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폴란드 침공 (1) (42/150)

폴란드 침공 (1)

2차대전의 실질적인 시작에 관해서는 학자들마다 의견이 분분하다.

중국과 대만의 경우 중일전쟁 발발일인 1937년 7월 7일을 2차대전의 시작으로 보는 한편, 스페인의 일부 학자들은 1936년 스페인 내전을 2차대전의 시작으로 간주하기도 한다.

그러나, 공식적인 2차대전의 시작이 나치 독일의 폴란드 침공이라는 사실을 부정하는 이는 아무도 없다.

폴란드인들에게 유감스러운 일이지만, 폴란드가 전쟁을 피할 수 있는 방법은 사실상 없었다.

전쟁의 원인이 된 단치히 회랑을 히틀러의 요구대로 독일에 양도했다고 한들 소련은 폴란드를 내버려 둘 생각이 없었고,

소련에게 우크라이나 서부와 벨라루스 일부를 돌려주더라도 독일은 단치히를 되찾기 위해 폴란드를 쳤을 것이다.

독일과 소련 모두에게 영토를 돌려줬다간 그 즉시 전국적으로 폭동이 일어났을 테고.

결국 폴란드가 독립했을 때부터 2차대전의 씨앗은 이미 뿌려진 것이나 다름없었다.

***

1939년 8월 31일

독일-폴란드 국경 글라이비츠

작전을 앞둔 SD 요원들 사이에선 무거운 적막감이 나돌았다.

독일 군인인 그들이 흑색의 SS 제복 대신 갈색의 폴란드 군복을 입은 이유는 곧 시행될 ‘작전’ 때문이었다.

작전 책임자인 알프레트 나우요크스 SS 소령은 하이드리히가 자신에게 했던 말을 떠올리며 묵묵히 담배를 태웠다.

‘자네, 명심하게. 한치의 실수라도 했다간 자네와 나 둘 다 죽은 목숨이야.’

나우요크스는 이번 작전에 자신의 목숨뿐만 아니라 독일의 운명이 걸려 있다는 것도 알았다.

자신의 손짓 하나, 말 한마디에 독일을 넘어 전 유럽의 운명이 결정된다고 생각하니 심장이 두근거렸다.

서로 대화도 하지 않고 침묵을 지키던 요원들은 무전기에서 잡음이 나오자 귀를 쫑긋 세웠다.

쉭쉭 소리를 내며 길게 이어지던 잡음 뒤로 그들이 그토록 기다리던 작전 개시 신호가 떨어졌다.

-할머니가 돌아가셨다. 반복한다. 할머니가 돌아가셨다.

‘시작됐군.’

나우요크스는 네 번밖에 피우지 않은 장초를 땅에 던진 뒤 군홧발로 짓이겼다.

“지금부터 독일어는 쓰지 마라. 일절 폴란드어로만 소통할 것. 알겠나?”

“예!”

“1조는 나를 따라 방송국으로, 2조는 주변 경계, 3조는 ‘통조림’들을 가지고 와라.”

“알겠습니다!”

“시작하지.”

폴란드군 복장을 한 SD 요원들은 폴란드 국경이 내려다보이는 소도시 글라이비츠에 온 이유는 단 하나, 전쟁의 구실을 만들기 위해서였다.

일명 ‘힘러 작전’은 글라이비츠의 방송국을 폴란드군이 습격한 것처럼 위장해 폴란드에게 전쟁의 구실을 떠넘긴다는 내용이었다.

이를 위해 필요한 재료들도 모두 준비된 상태였다.

“자, 드가자!”

나우요크스가 이끄는 6명의 SD 요원들은 즉시 방송국으로 쳐들어갔다.

글라이비츠 자체가 워낙 작은 도시다 보니 방송국에는 직원들이 많이 없었다.

게다가 이미 퇴근 시간이 지난 저녁 8시였기에 방송국에는 전신기사 한 명, 직원 두 명, 경비원 한 명. 총 4명이 전부였다.

“뭐, 뭐야?”

“폴란드군? 아니, 어째서?!”

한가하게 기지개를 켜고 있던 직원들은 폴란드군 복장의 SD 요원들을 보고 당황했다.

그리고 그들의 손에 들린 권총과 기관단총을 보곤 즉시 두 손을 번쩍 들어 올렸다.

