폴란드 침공 (2)
전함 슐레스비히-홀슈타인이 함포 사격을 가하고 베스테르플라테에 상륙한 독일군이 폴란드군과 교전을 벌이는 동안, 브레슬라우의 비행기지에서 이륙한 Ju88 폭격기들이 비엘룬에 공습을 가했다.
대공포들이 불을 뿜었지만 독일기들의 공습을 막기엔 수가 부족했다.
공습 소식을 들은 폴란드군 조종사들이 PZL P.11 전투기를 타고 급히 출격에 나섰다. 하지만 그들이 상대해야 할 적들은 따로 있었다.
-2시 방향에 폴란드 놈들이다!
“자, 실력을 보여줄 시간이다, 제군들!”
폭격기들의 호위 임무를 맡은 독일군 조종사들은 폴란드군의 PZL P.11보다 성능이 월등히 뛰어난 Bf109와 Fw190을 타고 있었다.
속도, 방어력, 무장까지 모든 면에서 열세인 구식 전투기들은 독일의 신형 전투기들을 상대로 대등하게 싸울 수 없었다.
곧 하늘에선 독일기들에 의한 일방적인 학살극이 벌어졌다.
“한 놈 잡았고.”
전투가 시작되기 무섭게 적기 한 대를 격추한 갈란트는 휘파람을 불었다.
신형 전투기인 Fw190을 선호하는 동료들과 달리 갈란트는 구형인 Bf109만을 고집했고 실전에서도 손에 익은 Bf109를 타고 출격했다.
갈란트는 능숙하게 기체를 조종해 저돌적으로 달려드는 폴란드기의 뒤를 잡았다.
놈은 자신의 뒤에 적이 달라붙었다는 사실도 모르고 눈앞의 적에만 시선이 꽂혀 있었다.
멍청하긴. 저렇게 둔한데 어떻게 조종사가 됐는지 모르겠군.
버튼을 누르자 MG151 기관포에서 불꽃이 튀었다. 20mm 기관포탄을 뒤집어쓴 PZL P.11은 금방 연기를 내뿜으며 지상으로 추락했다.
“이걸로 두 대.”
갈란트의 전우이자 어깨를 나란히 하는 에이스 베르너 묄더스도 벌써 두 대의 폴란드기를 격추했다.
묄더스의 의기양양한 목소리가 무전망을 타고 갈란트의 귀에 닿았다.
-방금 봤어? 이 몸이 기가 막힌 솜씨로 적기를 요리하는 모습을!
“시끄럽고, 남은 놈들이나 처리해.”
갈란트와 묄더스가 가르친 후배 조종사들도 둘을 따라 열심히 폴란드군과 싸우고 있었다.
자신이 가르친 초짜 소위가 조종하는 Fw190이 적기의 동체를 걸레짝으로 만드는 모습을 본 갈란트는 자기도 모르게 미소를 지었다.
그동안의 훈련이 헛되지는 않았군.
아직 미숙하지만 이번이 첫 실전임을 감안하면 나쁘지 않은 성적이었다.
전투는 루프트바페의 압승으로 끝났다.
싸움을 걸어온 폴란드기들은 모두 격추되었고, 독일군의 피해는 전무했다. 무전망에서 승리의 환호성이 터져 나왔다.
-이야, 해냈다!
-꼴좋다, 돼지 새끼들아!
-이게 독일 공군의 힘이다, 이거야!
“귀청 터지겠다, 이것들아. 복귀할 때까지 경계를 늦추지 마라. 더 이상 훈련이 아니라 실전이니까.”
***
미하엘 비트만 SS 중사는 해치 밖으로 고개를 내밀어 폴란드의 풍경을 바라보았다. 독일의 그것과 별 차이를 느낄 수 없었다.
그가 소속된 라이프슈탄다르테 슈츠슈타펠 아돌프 히틀러(Leibstandarte Schutzstaffel Adolf Hitler, LSSAH) 사단은 페도어 폰 보크 상급대장이 지휘하는 북부집단군에 배속되어 단치히를 점령하는 임무를 맡았다.
바이에른의 가난한 농가에서 태어난 비트만이 할 줄 아는 것이라곤 아버지의 농사일을 돕는 것뿐이었다.
초등학교를 졸업한 뒤부터 가정형편 탓에 농사일을 하며 살던 비트만은 스무 살이 되던 1934년, 조국에 봉사하겠다는 일념으로 제국노동봉사단에 지원했다.
아우토반 건설에 투입된 비트만은 같은 해 국방군에 입대하여 2년 동안 병으로 복무했다.
