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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사하자 (1) (28/150)

장사하자 (1)

1936년 12월 26일.

장제스는 제6차 초공작전의 개시를 명령했다.

장제스의 목표는 단 하나, 중국에서 공산당을 완전히 박멸하는 것.

“장차 있을 일본과의 결전에 대비하려면 우선 허구한 날 뒤통수나 쳐대는 가증스러운 빨갱이들부터 모두 때려잡아야 한다. 놈들이 살아 숨 쉬는 한 중국은 절대로 평화로울 수 없다!”

알렉산더 폰 팔켄하우젠 중장이 이끄는 주중 독일 군사고문단은 국민혁명군을 지휘해 공산당을 때려잡는 데 앞장섰다.

이들의 활약으로 국민혁명군은 승승장구했고 공산당은 빠르게 거점을 잃어갔다.

초공작전이 진행 중이던 1937년 1월 20일, 장제스는 참모들을 이끌고 독일 베를린에 도착했다.

“환영합니다, 장 총통. 그 먼 길 오느라 대단히 수고하셨습니다.”

“환대에 감사드립니다, 히틀러 총통. 직접 마중까지 나오시리라곤 생각도 못했는데······.”

장제스는 공항에서 내가 직접 마중을 나오자 적잖게 놀란 눈치였다.

나는 웃으며 손사래를 쳤다.

“귀하신 분이 오시는데 어찌 마중을 안 나가겠습니까? 중국은 독일의 친구 아닙니까?”

“그렇게까지 생각해주시니 정말 고맙습니다!”

베를린 곳곳에 게양된 청천백일만지홍기가 바람에 펄럭거리는 모습을 장제스는 흐뭇한 얼굴로 바라보았다.

국제사회에서 천대받던 중국의 깃발이 유럽 대도시에 걸리게 되리라곤 상상도 못했겠지.

회담을 시작하기도 전부터 장제스의 얼굴에는 미소가 떠날 줄 몰랐다.

장제스가 독일에 바라는 것은 이미 정해져 있었다.

무기, 보다 더 많은 무기. 그리고 독일의 우수한 과학 기술들. 기계 제조설비부터 의약품들까지, 가능한 한 모든 것.

“총통께서도 아시겠지만, 지금 중국인 공산당을 박멸하기 위한 초공작전이 진행 중입니다. 총통께서 보내주신 고문들이 하나같이 우수한 인재들인 덕분에 초공작전은 현재까지 별 탈 없이 잘 진행되고 있습니다.”

“그거 참으로 다행이군요.”

“하지만 무기와 의약품이 여전히 턱없이 부족합니다. 중국에 있는 공장들을 모두 가동하고 있지만 이것만으로는 부족합니다. 중국에 세울 공장들에 필요한 기술자들과 병사들을 치료할 의약품이 절실합니다.”

“잘 알겠습니다.”

장제스는 그 대가로 중국에서 채굴되는 막대한 자원을 제시했다.

그렇잖아도 전쟁수행에 필요한 광물 확보에 진심이었던 터라 내겐 장제스의 요구를 거절할 이유가 없었다.

서로 이해타산이 일치했으니 협상은 금방 타결되었다. 우리는 중국에게 무기와 기술을, 중국은 우리에게 광물을.

보병용 소화기뿐만 아니라 대전차포와 대공포, 곡사포, 거기에 전차와 장갑차까지 중국으로 수출되었다.

스페인 내전으로 퇴물임이 입증된 1호 전차조차 중국 입장에선 아주 훌륭한 전차인 관계로 장제스는 내가 제시한 가격을 고민 없이 받아들였다.

사기 친 거 아니냐고? 무슨 그런 말을! 

나는 어디까지나 물건을 사겠다는 당사자에게 ‘합리적인 가격’으로 팔았을 뿐이다.

가격이 얼마든지 간에 사겠다는데, 내가 왜 거절을 하냐?

몇몇 항목에선 ‘조금’ 바가지를 씌우긴 했지만, 원래 장사란 건 이런 것이다.

서로 어떻게든 이윤을 남기기 위해 필사적으로 머리를 굴리는, 총칼 없는 승부.

아무튼 서로 만족하니 된 거 아닌가.

“고맙습니다, 총통. 독일 덕분에 중국은 한층 더 위대한 나라로 도약할 수 있을 겁니다.”

