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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으로 가는 길 (5) (41/150)

전쟁으로 가는 길 (5)

에리히 마리아 레마르크.

내가 그와 과거에 만났다는 사실을 기억하려나 모르겠군.

1918년, 종전을 앞둔 시점에서 병원에 입원한 나는 우연히 그와 만나 짧게 얘기를 나누었다.

그때가 처음이자 마지막 만남이었지.

알다시피 레마르크는 소설가의 길을 걸어갔고 나는 총통이 되었다.

정권을 잡은 후, 측근들은 내게 레마르크의 작품들을 금지할 것을 청했다.

레마르크의 작품들이 국민들의 정서에 악영향을 준다는 이유에서였다.

하지만 나는 이를 거부했고 레마르크에게 어떤 해도 가하지 말라고 지시했다.

굳이 그를 체포하여 외국의 어그로를 끌 필요가 없기도 했지만, 과거에 만났던 정 때문이기도 했다.

총통이기 전에 한 명의 인간으로서 그의 팬이기도 했고.

그의 대표작인 <서부전선 이상없다>는 지금도 내 집무실 책장에 꽂혀있다.

사람들이 아는 본래의 역사에서 반전주의자였던 레마르크는 나치당과 잦은 마찰을 빚어오다 1931년에 스위스로 망명했었다.

하지만 여기서는 내가 나치의 광기를 최대한 억누른 덕분에 그는 여전히 독일에서 살고 있다.

그런데, 그가 어제 게슈타포에 체포되었다.

체포 사유는 공공장서에서 국가의 질서를 부정하는 부적절한 발언을 했기 때문이라고 한다.

보통 사람이었다면 바로 재판감이었겠지만, 레마르크가 국내는 물론 국제적으로도 이름이 널리 알려진 거물 작가인 탓에 힘러조차 그를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내게 의견을 구하러 온 것이다.

나는 주변의 만류를 뿌리치고 즉시 레마르크를 만나러 갔다. 그는 현재 오스나브뤼크에 있었다.

21년이라는 긴 세월에도 불구하고 그는 처음 병실에서 만났을 때와 비교해서 큰 차이가 없었다.

이마에 주름이 생기고, 머리숱이 조금 줄어든 것만 빼면 기억 속의 모습 그대로였다.

내가 방에 들어서자 천장을 응시하던 그의 시선이 내게로 향했다.

“오, 오랜만에 만나는구려.”

나는 그에게 조용히 인사를 건넸다.

레마르크는 내 등장에 놀란 기색이었지만, 소리를 지르지는 않았다. 그저 내 인사에 작게 대답할 뿐.

“······저도 오랜만입니다, 히틀러 씨.”

그는 나를 총통 각하 대신 히틀러 씨라고 불렀지만, 불쾌하게 느껴지지 않았다.

하지만 크라우제는 달랐는지 곧장 얼굴을 일그러뜨리며 사납게 말했다.

“총통 각하께 그 무슨······.”

“됐네. 크라우제, 자네는 잠시 나가있게.”

“하지만 총통 각하.”

“난 괜찮다니까. 옛 전우와 단둘이서 얘기를 나누고 싶네.”

크라우제는 머뭇거리면서도 결국 명령에 복종했다. 하다못해 그는 만일의 경우에 대비하여 수갑이라도 채워야 한다고 건의했지만, 사양했다.

“세상일은 참 모르는 것 같구려. 이런 식으로 다시 만나게 되리라곤 상상도 못했는데.”

“그러게 말입니다.”

“자네가 쓴 서부전선 이상없다 말이야, 참 재밌게 읽었네. 자네가 그 책을 썼다는 사실을 알았을 땐 소스라치게 놀랐네. 이럴 줄 알았다면 미리 사인 좀 받아놓을걸, 하고 후회했었지.”

내 말에 레마르크는 가볍게 웃기만 할 뿐, 침묵을 지켰다. 머쓱해진 나는 머리를 긁적거렸다.