그러나 의무병역이 끝난 후에도 그는 집으로 돌아가는 대신 군대에 남는 것을 택했다.
고향으로 돌아가봤자 농사일밖에 더 하겠는가. 차라리 군대에 남는 것이 조국과 가족에게도 더 큰 도움이 될 터.
비트만은 엘리트 대우와 높은 보수를 약속하는 SS에 지원했고, 개전을 앞두고 SS 중사로 진급했다.
독일-폴란드 국경을 넘을 때 비트만은 긴장과 흥분으로 심장이 터지는 줄 알았다.
무전기에선 나치당 공식 당가인 호르스트 베셀의 노래와 총통의 대국민연설이 반복해서 재생되고 있었다.
-친애하는 국민 여러분! 우리는 지금 폴란드의 발포에 응사하고 있습니다!
비트만이 아직도 자신이 역사의 현장에 있다는 사실이 믿겨지지 않았다.
아무렇게나 자란 수풀과 나무, 도로는 독일에서도 흔하게 볼 수 있는 풍경이지만 이곳 폴란드에서는 그조차 사뭇 다르게 보였다.
쉬지 않고 전진하던 LSSAH는 어느새 단치히로 들어섰다. 단치히에선 독일군과 폴란드군의 교전이 한창이었다.
-여기서부터는 최전선이다. 모두 마음 단단히 먹도록.
“케사르(카이사르) 1, 수신.”
중대장의 당부대로 비트만은 눈에 힘을 주고 주변을 둘러봤다.
폭격에 부서진 건물들 사이로 회색 연기가 피어오르는 모습이 마치 땅에 묻힌 망자들의 혼이 하늘로 승천하는 모습처럼 느껴졌다.
주인을 잃은 팔다리가 주변에 널려 있었지만, 병사들은 그보다 언제 어디서 적군이 튀어나올지 모른다는 것에 더 큰 불안을 느꼈다.
기관총의 총성 사이로 들리는 누군가의 비명과 이따금씩 터지는 폭탄 소리가 이곳이 실제 전장이라는 사실을 여러 번 깨닫게 만들었다.
단치히에 입성하고 10여 분이 지났을 무렵, 비트만은 드디어 폴란드군과 조우했다.
그가 탄 38(t) 전차가 모퉁이를 도는 순간 폴란드군의 기관총이 불을 뿜었다.
“우왓!”
총탄이 장갑을 맞고 마구 튕기자 비트만은 자기도 모르게 몸을 움츠렸다.
하지만 곧 정신을 차리곤 포탑 안으로 들어가 적을 해 포탑을 돌렸다.
“유탄 장전!”
“유탄 장전!”
탄약수가 그의 명령에 복창하며 37mm 유탄 한 발을 약실 안으로 밀어 넣었다.
“장전 완료!”
적 기관총의 총구화염에 조준을 맞춘 비트만은 주포를 격발시켰다.
37mm 주포의 포구에서 화염이 뿜어져 나오고 1초 후, 폴란드군의 기관총 진지가 폭발에 휩쓸렸다.
“명중!”
이번 전쟁에서 비트만의 첫 전과였다.
기관총 진지를 파괴한 후 남은 적병들은 통신수가 ZB-53 기관총으로 정리했다. 삽시간에 폴란드군 서너 명이 벌집이 되어 널브러졌다.
“참혹한 광경이군요.”
“······어쩔 수 없지. 전쟁이니까.”
조종수의 말에 비트만은 씁쓸한 말투로 뇌까렸다.
비록 적군이라지만, 사람이었던 것들이 죽어 널브러진 모습은 썩 보기 좋은 광경이 아니었다. 그러나 이제부턴 익숙해져야 할 광경이기도 했다.
전쟁은 이제 막 시작되었으니까.
앞으로는 이보다 더 끔찍한 광경들을 더 많이 보게 될 테니까.
“어이, 정지!”
자위단 소속 장교 한 명이 비트만의 전차 앞을 가로막으며 팔을 흔들어 보였다. 계급장을 보니 SS 소령이었다.
“무슨 일이십니까, SS 소령님?”
자위단 대원들은 SS와 동일한 제복에 동일한 계급까지 부여받았기에 비트만은 그를 상관으로 예우했다. 전차를 가로막은 SS 소령이 다가와서 소리쳤다.
“지금 즉시 우체국으로 가게! 폴란드 놈들의 저항이 치열해서 아군이 전진하지 못하고 있어!”
“어느 방향으로 가면 됩니까?”
“우측으로 꺾어서 80m쯤 가면 보일 걸세!”
단치히 우체국에선 폴란드인 56명이 독일군과 교전 중이었다.
