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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푸스는 행복할 수 없어 (22/150)

돌푸스는 행복할 수 없어

1936년 3월 23일

독일 뉘른베르크

“독일의 총통을 만나 큰 영광입니다.”

“아유, 별말씀을 다 하시는군요.”

흑색 제복을 착용한 SS 호위병들이 좌우로 정렬한 가운데 하켄크로이츠 깃발과 오스트리아 깃발이 휘날렸다.

돌푸스는 키가 정말로 작았다. 키가 150cm밖에 되지 않아 180cm가 넘는 장신의 SS 대원 옆에 서자 어른과 아이처럼 보일 정도였다.

그와 악수를 하기 위해선 거의 절을 하듯이 허리를 굽혀야 했다.

“병사들의 기강이 잘 잡혀 있군요. 과연, 총통의 친위대는 다른가 봅니다.”

“하하, 별말씀을 다 하십니다. 어서 안으로 들어가시지요.”

돌푸스와의 정상회담은 화기애애한 분위기에서 진행되었다.

나는 오스트리아 대표단을 위해 뉘른베르크 일대에 하켄크로이츠 깃발보다 오스트리아 국기를 더 많이 내걸라고 지시했고 대표단은 도시 곳곳에 휘날리는 오스트리아 깃발을 보고 마음이 놓인 듯했다.

“우리 독일은 귀국과 이전보다 발전되고 친밀한 관계를 원합니다.”

나는 일부러 돌푸스가 듣기 좋은 말만 골라서 했다.

농림장관 시절 돌푸스의 업적에 대한 찬사부터 최근 돌푸스가 때려잡은 오스트리아 공산주의 조직들에 대한 비판, 그리고 독일과 오스트리아의 협력 사항들에 대해서까지.

돌푸스의 얼굴에선 미소가 떠나질 않았다. 제대로 먹혀들었군.

“저희 오스트리아도 독일과 우호적인 관계를 계속 이어나갔으면 합니다. 양국은 어쨌거나 서로 형제 아닙니까.”

“그렇지요. 제가 지금은 독일의 총통이지만, 태어난 고국인 오스트리아를 어찌 잊을 수 있겠습니까.”

2시간에 걸친 회담 결과, 돌푸스는 독일과 오스트리아가 군사동맹을 체결하는 것에 찬성했다.

회담이 슬슬 끝나갈 무렵 그는 내게 기습적으로 질문을 던졌다.

“총통, 실례지만 하나 물어봐도 되겠습니까?”

“말씀하시지요.”

“귀국은 오스트리아를 장기적으로 어떻게 하실 생각입니까? 이런 말씀을 드리기 참 민망하지만, 오스트리아 일각에선 독일이 오스트리아를 자국의 일개 지방으로 합병하려고 한다는 소문이 돌고 있어서 말이지요.

물론 이는 겨우 소문에 불과하지만, 이 소문으로 인한 우려도 무시할 수 없는 수준입니다. 이번 기회에 총통의 의견을 들었으면 좋겠습니다.”

대놓고 말을 하지 않아서 그렇지 사실상 ‘너 나중에 오스트리아 먹을 생각 아니냐’고 묻는 것이나 다름없다.

돌푸스 본인부터가 오스트리아는 독일과 분리된 별개의 국가로 존속해야 한다고 주장했던 자이니 이 질문은 본인의 질문이라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별걱정을 다 하시는군요. 누가 그런 소문을 퍼뜨리고 다니는 것인지 몰라도 저는 독일의 총통입니다. 오스트리아 일은 독일 정부가 아니라 오스트리아 정부에게 맡겨야지요.

두 나라가 아무리 친하다고 한들 각자의 정부가 있지 않습니까. 제 최종목적은 오직 오스트리아와 독일이 서로 동맹을 맺어 영원한 친선관계를 유지하는 것뿐입니다.”

그제야 돌푸스는 마음이 완전히 놓이는 듯했다.

“그렇군요. 감사합니다, 총통. 무례한 질문에 성심성의껏 답변해주셔서.”

“그 정도야 당연한 일 아니겠습니까. 다른 나라도 아니고 내가 태어난 나라인데.”

회담이 끝나고 만찬이 열렸다. 만찬이 끝난 뒤에는 ‘무기 박람회’였다.

돌푸스를 비롯한 오스트리아 대표단은 독일제 신형 무기에 지대한 관심을 보였다. 최신형 기관총인 MG34와 최신 기관단총인 MP35, EMP35부터 1호 전차와 2호 전차까지.