쉽군, 쉬워. 나우요크스는 폴란드어로 직원들을 포박해 감금해놓으라고 지시했다.

오늘은 야식으로 무엇을 먹을지 고민하던 직원들은 졸지에 입에 재갈이 물려지고 밧줄로 꽁꽁 묶여 창고에 던져졌다.

SD 요원 한 명이 미리 준비해둔 선전포고문을 낭독했다.

폴란드는 독일의 위협에 굴하지 않을 것이며, 전쟁의 모든 책임은 독일에게 있다는 내용의 선전포고문은 하이드리히가 직접 작성한 것이었다.

폴란드어로 된 선언문 낭독이 끝나자 나우요크스와 그의 부하들은 방송국 밖으로 나갔다.

입구에는 다른 SD 요원들이 끌고 온 통조림들이 준비되어 있었다.

통조림의 정체는 폴란드 군복을 입은 죄수들로 전원이 강간, 살인 등 중범죄를 저질러 교도소에 수감된 자들이었다.

하이드리히가 직접 선별하였고 모두 강력한 마취약을 맞아 의식을 잃은 상태였다.

철저한 위장을 위해 나우요크스는 두 개의 권총을 준비했다.

하나는 독일제 발터 P38, 다른 하나는 폴란드군이 사용하는 벨기에제 브라우닝 하이파워.

나우요크스는 방송국 직원들 앞에서 들었던 브라우닝 하이파워를 집어놓고 발터 P38을 꺼냈다. 그리고 죄수들의 등을 쏘았다.

기계의 전원을 내리는 것처럼 죄수들의 숨은 차례대로 꺼졌다. 한 발에 한 명씩, 확실하게.

처형된 죄수들은 ‘방송국에 침입했다가 독일군의 총을 맞고 사망한 폴란드군’으로 언론에 소개될 예정이었다.

마지막 죄수의 가슴에 총탄을 박아넣은 나우요크스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현장을 벗어났다.

***

“총통 각하, 나우요크스 SS 소령으로부터 힘러 작전이 성공적으로 완수되었다는 보고입니다.”

“알겠네.”

하이드리히는 내색하지 않았지만, 눈빛을 통해 총통이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알 수 있었다.

이제 시작이라는 눈빛.

모든 독일인들의 염원이었던 대폴란드전이 시작된 것이다.

“전군의 준비상태는 어떻소?”

“총통 각하의 명령만 기다리고 있습니다.”

카이텔이 대답했다.

“시작하시오.”

“알겠습니다, 총통 각하.”

긴장한 기색의 카이텔이 내 명령을 전하기 위해 집무실을 나섰다.

“참. ‘공식적으로’ 폴란드가 먼저 독일에 선전포고했으니, 우리가 굳이 선전포고를 할 필요는 없겠군. 안 그런가?”

“지당하신 말씀입니다. 전쟁을 먼저 시작한 것은 폴란드지 독일이 아니니까요.”

하이드리히가 능청스러운 웃음을 지었다.

나는 곧 있을 대국민연설을 위해 방송국으로 이동했다. 필요한 연설문은 괴벨스가 모두 준비해뒀다.

방송국으로 가는 차 안에서 나는 어둠에 잠긴 베를린 거리를 조용히 쳐다봤다.

옅은 노란색 불빛 사이로 길거리를 오가는 행인들의 모습이 보였다.

저 사람들은 앞으로 몇 시간 뒤에 2차대전이 발발한다는 사실을 알고 있을까? 아마도 모르겠지.

레마르크의 말처럼, 누군가에게 이 전쟁은 씻을 수 없는 커다란 비극으로 남을 것이다.

털끝 하나 다치지 않고 무사히 집으로 돌아올 사람들도 있겠지만, 전사한 가족의 통지서를 붙들고 오열할 사람들도 나오겠지.

전쟁이 독일의 승리로 끝난다고 해도 죽은 이들이 살아 돌아오는 일은 없다.

허나, 이미 주사위는 던져졌다.

여기까지 온 이상 다른 선택지는 없다.

이제부터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최대한 빨리 이 전쟁을 독일의 승리로 끝내 더 많은 비극이 일어나는 일은 막는 것뿐이다.