이들은 평시 우체국에서 근무하던 직원들로 전쟁이 터지자 폴란드 예비군의 신분으로 독일군에 맞서 싸우고 있었다.
독일군은 우체국을 점령하기 위해 2차례에 걸쳐 공격을 가했지만, 폴란드군의 저항이 워낙 격렬해 좀처럼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고 있었다.
비트만은 즉시 소대를 이끌고 우체국으로 향했다.
우체국 앞에는 귀중한 ADGZ 중장갑차까지 배치되어 우체국 건물을 향해 20mm 기관포를 쏴대고 있었다.
창문 밖으로 수류탄을 던지려던 폴란드군이 20mm 기관포탄에 맞아 산산조각났다.
그가 던지려던 수류탄은 건물 내부에서 터졌다. 사람의 것이라곤 생각되지 않는 처참한 괴성이 터져 나왔다.
“오, 전차다!”
“잘됐군, 잘됐어.”
38(t) 전차들이 나타나자 담벼락 뒤에 숨어 돌격의 틈을 엿보고 있던 SS 병사들이 미소를 지었다.
그들 모두 기존의 흑색 제복 대신 회녹색 군복을 착용하고 있었는데, 전쟁터에서 흑색 제복은 너무 눈에 띈다는 이유에서 새로 지급된 군복들이었다.
그러나 일부 장교들은 여전히 흑색 제복을 입은 채로 전투에 임하고 있었다.
비트만은 우체국 정문을 겨냥해 37mm 주포를 조준했다.
“소대, 일제 사격!”
4문의 전차포가 동시에 불을 뿜자 나무로 된 정문이 박살 나며 나뭇조각이 사방으로 튀었다.
비트만은 차체 정면의 기관총과 포탑의 공축 기관총을 발사해 폴란드군이 아군을 조준할 수 없게 만들었다.
그의 예상대로 전차들의 일제 사격이 가해지자, 폴란드군은 고개를 들지 못했다.
“지금이다! 돌격!”
“가즈아!”
전차의 지원에 힘입어 독일군은 일제돌격을 감행했다.
정문을 통해 우체국 내부로 진입한 그들은 전차의 사격을 피해 창가 아래에 웅크리고 있던 폴란드군을 향해 기관단총을 난사했다.
“싹 다 죽여!”
“커헉!”
전우들의 피를 보고 흥분한 병사들을 막을 수단은 아무것도 없었다.
독일군은 총검으로 도망치는 폴란드군의 등을 찌르고, 총탄을 맞고 쓰러져 신음하는 부상병의 머리를 겨냥해 방아쇠를 당겼다.
살아남은 폴란드군은 지하실로 대피했지만, 화염방사기를 짊어진 병사가 지하실 입구를 향해 화염을 쏘았다.
지하실로 피신한 폴란드군은 화염방사기의 연기에 질식했다.
뒷문으로 피신한 이들의 운명도 그다지 좋지 않았다. 이미 우체국 뒤편에 자리잡은 독일군이 그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쏴라!”
뒷문을 열고 뛰쳐나온 폴란드군을 향해 일제 사격이 가해졌다.
탈출자 중 누구도 열 발자국 이상 가지 못하고 땅바닥에 철푸덕 소리를 내며 쓰러졌다.
정문이 뚫리고, 퇴로까지 막힌 상황에 폴란드군이 할 수 있는 것은 싸움과 항복, 두 개뿐이었다.
조국을 위해서라면 목숨을 바칠 각오로 싸우겠노라고 다짐했지만, 막상 죽음의 순간이 코앞에 닥치자 결심이 흔들렸다.
죽어서 영웅으로 추앙받을 것인가, 살아서 포로가 되는 치욕을 감내할 것인가.
“쏘지 마라! 쏘지 마!”
“항복하겠소! 쏘지 마시오!”
생존자들은 옥쇄 대신 항복을 선택했다.
그들은 인간이었고, 아직 살고 싶었다. 비록 패자라는 오명을 뒤집어쓰는 한이 있더라도 말이다.
1층에서 대기하던 독일군은 폴란드군의 항복 의사를 전해 듣곤 남몰래 참았던 숨을 토해냈다.
그들도 죽을 각오로 덤비는 적과 싸우는 일은 되도록 피하고 싶었기에 적군의 항복이 더할 나위 없이 반갑게 느껴졌다.
***
“요제프! 요제프!”
얀 추비크 상병은 이미 피투성이가 된 전우 요제프의 몸을 흔들어댔다. 요제프는 아무 대답이 없었다.
독일군의 포탄이 참호 근처에 떨어졌을 때, 요제프는 불행하게도 적들이 오는지 관찰하기 위해 참호 밖으로 얼굴을 내밀고 있었다.
