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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데텐란트 문제 (2) (35/150)

주데텐란트 문제 (2)

독일과 체코슬로바키아 사이의 마찰이 증가하자 영국에도 비상이 걸렸다.

영국의 동맹국 프랑스는 동맹인 체코슬로바키아가 침략받을 경우 즉각 독일에 선전포고하겠다고 선언했지만, 이게 말뿐인 허세라는 사실을 영국은 모르지 않았다.

“프랑스가 지원을 요청했다고?”

“정확히 지원은 아니지만, 프랑스가 독일에 선전포고할 시 영국도 참전할 것인지 알고 싶다고 합니다.”

“그게 그거 아닌가. 나 참.”

자기들끼리 싸우기엔 뭣하니 자신들을 도와줄 생각이 있느냐고 묻는 것부터가 허세라는 사실을 인정한 꼴이나 다름없었다.

프랑스도 내부적으로 문제가 많았지만, 영국도 영국 나름대로 문제가 많았다.

해군과 달리, 육군은 전쟁 발발 시 즉시 투입할 수 있는 사단이 전무한 데다 여론마저 참전에 극도로 부정적이었다.

그렇다고 참전을 안 하자니 프랑스의 항의가 걱정되는 데다 최악의 경우 프랑스가 독일에게 정복당하는 사태가 벌어질 수 있었다.

이 경우 서유럽에선 영국 혼자서 독일과 맞서야 하는데, 세계 최강을 자부하는 영국도 단독으로 독일과 맞서기란 참으로 부담되는 일이었다.

영국 정부는 고민에 빠졌다.

프랑스 편을 들었다간 여론이 들고 일어날 판이고, 그렇다고 사태를 관망했다간 프랑스로부터 말이 나올 터.

어떻게 좋게 끝낼 수 있는 방법이 없을까?

“이건 어떻겠소?”

“무슨 좋은 수라도 생각났소?”

“지금 히틀러가 주데텐란트를 요구하는 이유가 주데텐란트에 사는 독일인들 때문 아니오.”

“그렇지.”

“민족자결주의에 따르면, 히틀러의 주장대로 주데텐란트의 독일인들은 자기들이 속할 조국을 택할 권리가 있소.”

“하지만 그게 말뿐이라는 것은 알고 있지 않소?”

“허울뿐인 명분이어도, 아무튼 명분은 독일에게 있다는 거요. 즉, 독일의 요구대로 주데텐란트를 넘겨주면 분쟁은 자연스레 해결될 일이란 말이지. 주데텐란트를 넘겨준다면 독일은 만족할 것이고, 전쟁도 피할 수 있을 거요.

전쟁이 일어나지 않으면 프랑스와의 약속을 지킬 수 있고, 여론도 잠재울 수 있으니 일석이조 아니겠소?”

“······!!!!”

분쟁의 원인이 된 주데텐란트를 독일에 넘겨주면, 전쟁을 피할 수 있다!

수중에 있는 돈을 강도에게 주면 목숨을 잃을 일이 없다는 말과 다를 바 없는, 기가 막힌 논리지만 영국 정부는 이 기막한 논리를 진지하게 나쁘지 않다고 생각했다.

아무튼 그들에게 중요한 건 전쟁을 피하는 것이었지, 체코슬로바키아의 입장이 아니었으므로.

“내가 직접 독일로 가서 히틀러를 만나고 오겠네. 직접 만나서 그의 의중을 살펴야겠어.”

영국 총리 네빌 체임벌린은 독일로 향했다.

***

1938년 9월 15일

독일 뮌헨

“부대, 차렷!”

SS 군악대가 연주하는 영국 국가가 울려 퍼지는 가운데, 흑색의 SS 의장대가 절도 있는 동작을 취했다.

그들 뒤의 깃대에는 하켄크로이츠기와 유니언 잭이 동시에 휘날리고 있었다.

유니언 잭 아래서 영국 국가 ‘갓 세이브 더 킹’(God Save the King)을 연주하는 SS 군악대의 모습은 흔하게 볼 수 있는 광경이 아니었다.

체임벌린은 SS 의장대의 완벽에 가까운 사열식을 보며 만족한 듯 고개를 끄덕였다.

“병사들의 기강이 제대로 잡혀 있군요. 과연, 친위대라는 이름이 아깝지 않습니다.”

“허허허, 과찬이십니다.”

독일 총통 히틀러는 체임벌린의 칭찬에 너스레를 떨었다.

독일과 영국 대표단이 걸어가는 동안 SS 병사들은 눈 한 번 깜빡이지 않았다. 매일같이 반복되는 고된 훈련의 결과물이었다.

