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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사하자 (2) (29/150)

장사하자 (2)

일본에서 전수받은 고급 기술과 각종 설계도는 MA에서 열심히 뜯고 맛보는 중이다.

이로써 해군 문제는 일단락되었다. 나머지는 레더의 몫.

일본으로부터 건네받은 것은 건함과 어뢰뿐만이 아니었다. 그와 동급의, 어쩌면 그보다 더 중요하다고 할 수 있는 물건이었다.

다만 차이가 있다면 일본 정부와의 쇼부가 아닌 소정의 돈과 설득이 필요했다는 것이었다.

***

“초, 초대해주셔서 여, 영광입니다, 총통 각하······.”

갈대마냥 덜덜 떨고 있는 왜소한 체격의 일본인의 이름은 우다 신타로.

그는 자신을 둘러싼 모든 것이 헛것이라도 되는지 연신 눈을 깜빡거렸다.

이게 전부 다 꿈이겠지? 눈 한 번 감았다가 뜨면 다시 원래대로 돌아가 있을 거야. 응, 그래.

그런데 왜 아직도 내가 독일에 있지?

심지어 앞에는 히틀러가 있네?

설마 히틀러를 닮은 사람인가? 그렇겠지, 아마. 콧수염이야 워낙 흔하니까.

“반갑소, 우다 신타로 선생. 아돌프 히틀러요. 제3제국에 온 것을 환영합니다.”

히틀러와 함께 한 통역사가 독일어를 일본어로 통역해서 신타로에게 전해줬다.

그제야 신타로는 이게 꿈이 아니라 현실임을 깨달았다.

아돌프 히틀러.

<나의 투쟁>의 저자이자 현 독일 총통.

신문과 뉴스영화로만 접하던 그 사람이 지금 앞에 있다.

“선생께서 독일에 오지 않으면 그땐 어떡하나 걱정했는데, 다행입니다 그려. 독일까지 오는데 힘들지는 않았소?”

“무, 무척 편안한 여행길이었습니다······.”

“이 사람, 계속 떨기는. 누가 보면 내가 당신 목숨줄을 쥐고 협박이라도 하는 줄 알겠소이다. 편히 있어요.”

“아, 죄송합니다.”

히틀러가 우다를 독일로 초대한 까닭은 하나였다.

바로 우다의 발명품 때문이었다.

“제 발명품이라고요?”

“그렇소. ‘야기-우다 안테나’가 바로 선생의 작품 아니오?”

야기-우다 안테나. 1926년 일본의 공학자 우다 신타로와 그의 지도교수 야기 히데츠구가 제작한 안테나.

야기-우다라는 이름은 우다 신타로와 야기 히데츠구의 성을 따서 만들어진 것이다.

기존의 안테나가 안테나 소자에 전류를 흘려 전파를 방사하는 방식이었다면, 야기-우다 안테나는 반파장 다이폴 안테나 전방에 도선이 짧은 도파기를 배열하고 후방에는 도선이 긴 반사기를 배열하여 지향하는 방향으로 전파를 쏘는 것은 물론 발신된 전파를 높은 감도로 수신할 수 있는 획기적인 물건이었다.

그러나 ‘야기’라는 이름과 달리, 설계와 제작 모두 우다 신타로 혼자서 담당했다.

하지만 야기는 자신의 권한을 이용해 우다의 공적을 가로챘고 훗날 야기 안테나라는 회사를 차려 떼돈을 벌었다.

당연히 우다에겐 돌아간 게 아무것도 없었다.

사람들의 무관심과 야기의 갑질에 익숙해질 대로 익숙해진 그였지만, 히틀러 총통과의 만남은 도저히 평정심을 유지할 수 없었다.

거기다 자신의 발명품-사람들은 야기의 발명품이라고 여기는-에 관심을 가지고 있다니.

이게 꿈이 아니라 실화라고? 정말로?