“자네가 체포됐다는 소리를 듣고 나도 놀랐네. 앞으론 이런 일이 없도록 하지. 미안하게 됐어.”

“괜찮습니다.”

더는 할 말이 생각나지 않아서 이만 일어설까 고민하는데 레마르크가 조용히 입을 열었다.

“저도 솔직하게 말하죠. 이미 아실는지 모르겠지만, 저는 당신을 비판했습니다. 그래서 체포됐죠.”

“알고 있네.”

“그 이유가 궁금하지 않으십니까? 제가 왜 그런 말을 했는지?”

“음······ 조금······?”

“저는 당신이 거둔 업적을 부정할 생각이 없습니다. 그 누구도 하지 못했던 일을 당신은 해내셨죠.”

“과찬일세.”

“하지만 그 대가로 국민들에게서 자유를 앗아갔습니다. 그렇지 않나요?”

“사실일세.”

“어······ 알긴 아시는군요?”

이번에는 레마르크가 놀랐다. 내가 순순히 혐의를 인정하리라고 생각하지 못했던 것일까?

“뭘 숨기겠나? 나는 내 자신을 위해 수권법을 제정했고, 지금까지 독재자로 군림하고 있지. 국민들 모두가 다 아는 사실일세.”

아무리 원본 히틀러보다 순한맛이 되었다 한들, 내가 독재자라는 사실은 변함이 없다.

그걸 부정할 생각 역시 없고.

“그걸 아시는 분께서 왜 아직도 독재자로 남아계신 겁니까?”

“그야 독일에 승리를 가져다주기 위해서지.”

사실은 이 지긋지긋한 회귀에서 탈출하기 위해서지만.

레마르크는 그럴 줄 알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과거의 지도자들도 같은 말을 했죠. 1914년에 말입니다. 히틀러 씨도 그 결과가 어땠는지 잘 알고 계시지 않습니까? 그런데 어째서 그들과 같은 길을 걸어가고자 하십니까?”

“우습게 들리겠지만, 나는 그들과 다르네. 정말로. 자네 눈에는 똑같이 보이겠지만 말이야. 하지만 이거 하나만 알아두게. 나는 그들과 달리 독일을 반드시 승리로 이끌 생각이야.”

“카이저도 독일을 승리로 이끌 생각이었을 겁니다.”

“나도 알아.”

“정말로 멈추실 생각이 없습니까?”

“여기까지 온 이상, 내게 다른 길은 없네. 끝까지 가봐야지.”

나도 내가 원해서 이러는 게 아니다.

애초에 난 총통이 될 생각도, 전쟁을 일으킬 생각도 없었다.

하지만 지금까지의 내 모든 시도들은 모두 실패로 끝났다.

남은 방법은 단 하나.

전쟁에서 승리하여 독일을 강대국으로 만드는 것뿐.

그 길만이 나를 본래의 세계로 돌려보낼 유일한 방법이라고 생각한다.

“제가 마지막으로 충고드리겠습니다. 전쟁이 이 나라에 어떤 미래를 가져올지 아무도 몰라도, 전쟁에 휘말린 모든 사람들에겐 비극을 가져다줄 것이란 사실을 잊지 마십시오.”

“그건 걱정할 필요 없네. 한 번도 잊은 적 없으니까.”

나도 안다.

전쟁을 일으키면 그 전쟁으로 고통받는 사람들이 반드시 나온다는 것을.

내 자신의 미래를 위해 다른 누군가의 미래를 파괴한다는 것이 모순이라는 것도.

허나, 이 역시 모두 각오한 일이다.

어떤 희생을 치르더라도 반드시 이놈의 회귀에서 벗어나 내가 있어야 할 곳으로 돌아갈 생각이다.

평생을 시간의 쳇바퀴 속에 갇힌 채 살아가고 싶은 생각은 추호도 없으니까.

나는 레마르크를 석방시켰다.

그리고 무슨 일이 생기거들랑, 언제든지 내게 알리라고 말했다.

“자네를 회유하기 위해서 하는 말이 아닐세. 그저 같은 전장에서 싸운 전우로서의 순수한 호의니까 거부하지 말게나.”