“오오, 이게 바로 독일의 그 신형 전차로군요.”

자국산 전차가 아예 없었던 오스트리아인들은 1호와 2호를 둘러보며 연신 감탄사를 내뱉었다.

저렇게까지 감탄하며 볼 물건은 아닌데.

항공기들도 좋은 구경거리였다.

복엽기이자 현재 독일의 주력 전투기인 Ar65, 아직 개발 중인 Bf109, 현역인 He50, He51, Hs123 폭격기들까지.

항공기들을 살피는 돌푸스의 눈이 반짝반짝 빛났다. 마치 마트 진열대에서 새로 나온 장난감을 본 아이의 눈빛 같구만.

나는 기회를 놓치지 않고 말했다.

“어떻습니까, 총리? 우리 독일의 자랑거리들이.”

“놀랍군요. 오스트리아에는 없는 것들이라 더더욱 탐이 납니다, 그려.”

돌푸스의 말은 으레 하는 립서비스가 아니라 진심인 듯했다. 표정이 모든 것을 말해주고 있거든.

M48 패튼이나 F-4 팬텀 등을 굴리다가 갑자기 M1 에이브람스, F-35 라이트닝을 본다고 생각해보라. 눈이 안 돌아갈래야 안 돌아갈 수가 없다.

“독일과 오스트리아가 이제 동맹이 되었으니 곧 오스트리아군도 이것들을 보유하게 될 것입니다.”

“정말입니까?”

돌푸스가 반색을 하며 물었다. 나는 당연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저희는 이제 동맹이 아닙니까. 제가 왜 거짓말을 하겠습니까. 오스트리아의 안녕이 곧 독일의 안녕이고, 독일의 안녕이 오스트리아의 안녕인데.”

나는 현장에서 즉석으로 1호 전차와 2호 전차를 각각 1대씩 오스트리아에 선물하겠다고 약속했다. 내 말에 오스트리아 대표단은 깜짝 놀랐다.

2호 전차는 물론이고, 1호 전차도 양산이 시작된 지 2년도 채 되지 않은 신형 전차다.

그런 귀중한 무기를 공짜로 주겠다니 당연히 눈이 휘둥그레질 수밖에.

“뭘 그렇게 놀라십니까? 이 정도야 우정의 증표로 드릴 수 있는 수준이죠.”

“정말 고맙습니다, 총통! 총통이 범상치 않은 사람이란 사실은 익히 알고 있었지만, 이 정도로 통이 크신 분일 줄은 몰랐습니다!”

오스트리아 대표단은 입이 귀에 걸린 채로 돌아갔다.

장차 오스트리아를 집어삼킬 생각이긴 하나, 당장은 계획에 없다.

지난 회귀에서도 오스트리아를 천천히 구워삶아 스스로 합병 신청을 요청하게 만들었을 때가 1940년이니 조급해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하지만, 세상일은 언제나 계획대로 굴러가지 않는 법이다.

***

1936년 4월 1일

오스트리아 레오벤-카펜베르크 간 도로

“요즘 기분이 좋으신 것 같군요.”

교육부 장관이자 돌푸스의 최측근인 쿠르트 슈슈니크가 물었다. 돌푸스는 고개를 끄덕였다.

“기분이 안 좋을 수가 없지.”

독일과의 회담은 성공적이었다. 히틀러 총통으로부터 직접 오스트리아 합병에 관심 없다는 대답을 들은 것은 물론, 귀하디귀한 신형 전차 2대까지 선물 받았다.

회담의 자세한 내용-히틀러 총통의 대답이나 기타 민감한 사항들-에 대해선 국민들에게 알리지 않았지만, 돌푸스는 이번 회담으로 독일한테서 많은 선물을 받아냈다고 열심히 선전했다.

히틀러 총통이 선물로 준 전차 2대가 그 증거가 아닌가.

국민들은 정부가 거둔 성과에 열광했고 돌푸스의 지지도 자연스레 올라갔다.

지금 오스트리아에서 돌푸스를 지지하지 않는 단체는 공산당뿐.

“어제도 수도에서 빨갱이들이 나를 비난하는 유인물을 뿌리다가 걸렸다면서. 참 징글징글한 놈들이야.”