회담이 시작되기 무섭게, 체임벌린은 히틀러에게 남자 대 남자로 허심탄회하게 이야기해보자고 권했다.

“총통, 여기까지 왔는데 무엇을 숨기겠습니까. 서로 솔직하게, 툭 까놓고 이야기해봅시다.”

“좋습니다. 누가 먼저 얘기할까요?”

“이곳은 독일 땅이니, 독일 총통이 먼저 말씀하셔야지요.”

“알겠습니다. 그럼, 단도직입적으로 말하죠. 우리 독일은 체코슬로바키아가 차지하고 있는 주데텐란트 일대의 할양을 원합니다.”

직선적인 성격의 소유자답게 거침이 없었다.

히틀러의 요구는 단 하나,

주데텐란트 전체였다.

체임벌린은 확답을 피하고, 다음날 영국으로 돌아가 프랑스에 히틀러의 요구를 전달했다.

“이 문제를 원만하게 해결하려면, 체코슬로바키아가 주데텐란트를 할양하게 하는 수밖에 없습니다. 총리도 제 의견에 동의하십니까?”

-동의합니다.

“그렇다면, 영국이 체코슬로바키아 정부와 ‘대화’를 나누는 것에 대하여 찬성하십니까?”

-찬성합니다.

프랑스 총리 에두아르트 달라디에는 체임벌린의 의견에 찬성했다.

체코슬로바키아를 돕는다고 천명했어도 속으로 전쟁을 겁내고 있던 프랑스는 전쟁만 피할 수 있다면 뭐든지 할 자신이 있었다.

체코슬로바키아인들에게는 미안한 일이지만, 남의 나라 영토보다 프랑스 국민들의 안전이 몇십, 몇백 배는 더 중요했다.

“어차피 전쟁이 터지면 체코슬로바키아도 큰 피해를 입을 겁니다. 국토가 쑥대밭이 되었는데, 전쟁에서 이겨봤자 뭘 하겠습니까?”

-맞는 말이지요.

“당분간 체코슬로바키아인들 사이에서 불만의 목소리가 좀 나오겠지만, 시간이 지나면 그들도 우리를 이해하겠죠.”

-분명 그럴 겁니다. 전쟁보다 평화가 더 소중한 법이니까요.

영국이 북을 치면 프랑스가 장구를 치는 환상의 조합.

덕분에 체코슬로바키아는 피를 토하고 싶은 심정이었다.

“그게 무슨! 이, 이게 말이 되는 소리입니까?”

체임벌린과의 통화에서, 체코슬로바키아 대통령 에드바르크 베네시는 황당함을 넘어 분노까지 느꼈다.

그런 베네시와 달리 체임벌린의 목소리에는 변화가 없었다.

-저 역시 대통령께 이런 소식을 전하게 되어 유감이라고 생각합니다.

“그걸 아시는 분께서 어떻게 그토록 태연하게 얘기하실 수 있는 겁니까? 주데텐란트가 체코슬로바키아에게 얼마나 중요한 곳인지 총리도 잘 알고 계시지 않습니까!”

베네시는 악을 쓰듯이 말했다.

체코슬로바키아에게 주데텐란트는 갑옷 같은 존재나 다름없었다.

독일이라는 야수의 이빨로부터 체코슬로바키아를 보호하는 갑옷.

대부분 고지대로 이루어진 주데텐란트에는 체코슬로바키아가 심혈을 기울여 만든 요새와 방어선이 대거 위치해 있었다.

이것들은 독일과의 전쟁이 발발할 경우, 체코슬로바키아를 지킬 수 있는 유일한 수단이었다.

그런데 주데텐란트를 포기한다?

그동안 심혈을 기울여 완상한 방어선과 요새는 그대로 독일에게 넘어갈 것이고, 체코슬로바키아는 시간과 돈만 헛되이 날린 셈이 된다.

체코슬로바키아 일대가 독일군의 침략으로부터 완전히 무방비해지는 것은 덤이고.

“총리, 분명하게 말씀드리죠. 체코슬로바키아는 그 결정에 따를 수 없소이다!”

체임벌린은 한동안 말이 없었다. 전화가 끊어졌나? 그건 아니었다.

체임벌린은 이내 한숨을 푹 쉬더니, 전보다 더 차가운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정말로 그것이 체코슬로바키아 정부의 입장입니까?

“그렇소.”

-그렇다면 잘 알겠습니다. 귀국이 독일과 전쟁상황에 돌입해도 대영제국은 참전하지 않을 것입니다.

“뭐, 뭐요?!”

베네시는 너무 당황한 나머지 하려던 말까지 까먹고 말았다.