“······행운을 빕니다, 총통 각하.”

행운, 행운이라.

나는 그 말에 숨은 의미를 곱씹으며 레마르크를 배웅했다.

그는 뒤돌아보지 않고 조용히 집으로 돌아갔다.

***

샤흐트의 경우에도 레마르크와 비슷했다.

폴란드 침공 개시까지 일주일도 채 남지 않은 시점에서 그는 내게 면담을 요청했다.

“총통 각하, 이런 말씀을 전하게 되어 참으로 유감이라고 생각합니다만, 더 이상 경제가 버티기 힘듭니다. 과도한 군비 지출로 인한 부작용이 나타나기 시작했고, 금 보유고 역시 2년 안으로 동이 날 겁니다. 최대한 버틴다고 해도 3년이 고작입니다.”

“체코를 합병하면서 얻어낸 금이 있지 않소?”

“그것까지 다 포함해서 드린 말씀입니다. 이대로라면 3년 이내에 독일 경제는 붕괴가 시작될 겁니다.”

“허어······.”

중국, 일본과의 적극적인 무역과 무기장사로 외화를 최대한 긁어모으고 체코가 보유한 금까지 강탈했는데도 독일 경제는 슬슬 한계에 다다르고 있었다.

그나마 경제 붕괴 직전이었던 원 역사와 비교하면 지금이 조금 낫다고 할 수 있으려나.

······그래봤자 경제가 망한 건 변하지 않지만.

하지만 이 또한 예상한 일. 답변은 정해져 있었다.

“장관이 잘못한 건 아무것도 없소. 이는 순전히 내 탓입니다.”

“지금이라도 군비 지출을 줄이고 민간경제에 투자해야 합니다. 그러니······ 전쟁을 재고해주십시오.”

“그건 힘들 것 같구려. 지금와서 전쟁을 멈춘다면, 군부가 반발할 거요. 그리고 폴란드와의 결전은 필연이오. 지금이 아니더라도, 언젠가 터질 수밖에 없는 일이란 말이지. 소련과 불가침조약을 맺은 것도 폴란드 정복을 위해서였소.

그런데 여기서 물러섰다간, 독일에겐 두 번 다시 폴란드를 징벌한 기회가 오지 않을 것이오. 영원히 끝이란 말이오.”

“하오나 총통 각하, 폴란드를 침공하는 순간 영국과 프랑스는 독일 경제의 숨통을 조일 것입니다. 가뜩이나 숨도 겨우 쉬고 있는 마당에 공기가 없어진단 말이죠. 그렇게 될 경우 폴란드 정복이 문제가 아니라 독일의 존망이 오갈 겁니다.”

샤흐트는 장장 2시간에 걸쳐 현 독일 경제가 처한 문제점과 시급히 해결해야 할 사항들에 대해 설명했다.

이미 책과 인터넷을 통해 다 알던 내용들이었지만, 끝까지 들었다. 샤흐트는 내가 문제점을 모르니까 전쟁을 일으키려 한다고 생각하고 있으니.

“그러니, 부디 전쟁을 재고해 주십시오. 폴란드는 경제를 해결한 다음에 손봐줘도 늦지 않습니다.”

“미안하오, 장관. 아무리 생각해도 그건 힘들 것 같소.”

“······그렇습니까.”

간곡한 설득에도 불구하고 내 입장에 변함이 없음을 확인한 샤흐트는 땅이 꺼져라 한숨을 쉬며 자리에서 일어섰다.

“실례했습니다, 총통 각하.”

이틀 뒤 샤흐트는 내게 마지막으로 경고하는 차원에서 경제장관에서 사임하겠다고 밝혔다.

역사에서 히틀러는 샤흐트를 해임한 뒤 자신에게 고분고분한 발터 풍크를 임명했다. 하지만 나는 샤흐트를 유임시켰다.

풍크도 유능하다면 유능한 친구지만, 그래도 샤흐트만큼 유능하고 다재다능한 인재를 찾기란 하늘에 별따기 수준이었기에 어떻게든 샤흐트를 붙잡아 놔야 했다.

