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스트리아 합병
돌푸스의 암살로 갑작스레 총리가 된 슈슈니크는 몸 상태가 갈수록 악화되었다.
자신에게 남은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음을 직감한 그는 자신의 절친한 친구이자 얼마 전 내무장관으로 임명된 아르투어 자이스 잉크바르트를 자신의 후임으로 선택했다.
“잘 부탁하네, 아티. 부디 내가 없어 이 나라를 잘 이끌어주게.”
“그건 걱정하지 말게. 쿠르트, 자네 몸이나 우선 신경 쓰라고.”
1936년 5월 3일,
슈슈니크가 건강상의 이유로 물러나고 잉크바르트가 총리직에 올랐다.
사흘 뒤인 5월 6일에 슈슈니크는 사망했다. 슈슈니크가 사망하자 히틀러는 애도 성명을 발표하며 전국에 조기를 게양할 것을 지시했다.
총리가 된 잉크바르트는 곧바로 행동에 돌입했다.
***
1936년 5월 10일
독일 베를린 총통관저
“총통 각하! 잉크바르트로부터 연락이 왔습니다!”
괴벨스가 문을 열고 집무실로 뛰어들어왔다. 얼마나 흥분했는지 얼굴이 홍당무처럼 시뻘겠다.
입꼬리는 귀에 걸리기 직전이고.
“뭐라고 왔던가?”
“오스트리아 내부의 치안 문제 해결을 위해 국방군의 지원을 요청한다고 합니다.”
“그렇군. 도움을 청하는 아우를 형이 된 자로 못 본 척할 수가 없지.”
잉크바르트의 요청에 따라 나는 즉시 국방군에게 오스트리아 출동 명령을 내렸다.
이미 계획은 다 세워놓은 후였다.
***
1936년 5월 11일
독일-오스트리아 국경
“자, 드가자!”
국경의 차단봉이 올라가자 대기하던 독일 국방군 병사들은 곧장 오스트리아 영내로 행군을 시작했다.
오스트리아군 장교들과 병사들이 국방군 병사들과 악수하고 기자들과 국방군 촬영팀은 열심히 그 광경을 찍었다.
이들이 찍은 사진과 영상은 곧 신문과 뉴스영화로 독일 국민들과 전 세계에 공개될 예정이었다.
“환영합니다, 독일 형제들!”
“오스트리아에 어서 오십시오!”
오스트리아인들은 국방군을 열렬히 반겼다. 집권당인 조국전선과 달리 오스트리아 국민 대부분은 ‘형제의 나라’ 독일과 하나로 합쳐야 한다는 인식을 가지고 있었고 독일군의 진주를 기쁜 마음으로 받아들였다.
군악대가 독일과 오스트리아 국가를 연주하는 가운데 시민들은 창문 밖으로 색종이와 꽃을 뿌렸다.
아이들은 행군하는 병사들에게 꽃을 건넸고 아낙들은 커다란 항아리에 물을 가득 채워 목마른 병사들이 물을 떠 마실 수 있게 했으며, 1차대전에 참전했던 이들은 옛 군복을 입고 나왔다.
오스트리아 각지에서 동시에 벌어지고 있는 광경이었다.
“이걸로 히틀러 놈의 콧대가 더 높아지겠구만.”
국방군을 환영하는 오스트리아인들과 꽃목걸이를 목에 걸고 희희낙락거리는 병사들을 뚱한 얼굴로 응시하던 베크는 땅이 꺼져라 한숨을 내쉬었다. 오늘따라 담배가 더욱 쓰게 느껴졌다.
“그러게 말입니다. 하늘도 참 무심하시지. 어떻게 저런 놈을······.”
베크의 부하이자, 국방군 내 원로 중 한 명인 에르빈 폰 비츨레벤도 덩달아 담배 연기를 힘없이 뿜어냈다.
히틀러가 총통이 되고 베르사유 조약의 파기와 징병제 부활을 선언할 때까지만 해도 그들은 히틀러와 나치당에 대해 중립에 가까운 태도를 유지했다.
하지만 히틀러가 라인란트 재점령을 명령하면서부터 그들은 깨달았다. 히틀러야말로 독일을 다시 파멸로 이끌 인간이라고.
세간의 히틀러에 대한 인식은 철십자훈장을 받은 전쟁영웅이자, 세계 대공황과 일본의 중국 침략을 예언한 세기의 천재이지만 베크와 비츨레벤을 비롯한 군부 원로들이 보기에는 비스마르크 흉내나 내는 전직 하사 나부랭이에 불과했다.