“과찬이십니다, 그려. 저 역시 하루빨리 중국 대륙에서 공산당의 무리들이 깡그리 없어지길 간절히 기도하겠습니다.”

***

“정말로 이게 사실입니까?”

“그렇다니까요. 사람이 그간 속고만 사셨나.”

헨리 윌슨은 자기도 모르게 계약서를 처음부터 끝까지 다시 읽기 시작했다.

계약서에는 평소의 그가 상상조차 할 수 없었던 금액이 적혀 있었다.

이 돈만 있다면 주택 대출금은 물론이고 아이들 학비와 부모님의 병원비도 걱정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그뿐인가? 차고에 있는 낡은 차도 공장에서 갓 출고된 새 차로 바꿀 수 있다.

“딱 2년 동안, 독일에 와서 일을 도와주시면 됩니다. 그럼 그 돈은 선생의 계좌로 입금될 것입니다. 약조하지요.”

“정말로 이렇게나 큰돈을···? 아무래도 영 믿기지가 않는데······.”

“어허, 그럼 제가 사기꾼으로밖에 안 보인다는 뜻입니까?”

“그런 뜻은 아니지만, 아무리 그래도 한 번쯤은 의심이 들지 않겠소?”

“그렇다면 어쩔 수 없지요. 어디까지나 결정은 선생의 몫이니까. 선생께서 싫으시다면, 저도 더 이상 권유하지 않겠습니다. 어차피 선생 말고도 저와 만나겠다는 사람이 제법 많아서 말이지요. 오늘 안으로 다 만날 수나 있을지 잘 모르겠습니다.”

“자, 잠깐!”

남자가 몸을 돌려 나가려고 하자, 윌슨은 다급한 목소리로 남자를 불러 세웠다.

“계약하겠소! 겨우 2년인데, 그걸 못하겠소?”

윌슨의 말에 남자는 그럴 줄 알았다는 듯이 미소를 지었다.

“현명한 선택입니다, 선생. 그럼 짐을 싸서 이틀 뒤 계약서에 명시된 곳까지 오시길 바랍니다. 대신, 그 누구에게도 계약과 관련해서 얘기하시면 안됩니다. 선생의 가족분들께도 말이죠. 이 규칙을 어기신다면 선생과 저희의 관계는 그대로 끝입니다, 끝. 당연히 돈도 한 푼도 줄 수 없고요.”

“그건 걱정하지 마시오. 가족들은 어차피 내가 하는 말이라면 철석같이 믿으니.”

“그럼 좋습니다. 이틀 뒤에 뵙도록 하지요.”

***

1889년부터 1919년까지 독일 함선의 설계를 담당했던 RMA(Reichsmarineamt, 제국해군청)는 매우 혁신적이고 선진적인 조직 분위기와 높은 보수, 고위급 장교와 동급의 대우로 독일 내 모든 함선 설계자들 사이에선 꿈의 직장으로 통했다.

하지만 독일이 전쟁에서 패하면서 RMA 또한 해산되었고, 이로 인해 독일은 함선 설계에 필수적인 고급 기술력이 단절되고 말았다.

비록 RMA는 MA(Marineamt, 해군청)으로 이름을 바꿔 부활하긴 했지만, 고급 인재들이 대거 떠난 탓에 이를 메꾸기 위해 본래라면 RMA 문턱조차 넘을 수 없었던 초짜 설계자들을 대량으로 채용하는 실수를 범하고 말았다.

가뜩이나 인재풀이 낮아진데다가 예산도 줄어든 마당에 육군 및 공군과 경쟁 중이던 해군 상층부에선 하루빨리 결과물을 내놓으라고 독촉해댔다.

최소한 시간이나마 넉넉하게 줘도 모자랄 판에 닦달까지 해댄다?

당연히 좋은 결과가 나올 리 없다.

이 모든 것이 안 좋은 의미로 시너지를 일으키면서 MA는 독일 최고의 조직에서 독일 최악의 조직으로 전락하고 말았다.

그렇다고 MA에서 설계한 함선들이 하나같이 죄다 폐급이었다는 소리는 아니다.

썩어도 준치라고 오랫동안 해군 강국이었던 나라답게 기본적인 성능은 그럭저럭 준수했지만, 하나같이 어딘가에 문제점이 존재했다.