전쟁이 끝난 후에는 그가 무척 유용하게 쓰일 테니까.

“지금은 아닐지 모르지만, 장관은 독일에 있어 반드시 필요한 존재요. 그러니 조금만 참고 기다려 주시구려.”

샤흐트도 내심 본인을 잡아주길 원했던 모양인지 내가 괴링을 보내 간곡히 설득하자 마지못해 받아들였다.

비록 경제 문제라는 커다란 짐 덩어리가 남아있지만, 독일의 전쟁 준비는 거의 완벽에 가까운 상태였다.

1호와 2호 전차가 기갑전력의 주력이었던 역사와 달리 현재 독일군 기갑부대의 주력은 1호와 2호보다 훨씬 강력한 4호 전차다.

심지어 1942년에 등장한 장포신 75mm 주포 탑재형까지 나왔다(비록 시제품 단계지만).

1호 전차는 후방의 훈련소와 경찰들만 운용하고 있으며 2호 전차도 2, 3선급 부대에서나 쓰이지 이미 전방부대들은 모두 4호 전차와 체코제 38(t)로 중무장한 상태.

탱켓을 주력으로 쓰는 폴란드군 따위는 가뿐하게 찢어버릴 수 있다.

특히 나를 기쁘게 한 것은 전차 개발만큼이나 신경을 썼던 신형 소총이 드디어 완성되었다는 소식이었다.

인류 역사상 최초로 돌격소총의 이름이 붙은 StG44가 눈앞에 있었다.

그것을 보는 순간 나도 모르게 입에서 감탄사가 튀어나왔다.

“언제 나오나 고대하고 있었는데, 드디어 나왔군.”

성능도 성능이지만 이 멋들어진 외형을 보라. 기름을 바르지 않았는데도 번쩍번쩍 광이 나는 몸체부터 매끄러진 곡선이 일품인 개머리판과 탄창까지, 뭐 하나 빠지는 게 없다.

괜히 세계의 총기수집가들이 군침을 흘리는 게 아니군.

“정말 수고 많았소, 박사! 내가 원하던 게 바로 이런 거요! 참으로 고생했소이다!”

“영광입니다, 총통 각하.”

흥분한 내가 진심을 담아 말하자, 슈마이저의 입꼬리는 귀까지 찢어졌다.

육군 장성들은 물론이고 육군과 거리가 있는 괴링, 레더조차 신형 소총의 아름다운 자태에 매료되어 눈을 떼지 못했다.

“이 신형 소총의 단가는 얼마나 되오, 박사?”

“70 라이히스마르크입니다, 제국원수 각하.”

“음, 가격이 좀 나가는군.”

국방군의 제식총기인 Kar98k의 단가가 55 라이히스마르크고, MP38의 단가가 57 라이히스마르크임을 감안하면 결코 싼 가격이 아니었다. 장군들의 표정이 미묘하게 변하는 것을 눈치챈 슈마이저가 황급히 덧붙였다.

“하지만 대량생산에 들어갈 경우 60 라이히스마르크까지 가격을 낮출 수 있을 겁니다.”

“합리적인 가격이군. 이 총의 성능을 생각하면, 오히려 남는 장사지. 빨리 대량으로 양산해서 전군에 보급해야 하네.”

가격이 얼마건 간에 총이 완성되는 즉시 채용할 생각이었던 나는 즉석에서 채용을 결정했다.

이 총에 유일한 단점이 있다면, 보다 빨리 완성하지 못했다는 점 하나뿐이었다.

하루빨리 전군에 보급할 생각으로 가득찬 내게, 슈마이저가 물었다.

“신형 소총의 이름은 뭘로 할까요? 혹시 생각해둔 이름이 있습니까?”

언제쯤 그 질문이 나오려나 싶었다. 당연히 생각해둔 게 있지!

“39년식 돌격소총, 줄여서 StG39(Sturmgewehr 39)로 하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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