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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애굽기 (2) (27/150)

출애굽기 (2)

1936년 11월 26일

중국 난징 총통부

“어서 오시오. 참 오랜만에 보는 것 같소이다.”

“환대에 감사드립니다, 총통 각하.”

장제스는 환하게 웃으며 독일 총영사 헤르만 크리벨을 반겼다.

원래는 주중 독일 대사인 오스카 트라우트만이 장제스와 만날 예정이었는데 트라우트만이 갑작스레 몸살이 나는 바람에 크리벨이 대신 장제스와 만나게 되었다.

둘은 서로 친한 사이가 아니지만, 그렇다고 사이가 나쁜 것도 아니었다.

1928년에 처음 크리벨과 만나 그와 안면이 있던 장제스는 오랜만에 만나는 크리벨을 위해 성대한 환영파티를 열었다.

파티가 끝날 무렵까지 둘은 싱글벙글 웃으며 이런저런 얘기를 나눴다.

고향 얘기, 최근에 새로 생긴 개인적인 취미부터 부인이 바가지를 긁는 게 심해져서 골치 아프다는 푸념 등등.

‘진짜 대화’는 파티가 끝난 후에 시작되었다.

“히틀러 총통께서 내게 전할 중요한 말이 있다고 들었는데, 사실입니까?”

“그렇습니다.”

독일과는 예전부터 우호적인 관계를 이어오고 있지만, 히틀러 총통과의 접점은 딱히 없는 상태였다.

예전 쑨원 선생의 권유로 나의 투쟁을 읽어본 것과 히틀러의 총리 임명 소식 때 축하 전보를 보낸 것 정도?

그런데 갑자기 급히 전할 얘기가 있다니, 무슨 일이라도 생긴 걸까.

“각하, 단도직입적으로 말씀드리겠습니다. 부디 끝까지 들어주십시오.”

“알겠소.”

크리벨이 주저하며 입을 열었다.

“각하의 휘하에 있는 장쉐량과 양후청이 공산당에게 포섭되어 각하를 감금할 계획을 세우고 있습니다.”

장제스는 입으로 가져가던 찻잔을 도로 내려놓았다.

“그게 사실이오? 아니, 그보다 그 소식을 어디서 들은 거요?”

“독일에 계신 총통 각하께서 제게 알려주셨습니다. 소식의 출처가 어디인지는 밝히지 않으셨습니다만, 이 소식을 즉각 장제스 총통께 알려 둘을 체포해야 한다고 하셨습니다.”

며칠 전, 장제스가 가장 신뢰하는 부하이자 남의사의 수장인 다이리는 장제스에게 장쉐량과 양후청이 공산당과 내통하고 있으니 체포하여 심문해야 한다고 건의했다.

하지만 장제스는 다이리가 과민반응을 한다고 여겨 그의 말을 무시했다.

장쉐량과 양후청이 최근 초공작전에서 유약한 모습을 보이며 명령에 무조건적으로 복종하지 않는다는 사실은 알고 있다.

아무리 그래도 반역이라니. 장제스는 그럴 리가 없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독일의 히틀러 총통까지 같은 소식을 전해오자 장제스의 확신도 흔들리기 시작했다.

그가 무슨 경로로 정보를 입수하게 되었는지는 알 수 없지만, 짐작이 가는 것은 있었다.

중국 어딘가에 있는 아프베어 요원을 통해 얻었겠지.

그 요원과 연결된 이는 장쉐량이나 양후청의 부하 중 한 명일 테고.

중요한 것은 히틀러가 다이리와 똑같은 얘기를 했다는 것이었다.

히틀러 총통이 누구인가.

나의 투쟁으로 중국의 잠재력을 세계에 알린 것은 물론 세계 대공황과 일본의 만주 침략을 예언한 거물이 아닌가.

거기다 총 한 번 쏘지 않고 라인란트와 오스트리아를 접수하는 수완을 보여주기까지 했다.

이 때문에 독일은 물론 세계 각국에서 히틀러는 일종의 예언자로 통하고 있었다.

그 히틀러 총통이 한 말이니, 필시 그만한 증거가 있어서 그런 것이리라.

그러나 장제스는 여전히 일말의 의심을 품고 있었다.

“그 말이 사실이라는 증거가 있소?”

“제게는 없습니다. 하지만 총통께선 각하께서 진의를 의심할 줄 아시고 이런 말을 남기셨습니다. 곧 장쉐량이 각하께 시안을 직접 방문해달라고 요청할 것이니, 절대로 시안으로 가선 안 된다고 말입니다.