대표적인 예로 크릭스마리네의 얼굴마담이나 다름없던 비스마르크급 전함의 경우 수상용 부포와 대구경 대공포를 각각 따로 장비하여 적기의 공습에 효율적인 대처가 힘들었으며, 포탑에 별다른 안전장치를 설치하지 않아 바닷물로 인한 잦은 고장에 시달렸다.

심지어 대공포 성능도 수준 미달인데다, 이마저도 겨우 16문밖에 장착하지 않아 적기의 공격에 너무나도 취약했다.

이외에도 사격통제장치, 빈약한 측면장갑으로 인한 방어력 하락 등 수많은 문제점이 산재되어 있지만 일일이 다 설명하기엔 피곤하니 생략.

최중요 전력인 전함이 이 모양인데, 다른 것들이 멀쩡했을 리 없다.

구축함의 경우 당대 구축함들 중에서도 매우 큰 덩치를 자랑했는데, 정작 무장이 빈약하고 항속거리도 짧아 행동에 제약이 컸다.

항속거리는 짧은 놈이 보일러는 6개나 장비한 것은 덤이고.

이 모든 게 성능의 저하뿐 아니라 자원과 비용의 낭비로 직결된다는 것을 감안하면 시급히 해결해야 할 과제였다.

이러한 문제점을 해결하기 위해선 기량이 뛰어난 인재들의 도움이 필요했다.

그것도 아주 많이.

나는 이전 RMA에서 근무했던 설계자들을 다시 MA에 최대한 복귀시키는 한편, 아프베어 국장 빌헬름 카나리스와 SD 국장인 하이드리히에게 명령하여 영국과 미국의 함선 설계자들을 포섭하여 독일로 데려오라고 지시했다.

그리고 해군에게도 충분한 시간을 줬다.

당장 결과물을 낼 필요는 없으니 MA 좀 그만 갈구고 여유를 가지라고.

“육군과 공군이 뭐라고 해도 너무 조급해하지 마시오. 제독뿐만이 아니라 모든 해군 인원들이 한마음 한뜻으로 고생하고 있다는 사실은 내가 누구보다 잘 알고 있으니까.

시간이 다소 걸리더라도 보다 완벽한 물건이 나와야 하지 않겠소. 성능의 차이가 실전에서는 병사들의 생사로 직결되는데.”

“매우 지당하신 말씀입니다, 총통 각하!”

예산은 많이 받으면서 정작 결과물은 없다는 육군과 공군의 비아냥이 마음에 계속 걸렸던 모양인지 레더는 내가 직접 천천히 해도 된다고 보장해주자 감격한 듯 눈물까지 보였다.

그냥 덕담 삼아 몇 마디 건넨 것뿐인데 울 필요까지야.

괜히 내가 다 부담스럽네.

***

영미의 인재들을 포섭하는 일 외에도 중요한 일이 하나 있었으니 바로 일본의 기술을 들여오는 것이었다.

다른 건 몰라도 일본의 건함 기술은 독일보다 월등히 뛰어나다.

2차대전 당시에도 독일은 일본으로부터 기술자들을 초빙하여 함선 건조에 투입한 전례가 있으니 안 될 것도 없다.

꺼림칙하긴 해도 어쩔 수 없는 일이다.

독일 해군을 1류까지는 못 되더라도 최소한 싸울 줄 아는 상태로 만들려면 일본이 보유한 해군 관련 기술과 노하우가 반드시 필요했으니까.

영국에 이은 세계 해군력 2위였던 독일이 1차대전 패전과 베르사유 조약으로 몰락한 반면, 후발주자였던 일본은 승전국이었기에 해군력 증강에 박차를 가할 수 있었다.

그 결과 일본은 2차대전이 발발하기도 전에 세계 2, 3위를 다투는 막강한 해군을 보유하게 되었다.

그에 비해 독일 해군은 이제 겨우 출발점에 선, 2류 수준에 불과했다.

겨우 몇십 년 만에 입장이 완전히 역전된 것이다.

옛 제자가 지금의 스승이 된 현실이 여간 굴욕스러운 게 아니지만, 사람이 발전하기 위해서는 현실을 인정하고 그것을 받아들이는 것도 할 줄 알아야 하는 법.

나는 주독 일본대사인 도고 시게노리와 만나 독일 해군력 증강을 위해선 일본의 도움이 필요하다고 솔직하게 얘기했다.

본래 도고 시게노리는 아내가 유대인인지라 반유대주의 끝판왕이었던 나치 독일을 좋게 보지 않았다.