전쟁을 일으킨 당사자 주제에 더 큰 비극을 막아야 한다고 다짐하는 꼴이라니, 코미디가 따로 없군.

신이 있다면 틀림없이 이런 나를 보며 분노하고 있겠지. 세상에 저런 호로새끼가 다 있냐면서.

······아니, 어쩌면 웃고 있을지도 모르겠군. 그렇지 않고서야 나를 이곳으로 보낼 이유가 없으니까.

***

1939년 9월 1일 새벽 4시 45분.

육중한 포성이 새벽의 침묵을 깨트렸다.

“쏴!”

폴란드와의 친선우호를 이유로 단치히 항구에 기항해있던 크릭스마리네의 도이칠란트급 전함 슐레스비히-홀슈타인이 폴란드군의 요새를 향해 포격을 개시했다.

비록 1차대전 때 활동했던 구식 전함이지만, 280mm 주포 4문의 위력은 결코 우습게 볼 수 없었다.

슐레스비히-홀슈타인의 수병들은 자신들이 쏜 포탄이 2차대전 최초의 포격이라는 사실은 염두에 두지 않았다.

장교들의 지휘에 따라 움직이며 열심히 포탄을 나르고, 그것을 장전한 다음 쏠 뿐이었다.

이번이 실전이라는 점만 빼면, 평소의 훈련과 별 차이가 없을 정도였다.

280mm 포탄에 직격당한 폴란드군의 요새는 순식간에 불꽃과 연기에 휩싸였다. 전함의 포격이 가해지는 동안 독일 병사들을 수송선은 해안을 향해 움직였다.

이윽고 상륙정으로 옮겨탄 독일군들이 베스테르플라테에 상륙, 폴란드군 수비대와 교전을 벌였다.

독일군의 침공이 시작되자, 단치히 일대에 암약하고 있던 독일계 반란군 자위단(Selbstschutz)도 행동을 개시했다.

단치히에 거주하는 독일계 주민들로 구성된 자위단은 독일의 폴란드 침공이 시작되자 봉기를 일으켜 폴란드군의 후방을 급습했다.

자위단의 무장 수준은 구식 소총과 수류탄 따위가 전부였지만 갑작스러운 개전으로 혼란에 빠진 폴란드군에겐 이조차 상당한 골칫거리였다.

특히 이들은 모두 이곳 지리에 밝은 현지 주민들이라 폴란드군의 주요 시설들이 어디에 위치해 있는지 훤히 알고 있었다.

“정지! 누구냐!”

“쏘, 쏘지 마세요! 우린 폴란드인입니다! 동포라고요!”

손전등의 불빛이 향한 곳에는 겁에 질린 채 두 손을 들고 있는 민간인 7명이 있었다.

그들 모두 군복이 아닌 사복을 입고 있었으며, 모두 폴란드어로 말하고 있었다.

그들을 동포라고 판단한 폴란드군 초병은 총구를 내렸다.

“여기서 뭘하는 겁니까? 여긴 군사지역이라고요.”

“갑자기 웬 폭음이 들리기에 무슨 일인가 싶어 나온 겁니다.”

“군인 양반, 대체 이게 무슨 일이오? 전쟁이 난 거요?”

“자세한 건 저도 모르지만, 아마도 그런 것 같습니다. 그건 그렇고, 얼른 집으로 돌아가십쇼. 곧 정부에서 대피방송이 나올 겁니다.”

“우리도 집에 가고 싶소. 그런데 길이 포탄에 맞아서 끊어졌는데 어떻게 간단 말이오?”

“길이라면 요 뒤로 해서 쭉 돌아가면-”

불안에 떠는 민간인들에게 길을 가르쳐주던 초병은 심장을 관통한 한 발의 총알에 의해 고꾸라졌다.

“어, 뭐야-”

동료의 죽음에 당황한 병사가 뒤늦게 사태를 파악하고 총구를 올리는 순간, 그도 뒤통수에 총탄이 박혀 쓰러졌다.

방금 전까지 민간인이었던 이들은 쓰러진 폴란드군의 소총과 수류탄을 수거해 무장했다.

그런 다음 곱게 접어 주머니에 넣어놨던 나치 완장을 꺼내 왼팔에 착용했다.