“선생이 그동안 어떤 고생을 했는지는 대강 알고 있소이다. 지도교수라는 작자가 선생의 공을 모두 독차지한데다가, 이후로도 계속 부려먹었다지. 논문도 공동명의로 하고, 특허는 자기 몫으로 돌리고······

그런데도 공학을 포기하지 않고 연구를 계속하다니. 선생만큼 인내심이 뛰어난 사람은 독일에서도 찾기 어려울 것이외다.”

“영광입니다······.”

일본에서는 그 누구도 자신의 공적을 알아주지 않았는데, 일본과 하등 관계가 없는 머나먼 이국의 지도자가 자신의 노고를 알아주다니.

그동안의 설움이 밀려온 우다는 자기도 모르게 눈물을 흘렸다.

“진정하시오, 선생.”

우다의 눈물에 당황한 히틀러는 주머니에서 손수건을 꺼내 우다에게 건넸다.

“선생이 만든 물건은 가히 혁신 그 자체올시다. 그런데 정작 선생의 조국은 선생의 노고를 알아주기는커녕 철저히 무시했다는 말을 듣고 어이가 없었소.”

야기-우다 안테나는 레이더 개발에 필수적인 물건이었지만, 정작 우다의 조국인 일본은 우다의 작품을 거들떠보기는커녕 1936년에 일본 내에서 전파기기의 연구와 개발을 금지시키기까지 했다.

국민들이 단파 라디오로 외국의 방송을 듣고 사상적으로 불건전한 비국민이 된다는 어처구니없는 이유 때문이었다.

일본군은 레이더가 되려 적에게 자신의 위치를 알리는 꼴이라고 생각해 레이더를 쓰지 않았고, 전파 탐지의 중요성을 역설하는 우다를 무시하기 바빴다.

반면 레이더의 중요성을 간파한 영국과 미국, 독일 등은 레이더 기술 개발에 사력을 다해 실전에서 이를 매우 유용하게 써먹었다.

1941년 말이 되어서야 일본도 부랴부랴 레이더 기술을 연구하기 시작했지만, 때가 늦어도 너무 늦은 뒤였다.

“그래서 말인데 선생에게 내 하나 제안을 할 게 있소이다.”

“말씀하시지요.”

“우리 독일에 와서 레이더 연구를 계속해줄 수 있소? 연구비와 생활비는 물론, 선생이 원하는 모든 것을 드리리라. 선생의 작품은 독일의, 아니 전 인류의 발전을 위해선 꼭 필요한 기술이오.”

자신의 숙원인 연구를 지원해주겠다는 것으로 모자라 최상급의 대우를 약속하는데 이를 거부할 사람은 없다.

이미 우다의 답은 정해져 있었다.

“알겠습니다. 맡겨만 주십시오.”

***

우다 신타로는 베를린 교외에 위치한 큼지막한 저택과 최신식 연구실을 배정받았다.

그의 연구를 도울 조수들과 통역관, 운전기사와 개인 요리사도 함께.

과연 우다는 저택에 짐을 푼 날부터 연구에 매진 중이라고 한다. 잘됐네, 잘됐어.

우다는 풍족한 환경에서 본인이 원하는 연구를 계속할 수 있으니 좋고, 우리는 최신 레이더 기술을 얻을 수 있으니 좋고.

이게 바로 상부상조다, 이 말씀이야.

영국이 레이더를 활용해 영국 본토 항공전에서 큰 재미를 본 사실은 이미 밀덕들 사이에선 너무 유명한 얘기다.

이때 레이더에 호되게 당한 독일도 레이더 연구에 박차를 가해 나름 쏠쏠하게 써먹었다.

다만 적이 너무 사기캐라 별 효용이 없는 것처럼 보여서 문제였지.

그런데 이 좋은 것을 일본은 적에게 위치를 들킬 수 있다는 이유로 쓰지 않다가 영국 본토 항공전 정보를 입수한 1941년 8월이 되어서야 겨우 연구를 시작했다.

그나마 쓸만한 물건이 나왔을 땐 이미 전황이 돌이킬 수 없을 정도로 악화된 터라 말짱 도루묵이었고.