라인란트 때는 히틀러의 말대로 흘러갔지만, 그의 예측이 앞으로도 계속 들어맞을지는 아무도 모르는 일이었다.
군부가 평화주의자들이라서 히틀러와 나치당을 멸시하는 것은 결코 아니다.
이들 역시 히틀러가 주장하는 독일의 고토 수복이라는 목표에는 적극 찬성하는 입장이었다.
다만 그 실행 방식을 두고 의견의 차이가 있을 뿐.
베크는 히틀러의 지나치게 빠른 실행력과 모험주의가 독일을 장차 파멸시킬 것이라고 확신하고 있었다.
지금 전쟁이 터진다면 아직 군사력을 회복하지 못한 독일은 틀림없이 필패한다. 하지만 히틀러는 그 사실을 모르는 눈치다.
오히려 영국과 프랑스를 너무 우습게 보며 마구 날뛸 뿐.
“이번 일도 우연으로 잘 풀리긴 했지만, 행운이 계속되지는 않을 거야. 그렇게 되면, 필시 전쟁이 일어나겠지.”
“그렇습니다.”
“그러기 전에 히틀러 놈을 죽여야 하는데······ 지금 분위기로는 힘들겠구만.”
라인란트 재점령으로 히틀러를 향한 국민들의 지지는 하늘을 찌를 정도였다.
거기다 오스트리아까지 손에 넣었으니 국민들 중 누구도 히틀러에 반대하려 들지 않을 것이다.
지금 쿠데타를 일으켰다간 오히려 국민들이 들고 일어날 가능성이 너무나도 컸다.
어쩔 수 없이 한동안 가만히 지켜보는 수밖에.
베크는 꽁초를 땅에 던진 뒤, 군화로 짓밟았다. 독한 슈납스로 쓰디쓴 속을 달래고 싶었다.
***
“반갑습니다, 여러분. 정말 반갑습니다.”
사람들의 환호 속에, 나는 연단에 올랐다.
이곳 빈은 오스트리아의 수도로 히틀러가 그토록 가고 싶었던 국립미술대학이 있는 곳이기도 하다.
빈으로 가는 동안 오스트리아인들은 축제라도 열린 것마냥 열렬하게 나와 병사들을 환영해주었다.
21세기 한국에서 살다 하루아침에 히틀러가 된 나조차 주민들의 환영에 마음이 뭉클한데, 진짜 히틀러는 어떤 심정이었을까? 기분 째졌겠지.
그러나 2차대전이 터지고 오스트리아인들은 독일군에 징집되어 전쟁터로 보내졌다.
국토가 전쟁으로 폐허가 되는 것은 물론, 전후 미국과 영국 등 서방 연합국과 소련에 의해 국토가 분할되어 통치당하기까지 했다.
10년 만인 1955년에 영세중립국 형태로 통일되긴 하지만.
과거 회귀에선 내전이 터지고, 이탈리아와 체코슬로바키아가 쳐들어왔었다. 겨우 독일과 합쳐놨더니 그때도 내전으로 이탈리아 손에 넘어가고 말았고.
이번에는 무슨 일이 있어도 같은 비극이 반복되지 않게 할 것이다.
“저는 오늘, 떨리는 마음으로 이 자리에 섰습니다. 저는 이곳으로 오기까지 여러분의 열렬한 환호와 따스한 인사를 받았습니다. 오래전, 제가 독일로 떠날 때까지만 해도 상상조차 할 수 없었던 일입니다.
지금 이 순간도 제겐 그저 꿈만 같습니다. 뮌헨에서 처음 혁명을 시도했을 때, 제 꿈은 제가 태어나고 자랐던 고국 오스트리아를 위대한 독일과 하나로 합치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지금 그 꿈이 이루어졌습니다.
독일과 오스트리아는 더 이상 외국이 아닙니다! 두 나라는 오늘부로 하나가 되었습니다. 본래 있어야 할 자리에 마침내 도달할 것입니다.
하지만 이게 끝은 아닙니다. 이는 겨우 시작에 불과할 뿐, 아직 우리가 걸어가야 할 길은 많이 남아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해낼 것입니다. 지금 오스트리아가 독일과 하나가 되었듯이, 우리는 모두가 불가능이라고 단언한 일들을 해낼 것이며 계속해서 앞으로 나아갈 것입니다.