그 때문에 독일과의 관계를 중시하던 군부와 충돌하여 친독파인 오오시마 히로시로 교체되고 말았고.

그러나 지금 역사에서는 내가 친히 나서서 반유대주의를 배척한 덕택에 나를 대하는 도고의 태도가 무척 살가웠다.

“잘 알겠습니다, 총통 각하. 즉시 본국에 연락해 각하의 뜻을 잘 전하겠습니다.”

“고맙소이다, 대사.”

1937년 기준으로 일본에서 나에 대한 평가는 애매한 편이었다.

패전국이었던 독일을 5년도 되지 않아 다시 강대국으로 만든 것에 대한 경외의 시선이 있는 한편, 나의 투쟁에서 일본의 아시아 침략 야욕을 경고한 탓에 일본의 적이라고 생각하는 부류도 있었다.

특히 올림픽에서 메달을 딴 손기정과 남승룡을 비밀리에 초청해 밥도 같이 먹고, 열심히 치켜세워준 것에 대한 의심의 눈초리도 있었다.

“독일 총통이 어째서 일개 조센징들을······?”

“대체 히틀러의 머릿속에는 뭐가 든 거지?”

이렇듯 일본에서 바라보는 나, 아돌프 히틀러라는 인간은 한마디로 정의내리기 어려운 인물이었다.

그러나 세간의 시선이 어떻든 간에, 유럽 강대국 독일의 교류 제안은 일본 입장에선 좀처럼 뿌리치기 힘든 너무나 달콤한 유혹이었다.

비록 해군은 2류 수준에 불과하지만, 육군만큼은 프랑스와 더불어 세계 최강이라고 평가받던 독일이었기에 독일군과의 교류를 절실하게 원하고 있던 일본 군부는 내 제안에 긍정적인 반응을 보였다.

“장차 황국의 성장에 동남아를 식민지로 삼고 있는 영국, 프랑스는 방해가 될 것이오. 독일도 영국, 프랑스를 잠재적인 적국으로 두고 있지.”

“황군의 발전에는 독일이 보유한 선진적인 기술과 무기가 반드시 필요하오!”

“허나 독일은 중국과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지 않소? 언젠가 중국을 정벌해야 하는 황국 입장에서는 독일이 마냥 우호적인 국가는 아닐 것 같소만.”

“그건 어디까지나 중국의 광물을 얻기 위해서요. 게다가 황국도 독일로부터 무기들을 수입하고 있지 않소.”

“이참에 독일의 관심을 중국으로부터 황국으로 돌릴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될지도 모르오.”

반대와 우려의 목소리가 있었지만, 일본 정부와 군부의 대체적인 반응은 ‘환영’이었다.

일본은 독일에게 자국의 해군 관련 기술-함선 및 어뢰 설계도-을 건네주고, 그 대가로 독일로부터 각종 무기를 전수받았다.

일본이 가장 반겼던 물건은 다름 아닌 3호 전차의 설계도였다.

3호 전차는 계속된 실패로 개발이 중지되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병기국은 3호 전차에 미련을 버리지 못했는지 기존의 설계를 이리저리 뜯어고쳐 새로운 설계도를 만들어냈다.

질긴 녀석들 같으니라고.

왜 이렇게 집착이 심해? 이거 안 만들면 누가 죽기라도 하냐?

“이미 4호 전차 개발도 마무리 단계에 접어들었는데, 굳이 3호 전차를 만들 필요가 없지 않소. 아까운 시간만 낭비하지 말고, 이만 접으시오.”

“하지만 총통 각하, 이번에는 분명 다를 겁니다. 그러니-”

안 돼. 안 바꿔줘. 바꿀 생각 없어. 빨리 돌아가.

이미 4호 전차 양산에 결심을 굳힌 나에게 병기국의 설득은 통하지 않았다.

누누이 말하지만 4호가 훨씬 낫다니까? 3호 이놈은 4호와 달리 75mm 장포신 탑재도 불가능해서 돌격포로밖에 써먹을 수 없다고.

그렇게 3호의 설계도는 영원히 창고에서 썩을 운명이 될 뻔했지만, 의외로 일본과의 거래에서 이 애물단지가 빛을 발했다.

“오오, 이것이 바로 독일의 전차들이군요.”

“이 아름다운 외관을 좀 보라고. 무척 아름답군!”