병신새끼들.

뭐어, 덕분에 우리는 100년에 한 번 나올까 말까 한 천재를 손에 넣을 수 있었으니 오히려 고마워해야 할지도 모르겠다.

우다에게 독일에서 난다 긴다 하는 실력자들까지 붙여줬으니 알아서 잘하겠지.

미국의 헨리 포드와의 협상도 성공적으로 마무리되었다.

애시당초 헨리 포드 이 양반이 원래부터 나치에 우호적이라 말이 협상이지 협상이라 할 것도 없었지만.

사람들이 의외로 잘 모르는 사실인데, 미국의 루스벨트 정부가 나치 독일에 적대적인 입장을 취한 것과 반대로 미국 기업들은 독일의 대미 선전포고 전까지 독일과 아~주 밀접한 관계를 유지했다.

히틀러의 최측근이자 군수장관이었던 알베르트 슈페어가 회고록에서 미국 기업들이 독일에 제공한 합성석유가 없었다면 독일은 결코 폴란드를 침공하지 못했을 것이라고 말했을 정도로 미국 기업들은 독일의 재무장과 전쟁수행에 적극 협력했다.

독일군에게 필요한 것은 너무 많아서 하나씩 다 열거하기가 힘들지만, 대표적으로 중요한 것은 뽑으라면 ‘차량’이다.

기계화부대로 널리 알려진 세간의 인식과 달리, 독일은 전쟁 시작부터 끝날 때까지 차량 부족에 시달렸다.

유럽 최강의 공업국이었던 그 독일이 차가 부족해서 마차를 타고 다녔다고? 믿을 수 없어! 라고 말할 친구들이 많겠지만, 사실이다.

차량이 절대적으로 부족했던 탓에 독일군은 대부분의 수송을 군마에 의존해야 했으며, 각 사단별로 군마들을 전문적으로 치료하는 부대까지 있었다.

전후 뉘른베르크 재판에서 왜 독일이 독가스를 쓰지 않았냐는 질문에 괴링이 ‘군마들에게 씌울 방독면이 부족해서 그랬다’고 말했다는 일화가 있을 정도로 군마는 독일군에서 아주 중요한 존재였다.

당연히 군마를 이용한 보급이 차량을 이용한 보급보다 시간이 오래 걸린다.

보급이 늦어질수록 최전방에서 피똥 싸는 병사들이 늘어나는 법이고.

따라서 전쟁 전까지 차량을 최대한 많이 확보해야 한다.

포드뿐만 아니라 제너럴 모터스(GM)도 우리에게 적극적으로 협력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여기까지는 내가 아는 역사와 같다.

그런데 역사대로라면 독일과 척을 졌을 유대계 기업들까지 먼저 협력을 제안해왔다.

이건 예상 밖의 일이라서 여간 당황스러운 게 아니었다.

나치와 손잡는 유대인이라니, 암만 생각해도 이상하잖아!

더더욱 충격적인 것은 미국 내 일부 유대인들 사이에선 ‘히틀러 배우기 열풍’이 불고 있다고 한다.

미국 서점에 진열된 나의 투쟁 구입자들이 상당수가 유대인들이란 보고도 있었고.

내가 이전에 행한 연설이 미국에서도 큰 감명을 주었다나 뭐라나?

나의 투쟁을 읽는 유대인들이라니··· 상상도 못한 일인데.

“어······ 아무튼 잘된 일 아닌가? 미국에서도 국가사회주의의 이념을 추종하는 자들이 많아진다는 뜻이니까.”

“물론 나쁜 일은 아닙니다만, 그래도 존엄하신 총통 각하께서 자칫 잘못하다간 유대인들의 우상으로 여겨질까 봐 우려됩니다.”

여전히 반유대주의를 버리지 못한 괴벨스의 말이었다.

얼굴에 드러난 표정을 보니 진심으로 내가 유대인들 사이에서 메시아 취급을 받는 게 걱정인 듯했다. 힘러와 하이드리히도 비슷한 생각을 하는 눈치고.