동시에 그 둘을 내버려 뒀다간 중국 전체에 엄청난 재난이 닥칠 것이라고도 하셨습니다.”

“그렇게까지 말씀하셨단 말이오?”

장제스는 입을 닫고 한참을 생각했다.

이쯤 되면 정말로 그 두 놈이 무슨 수작을 부리고 있을지 모른다.

그렇지 않고서야 다이리와 히틀러 총통이 같은 말을 연달아 할 리가 없지 않은가.

둘이 서로 만나서 무슨 계략이라도 꾸민 게 아니라면 말이다.

“······알겠소. 생각해보지.”

“총통께선 각하의 결단이 빠를수록 중국의 미래가 바뀔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그렇군. 내 하나만 더 묻겠소. 히틀러 총통께선 어째서 내게 이 소식을 알린 거요?”

“총통께선 오직 각하만이 중국을 책임질 수 있는 사람이며, 중국과 독일이 오래도록 좋은 관계를 유지해야 한다고 하셨습니다.”

장제스는 자기도 모르게 입꼬리가 올라갔다.

“허허, 히틀러 총통께서 나를 그렇게 보고 계실 줄이야. 이거 참 영광이군요.”

칭찬은 고래도 춤추게 한다고, 칭찬을 듣고 기분 나빠할 사람은 없는 법.

특히 자신이 경외하던 상대로부터 찬사를 드는 것만큼 기쁜 일도 없다.

크리벨이 돌아간 후, 장제스는 다이리를 호출했다.

“자네 말이 맞았네. 방금 독일 크리벨 영사와 만났는데, 전에 자네가 한 말을 그대로 하더군. 히틀러 총통이 알려왔다고 말이야.”

다이리도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독일의 히틀러 총통도 장쉐량과 양후청의 배신을 알고 있었던 것인가? 도대체 무슨 수로?

아니다. 중요한 것은 그게 아니다. 지금 해야 할 일은 따로 있었다.

“위원장 각하, 지금 당장 장쉐량과 양후청을 체포해야 합니다. 이 순간에도, 두 놈이 무슨 짓을 꾸미고 있을지 모릅니다.”

“알겠네. 하지만 그 전에 장쉐량과 통화를 하고 싶네.”

***

장제스가 전화를 걸어왔을 때, 장쉐량은 이제 막 침대에 눕던 참이었다.

난징에서 전화가 왔다는 말에 장쉐량은 맨발로 뛰어갔다.

장 총통이 내게 전화를 했다고? 갑자기?

“늦어서 죄송합니다, 위원장. 장쉐량입니다.”

-날세. 장쉐량, 듣자 하니 자네가 내게 할 말이 많다고 하던데.

공산당의 선전에 넘어간 장쉐량은 이전부터 장제스에게 공산당 토벌을 멈추고, 공산당과 협력해 일본부터 먼저 상대해야 한다고 진언했다.

그때마다 장제스는 화를 내며 장쉐량이 패배주의에 찌들었다고 꾸짖었다.

설마 이번에도 같은 말을 하기 위해서? 아니, 겨우 그러려고 이토록 늦은 시간에 전화를 했을 리가 없다. 필시 다른 이유가 있겠지.

“그렇습니다, 위원장.”

-지금 말해보게. 솔직하게. 남자답게 말일세.

“······위원장, 초공작전을 다시 한 번 더 검토해주십시오. 지금 중국의 가장 큰 적은 공산당이 아니라 일본입니다.”

장제스는 한동안 말이 없었다.

장쉐량은 식은땀을 흘렸다.

그는 이윽고 수화기에서 호통이 들려오리라고 예상했다. 하지만 장제스는 뜻밖의 반응을 보였다.

-계속 말해보게.

“위원장께서 공산당을 혐오하신다는 건 압니다. 공산당이 그간 위원장께 반기를 들어왔다는 것도 압니다. 하지만 위원장, 지금은 서로 원한을 잊고 협력해야 할 때입니다. 그래야 일본의 야욕으로부터 중국을 지킬 수 있단 말입니다.

위원장께서도 독일의 히틀러 총통이 쓴 나의 투쟁을 읽으셨지 않습니까? 일본은 결코 만주에서 그치지 않고 중국과 아시아 전체를 노릴 것입니다. 중국 인민들을 비극의 운명에서 구하려면 공산당과의 협력은 필수입니다. 인민들도 그것을 원하고 있습니다.”

그 히틀러가 자신을 체포하라고 장제스에게 권했다는 사실을 장쉐량은 새까맣게 모르고 있었다.