2호 전차라면 몰라도 1호 전차는 일본 입장에서도 딱히 특출난 구석이 없을 텐데도 불구하고, 독일제 전차라는 점 때문인지 지대한 관심을 보였다.

이럴 때 쓰는 말이 남의 떡이 더 커 보인다는 말이었나?

4호 전차는 아직 개발 중인 관계로 일본에게 보여줄 수 있는 전차는 1호 전차와 2호 전차, 2개뿐이었다.

일본인들은 1호와 2호를 보고 연신 감탄사를 내뱉었지만, 이것만으로는 못내 아쉬웠는지 내게 새로운 요구를 했다.

다른 전차는 없냐고.

4호 전차가 있긴 하나, 아직 개발 중인데다 육군 내부에서도 개발이 덜 끝난 신무기를 유출할 수 없다고 반대했다.

나 또한 굳이 4호 전차를 보여주고픈 생각도 없었고.

그 대안으로 떠올린 게 바로 3호 전차였다.

“이것은······?”

“우리 독일이 개발 중인 신형 전차의 설계도일세.”

그때 3호의 설계도를 떠올린 나는 이것을 일본 협상단에게 보여주었다.

예상대로 그들은 설계도에 상당한 관심을 보였다.

“차체 전면은 30mm, 측면은 15mm에 PaK 36과 같은 37mm 45구경장 주포를 탑재할 예정일세. 최고속력은 69km/h에 달하고. 어떤가?”

1937년 시점에서 일본이 보유한 전차 중 가장 강력한 성능의 전차는 95식 경전차 하고와 97식 중전차 치하뿐.

치하에 장착된 97식 57mm 전차포는 장갑 관통력이 거의 없는 보병 전용이라 장차 전차전에서 써먹을 만한 물건이 못 된다.

치하와 달리 하고에 장착된 37mm 94식 전차포는 300m에서 45mm 장갑판을 관통하는 ‘일본군 입장에선’ 준수한 성능을 가지고 있지만, 설계상의 문제로 전차의 지휘 및 사격, 장전까지 모든 임무를 전차장 혼자서 담당해야 하기 때문에 전차장과 포수, 탄약수로 분리된 3호 전차보다 전투 효율이 상당히 떨어진다.

이에 반해 3호 전차는 화력, 방어력, 기동성 모두 일본군이 보유한 그 어떤 전차보다 우수했다.

“사실 육군에서도 이걸 보여주면 안 된다고 반대가 많았는데, 내가 특별히 들고 온 것이라네.”

“그, 그게 정말이십니까?”

“총통이 되어서 거짓말을 하겠나? 나도 고민이 많았네. 이걸 보여줘도 되는 것인지. 하지만 귀국이 우리 독일에게 전해줄 건함 기술과 어뢰 설계도도 그만한 가치가 있는데, 우리만 이를 숨길 수 없지. 이익은 최대한 챙기되 그만한 값을 치러야 진정한 거래가 아니겠나.”

응, 뻥이야.

물론 육군 내부에서 3호 전차의 설계도 공개를 두고 말이 나온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반대라고 할 정도까지는 못 되었고, 어차피 쓰지도 않을 거 이를 미끼로 일본으로부터 더 많은 요구를 하는 것이 이득이라고 판단되어 공개된 것이다.

결과는 대성공.

“정말 감사합니다, 총통 각하. 이토록 귀한 물건을 선뜻 내어주시다니 몸 둘 바를 모르겠군요.”

“어허, 말은 똑바로 해야지. 제값을 받고 판 것인데 어찌 내어준 것이 될 수 있겠소? 부디 귀국에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길 바랄 뿐이오.”

“물론입니다! 이로써 일본과 독일의 관계는 더욱 깊어졌습니다!”

누구 마음대로.

어디까지나 네놈들 기술이 필요해서 거래를 할 뿐, 나는 너희들이랑 친하게 지낼 생각이 추호도 없다니까?

뭐어, 그래도 김칫국 마시는 것은 상대방 마음이니 내버려 뒀다.

일본 협상단은 선진국 독일이 전해준 기술로 무장한, 보다 강력해진 육군을 꿈꾸며 돌아갔고 크릭스마리네 장성들은 일본으로부터 전해 받을 건함 기술과 어뢰를 생각하며 기쁜 마음으로 축배를 들었다.

이번 협상의 성공으로 군 내에서 내 위상이 올라간 것은 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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