하나의 독일, 위대한 독일, 위대한 조국을 위해 서로 뭉칩시다. 도이칠란트 위버 알레스!”
“우아아아아아!!!”
연설이 끝나고 스피커에서 독일 국가가 흘러나왔다.
독일인의 노래(Das Lied der Deutschen). 전후 사용 빈도가 크게 줄긴 했지만, 나치 독일 시절에는 크고 작은 행사에서 절대로 빠지지 않던 노래다.
독일, 세계 위에 군림하는 독일, 세상 그 무엇보다도
방어와 공격할 때도 형제처럼 함께 서 있네
마스에서 메멜까지, 에치에서 벨트까지!
아이들부터 노인들까지 모두 홀린듯이 노래를 따라 불렀다. 제대로 뽕차는 광경이군. 이게 바로 국뽕이란 건가.
***
독일군이 오스트리아에 진주한 후에도 오스트리아라 라는 국가 가체는 유지되었다.
허울뿐인 대통령이었던 빌헬름 미크라스는 자신의 권한을 잉크바르트에게 넘겼고 잉크바르트와의 합의를 통해 오스트리아 국민들에게 독일과의 통일을 묻는 국민투표를 진행했다.
이미 답은 정해진 것이나 다름없긴 하나, 그래도 형식상의 절차는 거쳐야 하는 법이다.
결과는 찬성이 94%, 반대 6%.
오스트리아는 공식적으로 독일의 일부가 되었다.
합병에 결정적인 공헌을 세운 잉크바르트는 명예 SS 대장직을 수여받고 무임소장관이 되었다.
이번에도 영국과 프랑스는 침묵을 지켰다. 이탈리아의 경우, 국경에 군대를 배치하긴 했지만 그뿐이었다.
어차피 그놈들은 에티오피아 일로 바쁘거든. 역사에서도 이탈리아는 에티오피아의 수도 아디스아바바를 점령한 후에도 에티오피아군 잔당들과의 게릴라전으로 1937년 초까지 고생해야 했다. 하물며 지금은 오죽할까.
전쟁이 하고 싶어도 할 형편이 안 되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참고 있으리라.
무솔리니가 지금쯤 무슨 표정을 짓고 있을지 궁금하군.
***
“빌어먹을! 일이 제대로 풀리는 게 없어!”
무솔리니는 분에 못 이겨 꽃병을 바닥에 던져버렸다.
화려한 꽃장식이 그려진 꽃병이 산산조각나고 싱그러운 꽃이 사방으로 흩어졌다.
간악하기 짝이 없는 히틀러가 에티오피아 흑인들에게 무기를 지원한 것도 모두 오스트리아 합병을 위한 포석이었다.
이탈리아가 에티오피아에서 피를 쏟게 만들고 그 틈에 오스트리아를 집어삼키려는 수작.
사실 이번 오스트리아 합병도 히틀러의 본래 계획과는 다소 거리가 있는 우연의 결과였지만 무솔리니가 그것을 알 리가 없었다.
“돌푸스의 죽음도 다 히틀러 그놈 짓이 분명해! 그놈이 빨갱이들을 사주해서 벌인 짓이라고!”
이탈리아의 영토가 될 예정이었던 오스트리아를 경쟁자인 독일에게 빼앗겼다는 사실에 무솔리니는 미친 사람처럼 마구 날뛰었지만, 그도 이런다고 현실이 달라지지 않다는 것쯤을 알고 있었다.
그저 분을 이길 수 없었을 뿐.
이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화병으로 쓰러질 것만 같았다.
겨우 마음을 가라앉힌 무솔리니는 머리를 굴렸다.
이미 오스트리아 영내에 독일군이 진주한 이상, 저들을 도로 쫓아내려면 전쟁 외에는 방법이 없다.
하지만 이탈리아군의 주력 다수는 에티오피아 전선에 있는 상황.
반면 전쟁이 터지면 독일은 기존의 사단들뿐만 아니라 오스트리아군까지 동원할 수 있다.
무솔리니는 이탈리아군이 독일군보다 약하다고 생각하지 않았지만, 상황이 이탈리아에게 불리하다는 사실은 인정했다.
이번만큼은 조용히 넘어갈 수밖에.
“히틀러에게 전해.”
“뭐라고 전합니까, 두체?”
“오스트리아 합병을 묵인하는 대신, 티롤 지방에 대해선 어떤 영유권도 주장하지 말라고. 내 경고를 무시했다간 전쟁을 각오하라는 말과 함께.”
“알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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