포탄 파편이 철모를 관통하자 그는 비명도 지르지 못하고 쓰러졌다. 상처에서 흘러나온 붉은 피에는 허연 뇌수가 섞여 있었다.
“이런 씨발.”
겨우 요제프의 죽음을 인식한 얀은 철모를 들어올리며 탄식했다. 겨우 몇 초 전까지만 해도 멀쩡하게 살아있었는데, 어쩌다가······.
전쟁터에서 삶과 죽음은 종이 한 장 차이라는 말을 실감하는 순간이었다.
“얀! 이 새끼야, 빨리 자리로 안 돌아가?!”
중대장의 욕설에 정신을 차린 얀은 급히 본인의 자리로 돌아갔다. 지평선 너머로 독일군의 전차가 모습을 드러냈다.
“전차다!”
“맙소사, 전차야!”
“모두 아가리 안 닥쳐?”
전차의 출현에 병사들은 패닉에 빠졌다.
중대장이 한바탕 욕설을 퍼붓자 금세 잠잠해졌지만, 병사들은 여전히 두려운 눈으로 다가오는 전차를 응시했다.
얀은 저것이 독일군이 사용하는 2호 전차라는 사실을 기억해냈다. 전쟁이 터지기 직전에 배웠던 피아식별 훈련에서 놈의 사진을 본 기억이 있었다.
등장한 적 전차는 총 3대.
포탑이 제각기 다른 방향을 향한 것으로 보아 주변을 경계하는 모양이었다. 보병들 없이 전차만 움직이는 걸로 봐선 정찰대인 듯했고.
얀의 중대장은 적들을 해치우기로 결정했다. 비록 상대는 전차지만, 후속하는 보병이 한 명도 없으니 한번 해 볼 만한 싸움이었다.
“발사!”
중대에 두 정 밖에 없는 Wz.35 대전차소총이 거의 동시에 불을 뿜었다.
두 발 모두 적 전차에 명중했지만, 장갑이 얇은 측면이 아닌 두꺼운 정면을 노린 탓에 총탄은 헛되이 튕겨 나왔다.
“씨발, 다시 쏴!”
총탄이 튕겨 나가는 모습을 본 중대장이 소리쳤다. 독일군 전차병들도 적의 공격임을 눈치채고 즉시 교전에 들어갔다.
대전차소총이 재차 불을 뿜었지만, 이번에도 결과는 도탄이었다. 설상가상으로 위치까지 적에게 노출되고 말았다.
2호 전차의 20mm 기관포가 발사되자 위치가 노출된 대전차사수는 바닥에 떨어진 유리잔처럼 온몸이 산산조각났다.
살점이 들러붙은 군복 조각이 사방으로 튀고, 피를 뒤집어쓴 병사들이 패닉에 빠져 비명을 질렀다.
“으아! 으아아아아!!!”
“다시 한 발 더 쏴! 궤도를 노리란 말이야!”
중대에 마지막으로 남은 대전차사수가 2호 전차의 무한궤도를 겨냥해 방아쇠를 당겼다. 이번에는 성공이었다.
궤도가 끊어진 2호 전차는 궤도가 끊어진 상태에서 전진을 시도하다가 그만 차체가 옆으로 돌고 말았다.
대전차사수는 그 틈을 놓치지 않고 재차 사격을 가해 측면에 총탄을 명중시켰다.
총탄을 두 번 더 명중시키자 전차의 엔진에서 연기가 무럭무럭 치솟기 시작했다.
이윽고 해치가 열리더니 부상당한 적 전차병들이 튀어나왔다. 격파였다.
“쏴라! 쏴죽여!”
전차에서 전차병이 나오자, 폴란드군은 즉시 방아쇠를 당겼다.
1개 중대 전원의 총탄이 전차에서 탈출하는 3명의 전차병에게 집중되었다.
독일군은 걸레짝이 되어 널브러졌다. 아군이 당하자 남은 2대는 교전을 중단하고 퇴각했다.
“놈들이 도망친다!”
“우리가 이겼어!”
전투에서 승리한 병사들이 환성을 질렀지만, 얀은 웃을 수 없었다.
죽은 요제프에 대한 생각과 동시에 겨우 전차 1대 잡은 것을 제대로 된 승리라고 부를 수 있을지 의문이 들어서였다.
게다가 적은 본대가 아닌 정찰대였다.
아직 본대는 나타나지도 않았다.
그런데도 무슨 대단한 승리를 거둔 것마냥 환호하는 동료들을 보며 얀은 알 수 없는 불안에 휩싸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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