-뭐가 문제입니까? 이것이 대영제국 정부의 공식 입장인데. 체코슬로바키아도 나름대로 믿는 구석이 있기에 그런 태도를 보인 게 아니었습니까?

아무튼 저는 대영제국 총리로서 할 일을 다 했습니다. 하실 얘기가 더 없으면 이만 끊도록 하지요. 모쪼록 현명한 판단 부탁드리겠습니다.

전화가 끊어진 후에도, 베네시는 수화기를 내려놓지 못했다.

영국이, 세계 최강대국 영국이 체코슬로바키아를 포기한 것이다.

독일이 두렵다는 이유로.

***

베네시의 고난은 여기서 끝이 아니었다.

이어진 달라디에와의 통화에서도 베네시는 지독한 절망을 맛봐야 했다.

“총리! 총리까지 그게 무슨 말이십니까?”

-어떡합니까? 영국이 참전하지 않는데, 프랑스가 단독으로 참전해봤자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아니, 프랑스 육군은 유럽 최강이라고 말씀하시지 않으셨습니까? 프랑스군이 독일 서부를 공격한다면 필시 독일군은-”

-대통령. 그 세계 최강이라고 자부하던 군부가 직접 제게 말했습니다. 프랑스 단독으로 독일과 붙는다면 승산이 없다고.

안타깝지만, 현실은 현실입니다. 일단 전쟁만큼은 피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대통령도 프라하가 불바다가 되는 꼴은 피하고 싶을 겁니다. 제가 파리가 불바다로 변하는 모습을 피하고 싶은 것처럼요.

“······.”

달라디에의 입장도 체임벌린과 다르지 않았다.

좋은 말 할 때 주데텐란트를 독일에게 내줘라. 끝까지 전쟁을 하겠다면 말리지 않겠다만, 체코슬로바키아 혼자서 독일과 싸워라. 우리 응원만 하고 있을 테니.

나라의 명운을 걸고 전쟁을 할 것인가,

굴욕을 감수하고 당장의 평화를 지킬 것인가.

베네시는 후자를 택했다.

***

1938년 9월 22일.

독일 뮌헨.

“······해서, 체코슬로바키아는 주데텐란트를 할양하기로 결정했습니다, 총통.”

일주일 만에 다시 히틀러와 만난 체임벌린은 그에게 한 장의 문서를 내밀었다.

체코슬로바키아 정부가 주데텐란트를 포기할 것을 인정하는 동의서였다.

영국과 프랑스는 체코슬로바키아에게, 주데텐란트를 포기하는 대가로 이후의 일체의 안전을 보장했다.

이미 주데텐란트를 빼앗긴 체코슬로바키아 입장에서는 병 주고 약 주고였지만, 당장은 이거라도 챙겨야 했다.

주데텐란트가 사라진 이상, 체코슬로바키아는 발가벗겨진 채 숲에 내동댕이쳐진 갓난아기나 다름없었으니까.

체임벌린 건넨 문서를 받아든 히틀러는 함박웃음을 지었다.

“고맙습니다, 총리. 유럽의 평화가 지켜진 것은 모두 당신 덕분입니다.”

“하하, 칭찬이 과하십니다. 저는 어디까지나 중재자 역할을 맡았을 뿐입니다.”

회담이 끝난 뒤, 연회가 열렸다. 연회에는 각종 요리들이 영국 대표단을 위해 한상 가득 차려졌다.

“자, 우리 모두 유럽의 평화를 위해, 그리고 이번 회담의 주인공 체임벌린 총리를 위해 건배합시다!”

협상이 무사히 마무리된 것에 신이 난 히틀러는 연회장을 돌아다니며 마주치는 사람들과 잔을 부딪쳤다.

“자, 이것 좀 드셔보시오. 미국식으로 튀긴 닭 요리입니다. 드시기 편하게 순살로만 튀겼지요.”

히틀러는 뼈가 있는 치킨을 선호했지만, 손으로 치킨을 잡고 뜯어먹는 행위를 영국인들이 불편해 한다는 것을 알기에 뼈가 없는 순살치킨을 내왔다.

순살치킨은 손을 쓸 필요 없이 포크로 간단하게 찍어서 먹을 수 있었다.

“음! 이거 맛있군요. 이 케이크 이름이 뭔가요?”

“이 케이크는 아직 이름이 없습니다. 레시피가 개발된 지 얼마 되지 않았거든요.”

“그렇습니까? 허어, 이렇게나 맛있는데. 영국에 돌아간 후에도 계속 생각날 것 같군요.”

“그 정도입니까? 하하, 그렇다면 영국에서도 드실 수 있도록 레시피를 알려드리죠. 사모님이 기뻐하실 겁니다.”

“하하, 하하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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