돌푸스가 투덜거렸다. 총리직에 오른 후 돌푸스가 가장 열심이었던 것은 오스트리아에 기생한 공산당과 각종 사회주의 단체들을 때려잡는 것이었다.

돌푸스의 탄압을 피해 공산당은 지하로 숨어들었고 지금도 오스트리아 곳곳에서 은밀하게 활동을 이어나가고 있었다.

“걱정하지 마십시오. 보국단(Heimwehr)이 열심히 일하고 있으니 3, 4년 안에 빨갱이들은 이 나라에서 자취를 감출 겁니다.”

보국단은 돌푸스가 만든 파시스트 성향의 준군사조직으로 돌푸스와 돌푸스가 속한 조국전선의 친위대 역할을 수행하고 있었다.

2년 전에 있었던 오스트리아 내전에서 오스트리아 인민전선을 진압하는데 큰 활약을 한 것도 보국단이었다.

“그래야지. 사회의 암 덩어리인 빨갱이들은 모두 죽여야-”

그 순간, 폭발이 일어났다.

돌푸스는 자신에게 무슨 일이 생긴 것인지 알지 못했다. 몸이 붕 떠오른다는 생각이 들었을 때, 폭압이 그의 몸을 산산조각 냈다.

한때 돌푸스였던 것은 수백, 수천 개의 크고 작은 고기 조각으로 나뉘어 마찬가지로 엉망이 된 전용차 곳곳에 들러붙었다.

***

“다시 한 번 말해주게.”

-예, 총통 각하. 방금 들려온 소식입니다. 돌푸스 총리가 테러로 사망했다고 합니다. 몇 번이고 다시 확인했습니다마는, 분명한 사실입니다.”

“허어······.”

이게 대체 무슨 일이람.

돌푸스가 죽다니. 만나서 얘기한 지 얼마나 됐다고.

돌푸스의 갑작스러운 암살 소식은 오스트리아는 물론, 나까지 당혹스럽게 만들었다.

설마 오스트리아 나치당이 독단으로 저지른 일인가 싶어 확인을 명령했지만 돌아온 답변은 자기들도 도저히 모르겠다는 것이었다.

하긴, 내 말에 무조건 복종하는 녀석들인데 독단적으로 일을 저지를 리가 없다.

일부 과격파가 저지르고 모르쇠로 일관하고 있을 가능성도 있지만 하이드리히도 그럴 가능성은 낮다고 말하니 믿어도 좋으리라.

그렇다면 대체 누가 돌푸스를 죽인 거지?

***

돌푸스를 암살한 범인의 정체는 얼마 못 가 밝혀졌다.

돌푸스 암살사건의 범인은 오스트리아 공산당으로 밝혀졌다.

정확히는 공산당의 지령을 따르는 오스트리아 레지스탕스 조직으로 그들이 돌푸스를 암살한 진범이었다.

역사에서는 극우인 나치당 손에 죽더니 이번에는 공산당 손에 죽고 말았다.

사람도 참, 재수가 없어도 더럽게 없구만. 지난 회귀 때는 어떻게 죽었더라? 그래, 심장마비로 죽었었지. 슈슈니크는 돌푸스보다 먼저 교통사고로 죽었고.

돌푸스는 현장에서 즉사했지만, 슈슈니크는 살아남아 후임 총리가 되었다. 하지만 슈슈니크의 상태도 영 좋지 않았다.

폭탄 테러로 인해 왼쪽 다리가 날아간데다 머리까지 다쳐서 10분 이상 말하는 게 힘들다고 한다. 그 친구도 오래는 못 가겠구만.

“총통 각하, 어쩌면 이번 일이 하늘이 주신 기회일지도 모릅니다.”

괴링이 말했다. 괴링과 사이가 좋지 않은 괴벨스조차 괴링의 말에 맞장구를 쳤다.

“맞습니다, 총통 각하. 이번 사건을 잘 이용하면, 우리에게 좋은 방향으로 흐르게 할 수 있을 겁니다.”

“내 생각도 그렇네.”

둘의 말대로 이번 일은 돌푸스와 돌푸스의 가족들에게는 나쁜 일일지 몰라도 독일에게는 아니었다. 오히려 그 반대지.

돌푸스는 파시스트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오스트리아와 독일의 통일을 극렬히 반대하는 오스트리아 독립파이기도 하다.

그런 돌푸스가 죽었으니 이후의 작업이 한층 더 쉬워지리라.

요즘따라 일이 술술 풀리는 것 같구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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