그들의 정체는 독일군 특수부대 ‘브란덴부르크 부대’ 소속 대원들로 폴란드 민간인으로 위장하여 폴란드군의 후방을 들쑤시고 다니는 작전을 수행 중이었다.

“자위단 친구들이 전해준 정보가 과연 사실이었군요. 토씨 하나 틀리지 않고 들어맞을 줄은 몰랐는데.”

“그러게 말일세. 하사, 그 수류탄도 챙기게. 쓸만한 건 다 챙겨.”

“알겠습니다, 중위님.”

개전 이틀 전.

폴란드로 침투하여 자위단 간부들과 접촉한 브란덴부르크 부대원들은 자위단이 전해준 정보를 토대로 작전을 세웠다.

정식 군인이 아닌 민병대에 불과한 자위단이 건네준 정보를 부대원들은 반신반의했지만, 자위단 외에 마땅한 협력자가 없었기에 그들에게 의존할 수밖에 없었다.

부대원들의 우려와 달리, 자위단이 전해준 정보는 매우 정확했다.

몇m 간격으로 초소가 있고 각 초소마다 보초는 몇 명인지, 그들의 무장은 어느 정도인지까지 세세한 사항들을 자위단은 아낌없이 알려주었다.

“이번 임무가 끝나면 그 친구들에게 술 한 잔 쏴야 할 것 같습니다.”

“다 챙겼으면 얼른 가지. 해가 뜨기 전까지 탄약고 두 개를 폭파시켜야 하니까.”

“옙.”

***

탄약고를 지키는 폴란드군의 숫자는 10명도 채 되지 않았다. 그마저도 주변 경계는커녕 트럭에 탄약상자를 싣느라 여념이 없었다.

“개판이 따로 없구만. 군인의 덕목 중 기본 중의 기분이 바로 경계인데. 쯧쯧.”

폴란드군의 한심한 모습을 본 브란덴부르크 부대원들은 비릿한 웃음을 흘렸다.

무능하고 멍청한 적들만큼 상대하기 쉬운 대상도 없다.

대원들은 즉시 행동을 개시했다.

“쏴라!”

중위의 신호가 떨어지자, 대원들의 총구에서 일제히 불꽃이 튀었다.

땀을 뻘뻘 흘리며 부지런히 탄약상자를 운반하던 폴란드 병사들은 어둠 속에서 날아온 총탄을 맞고 고꾸라졌다.

운 좋게 총탄을 피한 병사가 자리에 엎드려 사격 자세를 취했다.

하지만 당황한 나머지 아무 곳에나 총탄을 쏘아대는 실수를 범했다.

폴란드어로 뭐라 외치면서 마구잡이로 총을 쏘아대는 모습이 자신보다 몇 배는 큰 사람을 향해 짖어대는 하룻강아지를 보는 것 같아 우스웠다.

중위는 가볍게 혀를 찬 뒤 적의 머리를 겨냥했다. 그가 방아쇠를 당기자, 폴란드군의 철모에 구멍이 뚫리면서 피가 튀었다.

이로써 탄약고를 지키던 폴란드군은 모두 전멸했다.

남은 적이 없음을 확인한 대원들이 숲에서 나와 탄약고로 뛰어갔다.

공병 출신의 대원 두 명이 탄약고에 폭약을 설치하는 사이, 나머지 대원들은 사주경계를 섰다.

폭약 설치 작업은 금방 끝이 났다. 훈련 때보다 빠른 속도였다.

“중위님, 준비 완료입니다!”

“좋아, 모두 다음 장소로 이동한다.”

대원들이 모두 떠나고 3분 뒤, 탄약고가 있던 자리에는 커다란 버섯구름이 생겨났다.

방어진지에 도착해 탄약이 도착하기만을 학수고대하던 병사들은 우렁찬 굉음과 환한 섬광에 놀라 뒤를 돌아봤다.

분명 새벽 5시 20분밖에 되지 않았는데도, 주변은 대낮처럼 훤했다.

“저 방향에는 탄약고가 있는데······.”

“맙소사.”

폭발이 일어난 방향으로 탄약고가 있다는 사실을 떠올린 폴란드 병사들은 이내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깨닫고는 망연자실했다.

전쟁은 이제 막 시작되었건만, 그들의 사기는 이미 바닥을 향해 추락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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