“아예 위원장께서 직접 시안에 오시는 것이 어떻습니까? 이곳에 오셔서 현실을 보셨으면 합니다.”

-······그게 자네 생각인가?

“예.”

-알겠네. 잘 알겠어. 안 그래도 요즘 나도 생각이 복잡해서 말일세. 그래서 말인데, 양후청과 함께 난징으로 오게. 자네들과 대화를 나누고 싶군.

“정말입니까?”

장쉐량은 믿을 수 없었다. 돌부처처럼 꼼짝않던 장 위원장이 이제야 마음을 바꾸다니.

아직 공산당과 협력하겠다고 선언한 것은 아니었지만, 장쉐량은 장제스가 자신의 이야기를 들어준 것만으로도 큰 변화라고 생각했다.

그와 만나 자신의 진심을 전한다면, 틀림없이 마음이 돌아설 것이다.

“알겠습니다, 위원장! 곧 난징으로 가겠습니다.”

-좋네.

전화가 끊어졌다.

***

“장쉐량이 뭐라고 했습니까?”

“나보고 시안으로 와달라고 하더군. 허참, 히틀러 총통의 말이 맞았어.”

장제스는 더 이상 말할 가치도 없다는 듯 고개를 내저었다.

“그 두 놈이 난징에 도착하는 즉시 체포하게.”

***

장제스는 결국 내 조언을 받아들였다.

장쉐량과 양후청은 난징에 도착하자마자 체포되어 압송되었다.

심문 끝에 장쉐량이 먼저 공산당과 내통하고 있으며, 장제스를 시안으로 초청해 그가 자신의 말을 끝까지 듣지 않으면 억류하려고 했다고 진술했다.

양후청도 뒤늦게 자신의 혐의를 인정했지만 부질없는 짓이었다.

장쉐량은 반역을 꾀한 죄로 모든 관직을 박탈당하고 투옥되었고 양후청은 총살되었다.

지휘관을 잃은 동북군은 반란을 일으켰지만, 장제스가 투항을 권하고 시안 일대에 포탄이 떨어지자 바로 꼬리를 내렸다.

사건이 해결된 후, 장제스는 주독 중국 대사를 통해 내게 감사 인사를 전했다.

하마터면 자신과 중국의 운명이 낭떠러지에 떨어질 뻔했다고.

“총통 각하, 어떻게 중국에서 그런 일이 진행되고 있다는 것을 아셨는지······?”

“괴링, 미안하지만 자네한테 말해줄 수 없는 것도 있는 법이라네. 대충 자네가 알지 못하는, 나만의 은밀한 소식통이 하나 있다는 것만 알아두게.”

내가 미래에서 왔기 때문이라고 말할 수 없잖아. 다들 내가 하는 말이라면 곧이곧대로 믿었기에 이 일은 곧 잊혀졌다.

이로써 ‘시안 사건’은 일어나지 않은 일이 되었다.

역사대로라면 공산당의 선전에 홀라당 넘어간 장쉐량과 양후청이 장제스를 시안으로 유인해 그를 억류했고 끝내 장제스로부터 초공작전을 중지하고 공산당과 협력한다는 약조를 얻어냈다.

두 머저리 덕분에 멸망의 위기에서 벗어난 중국 공산당은 국민당이 일본과 싸우는 동안 세력 확장에 몰두하여 몸집을 불렸고, 2차대전이 끝난 후에는 국공내전을 일으켜 중국 대륙을 차지한다.

공산당이 장악한 중국은 한국전쟁에 개입해 북진통일을 저지하고, 21세기에는 동북공정, 우한폐렴 등 온갖 민폐와 패악질을 부리며 세계에 어두운 그림자를 드리우게 된다.

그렇게 놔둘까 보냐.

단순히 중국을 상대로 장사해서 돈만 벌 계획이라면, 굳이 장제스에게 장쉐량의 음모에 대해 알려줄 필요가 없긴 하다.

허나, 자유 대한에 태어나 분단의 아픔과 그로 인한 피해를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데 그 원흉을 가만히 내버려 둘 수만은 없는 일이다.

장제스의 호의를 얻는 동시에, 혹시 있을지 모르는 재앙을 사전에 차단한다.

거기다 참전용사들과 이산가족의 원한도 풀고, 얼마나 좋아.

장제스는 내게 독일의 우수한 무기와 과학기술이 중국에 필요하며, 이를 수입하고 싶다는 의사를 내비쳤다.

전보 대신 직접 얼굴을 보고 마주 앉아서 상세한 대화를 나누고 싶다는 의견도 함께.

일이 착착 풀리는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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