“신경쓸 필요 없네. 나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내가 남들 눈에 어떻게 보일지가 아니라 독일에 조금이라도 더 도움이 되느냐 아니냐 뿐이니. 어찌되었든 결과가 좋지 않나. 자발적으로 우리에게 협력하겠다니 내칠 이유도 없고, 재무장에도 속도가 붙으니 말일세.”

중국, 일본과의 무역을 통해 나름 쏠쏠하게 재미를 보고 있지만, 무역으로 벌어들인 돈만으로는 재무장에 필요한 비용을 충당하기엔 부족했다.

그런데 미국 내 기업들, 특히 유대계 기업들이 먼저 우리에게 손을 내밀어준 덕에 부담이 크게 줄었다.

이래서 사람은 착하게 살아야 한다니까. 언젠가는 다 자기한테 돌아오는 법이라고.

헝가리와 루마니아, 불가리아 같은 발칸 국가들도 우리 독일에겐 좋은 고객이었다.

특히 루마니아는 독일과 적대관계인 프랑스, 폴란드와 동맹을 맺은 입장임에도 독일제 무기 수입에 거리낌이 없었는데, 앞에는 헝가리, 뒤에는 소련, 아래로는 불가리아라는 적대국들과 국경을 접한 상태이기 때문에 국방력 강화에 신경을 쓸 수밖에 없었다.

프랑스와 폴란드도 무기 수입건으로 동맹국과 괜히 트러블이 일어나는 일은 피하고 싶었던지라 별로 터치하지 않았다.

기껏해야 독일제 말고 우리 것도 좀 살 생각 없냐고 넌지시 물어보는 정도?

헝가리와 불가리아는 루마니아보다 더 독일제 무기 수입에 진심이었는데, 그럴 만도 한 게 이들 두 나라 모두 1차대전 패배로 루마니아에게 땅을 빼앗긴 전적이 있기 때문이었다.

언젠가 전쟁을 통해 잃었던 땅을 되찾으려면 강한 군대는 필수다.

그 강한 군대를 만들려면 좋은 무기가 필요한데, 마침 멀지 않은 곳에 무기장사 중인 나라가 있네?

이들의 주문량이 어찌나 많은지 국방군에게 보급할 무기 생산에 차질이 빚어질 정도였다.

심지어 헝가리와 불가리아의 요청으로 양산이 중단된 1호 전차 생산까지 재개되었다.

“참 이해할 수 없군. 겨우 기관총 두 정 달린 경전차가 뭐가 좋은지 그렇게나 많이 사겠다는지. 안 그렇소이까?”

“아직 스페인에서의 소식이 전해지지 않아서 그런 모양입니다. 아무튼 우리 독일이야 돈을 벌 수 있으니 좋은 일 아니겠습니까?”

전차 개발과 생산 문제로 최근 구데리안과 만날 시간이 부쩍 많아졌다.

구데리안의 실력을 알고 있던 나는 틈만 날 때마다 그를 진급시켰고, 덕분에 지금은 어깨에 대장 견장을 달고 있다.

구데리안도 자신을 등용해준 내가 무척 고마운지 기대에 보답하기 위해 휴가까지 반납하고 밤낮으로 열일하는 중이다.

“스위스와 스웨덴, 이란에서도 우리 전차를 사겠다고 연락해왔는데, 2호 전차도 원하더군. 장군 생각은 어때요? 나는 판매해도 크게 문제 될 게 없다고 생각하는데.”

“제 생각도 총통 각하와 같습니다. 이제 막 시제품이 나온 4호 전차라면 몰라도 1호와 2호라면 걱정할 필요 없을 겁니다.”

원래 계획상으론 500대만 양산할 예정이었던 2호 전차도 무수한 판매의 요청 때문에 2000대나 생산되었다.

1호와 2호를 팔아서 번 돈은 4호를 비롯한 다른 무기들로 바뀌어 세상에 나타날 예정이다.

이게 바로 창조경제가 아니면 뭐겠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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