서에서 PaK 40과 88mm 대공포 FlaK 36의 활약이 특히 컸다고 적었다.
88mm 대공포, 줄여서 88은 이름만 들어도 알 수 있듯이 본래 대공용으로 개발된 물건이지만 대공포 본연의 임무뿐만 아니라 지상전에서도 탁월한 성능을 발휘했다.
전차 잡는 대전차포부터 적 벙커 파괴, 포격까지 뭐 하나 빠지는 거 없이 전지전능한 모습을 보여준 탓에 독일군은 88을 ‘만능포’로 불리며 무척 애용했으며 연합군은 ‘악마의 무기’라 부르며 두려워했다.
워낙 성능이 뛰어났기에 2차대전이 끝난 후에도 체코슬로바키아, 핀란드, 유고슬라비아 등 유럽 각국에서 사용되었다.
나는 레프에게 88을 대공용으로만 쓰지 말고 대보병, 대전차용으로도 사용하라고 조언했고 그 덕에 아군은 성공적으로 프랑스군을 격퇴할 수 있었다.
보고서에 따르면, 한 프랑스군 전차중대는 2km 밖에서 88의 공격을 받자 그대로 줄행랑을 쳤다고 한다.
그놈들이 바지에 오줌을 지렸다는 것에 1만 라이히스마르크를 걸 수 있다.
“이번에 아주 제대로 혼쭐이 났으니, 프랑스군은 다시는 독일 땅을 넘보지 못할 거야. 내 장담하지. 그러니 우리는 안심하고 폴란드를 해치우는 데 집중하세.”
“명심하겠습니다, 총통 각하!”
세상 망한 얼굴로 넋두리나 하던 괴링과 카이텔, 브라우히치는 언제 그랬냐는 듯 활기를 되찾았다.
하지만 레더는 여전히 똥씹은 얼굴이었는데, 육군 및 공군과 달리 해군은 아직 준비가 덜 끝났기 때문이다.
비록 연말이면 전함 비스마르크와 나치 독일 최초의 항공모함 그라프 체펠린이 완성될 예정이지만, 세계 1위를 자랑하는 영국 해군을 상대하기엔 턱없이 부족한 전력.
세계 1위라는 말도 태평양 전쟁이 발발한 후에는 깨지고 말지만 그래도 걸음마 단계에 불과한 크릭스마리네 정도는 여유롭게 상대할 수 있는 게 영국 해군이니 레더가 걱정하는 것도 당연한 일이었다.
“제독, 너무 상심하지 마시구려. 나도 생각이 있는 사람인지라, 크릭스마리네에게 영국 해군과 싸워서 이기라는 허무맹랑한 명령 따위는 내릴 생각이 없소.”
“감사합니다······.”
나름 위로랍시고 건넨 말인데, 정작 레더는 그건 그 말대로 상처 입었다는 듯이 입을 삐쭉 내밀었다.
나이도 먹을만큼 먹은 양반이 추하게 저게 뭔짓이래.
본인도 아는 사실이지만 남이 지적하는 건 싫다, 이거냐?
전쟁 시작 전, 세계 각지에 있던 배들을 모두 독일로 소환한 덕에 현재까지 크릭스마리네의 피해는 제로다.
본래대로라면 대서양 한복판에 있다가 영국의 선전포고로 독일로 돌아오지 못하고 남대서양을 떠돌아야 했던 도이칠란트급 장갑함 그라프 슈페도 킬 항국에 얌전히 짱박혀 있는 중이다.
레더와 동석한 되니츠 역시 표정이 어두웠지만, 그래도 레더만큼은 아니었다.
대서양 각지에 파견된 21형 유보트들이 거둔 성과 때문인지 레더보다는 그나마 밝은 얼굴이다.
당대 기술의 한계로 완전한 수중항행이 불가능해 수상주행을 하다가 전투나 회피 같은 긴급상황에만 잠수할 수 있는 기존 유보트들과 달리, 21형 유보트는 수중항행에 최적화된 설계 덕분에 수중속도가 수상속도보다 빠른데다 배터리 용량 증가로 작전반경이 크게 늘었다.
거기다 선내에 에어컨이 설치되어 승무원 편의성이 크게 증가했으며 잠항상태에서 움직이다가 필요할 때만 부상하거나 슈노켈(schnorchel, 스노클)을 올려 충전만 하면 되니 적 함정과 항공기의 레이더까지 피할 수 있게 되었다.
이토록 사기적인 성능 때문에 21형 유보트는 현대형 잠수함의 시초라는 평가를 받게 되었지만, 막상 21형 유보트가 실전배치된 1945년에는 나치 독일이 패망을 앞둔 시점이라 아무런 전공도 세우지 못했다.
21형 유보트가 늦게 완성된 이유는 고도의 과학기술이 필요한 물건이어서가 아니라 그동안 아무도 기존 잠수함에 배터리를 많이 넣고 수상항행보다 수중항행을 더 중시하자는 생각을 하지 않아서다.
단순 기술력으로만 따지자면 21형 유보트는 1차대전 때 튀어나와도 전혀 이상할 게 없는 물건이었다.
신무기 개발에 가장 필요한 건 발상의 전환이지, 꼭 신기술이 적용될 필요는 없다는 사실을 알려주는 대표적인 사례라 하겠다.
현재까지 21형 유보트가 격침한 연합군 상선의 숫자는 모두 11척.
대서양을 돌아다니는 유보트의 숫자가 다 합쳐 9척임을 감안하면 유보트 1척당 배 1척 이상을 격침한 셈이다.
21형 유보트의 성능도 성능이지만, 일본이 제공한 설계도를 참고하여 만든 신형 어뢰 ‘기젤라(Gisela)’도 큰 역할을 했다.
기존의 독일 어뢰들은 결함이 많아 불발되는 게 부지기수였는데, 기젤라는 현재까지 불발률 0%를 자랑했다. 가격이 조금 비싸다는 게 흠이긴 하나 성능을 생각하면 납득 가능한 가격이었다.
“브라우히치 장군, 바르샤바 외곽에 도달한 아군은 어떻게 되었소?”
내 질문에 브라우히치는 뿌듯한 얼굴로 대답했다.
“바르샤바를 불바다로 만드는 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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